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09. 12. 7. 16:43

 

 

 

【앵무새 죽이기】위서(僞書)의 정의를 알아봅시다...반론


이 글은 [앵무새]의 [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이란 머리글 내용 가운데 [1] 위대하신 환단고기의 초라한 진실 항목에서 <11번-8차 추가>로 올려놓았다.   헌데 [앵무새]는 무슨 생각인지 전문(全文)을 다시 <1번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의 11번째 항목으로 추가시켜 『장난감은 장난감일 뿐 - 위서론』이란 부제(副題)를 달아 전재(轉載)하였기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귀찮아 둘을 하나로 묶어 반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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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상태가 불량한 거울이 물체의 상像을 일그러지게 비추는 것과 같이 개찬되거나 조작된 사료는 부정확한 사실 또는 허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임에 불과하다. - 차하순, 역사의 본질과 인식, p67


환단고기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의 결과, 재야사관에 빠진 사람들은 무조건 우겨대기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넘버링 된 부분은 서로의 입장 차이입니다.)


- 환단고기에는 근대적 시각이 들어간 부분이 있다.


(1) 오랜 세월 전해내려오면서 조금씩 들어간 것이다.

(2)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할 때 들어간 것이다.

(3) 이유립이 기억에 의거하여 재작성하였을 때 들어간 것이다.


각 번호의 입장이 그들 사이에서의 진보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거의 똑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환단고기에는 진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실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저와 같은 사람을 이렇게 비난합니다.


환단고기를 무조건 위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반론을 덧붙입니다.   삼국사기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 그럼 삼국사기도 위서냐?


즉, 이 사람들은 <위서>를 "잘못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서"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위서>란 "조작된 사서"를 가리키는 말일 뿐입니다. 그럼 무엇을 조작했다는 말일까요? 재야사관에 빠진 사람들은 저 "조작"을 "사서 안의 잘못된 기록"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 맙소사!


조작이란, 그 책이 주장하는 서지書誌(책이나 문서의 형식이나 체제, 성립, 전래 따위에 관한 사실. 또는 그것을 기술한 것) 사항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환단고기의 경우는 (1) 그 책의 각 편목에 붙은 저자들이 조작된 것이며, (2) 1911년에 계연수가 책을 냈다는 사실도 조작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증명은 누차에 걸쳐서 해온 것이므로, 궁금한 분은 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클릭] 포스팅을 보도록 하세요.


위에 언급한 바, 재야사관에 빠진 사람들 중에도 환단고기가 이유립에 의해서 (다시) 쓰였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이죠. 불행히도 그들 대부분은 <위서>라는 말은 전혀 언급하지 않지만.   하지만 과감하게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해도 저들의 주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그들의 논리를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환단고기가 근대에 위조되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해도, 그 안에 들어있는 사실들은 면면히 전승되어온 우리의 소중한 자료(일 수도 있)다. 환단고기 안에는 중국 사료도 들어있고 그것들은 현존하는 중국 사서와 비교할 때,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불행히도 환단고기 안에만 전하는 (소중한) 우리 사료들은 비교할 수 있는 사서들이 (일제에 의해) 멸절되었기 때문에 없을 뿐이다. (일제의 방해만 없었다면) 중국 측 사료에서 증명되는 것처럼, 우리 측 사료도 증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죠.


환단고기의 중국 사료 : 중국 사료 = 참

환단고기의 독자 사료 : 한국 사료(는 비록 없지만 위의 예로 보면) = 참


따라서 환단고기는 참된 사서라는 것이죠. 엄마야!   여기에 쉬크한 양반들의 논리를 보태서 "참"을 "참일 가능성 있음"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료 비판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따지는 혹독한 시험입니다.   논리적 사고력이 이정도 수준에 있으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참 난감해집니다. 이 사람들의 논리력은 이런 것이죠.


삼국사기의 중국 사료 : 중국 사료 = 참

삼국사기의 독자 사료 : 한국 사료(는 비록 없지만 위의 예로 보면) = 참


그래서 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봐라, 니들도 진작에 이랬잖아! 그런데 문제는 바로 밑줄 친 저 부분... 저 부분이 환단고기와는 백만 광년 쯤 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삼국사기는,


1. 고려 때 만들어진 것이 다른 사서에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등)

2. 동시대 및 그 후 시대의 전승 루트가 다른 기록들에 의해 그 내용이 보강, 설명되어지며(삼국유사, 제왕운기, 동명왕편, 각종 금석문 등등)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지고는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있으며, 그 기록에 대한 연구가 인류학, 고고학 등의 성과를 통해 보강되고 있음


이라는 사실을 저들은 모릅니다. 환단고기는 삼국사기 같은 검증 잣대를 대는 순간 봄날의 비누거품처럼 톡, 터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저들의 논리, 즉 환단고기 안의 중국 사료가 진실이라고 해서 한국 사료 부분을 진실로 볼 아무 이유가 없다는 점을 납득하셨는지요? 이것은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것입니다.


피고인은 XXX가 맞습니까?

네.

그럼 피고인이 OOO의 돈을 훔쳤습니까?

아니오.

피고인은 XXX가 맞으므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피고인이 OOO의 돈은 훔치지 않았다고 하니, 이에 무죄로 판결합니다.


재판정에는 싸늘한 침묵이 감돌겠지요.   위서에 대한 문제는 아래 포스팅들도 "꼭" 참고해 주세요.


위서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 [클릭] 악질식민빠님의 포스팅

위서, 어떻게 볼 것인가 [클릭] 악질식민빠님의 포스팅

위서, 어떻게 볼 것인가 2 [클릭] 악질식민빠님의 포스팅


[앵무새들의 합창]


<야스페르츠> 그나마, 중국 사서조차 참이 아니라는 것을 소하님께서 차근차근히 밝혀내시고 있죠.

<초록불>     소하님의 판본학적 검토는 정말 훌륭한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세한 검증에 대한 이야기는 이 포스팅에서 하지 않았습니다...^^;;

<고어핀드>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에 대한 갑론을박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삼국사기의 신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나정이 경주에서 확인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dunkbear>  이미 논리와 검증을 안드로메다로 떠나보낸 게 환○들인데요, 뭐...저들은 죽는 날까지 환단고기가 진실이라고 웅얼거리고 살 겁니다.

<초록불>     문제는 환○가 아닌 척, 쿨하게 이것도 검토하고 저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인간들입니다. 사실은 아무 검토도 하지 않는 주제에 말이죠.

<bzImage>    쿨게이 곤란론.... 이군요.;

<뚱띠이>     오,탈자가 조작이라고 그러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책은 죄다 위서겠군요. 환○들은 국어공부부터 다시....

<을파소>    이덕일이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에 환단고기 관련 쓸 때는 이 포스팅에 나오는 정돛럼 보이던데, 지금은 확실한 환○로의 면모를 보여주는 거 같군요,

<어릿광대>  뭐 환○라는 사실은 변함없이 보여주시는 분들 같네요 하하 -_-;;

<소하>      저들은 단순히 보는 것과, 문구 하나하나 검토하거나, 서지를 검토하는 것의 차이점을 모릅니다. 사료비판을 하면 위서의 헛점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환단은 조작자의 기술이 너무 미흡하여 너무 쉽습니다. 위고문상서를 변조했던 사람과 비교하면 애와 어른의 차이랄까요? 연구를 안한다고 떠들지만,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면 바로 사망선고부터 내려질 겁니다. 하긴 연구할 필요가 없죠. 이건 조금만 봐도 위서라는 사실을 알게되니...

<초록불>    조작자의 기술이 미흡하다고 하면, 그렇게 쉽게 눈치채게 조작하겠느냐고 반박하죠. 헐헐...

<엘레시엘> 검토는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말이죠.  모조리 학자들에게 떠맡겨놓고 반박하면 친일 주구 사관의 세례를 받은 학자들 말을 어떻게 믿냐고 하고, 반박하지 않으면 자기들이 옳으니까 반박하지 못한다고 떠들어대죠. 과학계에서나 사학계에서나 아Q식 정신승리법을 구사하는 사이비들은 참 상대하기 버겁습니다.

<초록불>    정답입니다.

<draco21>   환단고기에 대한 진실은  초록불님 블로그에서 제가 보고 배우며 건진 정사에 대한 귀중한 시각이랄까요.  국수~떡밥 시간 날때마다 정주행중입니다. 환○물이 한번에 치유되기는 좀 어렵습니다만.. ^0^:  적어도 남의 역사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도 착실히 배워가는 중이라 상태가 그리 나쁜편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

<악질식민빠> 환단고기가 위서란 諸 증명이 쌓여있기 때문에 맘편히 연원을 캐는건데, 뭐랄까 「'연원이 잘못되어있으니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한다」는 신기한 생각을 하는 자들도 있는 듯.  학계에서도 이미 정리가 됐고, 묙거사님 S*aw님 초록불님 소하훃 comte님 등등이 쌓아놓은 (또는 쌓고 계시는) 위서증명이 이미 넘치는데 말입니다.

<러블리몽>  초록불님 대단하세요!!  포스팅 잘 읽었어요!! ^^ 환단고기는 예전에 역사 스페셜에서 살짝 맛보았고. 그냥 무심히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다가.. 최근.. 증산도를 접해보면서...대체 환단고기가 뭬야!! 이런 맘에 관련 서적들과 인터넷자료들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에요... 초록불님의 포스팅이 대단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초록불>    고맙습니다.



【반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직까지도 진위논쟁의 핵심에 서있는 [환단고기]에 대한 확실한 자리매김과 아울러 그동안 벌어진 <위서론> 판단의 잣대로 처음부터 유도하려는 결론에 맞게 일방적으로 재단한 [궤변망상론자]측의 설정기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는 생각이 들어 이점을 보다 확실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진위 판단을 할 때 가장 엄밀하게 적용하여야 할 기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가장 완벽하고 엄격하게 정립한 사람이 없으며 하다못해 위서僞書냐? 는 고사하고 曲書냐? 를 가리는 가늠자조차 제대로 설명한 정설正說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章에서 [앵무새]가 자신 있게 들고 있는 위서僞書 판별의 기준으로서 [조작 운운...]은 결코 공인되어 통용되고 있는 일반 원칙도 아니며 오직 스스로의 머리 속에서 예정된 결론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작위적인 예시에 불과합니다.   왜 그런지 이제 여러 가지 위서판정에 대한 변별기준을 다양한 학설에 따라 소개하겠습니다.


1) 량치차오(양계초梁啓超)의 위서 판별 표준사례에서 - 중국역사연구법


     ...중국의 모든 역사는 중국의 목적을 위한 추초(짐승먹이 풀)*구축의 노릇을 할 뿐이다.   그 결과 반드시 억지로 중국을 증심으로 역사를 위조하여 史家의 신용이 땅에 떨어졌다.   이 악습惡習은 공자로부터 나와 2천년 동안의 중국역사가 그 악습을 탈피 하지 못하고 있다...一切史跡, 則以供吾目的之芻狗而已. 其結果必至強史就我, 而史家之信用乃墜地. 這惡習起自孔子, 而二千年之史, 無不播其毒...<중국역사연구법 中國歷史硏究法>


외압에 굴하지 않는 서릿발 비평을 흔히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일컫는다고 중화주의中華主義를 숭상하는 이들은 즐겨 인용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선악을 논하고 대의명분을 밝혀 비판적인 태도로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만 입각하여 기록하는 것으로 상당히 진실에 입각하며 공명정대한 기술방법이라 하여 후세에 널리 칭송을 받아 오늘날에도 정론과 직필을 추구한다는 언론에서 그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원래 의미는 그게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즉 漢字의 함축성을 교묘하게 이용해 에둘러 기록하는 서술방식을 말한다는 게 더욱 적합한 비판과 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자>가 당시의 역사였던 [춘추]를 집필하면서 제 임금인 노魯나라 왕이나 周나라 天子의 잘못을 대놓고 쓰기가 껄끄러워 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린 것이 춘추필법의 시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요즈음에 유행하는행간의 뜻을 읽어 그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할 때 쓰여 지는 경우이다.   아무튼 이처럼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포함한 [춘추필법] 가운데 전자는 지나족들이 제 나라 역사에 한해서만 적용하였고 다른 국가나 타민족에 관한 기술에 이르면 전혀 다르게 후자의 입장에 충실했다.   적용했던 논리가 지극히 주관적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변용된 춘추필법春秋筆法은 다시 지나支那의 3대 역사기록법(사필원칙史筆原則)으로 발전되어진 존화양이尊華揚夷*상내약외詳內略外*위국휘치爲國諱恥라고 일컬어진다.


     - 존화양이尊華攘夷   긍화하이누이적矜華夏而陋夷狄 중국(화하족)을 (아껴서) 높이고 외국(夷族)은 (비천하게 여겨) 깎아 내린다.

     - 상내약외詳內略外   중국사는 상세히 外國史(이민족)의 역사는 간단히 기술한다.

     - 위국휘치爲國諱恥   (중국)을 위해 (중국)의 수치를 숨긴다.


또한 이것이 공자(書經) 이래 사마천(史記)을 거쳐 정교하게 다듬어져 갔던 중국사를 지배해온 역사기록에 대한 대원칙이었으며 때문에 서경(공자)*사기(사마천)*한서(반고)*후한서(범엽) 등은 철저히 이 사필원칙에 입각한 史書들로서 언제나 곡서曲書 시비의 중심에 서 있다.   아울러 이런 원칙을 벗어났다간 자칫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일례一例가 있다.


     - 이를 어긴 사서史書가 <위략 魏略>으로서 결국 [중국25사] 목록에서 추방되어 겨우 삼국지(진수)의 인용구절로만 남아 있다.

     - 단재 신채호는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것도 漢나라가 고조선에 패한 사실을 기록했다가 漢 무제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이러니 역사가 제대로 기록될 리 없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만일에 [환단고기]라는 귀중한 史書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곡필曲筆 가운데 많은 부분이 완전범죄로 끝났을 것임을 우리는 특히 주목해야 한다.



[사례연구事例硏究]


공자의 <중화주의> 역사관은 사마천의 [사기]에 이르러 더욱 노골화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는 70여 편의 출신 <계보>가 등장한다.   거기에는 漢나라의 구원舊怨인 <흉노>나 漢나라의 배신자 <위만>까지도 그 계보가 나타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支那 역사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지속적인 역사 과정에서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였던 단군조선은 계보설명에서 제외되었다.


※ 사마천은 [사기]에서 BC 707년*BC 654년*BC 280년경에 있었던 <단군조선>과 <연*제연합군>과 전쟁을 철저히 산융*북융*동호와의 전쟁이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이를 [사기 조선전]이 아닌 [흉노전]에 얼버무려 숨겨 놓는 흉악한 곡필曲筆을 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것은 BC 707년 당시를 살았던 齊나라의 재상 <관자>의 저서 [관자]와 [중국25사]에서 제외된 [위략]의 기록에서였다



더욱 씁쓸한 것은 우리 史家들이 앞 다투어 [춘추필법]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우리 역사를 축소하고 곡필하는데 앞장을 섰다는 사실이다.   <연암 박지원>과 <단재丹齋 신채호>는 <량치차오>와 같은 심정으로 실상을 알려는 노력 대신 중국 史書를 베끼기만 한 [옹졸한 선비]들의 행위를 개탄한다.


     ...(고구려의)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漢四郡을 죄다 압록강 이남에 몰아넣어서...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박지원>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지으란 것이요.   역사이외에 무슨 딴 목적을 위하여 지으란 것이 아니요.  자세히 말하자면(상언詳言) 객관적으로 사회의 유동 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그대로 적은 것이 역사요.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우하거나 첨부添附 혹 변개變改하라는 것이 아니니...<신채호  조선 상고사>


     기왕의 조선 史家들은 매양 그 짓는바 역사를 自家 목적의 희생에 供하여 도깨비도 뜨지 못한다는 땅 뜨는 재주를 부리어 卒本을 떼어다가 成川 혹 寧邊에 놓으며...“더 크지도 더 작지도 말아라”한 압록강 이내의 이상적 강역(아방강역고 曰  不大不小 克符帝心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중국 황제의 마음에 꼭 든다는 뜻)을 획정하려 하며...<신채호  조선상고사>


2) 신채호의 위서僞書 판별과 선택에 대하여 - 조선상고사


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이조李朝 太宗의 분서焚書같은)는 있었으나 위서僞書를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근래에 와 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誥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변박辨駁도 없이 고서로 신인信認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책은 각 씨족의 족보 가운데 그 조상의 일을 혹 위조한 것이 있는 이외에는 그다지 진위의 변별에 애쓸 필요가 없거니와 우리와 이웃해 있는 지나*일본 두 나라는 예로부터 교제가 빈번함을 따라서 우리 역사에 참고 될 책이 적지 않다.   그러나 위서僞書 많기로는 지나 같은 나라가 없을 것이니 위서를 분간하지 못하면 인용하지 않을 기록을 우리 역사에 인용하는 착오를 저지르기 쉽다.   그렇지마는 그 가짜에 구별이 있다.


     - 하나는 가짜 중의 가짜(僞中의 僞)이니 예를 들면 죽서기년竹書紀年은 진본眞本이 없어지고 위작僞作이 나왔음을 앞에서 이미 말하였거니와 옛날 사학가들이 늘 고기古記의 “단군은 요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섰다.   檀君 興堯竝立戊辰”고 한 글에 의하여 단군의 연대를 알고자 하는 이는 항상 요 임금의 연대에 비교 하고자 하며 요 임금의 연대를 찾는 이는 속강목(續綱目-김인산金仁山 저술)에 고준考準한다.   그러나 주소(周召- 周公과 召公)의 공화(王이 달아나고 주공과 소공이 의논하여 정치를 행한 14년)이전의 연대는 지나 역사가의 대조大祖라 할 만한 사마천司馬遷도 알지 못하여 그의 사기史記 연표에 쓰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그보다도 더 요원한 요 임금의 연대랴.   그러므로 [속강목]은 다만 가짜 [죽서기년]에 의거하여 적은 연대이니 이제 [속강목]에 의거하여 고대의 연대를 찾으려 함은 도리어 연대를 흐리게 함이다.


※ 공안국孔安國의 상서전尙書傳에 <구려*부여*한*맥 句麗扶餘한貊>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고구려와 三韓이 주무왕周武王과 교통하였음을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안국安國이 지금 황제의 박사博士가 되었는데 일찍 죽었다. 安國爲今皇帝博士蚤卒”고 하였으니 <지금의 황제>는 무제武帝이다.   무제를 <지금의 황제>라 한 것은 사마천이 무제가 죽어서 무제라는 시호를 받은 것을 못 보았기 때문이고 <안국>을 “일찍 죽었다”고 한 것은 사마천이 생전에 안국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공안국은 사마천보다 먼저 죽고 사마천은 무제보다 먼저 죽었음이 명백한데 상서전에는 무제의 아들인 소제昭帝시대에 창설한 금성군金城郡이란 이름이 있으니 공안국이 그가 죽은 뒤에 창설된 지명을 예언할 만한 점쟁이라면 모르거니와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면 상서대전이 위서僞書임이 또한 분명하고 거기 기록된 구려*한*맥 등도 자연 명백해질 것이다.


     - 다음은 진짜 중의 가짜(眞中의 僞)인데 이것을 다시 둘로 나누면  ① 본서의 위증僞證이니 초학집初學集*유학집有學集등은 전겸익錢謙益이 저술한 실제로 있는 것이지마는 글 가운데 씌어 있는 우리나라에 관한 일은 대개 전겸익의 위조요 실제로 없는 것이 많으니 이런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역사에 이를 반박할 확고한 증거들이 있거니와 만일 우리 역사에 반박할 재료가 없어지고 저네의 거짓 기록만 유전流轉된 것이 있으면 다만 가설의 부인만으로는 안 될 것이니 어찌하면 옳을까?


※ 옛날에 장유長維가 사기史記의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武王封箕子干朝鮮)”고 한 것을 변정하는데 [첫째로] 상서尙書에 “나는 남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我罔僞臣僕)”고 한 말을 들어 기자가 이미 남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하였으니 무왕의 봉작封爵을 받을 리가 없다는 전제를 세우고 [둘째로] 한서漢書에 “기자가 조선으로 몸을 피하였다(箕子避地朝鮮)”고 한 것을 들어 반고班固는 사기를 지은 사마천보다 성실하고 정밀한 역사가로서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기자의 봉작설을 빼버리고 봉작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을 내렸으니 이것이 바로 인증人證이다.


   삼국 이후 고려 말엽 이전(몽고 침입 이전)에 우리나라 형세가 강성하여 지나에 대하여 전쟁으로 맞설 때에도 저들에게 보낸 국서에 우리를 낮추어 한 말이 많이 있었거니와 [첫째로] 그들은 다른 나라가 사신을 보내면 반드시 내조(來朝-조공 왔다)라고 썼음은 지나인의 병적인 자존성에 의한 것이니 이는 근세 청조淸朝가 처음 서양과 통할 때 영英*로露 등 여러 나라가 와서 통상한 사실을 죄다 “모국이 신하를 일컫고 공물을 바쳤다(某國稱臣奉貢)”고 썼음을 보아도 가히 알수 있는 일이니 그네의 기록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지나인이 만든 열조시집列朝詩集*양조평양록兩朝平讓錄 등 시화詩話 가운데 조선 사람의 시를 가져다가 게재할 때에 늘 대담하게 한 구절이나 한 줄을 고쳤음을 볼 수 있으니 우리의 역사를 적을 때에도 자구字句를 고쳤었음을 알 것이다.   [세째로] 몽고의 위력이 우리나라를 뒤흔들 때 우리의 악부樂府*사책史冊을 가져다가 황도皇都*제경帝京*해동천자海東天子 등의 자구를 모두 고친 사실이 고려사에 보였으니 그 고친 기록을 바로잡지 못한 삼국사*고려사 등도 지나와 관계된 문제는 실제의 기록이 아님을 알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사증事證이다.


   연전에 김택영金澤榮의 역사집략歷史輯略과 장지연張志淵의 대한강역고大韓彊域考에 일본의 신공여주神功女主 18년에 신라를 정복했다는 것과 수인주垂仁主 2년에 임나부任那府를 설치하였다는 것을 모두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그대로 따다가 적고 그 박식함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신공 18년은 신라 내해왕柰解王 4년(서기 199년)이요 내해왕 당년에는 신라가 압록강을 구경한 이도 별로 없었을 터인데 이제 내해왕이 아리나례(阿利那禮-압록강)을 가리키며 맹세하였다 함이 무슨 말이며 수인주는 백제와 교통하기 이전의 일본 임금이니 백제의 봉직縫織도 수입이 안 된 때인데 수인주 2년에 임나국任那國 사람에게 붉은 비단[적견赤絹] 2백 필을 주었다 함은 어쩐 말인가?   이 두 가지 의문에 답하기 전에 두 사건의 기사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이증理證이다.   이렇게 古人의 위증僞證을 인人으로 사事로 또 이理로 증명하여 부합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 기록(위록僞錄)임을 알 것이다.


       ② 후세 사람의 위증僞證이니 原書에는 본래 거짓이 없었는데 후세 사람이 문구를 보태어 위증한 것이다.   마치 당태종이 고구려를 치려하매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진서晉書*남사南史*북사北史 등에 보인 조선에 관한 사실을 가져다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안사고顔師古 등으로 하여금 곡필曲筆을 잡아 고치고 보태고 바꾸고 억지의 주를 달아서 사군(四郡-樂浪*臨屯*眞番*玄兎)의 연혁이 가짜가 진짜로 되고 역대 두 나라의 國書가 더욱 본래대로 전해지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증거는 본편 제2장 지리연혁地理沿革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 다음은 가짜 가운데 진짜(僞中의 眞)니 마치 관자管子같은 것은 관중管仲의 저작이 아니고 지나 육국六國 시대의 저작인 위서僞書이나 조선과 제齊의 전쟁은 도리어 그 실상을 전하였으니 위서로서도 진서眞書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할 것이다.


3) 위서판별의 일부분으로서 서지학적인 관점 - 이화여대 <서지학 개론> 인용


흔히 [서지학]은 모든 학문의 안내자이며 기초라고 언급되며 古書의 내용 뿐 아니라 평가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학문연구의 지름길을 제시하는 가운데 고서의 진위를 감별하는 한 분야로서도 종종 활용되고 있다.   즉 고서판각의 원류나 각 판본의 우열과 차이를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 때문에 특히 동양학은 물론 한국학 관련 연구에 있어 필수적이다.   청조 건륭 때 유명한 역사학자 왕명성王鳴盛은 일찍이 "서지학은 학문 중에서 가장 긴요한 것으로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학문의 길에 들어 설 수 없다."라 하여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서지학의 한 축을 이루는 부분이 바로 사본분석이다.   사본寫本이란 붓 또는 펜 등의 필사자료를 이용하여 서사書寫한 책을 총칭한다.   서사는 좁은 의미로 베껴 쓰는 것을 뜻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손으로 쓰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본을 필사본筆寫本*서필본書筆本*초본○本*선사본繕寫本*녹본錄本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어 이에 대한 위작*곡필*가필*왜곡*변개 등의 시시비비가 많아 신중하게 분별할 필요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 동일한 책이 없으며 서사된 연대 및 저작자를 파악할 수 없는 자료가 많다.

     - 인본印本에 비하여 필요할 때 언제든지 스스로 베껴 쓸 수가 있으므로 입수가 용이하다.

     - 인본에 비하여 필체가 부드러워 친근감과 서정적인 느낌을 주며 보수성保守性을 지니고 있다.

     - 사경(寫經)이 많다.


********************* [寫本의 구분] *********************************


[고본稿本*초고본草稿本*원고본原稿本*고본藁本]


저자나 편자들의 원본을 이르는 것으로 필사자筆寫者에 따라서 수고본手稿本*진필본眞筆本*어필본御筆本으로 수정과정에 따라서는 초고본草稿本/初稿本*중고본重稿本*재고본再稿本)*정고본正稿本/定稿本으로 구분된다.


[전사본轉寫本]


고본을 베껴 쓴 것으로 그 종류에는 중사본中寫本*정사본精寫本*영사본影寫本*모사본模寫本*임사본臨寫本 등이 있다.


[교본校本]


책의 잘못된 부분을 판본 위에 상세히 기록해 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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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寫本의 가치는 매우 중요시하게 여겨지며 그런 까닭으로 고전古典에 대한 진위판별과 시비기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에는 책이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아서 책의 입수가 곤란하였기 때문에 서사書寫작업은 독서나 학문 연구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서사는 학자나 독서가들이 즐겨하는 일상 업무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생활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본의 가치는 필적의 우수성에 따라 좌우되며 필사자가 유명한 고관이거나 명가名家임에 따라서 편찬의 의도와 기술 내용 그리고 특수한 형식의 장정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또한 학술적으로는 간본刊本의 유무나 전본傳本의 많고 적음 그리고 저본底本의 계통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장택규거야長澤規矩也는 귀중한 사본寫本을 다음의 9가지로 설명하였다 - 도해도서학圖解圖書學(동경  파고서원 1974). 서지학서설書誌學序說(동경  길천홍문관 1968)


- 간본刊本이 없고 내용상 가치 있는 것

- 간본이 있어도 간본이 전하지 않거나 희귀한 것

- 간본이나 유포본流布本과 별도 계통의 것

- 書寫 시대가 오래된 것으로 간본이 있는 것은 출간 이전의 것

- 저자의 자필自筆 또는 名家에서 수사手寫한 것

- 자구字句가 간본과 다른 것 혹은 간본에 탈락된 것이 있는 것

- 고판본古板本이나 고사본古寫本을 모사摹寫한 것 특히 현존본이나 복제간본보다 파손이 적었을 때 서사한 것

- 名家의 수발手跋 또는 구장인기舊藏印記 등이 있는 것

- 名家의 교정을 거친 것


아무튼 사본은 서책 그 자체의 내용뿐만 아니라 필사자의 개인적 사상*작업정신*전거 문헌들의 종류*서체 등 제반에 걸친 예술적*역사적 가치와 아울러 학술문화사적 가치도 높이 평가된다.   따라서 인쇄술이 발달된 이후에도 필사본이 계속 출판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명대明代의 「영락대전永樂大典」과 청대淸代의 「사고전서四庫全書」가 있다.



[서지학적인 관점에서 진위眞僞 판별을 위한 기준의 일례一例] 


유래에 대한 설명 - 1차적인 판단의 근거


- 보유자와 원저자의 신용도

- 기존의 감정 내용


물리적인 판별 - 진본眞本 존재 시 이를 근거로 제작된 연도 추정 가능.


- 종이의 지질, 제책의 형태, 글자체

- 종이, 잉크, 먹의 탄소측정 연대


내용상의 판별 - 관점에 따라서 가장 중요한 부분


- 사용된 용어와 인용된 내용의 시대성

- 묘사된 내용의 실제성 및 가치성과 진실성

- 아직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내용의 다른 史書와의 상호 비교


주의할 점은 이런 [서지학적인 판별]은 진위 판별에 있어서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며 그 외에 다른 여러 가지 비교분석법과 진위분별을 위한 기준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는 걸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착각하거나 경시하면 결국 피치 못할 큰 우愚를 범하게 된다.



4) 버나드 칼그렌(Bernard Karlgren)의 중국고적변위법(中國古籍辨僞法)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다른 기준과 변별에 필요한 조건들이 기술되어 있으리라 판단이 가지만 筆者도 저서를 접할 수 없어 다만 제목만 올린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따라서 상기와 같은 기술을 토대로 【어떤 분이 말씀하신 대로 인용하자면】 이 세상에서 또 현재적인 관점에서 어떤 책에 대한 僞作 여부를 의심 없이 가릴 수 있는 정형화된 기준이나 전형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다만 역사학자들은 [사서 비판]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비판하고 잘못을 가려내며 역사 기록의 이면에 존재하는 상대적으로 왜곡되지 않은 역사를 재창조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과정이 특정 기록에 대한 위작 여부를 의심 없이 가려낼 수는 결코 없을 뿐더러 심지어 자칫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역사 연구는 결국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체계를 만든 다음 그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사서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 서적의 기록은 구전이나 문서의 형태로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에 <역사서 편찬>이라는 가공 과정을 거쳐 기록으로서 남게 되며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기록의 멸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재판각되거나 재필사되는 과정을 거쳐 남게 되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이 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고려 시대에 편찬된 원본이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판본은 대체로 조선 초기에 역사 기록의 망실을 막기 위하여 재판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영조 때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 [삼국사기]는 1394년(조선 태조 3년)에 경주부사 김거두金居斗가 간행한 목판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결획과 결자들이 있다.   이를 1512년(중종 7년) 경주부사 이계복이 중간重刊한 정덕본正德本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등으로 망실되어 구하기 힘들게 된다(안정복이 이경협李景協에게 보낸 서한 내용)   그래서 오자誤字가 많은 연대 미상의 동활자 주자본鑄字本이나 활자본으로 많은 이본異本이 있다.   하지만 진본 여부가 확실치 않은 가운데 여러 차례 복각되었음에도 극히 희귀하여 겨우 경주 정덕본의 영인본이 경주 玉山에 있던 이언적李彦迪 후손 家에 수장되어 있다가 간행되었다고 말해지고 있을 뿐이다.


※ 기록 가운데 상당한 부분에 유교적*사대적 관점에서의 첨삭과 윤색 그리고 삭제와 왜곡 등이 있음을 많은 후학(안정복-조잡하고 그릇된 것이 너무 많아 역사서를 이룰 수 없다)들에게 비판 받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즉 史論에서의 존화주의적 사고*저술체계에서 오는 중복성과 년대와 지역과 인물의 상호 착오*유가적인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사실의 왜곡(조선민족을 秦漢 유민이나 한인지동래자韓人之東來者라 한 기록 등)*공맹孔孟의 인의를 막시(漠視)하는 삼국 武士의 말 가운데 경전經傳의 사구辭句가 관용어처럼 사용되는 사례들


    - [삼국유사]의 현존 고간본古刊本은 근세에 발견된 정덕본正德本으로 경주판본(1512년 간각)이 있을 뿐이다.   이것도 중간자重刊者인 이계복李繼福의 발문跋文만 있을 뿐 초간初刊 당시의 序 跋文이나 내용 목차도 없으며 저자의 서명조차 권 제5의 편두 한 군데에서만 간신히 표시되었디.   이뿐만 아니라 판각은 자획이 틀린 것*떨어진 것*변이 바뀐 것*今-令등 무수한 오자誤字들*글줄이 바뀐 것*본문과 주각이 뒤섞인 것*때때로 나오는 결자 등 각 ks의 어지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편차와 편목도 탈락과 불비가 많아 정확한 편차조차 불분명하나 고간본으로서는 유일하기 때문에 이를 저본으로 한 영인본들이 현재 유일한 고간본으로 인정되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 기술된 내용 가운데 <신채호>씨도 지적한 바처럼 윤색과 가필과 착오와 오류가 상당수 있었음은 다음의 예로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권3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 제목과 권4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嶽鉢淵藪石記 제목 기사 말미에 무극기無極記라고 첨언한 기록(일연의 제자인 보감국사寶鑑國師 혼구混丘의 별호別號로 하나는 부록으로 다른 하나는 안설按說로 보충)*많은 년대 착오나 著者의 강한 주관으로 많은 인명고나 지명고를 불교적으로 윤색하여 원형을 훼손한 왜곡 사례들


그래도 판본板本이어서 그나마 나은 편이고 필사본筆寫本인 경우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 筆寫가 이루어지면서 오탈자誤脫字가 발생하기도 하고 가필加筆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과정이 다반사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들을 언제나 간과하면 안 되며 또한 진위판단에 있어서도 이 사실들을  결코 외면하거나 도외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가치판단 기준과 앞서 언급한 僞書 판별의 여러 가지 견해들을 머리에 담고 [앵무새]의 주장을 접해야 할 듯합니다.



【각론各論에 들어가서】


[앵무새의 주장-단락 1]


제작상태가 불량한 거울이 물체의 상像을 일그러지게 비추는 것과 같이 개찬되거나 조작된 사료는 부정확한 사실 또는 허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임에 불과하다. - 차하순, 역사의 본질과 인식, p67


환단고기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의 결과, 재야사관에 빠진 사람들은 무조건 우겨대기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넘버링 된 부분은 서로의 입장 차이입니다.)


- 환단고기에는 근대적 시각이 들어간 부분이 있다.


(1) 오랜 세월 전해내려오면서 조금씩 들어간 것이다.

(2)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할 때 들어간 것이다.

(3) 이유립이 기억에 의거하여 재작성하였을 때 들어간 것이다.


각 번호의 입장이 그들 사이에서의 진보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거의 똑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환단고기에는 진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실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저와 같은 사람을 이렇게 비난합니다.


환단고기를 무조건 위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반론을 덧붙입니다.   삼국사기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 그럼 삼국사기도 위서냐?


즉, 이 사람들은 <위서>를 "잘못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서"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필자의 견해]


제작상태가 불량한 거울로 세상을 보면 아무리 진실된 형상이라 할지라도 상像을 일그러지게 만든다.   이와 같이 처음부터 왜곡되거나 편향된 시각으로 사료에 접근한다면 부정확한 사실판단의 지름길 또는 허상을 보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 불과하게 된다 - 앵무새의 예시문에 대한 필자의 정확하고 본질적인 재해석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대목에 대해서는 필자가 교통정리를 해주어야 하겠군요.   이렇듯 또 제 입맛에 맞게만 꾸며놓으면 읽는 분들이 이런 현상이 벌어진 단초와 그 결말을 가지런히 인식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한번 정확하게 가 봅시다.   사건의 시말(始末)과 진행 순서는 이렇게 됩니다.


     1) 환단고기의 사실성에 대한 지속적인 깎아내리기가 여러 학자들의 반론에 의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드러나자 부일사대모화관에 빠진 사람들은 무조건 우겨대기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조인성>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환단고기에는 근대적 시각이 들어간 부분이 있다』  


오 마이 갓!   엄청난 발견입니다.   이제는 틀림없이 목줄을 당길 묘수를 찾아냈다고 크게 기뻐하면서 더욱 힘을 합쳐 밀어부칩니다.  하지만 이런 수법은 이미 [규원사화] 진위론 공방 때 한번 써먹었다가 조목조목 반박을 당하여 차마 얼굴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뭉개졌는데 단순한 머리인지 아니면 아주 심각한 건망증인지 이내 그걸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2) 사실 현대적 용어라고 주장한 것들(문화*산업 등) 가운데 많은 부분이 얕은 지식 때문에 빚어진 문제라는 게 밝혀져 잠시 허탈했지만 그래도 어이가 없어진 [재야사학계]에서는 이번에도 친절하게 그러한 판단의 잘못된 핵심부분을 일깨워줍니다.


     -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면서 조금씩 들어간 것이다]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단정의 진실한 의미는 여러 경로와 각기 다른 시대 사람의 필사와 복사를 거쳐 합쳐진 서책의 특성상 인멸되고 빠진 부분을 고치거나 보충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다는 추정이다.


이는 [삼국사기]의 경우를 조금만 분석해 보아도 확연하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 전해지는 것은 김부식이 편찬한 책이 아니다.   현존 최고본도 <김거두 본>이며 잘 알다시피 결락과 오자가 있어 완독하기 어려워 <이계복>이 개판改版한 게 지금의 한글 번역되고 있는 [삼국사기]이다.  더구나 안정복과 신채호등 여러 학자들도 김부식이나 그 후에 重刊*改版한 이들이 그 시대의 인식으로 교정하거나 보충한 곳이 많다고 언급하고 있다(上記 글에서 설명한 예시를 보라).

올때마다 느낀 는 거지만 대수맥님 참 대단 하시네요 쿠투에서도 이젠 잘 알려 지시고....항상 마음으로 응원 합니다 ^^
늘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또 저에겐 언제나 힘이 된답니다. 모두가 함께 열어가는 그날까지 함께 화이팅합시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근데 글씨 색 때문에 눈이 좀 아픕니다 ㅠ
아하! 太王님/죄송합니다. 이제부터 색을 조금 자중해서 올려야겠습니다. 들러주시니 영광이구요.
놀라운 공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