에스파니아

상운 2006. 2. 20. 10:42

세비야 (Sevilla) 의 시내 모습

 



안달루시아 최대의 도시로

롯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와 비제의 "카르멘"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대 항해시절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출발한 곳이기도 하다.

 

그후 16세기 신대륙과 교역중심지가 되면서

황금기를 구가한 세비야는 신대륙에서 막대한 금과 은이

들어오면서 "황금의 도시"라 불릴정도로 번영 하였었다.

 

또한 중남미의 식민지에서 흘러든 각종재화는

도시의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으며 이를 찾아 모여든 다양한 인종과

바다 건너에서 유입된 이국의 문화는

학문. 예술의 발달을 부추기고도 남았다.

 

그 무렵 세비야는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갖인 도시가 되였고

이에 따라 화려한 상업 도시로도 성장을 거듭 하였었다.

 

북에서 남으로 가로 질으는 과달키 비르강 연안에 자리한 이곳은

오늘날 70만명에 가가운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새롭게 생겨난 도시들에 의해 중요도가 과거보다는 약화되긴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이베리아 반도 도시중 대표격으로

그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세비아의 옛 이름은 히스팔리스로 처음 이곳에 정착한 것은

타르세시안인 들이였다.

기원전 2세기경 로마인들이 세비야에 들어 오면서 이곳은 7세기 까지

로마 제국의 서부 지중해 거점도시로 활약하였고

8세기경 부터 13세기 까지 게속된 무어의 지배는 세비야를 비롯한

전 안달루시아 지방에 크나큰 혼절을 남겼다.

 

근세에 이르러 과거의 명성만은 못하지만

1992년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서 엑스포를 개최하여

세계의 이목을 끄렀고 오랜 세월동안 번성해온 유적과 도시의 아름다움이

곳곳에 보전되여 있어 옛 영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대성당앞의 광장.

 

아직도 거리엔 종려나무가 장식되여 있고 발코니에는

꽃들이 놓아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세비야 대성당 (Catedral)

 



기독교가 무어인을 몰아내고 세비야를 재 정복한후

 모스크를 부수고 세운 성당이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처 지은 이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중 하나로

바디칸의 싼피에트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 다음 가는 규모로

크다고 한다.

 

물론 스페인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다.

 

 

 



이성당은 고딕과 신고딕 르넷쌍스 양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뒤섞여 있는

건축의 보고이기도 하단다.

 

76미터 넓이와 116미터의 길이 그리고 56미터의 높이로 세워진 이성당은

직사각형 구조로 웅장하면서도 수수한 장식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내부에는 세비아의 수호신인 성모상이 안치된 왕실 예배당과

무리요의 성모수태가 있는 회의실.

고야와 수루반란의 그림이 있는 성배실.

무리요의 대표작 "성 안토니오의 환상"이 그려진 성 안토니오 예배당등이 있어

미술품의 보고라고 할만큼 유명한 작품들이 많아

눈길을 멈추게도 했다.

 

 



무리요의 성 안토니오의 환상.

 

내부는 중앙제단을 중심으로 15세기의 현란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정교한 성가대석.제단위에 자리잡고 있는 벽화와 화려한 장식등이

몸을 낮후게하고 경건하게도 하였다.

 



그리고 세비야를 이슬람교로 부터 되찾은 영웅 산 페르난도를 비롯해서

역대 스페인 왕들의 유해와 콜럼버스의 유해가 안치되여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콜럼버스의 유해는 카르비해 어딘가에 있고

여기 잠든것은 그의 아들 디에고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콜럼버스의 관을 메고 있는 4왕들.

 

특히 중앙복도 옳은 쪽문인 산 크리스토발 문을 드러스면

옛날 스페인을 다스린 카스티야. 나바라. 레온. 그리고 아라곤.등 4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선채로 메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 왕관을 쓴 4명의 무덤지기 동상은 콜럼버스의 항해 당시의 있었던

스페인의 4개의 왕국을 상징한단다.

 

 



성당 마당은 "오렌지 정원"이라고 부르는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오렌지 나무가 많이 있었다.

 

 

 

 

히랄다 탑  (La Giralda)

 

 



세비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탑은 원래 12세기 중반 무어인들이 세운

모스크의 미너렛으로 쓰이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세비야를 점령한후 모스크를 파괴하고 대성당을 세웠지만

히랄다 탑은 파괴하는 대신 성당의 종탑으로 개조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지진으로 파손된것을 기독교인들이 수리하면서 전망대와

풍향계를 설치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데

탑의 이름도 풍향게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히랄다는 "바람개비"라는 뜻이란다.

 

처음에는 기독교인들은 탑을 없애려고 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반해 차마 부수지 못하고 28개의종을 달아 예배시간을

알리는 역활을 하였다고 하니 기독교의 대립과 공존의 시대를 거치면서

히랄다 탑은 대성당과 함께 서있는 모습이 묘한 세월의 느김을 준다.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na)

 

 




1929년에 열린 스페인 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서 만들어졌던 곳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의 작품이라 한다.

 

반달 모양의 광장을 둘러싼 건물 양쪽에 80미터의 높이의 탑이 잇고

궁전을 방불케 하는 4개의 건물과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기념하는 2개의 연못이 있다.

 

반달 모양의 형식은 스페인이 미국에게 주었던 포옹을 의미한단다.

 

 





이건물은 반원형 무데하르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광장쪽 벽면에는 스페인의 각지역의 특색과 역사적인 사건들을 묘사한 작품이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되여 눈길을 끄렀다.

 



광장의 수많은 분수와 벤치도 여러가지 색갈의 타일로 붙허져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나와 스페인 사람들도 이곳에서 결혼식

기념찰영을 많이 한다고 한다.

 

 

 

황금의 탑 (Torre del Oro)

 

 



세비야 시내를 흐르는 과달키 비르강의 산 델모 다리

근처에 있는 12각형으로 된 탑이다.

 

무어인이 탑을 세운 13세기 무렵에는 상부가 금색타일로

덮혀 있었기 때문에 황금의 탑이라 했다 한다.

 

이탑은 이곳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한것으로 강건너편에

8각형의 은색탑과 쇠사슬을 걸어 항구를 방위하기 위하여 통행을 제한하면서

지나는 배를 검문하였다고 한다.

 

 


 

거리의 가로수에 놓란 오렌지가 열려 이채로웠다.

 



세비야 시내 건널목의 교통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