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3. 30. 20:41

 

두 번째는 아주 먼 어느 시점에 동물적이고 무지無知한 종족(種族-백인白人 이외의 인종人種 특히 일부 학자들은 한때 유럽을 지배한 몽골로이드를 증오하여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이 창조되었고 성서聖書에서 규정한 시기인 BC 6000년 전에 이윽고 이들을 결국 타도打倒하면서 이끌 <아담>과 백인종白人種을 창조했다.   결국 빅토리아 시대에 이를 뒷받침하는 인종과학人種科學이 [유사과학類似科學]으로서 인종적人種的 편견偏見을 보증保證하는 강력한 도구道具로 등장했다.


왜 그랬을까?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 이론의 열매를 따먹은 [변종사학變種史學]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이해가 빠르다.   결국 백인白人들은 과학과 기독교를 절충하는 방법으로 아프리카 출신 흑인종黑人種들에 대한 비극적인 운명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로서 서구西歐의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은 아메리카를 발견한 뒤 새로운 인종人種의 출현에 대한 충격을 해소解消하고 여전히 백인우월주의白人優越主義를 이어간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바로 여기에서 서구적西歐的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 출현의 필연성必然性과 만난다.



그러므로 [변종사학變種史學]이 이런 역사적인 과정들을 전혀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유럽주의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민족사학民族史學]으로 대입代入한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그러기에 제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    하여튼 본론本論으로 돌아가 이를 입증立證하는 논리적 실험도구實驗道具로서 먼저와 같은 [질문]으로 [변종사학變種史學]의 주장을 확인해보자.



1) 민족의 우열優劣을 가르는 기본적인 논리전개형식論理展開形式에서의 유사성類似性을 보이는가?



[변종사학變種史學]    [그렇다].  



즉 [고조선古朝鮮 부정론否定論 - 삼한정통론三韓正統論 - 한반도韓半島 축소론縮小論 - 한족漢族의 한사군漢四郡으로 말미암은 북방세력 지배와 왜倭의 임나任那에 의한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 - 발달된 선진문화 수용론受容論 - 초기국가형성기반론初期國家形成基盤論]


이라는 논리체계論理體系를 통하여 천성적天性的으로 열등劣等한 한민족韓民族이 우월優越한 다른 민족에 의해 은혜를 받았으므로 일본日本의 식민지배植民支配도 당연하다는 귀결구조歸結構造이기 때문이다.

 


[민족사학民族史學]    [아니다].



아메리카가 발견되면서 기존의 단선적單線的 세계관은 발칵 뒤집어졌다.   어떻게 원주민原住民들이 <아담>의 자손子孫이란 말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 아담 Double Adam]이란 학설學說이 등장했다.    그동안의 <유럽주의적 역사관>이 통째로 흔들린 것이다.  


결국 결론은 묘하게 [국가의지와 결합된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변형變形으로 결정되었다.   유대민족을 제외한 현재의 모든 인간은 <아담> 이전에 존재했으며 그렇지만 신神이 <아담>과 그 후손後孫을 창조한 이유는 신성한 역사를 위한 목적을 완수하고(분명히 제국주의적帝國主義的 색채가 짙은 표현이다)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베풀기 위한 것이다.   마치 열등劣等하다고 여긴 잎(먹이감의 우아한 표현일까?) 먹고 자란 애벌레가 변태變態를 하는 가운데 흉측한 몰골에서 탈바꿈하면서 여전히 우월優越한 지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 초원벨트 지배민족의 자부심自負心인 [환국桓國의 이야기]는 서구西歐의 [인류창조이론人類創造理論이나 기독교정체성론基督敎正體性論]에서 말하는 인종적우열론人種的優劣論과는 또 다른 세계 즉 그들의 인식밖에 또 하나의 어엿한 사회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진정하게 평등한 다양한 민족 기원의 모티브이며


백인白人 위주 창조론創造論에 대한 새로운 도전장으로서 새로운 세계로 발견된 아메리카 원주민과 합리적으로 연결되는 단서들을 제공하는 매우 과학적인 설명구조이다.    다시 말해 민족은 우열優劣이 아니라 다양성이며 평행선을 달리는 같은 주자走者라는 보편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지극히 합리적인 가설假說이다.



2.  어떠한 역사적 사건의 필연성必然性을 대중적으로 선전宣傳하거나 민족적 우열優劣의 고착화固着化라는 의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결집結集 시키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나 지배민족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할 목적이 다분했는가?



[변종사학變種史學]    [그렇다].  



[브리티시British 이스라엘리즘Israelites]은 제국주의帝國主義 시대인 19C 말-20C 초의 가치관價値觀에 절묘하게 부합符合하는 신념체계信念體系이었으며 거의 비슷한 기간에 후발주자後發走者로서 같은 길을 걷고 있던 일본日本도 지배논리支配論理의 타당성 확보를 위한 우리 역사 개조작업改造作業에 들어갔다.



[민족사학民族史學]    [아니다].  



이 시기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에게 면죄부를 준 [기독교정체성基督敎正體性]은 분명히 자유롭고 대중적인 운동이 아니며 국가 의지와 철저하게 융합融合했다.   그렇지만 [민족사학民族史學]은 틀림없이 민중民衆을 기반으로 삼은 [역사정당성歷史正當性 회복운동]이었다.



3) 인종적人種的 지배야욕支配野慾이 강하게 작용할 때나 현재의 지배민족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 확보나 면죄부免罪符를 주기 위한 이론적理論的인 근거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을 때 대부분의 역사적 작업들이 이루어졌는가?



[변종사학變種史學]    [그렇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민족사학民族史學]    [아니다].    이는 4)항項에서 자세히 설명되어질 것이다.



4) 종교적인 기본가치관基本價値觀을 역사 문제에 대입代入하였을 때(그들이 먼저 그렇게 간주看做하였으므로) 역사적으로 인류는 평등하며 모든 인종人種은 우열優劣의 차이가 없다고 하는 관념觀念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敍述하고 있는가?



[변종사학變種史學]    [아니다].   



논리전개의 방향이 한민족韓民族은 초기 국가 형성시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중국中國과 일본日本과는 우열관계優劣關係가 존재했다. 는 흐름이다.

 


[민족사학民族史學]    [그렇다].   



환국桓國 초기부터 동아시아 초원벨트는 환인桓因의 지도 아래 느슨한 공동사회구성체共同社會構成體를 이루고 있었으며 통치이념統治理念 속에도 그런 사유思惟가 녹아 있음을 기록으로 알려준다.



창세신화創世神話가 없다.   그리고 지극히 현세적現世的이고 구체적인 영웅전설英雄傳說의 성격을 강하게 풍긴다.   환웅桓雄이 3 사람의 측근(側近-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과 수하(手下-솔도率徒 3000)들을 거느린 군사지도자로서 매우 현실성 있는 장소(삼위三危와 태백太白)에 정착定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화神話의 설명구조와는 적지 않은 차별성을 지닌다.


아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환인桓因) 세속적世俗的인 권한權限의 이양移讓이 분명하며 환인桓因이 흑수黑水와 백산白山 사이의 영토 할양割讓의 명령을 할 수 있다는 서술형식은 바로 일정한 영역국가(환국桓國)의 어른이라는 유목사회구성체遊牧社會構成體의 실체實體를 자연스럽게 짐작하게 한다. 


환웅桓雄의 권한權限으로서 내려받은 임무가 다분히 세속적世俗的이며(생명生命*곡식穀食*형벌刑罰*선악善惡*병病과 360여 사事) 실제로 군사적 능력을 발휘하며(슬그머니 토벌討伐할 뜻을 품었다) 분명하게도 단군檀君에게 물리는 방법도 매우 세속적世俗的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우월민족당연지배이론優越民族當然支配理論]에서 태어난 사생아인 <인종주의人種主義>와 [보편적인류평등론普遍的人類平等論]이라는 바탕에서 나온 개별적 민족자존民族自尊의 외적外的 표출表出 형태인 <순수민족주의純粹民族主義>와는 명백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어느 민족이건 평등의 관념에 대한 동전의 양면으로 민족주의民族主義는 자생自生하기 때문이다. 


다만 제국주의적帝國主義的인 국가행동과 융합融合하여 그 논리를 제공한 민족우열民族優劣 및 인종주의人種主義의 영향 때문에 반발하여 등장한 국수주의國粹主義는 그 원인을 제공한 쪽에 커다란 잘못이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월주의優越主義냐?  보편적평등주의普遍的平等主義냐? 하는 양극단兩極端에 [변종사학變種史學]과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자리 잡고 있음을 금방 발견한다.



앵글로 아메리칸 사회를 탄생시킨 것은 종교宗敎다.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미국에서 종교는 그 나라의 모든 관습 및 조국祖國이 낳은 모든 감정과 떼래야 뗄 수 없이 얽혀져 있다.   그래서 종교는 특이한 힘을 발휘한다.   ,프랑스 정치학자이며 역사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



4. 이슬람국가운동과 하얀 악마惡魔의 환영幻影에 대하여는



저자著者는 한 마디로 [기독교정체성基督敎正體性] 운동과 판박이(다만 백인白人을 이슬람계 흑인黑人으로 바꾼 것뿐이다)라고 결론을 내렸으므로 설명은 생략하며 대신 일제시대日帝時代 한민족韓民族의 처지와 역사탄압을 짐작할 수 있는 이 단락의 서두序頭에 붙인 좋은 명문名文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친다.



흑인(黑人-한민족韓民族)이 노예상태에 머무는 한 야만野蠻에 가까운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자유가 되면 자신이 얼마나 고통을 당해왔는지 알게 되고 모호하나마 그 해결책도 간파看破하게 될 것이다.   이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5. [천국天國의 문門 Heaven's Gate] 등과 같이 사이비과학과의 결합이 빚어낸 슬픈 코메디 - 사이버역사의 모범



[천국天國의 문門]은 신흥종교단체新興宗敎團體로서 필자筆者가 [제1부]에서 언급했듯이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인 <마셜 허프 애플웨이트>와 핵심 추종자들(39명)이 <헤일Hale 밥Bopp 혜성彗星Comet>의 앞에서 날아오고 있다는 외계인(外界人-우주의 형제들)의 우주선에 영혼靈魂의 형태로 합류合流하기 위해 1997년 3월 26일 샌디에이고 인근 대저택大邸宅에서 집단 자살한 사건이다.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의 [격변설激變說과 고대古代 연대기年代記 수정론修正論]은 한마디로 기본적인 상식常識도 무시한 천문학天文學과 지리학地理學들을 자신의 역사 가설假說 가운데 의도한 부분에 뒤범벅 시켜 만든 괴상한 논리를 합리적인 듯하게 포장시킨 유사과학類似科學이 사이비역사와 비과학적*비역사적으로 결합하면 어떻게 되는지? 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1) 고대古代 금성혜성설金城彗星說과 그 영향으로 금성金星의 근접近接 통과와 화성火星 궤도軌道 불안정으로 인한 지구 대재앙반복론大災殃反復論을 역사변혁歷史變革의 기본조건이라고 보는 설명구조로서 삼는다.


2) 고대古代 이집트와 서西 아시아(특히 이집트와 이스라엘 역사)의 대 사건史件과 정복전征服戰의 성취와 방어전防禦戰의 성공은 예외 없이 천체天體의 비정상적인 운행運行에 의한 대재앙大災殃과 깊은 관련이 있다.


3) 이러다 보니 정통적인 고대古代 이스라엘과 중동中東의 연대기年代記와 그가 주장하는 이스라엘 및 중동中東의 연대기年代記는 500여년의 차이가 생겨 이를 잘라내어야만 하였다.   그러자 다시 모든 정통 역사의 전제前提와 결론이 틀렸으며 조작造作과 환상幻想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을 취한다(어디에서 많이 들어 본 주장이다.   고조선古朝鮮과 청동기靑銅器 역사축소론歷史縮小論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역사적인 기록으로 엄연히 존재하는(이를 절대연대絶對年代라고 한다) 솔로몬 왕王과 하트셉수트 파라오 그리고 람세스 2세와 바빌론의 느브갓네살 왕王이 동시대同時代 인물이 되고 과학적 연대추정 결과와 [1] 역사적 증거들이 꼬리를 물고 정돈되어 거듭 공인公認되고 있는 그리스 암흑기暗黑期와 히타이트 제국帝國은 조작造作이거나 환상幻想이 되고 만다.


[1]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放射性炭素年代測定法과 나이테 연대학年代學Dendrochronology을 상호相互 비교하여 절대연대絶對年代를 측정하는 기법技法과 이집트 학자 <마네토>가 편찬編纂한 [역대歷代 왕王의 목록]을 서로 대조對照한다.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청동기靑銅器 연대年代를 비롯한 고대古代 제국帝國(환국桓國과 단군조선檀君朝鮮)을 증거證據하는 추정유물推定遺物들에 관한 과학적 연대추정 결과는 [민족사학民族史學]의 손을 들어주고 있음에도 [변종사학變種史學]은 시대에 역행逆行하는 무수정주의無修正主義로 일관一貫하면서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극히 일부분만 국정교과서國定敎科書에서 수정修正되고 있다.



4) 그렇다면 증거는 있는가?   그의 주장이외에 증거는 오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행성行星의 궤도軌道 불안정]과 현실적으로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들이란 착각錯覺(왕조王朝와 왕력王歷의 중복과 虛構의 王朝 설정 등)과


   오류誤謬(판구조론Plate tectonics과 대륙이동설Continental drift 등)에 빠져있다는 종교적 신념(信念-그는 시온주의자이며 성서聖書의 대홍수大洪水 등 대부분의 격변激變 기록들을 역사 가설假說의 기본 줄거리로 채용採用했다)을 밑바탕으로 한 부정否定뿐이다.     그 외에는?    없다!!!



1950년대 중반中盤에 들어 기존 학자들이나 <벨리코프스키>에게 까지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었던 [판구조론板構造論과 대륙이동설大陸移動設]은 <진정한 과학>으로서 부동不動의 위치를 차지함으로서 기성旣成 이론은 <사이비과학>으로 밀려났고


반면에 과학적 연대측정법年代測定法과 그린랜드와 남극 빙하氷河의 아이스Ice 코어core 분석으로 수만 년 전까지 세계적 규모의 대재앙大災殃은 없었음이 증명됨으로서 그의 주장은 타당성을 잃어 가설假說 수준으로도 존재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민족사학民族史學]과 서로 대치代置되거나 비교될 여지餘地가 전혀 없다.   역사발전의 설명구조나 논리전개의 핵심 배경으로 삼은 현상이나 대상물에서 근본적으로 대조對照될 수 없는 차별성(差別性-역사발전 동력動力을 역사적 사료史料 분석결과로 보지 않고 천체운행天體運行의 불안정으로 보는 완전히 다른 자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그의 저술著述은 과학과 역사를 주제主題로 했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 전혀 거리가 멀다.


혹시 [변종사학變種史學]이 [민족사학民族史學]의 가설假說을 조작造作과 환상幻想이라고 매도罵倒하는 부분이 <벨리코프스키>의 입장을 빗대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와 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전형典型이다.   그는 기존의 학설學說에 대해서 그렇게 공격하였고 그런 자신은 틀림없게도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라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누가 보아도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 틀림없었음에도 그 당시 벌어졌던 치열한 논쟁論爭 속에서 <벨리코프스키의 가설假說>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이다.   


바로 [변종사학變種史學]이 [민족사학民族史學]을 대중성이나 대중영합성大衆迎合性과 연결시킨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나 그렇게 만든 원흉元兇이 누구였는지?  아래와 같이 저자著者가 잘 요약要約해주고 있다.  



1) 특이한 주장을 하였다면 상대방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득하기 위한 입증자료立證資料 분석을 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다.   그러나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로 되어갔다.   <벨리코프스키>는 가만히 앉아서 굴러 온 떡을 주워 먹었다(이런 측면側面에서 민족사학民族史學은 나름대로 올바른 입장 즉 스스로 가설假說에 관한 입증자료立證資料 제시提示에 충실하고 있다.   이 점에서 전혀 다르다).


2) 과학이나 역사와는 거리가 먼 잡탕雜湯이라면 이 점을 명백하게 부각浮刻시켜 학술적*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설득력 있게 반박했어야 하는데 권위權威와 오만傲慢으로만 가득 찬 거만한 공격자세와 이단異端으로 몰아세운 박해迫害로 일관一貫했다.  


   이 점은 위와 같이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논리구조와는 아주 다른 [민족사학民族史學]의 가설假說을 부정否定하는 태도와 흡사하다.   이런 사실(기존의 전문가적 권위權威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듯한 입장)이 그대로 대중大衆들에게 반사反射되었다.   추종자追從者들을 스스로 만들어 준 격이다.


3) 반박反駁을 한다면서 논쟁論爭의 핵심核心이 되는 관련 저서著書들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거나 읽어보고 싶지도 않다고 공공연하게 떠들면서 날이 선 비난非難만 퍼부었다.    이런 상황은 [벨리코프스키]가 상대방 주장의 지적知的인 객관성이란 허구虛構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펴게 한 좋은 빌미를 주었다.   일반인들에게까지 기존 학자들이 아주 못되게 굴거나 제대로 반박하지도 하지 못한다는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벨리코프스키>의 가설假說은 층서학層序學 [1]이라는 고고학적考古學的 분석기법에 의해 여지없이 박살났다.   그러나 [민족사학民族史學]은 <벨리코프스키>와는 반대 입장에서 이러한 고고학적考古學的 증명을 통해 북방 초원벨트를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장악掌握했으며


   나름대로 독특한 생활양식을 진화進化시키면서 느슨한 사회구성체社會構成體를 이루어가며 포용包容하였던 [환국사회공동체桓國社會共同體와 단군조선 제국檀君朝鮮帝國]의 실체實體를 차츰차츰 규명糾明하고 있다.   헌데 <벨리코프스키>와 똑같은 식으로 이번에는 [변종사락變種史學]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1] 발굴되는 유물遺物과 유적遺蹟들은 동일한 지역에 오래 동안 살았다면 시대적으로 層을 이루면서 파괴破壞와 소멸消滅 그리고 재건再建과 새로운 사회의 등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좋은 증거물이 된다.   이를 이용하여 연대측정과 시기구분을 하는 학문이다.



기존 학자집단들의 비타협적이고 허술한 자기방어 논리와 고집스런 태도들이 그 당시에도 분명히 구별되는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과 후일 [진정한 역사학]으로 비상飛上하는 [변경지대邊境地帶 역사학]과의 구분을 모호하고 불투명하게 만들어 바린 치명적인 오류誤謬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지금도 [변종사학變種史學]이 [민족사학民族史學]을 싸잡아 묶어 대하는 태도에서 그대로 투영投影되어 반복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벨리코프스키> 논쟁論爭에서 보여준 교훈敎訓은 주장 자체에 관한 초점보다는 기성旣成의 집단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수호守護해왔고 경우에 따라 어떻게 전혀 패러다임이 다른 가설假說들을 혼동시켜 새로운 지식의 발전을 저해沮害해왔는지?    또한 그를 어떤 점에서 잘못 대해 오히려 과학의 올바른 이상理想 정립의 기회를 저버렸는지? 를 극명克明하게 보여주는 사례事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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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코프스키>의 가설假說이 틀림없이 [유사역사학적類似歷史學的]이란 사실은 후일後日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음과 같은 설명구조와 자료선택 과정에서의 오류誤謬가 드러남으로서 긴 논쟁論爭이 매듭지어진다.


1) 고대古代의 출전出典을 부정확하고 부주의하게 채용採用하거나 논란論難의 소지所持가 클 만큼 매우 선택적으로 사용하였다.


2) 자신의 논증論證에 심각한 결함缺陷의 소지所持가 있음을 지적한 반박反駁에 관하여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아예 언급을 피하든지 다양하게 분석한 반론反論과 증거들을 전체적인 안목에서 통찰通察하지 않고 사소한 불일치에만 주목하여 물고 늘어진다.


3) 주장에 대한 각주脚註에서 자신의 생각에 보탬이 되는 자료만을 끌어내고 같은 기록에서도 가설假說에 장애障碍가 되는 부분이나 일반 학자들이 공감하는 이론은 왜곡歪曲하거나 외면하거나 의미를 축소했다.



특히 그의 논리論理에 엄청난 결함缺陷이 있다는 걸 통렬하게 반박反駁한 학자로서 <에이브러햄 삭스>와 수학자數學者인 <밥 포레스트>가 있다.


1) <삭스>는 쐐기문자로 된 고대古代 텍스트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알았던 수핫사가數學史家로서 <벨리코프스키>의 인용引用에 심각한 오류誤謬가 있으며 따라서 쐐기문자의 명확한 해석에 근거하여 전통의 역사연대연표歷史年代年表가 맞음을 증명했다.


2) <포레스트>는 여러 해에 걸친 꼼꼼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벨리코프스키>의 각주脚註를 일일이 대조對照하여 관련 사료史料나 자료를 선택함에 있어 여러 차례에 걸쳐 모순矛盾되는 증거를 무시하고 증거證據들을 선택적*편향적偏向的으로 인용引用하거나 주장을 입증立證한답시고 불충분하고 부적절한 또는 사안事案과 무관無關한 증거를 제시提示하였음을 밝혀냈다.



여기에서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벨리코프스키>와 같은 입장이 과연 조금이라도 관련성이 있거나 서로 모순矛盾되는 기록만 있으면 모두 포함하여 상호비교검증相互比較檢證한 다음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導出하려고 시도試圖하는 [민족사학民族史學]의 태도와 똑같은가?  


아니면 진정으로 시종일관 무결점주의無缺點主義를 맹신盲信하면서 여전히 코끼리 다리만을 만지고 있는 [변종사학變種史學]의 자세인가?   아울러 지금도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공감共感을 얻어 수정修正되고 있는 [청동기연대靑銅器年代와 초기 국가형성시기론*고조선古朝鮮 실재론實在論*유라시아 초원의 유목사회 자생발전설自生發展說]에 대한 외면과 부정 등은 누구의 생각인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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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虛僞 사실은 과학 발전에 큰 해害가 된다.   생명력이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구적虛構的인 견해(변종사학變種史學의 반도사관半島史觀)는 비록 일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하더라도 거의 해害가 될 것이 없다.   모든 사람이 기꺼이 그 허구성虛構性을 입증立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



이어지는 <찰스 H. 햄굿>의 남극南極 대륙 지각地殼 이동과 10000년 전 초고도문명존재론超高度文明存在論이나 이를 더욱 컬트Cult 적으로 각색角色시킨 <에리히 폰 대니캔>의 [4만-1만 년 전 우주인宇宙人의 지구방문과 초문명건설론超文明建設論] 그리고 <제카리아 시친>의 [외계행성外界行星에서 온 메소포타미아 문명건설자文明建設者 들]과


<그레이엄 핸콕>의 [대재앙大災殃과 사라진 초문명超文明]은 논리체계論理體系로 보나 가설구조假說構造의 기본 형식으로 보나 [행성운행行星運行+외계外界 우주인宇宙人+고대古代 지구 문명의 탄생+대재앙大災殃과 초문명超文明의 소멸消滅]이라는 허홯虛荒된 틀에서 구워낸 빵과 다르지 않으므로 설명을 생략한다.



6. [블랙Black 아테나Athena] 논쟁論爭 - 기존 역사해석에 관한 패러다임의 변화



가. 주요내용 요약要約


미국 코넬 대학 정치학과政治學科 교수敎授인 <마틴 버낼>이 창시創始한 [블랙 아테나 이론]처럼 20C 후반 무렵 많은 논쟁論爭을 불러일으키면서 찬사讚辭와 악평惡評을 동시에 받은 사건을 매우 드물다.  


그동안의 [그리스 문명 정통론]과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지중해地中海 동부지역 역사에 관한 기존 학설學說에 일대충격一大衝擊을 준 도전장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유럽의 역사 문화적 오만傲慢에 대한 경종警鐘이었다.   이론의 핵심은 이렇다.



1)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그리스 문화>는 자생발전自生發展이 아니라 이집트와 페니키아 인人(더 넓게는 근동近東 세력)들에 의한 식민화植民化의 결과이다.


2) 그 후 [아르카이크Archaic 시대-고전기古典期-헬레니즘 시대] 까지 과학*종교*철학에 있어서 상당한 부분에 걸쳐 이런 영향은 지속되었다.


3) 이런 상식常識은 헤로도토스가 활동하던 [고전古典 그리스 시대-18C 까지]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고대古代 모델론).


4) 19C 중반부터 그리스 문명 독자론獨自論의 바탕이 된 [아리안Aryan 모델Model]은 18C부터 기승을 부린 <식민지배植民支配의 정당화에 도움을 준 인종주의人種主義와 반유대주의>에 의한 결과이다.   이 무렵 등장한 <그리스 문명 예찬론자禮讚論者>들이 과연 흑인黑人들과 가까운 지역에 있던 고대古代 이집트 인人들이 백인白人인가? 에 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게 실마리였다.


여기에서 <버낼>은 [인종人種]을 현대의 생물학적生物學的 관념(모든 인류는 단일종單一種이고 집단 간의 신체적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이 아닌 사회적인 인식(사회학적인 구성부분으로서의 우열優劣의 대상이 되는 인종人種 분류방식)이라고 명확하게 구별하여 설명한다(사이비역사의 탄생 495p).



5) [아리안Aryan 모델Model]이 생긴 이유는 중세中世에 들어 유럽을 움직인 양대兩大 축軸인 [제국주의帝國主義와 기독교基督敎의 영향] 이다.   세계를 지배하게 된 유럽으로서는 열등劣等하게 여겨진 이집트와 근동近東 문명의 영향이라는 게 언짢았고 기독교基督敎로서는 고대古代 종교와 철학이 새삼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19C 중반 이후 역사학자와 고전학자古典學者들의 지배적인 시각視覺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도리아 인人의 북방 침입으로 그리스 미케네 문명  멸망滅亡-BC 1200에서 BC 800년 암흑기Dark Age-아르카이크 시대 Archaic Age 그리스 문화 회복-고전기古典期의 그리스 민주주의 개화론開花論]이었다.



아무튼 지역적인 견지에서 이집트는 아프리카 문명이었다.   이에 한 몫을 한 계기契機가 18C 말 급격히 발전한 <역사언어학歷史言語學>이다.   서구문명西歐文明의 기원起源은 북방에서 내려 온 유럽 어語를 사용하는 백인침략자(白人侵略者-아카이아 인人)들이 인도에 건설한 왕국王國에서 비롯되었다는 설說이다.   이로서 저주스런 이집트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초가 닦여졌다.


[아리안 모델]의 발단發端은 독일제국獨逸帝國의 고전학자古典學者이었던 <칼 오토프리트 뮐러>가 주도主導하는 괴팅겐 대학大學의 교수집단敎授集團이었으며 영국英國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에 참여한 학자들로서는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기존 학자들의 만만치 않은 반론反論이 있는 부분이다)*임마누엘 칸트*아이작 뉴턴*바르톨트 게로르그 니부어*조지 그로트 등이 있다.  


아울러 [페니키아 부정론否定論-고대문명古代文明의 영향은 단지 알파벳 뿐이다]은 <쥘 미슐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프랑스 학파學派이었다.   이들 모두는 기본적으로 기독교基督敎 계열系列이면서 [유럽중심주의자이며 서구문명西歐文明의 정체성正體性을 만든 유아기적幼兒期的 그리스 문명 맹아론자萌芽論者]이다.



우리는 낡은 정책을 되살릴 수도 없고 고물단지가 된 북소리를 따라갈 수도 없다.   <T. S. 엘리엇Eliot>


지식의 가장 치명적인 적敵은 그리고 진리를 가장 심하게 파손破損하는 것은 권위權威에 대한 특히 고대古代로부터 물려받은 금과옥조金科玉條에 대한 맹신盲信이다.   <영국 저술가著述家 토마스Thomas 브라운Browne>



나. [블랙 아테나 논쟁論爭]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사실 [블랙 아테나]를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적지 않은 결점缺點들이 나타나고 있다. [1]   또한 논쟁論爭의 과정에서 초기부터 악의惡意에 찬 집중 난타亂打를 맞으며 <주장-반박反駁-재반론再反論-재반론에 대한 반박>이 이어지다 보니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편 가르기>에만 휩싸여 버린 감도 있다. 


그러나 처음 출간出刊했을 무렵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면서 강조하였던 초기역사발전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觀念이나 저자著者가 분명하게 말하려고 했던 애초의 순수한 관점觀點들은 [2] 우리에게 생각해볼만한 많은 단서端緖를 제공해 준다.


[1] 논쟁論爭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부각浮刻된 아프리카 중심주의(주로 제목에 관한 트집에서 발단發端되었다)의 대변자代辯者라는 인상과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받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인종주의人種主義에 대한 약간은 모호한 단정斷定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이분법적二分法的인 상대주의相對主義와 기존 학문에 관한 냉소주의冷笑主義를 비롯해 가능성可能性과 개연성蓋然性의 구분을 어렵게 만든 일부 설명방식 등


[2] 그동안 당연시되었던 역사학의 전제前提들을 하나하나 재검토하게 만듦으로서 고대사古代史와 고전학古典學 분야를 일종의 자기만족에서 깨어나게 했다(Burstein*Lerner*Levine*rogers*Michilini).



<버낼>의 [수정고대모델]에 대한 논쟁論爭은 많은 부분 아프리카 중심주의 계열系列 학자들이 [블랙 아테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데 대한 비난非難에 집중된 반면 정작 그가 폭로暴露하고자 했던 19C-20C 학문의 정치성이나 기타 정치적 함의含意에 관한 토론討論은 거의 없다   <체릴Cheryl 존슨-오딤Johnson-Odim>


유럽이 얼마나 똘똘 뭉쳐 고군분투孤軍奮鬪해왔는가를 보여주는 방법을 유럽문화의 우월성優越性 자체自體에 의문을 제기提起하는 것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몰레피Molefi 케테Kete 아산테Asante>


전통적인 학자들이 <버낼>을 굴복시켰다(박살냈다고도 말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급진파急進派 학자들의 지지支持를 무시無視한데서 연유緣由한 착시현상錯視現像이다...<버낼>이 이단(異端-비非 전공으로서 정통학설正統學說에 감히 도전한 망난이 즉 아웃사이더라는 뜻으로 썼다)을 주장하면서 거짓을 진실로 포장한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모든 학문은 <버낼>같은 한두 명의 이단자異端者가 있어야 창의력과 상상력을 유지할 수 있다...다소 진부陳腐한 사회학社會學의 상식常識이지만 학자들이 해석을 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주변의 지적知的*정치적*문화적 상황에 대단히 큰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은 올바르다.   <쟈크Jacques 벌리너블라우Berlinerblau>



우리가 이쯤에서 주목하는 시사점示唆點은 다음과 같은 <버낼>의 주장이다.   그 당시 시대정신時代精神과 사관史觀들을 지배하고 있는 기존 학설學說들이 태어난 배경과 고정관념固定觀念의 답습방식踏襲方式과


그리고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는 [변종사학變種史學]과 [민족사학民族史學]의 지루한 갈등葛藤 원인을 좀 더 명확하게 적시摘示해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기 때문이다.   즉 [아리안 모델]이 세기世紀에 걸쳐 지속적인 힘을 축적蓄積하고 있었던 이유는...



1) 태생적胎生的으로 국가의지國家意志와 결합結合된 [결정론적決定論的 학설學說]은 새로운 증거의 발견이나 발전된 기법技法으로 등장한 학문 내적內的인 이유로 변경되거나 부침浮沈하지 않는다(J. F. 상폴리옹의 로제타스톤과 오벨리스크 해독解讀으로도 이집트에 대한 서구西歐의 기본적인 시각視覺에 중요한 변화를 주지 못한 사례事例).


2) 당시를 관통貫通하고 있던 시대정신時代精神을 기반으로 나타난 속성屬性으로 말미암아 고대古代 텍스트에 대한 차원次元 높은 비판이나 방법들의 발전도 이렇다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역사언어학歷史言語學이나 문헌비교학文獻比較學의 발달이 인도유럽 어족語族의 경우처럼 오히려 필요한 부분만이 인종주의人種主義와 유럽중심주의에 적용되는 사례事例).


3) 제국주의帝國主義가 채택採擇한 [아리안 모델]은 새로운 증거나 연구 기법技法으로 볼 때 좀 더 타당하다고 간주看做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배적이었던 시대조류時代潮流에 가장 합당한 형태로 왜곡歪曲된 논리論理로서 무장武裝되었기 때문이다.



고대古代 이집트나 페니키아의 능력이 월등越等했던 이유는 주력主力으로 포용包容했거나 권력을 지배하였던 집단인 <히타이트와 힉소스>처럼 대부분 유목遊牧이나 해상활동海上活動에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대부분의 고대사古代史 학자들이 주장한 사실과 한참은 더 올라간다.   이러한 논리적 기반을 바탕으로 <버낼>은 새로운 역사해석을 시도한다.



1) 유럽 인들의 통설通說인 [같은 인종人種인 북방 도리아 인人 침공侵攻-그리스의 암흑기暗黑期 도래到來-BC 8C 좀 더 세련된 자생적自生的인 그리스 정주문화定住文化 발생-서구西歐 문명의 맹아론萌芽論]은 거짓이다.


2) 진정한 문명의 전파는 근동세력近東勢力에 의한 정복征服과 식민지植民地 건설 그리고 무역貿易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래서 그리스의 암흑기暗黑期나 미케네 청동기靑銅器 문화의 단절斷切은 가상假想의 드라마이다.


3) 즉 우리는 고대문명古代文明의 개시開始에 있어서 [아시아-동방東方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문화의 축軸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이 이론理論이 등장하고 논쟁論爭이 격화激化된 시점時點이 1980년대라는 사실도 우리의 경우와 대비하여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 무렵에 성별性別*인종人種*성적취향性的趣向*장애障碍나 나이 등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모든 행위에 관해 논쟁論爭하는 풍토風土가 거세어지면서 이윽고 <문화전쟁>으로까지 확산擴散되고 있던 때였음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이와 더불어 <버낼>이 도입導入한 [경쟁적 타당성]이라는 역사적 추론推論의 공인화公認化 과정도 눈여겨 볼 까닭이 있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문제의 원인이 고대사분야古代史分野가 불확실성으로 점철點綴되어있다는 사실을 연구자들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1) 일부 기록은 아직도 미해독未解讀이고 어떤 문명은 문자文字가 아예 없을 정도인 만큼 증거가 충분치 않음이 필연적이다.


2) 수수께끼 같은 유물遺物이나 유적遺蹟만 남아 있거나 어떤 문명의 단편적인 측면側面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3) 언어학적言語學的인 증거도 양量이 매우 적고 불확실함이 많다.


4)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放射性炭素年代測定法을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은 유물遺物의 연대추정이 고무줄 같아 문제의 소지가 많다.



그런데도 학자들은 <그런 가능성에 대한 고고학적考古學的 증거는 전혀 없다.   따라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거나 <그러한 현상을 입증立證할 고고학적고고학적 증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그런 것은 사소하거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라고 일소一笑에 부친다.  


비록 현재까지 극도의 찬반양론贊反兩論 [1] 으로 갈려 팽팽하게 맞서있지만 고대古代 역사에서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집중되어 있는 쟁점爭點들을 분석할 때만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시사점示唆點으로 그가 주장하는 결론은 아주 분명하다.   이를 [과학적 타당성]과 [침묵沈黙으로부터의 논증論證 Argument from Silence] 그리고 [패러다임의 전환과정]이라고 한다.



1) 고대古代에 관한 지식은 주로 추론推論이거나 각종 연구를 통한 추정推定의 집적集積인 경우가 많으므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론이 상대적으로 타당성이 더 있느냐? 덜 있느냐? 정도에 불과하다.  


  고대古代 세계로부터 전해 진 역사적 증거는 대단히 불확실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이 확고부동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提示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역시 대단히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이다.


2) 따라서 경합競合하는 여러 이론 가운데 가장 타당한 것처럼 보이는 이론이 학자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학설學說이 된다.   그렇다고 합당合當한 그리고 과학적인 기준에 입각立脚해서 나머지 이론들이 잘못이라고 입증立證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새로운 이론이 입수入手 가능한 증거들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해준다는 걸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경쟁적 타당성]이다.


3) 그러므로 고고학考古學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고고학적考古學的 실증주의實證主義>는 관념觀念은 없다.   고고학자考古學者들이 어떤 형태의 유물遺物이 발견되지 않았다거나 극히 드물게 나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특정한 문화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걸 극히 경계한다.   이것이 바로 [침묵沈黙으로부터의 논증論證]이다.


4) 새로운 가설假說이 자리를 잡아가는 형태는 [패러다임의 전환-미국 과학사가科學史家이며 철학자인 토마스 쿤이 창안創案한 이론이다] 과정을 거친다.   즉 과학이론이 널리 수용受容되었다가 모순矛盾되는 증거가 누적累積되어 임계질량臨界質量에 달하게 되면 새로운 가설假說이 재빨리 그 자리를 대체代替하게 된다.


[1] [비판론자批判論者]는 대부분 기존의 전통주의자적인 학자들이며(Vermeule*Jasper Griffin*Guy Maclean Rogers*John Baines*Frank. M. Turner*Suzanne Marchand & Anthony Grafton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대안代案이나 새로운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자잘한 오류誤謬만 물고 늘어져 따졌다.


      [찬성론자贊成論者]들은 거의가 도전적이고 급진적인 수정주의자修正主義者 그룹이다(Lermer*Berlinerblau*체스터 스타*발터 부르케르트*몰리 마이어로위츠 레빈Levine*Molefi Kete Asante 등)



어떤 역사 서술敍述을 삐딱하게 보거나 그에 대해 동의同意를 보류保留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최고의 기준을 가져 마땅한 이들이 그 서술敍述의 진실성과 신뢰성을 높이 평가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역사가들 사이에 의견의 불일치는 대단히 심해서 남들과만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내놓았던 주장과도 모순矛盾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그것은 과다한 열정熱情 때문일 수도 있고 분노忿怒 탓일 수도 있고 실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모든 민족 또는 적어도 비교적 유명한 민족의 성향性向에 대해 어느 정도 일반적인 파악은 해두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기준에 입각해서 역사 서술敍述의 진실여부를 시험하고 개별적인 사안事案들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16C 프랑스 법학자法學者이며 사상가思想家  쟝Jean 보댕Bodin>  



<로널드 프리츠>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견해見解를 이렇게 밝힌다.  


[학자 특히 역사학자가 어떤 해석이 완전히 증명된 영구불변永久不變의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수정주의修正主義는 역사학의 여러 분야에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훨씬 기록이 많은 사건이나 시대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에 더욱 그렇다.   새로운 증거와 학문적 방법론은 세계관世界觀이나 이데올로기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역사 해석에 다양한 전환轉換을 불러올 수 있다.   세대世代마다 역사를 다시 쓰는 이유는 지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벌리너블라우>가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런 사정은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논문論文이나 책에서 새삼 언급言及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Heresy 181p-182p]



이 대목에서 자신만의 학설學說을 자손만대子孫萬代로 유지하기 위해 [과학적科學的 실증주의實證主義-과학적으로 입증立證된 증거만을 인정한다]를 방어벽防禦壁으로 쌓아 후진後進에게 물려준 <이병도李丙燾> 씨의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실 <버낼>의 [블랙 아테나 이론] 가운데 핵심부분은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일부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추세趨勢였고 여러 학자들도 그런 점을 누차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도 유독 그에게만 공격과 비판이 집중되는 이유는 그의 학문적 소양素養이나 지식에 대한 관념이 특히 광범위하고 자기만족적인 확신에 차 있기 때문이다(로널드 프리츠  사이비역사학의 탄생 398p>.



고대사古代史 전문학자專門學者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대로 고대古代의 텍스트를 <마틴 버낼>보다 훨씬 덜 신뢰信賴한다.   반면 <버낼>은 고대사古代史 전공자專功者들보다 고대古代 텍스트를 훨씬 더 신뢰信賴한다.   <자크Jacques 벌리너블라우Berlinerblau  Heresy in the University  1999  34p>



마지막 장   사족蛇足 - 더 높고 더 깊고 더 넓은 곳을 향하여!!



거짓이 역사인식에 악영향惡影響을 미칠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일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소신所信과 학파學派에 따른 당파성黨派性이다.   <14C 아라비아의 위대한 비종교적非宗敎的 역사철학자歷史哲學者 이븐Ibn 할둔Khaldun의 책  35p>



실제로 오늘날처럼 대중문화나 인터넷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체계>가 굳게 자리 잡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좋은 증거와 나쁜 증거 또는 논리적*경험적 추론推論과 인상적이지만 공허空虛한 수사修辭를 잘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현재의 학교學校 [국사교육國史敎育]은 우리들에게 비판적 사고思考를 제대로 키워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사이비>들이 판을 치고 어수룩한 기존 관념觀念에 빠진 사람들이나 창의적創意的인 반대 증거가 있음에도 그저 뭔가가 있기 때문에 유지되겠지? 라고 믿고 싶은 사람들은 오래 동안 지속적으로 마취된 잠에서 쉽게 깨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진실은 하느님 편이었기에 이 세계에서 현재는 가장 현명하고 모범적인 진정한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는 학설學說들이 처음에는 기존 학문의 지지자支持者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를 단 한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변종사학變種史學]과 같은 비이성적非理性的이고 비과학적非科學的인 탐구探究 자세나 비역사적非歷史的인 궤변詭辯과 망상妄想은 나오지 않는다.



1)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太陽中心說]이 나오자 기존 학자들에게 심각한 저항抵抗을 받았고 여러 세대世代에 걸쳐 외면당했다.


2) <갈릴레오>의 [지동설地動說]은 종교재판宗敎裁判에서 이를 부정否定하도록 강요받았다.


3)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이 나오자 사람들은 창조설創造說에 대한 신성모독神性冒瀆으로 간주看做하여 온갖 비난非難을 퍼부었다.

 

4) <알프레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大陸移動設]이나 판구조설板構造說은 비웃음 속에서 완전히 무시당했다.



[진정한 학자]들에게는 진실의 발견 또는 최소한 가급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들이 최선最善의 과제課題이며 양심적인 학문 연구이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를 확증確證하려고 가능한 한 모든 증거證據들을 두루 살핀다.


그러나 [사이비학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제까지 설명한 내용처럼 자신을 태어나게 해주고 먹여살려준 한 가지 학설學說만을 죽으나 사나 고수固守하면서 무수정주의無修正主義를 고집하는 가운데 같은 논리論理를 재탕 삼탕으로 우려먹는다.   


하지만 [민족사학民族史學]에서는 이들이 일부러 빼 놓거나 애써 무시하는 진짜 중요한 정보와 증거가 무엇인지? 뻔하게 알고 있다.   아울러 어떤 책을 읽으면서 작가作家가 당연히 진실을 찾고자 성실히 노력했을 것이라고 믿는 일반 독자讀者들이 그러한 신뢰信賴를 배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게 안타까운 마음에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을 외롭게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심정으로 태어난 [민족사학民族史學]의 가설假說들은 현재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허수아비의 오류誤謬]라는 기만적欺瞞的인 술책術策 때문에 <사이비>로 매도罵倒당하는 악의惡意에 찬 비난非難 속에 비극적인 형태로 잠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