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상운 2006. 2. 19. 22:14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

 



힌두 극우파에 의해 암살 당하여

이곳에서 유해가 화장되여 야무나강에 뿌려졌다.

묘지는 아니지만 많은 인도인들이 위대한 혼을 기리는

기념 장소로  끊임 없이 찾고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란 "위대한 영혼" 이라는 타고르가 붙혀준 말이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오직 평화로운 방법으로 영국의 총칼에 맡서 싸운 위대한

인도의 지도자이기도 한 간디는 남달리 존경을 받는이유가 권력과 부를 누릴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항상 청빈한 생활과 민중과 함께 하려는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1869 년에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유능한 행정가이고 어머니는 도덕적으로 엄격한 종교인이 였다.

어렷을적 간디는 순진하고 겁쟁이고 몸이 허약하였으며

힌두교에서 금하는 소고기를 몰래 먹기도 하고 남의 돈을 훔친 일도 있었다 한다.

소를 숭배하는 인도에서 소고기를 먹는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기에

자기의 잘못을 글로 아버지에게 고하자 뜻밖에도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해주었단다. 

그 눈물을 본 간디는 여기에서 사랑의 힘을 깨우쳤고

뒷날 비폭력 정신의 바탕이 되였다 한다.

 



 

1887 년 18 세때 런던으로 유학을 가 변호사가 된뒤 귀국하여

1893 년 부터 1914 년 까지

인도사람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남아프리카 더반으로 건너가

연방당국의 등록법에 맡서 끈질기게 반대 투쟁 활동을 하여 승리를 걷우고

20 년 만에 인도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이게 된다.

 

 

 

본국에 돌아온 간디는 인도 옷을 입고 손수 물레를 돌리며

영국에 대한 비협조 운동을 전개 하게 된다.

영국으로 부터 수입되는 직물을 거부하고 인도의 민중이 그동안 잊허졌던

전통적인 가내 수공업을 부활식혀 생활필수품을 자급자족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영국이 만든 소금법에 반대하여 소금행진을 하면서

인도 국민들에게 스스로 쟁취할수 있다는 독립심을 길러 준다.

 



 

그의 비폭력 불복종의 평화운동이 가장 독립을 위해 이바지한것은

도시인과 지식인만이 참여 햇던 정치 운동에 농민을 끓여 들였다는 것이다.

인도 국민이 대다수를 찾이하고 있는 농민들이 같은 민족임을 깨닫게 하는데

간디의 사상과 행동이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주의의 요체는 만유의 법칙을 사랑으로 파악하는

위대한 종교적 철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비폭력 주의 운동은 결코 수동적인 저항은 아니고 악에 대한 보답을

악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한다는 불가사의 하게 깊은 부드러운 영혼 속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적 행동인 것이다.

 



간디의 동상은 인도의

어디에서도 거리에서 많이 볼수 있다.

 

 

1919 년 4월 13일 .엄리처 대학살을 통해 영국정부에 시위나 폭력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판다을 내리고 철저하게 무저항과 비폭력으로 맡 선다.

이후 간디의 추종자들이 늘어났고 문맹퇴치와 자급자족을 권했으며.

영국제품이 불태워지고 손수 짠 직물로 옷을 입고 영국경찰이 폭력으로 진압해 와도

물러서지 않고 단식 투쟁을 했다. 

 

 

 

일반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폭력이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나

인도에 있어서는 평화적으로 추진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의 많은 항의 군중들이 철길에 들어눕는 시위가 시작되고

무저항 정신과 도덕적 압력을 계속 가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투옥되고 피를 흘리게 되였다. 

 



화장터 입구에 있는 붉은 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영국정부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인도는 1947 년 8월 15일 완전 독립을 하게되나

그것은 두쪽으로 갈라진 독립이였다.

영국이 주권을 넘겨 줌에 있어서 국민회의파와 이슬람 연맹이

인도를 둘로 분할 독립할 것을 협정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소동과 소란이 일고 혼란이 오자 이 둘의 융화 통일을 위하여

간디는 78 세의 고령에도 전국을 누비며 힌두 이슬람의 화해와

인도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끝내는 단식까지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 힌두교 청년의 총탄에 맞아

1948 년1월 30일 세상을 뜨고 만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영혼은 인도 민족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 간디의 일화 >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 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남어지 신발 한 짝을 벗어 떨어 뜨렸다.

동행하던 사람들은 간디의 그런 행동에 의문을 품고 이유를 물으니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짝을 주었다고 상상해 보시요.

그에게는 그것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 마저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인디아 게이트.

 



무척 넓게 펼쳐진 녹지가 시원 스러 보였다.

중앙에 42 메타의 인도 문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세계 1차 대전때 영국을 위해 전사한 9 만명의 인도 병사를 위한 위령 비란다.

아치에는 1 만이 넘는 장병들의 이름이 색여져 있단다.

 



 



잔듸가 있고 호수 같은 연못이  있어 마음이 확 트였다.

너무나 정돈이 잘되여 있었으나

원숭이랑. 코부라 뱀을 갖이고 다니면서 사진 찰영을 하라고

귀찮을 정도로 쫓아 다녀 애를 먹었다.

 

 



 코부라 뱀을 바구니에 넣고 다니면서

피리를 불면서 묘기를 부리는 사람이 거리에서 흔히 볼수 있다.

 

 

 

 

쿠트브 미나르.

 



터키계의 이슬람인인 "쿠트브 웃딘아이바크"가

13 세기에 건설 했다고 한다.

이탑은 아프카니스탄에 있는 잠무탑을 본뜬것으로서 이스람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 졌는데 인도에서 가장 높은 석조 탑이라 한다.

높이 73 미터의 5층 탑인데 기단부분의 지름은 약 15 미터이고

윗부분은 3 미터 란다.

붉은 갈색의 사암으로 만들어 졌는데 반원 모양과 삼각 모양이

굴곡을 되풀이 하여 조화 롭게 축조 되였다.

탑 여러곳에 코란의 문구를 도안한 조각이 색여져 있다. 

 

 

 

바하이 사원

 

 



종교의 나라 인도로 들어와 사원을

지은것은 1844 년이다.

종교라는 조직적인 명분보다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감정과 이성에 더 주안점을 두고 포교하는 집단이라고 말할수 있다.

한송이 커다란 연꽃모양을 한 이사원은 먼저 절묘한 건축미에

독특한 양식의 아름다움을 심어 주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갖기에 충분 하다. 

1300명이 함께 앉아 집회를 갖일수 있고

신분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공개되여 각기 신앙에 따라

기도하고 명상할수 있다고 한다. 

 

 

 



델리 근교에서 보도 불럭을

교체하는 공사를 여인들과 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빛을 가리운

나무그늘 아래서 신발을 고치는 수선공.

 

 



복잡한 도로 한복판에서

한가로히 쉬고 있는 소의 팔자가 부럽다.

 

 

 

 

 

출처 : 아름다운 60대
글쓴이 : 상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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