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0. 6. 9. 20:46

 

[첨부] 쩨렌추크 비문.hwp

 

 

 


[박달님검-단군으로만 알려진 유래]


① 그리고 임금(君)을 임검이라 하는데 당시에는 한자漢字가 없었기 때문에 백달 임검이라 한 것이다 - ② 후세에 단군으로 번역하고 다시 후세에 이르러서 다만 단군이란 글자만 기록하여 단군이 백달 임검이라는 걸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 ③ 지금 만약 한글을 함께 사용하였다면 이러한 폐단도 없고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도 이것을 쉽게 깨달았을 것이다.


이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엄격하게 단군檀君의 [군君]을 별도로 설명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박달임검]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하면서 박달나라인 단국檀國과는 엄밀한 태도로 구별을 짓고 있다.   [규원사화]를 편찬한 저자著者는 결코  [앵무새]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님을 극명하게 알려주는 아주 좋은 해설이다.   얼마나 명쾌하고 분석적인 결론인지 필자筆者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시력에 문제가 있거나 난독증에 걸린 사람들만이 엉뚱한 상상에 빠져 혼자 [판타지의 언덕]을 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앵무새]의 의문을 그대로 인용할진대 [그렇다면 저 말이 배달倍達의 근원이라 믿어도 될까?]    그렇게 믿기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왜냐 구요?   필자筆者가 앞서 언급한 [우리말 음운법칙]을 잊지 만 않았으면 바로 해답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결론에 이르는 핵심 키를 [규원사화]의 저자著者는 기가 막히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구절이다.


우리말에 단檀이란 박달(朴達)이라고도 하며 혹은 백달(白達)이라고도 한다.


바로 [단檀을 박달]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밝달]의 정확한 한자차음漢字借音으로 [박달朴達]을 제시하고 곧바로 [백달白達 즉 배달]이라 하여 우리말 음운법칙 가운데 받침 생략현상으로 [배달]이 되는 사실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결국 위 문장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단檀은 우리말 밝달 혹은 배달의 뜻 옮김이다]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보시다시피 "박달"은 단군을 설명할 뿐 나라 이름이라고 주장한 것도 아니다]란 망상에서 벗어나시도록...여기에서도 [앵무새] 무리들 특유의 행태行態인 [초점 흐리기*물 타기*단장취의하기]의 정수精髓를 들여다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필자筆者가 다시 한번 되풀이하여 결론을 내려주겠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박달"은 뜻 옮김으로서의 檀을 설명하며 이를 박달나라라는 단국檀國과 박달나라 임검이라는 단군檀君으로 엄밀하게 나누어 주장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그 뒤를 이은 김교헌의 [신단실기]에서 [규원사화]의 해석을 사실로 규정하면서 의미가 더욱 발전되어 감을 보게 된다.


나라 이름은 단檀이라 했으며 배달倍達이라 불렀다...단군 때에는 사람들이 단檀을 배달이라 일컬었으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박달로 음이 변하였다. 號檀爲倍達今音轉爲朴達


배倍는 조야祖也요 달達은 휘야輝也니 원조지휘元祖之輝 광어천하지의야光於天下之義也라(99쪽) 


이 문장은 앞선 [단군교포명서]의 [배달-조광祖光-조선朝鮮으로의 의미 확대]를 다시 여러 계층이 뒤섞인 교인敎人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자세하게 풀어준 듯하다.   [배]는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밝은 터를 다스린 천인天人으로서의 조상]이라는 뜻이고 [달]은 빛남輝 즉 그 땅이 밝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그래서 [하늘 아래 으뜸 되는 조상의 빛이 천하를 밝게 비친다]는 의미가 된다. 

  


[앵무새의 주장 3]


다음으로 최남선의 [계고차존(稽古劄存)]이다.  『당시는 후세와 같이 국호를 따로 세우지 않고 지명을 차용한 듯하니 단(檀)은 훈으로 [배달] 혹 [박달]로 백산 곧 전도지(奠都地)의 이름이며 또 주상의 칭호도 세세토록 [임검]으로써 부르니 임은 주(主)*검은 신(神)의 뜻으로 합하면 신성하신 주인의 뜻을 이루라는 것이라』  최남선은 "배달"을 백산이라는 의미로 풀고 출전 따위는 전혀 밝히고 있지 않다.

 

이런 관점은 대체로 재야사가들에게 물려졌다.   안호상은 [배달의 종교와 철학과 역사]라는 책에서 말한다.  『한밝산은 밝은 산이요 음 번역이 한자로 "박달"이요 "배달"이요 또 "단檀"이다.   그러므로 밝달나라(朴達國)는 배달나라(倍達國)로서 한자로 단국檀國이요 밝달임금은 배달임금으로서 한자로 단군檀君이다』   최남선의 입장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筆者 반론]


<최남선>선생이나 이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더욱 학문적인 해석으로 심화시킨 <안호상> 선생의 관점은 명확하다.   우리말의 특성과 음운현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엄밀하게 비교 연구한 분석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요약하여 적시摘示하면 아래와 같다.


1) 우리말 형태에서 교착어膠着語의 특성상 비일비재하게 여러 가지 음운법칙에 의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들이나 고장을 뜻하는 불*벌]이 [비리卑離*부리夫里*발發*비이卑耳*불이不而]로 상용常用되었다.

2) 또한 음운탈락의 대표적인 예로서 [가락-가라]가 있는데 [박달고개밝고개-배오개]나 [밝골-박골-배골]의 경우처럼 [박달-배달]의 변화 양상을 보인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認知하였을 듯하다.


[배오개]는 붉은 고개*배고개로서 붉은 흙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동하는 혹은 팽창하는 민족진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눈여겨 볼 장소를 선택하여 [밝고개-박달고개]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후일 한자漢字로 변한 적赤*홍紅*단丹*양陽*명明*백白*박博*박亳 등은 [밝*붉]이 시원적인 형태이며 다시 우리말 음운법칙에 의해 [배]로 변하고 이梨 역시 [배]의 뜻 옮김이다.


3) 여기에서도 필자筆者가 뒤에 예시하려고 하는 [백白과 밝-이는 한족漢族들이 우리가 부르는 대로 차음借音하였다는 결정적인 열쇄가 된다]의 교차현상이 등장하는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요 음운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견해를 적극 수용하는 입장이다(백하白河-환한 내-한내-한漢(한韓*한汗)水-대수大水  백산白山-밝산-환한 산-한산漢山-대산大山  태백산-한밝산 등)


즉 밝달은 박달을 거쳐(달達이 양달*음달처럼 땅이나 터를 의미한다는 건 상식이다) 음차音借로 박博*박薄*박泊*박朴*박亳*백白*백伯*백栢*백柏*백帛 등 많은 유형을 보이고 음운변화에 의해 배倍*배裵로 이는 다시 훈차訓借로 박달 단檀*붉을 단丹*붉을 주朱나 붉을 홍紅*밝을 양陽(밝은 골짜기라는 양곡陽谷의 의미를 생각하라)이 되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 [달]은 원시형태가 [다라*드르*다리]인 땅*터의 어원語原으로서 지금의 [들]이 [달]에서 비롯된 말이며 조상들의 생활이 산악에 근거함에 따라 [달]은 산과 들 또는 고개를 함께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밝달나라]는 <배달나라>로서 뜻 옮김으로는 단국檀國이요  [박달고을]은 <배골>로도 불려진 상商의 박亳*포蒲*박薄이며 [박달고개]는 <배오개>로 이어지고 [박달임금]은 뜻 옮김으로는 단군檀君으로서 [박달의 후예]들은 상商 초기에 상갑미上甲微를 도운 박우朴牛나*주周시대 봉작封爵을 받았다는 백달(伯達-배달) 혹은 선비鮮卑의 핵심 족단族團인 단씨檀氏 등으로 변화한 우리 민족의 지명고地名考와 인명고人名考에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안호상>선생은 <최남선>선생의 입장을 그대로 물려받은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대종교의 교주였던 <김교헌> 선생의 전인傳人임에도 불구하고 교인敎人으로서의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입장을 떠나 공정하고 엄격한 자세로 선대先代 교주敎主의 견해를 취사선택하면서 아울러 <최남선>선생의 해석까지도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보다 가까운 진실에 접근하고 있는 본받을만한 학문적 자세이어서 매우 신선하게 보인다.   따라서 [앵무새]가 단정한 엉뚱한 결론은 이렇게 고쳐져야 한다.


[앵무새의 궤변망상]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배달이라는 말은 세 가지로 풀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교헌   - 배달은 "조상의 빛남"을 뜻하는 말

최남선   - 배달은 "백산"으로 후대에 "박달나무"로 잘못 생각하였음

규원사화 - 배달은 "박달나무", "백달나무"에서 온 말


[필자의 정확한 해석]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 민족과 함께 등장하여 발전한 [박달-배달]이라는 말은 세월이 흘러도 거의 동일한 의미로 풀이되는 가운데 조금씩 의미가 확장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김교헌    - 배달에서 [배]는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밝은 터를 다스린 천인天人으로서의 우리의 조상]이라는 뜻이고 [달]은 빛남(휘輝) 즉 그 땅이 밝음을 가리킨다.   그래서 [하늘 아래 으뜸 되는 조상이 다스리는 빛이 천하를 밝게 비친다]는 의미이다. 

최남선   - 배달을 훈차訓借하여 백산白山이 되었는바 단檀과 같으며 혹 [박달]로 그곳을 다스리는 어른의 칭호도 세세토록 [임검]으로써 부르니 신성하신 주인의 뜻을 이루라는 의미이다.

규원사화 - 우리말에 단檀이란 박달朴達이라고도 하며 혹은 배달(백달白達)이라고도 한다.   단군檀君은 박달 임금을 번역한 것이다.   대개 단목檀木에 내려와 자리를 이어 받아 단(檀)으로써 나라 이름을 삼았으며 단군檀君이란 단국檀國의 임금이라는 뜻이다.  



[앵무새의 주장 4]


특이한 견해로는 이유립이 있다.   배달은 단군이 아니고 환웅이 세운 나라를 가리키며 배어달 즉 삼신 하늘님이 베어주신 땅(대배달민족사)으로서 해학 이기와 운초 계연수의 학설이라고 주장하는데 근거자료는 전혀 없다.   더구나 1978년 월간 [자유] 4월호에서는 『배어달<培達> 곧 「삼신하느님이 배어주신 땅」이라는 원시신앙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배달민족의 원류 1)』라고 해서 [배다]를 쓰고 있는데 [새끼를 배다]에서 가져온 말이 아닐지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일본서기]에서 일본은 여신이 낳은 땅으로 된 걸 베껴서 삼신하느님이 배달이라는 땅을 낳은 것으로 이해했을 것 같다.   이 경우 삼신할미가 본래 아이를 낳게 하는 신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상통한다.



[필자筆者 반론]


이유립 선생의 견해는 일면一面으로는 독특하지만 한편으로 그동안의 [밝음과 환한 빛]으로만 일관되던 해석의 바탕은 살려가면서 우리 민족의 삼신신앙三神信仰과 연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하여 후학後學들에게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특히 [배달]을 단군檀君이 아닌 환웅桓雄과 연결한 점은 [규원사화]와 일치하여 매우 주목을 요한다.


[규원사화] - 단군기


대개 신시씨神市氏(환웅桓雄)가 단목檀木 아래에 내려오고 환검桓儉 신인神人이 다시 단목檀木 아래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어 받았기 때문에 단(檀)으로써 나라 이름을 삼은 것이며 단군檀君이란 단국檀國의 임금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에 단檀이란 박달(朴達)이라고도 하며 혹은 백달(白達-배달)이라고도 한다.


[환단고기]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배달倍達은 환웅桓雄이 천하를 정하면서 있은 호칭呼稱이며 도읍한 곳을 신시神市라 했다...


그리고 분명히 선생은 [배달]을『배어달 즉 삼신 하늘님이 베어주신 땅(대배달민족사)』으로 푸는 이유로서 오직 <해학 이기와 운초 계연수>의 [학설學說]임을 밝혀 근세에 이르러 의미가 확장되었음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원래의 전통적인 사고관思考觀과는 뚜렷하게 선을 그어준다.   아울러 왜 그런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월간 [자유지]에서 특별히『배어달培達 곧 삼신하느님이 배어주신 땅이라는 원시신앙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배달민족의 원류 1)』라고 거론하면서 나름대로 원인을 우리 민족의 근원적 사유思惟였던 삼신신앙과 연결해서 밝혀보려고 애쓴 노력이 돋보이는 것이지 무슨 [새끼를 배다 나 일본서기를 베꼈다]는 궤변망상으로 왜곡하거나 폄하해서는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앵무새의 주장 5]


결론적으로 "배달"의 창시자는 김교헌이며 단군檀君이라는 이름에 신비로움을 더하고자 만들어 넣은 것 같다.   하지만 고전에 밝은 최남선은 그런 견강부회를 싫어하여 좀더 그럴듯한 이름을 만들어낸 듯 하다.   김교헌은 이후 조휘祖輝(=光)로 해석하지 않았으며 [신단민사]에서는 아예 배달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윤적은 난데없이 [계림유사]를 들먹여 배달의 어원을 삼았는데 두고두고 해독을 끼쳤다.   이 부분 역시 김교헌이 조작한 것이 아닐까?  이 때문에 신채호는 "배달"이라는 말이 근거 없음을 탓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소박하고 고졸한 견해를 밝힌 책이 [규원사화]다.   그러나 전승이 밝혀지지 않는 한 신뢰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이다.   이유립의 견해는 코웃음 칠 일도 되지 못한다.



[필자筆者 반론]


결론적으로 [배달]은 [하늘-땅-인간]으로 합일合一을 이루는 우리민족의 근원적인 신앙체계나 전통적인 공유관념인 [신목신앙神木信仰*성수사고聖樹思考]에 입각한 [밝달-밝은 어른이 다스리는 밝은 터]가 원천이다.   또한 만주-몽고-북방아시아를 하나로 잇는 [동방민족공동체]의 사고思考에 핵심적인 밑거름이 되어가면서 오랜 역사적인 연원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지금도 화석화된 잔재를 곳곳에 남겨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인 삶의 양태는 신비로울 것도 그럴듯한 채색을 할 까닭도 없이 의도적으로 묶어 놓은 끈만 풀면 저절로 풀어지는 속살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다.   따라서 [앵무새]의 [나홀로 집에] 앉아 헤매는 궤변망상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1) <김교헌> 선생도 후일에 와서는 [박달-배달]이란 의미의 확대를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하고 본래의 순수하고 원초적인 해석을 받아들이는 입장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그리고 [...이후 신단민사에서는 아예 배달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는 무슨 해괴망측한 궤변잡설일까?   지금 필자筆者가 깜짝 놀라 서고書庫를 뒤져 다시 꺼내들고 있는데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아예 책도 펼쳐보지 않고 그저 남의 말만 듣거나 남의 글을 베낀 듯하니 말이다.   아니면 내 눈에 헛것이 보인 걸까?   그래서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 편집 체계를 보면 범례-추천사를 서두序頭로 본편本篇에 들어가서 제1편 상고上古 부분에 제1장 신시시대神市時代에 이어 제2장 배달시대倍達時代로 제題를 붙여 아예 장章을 따로 구성해 놓았다.

 - [단군의 건국] 항項에서는『...신인神人을 추대하여 대군주大君主로 삼고 나라 이름을 단檀이라 하였다』고 표현하면서 나라 이름이 단(檀-박달*배달)임을 명시해 놓았다.

  

2) <어윤적>이 근거 없이 [계림유사]를 들먹여 배달의 어원을 삼아 해독을 끼쳤는지? 여부는 [박달-배달]이란 [박달계 언어]들이 오랜 유래를 지녔음이 차근차근 드러나는 과정이니만큼 두고두고 원전原典의 출현을 기다리면서 면밀하게 추적하고 그 외에 다른 관련 사료에도 그런 사실이 언급되어 있는지를 엄밀하게 살펴 신중한 결론을 내릴 중요한 현안懸案이다.  따라서 <김교헌>이 조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허망한 상상은 매우 경망스러운 자기도취이다.

3) 이 때문에 <신채호>선생은 학자의 신념을 지켜『배달』이라는 말에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스스로 [조선사연구초]의 부족함을 거론하면서 [조선상고사]에서는 아예 빼어버렸다.  

4)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소박하고 고졸한 견해를 밝힌 책이 [규원사화]라는 걸 인정하면서 명확한 전승傳承의 출전出典이 밝혀지지 않는 한 신뢰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은 필자筆者도 동의하는바 같이 지켜보겠다.   그러나 <이유립>선생의 견해에 관해서 억측을 한 채 코웃음 칠 행동만큼은 아직도 시기상조이다. 


[앵무새의 주장 추가]


최근에는 남송 효종 때 학자 나필羅泌이 쓴 노사路史에 배달이 나온다는 황당한 말이 떠돌았다.   해당 구절은 이렇다.


路史 卷24   檀 武王時有檀伯達

단국(檀國)은 무왕(武王) 때에 檀, 즉 백달(伯達)이 있었다.


원문도 방점도 없다.   앞 구절이 없으니 첫 문장에 단檀을 떼어놓은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데다가(저 단檀은 앞 문장의 끝 글자일 가능성이 높다) 단檀을 단국檀國이라고 해석할 근거도 없다. 더구나 단檀과 백달伯達 사이에 쉼표를 넣고 있는데 말이 안 된다.   단백달檀伯達은 인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송나라의 사서에서 백달을 찾아 좋아하는 지 알 수가 없다.   단백달檀伯達은 춘추전국시대에 쓰여 진 [좌전]에도 나오기 때문이다(講壇走狗님의 [좌전] 해설)    왜 근거를 여기서 안 찾았을까?


그거야 [좌전]은 번역본도 있으니 이상한 해석을 내리고 좋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講壇走狗님의 이야기처럼 배倍와 백伯은 우리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중국어에서는 서로 통하지 않는 음이라 배달倍達과 백달伯達은 아무 관련도 없다.   사마의의 형 사마랑의 호도 백달伯達이었는데 재야의 이런 논리라면 사마씨 일족이 동이족이었다고 우길 수도 있겠다.   부디 비슷한 글자들 찾아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기 전에 좀더 고민들 하기 바란다.



[필자筆者 반론]


어디에서 주워들은 모양인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벌이고 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핵심 가운데 하나는 [배倍와 백伯은 우리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중국어에서는 서로 통하지 않는 음이라 배달倍達과 백달伯達은 아무 관련도 없다]라는 주장인데 중국어의 일반적인 용례用例와 남의 나라 말을 귀담아 듣고 옮기는 이사移寫 과정을 완전히 같은 걸로 혼동시키니 이런 괴이한 망설妄說이 나오는 것이다.   더구나 한문漢文과는 독음讀音조차 전혀 다른 우리말 체계라는 걸 전혀 알지도 못하는 문외한門外漢인가?   우리가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먼저 한족漢族들이 귀에 들리는 소리대로 저들의 발음에 짜 맞추어 필요한 단어를 선택한다(이 과정에서 왜곡과 폄하의 의미를 가진 것들로 종종 대치된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필자筆者가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말의 음운법칙을 결코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1) 중국어 발음상 [밝다는 뜻인 백白는 Bai]이고 [백伯도 Bai]이며 밝의 전화형轉化形인 [배倍는 Bei]로서 모두가 같거나 비슷하다.   [박달]을 한자漢字로 훈차訓借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박달나무 단檀]을 사용했고 한족漢族의 차용借用은 그들이 인식한 소리 값에 따라 동일하거나 비슷한 소리가 나는 [白-伯]을 선택했음을 증명한다(밝은 호수라는 뜻인『바이칼』에서“Bai”의 연원을 볼 수 있다 『칼*쿨』은 중앙아시아의“이식쿨”에서와 같이 호수를 의미한다).

2) 우리 식의 독음讀音으로도 [백白과 백伯]은 동일하다.   그리고 이형동의어異形同義語(상商은 밝은 고을이라는 밝달을 모두『박』으로 썼다)인 [밝을 박]조차 한족漢族의 음가音價로는 [Pai]이니 의문의 여지가 없다.

3) 우리의 음운법칙에서 받침이 종종 탈락하거나 한족漢族들이 이사移寫하거나 음차音借하는 과정에서 받침을 첨가한 한자어를 즐겨 썼다는 사실을 유념하면(가라-가락*가랑이나 나라-낙랑 그리고 거물-금물今勿-가막골의 가막과 어미-아막阿莫등) [배倍-백伯]의 상호변화관계는 어린 아이라도 금방 이해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강단주구講壇走狗의 궤변처럼 [배倍와 백伯은 우리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중국어에서는 서로 통하지 않는 음이라 배달倍達과 백달伯達은 아무 관련도 없다] 억지가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없으며 [배倍와 백伯은 우리말 독음讀音과 음운현상으로 판단해보아도 비슷해 보이는데다가 중국어 발음으로도『Bei-Bai』로서 서로 통하는 음音이니 우리 민족들이 말하는 소리를 음사音寫한 경황이 뚜렷하므로 배달倍達과 백달伯達은 아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Tip]


아래 글에서 언급한 바대로 우리의 습속과 관념체계에 관한 기술에서진하인秦夏人들이 문헌적으로 행한 의도적인 조작과 변개變改 가운데에서도 없앨 수 없는 풍습적인 견문 기록과 환桓-단檀의 후예後裔임을 알리기 위해 단檀을 씨氏로 삼았다는 표현들은 우리의 도가사서道家史書들이 고스란히 증명해주고 있다.


해모수가 자립하여 스스로 천제의 아들이라 칭하고 또 단군(檀君-박달임금)이라고 호號하였으며...解慕漱立自稱天帝子又號檀君...<신단실기神壇實記*단군세기>

시조 해모수로부터 6세 고무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군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환단고기 북부여기 상*하편 참조>

1934년에 나온 계봉鷄峰 이창환李昌煥의 저서에도 해모수를 1세 단군 그 아들인 해부루를 2세 단군으로 기록하였다.   <조선약사朝鮮略史 역대일람표歷代一覽表 북부여 조>

...주몽을 단군의 아들로 기술하여 놓았으므로 해모수가 단군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단군은 처음 하강한 단군은 아니나 [박달]로 성을 삼았으므로 그 자손들도 모두 [단군-박달*배달]로 호칭하였다.   이른바 해모수도 역시 처음 하강한 단군의 후예이기 때문에 그 아들을 부루라고 다시 정한 까닭도 옛날 왕을 회고懷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朱蒙檀君子 則此以解慕潄爲檀君也 此所謂檀君 惑非謂始降之檀君 而以檀爲姓 則其子孫因以爲號 幷稱爲檀君 所謂解慕潄者 亦始降檀君之後 又名其子夫婁者 若芉心之更稱懷王也   <동사강목東史綱目 부권상附卷上 삼국유사 왕력편王歷篇 인용>



1. 단백달檀伯達은 인명人名이라는 문제


상은 단백달의 후예이다.  商檀伯達之後   <만성통보萬姓通譜>

은상시기의 단백달 후예로서 시조의 이름으로 씨를 삼았다.  出自殷商时期的檀伯达之后 以祖名为氏   <성씨원류姓氏源流> 


기록 확인이 완벽하게 안 되어 필자筆者가 입수한 <맥이貊耳>의 본문과 <중국어 소스>에서 별도로 확인한 두개의 발췌문을 동시에 싣는다.


단檀은 무왕武王 때 백달(伯達-배달을 말한다)에 있었다.   지지(地志-지리지를 뜻한다)에 의하면 단구(瑖丘-옥돌의 언덕이다)는 단성檀城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는 옛날에 단檀에 관개(灌漑-물을 대는 것을 뜻한다)하는 것 [1] 을 말한다.   단구瑖丘는 오늘날 연(兗-강江을 말한다)에 미치어 단檀의 마을을 형성하였다는 걸(유향有鄕) 의미하는데 혹은“단壇을 만든다.”라고도 한다. 檀 武王時 有檀 伯達 地志 瑖丘 檀城 古灌檀也 瑖丘 今隶兖 有檀鄉(輿地廣記)或作壇    <송宋 라필羅泌 로사路史 권卷24>


[1] 이 부분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주周가 봉封했다는 단국檀國이 기록에 의하면 옛날의 관단灌檀이라고 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한 풀이이다.  신채호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관나灌那가 고구려 남쪽 지역이라고 해석하였으므로 이에 비추어서 관단灌檀도 신단(辰檀-단군조선의 남쪽 변경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상商을 극克하는 과정에서 한 때 주周 무왕武王이 배달나라의 남쪽 땅에 진입하였고 그 무렵 그 지역을 관장한 단군조선의 대군장이 바로 훈차訓借로는 단檀으로 호칭呼稱되어 우리말로서는 [박달]이므로 이에 해당하는 한자漢字의 음차音借를 뒤에 같이 붙여 단배달檀伯達로서 기록되어졌을 것이다.   이런 예는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비처왕을 소지왕으로 병기倂記한 사례를 참고하라).  


전국全國을 동*서*남*북*중 5부部로 나누어 동부는 순라*남부는 불라*서부는 열라*북부는 줄라*중부는 가우라라 하니 순나順那*관나灌那*연나椽那*절나絶那*계안나桂安那는 곧 [순라*불라*열라*줄라*가우라]의 이두자吏讀字인데 관나의 관灌은 뜻을 취하여 불(관灌은 본래 부을 관)로 읽을 것이고 그 별명인 비류나沸流那의 비류沸流는 음을 취하여 [불]로 읽을 것이니 지나사支那史의 관나灌那는 곧 고구려의 이두자吏讀字를 직접 수입한 것인데 [삼국사기]에서 관灌을 관貫으로 고쳐 그 뜻을 잃었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그러면 단군조선의 대군장大君長으로서 활동하던 [단배달]이 있던 지역의 주요 치소治所는 어디인가?   이 부분만 해결되면 필자筆者의 해석은 자체완결성을 갖는데 분명하게 또 다른 기록이 보인다.


檀 清河姜姓齊公族有食瑕邱檀城因以為氏又望出平盧髙平.   <萬姓統譜卷二十五>


바로 청하淸河에 있는 식하구단성食瑕邱檀城이다.   아마도 주周 무왕武王이 접촉한 단군조선계 대군장의 핵심 치소治所로 짐작된다.   그리고 중심성中心城이 관할한 지역의 명칭은 관단灌檀이다.


[앵무새]가 정말로 한문학漢文學에 대단하고 고매한 학식을 가지고 있어서 오로지 자신의 명석한 판단으로 [원문도 방점도 없다.   앞 구절이 없으니 첫 문장에 단檀을 떼어놓은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데다가(저 단檀은 앞 문장의 끝 글자일 가능성이 높다) 단檀을 단국檀國이라고 해석할 근거도 없다.   더구나 단檀과 백달伯達 사이에 쉼표를 넣고 있는데 말이 안 된다]라고 역설하였는지는 모르나 필자筆者도 한문학漢文學에 조예가 있는 분의 도움을 받아 가장 원래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형태에 근접한 문장 형태와 해석으로 재구성하였다.


류자劉子와 단자單子가 이르길  옛날 주周가 상商을 이기고 제후諸侯들에게 봉지를 내려주었는데 소분생蘇忿生은 온溫의 사구(司寇-법률 관장)로 삼고 단백달檀伯達과 더불어 하河에 봉하여 주었다. 劉子*單子曰 昔周克商 使諸侯撫封 蘇忿生以溫為司寇 與檀伯達封于河   <춘추좌전春秋左傳 성공成公 18년 조>

단백달檀伯達  안사고가 이르길 무왕의 신하라 하였다.   소분생蘇忿生 안사고가 이르길 무왕의 법률 관장으로 소공蘇公이 있었다.  檀伯達 師古曰  武王臣...蘇忿生 師古曰 武王司寇蘇公  <漢書 권卷 20 고금인표古今人表  제第 8>


상기上記 기록들은 가만히 비교해보면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상商과 주周시대의 상황으로 대별大別되는데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만성통보>에서 상商은 분명하게 [단백달의 후예]로서 시조始祖의 이름을 씨氏로 삼았다 했으며 동시에 주周시대에 들어와서도 [단백달]을 제후諸侯로 삼는다고 했다.  만일에 [단백인 달]을 하나의 인명人名으로 본다면 그가 적어도 수백 년을 넘게 살았다는 말인가?   공교롭게도 한족漢族의 기록한 시기에 딱 맞추어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존재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한 확실한 해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위의 여러 가지 의문점들은 [단백달]이 그 무렵 지나支那의 남쪽 변경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하나의 주요한 세력인 [박달-배달계 언어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해석되어질 때 가장 명쾌하게 풀어지는 걸 볼 수 있다.   즉...


1) 상商은 동방계였으므로 그 원출原出이 [단백달檀伯達 다시 말해 단국檀國인 배달나라]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래의 다음 기록과 절묘한 대칭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늘의 명을 받들고 현조가 내려와 상을 이루었다.  天命玄鳥 降而生商...현왕(玄王-설契)은 환에서 나와 작은 나라를 맡아도 잘 다스리고 큰 나라를 받아도 잘 다스려...玄王桓撥 受小國是達 受大國是達...<시전詩傳 상송商頌>


2) 주周 무왕武王 무렵에는 [단백달-배달나라 영역]이 청하淸河를 중심으로 황하黃河 유역까지 내려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지는 기록들에서 적狄 출신인 소분생蘇忿生을 사구司寇로 삼아 온에 보내면서 [단백달]에게는 황하黃河 유역을 마지못해 관장하게 한 듯한 기술태도를 보아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는 상商을 극克한 주왕조周王朝 초기에 앞서 언급였던 [소공召公과 당수棠樹]의 사례事例처럼 비슷한 상황들이 동쪽과 서방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의미심장한 구절이다.   <소분생>이 있다가 결국 주실周室의 봉작封爵을 마땅치 않게 여긴 배달 세력의 반격으로 쫓겨 달아난 온溫을 우리말로 풀면 백(百-배달지역)이었음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3) 문장의 의미에서 나타나는 풍속들이 동방민족 특히 우리 단군조선계의 습속이나 생활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 시조始祖의 이름을 성(姓-漢族의 입장에서 본 해석이다)으로 삼는 유습遺習은『○○씨로서 어른의 이름을 삼고 어우르는 종족과 나라의 이름으로도 하였다』는 양태와 동일하다.

 - 비록 진하인秦夏人의 시각대로 주객主客을 전도시켰지만 마을이름을 씨로 하다(以封邑名为氏)나 단목장檀木丈을 주어 성으로 삼다(赐檀木杖一根 赐姓檀)란 내용이 원래부터 이어져 내려온 동방족의 풍속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였다는 의미이다.


4) 이러한 정황은 마치 진하왕조秦夏王朝가 들어서면서부터 비로소 성립하거나 사성賜姓한 것(단목장檀木丈을 사여賜與하였다는 사례들)으로 기술한 지방들이 모두 단檀이란 배달계 지명고地名考로 공통되고 있음으로 보아 더욱 자명自明하다. 


西周初 周武王的司寇苏忿生 大臣檀伯达受封于河内 檀伯达之后代子孙 有的以祖名檀为姓 称为檀氏 世世仕周 家于其封 故河南 河内皆有檀氏.


出自姜姓 为春秋时姜太公之后 以封邑名为氏 据《通志*氏族略三》引《风俗通》所载 “檀氏 齐公族有食丘檀城 因以为氏” 春秋时期 有齐国公族食采(封地) 于瑕丘檀城(今山东省滋阳县城北 一说今山西省昔阳县) 其子孙有的以邑名为姓 称为檀氏 另一说为姜子牙助周武王灭商有功 所以 周武王赐檀木杖一根 赐姓檀 其后代遂有的以檀为氏 战国时的檀弓 即是此支檀氏的后裔


(缺)檀姓源出主要有三 其一 西周初 武王的大臣苏忿生 檀伯达受封于河内 有檀氏 其二 出自姜姓 以邑名为氏 春秋时 齐国公族有人食采于檀城 子孙以檀为氏 其三 古代鲜卑族姓氏 当今 檀姓在福建*河北*安徽*海南*浙江*北京等地均有 檀氏入闽始祖是檀满德 于明成化十八年(1482年)入闽 原始住地是永泰文藻境 子孙分布福建各地 檀姓望居清河郡(今河北省清河至山东省临清一带)


出自古代鲜卑族中有檀氏 据《魏志》所载 鲜卑族檀氏   <이상 성씨원류姓氏源流>


檀城 在雰北《地理志》瑕丘有檀城 古灌檀也 亦曰檀鄉 東漢初 刁子都為其部曲所殺 餘黨與諸賊會檀鄉 號檀鄉賊 亦曰檀丘 東晉大興三年 徐州刺史蔡豹敗叛將徐龕於檀丘 時龕以泰山太守叛降石勒也 又《地記》云 卞縣東南有檀丘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2. 춘추좌전春秋左傳보다 로사路史를 선택한 이유 


이런 사실들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기록 다시 말하자면 만성통보萬姓通譜와 상송商頌의 의문점을 명료하게 상호보완해주는 열쇄가 [로사路史]의 의미심장한 기술이기에 더욱 비중 있게 거론되는 것이지 단백달檀伯達의 존재를 [좌전]처럼 심하게 왜곡시킨 필법筆法으로서는 도저히 진실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인 걸 정말 모르고 파닥거리는 걸까?   [단檀이 박달-배달의 훈차訓借]이며 [지나支那 지역에 정착한 배달세력을 드러내준다]는 걸 [로사]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복원할 수 있는데 왜 이런 정당한 근거조차 나오지 못하도록 심하게 비틀어 이상스럽게 해석을 해놓은 [좌전]을 안 찾았는지 전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걸까?   [좌전]의 번역본을 가지고 좋아할 사람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단백달]의 존재를 지우지 않아 다른 기록들과 비교할 여지를 만들어 준 것만큼은 고마울 따름이다.



●●●●●●●●●●●● [좌전의 폐해] ●●●●●●●●●●●●


가. 한족사가漢族史家의 춘추필법

 

昔周克商使諸侯撫封注各撫有其封内之地蘓忿生以溫為司寇與檀伯達封于河...蘇氏卽狄   <春秋左傳注疏卷二十七>


옛날에 주나라가 상나라를 이기고 제후를 위무하여 봉했는데 소분생蘓忿生은 온溫에 봉하여 사구司寇로 삼았다.   그리고 단백달은 황하에 봉하였다.   소蘓씨는 적인狄人이다.


나. 기록의 진정한 의미 - 이 무렵의 명확한 정세분석


문장의 뜻을 명백히 하기 위해 절구絶句 하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昔周克商 使諸侯撫封 注各撫有其封内之地 蘓忿生以溫為司寇 與檀伯達封于河...蘇氏卽狄


옛날에 주周가 상商나라를 이겼다.   제후諸侯로 하여금 위무慰撫케 하기 위해서 봉封했는데(주注 각각各各 위무慰撫를 하는 대상은 봉封을 받은 땅‘안’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소분생蘓忿生을 옛 <고풍古風을 존중키 위해-이온以溫의 진정한 뜻이다> 사구司寇로 임명하였고 더불어 [단檀 백달伯達-배달)을] 황하黃河 전체에 봉封하게 하였다...그런데 소蘇씨는 적인狄人이다.


[사제후무봉使諸侯撫封]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위무慰撫 대상이 제후諸侯가 아니라 제후諸侯로 하여금 백성을 위무慰撫하기 위해서 봉封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주 중요한 키로서 서북쪽에서 활동한 [소공召公의 사례]를 보면 금방 이해가 가는데 즉 주周가 [배달나라]의 각종 제도를 지켜온 상商을 이기자 새로 임명된 제후諸侯로 하여금 상商의 고토古土와 아울러 접경지역 백성들을 위무慰撫하게 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객무유기봉내지지注各撫有其封内之地]


이 문장은 글 중간에 끼워져 있는 주注 즉 주註인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따라서 해석은 각각各各 위무慰撫를 하되 봉封을 받은 땅‘안’에만 국한 한 것임을 <各撫有其封内之地>라는 설명구說明句로서 분명히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분생이온위사구蘓忿生以溫為司寇]


이 부분에서도 역시 서방西方을 어루만지던 [소공召公의 위무방식慰撫方式]을 염두에 두어야만 정확한 의미를 찾는다.   사구司寇는 오늘날의 법관法官이나 치안治安유지를 하는 보안관保安官 등이기 때문에 소분생蘓忿生은 상商의 구역舊域에서 나라의 옛 풍습과 법도法度를 최대한 존중해주는 일을 담당한 관리로서 임명되었을 듯하다.


[여단백달봉우하與檀伯達封于河]


이 대목은 몹시 난해難解하고 [좌전]의 주해註解에서조차 심히 왜곡되어 있다.   왜냐면 <봉우하封于河> 즉 황하黃河 유역 전체에 대해 <단백달檀伯達>을 봉封한다는 사실이『한족漢族이 일반적으로 제후諸侯를 봉封하는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제후諸侯를 봉封하는 관례慣例는 [사람이름-봉국封國]이 나란히 병행되는 양태를 주로 취하는데 <단檀 백달伯達>이라는 영역국가를 대상으로 삼아 황하黃河 전체의 지역地域으로 봉국封國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 구절의 진정한 뜻은 황하黃河 지역 전체에 존재하던 소도蘇塗의 주관자로서 <檀 伯達>을 봉封하되(소공召公의 당수棠樹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이곳의 재판관*치안관인 사구司寇로써 옛 법도法度를 잘 아는 적족狄族 출신 소분생蘓忿生으로 하여금 옆에서 총괄總括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소분생>은 황하黃河 전체를 관장하는 단백달檀伯達의 사구司寇로써 임명이 되어 백성을 위무慰撫하게 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 문장에서 사구司寇와 단백달봉우하檀伯達封于河 사이에 [더불어*함께]를 뜻하는 [여與]가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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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좌전]의 정확한 의미를 되찾으면서 필자筆者가 올린 사료史料들을 참고로 할 때 이런 부분을 알게 해 준 [로사路史]의 존재는 각별하다.   <화하華夏 고대사>를 <단군조선의 단백달檀伯達>과 관련해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강요하는 특별한 사료史料임에는 틀림이 없기에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아 단백달檀伯達은 분명히 일반적인 봉국封國처럼 특정지역에 묶여 있는 존재는 결코 아닌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3. 사마씨司馬氏의 호號에 대한 문제


그리고 [앵무새]는 사마씨司馬氏의 일가一家 중 사마랑(형제 셋 가운데 하나)만이 혼자 사용한 호號를 가지고 전체 문중門中을 판단하는 우愚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야말로 침소봉대가 이런 것이다.   사마씨司馬氏들은 북방계가 확실한 위魏의 조씨曹氏를 뒤엎고 동방민족들이 여전히 웅거하던 지역에서 나라를 빼앗은 장본인들로서 그런 정세와 배경을 고려한다면 왜 <사마랑>이 스스로 [배달伯達]의 후예라고 노골적으로 앞세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깊은 연구도 없이 억지 춘향식으로 우기지만 말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기 전에 좀더 사료에 근거하여 충분한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한마디】


후세後世까지 다양하게 진화한 [박달계 언어]의 용례用例


[양곡陽谷*조양朝陽*조선朝鮮 등]이 [밝다*환하다]는 [환桓*단檀]의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으며 [배달민족]들은 이를 잘 인식하면서 혈연적인 동질성과 자신들의 족원族原을 밝혀주는 정체성의 징표로 적극 활용하였음은 많은 문헌을 통해 산견散見되는 인명고人名考 및 지명고地名考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박달(단국檀國)로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지명들은 이 글의 처음 부분에서 설명하였으므로 그쪽을 참고하여주기 바란다.   다만 여기에서는 보충할 부분만을 더 언급하겠다.


1) 산해경山海經의 불함산不咸山 기록


대황의 한 가운데에 불함이라는 산이 있는데 숙신씨국이 있다.  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愼氏之國   <산해경 대황북경>


불함산不咸山은 백두산白頭山을 가리킨다.   만주어의 [불칸bulkan]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데 [bul]은 하늘을 [kan]은 임금을 나타내는 말로 불함산은 곧 [하늘임금의 산]인 천산天山을 뜻한다.   백두산은 이 밖에도 장백산長白山*도태산徒太山*도대산徒大山 등으로 표기된다.  <해동역사海東繹史 속집續集 권5 지리고地理考 읍루편挹婁篇의 주석註釋>


불칸산과 동일한 호칭呼稱인 불함산을 우리말로 하면 [박달]이 된다는 걸 일견一見할 수 있다.   그래서 [백두산白頭山-백산白山-대산大山-태산太山]으로 변화하는 형태를 보인다.


2) 북한산의 우리말 지명地名인 [부루칸 모로]


[부루(불)+칸(어른*으뜸)+모로(뫼)]로서 산신령의 산이라고 한다.   [칸]은 [한]과 유사음類似音이며 신라의 마립간이나 거서간의 간(한)과 같다.   모로(모루)는 산山의 옛말로서 파생된 현대 말에 [뫼*마루(꼭대기)*머리] 등이 있다(모러-모이-뫼*모로-모루-머루-마루*모리-머리).  즉 존칭어를 빼면 [붉은 산-밝은 산-박달]이 된다.


이어 박달임검(단군檀君)이나 이와 비슷한 해석이 가능한 칭호稱號들에 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박달-배달]과 관련지어 한번쯤은 꼭  유의해야만 할 대목들이기 때문이다.


1) 거발환居發桓 계열의 어군語群


[크고 밝고 환한 어른]이라는 의미를 지닌 [거발환]은 [박달임검]에 대한 극존칭極尊稱이다.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에 등장하는 환웅桓雄들 가운데 [거불리居佛理*거야발居耶發*혁다세赫多世*거불단居弗檀] 등이 같은 뜻을 공유하고 있다.


3) 배달환웅倍達桓雄*배달倍達


[환단고기 삼성기 상 신시역대기]에 다음의 구절로서 환웅신시시대桓雄神市時代부터 이미 우리나라를 [배달나라]로 그리고 환웅桓雄을 [배달환웅]으로 불렀음을 기록하고 있다.



배달환웅천하를 평정하여 차지한 분의 이름이다.   그 도읍한 곳을 신시라고 한다.   뒤에 청구국으로 옮겨 18세 1565년을 누렸다.  倍達桓雄定有天下之號也其所都曰神市後徙靑邱國傳十八世歷一千五百六十五年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무오 51년(BC 2283) 임금께서 운사인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짖고 제천의 단을 마리산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이 바로 그것이다.  戊午五十一年帝命雲師倍達臣設三郞城于穴口築祭天壇於摩璃山 今塹城壇是也   <환단고기 단군세기>


4) 부루칸*불칸


- 알타이어로 [부루칸]은 천신天神을 뜻한다.   울란바토르 동쪽으로 멀리 보이는데 백두산처럼 머리에 하얀 눈을 얹고 있다.   징기즈칸이 좋아했고 지금은 몽골의 영산靈山이 되어 있는 [부루칸 칼둔산]으로서 징기즈칸 스스로도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신령한 산으로 생각하고 죽어서조차 꼭 묻히고 싶어 했던 유명한 곳이다.

- 몽골의 창세신화와 임간창조신화 그리고 해를 쏘는 신화(사일신화射日神話) 등에 자주 등장하는 주신主神인 부르한Burhan*부르칸Burkhan의 존재가 나타난다(오치르바니 부르한 Ochirbani Burhan*쉬베게니 부르한Shibegeni Burhan*마이다르 부르한 Madari Burhan*에세게 부르한 Esege Burhan 등). 


5) 상商의 박亳과 벽辟


- 商의 전 시기에 걸쳐 등장하는 도읍지로서 여러 [박亳-밝달골*박골]이 유의有意된다(서박西亳*남박南亳*몽박蒙亳*연박燕亳*박사亳社 등).   아울러 백성들이 탕왕湯王을 박왕(亳王-밝은 왕  號湯亳王)이라 일컬은 점도 주목된다(사기집해史記集解의 황보밀皇甫謐 인용에서“박왕을 탕이라 호칭하였으니 운운...”).

- [사기 색은索隱]에서『서융西戎의 군장을 박왕亳王이라 호칭했으나 다 성탕成湯의 후예이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索隱曰西戎之君號曰亳王蓋成湯之胤集解引皇甫謐曰亳王號湯西夷之國...<부사년傅斯年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


- 태갑太甲이 덕을 잃자 공신功臣 이윤李尹이 질책하는 글인 [서경書經 태갑편太甲篇]에『우리 사왕嗣王께서는 경계하시어 벽辟의 도리를 공경하소서.   벽이 벽답지 못하면 할아비를 욕되게 하리이다.  嗣王戒哉祗爾厥辟辟不辟忝厥祖...』는 기록 중 [박달계 언어]인 [밝을 벽辟-밝은 임금]이 나온다.


6. 박타르(박달)


러시아 남서부 코카서스 지역의 고대 왕이다.   그리스어로 기록된 코카서스 쩨렌추크에서 발견된 비문인데 이상하게 그리스문자임에도 그리스어로 뜻이 통하지 않았다.   모스크바 대학의 민속학교수이자 소련 사회과학 아카데미 회원인 밀러(Vs. Miller)박사는 묘비의 그리스문자를 빌려 쓴 언어에 분명히 오세티안(체첸*잉구세테아지역)어로 볼 수 있는 몇몇 어휘들이 반복해서 등장함을 보고 [오세티안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설총의 이두문자처럼 그리스어를 소리 값으로 빌려 쓴 것이다).


Χ...ρη φουρτ  ΪΙακαθαρ (X....의 아들  Bakatar)


그림의 6-7-8라인에 X....(흐*하)로 시작되는 인물의 아들 [박달Bakatar]이 똑똑하게 보인다.   여기서 영웅을 뜻하는 [박타르]란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하여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박타르 왕]을 의미한다.   단군(박달임금檀君)도 퉁구스 말로는 [박타르]로 발음되는데 코카서스 오세티아에는 7명의 아들을 둔 [Os-Bagatar 박달왕]의 전설이 살아있다.   참고로 [박타르]는 박트리아의 폐르시아 어 발음이기도 하며 수도는 발흐(밝은 해)이다.   모두가 [박달-배달계 언어군]이다.

    

                


7. 바타르 게레


퉁구스어로 영웅민족을 말하는데 우리말 [배달겨레]와 유사하다.   [겨레]는 고대 알타이어인 [게레gere]에서 온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타르 게레 batar gere-영웅민족] 으로 해석된다.   몽골에 가서 [바타르 게레-박달 겨레]라고 외치면 몽골인들은 금방 알아듣는다.


8. 불거내와 박혁거세朴赫居世


[박혁거세朴赫居世]에서 [거세]는 [거서간居西干]과 동일한 존칭이니 이름은 [박혁朴赫]이라고 보여 진다.   그런데 박혁거세의 성이 [박]이라 하였으므로(태동일람泰東一覽) [붉을 혁赫]도 이를 설명해주는 동일한 뜻 옮김이다.   결국 명칭이 [박朴-밝은 어른]이라는 [박달계통]임을 알게 해준다.   이 같은 사실은 [규원사화 단군기 고열가 단군 조]에서『박씨朴氏와 백씨白氏가 모두 그의 먼 후손이며 혁거세赫居世 또한 단군의 먼 후손이라고 한다』란 기록과 일치되는 부분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도『...혹은 이름을 불거내왕(弗 矢+巨 內王-붉은 애*밝은 아이)라 하니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는 기록이 있다.   아울러 호공瓠公 역시 [표주박의 박]을 의미하는 훈차訓借이다.


9. 동명왕東明王과 고두막한高豆莫汗


막莫은 맥貊과 상통하며 모두 [밝]과 연결되는 음가音價를 가진다.   따라서 [막한莫汗-밝은 어른]으로서 [동명東明]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박달계 언어군]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 순舜의 선대先代인 막幕을 막莫으로도 쓰며 맥貊에서 전음轉音되었다 한다.   맥貊은 [박]과 음사音寫하다는 게 정설이니 [박달계 언어]가 일반적인 마을어른 씨氏로 퍼져 출신의 근원과 혈연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주요 지표가 되고 있음을 일견一見하게 해준다(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막고야藐姑射라는 나라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연유로 순舜은 자리를 잇자마자 같은 [박달계]로서 살던 고을을 [박]으로 어른을 [박*벽]으로 칭한 [환에서 나온-환발桓撥] 계契를 사도司徒라는 중책重責으로 곁에 두면서 상商에 봉封하여 후일 상왕조商王朝를 수립(樹立-박달계 언어이다)하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 여기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할 점은 이렇듯 [박달계 언어]의 용례用例가 깊은 의미를 가질진대 민족의 정체성을 보장해주는 족명族名으로서 [호胡]는 한족漢族들이 비하하여 기록했지만 원래 우리말로는 [박달인 박타르]와 동음同音인 [박]인데 [표瓢-호瓠-호胡]로 넘나들은 게 아닌가 싶다(이는 유호씨有扈氏박달씨나 호타수滹沱水박달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후한서 동이전]에서『맥이는 구려국의 다른 이름이다.  貊耳句麗國之一名』이 명시되었으며 일본의 기록에서도 고구려를 맥貘이라 적고 <고마>라 불렀고 맥貊에서 전화轉化한 막莫으로 표현된 많은 인명*지명(막幕*막고야藐姑射의 神人*막배莫坯 등)들이나 고구려의 오부맥五部貊을 통할한 막리지莫離支와 같은 엄연한 사실들을 결코 잊지 말아야 지금까지 흩어지고 묻혀진 [박달-배달계의 족적足跡]을 완전하게 되찾아 원형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꼭 명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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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명]우연히 지나다 이글을 보게 되네요. 오래 된 글인데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우리의 고대사의 진실은 박혁거세 신라 시조를 알면 많은 것이 풀릴것 같습니다.
삼국사기 신라편에 박혁거세의 나라는 사라 서라(벌)로 나오죠.
사라는 고대 터키에 살았던 히타이트인의 도시가 쿠(코,구)사라였는데 쿠는 한자 久古高로 보면 고대 사라국이 됩니다.
서라벌은 불교 천축국 사위를 산스크리트어로 읽으면 스라바스티(스라바의 식민지)가 되는데, 스라바 즉 서라벌을 의미하죠. 또한 불교서적 불국기 대당서역기 왕오천축국기에서 천축은 고대에 신독 천독으로 불리었고 이제는 인도로 불러야 된다 하고, 석가모니는 사위국 파사닉왕과 친구였죠. 파사닉은 신라 5대 임금 파사이사금의 변형된 이름입니다. 신독 천독은 산해경에서 고조선이라 이야기 하죠.
그렇다면 박혁거세는 BC950년경(석가모니 사망) 보다 훨씬 이전 인물이 됩니다.
박혁거세는 박만큼 큰(巨)알(卵)에서 태어난 거란(巨卵, 鷄卵)이고 한자가 변하여 거단(란) 계단(란)이 되지요. 단군 왕검이 태어나기전 천하를 다스린 천자 한웅입니다. 박혁거세의 거란족은 단군왕검에게 패권이 넘어간 이후 고조선 변한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거란(遼)은 요동과 요서의 분기점이며 거란의 이동 경로에 따라 요동의 위치가 변해온것 같다.
고조선 진한 단군 왕검의 실체는 천자(환웅)와 웅녀(월지)의 혼인으로 탄생한 여진족 金의 시조이며, 다른 버전으로 가야의 金수로(金종족의 제사장)이며, 아카드의 사르곤(제사장 Kin金)입니다.
천자(환웅)-웅녀(월지)의 혼인은 박(천자 환웅 박혁거세)과 달(月월지 웅녀)을 조합한 박달이 라고 가설을 제시합니다. 박달에서 배달민족 베다경전등으로 바뀐것이죠
[수메르 파헤치기]다른 글에서 수메르인이 우리의 조상이다 아니다 라고 말들 하던데....
결론적으로 수메르인은 한웅 천자의 후손들이며 박혁거세의 후손들입니다.
위키백과 영문판에서 수메르 사람들은 스스로 웅상기가라 불렀다고 합니다. 웅상기가를 한자로 번역해보면 雄象基家가 됩니다. 웅상雄象은 11세 단군이 한웅의 상을 세우고 제사 지내면서 웅상이라 불렀다 하죠. 바로 그 웅상이며 웅상은 천자(한인의 아들)를 의미하죠. 수메르는 박혁거세의 후손 천손족 거란인 고대 사라(古사라)입니다.
훗날 수메르 왼쪽 터키지역에 히타이트족의 도시 쿠사라(고대 사라)가 BC18세기경(위키백과) 건설되었다고 하죠. 이곳이 변한입니다. 이시기 한단고기 기록에는 13대 단군때 은나라가 하나라를 침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니다. 불교 고대 서적을 분석해보면 은나라는 곧 변지이며 고조선 변한을 뜻합니다. 즉 쿠사라 고대 사라 서라벌(신라)이 된다.
히타이는 히티로 발음되는데 쪽바리발음으로 히는日 火의 뜻이며 티는 地血父(치)體胎(타이)가 되어 불의민족 또는 태양민족이 된다.
한단고기에서 소시모리 추장을 베었다고 하죠 소시모리는 현재 말로 바꾸면 소쇠머리(牛鐵머리)가 되죠 소뿔로 된 철투구를 쓴 치우천황이 연상되지 않나요?

박달은 오늘날 이란의 수도 바그다드로 변형되었다고 추정합니다. 박(바그)달(다르 다드)의 일본식 이름이죠.
7세기경인가? 바그다드로 명명되기전 도시 이름이 달알 사람이었습니다. 7세기경에 중동의 한 도시이름이 달알사람으로 순수한 우리말로 불리어졌다는 신기한 사실입니다. 해석하자면 달과알의 사람들 즉 월지인과 박혁거세의 알민족이 함께 사는 도시가 되며, 여진족 金나라 민족을 의미하는게 아닐까요?
이슬람 사원마다 있는 보석같이 예쁜 둠들은 내 눈엔 늘 박혁거세의 거란인 달갈로 연상되네요.
[킵차크한국] 갑자기 金나라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하나 더 글 남깁니다.
징키스칸 사후에 왕위계승권 싸움에서 장남 주치의 적통성문제로 떨어져 나가 세운 나라가 킵차크한국이다. 다른말로 金장한국이라 부른다.
킵차크는 일본말로 적통이란 의미이다. 즉 우리가 金나라(고조선 단군 진한)의 적통이라고 국호를 쓴것이다. 징키스칸의 원나라의 정통성은 여진족 金이었다.
거란족(遼) 천자의 시대가 지고 여진족(金, 금관가야) 단군(고조선 진한 = 가야)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된다.
진시황제는 해모수였다(고조선의 오가가 진시황제 정에게 항복했다, 고조선의 오가가 해모수에게 회유되었다)
진시황제는 단군왕검의 진한(가야)을 계승한것이었다. 왕검의 후손이 우가 양가 등에게 지위를 빼앗겼고, 색블루의 구데타와 다른 사유로 단군의 적통성이 사라진 상태에서 해모수가 전국을 통일하고 초기 진한을 다시 세운것이다(辰 韓의 辰眞 한자가 秦으로 바뀜)

遼 거란(강남, 중원) : 환웅 사로 변한 夏 殷 신독 천독 인도 동축 요동 漢 신라 당 고려 明? 조선?(이성계의 구데타)
金 여진 : 단군 가야 진한 周 서축 서역 천축 秦시황제(해모수) 고구려 발해(대진) 元몽고 조선? 淸?
倭의 정체 : 역사 속에 아지랑이 같은 민족이 백제이며 일본이며 마한이다.(필자의 관점에서)
마한은 달의 민족(달지 월지 月)이기에 태양을 근간으로 하는 일본과는 매치가 안된다. 일본과 왜는 별개인가?
히타이트(히티)는 태양민족이면서 쿠사라(고대 신라 거란족)이다. 쿠사라 거란족이 日本의 원조이다. 오늘날
일본은 왜에서 나온건가? 쿠사라의 태양을 훔진 나라인가?
돌궐족(토구라, 토화라) 트루판(들판)의 발음이 일본식 발음과 닮았다. 행여 왜가 아닐까?
히타이트(태양 日) 마한(달지 월지 月) 트루판(돌궐) 이 세곳 중 하나가 왜가 아닐까?
[천기누설]영문판 백과사전에서 수메르와 앗수르 문명과 관련된 명사를 순수 우리말이나 한자로 연결시키면 쉽게 이해되는 것이 많다. 예를들자면 수메르의 소시모리는 우두牛頭라고도 불리는데, 여진족(金) 진한 언어로는 소머리(소시모리)가 되고, 거란족(遼) 변한 언어로는 漢字 우두牛頭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