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3. 30. 20:39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 반론反論 시리즈 제3부]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민족사학民族史學]이라는 환상幻想 - 변종사학變種史學과 이상한 나라의 앵무새들



이 글은 [변종사학變種史學과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된다.   그러므로 그동안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 논쟁論爭의 기본 사료史料로서 [앵무새]가 채용採用한 [사이비 사이언스*과학의 변경지대*사이비역사학의 탄생]이란 저서著書들을 종합하여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導出해낼 것이다.



제1장  서론序論


저자著者가 부제副題로 삼은 [잘못된 역사False History나 가짜 과학Fake Science 또는 유사종교類似宗敎Pseudo-Religions]라는 정의正義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왜 이런 영역領域이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까?   어째서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은 이 말에 그토록 목을 매달고 있을까?   과도過度한 자기방어自己防禦이었을까?   아니면 자기기만自己欺瞞일까?  


아무튼 세 종류의 책을 모두 정독精讀하여 보면 이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란 괴물怪物의 원초적原初的 탄생誕生은 얼마간은 목적적目的的이며 등장 자체도 매우 극적劇的임을 일견一見한다.   그 밑바닥에는 아래와 같은 출현 배경의 특수성이 가지런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1) 어떠한 역사적 사건의 필연성必然性을 대중적으로 선전宣傳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결집結集 시키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나 계급적 이익에 봉사하기 위할 때이다.



남북전쟁南北戰爭의 근본적인 발생원인(신흥新興 공업지대 주도세력의 기존 농업기반의 지주층地主層을 흡수통합吸收統合하는 완전한 아메리카 건설)을 희석稀釋하는데 지대至大한 공헌貢獻을 한 [음모론]으로서


<남부 노예제奴隸制 옹호擁護 세력이 시민의 기본권을 말살抹殺하고 북부 백인白人들마저 노예奴隸로 삼으려 한다*북부 공화당원共和黨員들이 급진적 노예제奴隸制 폐지론자廢止論者와 손잡고 노예奴隸의 대중봉기大衆蜂起를 일으켜 남부 백인白人들을 다 죽여 버리려고 한다. 는 허구적虛構的 믿음의 일반적인 확산擴散>이다.



2) 인종적人種的 지배야욕支配野慾이 강하게 작용할 때나 현재의 지배민족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 확보나 면죄부免罪符를 주기 위한 이론적理論的인 근거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을 때이다.



미국美國의 지배세력인 백인白人들의 통치統治는 [정복征服이 아니라 회복回復]이라는 견지見地에서 만들어낸 <언덕조성종족mound-builders의 신화神話>와 [1] 유럽 인人들의 최초 발견 및 이주정착移住定着 유형類型들이 대표적아다.   아울러 유럽중심주의를 뒷받침한 인종주의人種主義와 기독교정통론基督敎正統論이 좋은 표본이다.


[1] 미국 동부 전역全域에 흩어져 있는 주거住居나 매장埋葬 또는 의식용儀式用 언덕들은 원래 선사시대先史時代에 백인白人들이 건설했는데 붉은 인디언들이 침략해 비극적으로 사라졌으며 후일 백인白人들이 원주민原住民들의 땅을 빼앗은 행위는 정당한 권리의 회복이라는 설득력 있는 논리論理를 제공한다.   이와 비슷한 웨일스 공公 <매독>과 이스라엘의 사라진 10 지파支派나 고대古代 히브리 인人들의 도래설渡來說도 마찬가지이다.



3) 자신의 치부恥部와 약점弱點 또는 과거의 죄상罪狀을 감추거나 앞으로의 비타협적인 행동을 비호庇護하기 위한 이론적인 기반제공基盤提供과 대중적인 선동煽動이나 세뇌洗腦를 합리화合理化할 목적이 작용할 때이다.



홀로코스트(Holocaust-나치에 의한 유태인 대학살大虐殺)를 부정否定하는 이론과 아리안민족의 우월주의優越主義가 가장 대표적인데 이란 민병대民兵隊를 비롯한 중동지역中東地域에서 극도로 변질(變質-인종주의人種主義*종교적 광신주의狂信主義*민족적극단주의民族的極端主義 등)되었다.


우리 역사의 경우 기존 학설學說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처음부터 지배세력(북방은 한족漢族*남부는 일본日本)의 선진문화先進文化 수용受用이라는 은혜恩惠로 말미암은 국가형성이론國家形成理論 이 있다.   이를 밀어주는 바탕으로서 아래와 같이 충실하게 기여寄與한 [변종사학變種史學]의 학술적學術的인 논리구조論理構造 자체가 그 모범이다.



❶ 청동기靑銅器 기원상한起源上限 7C와 연결한 초기국가형성조건론初期國家形成條件論


❷ 단군檀君과 고조선古朝鮮 신화설神話說 및 반도조선론半島朝鮮論을 한사군반도설漢四郡半島說과 연계連繫시켜 만들어낸 태생적胎生的 피지배민족이론彼支配民族理論


❸ 삼한정통론三韓正統論만 고수固守하면서 이를 남방계열南方系列 부족사회部族社會 한민족주류형성론韓民族主流形成論으로 발전시켜 일제日帝의 남선경영南鮮經營과 지배당위론支配當爲論을 인정하는 수단으로 활용



저자著者는 또 [사이비 역사]가 판을 칠 때 가장 효과적인 대처對處는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올바르거나 의심스런 주장이든 막론하고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정체正體와 배후背後의 의도를 꿰뚫을 수 있어야만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사이비역사학]이라는 전통사학傳統史學이 주장하고 있던 고정관념固定觀念을 신봉信奉하는 일방적인 기술태도記述態度도 보이고 있는 점이 조금 아쉽다.   비판批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가作家의 [객관성客觀性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개인個人이 역사나 과학에서 진실과 거짓 그리고 사실과 허위虛僞를 구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척도尺度는 [증거]이며 이를 분석*평가하는데 있어 특히 다음과 같은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1)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방법을 사용했는가?

2) 편견偏見이나 선입견先入見없이 보았는가?

3) 증거를 선별적選別的으로 채택採擇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위와 같은 발생원인과 판별기준判別基準에 대응對應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質問]을 던져 스스로의 입장을 명확하게 평가平價해 보아야 앞으로 전개될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 논의論議에 제대로 배운 첫 걸음마를 뗄 수 있다.   따라서 이 질문들은 아주 공정하게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1) 사심私心없이 논의論議의 주제主題를 다루었다고 자신하는가?  


[민족사학民族史學의 경우]    아무도 모른다!

[변종사학變種史學의 경우]    누구도 모른다!


2) 주장하는 학설學說은 얼마든지 [반증反證의 문門]이 열려있으며 새로운 사실들의 발견과 입증立證 가능한 견해見解들이 나타나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민족사학民族史學의 경우]    그렇다!

[변종사학變種史學의 경우]    아니다!


3)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의견은 무시無視하고 자기의 주장을 강화해주는 증거만을 채용採用하는가?


[민족사학民族史學의 경우]    아니다!

[변종사학變種史學의 경우]    그렇다!


4) 의문疑問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입수入手가 가능한 증거證據들을 두루 찾으려고 노력하며 다양하고 복잡한 사료史料들을 정리하여 해석解釋과 검증檢證을 시도하려고 애쓰는가?   


[민족사학民族史學의 경우]    그렇다!

[변종사학變種史學의 경우]    아니다!



과연 냉정한 안목眼目과 공정한 관점觀點으로 살펴보았을 때 정말로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범주範疇에 들어갈까?   아니면 [변종사학變種史學]이 더 많은 포함요소包含要素를 지니고 있을까?   그렇게도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라는 간판에 애착愛着이 간다면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이니 신중하게 결정해주길 바란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 대목에 이르러 [로널드Ronald 프리츠Fritze가 저술著述한 사이비 역사의 탄생 Invented Knowledge]과 <마이클 셔먼이 쓴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와의 견해見解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세상에서 주도主導하고 있는 역사적인 관념觀念을 제외한 가설假說들이 모두 비역사적*비과학적*비이성적이라고 보는 <로널드 프리츠>와는 달리 <셔먼>은 이러한 단정斷定을 경계警戒할 것을 환기換氣시키면서


과거의 역사적 과정을 통찰通察해보면 명백하게 [역사와 비非 역사] 사이에 모호한 경계지대境界地帶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계지대境界地帶=의사과학疑寫科學이나 과학과 비과학非科學]을 가르는 아래와 같은 잣대를 정확히 잡고 직시直視해줄 것을 요구한다.



1) 어떤 것이 맞고 어느 게 엉터리인지? 어떻게 아는가?


2) 어떻게 과학(역사를 그대로 대입代入해도 좋다)과 의사과학疑寫科學 또는 과학과 비과학非科學의 차이를 말할 수 있는가?


3) 현실과 환상幻想 그리고 사실과 허구虛構를 언제나 명료明瞭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런 판단들이 선행先行되어야 하는 과정이 정확한 [경계영역境界領域]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역설力說하는데 이렇게 모호한 곳에서 길을 잃지 않는 핵심核心 기준을 찾는 해답이 바로 [경계문제와 퍼지 논리論理-제21n에서 이미 설명하였다]라는 이야기이다.   이걸 빼먹으면 어떡하나!   왜 그랬을까?


<마이클 셔머>는 왜 이런 단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를 아주 쉽게 예例를 들어 [X 파일]에서 부국장副局長인 <스키너>가 극적劇的인 어조語調로 다음과 같이 낭독朗讀하면서 시작하는 부분으로 이유를 대신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물事物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기존의 역사 가설假說이라고 대입代入해보자)과 다릅니다.   <X 화일에서>



이 말의 의미를 굳이 더 풀어준다면 <사물事物이 생각하는 것과 늘 다른 까닭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예 와 아니오 로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흑백세상黑白世上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경계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를 분명하게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라고 규정하면서 오늘날 많은 [진정한 과학]도 이 영역領域에 있다가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과학으로 탈바꿈했다고 역설力說한다.   이를 [역사학]에 그대로 도입導入하면 분명하게도 [민족사학民族史學]은 바로 이 지대에 속해있다.


그러므로 [앵무새]가 그 책을 인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널드 프리츠>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경지대邊境地帶 개념을 구태여 외면하면서 <로널드 프리츠>의 의견만을 좇아 <민족사학民族史學>을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범위範圍에 넣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  


한마디로 분석이 객관적이고 경험적經驗的이지도 않으며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주는 증거만을 선별적選別的으로 선택하는 <프리츠>의 유사역사학이론類似歷史學理論을 스스로 충실하게 따르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프리츠> 역시 과거에 전통적인 학설學說로 인정되던 이론들이 지금은 비과학적非科學的인 분야로 전락轉落하면서 그동안 변경지대邊境地帶에 있던 이설異說이 [정직한 과학]으로 자리바꿈을 하는 현상에 주목하여


어떠한 규범적規範的인 논리구조와 이론전개 모형模型을 갖추고 있으면서 아직은 증명되지 못한 학설(學說-민족사학民族史學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에 대해서는 함부로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라는 잣대를 사용하지 말 것을 행간行間에 의미를 넣어 역설적逆說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중세中世에는 지구중심설地球中心說이 정통적正統的 세계관이며 주류主流 지식의 일부였다.   요즘 그런 이론을 학문적으로 치장治粧해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이비학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사이비역사의 탄생  16p>



즉 사이비역사가와 학자들의 문제로서 이제는 [명백하게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진] 철 지난 옛날 연구(아틀란티스 대륙 실재설實在說을 예例로 든다)를 이론의 기초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매듭짓는다.


그렇지만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주장하는 논제論題들 가운데에서는 이미 정설定說로 받아들여 교과서에 수정修正되어 삽입揷入한 부분(청동기 10C설*고조선의 존재 인정 등)도 있고 아직도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은 쟁점爭點들도 상당하다.  


또한 <아틀란티스 설說>과 같은 이미 폐기廢棄된 학설學說을 논거論據의 바탕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앵무새]가 만일에 <프리츠>의 주장에 따라 [민족사학民族史學=사이비역사학]이라고 판단하였다면 크게 잘못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와는 달리 [변종사학계變種史學界]에서는 벌써 잘못된 걸로 판명判明된 주장(위의 청동기상한설靑銅器上限說 등)들을 심심하면 끄집어내어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지저귄다.   <프리츠>가 지하地下에서라도 알게 되면 정말로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인간은 역사의 동물로서 자신의 과거에 극히 민감하다.   따라서 인간은 과거를 솔직하고 진실한 역사로 담아내지 못하면 애매하고도 거짓된 역사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조프리Geoffrey 배러클러프Barraclough  History in the Changing World  1956  24p-25p>



제1장  역사학의 경계지대에서 본 사이비역사학



<프리츠>는 [사이비역사학과 사이비과학]이 근대近代 이후에 나타난 산물産物이라고 단언斷言한다.   이는 앞서 말한 사회적 현상과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대중성大衆性의 욕구欲求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간 지식의 확장擴張과 자유로운 사상활동思想活動의 폭넓은 해방 그리고 새로운 경험적 탐구기법探究技法과 과학적 보조수단補助手段의 발달은 물론 많은 고고학적考古學的인 성취물成就物과 이에 대한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확산은 이윽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主導하는 [역사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를 형성해주는 주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과학에서의 경우처럼 [패러다임의 혁명]이 급속도로 진전進展되는 가운데 기존旣存의 학설學說이 새로운 가설假說로 대치代置되는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고대사古代史에 있어서도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 현실화되기 시작한다.   이에 편승便乘하여 활발해진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에 대한 정의正義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 신화神話냐?  전설傳說이냐?


저자著者는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을 결정짓는 조건으로 [전설傳說과 신화神話][1]를 곧잘 뒤섞는 경향을 언급한다.   그리고 [변종사학계變種史學界]는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신화적神話的 요소要素를 포함했다는 이유로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으로 단정斷定한다.   과연 그럴까?


[1] 신화神話는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조건 그리고 정신적 측면側面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가공架空의 장치이다.   반면 전설傳說은 실제 역사적인 사건에 기반을 둔 과거의 이야기이다.



1) 단군檀君의 이야기나 환국桓國과 고조선古朝鮮의 존재는 고래古來로부터 우리민족의 시조始祖나 시국처始國處로서 변함없이 알려진 정체성正體性을 지닌 전설적傳說的인 인물人物과 원향原鄕으로서 신앙信仰되어왔고 때문에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고기古記를 인용引用하면서까지 환국桓國의 기록을 남길 만큼 각인刻印되어왔다.


2) 또한 이야기 구조나 내용의 형식을 보아도 대부분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서술敍述이 돋보이며 다른 신화神話들의 기술記述처럼 불투명하고 비유적比喩的인 요소가 아주 적다.


3) 이를 [신화神話]로서 색칠하고 제 마음대로 규정하여 못을 박은 세력이 바로 일제시대日帝時代 관변사학자官辨史學者들로서 이 같이 왜곡歪曲시킨 내용을 여러 논문論文을 통해서 발표하고 학술지學術誌 등에 게재하여 그렇게 믿도록 강요하였다.


4) 해방 후에도 [무수정주의無修正主義]를 원칙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비극적悲劇的으로 고착固着시키면서 최근 국정교과서國定敎科書의 개정改正 무렵까지 더욱 대중화大衆化시키는데 앞장선 [변종사학계變種史學界]는 할 말이 없다.


5) 이렇게 정작 일은 자신들이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는 엉뚱하게도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되어 신화神話이니 믿을 수가 없으며 그래서 이를 추종追從하는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란다.   정신이 돌아도 단단히 돌았다.



여기에서 앞서의 판별기준判別基準에 관한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민족사학民族史學]에서는 지금까지 결코 신화神話로 인정한 적이 없는가?   [그렇다].   그래서 단군檀君과 환국桓國의 전설傳說에 대한 실재성實在性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가?   [그렇다]!


[변종사학變種史學]에서는 지금도 신화神話로 인정한 일제日帝 당시의 견해를 따르고 있는가?   [그렇다]!   현재 국정교과서國定敎科書에 부분수정部分修正되어 수록收錄된 내용을 인정하는가?   [아니다]!    앞으로는 과거로부터 전해진 기존학설旣存學說을 버릴 것인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단군檀君과 환국桓國은 신화神話인가?   [아무도 모른다]!   신화神話임이 증명되어 확정적으로 폐기廢棄되었는가?   [아니다].    단군檀君과 환국桓國은 실재實在하였는가?   [누구도 모르지만 개연성蓋然性은 있다]!   앞으로 증명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가설假說들은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 아니라 <역사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에서 앞으로 [정직한 역사학설歷史學說]로서 도약跳躍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이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변종사학계變種史學界]는 또 한번 제 꼬리를 물었다.



2. 가능성可能性인가?  개연성蓋然性인가?



[가능성可能性]은 복권 당첨처럼 일어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희박稀薄한 것이고 [개연성蓋然性]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능성可能性을 개연성蓋然性으로 확대하여 구분을 흐리는 집단을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라고 규정한다.



1) 단군檀君과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실재성實在性과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만주滿洲와 요수遼水 지역 존재 그리고 한사군漢四郡의 진실한 위치 등은 많은 관련 사서史書들의 분석 결과와 고고학적考古學的 발굴發掘 성과로 [개연성蓋然性 추정推定]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2) 따라서 오히려 [변종사학變種史學]이 주장하는 같은 논제論題들이 지금에 와서는 하나씩 <가능성可能性의 개연성蓋然性 확신確信 오류誤謬>라는 칼날을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규정된 방법론에 의한다면 이 가설假說들 가운데 [변종사학變種史學]은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영역으로 떨어질 것이며 [민족사학民族史學]은 <역사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에서 앞으로 [정직한 역사학설歷史學說]로서 도약跳躍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변종사학계變種史學界]는 또 한번 제 다리를 찍었다.



3. 기본적인 사실에 관한 논쟁論爭이냐?  지엽적枝葉的인 문제問題에 대한 공방攻防이냐?



역사학자들끼리의 공방攻防은 대개 실제로 일어난 사실은 인정하면서 사건의 의미나 수준과 영향에 관한 의문점疑問點에 초점을 맞추지만 [유사역사학자類似歷史學者]와의 논쟁論爭은 근본적으로 그런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 의 의견 차이라는 관점觀點이다.



1) 정말로 그렇다면 [과학의 변경지대邊境地帶]에서 논論한 바와 같이 <진정한 과학>으로 올라선 새로운 가설假說이나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으로 대응對應시킨 비非 과학이나 의사과학疑寫科學>으로 떨어진 기존학설旣存學說과의 상호관계정립은 어떻게 할 것인가?(천동설天動說과 지동설地動說*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창조론創造論과 진화론進化論 등)  


2) 역사의 영역에서도 그렇다.   <청동기靑銅器 문제>를 예例로 들어보자.   양쪽 모두 청동기의 사용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 시기가 BC 23C를 넘어가느냐?  BC 10C 또는 7C이냐? 의 대립對立이다.   



결국 답은 나왔다.   [변종사학變種史學]에서 기왕에 <로널드 프리츠>의 기준을 따랐으니 [민족사학民族史學]과의 공방攻防은 위의 기준에 비추어볼 때 역사학자끼리의 논쟁論爭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 1)과 같은 문제가 남았는데


<과학>의 영역領域에서는 부딪치는 1)과 같은 모호한 경계境界를 해소解消하기 위해 [변경지대邊境地帶]라는 관념觀念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는 역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변종사학變種史學]은 다시 한번 다람쥐 체 바퀴를 돌리고 말았다.



4. 집착執着이냐?  왜곡歪曲이냐?



[사이비역사학자]들은 이제 유효有效하지 않은 연구와 사상思想에 집착執着하거나 과학 이론들을 납득할 수 없는 수준으로 왜곡歪曲한다는 특징을 들고 있다.  다수의 증거들이 말해 주는 바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하고 많은 자료 가운데 하필 예외적인 것에만 주목한다.

 


1) [변종사학變種史學]의 <믿음집착>에 관해서는 필자筆者가 <제2부>에서 자세하게 밝혀주었다.   지금도 파도에 씻기는 모래알처럼 하나하나 부셔져 떨어져나가는 과거의 이론들에 대해 [무결점무수정주의無缺點無修正主義]를 완고하게 수호守護하면서 과잉집착過剩執着을 보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2) 왜곡歪曲의 문제는 [공정성公正性의 질문과 허수아비의 오류誤謬]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어차피 코끼리 다리를 더듬은 사람들에게 조언助言은 또 다른 트집과 왜곡歪曲을 낳는다.



이외에 저자著者는 몇 가지를 덧붙이는데  ❶ 자기 주제主題에 푹 빠져 다른 얘기는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❷ 방법론적으로 편견偏見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라는 것이다.   허나 이는 정도의 차이이지 누가 누구를 헐뜯을 문제는 아니다.   결국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내가 편견偏見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부끄러울 일이다.   <마크 트웨인>



제2장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 사례연구事例硏究



이 장章은 <로널드Ronald 프리츠Fritze>가 서론序論에 이어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정통사례正統事例로 보이는 가설假說들을 예시例示로 들면서 분석의 초점으로 삼은 부분이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살펴가면서


[변종사학變種史學]이 제목題目만 훑어보고 [민족사학民族史學]을 이에 대응對應시켜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으로 매도罵倒한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경거망동輕擧妄動이었는지? 를 알려줄 것이다.  



1. 아틀란티스의 망령亡靈


근원根源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aeus-크리티아스Critias] 대화편對話篇에서 나와 AD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절정絶頂에 달한 가설假說로 저자著者가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 의 어머니]로 명명命名했다.   <아틀란티스 가설假說>이 다시 거론擧論된 이유는 무엇일까?



1) 아메리카를 발견했던 중세中世 시기의 세계관世界觀은 [유대교-기독교基督敎와 그리스-로마 계열系列]의 혼합混合이었다.   이에 따르면 세계는 3개의 대륙(아프리카-아시아-유럽) 뿐이며 각각 <노아>의 세 아들(함*셈*야페테 즉 야벳)에서 나온 자손子孫들이 거주居住했어야 했다.   이들의 선조先祖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최초의 인간人間인 <아담>과 연결된다.   그야말로 수정修正할 수 없는 완전한 세계관이었다.


2) 허나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이런 생각에 직격탄을 맞았다.   첫째로 이들의 세계관에 남북 아메리카란 대륙이 홀연히 등장했으며  둘째로 그곳엔 <노아나 아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제 3의 인간집단]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3) 문제가 생기면 풀어야 한다.   이 때부터 17C에 이르기까지 [종교적宗敎的으로는 유대교-기독교基督敎와 인종적人種的으로는 그리스-로마 계열系列]과는 전혀 다른 지리적地理的 발견과 새로운 종족種族을 연결시키기 위한 많은 이론들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지지支持를 받으면서 정설定說로서 인정된 것이 바로 <그리스-로마 계系> 현인賢人으로 추앙推仰받는 <플라톤>의 대화편對話篇을 기억하고 재빨리 끌어낸 [아틀란티스 가설假說] [1]이다.


[1] 이 가설假說의 주장자主張者들은 AD 1553  프란시스코 로페즈 데 고마라 ➡ AD 1555 아우구스틴 데 자라테 ➡ AD 1572  페드로 사르미엔토 데 감보아 ➡ AD 1580  영구각자 존 디 ➡ AD 1600  영국 지리학자 리쳐드 해클루트 ➡ AD 1607  도미니크수도회의 그레고리오 가르시아 ➡ AD 1610  프란시스 베이컨 ➡ AD 1729  스페인 역사가 안드레스 곤살레스 데 바르시아 로 이어진다.


4) 가설假說의 주요 핵심은 이렇다.   ❶ 아틀란티스 대륙이 침몰沈沒했을 때 난민難民들이  배를 타고 대륙으로 건너가 정착定着했다.  ❷ 아틀란티스 인人들은 <페루>에 진출했으며 이 제국帝國과 전쟁을 벌인 그리스의 율리시즈 함대艦隊 선원船員들이(?) 멕시코 만灣에 상륙했다. 



이제 여러분들은 왜 필자筆者가 이 글의 서두序頭에서 [유사역사類似歷史]라는 가설假說들이 언제 어느 때 출현出現하고 있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구태여 설명한 뜻을 잘 이해하실 것이다.



[결론結論을 겸하여]


그런데 거대巨大 범선帆船들이 등장한 그 무렵에도 대양大洋을 건넌다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위험한 모험이었는데 <플라톤>이 살던 시기보다 한참 오래전의 전설시대傳說時代에 과연 그런 항해航海가 가능했을까?   


아울러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지금의 지부롤터 해협海峽) 바로 너머에 있었다면 오히려 연안항해沿岸航海로 아프리카나 유럽의 북부 해안에 상륙하는 길이 수월한데 왜 이를 마다했을까?


이런 의문점을 해소解消하는 지름길은 오직 발상發想의 과감한 전환轉換과 새롭게 열린 세계에 대한 이해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선도先導하고 있으며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쉽게 말해 남북 아메리카 주민들은 작은 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넓은 바다를 항해航海하여 이주移住한 게 아니라


그 무렵 북쪽에서 거의 맞닿을 듯한 두 대륙(아시아와 아메리카)을 이어주는 얕은 바다를 건너 북아메리카에서 남부지대로 확산擴散되었으며 이를 주도主導한 집단은 동북아시아 종족種族들이었다는 가설假說이었다.   사실 이동경로로 보았을 때 알래스카를 경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거칠고 험한 대양大洋을 건너는 게 쉬웠을까?


그리고 이런 가설假說을 현재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유사역사類似歷史]와 [진정한 역사]와의 연구태도를 가름 짓는 분기점分岐點이며 그래서 [민족사학民族史學]은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유럽인>들의 세계관으로 그들의 인식 밖에 있는 먼 극동極東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史件을 전혀 이해할 수없었을 것이며 그런 이유로 <아틀란티스>를 끌어들였다.   그래서 분명하게도 [유사역사학적類似歷史學的]이지만 아시아적 사고思考에서는 주민의 원류源流가 동북아시아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그 때문에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범주範疇에서 한참 벗어난다.  



2.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관한 망상妄想



근본적인 불씨는 1996년 9월 28일  미국美國 서부 워싱턴 주州 컬럼비아 강江에서 대학생大學生인 <윌 토머스와 데이브 디시>에 의해 발견된 케네윅Kennwick 인人의 유골遺骨 때문이다.


이 인골人骨이 캘리포니아 대학大學 리버사이드 캠퍼스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放射性炭素年代測定 결과 9330-9580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프리랜서 고고학자考古學者였던 <제임스 채터스>가 그 당시 일반적으로 백인종白人種을 일컫던 [코카소이드Caucasoid]라고 단정한데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1) 그 지역의 원주민原住民으로 자처自處하던 우마틸라Umatilla 부족部族은 연구 결과 밝혀진 매장埋葬 흔적 [1]을 이유로 자신들의 조상祖上이라 주장했고 <아사트루 민중회의Astru Folk Assembly>도 백인종白人種으로서의 권리를 강변强辯했다. [2]   과거에서부터 기본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던 [컬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역사논쟁] [3]에 불을 붙인 것이다.


[1] <인디언>들은 우리와 똑같이 경건敬虔하게 매장埋葬하는 풍속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죽은 원혼冤魂이 화를 낸다는 신앙信仰을 가지고 있다.


[2] 고대古代 스칸디나비아 신화神話에 나오는 종족種族들의 관습慣習과 종교宗敎와 문화를 사실로 믿는 단체이다.


[3] 인간이 언제 어떻게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와서 살게 되었으며 그들은 누구인가? 와 컬럼버스 이전에 구세계舊世界 즉 유럽 사람들이 대륙을 발견했는가?   그랬다면 그들은 누구이며 언제 발견했는가? 라는 문제들



2) 하지만 [3]의 문제들은 현재(70년 가까이)까지 정설定說로 여겨지고 있던 [클로비스 문화-뉴 멕시코 주州 클로비스 지역의 원시原始 인디언 문화유적]가 유전학遺傳學*언어학言語學*고고학적考古學的인 성과로 말미암아 무너지면서 촉발促發된 이래 케네윅Kennwick 사건 당시에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었다.


3) 그동안 등장한 새로운 가설假說들을 보면  ❶ 유럽의 솔류트레문화 Solutrean Culture 가 북대서양北大西洋을 건너 와 후일 클로비스 문화로 이어졌다.  ❷영국의 웨일스 공公 매독이 정착촌定着村을 건설했다(백인종白人種의 선점권先占權을 바탕으로 아메리카는 강탈强奪이 아니라 권리회복임을 뒷받침한다).  이들이 바로 미주리 주州 부근에 거주한 맨댄Mandan 족族의 선조先祖이다(영국의 현실적 지배를 보증保證하는 가설假說이다). 


   ❸ 북유럽 스칸디나비아계 <레이브 에릭손>이북아메리카 빈랜드를 식민화했다.  ❹ 아프리카 누비아 인들이 멕시코 지역에서 꽃핀 올멕Olmec 문명의 주인이다(아메리카계 아프리칸들의 아프리카중심주의라는 권리주장에 이용되었다).  ❺ 원주민原住民은 카르타고 식민주의자(탐험가探險家 한노가 이끌었다)의 후손後孫이다. 


   ❻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정복자를 피해 들어와서 정착했다(스페인의 영유領有를 정당화 하는 가설假說이다).  ❼ 성서에 나오는 히브리 인들이나 고대 유대민족(아시리아의 공격을 피해 사라진 10지파支派)이 선조先祖이다(종교적 관점觀點에서의 권리 주장이며 모르몬Mormon 교도敎徒의 정체성正體性을 입증立證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가설假說들이 나온 목적은 대부분 신대륙新大陸 발견에 대한 기득권旣得權을 얻으려거나 종교적인 이유나 현실적인 점유占有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정착定着하고 있던 도래인渡來人들이 자신들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조장助長하거나 권리 신장伸張을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했다.   그리고 이를 저자著者는 통틀어 [사이비역사 혹은 사이비학문적 설명]이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를 [변종사학變種史學]은 애써 빠뜨리고 있다.   그 하나로서 현재 미국美國 고고학계考古學界의 쟁점爭點은 [민족사학民族史學의 입장]과 동일하게 [최초 거주종족居住種族이나 이동경로]가 아니라 [거주居住 시점始點]의 문제라는 사실이다(11000년 전이냐? 15000년 전이냐?).

  

이를 무시無視하고 이동경로와 종족문제種族問題만을 핵심으로 내세우는 다른 유사역사학적가설(類似歷史學的假說-로널드 프리츠는 이들을 사이비역사로 보고 있다)들과 하나로 묶어 [민족사학民族史學=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라고 동일시同一視하는 것은 분명히 제2부에서 극히 경계해야한다고 강조한 [허수아비의 오류誤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정말로 그런 가설(假說-최초 발견 종족種族과 시기문제)들이 나타나거나 극성極盛을 부릴 때 누가 현실적인 목적달성이나 이득利得을 얻을 충분조건充分條件을 갖추고 있었느냐? 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를 판단하기 위해 앞서의 [질문質問]을 다시 던져보자!



1) [변종사학變種史學]에서 교리敎理처럼 받들고 있는 [부일식민사관附日植民史觀 ➡ 두계사관斗溪史觀]이 과연 일본日本의 제국주의시대帝國主義時代와 관련된 무렵에 등장하여 하나의 정설定說로 굳어졌는가?      [그렇다].


2) 그 내용들이 당시 제국주의帝國主義 국가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충실히 뒷받침해주는 이론구조理論構造인가?     [그렇다].


3) 가설假說이 나올 때 일본日本은 국가적으로 팽창주의膨脹主義를 추구했으며 현실적으로 그 지역을 점유占有하고 있었는가?    [그렇다].


4) 탄생誕生 배경에서 국가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학술적學術的으로 간접지원을 하였는가?     [그렇다].



이  [질문質問]들을 [민족사학民族史學]에 다시 한번 던져보라!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그래서 어느 쪽이 더 저자著者가 분석한 [유사역사학적類似歷史學的 가설假說]에 근접近接하는지?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이걸 보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한다.



4) 하지만 단 하나 그래도 정확한 핵심에 근접近接한 가설假說이 있었는데 ❶ 원주민原住民의 외모外貌가 동東 아시아 인人 같다는 초기 도래渡來 유럽인들의 관찰 ❷ 중국인(中國人-명明 영락제永樂帝 때 정화鄭和 함대艦隊)들의 항해航海를 통해 도달했다. 는 주장이었다. [1]


[1] 안토니오 갈바웅 AD 1555*개빈Gabin 멘지스Menzies AD 2002가 주도했는데 결국 학문적 무자격자無資格者*부정적인 인물로 낙인烙印찍혔으며 저자著者는 특히 멘지스를 사이비역사학의 대표주자代表走者로 지적한다.



그렇지만 항해航海로 도달했다는 것과 그 대상을 중국中國이나 타타르족 그리고 스키타이족으로 본 견해(AD 1607년 그레고리오 가르시아)는 조금 어긋났다.   다만 시베리아 인人을 포함시켰다는 사실만은 [민족사학民族史學]의 입장과 일치한다.

   


   이 논쟁論爭은 1648년 <세멘 데즈네프>가 베링 해협海峽을 발견하는데 성공함으로서 거의 종지부終止符를 찍었지만 중국인설中國人說은 거의 400여 년 동안 약화弱化되지 않았으며 최근까지 비주류이론(非主流理論-사이비역사학)으로서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아무튼 유럽을 비롯한 서구인西歐人들이 이동 종족을 중국中國이나 타타르 또는 스키타이로 본 것은 얼마나 동아시아 지역에 관한 인식認識과 사고思考의 지평地平이 짧은지? 를 잘 알려준다.



제발 내게 알려주게!   저 황갈색 족속族屬은 어디에서 왔는가?

저들의 조상祖上은 누구인가?   야페테인가?   셈인가?

아니면 타타르의 <칸>인가?


그리고 어떻게 앤티퍼디스 제도諸島까지 발을 걸치고

바다 넘어 또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들은 언제 왜 어디서 마지막으로 출항出航해

그 어떤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무릎 쓰고 어디에 처음으로 닻을 내렸는가?  


<니꼴라스 노예스  1702>



3. 기독교정체성운동基督敎正體性運動과 인종주의人種主義라는 환상幻想



저자著者가 3번째 [유사역사학적類似歷史學的 특징]을 지닌 대표적인 가설假說이라고 지목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 정확하고 공정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인류人類의 본질적인 역사적사고관歷史的思考觀을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



1) 인간은 자신의 정체正體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2) 인간은 한 사회로서 어떤 사회나 세계 속의 집단으로서 정체성正體性을 필요로 한다.


3) 사회와 집단은 자신들 집단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한다.

  


아주 중요한 화두話頭이다.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展開 과정에서 이를 잊으면 자칫 [변종사학變種史學]이 [민족사학民族史學=기독교정체성운동基督敎正體性運動=인종주의人種主義=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라고 부르짖는 허튼 소리와도 같은 [동일성同一性의 착각錯覺]이라는 어리석은 함정에 빠지기 싶다.   이야기에 앞서 저자著者는 종교적宗敎的 사고관思考觀의 <공통분모>가 무엇인지? 를 가장 먼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기독교基督敎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모든 인간이 <아담과 이브> 그리고 후대後代의 <노아>와 그 아들들의 후손後孫이라는 관념觀念을 공유共有한다. 

  

2) 세 종교宗敎는 하나같이 인류人類가 하나의 통일체統一體이고 동등한 가치價値를 가진다고 가르친다.   즉 어떤 인종人種이 열등劣等하거나 우월優越하다는 관점觀點은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이 원칙原則은 불행하게도 근대近代에 들어와서 변질變質되기 시작했다.   종교적宗敎的 의식儀式으로 무장武裝한 사회와 집단이 제국주의帝國主義와 결합되면서 역사와 고고학考古學 분야에까지 포용包容하여 본질本質을 왜곡歪曲시키기 시작하였다.  


<일부 인간 집단의 우월성優越性은 천성적天性的이며 다른 인종人種은 열등劣等하다>는 편견偏見을 정당화하면서 이를 입증立證하는 쪽으로 역사를 비틀고  조작造作하였던 것이다.  


[로널드 프리츠]는 이와 같은 기준에 충실한 표본標本으로 [기독교정체성基督敎正體性Christian Identity]이란 집단을 들고 있다.   그런 이유로서 먼저 이들의 가설假說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논리구조論理構造를 아래와 같이 적시摘示한다.



1) 영국제도英國諸島British isles의 백인은 서유럽*북유럽과 함께 이스라엘의 사라진 10 지파支派의 후손後孫이며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아담>의 직계直系이므로 선택된 민족으로서 우월優越할 수밖에 없다. [1]



[1] 성서聖書의 <히브리 인人>으로 혈통血統은 [아브라함-아들 이삭-아들 야곱의 후손後孫인 12 아들-12 지파支派의 조상祖上]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야곱>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이므로 [이스라엘 자손子孫들의 시조始祖]라고 불린다.


    왕국王國은 BC 924년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부의 <유다>로 갈라졌는데 문제는 BC 722년과 BC 586년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하면서 끌려간 민족 가운데 [유다 인人]들만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사라진 10 지파支派>란 이야기가 생겨났다.



2) 백인白人이 아닌 인간은 <아담> 이전以前 시대 종족種族의 후예後裔이기 때문에 당연히 선천적先天的으로 열등劣等하고 영혼靈魂이 없는 <사탄>의 하수인下手人이다(진흙인간Mudpeople).   인종주의人種主義와 백인우월주의白人優越主義를 부르짖으면서 이들에 대한 관용寬容과 통합統合을 말하는 행위는 신神에 대한 악마惡魔의 모반謀叛에 협력하는 짓이다.


3) 유대인이 <사탄>의 씨앗인 까닭은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뱀으로 변한 그의 꼬임에 넘어가 <카인>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결국 아벨을 죽이고 [놋Nod]으로 가서 그곳에 있던 <아담> 이전以前 종족種族과 결합하여 태어난 후손後孫들이기 때문이다.


4) 곧 다가올 세상의 종말終末을 두고 다투는 대결전(大決戰-아마겟돈 7년 전쟁)의 시기에 사라진 10 지파支派의 후손後孫들이 나타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신神의 축복을 받으며 마침내 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二分法的으로 형성된 세계적인 인종구조人種構造 속에서 사라진 10 지파支派의 후손(後孫-백인종白人種)과 사탄의 후예(後裔-아담 이전의 종족種族들인 흑인종黑人種과 황인종黃人種)간에 마지막 결전(決戰-인종전쟁人種戰爭)의 시기가 오고 있으며


패배敗北는 곧 백인白人의 멸종滅種을 초래招來하는 대재앙大災殃이다.   매우 살벌하고 폭력적인데 이렇듯 인종주의적人種主義的 이론의 대부분이 온갖 사이비역사와 엉터리 과학으로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기독교정체성基督敎正體性]이 성장한 배경도 필자筆者가 서두序頭에서 말한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출현이유와 매우 유사성類似性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帝國主義 팽창세력膨脹勢力이었던 영국英國과 독일獨逸 그리고 미국美國이 중심 역할을 했다.   국익國益에 걸 맞는 교묘한 국가지도이론國家指導理論의 제공에 한 몫을 한 것이다.


[기독교정체성基督敎正體性 운동]의 밑거름이었던 영국英國의 [브리티시British 이스라엘리즘Israelites]은 프랑스 혁명의 충격으로 인한 왕실王室의 조바심과 신흥공업국新興工業國 독일獨逸의 부상浮上으로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위상位相 몰락沒落에 관한 우려憂慮가 강렬한 때 뚜렷하게 등장했다.  


바로 이런 기회를 활용한 [사라진 10 지파支派의 후손국後孫國=영국英國=선택받았으며 유별난 특권特權을 지닌 당연한 나라]이란 기가 막힌 도식圖式이 그려졌다.   이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인 <앵글로색슨주의와 튜턴주의>라는 인종주의적人種主義的 지배자논리支配者論理와 잘 맞아떨어졌다.


신흥강대국新興强大國으로서 막 제국주의진영帝國主義陣營의 문턱에 오른 미국美國은 족보상族譜上으로나 운명적 관점觀點에서나 제국帝國의 전성기를 누리던 영국英國과 거의 동일시同一視되는 만큼 당연하게 미국판美國版으로서의 복사複寫가 이루어진다.  이들 나라가 잘 나가는 이유를 종교적으로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가 [다원창조론多元創造論]이다.   쉽게 말해 신神은 가장 먼저 흑인黑人을 창조했다.   만물창조萬物創造 이후에 첫 번이라 동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어서 어리석었다.   그 후 신神은 점점 더 똑똑하고 복잡한 인종人種들을 창조했다.   마침내 이는 <아담>의 창조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 결과가 백인白人의 조상祖上 탄생이었다.   참으로 웃기면서도 지극한 우월주의적優劣主義的인 발상發想이다.


참좋은 글인것 같습니다: 역사의 조작은 상상을 초월 합니다: 2017년 조세핀 퀸이라는 영국옥스포드 고고학자가 "페니키언은 결코 존재하지않았다는 책을 출판하였고(Josephine Quinn: The Phoenicians never existed | Princeton ), 독일의 유전학자 마티나 윤터랜드(Martina Unterländer | Johannes Gutenberg-Universität Mainz )교수는 스키타이인들의 흑해기원을 뒤짚고 알타이기원이라는 학술연구를 발표하였다. 여기서 꼭우리가 변종역사라고 하는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물을 판단하는 날카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더럽고 치사한 역사관은 바이블-중심주의의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한다는 점이다: 정말로 한숨이 나온다. 메소포타미아는 역사가 기원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전혀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홀로신옵티마이후 인간이 살 수 있는곳이 어디였나를 생각해야한다. 유럽중심주의 바이블 중심주의 역사관은 허구이며 인류의 모독이다. 내가 그리스알파벳과 히브르 알파벳이 한자에서 기원했읍을 발뎐하였다. 그런데도 구약의 미친소소리에 사로잡혀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 못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섞음며, 플라톤의 동굴속에 인간죄수들이 얼마나 잘 훈련되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베이컨의 5대우상을 생각하여 학술적 접근을 해야한다. 있지않은 유태인 12지파설등은 나를 예수를 신으로 만드는 조작과 같은 것이다: 대부분 예수쟁이들은 예수를 메시아요 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수의 아버지 Tiberius Julius Abdes Pantera - Wikipedia와 Yeshu - Wikipedia를 먼저 읽어보고 냉철한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 예수는 로마식민지 사회가 배출한 유태인의 해충과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이당시 로마사회는 여성인구의 20%이상이 창녀였고, 식민지사회는 40%에 육박하는 여성들이 로마군의 성노래개로 살아야했던 참혹한 역사를 인식해야한다. 오늘 에수쟁이들은 조상들과 머리안돌아가는 자신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한다.
구약은 일반적으로 서기전 4세기에서 삼세기 이후에 쓰여진것으로 문헌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은 중앙시아에서 살던 이족들의 전설과 신화를 메소포타미아로 흘러들어간 이족들(주로 아모릿족)이 진흙판에 기록한 전설과, 이들이족자신들이 선조로 부터 들은이야기 그리고 조로아스교적 종교가 가미된 허구이다. 이것이 허버트 조지 왤같은 학자들의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