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3. 24. 14:18

 

 

[유사역시학 비판 시리즈 제2부] 유사역사학인가?  변종사학인가?



아집我執과 권위權威로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되는 환상幻想에 이르는 길과 분명하게 대조對照를 이루는 사실로 가는 길은 쓸데없는 믿음과 망상妄想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로지 진실을 분명하게 바라보는 걸 최선最善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지막 화살이 꽂히는 곳은 누가 뭐라 해도 역사적 진실의 표적을 향한다.    이미 기존 역사해석의 한 가게에서만 나온 [붕어빵] 같은 경직硬直된 사고思考를 자유롭게 해방解放시킬 진리眞理의 화살은 시위를 떠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왕에 [앵무새]나 <Shaw>가 [변경지대邊境地帶 운운云云하며 경계문제]를 인용引用하였으니 우선 이 부분부터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이를 거론擧論하자면 부득이 아래의 글부터 소개해야 한다.



미지未知의 것을 탐구探究하다 보면 [변경지대邊境地帶]에 놓여있는 지식을 자주 만난다.   이곳은 정통正統과 이단異端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곳이다.   이런 주장들을 잘 살펴보면 [과학과 의사과학疑寫科學*과학과 비과학非科學 사이의 경계선을 긋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과 경계탐지境界探知 문제>



<마이클Micheal 셔머Shermer>는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란 책의 서문序文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이 매우 즐겨 이 변경지대邊境地帶 관념觀念을 베껴 [민족사학民族史學의 영역領域]이라고 선전宣傳하는 대목이다.   과연 그럴까?   이제부터 필자筆者와 같이 이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먼저 저자著者는 [앵무새]들이 잘 익은 열매의 달콤한 부분만 먹고 버린 <씨앗>들을 정말로 놓치지 말 것을 친절하게 전제前提해준다.   즉 [경계지대=의사과학疑寫科學이나 과학과 비과학非科學] 을 가르는 아래와 같은 잣대를 정확히 잡고 직시直視하라는 것이다.



1) 어떤 것이 맞고 어느 게 엉터리인지? 어떻게 아는가?

2) 어떻게 과학과 의사과학疑寫科學 또는 과학과 비과학非科學의 차이를 말할 수 있는가?  

3) 현실과 환상幻想 그리고 사실과 허구虛構를 언제나 명료明瞭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런 판단들이 선행先行되어야 하는 과정이 정확한 [경계영역境界領域]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역설力說하는데 이렇게 모호한 곳에서 길을 잃지 않는 핵심核心 기준을 찾는 해답이 바로 [경계문제와 퍼지 논리論理]라는 이야기이다.   이걸 빼먹으면 어떡하나!   왜 그랬을까?


<마이클 셔머>는 왜 이런 단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를 아주 쉽게 예例를 들어 [X 파일]에서 부국장副局長인 <스키너>가 극적劇的인 어조語調로 다음과 같이 낭독朗讀하면서 시작하는 부분으로 이유를 대신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물事物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기존의 역사 가설假說이라고 대입代入해보자)과 다릅니다.   <X 화일에서>



이 말의 의미를 굳이 더 풀어준다면 <사물事物이 생각하는 것과 늘 다른 까닭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예 와 아니오 로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흑백세상黑白世上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경계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 세계는 가장자리가 모호하다.   그래서 명확한 경계를 그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바로 이를 해소解消하는 방법으로 확률確率을 바탕으로 하는 [퍼지이론과 귀무가설歸無假說]이 해결사解決士의 역할을 맡는다.  특히 저자著者는 사회과학 영역領域에 대해 [귀무가설歸無假說] [1]을 키워드Key-Word로 던져준다.


[1] 검증檢證해야만 할 주장이 일단 틀렸다고 본다.   그러면서 이런 가정假定이 기각棄却되면 그 가설假說은 신빙성信憑性을 얻는다.



[과학]에 있어서 귀무가설歸無假說은 어느 정도일까?   통상 0.01-0.05 수준(우연偶然이 아닐 가능성 95%-99%) 수준에서 기각棄却하는데 <역사문제>의 경우는 성질상 수용수준受容水準이 그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알면 된다.   이것이 [퍼지 논리論理]이기도 하다.   아울러 검증檢證의 공정성公正性 확보를 위해 [경계탐지장치境界探知裝置]라는 논리기술적論理技術的 도구道具를 조언助言한다.



1) <퍼지 논리論理>를 사용하는 사람은 각각各各의 주장을 자세히 검토해야 하고 질문質問에 대답하기 충분할 만큼 주제主題를 깊숙이 알아야만 한다.


2) 이 모든 과정은 정직하고 공정公正해야 하며 선입견先入見을 가지고 탐구探究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스스로 지닌 패러다임에서 나온 편견偏見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3) 검증檢證이 [공정성의 질문質問-주장하는 사람들이 공정하게 취급받고 있는지? 여부]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는가? 라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4) 어떠한 경우라도 [허수아비의 오류誤謬]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즉 상대相對 주장을 분석이나 폭로暴露하기 쉽도록 만든 몇 가지로 질문을 단순화시켜 실제로 말하려는 핵심核心이 아닌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그걸 공격하는 행태를 말한다(필자筆者가 늘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에게 충고忠告하는 이야기이다).



[변종사학變種史學]에서는 과연 이렇게 엄밀嚴密하고 냉정한 기준에서 행동하고 판단하였을까?   이런 과정들이나 검증檢證 대상이 정말로 [민족사학民族史學]에게만 오로지 적용되는 것일까?   선전宣傳은 제 나름이지만 그걸 듣고 선택選擇하는 이들은 항상 따로 있는 법이다.


이제 <셔먼>이 제시提示한 <어떤 주장의 타당성妥當性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質問>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이 이야기를 맺기로 한다.



1.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신뢰성信賴性이 있는가?


여기에서 말하는 신뢰성信賴性은  지위地位와 권위權威나 영향력에 기초한 게 아니라(늘 이런 문제가 등장한다) 학자적學者的 양심良心을 기반으로 하면서 설명구조說明構造의 허구성虛構性이나 논거제시論據提示 과정에서의 생략省略과 회피回避 등이 없는 진실한 연구자세들을 말한다. 


우리와 긴밀緊密하게 접촉하였던 지대(地帶-한족漢族과 만주족滿洲族*몽골족 들)에서 기술記述한 다른 여러 사서史書들이 입증立證하고 있는 사료史料들을 일일이 비교검증比較檢證하여 하나의 학설學說을 정립定立하는 과정과


이를 애써 은폐隱蔽하거나 무시無視하거나 심지어는 이를 <허수아비의 오류誤謬>로 만들어 매도罵倒하고 조작造作하여 자신들이 성경聖經처럼 받드는 고정불변固定不變의 학설學說을 못 박으려 하는 학문적 태도를 [유태인 학살 부정론]을 강변强辯하는 <데이비드David 어빙Irving>를 빗대어 말한다.



2. 같은 사람이 비슷한 주장을 자주 하는가.


쉽게 말해 [두계학파斗溪學派]의 변함없이 돌아가는 녹음기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가思想家들은 때로 (자신)의 데이터를 넘어 창조적 사색(思索-민족사학자民族史學者의 경우와 같이 새로운 가설假說의 정립定立과 실험과 수용受容 과정 등)을 펼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경청敬聽하고 아이디어가 타당한지 스스로 검증檢證해 보는 좋은 본보기로 삼는다.  


그렇다고 그를(코넬 대학 토머스Thomas 골드Gold의 사례事例)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이 종종 하는 짓처럼 미치광이로 취급하거나 <허수아비의 오류誤謬>와 같은 희생자犧牲者로 만들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이유는 자명自明하다.   그의 작업들이 과학(科學-역사학으로 대입代入해도 좋다)이라는 [게임의 규칙]에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역사연구 방법과 같은 논리전개論理展開 방식과 같은 양태樣態로 입증사료立證史料를 선택하는 민족사학자民族史學者들이나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3. 누군가가 특히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 자신이 그 주장을 반박反駁하려는 시도를 했는가?   아니면 오로지 그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만 찾았는가?


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정직한 과학]의 발전은 끊임없는 자기반성自己反省과 새로운 예측豫測과 실험實驗은 물론 늘 변화하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자기수정自己修正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음을 제1부의 [사이비 사이언스]의 저자著者도 밝히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현現 [두계학파斗溪學派] 수제자首弟子들의 역사인식歷史認識들은 과연 어떠한가?   권위적權威的인 리더의 판단 영역領域에서 한 발짝이라도 나아갔을까?   그 반면에 [민족사학民族史學]의 뜨거운 역사쟁점歷史爭點에 관한 견해見解들은 제자백가諸子百家만큼이나 다양하고 역동적力動的인 가설假說로 가득 차 있다.


다시 말하자면 [확인確認의 편견偏見] 문제인데 유리한 증거만 찾아다니고 불리한 것은 무시하는 경향이다(Nikerson 1998).   상대방이 제시하는 수많은 반대 증거들을 [음모론]이라는 단 한 마디로 일축一蹴하며 그 담요 속으로 경솔하게 쓸어 담으려는 행위를 대표적인 사례事例로 거론擧論한다.


특히 우리 역사학계에서 이 편견偏見은  더욱 강력하고 압도적壓倒的이다.   [진정한 과학]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확인과 재확인*입증立證과 실험을 통한 재현再現>을 누누이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변종사학變種史學]은 이 영역領域에서는 할 말이 없다.



4. 분명하게 증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세優勢한 증거들이 (자신이) 주장하는 결론에 수렴收斂하는가?   아니면 다른 결론에 수렴收斂하는가?


역사적 사건을 부인否認하는 사람들은 증거들이 주장의 결론에 수렴收斂하는지? 를 보지 않고 단지 자신들의 의도에 맞는지? 만 본다.   이들은 상대방 가설假說의 사소한 불일치不一致를 트집 잡아 거짓이라고 우긴다. [1]


[1] 저자著者는 유태인 대학살의 경우를 예시豫示로 드는데 기왕에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이 이를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역사에 대입代入하였으므로 현재 역사학계의 논쟁論爭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증언(證言-역사적 주장)들이 [변종사학계變種史學界]처럼 일치단결되는 판박이보다 [민족사학民族史學 진영陣營]같이 조금씩 엇갈리는 편이 도리어 신빙성信憑性이 높다는 점이 통설通說이다.   아무도 과거를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기억할 수 없으며 특정한 사건(事件-역사논쟁歷史論爭)은 전체적으로만 비슷하고 세세한 부분은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5) 주장하는 사람이 받아들여진 추론규칙推論規則과 연구방법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원하는 결론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포기抛棄한 수단을 사용하는가?


이 대목에서 저자著者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설명을 덧붙인다.   학술지學術誌 논문論文이나 참고문헌參考文獻들을 정직하게 인용引用하라는 말이며 특정한 문헌文獻을 검토하거나 문구文句를 번역할 때 연구자들은 최선을 다해 역사적 맥락脈絡과 내용을 고려考慮해야 한다.


실례實例로서 <창조론자創造論者>들이 과학 문헌文獻을 읽는 이유는 오로지 진화론進化論의 약점弱點을 찾거나 과학적 아이디어를 자신들의 종교적 신조信條에 끼워맞출 방법을 찾기 위해서이다(Pennock 1999).   과연 저자著者인 <셔먼>은 어느 쪽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 서있는가?



6) 주장하는 사람이 대안代案을 제시提示하는가?   아니면 기존 설명을 반박하기만 하는가?


상당히 매력적인 문구文句이다.   실제로 [민족사학民族史學]은 새로운 역사해석방법론歷史解釋方法論으로서 수많은 새로운 대안代案들을 꺼내 놓았으며 [변종사학變種史學]은?   없다!!   그렇다면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는 상대방의 설명에 대해 반박거리만 찾는가?   그렇다!   이제 저자著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역사적인 사건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이론을 내놓지 않고 그 분야分野에 등장한 신조信條의 약점弱點만을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하기만 한다.   이는 고전적古典的인 논쟁전략論爭戰略이다.   적敵을 비판批判하되 비판批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비판批判하는 모델보다 더 잘 설명되는 모형模型을 제안提案하지 못한다.  Harris 1999).


건전한 역사 연구에서는 기존 패러다임을 합당하게 비판批判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提示할 수 있지만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사소한 불일치不一致만 트집 잡으면서 공격하기만 한다.   창조론創造論이 내놓은 진화론進化論의 유일한 대안代案은 [신神이 했다.  Miller 1999-이를 변종사학變種史學에 대응對應시키면 이병도李丙燾가 그랬다. 이다]는 주장뿐이다.



7) 주장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믿음과 편견偏見이 결론結論을 이끌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모든 사람들은 편견偏見을 가진다.   모든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잠재적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이 스스로 편견偏見과 선입관先入觀들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지적해주어야만 한다.  


이를 거부한다면 그때부터 그 이론理論은 점차 화석化石이 될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모든 [진정한 과학]은 한 때 비과학적非科學的이거나 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이었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비과학非科學➡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진정한 과학 혹은 그 반대 현상으로 떨어진 과거의 정통 과학들]으로 정립定立되었는지? 는 과학사科學史 발전의 중요한 일면一面이다.



아무튼 이상의 [질문質問]들은 사실 입장을 바꾸어 보면 [양兩 날의 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인식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道具로서만 사용한다면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 차 넣은 <자살골>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인간의 감정感情*편견偏見*성향性向*문화文化가 과학이라는 세계와 과거의 역사나 인간의 전기傳記를 탐구探究하는 과정들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를 아주 잘 표현해주는 금언金言을 발견한다.



인간성人間性이라는 굽은 나뭇가지에서 이제까지 똑바른 것은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칸트가 역사와 인간에 대해 언급言及한 말>



제1장 변경지대邊境地帶의 과학



1. 진실眞實과 환상幻想 그리고 회의론懷疑論


<마이클 셔먼>은 인간사회생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위 두 가지 명제命題를 구분해주는 여과장치濾過裝置를 [지식필터]라고 규정規定하는데 모든 것에는 항상 다른 관점觀點이 있으며 대부분의 주장에도 대립對立되는 논점論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의 학설學說은 언제든지 [수정修正의 문門]을 열어두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誤謬는 제거되고 잘못된 추론推論이 드러나며 부적절한 결론이 걸러진다.   바로 이런 시스템이 가장 잘 작동作動하고 있는 분야가 [과학]이다.



과학은 가장 인간적인 지식의 형태이다.   우리는 항상 알려진 것의 첨단尖端에 서 있으며 더 바랄 수 있는 것에 나아가고 싶어 한다.   과학에서 모든 판단은 착오錯誤의 변두리에 서 있으며 판단은 개인적이다.  


과학은 오류誤謬 속에서 찾아 낸 지식에 바치는 제물祭物이다.   올리버 크롬웰이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절대적인 지식과 절대적인 힘을 얻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제이콥 브로노프스키  인간 등정登程의 발자취 Ascent of Man  제11장 지식과 확실성>



오늘날 의사과학자疑寫科學者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다룬 최초의 저서著書이며 유명한 고전古典인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진 유행과 실패 Fads & Fallacies in the Name of Science - 원래는 1952년에「과학의 이름」란 제목으로 출간出刊되었었다]를 펴낸 <마틴Martin 가드너Gardner>의 말은 오늘날의 국사학계國史學界를 생각할 때마다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오늘날에도 남부에서는 교사敎師들이 실직失職당할까 두려워 진화론進化論을 가르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수천 명의 고교高敎 생물교사生物敎師들이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마틴 가드너>



<가드너>의 뛰어난 통찰력通察力은 다음의 정의正義에서 빛이 난다.   여기에서 언급한 변경지대邊境地帶 이론을 [앵무새]는 유사과학類似科學으로 보고 민족사학民族史學에 대입代入했는데 <가드너>는 이들이 [진정한 과학으로 가는 전前 단계]라고 설명한다.   그야말로 [앵무새]는 자충수自充手를 둔 것이다.  


모든 이론들은 연속체連續體를 이루고 있어서 상식常識과 비상식非常識*정상正常과 초정상超正常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연속체連續體의 중간쯤에 변경지대邊境地帶가 있으며 현재 개발 중인 이론理論들이 존재한다.   아직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서 논란論難의 여지가 크지만 곧 가장 확실한 [과학] 쪽으로 편입編入될 것이다(그는 우주팽창론宇宙膨脹論을 사례事例로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변경邊境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정직한 이론으로 대우받고 있다).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  82p>


...그러나 여기에는 모든 과학에서 주의해야하며 특히 회의론자懷疑論者들이 명심해야할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정통正統과 이단異端*전통과 변화의 올바른 균형점均衡點을 찾는 문제이고 충분히 열린 마음으로 급진적이고 새로운 견해見解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만...그중에는 대단히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이상해 보인다고 모조건 거부해서는 안 된다.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  83p>


[확인의 편견偏見]은 선입견先入見을 확인해주는 데이터만 받아들이고 여기에 반대되는 것들을 무시하려는 경향을 말한다(Nickerson  1998).   모든 것은 맥락脈絡에 따라 달라지며 확인의 편견偏見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우 힘든 일이다.


...(예例를 들어) 수천가지 스포츠 가운데 흑인黑人들이 두각頭角을 나타내는 종목은 농구*미식축구*육상뿐인데도 모든 스포츠에서도 그런 것처럼 학문적 관심을 두는 이유가 단지 인종문제人種問題가 미국 사회의 화두話頭이며 이 세 가지 스포츠가 가장 인기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  83p> 



2. 패러다임 [1] 과 과학 그리고 민족사학民族史學


다윈의 [자연선택이론自然選擇理論]과 닐스Niles 엘드리지Eldredge와 스티븐 제이 굴드가 [단속평형이론] [2]이 패러다임의 전환轉換을 이루면서 진정한 지위를 인정받기까지 수십 년이 흘렀다.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주장했던 <한사군漢四郡 위치 수정修正과 고조선古朝鮮에 관한 인식 개선과 청동기靑銅器 상향론上向論>이 정식正式 교과서에 수록된 경우나 마찬가지이다.


[1] 한 시대의 흐름과 학문적 경향을 정의正義하는 사고방식

[2] 생물변화론生物變化論에서 다윈의 점진적 선형이론(느리고 꾸준한 변화가 쌓여 큰 변화를 이룬다)과 대립對立한 비선형이론(장기간 평형平衡이 유지되다가 지질학적地質學的으로 갑작스런 변화에 의해 교란攪亂된다)



...떠들썩한 협잡꾼들이 외치는 새로운 패러다임 몇 가지가 틀렸다고 해서 모든 도발적挑發的인 발상發想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주장들은 싸잡아 그럴 수는 없고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한다.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  142p> 


[과학]은 확인 또는 반박反駁할 수 있는 검증檢證 가능한 지식체계를 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관찰되거나 추론推論된 과거나 현재의 현상을 서술敍述하고 해석하는 인지적認知的이고 행동적인  방법의 집합이다(또는...서술敍述하고...해석을 크게 바꾸는 새로운 인지적認知的 체계를 초기에는 소수小數만이 공유共有하다가 나중에 다수多數가 공유共有하는 것을 말한다).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  143p*146p> 



여기에서 [인지적認知的]이란 <직감直感*추측推測*아이디어*가설說*이론理論*패러다임 등>을 말하고 [행동적인 방법]으로서는 <배경조사*데이터 수집과 조직화*동료들과의 협력과 의사교환*실험*사실들의 상관관계*통계분석*초고草稿 작성*학술學術 발표*논문論文과 책의 출판出版 등>을 모두 포함시킨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현재 [민족사학계民族史學界]의 입장이나 행동방식과 대응對應된다.   아무튼 그 놈의 색안경을 벗어야 모든 사물事物이 [진정하게 과학적]인 시야視野에 잡히는 법이다.   그러면서 저자著者는 [패러다임의 역설逆說]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아주 친절하게 색안경을 쓴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의 편견偏見을 분명히 지적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사회 구성원들이 공유共有하는 체계들과 패러다임은 하나일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패러다임들이 공존共存하거나 경쟁할 수 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의 것을 밀어내기도 한다.   또한「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한다는 말은 그 분야의 모든 과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하나의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  144p>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헛간을 부수고 그 자리에 마천루摩天樓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올라갈수록 새롭고 넓은 전망展望에 도달하며 출발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연관성과 드넓은 배경을 보게 된다.   물론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하지만 그 지점은 아주 작아져서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높이 올라왔을 때 펼쳐지는 드넓은 전망展望 속에서 작은 일부를 이룰 뿐이다.   <아인슈타인 Einstein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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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Michael 루즈Ruse>는 [단속평형이론]과 관련한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패러다임]이란 말의 용법用法을 명확하게  정리해준다.


1) 사회적社會的 용법用法


어떤 과학자(이를 역사학자로 대치代置해보도록 하라) 집단이 실제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어떤 전망展望을 공유共有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 스스로를 다른 과학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2) 심리적心理的 용법用法


이 패러다임에 속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또는 은유적隱喩的으로 세계를 자신의 패러다임 밖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본다(젊은 여자로도 보이고 할머니로도 보이는 그림을 보고 그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쪽 패러다임에 속해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3) 인식론적認識論的 용법用法


과학의 방법은 패러다임에 묶여 있으며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기법技法으로 연구하는지? 어떤 해답을 얻는지? 는 여러 가설假說*모형模型*이론理論*법칙法則에 따라 결정된다.


4) 존재론적 存在論的 용법用法


가장 극단적極端的인 의미에서 패러다임에 따라 사물事物의 (의미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프리스톨리>에게는 산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라부아지에>는 산소가 실재實在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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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패러다임의 전환轉換을 일으키며 누가 주도하는가? 란 물음은 패러다임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잘 대변代辨해주는 글을 하나 더 소개한다.   나중에는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발상發想과 가설假說들이 처음엔 어디에서 등장하는지?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항상 젊은이 또는 그 분야의 신출내기들이다.   <쿤>


중요한 과학적 혁신革新은 적敵들을 조금씩 설득하면서 점진적漸進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敵들이 점점 죽어 없어지고 다음 세대世代가 자라나면서 이 아이디어에 익숙해져야 혁신革新이 성공한다.   <막스Max 프랑크Plank>


이론의 탄생에 대해 조사할 때 창시자創始者는 최악最惡의 증인證人이다.   가장 좋은 증인證人은 창시자創始者에게 배운 다음 세대世代이다.   <단속평형이론가인 스티븐Stephen 제이Jay 굴드Gould>



이런 학설學說들이 처음에는 아주 철저하게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은 등장했을 무렵 기존의 고생물학古生物學과 진화생물학進化生物學에 거대한 충격을 던져준 [단속평형이론]이 실증적實證的으로 증명해준다(Astrand &Rodahl  1077*Gross  1986*Burke  1986).  



새롭고 혁명적革命的인 과학체계는 두 팔을 벌려 환영받기보다는 저항抵抗을 받는 경향傾向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공한 과학자들은 지적知的*사회적 심지어 경제적 이해에 대해 기득권旣得權을 가지고 있어서 현現 상황을 유지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I. B 코언  과학에서의 혁명  1985>



결국 이 이론은 한참 후에야 <다윈의 이론>을 보완補完하는 진화進化에 대한 새로운 서술敍述 분야로서 통합統合되어 나름대로의 공정성公正性을 확보한다.   이를 오늘의 우리 역사학계歷史學界라는 거울에 한번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은 지금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가?



(단속평형이론을 세운) 굴드는 늑대가 나타났다. 라고 외친 소년이며 실패한 혁명아革命兒이고 정통正統 다윈을 비판한 자者이다.   <철학자哲學者 대니얼Daniel 데닛Dennet>


단속평형이론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나쁜 과학이다...완전히 다른 매커니즘으로 일어나며 다윈 논의論議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함축含蓄을 갖는 빠른 점진적변이漸進的變異와 도약적跳躍的인 거대변이巨大變異와의 차이를 무시했다.   <동물학자動物學者  리쳐드Ridhard 도킨스Dawkins>


평균적인 진화론進化論 학자들에게 굴드는 있으나마나한 사람이다.   <마이클 루즈>




[사례연구事例硏究]


1. <니콜라우스Nicolaus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의 [태양중심체계이론太陽中心體系理論]은 거대한 지적知的 혁명이었으나 150년 동안 매도罵倒 당하고 저항抵抗에 시달렸으며 저주咀呪를 받다가 받아들여졌다.   이로서 그토록 무수정주의無修正主義로 일관一貫하던 중세적세계관中世的世界觀은 몰락沒落하고 만다.


2. 아래에서 설명할 [플랑크 현상]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사회과학자社會科學者 <프랭크Frank 설로웨이Sulloway>는 국립과학재단國立科學財團이 이를 <순진하고 부적절하며 심지어 이상해 보인다>라는 이유로 딱 부러지게 거부拒否하면서 깔아뭉개어 모든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그 가설假說이 올바름을 증명했다. 


3. 영국 박물학자博物學者 <알프레드Alfred 러셀Russel 월리스Wallace>는「지구가 평평하다」는 당시의 학설學說에 맞서 [지구는 둥글다]는 가설假說을 지지支持하는 실험(實驗-노퍽에 있던 올드베드퍼드 운하運河의 두 다리 사이에서 벌인 실험)에서 이를 입증立證했다가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엄청난 협박과 박해迫害를 겪었다.



대부분의 경우 창시자創始者는 불을 붙였지만 악의惡意에 찬 손가락질 속에서 시달렸고 패러다임의 전환轉換은 그걸 이해하고 따른 후계자後繼者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론수정理論修正이 겪는 저항抵抗은 역사 과정에서 거의 모든 분야의 혁명적 사상思想들이 받았던 정상적인 통과의례通過儀禮이다.


또한 [변경지대이론邊境地帶理論][1]이 한 때는 이단異端으로 불리지만 어떻게 기존의 과학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지? 그런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우 고전적古典的인 사례事例이다(변경지대邊境地帶의 과학  183p).


[1] <앵무새>는 이를 [환상幻想의 민족사학이론民族史學理論으로 대치代置]하지만 저자著者의 책을 정독精讀해보면 필자筆者가 요약要約한대로 정반대의 입장을 일관一貫되게 설명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서적書籍을 눈에 들어오는 대목만 대충 읽거나 단장취의斷章取義하면 어떻게 되는지? 를 보여주는 아주...아주 모범적인 행동이다.



3. [이데올로기 혁명]이 가진 가공可恐할 기공할恐怖感 문제


[과학 혁명]과는 달리 새로운 세계관의 형성이라는 사회적 문화까지 바꾸는 [이데올로기 혁명]의 조건을 갖춘 이론은 단지 그런 색깔이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철저하게 저항抵抗을 받는다.   기존 집단의 [이데올로기적 면역체계免疫體系]가 자동自動으로 작동作動되기 때문이다.   이를 철학哲學에서는 [플랑크 현상]이라 한다.


바로 세계적으로 보편화普遍化 된 모든 이론들을 압도壓倒하거나 앞설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못한 까닭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현상이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패러다임은 이데올로기 혁명이다...과학 혁명은 확립된 이론이 새로운 이론에 의해 합리적으로 대치代置되는 과정이지만 이데올로기 혁명은 그것에 사회적 수용受容이라는 과학과 문화를 동시에 바꾸는 결과를 만든다.   <칼 포퍼>


학식 있고 지적知的이며 성공한 성인成人은 그들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전제前提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지식이 많을수록 또는 그가 믿는 이론의 근거가 튼튼하다고 생각할수록 이런 확신은 더 커진다.  


그러한 결과로 기존의 사상과 잘 맞지 않는 새로운 이론에 대한 면역免疫을 가지게 된다.    이데올로기적 면역체계免疫體系는 기존지식체계 속에 밀착되어 혁명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사회과학자社會科學者 제이Jay 스넬슨Snelson>


중요한 과학적 혁신革新은 적敵들을 조금씩 설득하면서 점진적漸進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敵들이 차츰 죽어 없어지고 다음 세대世代가 자라나서 이 아이디어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혁신革新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막스 플랑크*실험심리학자實驗心理學者 E. G 보링Boring도 같은 견해見解이다>


새로운 이론은 과학자들의 저항선抵抗線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이들의 저항抵抗은 논리적論理的 이유보다 이데올로기적 면역免疫때문이라고 본다.   <진화생물학자進化生物學者 에른스트ERNST 마이어Mayer>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 혁명]의 중심에 [민족사학民族史學]이라는 엄연한 실체實體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여러분들은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그리고 그렇게까지 편집증세偏執症勢까지 보이면서 경망스럽게 매달리고 있는지?  짐작하셨을 것이다.



제3장 진정한 과학과 의사과학疑寫科學의 경계-변경지대邊境地帶의 파라독스


필자筆者가 누누이 지적해왔듯이 한때는 [변경지대邊境地帶]에 있었으나 지금은 어엿하게 [진정한 과학]으로서 존재가치存在價値를 인정받은 많은 이론들이 있다.   이런 반면에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거나 좀 더 경계 바깥으로 밀려난 의사과학疑寫科學도 수두룩하다.   [변경지대邊境地帶 이론의 파라독스]가 생겨나는 것이다. 


저자著者가 이 점을 늘 명심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데에도 [앵무새]는 이런 경계점境界點도 무시하고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 [변경지대邊境地帶=의사과학疑寫科學=비非 과학=민족사학民族史學]이라고 핵심을 흐려놓았다.  


특히 이러한 <파라독스>의 강江에서 헤매지 않고 슬기롭게 넘기 위해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다음과 같은 대목을 언제나 명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例로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말이라면 무조건 경청敬聽한다.   왜 그럴까?   해답은 아래에 있다.



진리眞理 특히 [과학적 진리]를 판단할 때에는 증거證據에만 의존依存하며 누가 주장했는지? 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주장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누구를 알고 있는지? 가 논의論議의 일관성一貫性이나 증거의 질質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직함*신뢰성信賴性*명성名聲*사회적 지위*소속된 기관 등이 모두 수렴收斂되어 주장하는 사람의 타당성妥當性 여부 확인 과정을 구성하며 주장하는 견해見解의 타당성妥當性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변경지대邊境地帶의 과학  256p>



저자著者가 <변경지대邊境地帶의 파라독스>로서 예例를 든 이론理論은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精神分析理論과 <찰스 다윈>의 종鍾의 기원起源이라는 학설學說이다.   [파라독스]의 양兩 극極을 달렸던 두 이론 가운데 <프로이드>는 인간의 자아自我에 심리학적心理學的 충격을 준 혁명적 성과成果로 알려졌었지만 현재는 역사적 골동품으로 전락轉落했다.


반면에 <다윈>은 당대當代에 많은 비난非難과 찬사讚辭를 동시에 받았지만 살아남아 21C 생물학生物學 분야에서도 중요한 힘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변경지대邊境地帶의 이론들이 후대後代에 들어 [진정한 과학과 의사과학疑寫科學]으로 분리되는 [파라독스]를 신중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교훈敎訓을 준다.


[앵무새]는 이걸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 [변경지대邊境地帶=의사과학疑寫科學=비非 과학=민족사학民族史學]이라고 촛점을 흐려놓았다.   아무튼 의사과학疑寫科學과의 구획區劃 문제에 있어서의 절묘한 균형점均衡點을 찾는 처방處方으로 철학자哲學者 <칼 포퍼>는 [반증反證 가능성]을 들었다.


경험적經驗的으로는 결코 증명할 수 없지만 어떤 이론이 반증反證 가능하다면 경험과학經驗科學에 속한다.   다시 말해 저자著者는 어떤 과학체계科學體系가 완전히 옳다고 결정할 수 있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실험적인 증거로 반증가능反證可能한 논리적論理的인 형태만큼은 갖추고 있기를 요구한다.   경험적인 과학체계는 경험에 의해 반박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변경지대邊境地帶의 과학  292P).


[민족사학民族史學]은 철문鐵門으로 꽉 닫힌 [변종사학變種史學]과는 달리 언제나 반증가능反證可能의 문門이 열려있으며 항상 반증가능反證可能한 논리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속속 드러나는 고고학적考古學的 유물遺物과 고전古典에 의해 더욱 정교精巧한 이론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진화론進化論]도 자연自然에서 재현再現하거나 관찰觀察하거나 실험實驗할 수 없지만 화석化石의 존재로서 반증反證의 문門을 열어둔다는 이치理致와 같다.


<칼 세이건>에 의해 미치광이 짓 취급을 받던 이론에서 과학의 반열班列에 올라선 SETI(외계外界 지성탐사知性探査 프로그램)가 지금도 신호추적信號追跡을 계속하는 논리적 이유는 <우주는 너무나 크고 우리는 이제 막 탐사探査를 시작했다>는 간단한 사실이 인정된 까닭이다.



아무리 많은 백조가 흰 색이어도 모든 백조가 희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칼 포퍼>


갈등葛藤하는 두 요구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均衡을 찾아야 한다.   모든 가설假說에 대한 회의적懷疑的인 조사는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봉사奉仕를 해왔지만 동시에 이제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관대寬大하게 대해야 한다.   회의적懷疑的인 자세만을 고집하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반면에 회의론적懷疑論的인 감각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모든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면 좋은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별할 수 없다.   모든 아이디어가 좋아 보인다면 당신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경우는 모든 아이디어가 다 잘못되었다는 표시表示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



제4장  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에서 진정한 과학으로 가는 지름길 - 천재성天才性과 혁명성革命性의 조화調和


저자著者는 과학의 영역領域을 [과학-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비非 과학]으로 확실하게 구분해주고 있으며 <진정한 과학과 비非 과학의 파라독스>라는 속성屬性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경계境界를 변경지대邊境地帶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에서 후일後日 [진정한 과학]으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갈릴레오의 지동설地動說>과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뉴턴의 미분이론微分理論>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이 탄생했으며 그렇지 않은 <점성술占星術>과 <UFO 가설假說>과 <영매靈媒와 초능력이론超能力理論> 들이 결국 비非 과학의 분야로 떨어졌다고 역설力說한다.


사건事件들에 관한 진정한 [통찰通察]과 문제의식에 대한 [직관直觀]과 그 무엇인가에 대한 신선한 [느낌]을 얻는 과정은 과학의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이다.


이로서 다른 사람들이 유지하고 있는 단순한 지식의 답습踏襲이나 믿음집착이 아니라 진정한 문제해결능력을 기본으로 삼아 의문疑問을 풀어나갈 때 사람들은 더 존경하고 가설假說은 진실성을 획득한다(심리학자心理學者 제임스James 그리노Greeno  1980).


 

어두운 방은 지식의 여명黎明으로 서서히 밝아지는 것이지 스위치를 켠 것처럼 갑자기 밝아지지 않는다.   <과학의 변경지대  349p>


...과학자가 어떻게 일하는지 사고思考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과학과 사고과정思考過程에 대한 통찰通察은 [과학-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비非 과학]의 차이를 탐구探究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르려면 창조적 천재성과 문제를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학의 변경지대  350p>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야 하며 그 가운데에서 나쁜 것을 버려야 한다...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그 중에서 선택하는 어떤 기준을 가지자 않는다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다.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



바로 민족사학자民族史學者들이 새로운 눈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면서 기존의 무결점주의無缺點主義에서 벗어나 마지막 선택의 과정을 거쳐 나름대로의 가설假說을 정립定立하는 혁명적이고 선명한 방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음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가장 좋은 모범인 <다윈>의 창조적 천재성이 어떤 특징에서 기인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진정한 과학]으로 올라섰는지? 를 <사회과학자社會科學者 프랭크 셜로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1)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기꺼이 권위(權威-창조론의 무수정주의無修正主義)에 도전했다.


2) 반대 증거에도 관심이 많아 <종種의 기원起源>이란 이론에 <이론의 난점難點>이란 장章을 별도로 넣어 이 때문에 적敵들은 그가 생각해보지 않은 반대의견을 내놓기 어려웠다.


3)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연구를 공유共有했는데 14000점이나 되는 편지가 모두 과학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대화였다.


5) 끊임없이 질문하고 항상 배웠으며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만큼 충분한 확신이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겸손함을 결코 잃지 않았다.



이렇듯이 [변경지대이론邊境地帶理論의 파라독스]를 벗어나 <진정한 과학>으로 인정을 받기위한 한 가지 조건이 [천재성과 아이디어]인데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바탕으로서 다시 다음의 연구 자세를 <마이클 셔머>는 관련 서적書籍들을 종합하여 덧붙인다.



1) 그 분야에서 풀어야 할 문제問題에 민감敏感하고 중요하지 않거나 풀 수 없는 것들은 무시無視 한다.


2) 그 주제에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배우고 기술이 관련되어 있으면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3) 그 분야의 지식과 전문가를 존중하지만 누구든 어떤 것에 대해서든 도전挑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역聖域은 없다.


4) 오래된 문제를 푸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본다.   상자(기존의 틀) 밖에서 생각한다.   망신당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들이 나의 사고思考를 지배하지 못하게 한다.


5) 그 분야의 다른 사람들과 새 아이디어에 대해 대화한다.   고립孤立된 지성知性은 죽는다.   낡은 아이디어를 새롭게 구성하는 계기契機는 외부에서 온다.


6) 계속해서 여러 가지 창조적創造的 산물産物을 만들어서 문화적 시장에서 자생력自生力이 있을 만한 것을 골라낸다. 



내가 상대성이론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내 사고思考에 동기動機를 준 수많은 복잡성이 있고 각 사고思考의 충격은 아이디어 발전의 단계마다 달랐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오로지 여러 해에 걸친 고된 수집과 집중적인 사색思索 끝에 온다.   <마이클 셔머>


나는 주제主題를 끈질기게 가지고 있으면서 서서히 먼 동이 트기를 기다린다.   조금씩 조금씩 밝아져서 방안 가득히 환한 빛이 들어온다.   <아이작 뉴턴-Westfall  1980년 저서>



위 글을 잘 살펴보면 이단異端으로 취급되던 과학들이 어떻게 <변경지대邊境地帶의 파라독스>를 벗어나 [정상과학]으로 바뀌는지?   그런 가설假說들이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지? 를 아주 잘 말해준다.


여기에서 기존의 학설學說과 새로운 가설假說을 지지支持하는 쪽의 입장이 갈라지는데 가령 어떤 문제에 관한 아이디어가 동일하다고 보고 오직 한 쪽만이 첫 발견을 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어떤 현상現像에 대한 [발견과 설명]을 모두 필요로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똑같은 현상現像을 [발견]을 할 수도 있지만 각자各自가 똑같은 [설명]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진화론進化論을 완성한 <다윈과 월리스>의 경우처럼 비슷하게 보완적補完的이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는데


그들은 서로 편지와 논문論文과 책을 통한 수많은 지적知的인 대화對話로 서로에게 지식知識과 이론理論 양쪽에서 자극했고 둘 다에게 이득利得이 되어 이윽고 공동발견자共同發見者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해 [역사적인 발전]은 한 개인만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게 아니라 아이디어에서 나온 그 다음 행동에서 보여준 탐구探究 방식의 건전성健全性이라고 말해줌으로서 역사적 흐름에서 개인 하나하나 생각의 지평地平에 대한 자유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역사논쟁歷史論爭에 적용된다.



어떤 사람도 그에게 떠오른 아이디어 때문에 칭송稱頌받거나 비난非難받아서는 안 되며 그 후의 행동들에 의하여 평가平價받아야 한다...새로운 아이디어가 옳다고 해도 끈질긴 사색思索과 연구과정을 통해서만 채택採擇되고 유용有用해진다.   이것이 옳지 않거나 적절히 소개紹介되지 않으면 (본의本意아니게) 거부拒否되어 잊혀진다.   <알프레드 월리스>



바로 이것이 과학과 역사의 본질本質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새로운 혁명적 이론이 등장하면 감정이 개입된 가운데 가설假說이 편견偏見으로 물들고 서로가 편견偏見으로 가득 찬 비난非難의 화살로 뒤덮인다.



1) 역사논쟁歷史論爭의 문제도 과학에서처럼 인류人類와 자연생명체自然生命體들의 진화논쟁進化論爭 [1]과 같이 다양하며 서로 대립對立되어 있다.


[1] 생명은 서서히 아니면 급작스럽게 진화進化하는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進化하는가? 아니면 단지 처음보다 더 단순해질 수 없기에 계속 복잡해지는가?   모든 인류는 한 장소에서 나타나 세계 모든 곳으로 퍼졌는가? (아프리카 기원설起源說)  아니면 여러 집단이 각지各地에 흩어진 뒤 따로 진화進化했는가? (칸델레브라 가설假說) 등의 문제를 말한다.


2) 따라서 둘 사이의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입장의 우열優劣에 따라 어느 게 그 시대의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고 고수固守되느냐? 의 차이 뿐이다. 



[앵무새]와 추종자追從者들은 이런 근본적인 학술적學術的 이외의 갈등葛藤을 놓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만이라도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과연 기존의 학술적學術的인 결론이 경험적 증거에 의하여 변경되는가?  아니면 현재의 유력有力한 입장에 따라 증거에 대한 해석들이 달라지는가? 이다.   이는 과학철학科學哲學 뿐 아니라 역사이론歷史理論의 수렴收斂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제 결론結論을 내려야겠다.   [민족사학民族史學]은 수많은 분야의 더욱 많은 증거證據들이 넘치며 너무나 방대尨大하기 때문에 이를 흔들기 위해서는 [앵무새]들과 같은 경솔한 장난보다 이러한 많은 증거證據와 논거論據들을 더 잘 설명하고 비판批判하는 이론체계理論體系와 매커니즘을 세워야 한다.


[역사문제]에 있어서도 인간人間은 의미 있는 이야기로 끼워 맞출 수 있는 패턴들을 끊임없이 탐색探索한다.   패턴을 발견하고 거기에 맞추어 이야기를 만들고 나면 또 다시 이를 확인하는 증거證據들을 찾고 일치一致하지 않은 것들은 그 과정에서 과감하게 버린다.  


이것이야 말로 [확인의 편견偏見]을 제어制御하는 지름길이며 [비판적 사고思考]에 행여 끼어들어갈지 모를 선입관先入觀에 의한 결함缺陷을 없애는 가장 강력한 [설명 모델]을 확립하는 최선最善의 대안代案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인지체계認知體系는 너무나 완고해서 자신이 속한 문화배경에서 벗어날 가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벗어날 사람은 드믄 예외例外이기에 이제부터라도 [믿음집착]의 좋지 않은 배설물排泄物인 맹신盲信을 버리고 냉정하게 따져서 공정公正한 [역사적 진실眞實]을 가려내는 일을 하루바삐 성취成就해야 한다. 



마지막 장章  사족蛇足 -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한마디


저자著者는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를 설명하면서 <과학은 늘 미지未知의 영역領域을 탐구探究하기 때문에 과학과 비非 과학의 경계境界는 그렇게 명료明瞭하지 않다>


<과학과 비非 과학 사이에는 근거根據가 약한 주장과 과감한 추측이 또는 낡은 지식과 새로운 가설假說이 끊임없이 충돌衝突하는 영역領域이 존재한다.   바로 이 점이지대漸移地帶가『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이다>는 대전제大前提를 깔아놓는다.


그런 다음 이렇게 정의正義한다.   <이 지식知識들은 완전히 인정받은 정상과학도 아니고 완전히 엉터리인 비非 과학도 아니다.   다만 앞으로 밝혀질 증거에 따라 그 운명運命이 결정될 것이다>  


즉 <마이클 셔머>는 책 속에서 많은 사례事例를 통해 현재 과학의 영토領土 안에 확실하게 들어와 있는 이론들도 한 때는 비非 과학이나 변경지대邊境地帶에 있었으며 반대로 과학의 영역에 있었던 학설學說들이 변경지대邊境地帶나 비非 과학으로 밀려나기도 하였다. 는 사실을 매우 명쾌하게 증명해준다.


또한 저자著者의 일관一貫된 입장은 <비非 과학은 가차 없이 공격하지만 변경지대 과학에 대해서는 꼭 그렇게 적대적敵對的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정상과학(기존학설旣存學說)만으로는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없을 때가 있으니


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지식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자세 자체가 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을 정상과학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라는 결론이다.  


그런데도 [앵무새]는 또 다시 <마이클 셔머>의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라는 책을 전체적으로 통독通讀하여 흐름을 이해하려하지 않고 그저 뒤적이다가 선뜻 눈에 들어오는 부분만 찢어 붙이기를 하여


[변경지대邊境地帶 과학=비非 과학=의사과학疑寫科學=유사과학類似科學=민족사학民族史學]로 유사비유類似比喩를 하는 망발妄發을 저질렀다.   그야말로 <정인보鄭寅普> 선생이 그토록 분노憤怒를 표명表明한 말을 빌리자면 [천인賤人의 망필妄筆]이 따로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현주소現住所를 반성하게 하는 좋은 금언金言 하나로 이 글을 맺는다.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역사가歷史家는 공감적共感的 이해理解를 가지고 옛 사람들의 사고思考*관찰觀察*실험實驗에 접근해야 한다.   역사가는 그가 연구하는 시대 이후에 알려진 것들을 잊어버릴 만큼 강력한 상상력想像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현대의 독자讀者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또한 역사가 그저 골동품 취미가 아닌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가는 과거의 견해들을 실재實在하는 것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한다.   <네덜란드 과학사가科學史家 후이카스 R. Hooykaas  1970> 

 

 

 

정말 심각한 변종사학이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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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들은 고구려사를 부정하고 임나일본부설을 찬양하는 우리 민족사를 뿌리째 흔드는 내용을 적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