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외뉴스통신 2014. 8. 26. 10:26
약 25년 전 이야기입니다. 알래스카의 ‘푸르도베이’라는 곳에 취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북극해에 면해 있는 동토(凍土)로 북아메리카 최대의 유전 지대입니다.

석유회사 홍보담당자가 주요 시설물을 안내해준 후 나를 차에 태우고 바닷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곳에 어마어마하게 큰 공장 같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고개를 으쓱해 보이며 “한국의 '대우'가 만들어 바지선으로 북극해까지 끌고 온 물 공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부러 나에게 그 물 공장을 보여주고 싶었던가 봅니다.

그러나 내가 속으로 놀란 것은 그 공장이 바닷물을 담수로 만들어 그 물을 어디에 쓰는지를 알았을 때였습니다. 이 공장에서 만든 담수는 모두 땅속에 퍼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푸르도베이 유전의 하루 생산량은 150만 배럴이었습니다. 그 많은 양의 석유를 퍼내면 그만큼 땅속에는 빈 공간이 생기는데, 담수를 부어 그 공간을 메워주지 않으면 언젠가 땅이 꺼질 수 있기 때문에 석유회사는 열심히 담수를 만들어 땅속에 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석유가 아니면 아무짝에도 못 쓸 동토의 땅이 꺼지든 말든 그게 중요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자원을 파내면서 파손된 땅을 보전하려는 노력을 철저히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이렇게 석유를 빼낸 공간에 물을 붓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LA 남쪽에 롱비치라는 해변도시가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이곳은 땅을 파면 석유가 나오던 유전 지대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롱비치 일대에선 집집마다 마당에 유전 개발을 허용하고 연말이 되면 석유회사로부터 로열티로 수표를 받아먹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합니다.

석유가 고갈되고 난 후 폐광이 된 유전 지대 해안가에는 도시가 생기고 주택가가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갑자기 해변의 주택이 땅속으로 푹 내려앉았습니다. 한두 집이 아니었습니다. 석유를 퍼 올린 후 땅속 깊이 비어 있는 공간을 그대로 둔 채 집을 짓고 도로를 건설했는데 20년 30년이 흐르면서 땅이 꺼져 구멍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싱크홀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유전지대에서 석유를 퍼 올리고 나면 반드시 담수를 땅속에 부어 지하 공동을 메워주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일은 석유회사의 몫입니다.

요즘 서울 송파구 석촌 호수 일대에서 땅이 갑자기 꺼지고 구멍이 생기는 싱크홀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에는 석유도 없고, 탄광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싱크홀은 두 가지 원인에 의해서 생깁니다. 하나는 자연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인위적인 현상입니다.
자연현상으로서의 싱크홀은 지하 지반이 석회암인 곳에서 흔히 일어납니다. 석회암에 오랫동안 빗물이 스며들면 암석층이 녹아서 땅속에는 빈 공간 즉 동굴이 형성되었다가 어느 순간 지표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이 꺼지면서 싱크홀이 형성됩니다. 우리나라는 강원과 충북의 석회암지대에서 이런 함몰현상이 가끔 일어납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 석회암 지대가 많은 곳에서는 무시무시한 싱크홀이 종종 생겨서 소동이 벌어집니다. 작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주택이 갑자기 땅속으로 꺼지는 바람에 침실에서 잠자던 남자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 실종된 일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루이지애나 주 습지에서는 갑자기 호숫물이 소용돌이를 치면서 땅속으로 빠지고 30미터 넘게 자란 나무들이 호수 물과 함께 땅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토목 전문가들은 최근 서울의 싱크홀은 인위적인 원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넓은 아스팔트 도로를 뽑고, 초고층건물을 짓고, 지하철을 만들고, 상하수도를 묻게 되니 땅속은 그야말로 헐 대로 헌 상태입니다. 고도성장 시기에 땅속 작업을 하고 그 뒤처리를 소홀히 하면서 싱크홀이 생길 환경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생기는 것은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과거 토목공사 행태가 바로 오늘날 싱크홀의 원인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싱크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의 땅속은 두더지 굴과 다름이 없습니다. 과거 보이지 않는다고 적당히 마무리했거나, 오래된 시설물을 점검하지 않고 그냥 둔 땅 속에서 싱크홀이 자라서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수종

1974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30여년 기자로 활동했다. 2005년 주필을 마지막으로 신문사 생활을 끝내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다. 신문사 재직 중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환경책 '0.6도'와 '지구온난화의 부메랑(공저)'을 냈다.


[자유칼럼그룹]

 

건강 유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