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니아

상운 2006. 2. 20. 11:14

바르셀로나 항

 



몬주익 언덕에서 본 바르셀로나 항

 

 

바르셀로나는 1992년 올림픽이 열려 우리가 잘 아는 곳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부 지중해의 까딸루니아 지방의 스페인의 제2도시인

이지역은 유럽대륙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때문에 외세와의 전쟁이 많았다.

이런 특수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상공업 도시로서 크게 발전되었고 예술과 건축이

수준높게 펼쳐저 다면적이고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가추어 스페인 속의

작은 국가로도 도약 되었다.

 

스페인에서도 바르셀라는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과는 달리 소득이 많아

거의 주민이 부유한 생활을 하였고. 예로부터 현대 공업화와 경제적 성장을 선두하여

예술활동이 번성해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와 화가 피카소를

배출한 문화 도시이기도 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 성당은 처음엔 가난한 신자들의

단체인 "산 호세협회" 에서 건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31세의 가우디가 인수 받아 건축에 참가한 때는 1883년.

고딕양식으로 설계된 것을 점차 기독교에 이슬람 양식을 가미한

초현실적 신비주의를 종교적 융화 절충식으로 100년이 지난 지금은

바뀌어 지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앞에 스니 그 위용이 대단했다.    

 

하늘을 찌를듯이 올려다 보이는 이 괴물 같은 건축물의 분위기는

기전에 보아왔던 성당과는 개념이 전연 달랐고

옥수수가 녹아 흘러 내릴듯한 4개의 청탑은

외계 우주선이 발사되기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만 같았다.

 

100년울 짓고도 또 100년을 지어야 한다는 이성당은 규모가 무척 컷고

독특 했으며 현재도 공사중이였다.

기중기로 돌과 철근을 공중에서 이리저리 나르는 모습이 보였고

망치소리와 철재 자르는 요란한 철굉음이 들렷다.

 

뾰죽 뾰죽한 성당 특유의 건축양식은 여전하나 반듯하고 직선적인 면은 배제하고

창문 자체도 정사각형이 아닌 둥그스럼하고 길죽한 모양에

자연스럽고 유연한 형틀을 나타내어 미적감각을 살린것 같았다.

 



 

동. 남. 서. 는 탄생과 수난과 영광을 나타내여 각면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했으며

화강암 선택도 색깔이 밝고 어둠의 차이를 나타내어 의미하는

적소에 부착 조각 한것 같았다. 

 

초기에는 신도들의 헌금으로 건축비를 조달 하였으나

지금은 유명세가 세계적으로 전파되여 입장 수입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니

얼마나 관광객이 몰려드는지 짐작이 간다.

 

 이곳 부지 역시

 바르셀로나 도시의 변두리에 있어서 별 볼릴 없는 값싼 땅이 였지만

지금은 날로 발전 확장되여 중심가가 되였다고 하니

이또한 금상첨하가 아닌가?

 

 



 

동서로 넓은 공원과 연못이 어우러져 자연스레 쉴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여

여유가 있어보였으니 채 짓기도 전에 이런 성황을 누리는 이 성당은

부럽기도 하려니와 완공되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아와 있을까?

 




 

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 (Antonio gardi cornet) 는

1852년 지중해 연안의 스페인 까딸루니아 지방에서

구리 세공을 하는 부친 밑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지중해연안의 자연환경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였고 항상 주위의

관찰대상이 자연 뿐이였다고 한다.

 

자연을 존중하며 환경을 중시했던 그는

나중에 건축하는데에도 타일이나 벽돌 같은 재활용품을 많이

사용하였고 조그만 나무나 지형이라도

보존하는 범위에서 설계와 시공을 했다고 한다.

 

 



 

가우디의 건축은 항상 자연속에서 직접 해결책을 모색하였기 대문에

결코 피곤하지 않으며 그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는 건축에 대한 천직이라는 신념을 갖었엇고

전 일생동안 건축 이외에는 외도를 않했다.

소박하고 수즙으면서 매우 예민한 성격인

그는 결혼도 않했고 글도 쓰지 않했으며

오직 건축에만 관심이 있었다.

 

가우디는 1926년 교통사고로 빈민병원으로 실려가 숨졌는데

엇지나 남루하게 옷을 입었던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검소하게 살았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서쪽에서 본성당.

 

 

1874년발르셀로나의 건축학교에 입학한 그는

재학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유명한 건축가들의

눈에 들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것은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에우세비오 구엘 바시갈루피" 와 만나서 부터였다.

 

바르셀로나의 백만장자인 유능한 사업가이자 학문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가우디의 천재적 작품성에 매료 되여

스스로 후원자 되기를 자처하고 경제적 뒤사침을

하기 시작 하였다.

 

이후 그들의 관계는 단순히 건축주와 건축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예술에 대한 공감대로 똘똘 뭉처 절친한 친구로 맺어져

수많은 유명한 건축 작품들을 창조 하게된다.

 

 

 

 

 

< 구엘 공원 >

 





영국의 전원도시를 동경했던 구엘의투자로

가우디에 의해 만들어진 이 구엘공원은 지중해를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는 언덕위에 세워졌다.

 

자연 그대로이 울퉁 불퉁한 돌을 이용하여 색다르게 기둥과 벽등을

축조하고 주위의 꽃나무들과 조화를 이루어 여러가지 색깔로

장식된 타일은 동화속의 그림처럼 신비스럽다.

 





막돌 그대로의 모양으로 쌓아 신비롭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자연미를 나타냈다.

 

 




깨진 타일로 모자이크 형식으로 조화롭게 부친 벤치는

도시 위를 물결 치듯 자유롭게 흐르는 바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쎄멘트로 설계되고 타일로 마감한 이 긴 의자는 딱딱하고 불편할것

같았으나 앉아 보니 그렇게 편할수가 없었다.

 

 


 

자연스런 곡선을 이용하여

깨진 타일조각을 붙혀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원광장 지하의 모습.

 

 



멀리서 본 공원광장의 전경.

 



앞에는 확 트인 지중해가 보인다.

 

 

 

 

< 카사 밀라 >

 



바르셀로나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에 1910년에 개축한

5층 건물로서 산을 주제로하여 설계되였는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연철난간이 이색적이다.

 

 


 

가우디 특유의 내부설계가 돋보인다.



 

옥상이 정말 이채로웠다.

 

철저하게 직선을 배제하고 물이 흐르는듯한

유연한 곡선을 위주로하여 지어진 이 고급맨션은 외관이 아주

인상적이고 독특하여 1984년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되였다. 

아버지 저 성주요. 다음에 블로그 만드셨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아름다운 60대 카페에 가서 좀 둘러볼라고 했는데 제가 어려서 가입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왔어요.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