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8. 1. 21:57

 

 

[앵무새 죽이기] 소위 대륙설에 대한 고찰...반론

 


시작은 환단고기로부터였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역사란 모름지기 위대해야만 합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매우 크거나,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그러니 매우 오래되고 매우 큰 것을 만들어야 했지요.   그래서 환단고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중국을 가르치고, 만주와 바이칼 호를 넘어 시베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수밀이 국같은 구절을 넣어서 아시아 전역을 아우를 수 있었던 점도 마음에 들었죠.


그런데 어떤 인간이 이상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쥐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삼국사기를 검토한 이 사람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 땅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거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메뚜기 피해가 적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메뚜기 피해가 발생할 수 없다.   토함산은 화산인데, 우리나라 토함산은 화산이 아니다.   지진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뭄과 홍수의 기록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이 중국 땅에서 발견된다는 것.   뭐, 대강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고려사나 조선사에도 제시한 증거들이 모두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메뚜기 피해도, 토함산 문제도, 지진 문제도, 가뭄과 홍수 문제도 모두 후대 기록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려사를 보니 삼국시대 지명 계승 관계가 일목요연하게 나옵니다.   거짓말(사실은 무식한 거였죠.)은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승복했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당시 재야끼리도 싸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훼손하는 자들이라고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이들 대륙○들을 욕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제시된 증거를 모두 무효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고려가 중국 땅에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증거는 조선에도 있었는데, 왜 고려까지만 중국땅에 있었다고 주장했을까요?   그것은 그동안 환단고기 주창자들이 죽어라 조선을 욕했기 때문에 심리적인 저항에 걸렸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재야의 주장은 세갈래로 쪼개졌습니다.


첫번째 부류를 환단고기 정통론자라고 부르죠. 이들은 낙랑군 등 한의 동방변군(이른바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없었다는 정도로 만족합니다. 임승국이 이 부류에 속하죠.


두번째 부류는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만 중국 땅에 있었다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소수입니다. 이들이 등장한 배경은 좀 특이합니다. 이들은 서울대 박창범 교수 때문에 등장한 사람들입니다. 박창범 교수가 삼국사기 일식 관측도라는 것을 내놓은 덕분에 그 내용에 맞춰서 삼국이 중국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창범 교수의 연구를 따르면 통일 신라 이후는 한반도에 정착하고 있으므로 그 주장에 착실히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부류는 고려 말에 이성계가 무주공산이었던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주장입니다. 이중재가 이 주장의 대표주자죠. 이 사람들은 한반도 안의 조선 이전 유물들은 다 이주하면서 들고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경주의 왕릉 같은 경우도 모두 조선 시대에 축조한 것이라고 주장하죠.


다보탑, 석가탑 등 삼국시대 탑들은 어찌 가져왔는지, 한반도 안에 있는 고인돌은 누가 세웠는지, 고려 청자는 어디서 나온 건지 물어보면... 네! 다 가져온 거라고 합니다. 사람이 움직이면 유물도 따라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당연히 이해했겠지만, 세번째 주장은 너무 말이 안 되는 거라 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화가 두 방향이었죠.


그 한 방향이 네번째 부류입니다. 이들은 한반도 내의 유적을(유물은 들고 다녀도 유적이야 못 들고 다닌다는 상식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결하기 위해 클론설(이름은 내 마음대로 붙였습니다.)을 주장합니다. 한반도에도 삼국이 있었고, 중국땅에도 삼국이 있었다는 것이죠. 고구려는 그냥 영토를 널찍하게 확장하면 그만이었고, 신라는 서신라, 동신라로 나눕니다. 백제도 반도백제와 대륙백제가 있었던 것으로 만들죠. 신라는 정말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나라가 됩니다. 교통로도 없는 쪼개진 나라가 되거든요. 하지만 그런 게 무슨 문제입니까? 이제 한반도 내의 유적을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부류는 더욱 황당한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이들은 유적 유물 같은 것은 해결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유적, 유물을 만든 사람을 들이대주면 되는 거잖아요? 한반도의 유적 유물을 만든 이들은 '왜'입니다. 한반도는 왜의 땅이었던 거죠.


그럼 언제 우리가 한반도에 와서 살게 된 걸까요? 그 문제를 놓고 다시 한번 분열하게 됩니다. 분열된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고, 이 동네 이야기부터 하죠. 우리가 이땅에 살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라고 주장합니다.


왜 일제가 한반도를 한민족에게 내주고 자기들은 섬에 가서 살았는지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주장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중국 땅에 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증인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때 국민들을 세뇌시켜서 모든 기억을 지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극단적인 여섯번째 부류가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우리는 한민족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본인입니다. (그럼 일본인은 뭘까요?) 한민족은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얄타회담 때 한반도의 왜인들에게 너희는 한민족이야라고 세뇌를 시켰답니다. 이 역사공작대의 활약은 '맨인블랙'을 능가합니다.


삼국재대륙설이든, 고려재대륙설이든, 조선재대륙설이든 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질문 중 하나는 그럼 중국은 어디 있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유방은 로마인이며 항우는 파르티아인이라는 주장.

장안은 티벳의 라싸라는 주장.

중국은 감숙성에 있었다는 주장 등등.


그런데 이런 주장에는 난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분명히 해동海東이라 일컬어지고, 중국의 동쪽에는 바다가 있고, 우리나라의 서쪽에도 바다가 있거든요.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있는 바다 - 서해가 걸림돌입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은 해海는 바다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쯤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가 없는 거죠. 사서의 임의왜곡을 시작하더니, 더 이상 우길 수가 없게 되자 역공을 취했습니다. 역시 공격은 최선의 방어죠. 이들에게 남은 무기는 딱 하나였습니다. 지명입니다.


중국은 오랜 역사와 넓은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신촌'이라는 지명을 숱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편번호 입력하면서 보면 같은 동명洞名이 얼마나 많은지 금방 알 수 있죠? 중국 역사 5천년 동안 나온 지명을 다 훑어내린 다음 비슷한 이름만 발견하면, 우리땅이라고 깃발을 꼽습니다.


그것이 거리도, 방위도, 시대도 맞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자도 틀리다는 것쯤은 이들에게 아무 문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을 속이는데는 그정도면 충분하니까요.


어려운 한자가 줄줄 나오고 디립다 긴 글을 써놓고 "봐라! 이러니 대륙설이 진실이니라!"라고 외치면 그것만으로 기가 질린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주니까요. 그리고 합리적인 반론, 즉 백제 서쪽에 있는 바다는 어디 갔어요와 같은 질문은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무시할 때도 좋은 무기가 있으니까요. "저 사람은 이병도 식민사관에 매몰된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 논의가 끝납니다. 역시 식민사학을 공부한 사람은 엉터리 주장을 하는군. 이렇게 거들어주는 사람들이 나오니까요. 역사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실증 환단고기]나 [신라국가형성사연구]나 똑같이 그저 한권의 책일 뿐입니다.


A는 [실증 환단고기]를 전거로 들고, B는 [신라국가형성사연구]를 전거로 드는데 이런 식으로 서로 수십권의 책을 들이대면서 "내 말이 옳아"라고 외치니까 일반인은 "뭐가 진짜야?"라고 이야기하게 되죠.


그런데 B는 식민사학과 출신이고, A는 우리민족이 위대했다고 주장하는데 B가 속절없이 자꾸 딴지를 거는 것 같단 말이죠. 까짓거 중국도, 일본도 다 거짓말하는데 우리도 하면 어때!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들면 A가 드는 전거의 불합리성은 따져볼 필요도 없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학문이 아니라 그냥 믿음이죠.


보는 시야가 좁아지니 자기 신념에 대드는 인간은 모두 혼내줘야 합니다. 그러니 반대 주장을 보면 바로 욕부터 나가죠. 매사를 이중잣대로 판단합니다. 자기 주장과 같은 사람은 욕을 해도 되지만 반대편에 선 인간은 투덜대기만 해도 인간성 더러운 놈이 됩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딱 자기가 내놓은 증거를 반박하지 않으면 반박당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것도 100% 반박을 하지 않으면 반박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제는 100% 반박을 당하면, 그때는 반박한 사람이 옹졸한 것이 되는 거죠. 그러니 애초에 일부를 반박하든, 전부를 반박하든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겁니다. 애초에 진실을 알겠다는 생각이 없으니까요.


부디 이 단계까지 망가지기 전에 제 블로그에서 의심하는 의식을 조금이나마 되살리는 분이 있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합니다.



[앵무새들의 합창]


<MrNoThink>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다카키 마사오는 최면 능력자... 였다는 이야기가 되버리는 건가요. 

<초록불>        MrNoThink님 / 증산도와 보안사 개입설 같은 이야기는 뺐습니다...^^;; 

<소년H>        안녕하세요. 처음 글 씁니다. 중원설의 가장 큰 문제는 '다 좋은데 그럼 여기 사는 우리랑 뭔 상관이냐?'인데 뒤로 갈 수록 그건 아예 더욱 황당해지는군요. 좋은 글 감사드려요. 

<功名誰復論>   만주 피라미드라고 떠도는 사진이 발굴조사 다 끝난 서안 한나라 무덤들이란 걸 알고는 항복! 이란 소리만 나왔습니다. 어디서 보니까 한나라 왕둘 무덤이면 낙양에 있어야지 왜 서안에 있냐는 소리까지 하고 있으니 기가 차죠. 

<ExtraD>       갈수록 황당해지는 정도가 정말 황당할 지경입니다. 

<地上光輝>     어이구, 판타지 소설 제대로 쓰는군요ㅡㅡ; 

<이준님>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재미있는건 저런 주장 자체를 메이저 언론에서 꽤 잘 다루어준다는 거죠. 박창범 교수 학설이야 신동아에서 꽤 자주 다루어준 걸로 압니다. (뭐 사실 서울방송에서도 대륙 조선설을 다루어준 적 있지만 이건 거의 "기인열전" 수준으로 다루었으니)


                3) 내용 자체는 황당이라는 말도 아까운 수준인데.. 사실 다른 진리도 저런 식으로 왜곡하는 건 "업계의 관행"이자 "이미 파악된 공격패턴"이거든요 -_-;;; 이념때문에 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이 왜곡되었던게 남과 북 공통이니 그렇지요. 뭐 70년대 "진짜" 김일성에 대한 수많은 연구서나 김일성 열전 (그러니까 김일성이란 사람이 6~7명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한심한 김  일성이 나머지 김일성의 업적을 훔쳐서 북한 정권의 수장을 한다는 -_-;;;)에 평생을 바친분도 있지요. 뭐 대륙조선설에 필적하지 않습니까?

<이준님>       ps: 모 유명한 극우(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논객은 뭐 "좌파에 의해서 왜곡된 5.18의 진실"을 찾는다고 요새도 증언자를 찾아 다닌다는데. 정신 나간 사람들은 어디나 있나봅니다. 

<초록불>       소년H님 / 반갑습니다. 사실 세부적인 변수는 저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훨씬 더 황당하답니다...^^;;


                功名誰復論님 / 서안 오릉원의 경우 환○들은 절대 인정 안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릉원의 박물관도 우리나라 진실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라는 주장도 보았습니다. 거기서 발굴된 단군조선의 유물을 중국이 다 빼돌렸다는 인간도 있습니다. 근거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죠...^^;;


                ExtraD님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오류를 찾아냈다거나 페르마의 정의를 몇 줄로 증명했다고 하거나 영구기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거나 천동설을 주장하는 뭐 그런 인간들(크랙풋이라고 하던가요?)과 닮은 꼴이랍니다...^^;;


              地上光輝님 / 저같은 죽작가보다 더 장사가 잘 될 겁니다.


              이준님 / 이 사람들 주장 중에는 5.18이 중국 광저우에서 일어났다는 말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로서도 설마... 싶습니다만... 5공재대륙설이라고 하던가... 원... 

<서누>       그쪽계열을 그냥 판타지소설동호회정도로 여기고 있었는데,,,, 초록불님 블로그에서 가끔 목격되는 사태를 보면, 그런 믿음이 의외로 널리 퍼져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초록불>     서누님 / 가령 붉은악마의 상징 앰블럼인 귀면와를 [치우천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환○들의 대단한 업적이랍니다. 

<比良坂初音>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었군요-;   저정도까지 중증이었을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이건 뭐 결과를 정해놓고 사료를 끌어다 맞추는 억지 수준조차도 이미 한참 넘어서 있군요.   최소한의 상식선 조차 없는 주장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역사가지고 하는 DDR은 좀 안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catnip>    읽다가 결국 몇대목은 뛰어넘었는데....저런 식의 굳건한 신념과 믿음은 아예 아무것도 없는 저보다 나을게 없군요.-_-;; 

<실버>      우와...저렇게까지 이야기가 진전되어 있었군요. 그냥 환타지 민족주의 소설이나 써서 팔면 딱일거 같은 내용들이네요.(저런걸 믿다니!!) 

<초록불>     比良坂初音님 / 이성적인 사고가 이미 막혀버린 사람들입니다.


             catnip님 / 아니죠. 이 사람들은 최하층의 사람입니다. 잘못된 것이라도 믿어야 마음의 평안을 얻는 거죠.


             실버님 / 그런 소설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이준님>    붉은 악마가 치우천왕이라는 이야기는 무려 국영방송 청소년 퀴즈에도 자랑스럽게 문제로 나왔습니다. 조선일보쪽에서는 거의 진리로 여기죠. (뭐 연개소문 중원진공설도 꽤 사실처럼 다루더군요. 이 신문의 칼럼리스트) 

<초록불>    이준님 / 극우민족주의에는 좌도 우도 없습니다. 

<정시퇴근> 치우천왕이 아니었군요..-0-;;;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환단고기에 대한 예기는 풍문으로 듣고 있었는데..제대로 한번 알아봐야겠네요..초록불님이 쓰신 환단빤에 대한 글들을 그뒤에 읽으면 좀더 확실하게 알수 있겠군요 -0-;;;; 

<Kim_Hyun>환○ = 정신적 자위 중독자... 죠. 허허. 

<초록불>   정시퇴근님 / 조심하세요... 치우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에 몇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역사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검색하셔도 되고요.)


            김현님 / 문제는 잘 풀리신 건가요? 

<관포>     더 심각한 문제는 대다수의 한국민들은 무의식적으로 저런 주장에 쾌감을 느끼고 동조한다는 것입니다. <연개소문>에서 치우천왕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에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 

<大逝遠反> 환단고기가 시작이 아닙니다. 신채호가 그 시초가 아니겠습니까. 그 양반이 헛소리나 좀 안했으면. 

<로리>     삼국 중에서 백제나 고구려가 중국 대륙에 잇었다라는 것은 웃으면서 농담으로 받아드렸는데 벌써 저런 아스트랄 영역으로 진출했다라는 겁니까? 

<愚公>     '오공화성설'도 있습니다. 제 5공화국이 '마르스'에 있었다는... -_-;; 

<luxferre>  일단 나무에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면서 그러니까 어려운 한자 빼고 내가 알아듣게 설명을 하라고 갈구면...(칸트까지 갈거 무어있겠습니까) 

<초록불>   관포님 / 다 수요가 있으니 팔리는 상품이 되는 것이죠. 

<초록불>   大逝遠反님 / 하하... 

<초록불>   로리님 / 백제의 요서경략설 같은 건 환○들에게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초록불>   愚公님 / 있기로는 환국은하설도 있긴 합니다만... 그거야... 

<초록불>   luxferre님 / 그 이야기 지난 번에 치오네님이랑 농담한 것 중에 있었습니다. 신주쿠 사학도 납치사건... OTL... 

<어부>     어익후, 진짜 미치겠네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다크엘>   ..에휴..읽다보니 더 황당하기 그지 없군요..에구구...뭐 저 같이 전문적인 학식이 없는 일반사람은 그냥 알아서 되겠지. 해버리고 냅두는게..핫핫핫 

<고독한별> 잠시 지나가다가 들렀습니다만... 더 합리적인(?) 사람도 있더군요.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와 유라시아 유목민족은 모두 동족들이기 때문에, 아틸라도 한민족, 칭기스칸도 한민족, 아골타도 한민족, 누르하치도 한민족... 그러므로 로마 제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모두 우리 민족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거죠. 위에 예시하신 주장들을 보니, 차라리 아틸라가 배달 민족의 자랑스러운 조상이라는 주장이 무진장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OTL  아참, 실례가 안된다면 링크를 데려가겠습니다. 

<초록불>   어부님 / 대단하죠...


             다크엘님 / 낚이지만 않으면 해는 없습니다.


            고독한별님 / 인간은 결국 하나의 조상에서 진화했잖습니까? 인류의 역사가 결국 우리의 역사인 거죠. 

<리라이벌> 환국의 대장정이라는 글도 봤습니다만....... 도대체 유태인과 수메르인의 차이를 알고서 환국에서 부터 나온 뿌리가 유태인과 수메르인이라고 주장하는건지..... 유태인은 유일신 사상이고 無->有로 만드는 사상이고 수메르인은 합리주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有->有로 형태만 변환한다는 사상이건만........ 뭐 저거 말고도 많지 않습니까?


            대표적으로 광개토칸,나폴레옹과 히틀러는 환국에서 뻗어나온 인물이라던가~ 얼마전에 부산 중앙도서관에 공부하러갔다가 열람실에 들렀더니 말이 안나오더군요...... 저런책이 버젓이 어린친구들 손에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屍君>     안녕하세요, 지상광휘님 댁 포스트 링크를 타고 넘어왔습니다.   ...아직도 저런 허황된 얘길 믿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부끄럽군요. 완전 일본 우익 저리가라 수준입니다. 

<개멍>     아무상관없는 얘기지만 (언제는 상관있는 댓글 달았던가!) "크랙풋" 이라고 적으신건 아마 crackpot (크랙폿) 을 말씀하시는거 같네요. 한마디로 "뽕맞고 하는 헛소리" 라는 표현이죠. 

<초록불>  개멍님 / 넵. 블로그를 살펴보면 [크랙폿]이라고 제대로 적은 것도 있습니다...^^;; 

<saunter>  저 상상력으로 차라리 글을 쓰지. 그럼 오히려 존경받을 가능성이 눈꼽만큼은 생길텐데. 이왕이면 부조리극물로-_-.. 

<초록불>   saunter님 / 그쪽 블로그에서 그런 일을 당해보셨으니 제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Cuchulainn> 어익후 -ㅅ-;; 캐난감이군요.   *고등학교때 "한"단고기를 재미있게 읽던 기억은 납니다만... 어릴때 공상과학 읽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는 책이 아닐런가 싶습니다.* 

<현묘>      초대 자칭 재야사학자란 인간들을 재외하고 80년대 중반 부터 pc통신 하이텔 등지에서 서식하기 시작한 환○란 종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따지고 보면 이들의 등장은 학교교육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학교다닐때 국사수업을 하면 교사들이 고구려 이야기만 하면 100%쓰는 단어가 있지 않습니까? "광활한" 바로 이단어...그리고 지금의 영토와 비교하면서 조선을 비하해왔습니다. 그 덜떨어진 선생들의 수업이 환○의 등장을 부추긴겁니다.


             자국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고 뭔가 큰것을 숭배하고...(흡사 남근 숭배사상 비슷한것 같습니다. 왜 남근석 같은것들은 비정상적으로 크게 만들지 않습니까? 큰것을 부러워 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러다보니 대물이었던 역사를 찾아 뒤지게 만들고, 없는것 같으니 만들고 조작하고 엉터리를 믿는 신흥 사이비교를 만든것 아닙니까?


             학생들의 가치관이란게 뭐 그렇게 만들어지는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부분은 교사들의 영향이 작용하지요. 요즘도 학교교육 역시 그럴껄요?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를 끌어들인 민족적 배반으로 규정하는 교사들 말입니다. 결국은 그것 역시 대물 숭배사상의 일환이지 싶은데 말입니다. 

<초록불>    현묘님 / 교과서가 그렇게 된 데에는 역사학계에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현묘>     초록불님//사실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국사교사들이 수업시간에 한말들은 대학다닐때 배운것일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록불>   현묘님 / 음...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사회과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다른 학과 출신들이 역사를 가르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물론 마찬가지로 사학과에서 교직을 이수한 경우, 사회와 정치경제 등을 다 담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타과 출신 선생님들이 환○ 기질을 종종 보이더군요. 

<정성일>   초록불님에게 고약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대륙삼국설이 태동한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첫째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이후 신라본기의 첨해이사금에서 흘해이사금까지의 왕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대륙에 있던 신라가 현금의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설입니다.


            둘째는 박창범/라동현선생의 일식기록 분석으로 인한 일식 최적 관측지 기록일 것입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일식기록을 첨삭하지 않았다면, 두 분 선생님의 과학적 실험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물론 신뢰수준은 낮지만 그럴 여지가 전혀없는 것은 아니지요.

 

            셋째는 중국25사의 기록입니다. 중국25사의 기록은 중원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중원의 사가들이 살피어 잘잘못을 크게 따지지 않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지금 그것을 비판 없이 무조건적인 수용도 잘못이지만, 때로는 일부 반박 논리에도 잘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추가로 현재 중공이 신라에 대해서는 동북공정 문제를 일으키지 아니하나 만약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우리는 어떤 대응논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중국25사에서는 신라를 진나라 망명유민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본래가 중국백성이라는 논리가 되겠지요. 이것은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에 해당하는데 참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논리입니다.


            혹은 저를 이병도의 추종자 또는 이병도의 망상에 물든 자로 몰아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강단이나 재야사학 어느 곳으로 불려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강단이나 재야나 다소 논리에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 안고 가야할 동지입니다.  강단이나 재야사학이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첨해이사금에서 흘해이사금까지의 왕의 계보가 문제가 있음은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분석결과가 서로 다르다고 봅니다.


            강단에서는 언급자체를 회피하거나, 계보를 조작하려는 시도를 재야에서는 공백상태로 보고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오는 시기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륙설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봅시다.


            ① 첨해이사금에서 흘해이사금까지의 왕의 계보를 부정한다면, 왕의 성씨가 박·석에서 김씨로 바뀌었으므로, 중공에서는 서로 다른 왕조라고 주장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신라와 대륙의 신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왕조라고 주장을 할 텐데 동북공정의 대응 논리로 적정한지요. 또 박·석·김을 동일한 족속으로 본다 하더라도 나라를 옮겨 세웠다고 하기엔 거리 또한 너무 멉니다.

 

            그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면 왕실이나 종실은 좋은 배를 타고 옮겨 가겠지만 그 안에 살았던 백성들도 왕실과 똑같은 배를 타고 건넜겠습니까. 어차피 피지배층인데 누가 왕이면 뭐 합니까. 누가 더 자신에게 잘 해주냐가 문제고 자신의 모든 기반을 포기하고 옮기겠느냐는 생각해 보십시오. 남의 땅이라도 벌어먹을 수 있으면 그게 더 나은 것이지 이동 중에 죽을지도 모르고, 옮겨가서 자신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옮겨가지는 않지요. 어찌됐든 절반 이상의 인구가 옮겨갔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② 대륙에 살던 사람이 한반도로 옮겨왔다면 사서 상에 최소한의 자료는 남아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인용한 사서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사서는 없고 그럴 거라는 設만 존재하지요. 그럼에도 대륙설을 확고히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이론은 이렇습니다.


            ① 초기 신라는 성씨로 왕위 승계가 되지 않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을 왕으로 세웠죠. 내물이사금 이전까지 아들이나 손자가 왕위를 승계 받는 숫자보다 동생, 조카, 사위, 왕비의 새로운 남편이 승계를 받는 경우가 훨씬 많았죠. 이건 성씨 불문하고 박·석·김으로 승계가 됩니다. 이는 성씨가 그렇다 뿐이지 박·석·김은 모두 한 조상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중원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② 중국 25사의 신라의 출자는 진의 망명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부 타당한 면도 있으나 잘못이 있습니다. 이는 조분이사금과 첨해이사금의 어머니이고, 미추이사금의 누나였던 옥모의 출신지를 말합니다. 옥모가 후에 진골이 되었는데 신라 초기의 진골의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옥모 - 홍모 - 아이혜 - 광명 - 보반’으로 여자쪽으로 계보가 이어집니다. 중국25사에서 말하는 여인국이란 바로 신라를 일컫습니다. 중국25사는 옥모의 출신지인 소문국을 신라의 출자로 봄으로 인하여 마치 신라가 진의 망명인이 세운 나라로 둔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소문국=동예=진한8국으로 정리된 앞의 저의 글을 보시면 알게 됩니다.


           ③ 신라는 수도를 옮긴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없다입니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발견된 고서에는 그런 내용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고 신라사초에 의하면 신라왕의 계보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신라왕의 계보뿐만 아니라, 금관가야의 청예왕과 거등왕의 재위기가 일치하고, 왜의 비미호의 재위기까지 일치합니다. 신라사초에 의하면 벌휴의 어머니 지진내례가 벌휴의 樹王으로 지정한 나무가 흘해이사금 시기에 부러집니다. 신라가 이사 올 때 아름드리나무까지 옮겨왔을 리는 없겠지요.


           ④ 이와는 별개이지만 공손씨가 성립한 곳은 마한입니다.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전에 공손씨가 있는 이유를 모르시죠. 공손씨가 마한에서 섰기 때문입니다. 마한 위에 낙랑이 있는 것은 공손씨가 남마한 위에 공손씨의 낙랑군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공손씨가 마한에 세웠던 낙랑과 대방2군은 궁준과 유무의 패배로 마한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즉, 진서 마한전의 마한과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제가 선 곳이 마한의 땅이자 대방의 고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 다른 땅이 아닙니다. 

<초록불>  대륙삼국설이라는 망상은 자신들을 초라하게 생각하는 열등감, 피해의식, 강박관념이 낳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진지하게 거론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허상이지요.




○○○○○○○○○○○ ∞∞∞∞※∞∞∞∞ ○○○○○○○○○○○



【들어가는 말】



먼저 언급할 점은 필자筆者가 아직은 [고려高麗-조선朝鮮]시대에 관해서는 지식이 짧아 함부로 거론擧論할 수 없으므로 부득이 삼국시대三國時代까지 해당하는 부분만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밝혀둔다.   이 점을 부디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두 번째로 말할 점은 이 사람의 전형적인 [침소봉대針小棒大와 핵심과 주변을 뒤섞어 잡탕 만들기] 수법이 다시 재발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민족주의 사학=판타지=막가파]라는 인상을 유도하기 위해 온갖 잡설雜說들을 모두 싸잡아 넣고 있다.   아래는 대표적인 사례事例들이다.


1) 역사란 모름지기 위대해야만 합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매우 크거나,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이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그러니 매우 오래되고 매우 큰 것을 만들어야 했지요.


➡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되었다.   즉 [자의自意이건 타의他意이건 간에 묻혀진 위대한 역사는 어떤 것이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하는 게 역사가들의 임무이다.   여기에서 매우 크거나 아주 위대한 관념들은 분명한 진실의 확인 과정에서만 이차적으로 입증된다]로 말해져야 한다. 


2) 어떤 인간이 이상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쥐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삼국사기를 검토한 이 사람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 땅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거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 자주 쓰는 <핵심흐리기>이다.   민족사학자民族史學者들이 살펴본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만이 아니다.   그리고 언급한 증거는 스스로 반박 가능한 것들만 골라 놓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필자筆者가 본론本論에서 그 핵심적인 논리論理를 전개하였으니 부디 좋은 의견을 주었으면 한다.   사실 본인들 스스로 쥐꼬리만한 생각에 연연하다보니 이런 엉뚱한 넌센스가 나오는 것이다.


3) 고려 말에 이성계가 무주공산이었던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사람들은 한반도 안의 조선 이전 유물들은 다 이주하면서 들고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경주의 왕릉 같은 경우도 모두 조선 시대에 축조한 것이라고 주장하죠.


➡ 그야말로 <침소봉대針小棒大>이다.    이 견해는 민족사학계民族史學界에서도 적지 않은 부분에서 지적받고 있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류本流가 아니다. 


4) 한반도의 유적 유물을 만든 이들은 '왜'입니다.   한반도는 왜의 땅이었던 거죠.  그럼 언제 우리가 한반도에 와서 살게 된 걸까요?    일제강점기라고 주장합니다.


➡ 이게 바로 [맨 인 블랙]의 전형典型이다.   이 사람들이 바로 이걸 발전시켜 저들끼리 <5공 대륙설>까지 자체 진화시키고 있다.   사실 [왜倭]란 존재는 그동안 너무나 판박이처럼 해석되어 왔다.   따라서 한반도韓半島 남부와 해안지역의 해상세력에 대한 존재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필자筆者도 이 글에서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혀 놓았지만 이를 유물상遺物相에 까지 늘려 잡아 한반도韓半島 전역으로 확대재생산하여 마치 민족사학자民族史學者들 전체의 입장처럼 재포장시켜 눈속임을 하고 있다.


5) 더 극단적인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우리는 한민족이 아닙니다.   일본인입니다. (그럼 일본인은 뭘까요?)...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얄타회담 때 한반도의 왜인들에게 너희는 한민족이야라고 세뇌를 시켰답니다.   이 역사공작대의 활약은 '맨인블랙'을 능가합니다.

 

➡ 한 마디로 [판타지]이다.   필자筆者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이니 더 말을 해서 무엇 하랴!   한번 그런 주장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내용에 관한 자료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왜국倭國의 도래인渡來人 형성설이나 북중국北中國 지역과 남동 중국의 고대古代 동방족東方族 정착경영론定着經營論은 필자筆者도 동의同意한다는 점은 명시明示해 주겠다.



아무튼 글 전체를 읽어 보면 그야말로 모범적인 <선동가>의 본보기와도 같다.   이런!!...이런...언급이 안 된 부분은 앞으로 전개할 글의 내용과 관계가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래의 내용은 논리論理고 뭐고 따질 수조차 없는 너절한 잡설雜說이니 언급할 가치도 없어 생략한다.



[보는 시야가 좁아지니 자기 신념에 대드는 인간이나 반대 주장을 보면 바로 욕부터 나가죠.   매사를 이중잣대로 판단합니다.   자기 주장과 같은 사람은 욕을 해도 되지만 반대편에 선 인간은 투덜대기만 해도 인간성 더러운 놈이 됩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딱 자기가 내놓은 증거를 반박하지 않으면 반박당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것도 100% 반박을 하지 않으면 반박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제는 100% 반박을 당하면 그때는 반박한 사람이 옹졸한 것이 되는 거죠.   그러니 애초에 일부를 반박하든 전부를 반박하든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겁니다.   애초에 진실을 알겠다는 생각이 없으니까요]




【본론本論에 앞서】



1. 그 무렵의 해양환경海洋還境과 船舶類型 및 항해여건航海與件 등을 고려考慮한 영향력 입증立證



대부분의 문명은 강과 바다에 접接한 지역에서 탄생했다.   인류 문명은 하천河川에서 내해內海로 그리고 대양大洋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겪는다.   <독일獨逸 지리학자地理學者  칼리터>



가. 내해(內海-inland sea)를 끼고 있던 민족들은 그 연안沿岸의 어느 지역이든지 식민지植民地를 건설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되었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고대 세계의 역사발전 과정에서 다른 한 축軸을 맡고 있는 [유럽문명]의 맹아萌芽는 지중해地中海를 젖줄로 삼은 지역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중해地中海야 말로 유례類例가 없을 정도로 세 대륙(大陸-유럽Europe과 아시아Asia 그리고 아프리카Africa)을 고스란히 품에 안은 전형적인 내해內海이다.


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일찍부터 해상활동海上活動이 싹을 틔웠으며 바다를 숙명적인 모태母胎로 삼아 거침없이 나아간 세력들이 대부분 한 시대의 역사를 창조하면서 그 이름을 빛내었다.   서西로는 이베리아 반도와 아프리카를 잇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부롤터 해협)의 안쪽 지대地帶와


동東으로는 소小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와 그 부근 일대 그리고 남南으로는 카르타고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북北 아프리카 해안지대와 북北으로는 로마를 비롯한 베네치아 왕국王國의 흔적을 품은 지중해 연안의 다양한 [도시국가]들이 주인공들이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내해문명內海文明]이라고도 칭稱할 수 있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현명하게 극복한 해양문화海洋文化의 축적을 밑거름으로 한 식민지를 바탕으로 제국帝國을 건설했거나 도시국가都市國家를 경영한 이들의 발자취가 화석化石처럼 남아있다.   숙명宿命을 은혜로 바꾼 모범적인 사례事例이다.  



1) <히타이트>는 BC 14C에 소小 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지중해 동부 연안까지 확장한 세력이다.   이들의 갑작스런 몰락을 바로 지중해를 통해 성장한 해양민족들의 침입으로 보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2) <에게Aegae 문화>는 BC 3000 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성장 한 해양기반문화海洋基盤文化로서 지중해地中海 동부 에게 해海 지역에서 기원한 그리스 초기 문명의 기원起源이라고 알려져 있다(크레타Creta-키클라데스 제도諸島-펠로폰네소스 반도半島-그리스 중부 해안과 테살리아를 포함한 그리스 본토本土).


3)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Egypt 사이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BC 1200년경부터 일어난 <페니키아>는 해안 지대에 근거를 둔 시돈Sidon*비블로스Byblos, *티레Tyre 등 서西 지중해 도시 국가都市國家를 거느렸다.  


  레바논 산맥의 목재木材를 벌목伐木하여 배를 만들고 이윽고 남南 스페인에서 잘 나가는 무역 국가인 타르테소스Tartessos를 멸망시켜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는 가운데 카르타고Carthago 등 많은 식민지를 지중해 연안에 건설하면서 북아프리카까지 손을 뻗쳤다.


4) <페르시아>는 이른바 <바다의 섬들이 다 우리의 것이다>라는 선언을 했을 만큼 전성기에는 지중해 북부의 마케도니아와 소小 아시아 그리고 남부 연안인 이집트에서 리비아까지 지배하였다.


5)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는 BC 500년부터 강력한 함대艦隊를 기반으로 지중해 연안의 패자覇者로 군림君臨했다.


6) <카르타고>는 BC 3C 전반까지 서쪽 지중해에서 최대의 세력을 형성했고 무역으로 번영했다.   근거지가 지중해의 요충지要衝地로서 해양교역海洋交易이 발전할 입지立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이베리아 반도로 흔히 에스파냐로 불린다)과 북 아프리카를 잇는 위치에서 BC 600년경 서西 지중해의 무역권貿易權을 완전히 잡고 코르시카 섬*사르데냐*에스파냐 등에 진출해 BC 6C 중반에는 시칠리아 전역全域을 장악하기도 했다.


7) <로마>는 포에니 전쟁에서 이겨 카르타고를 정복한 다음 동맹도시를 확장하는 전략으로 지중해의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했다.   이후 4C 동안 지중해를 <우리 바다 Mare Nostrun>라고 공언公言할 만큼 위세를 떨쳤다. 


8) <베네치아>는 AD 7C 말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해상중계교역국가海上中繼交易國家의 중심으로 등장하여 지중해 동부와 남단南端 지역에서 막강한 위력을 뽐냈다.


9) <오스만 터키>는 AD 14C 경부터 지중해에 발판을 마련하여 동부 연안으로 급속하게 팽창한 다음 이집트*알제리*리비아 등 북北 아프리카에 발을 뻗었다.   이윽고 이베리아 반도 연안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지중해의 패권覇權을 장악했다.



나. 내해內海를 터전으로 삼은 민족은 가장 먼저 바다를 이용한 교통交通의 이점利點을 활용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백제百濟나 신라新羅가 중토中土와 반도半島의 두 영역領域에 대한 직간접적直間接的인 경영이 가능하였던 원인과 그 저력底力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인要因이 서로 보완적補完的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여 진다.


사실 발해渤海와 동해(東海-우리 쪽에서 보면 서해西海)를 이어주는 동아시아의 내해內海는 [또 하나의 지중해地中海]이다.   따라서 언제든지 바다에 관한 획기적인 시각視覺과 경험적으로 쌓아올린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양海洋을 매개로 한 교류交流를 바탕으로 삼아 공통의 문화권을 형성할 충분한 필요조건을 갖출 수 있다.



1) 천혜天惠의 조건을 모두 갖춘 동아지중해(東亞地中海-East Asian mediterranean sea)를 품에 안았다는 태생적胎生的인 여건與件



[내해內海를 낀 동아시아 지역]은 한반도韓半島와 일본열도日本列島 서부 그리고 중토中土의 남부지방과 북쪽 발해만渤海灣 지대地帶로 둘러싸인 대양大洋에서 지리적으로 분리된 보금자리이다.   즉 여러 나라의 연안沿岸으로 둘러싸인 다국적지중해(多國籍地中海-multinational mediterranean sea)이다.


[동아지중해]는 가장 특별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해양환경(海洋還境-해류海流와 조류潮流 그리고 바람+연안沿岸의 지형地形과 지리적 요건)은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이 지역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주도主導한 세력집단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❶ 해류海流


전체적으로는 난류계暖流系인 쿠로시오黑潮 해류(海流-중토中土 연안-한반도韓半島-일본日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의 흐름 대帶에 주로 속한다.   그러나 내해內海에서는 발해渤海와 서해西海 북부에서 발원發源해 중토中土 연안을 따라 남하南下하다가 남중국해南中國海 방면方面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이 흐름이 7월-8월엔 상해만上海灣의 바깥 바다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반도韓半島 남부 지역으로 빠진다.   또한 항주만沆州灣 남쪽에서 올라오던 다른 해류海流는 동편으로 돈 다음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서부인 오도열도五島列島 방향으로 사라진다.


이런 흐름은 또 하나의 요인要因인 바람의 영향이 약한 시기와 장소에서 고대古代 사람들의 항해환경航海環境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❷ 조류潮流


항해(航海-특히 협수로狹水路나 연안항해沿岸航海)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한 물길>을 발견하고 선택(항해航海의 성격性格*방법方法*성패成敗 등)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요소는 조류潮流의 흐름이다.   그래서 이에 익숙한 집단들만이 그 지역에서 해상권海上權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세력화 될 수 있는 것이다.


內海의 조류潮流는 매우 빠르고 방향도 지역에 따라 편차(偏差-서해西海 동편의 맹골수도孟骨水道와 흑산제도黑山諸島와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와 경기만京畿灣*중토中土 연안의 주산군도舟山群島와 청도만靑島灣 등은 아주 빠르고 흐름이 복잡하다)가 심하다.


[원인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九法巡禮行記]에 나오는 재당신라인在唐新羅人들 가운데 <암해자暗海者>란 이러한 물길을 매우 잘 아는 항해자航海者를 말한다.



❸ 계절풍季節風


가장 결정적이다.   조난遭難의 대부분이 조류潮流 흐름의 잘못된 관측이나 거센 바람으로 물길의 흐름이 바뀐 결과이다.   내해內海에서 겨울에는 북서풍이며 때때로 편북풍偏北風*편북동풍偏北東風이 불고 여름에는 편남풍偏南風*편남동풍偏南東風이지만 4월 말*5월 초*9월에 부정풍不定風이 많다.


즉 여름엔 바람이 약하고 대부분 동남풍(東南風-4월 중순부터 시작*8월에 강한 바람*9월 이후 약해진다)이며 겨울엔 서북풍(西北風-9월 하순부터 시작*11월에 강한 바람*이듬해 3월 이후 약해진다)이 불어 [봄-여름]에는 주로 <중토中土 남방 ➡ 한반도韓半島와 일본열도日本列島>로의 항해航海에 [가을-겨울]은 <한반도韓半島와 일본열도日本列島 ➡ 중토中土 북부와 남방>으로의 접근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조건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으로 [동아지중해]의 모든 연안沿岸은 하나의 연결망으로 구성될 수 있었으며 또 그렇게 되었다.   특히 끈처럼 연결이 가능한 열도列島와 군도群島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다는 이점利點이 이를 징검다리로 활용하여 먼 거리 항해(지문항법地文航法)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2) 당시 다른 어떤 세력집단보다 월등越等한 선박제조기술船舶製造技術과 뛰어난 항해술航海術의 보유保有



돛을 단 범선帆船인 [박舶]을 창조創造한 사람들은 [집운集韻]에서 <만이蠻夷들이 바다에서 타는 큰 배를 박舶이라 한다.  蠻夷汎海舟曰舶> [광운廣韻]에서 <박舶은 해중대선海中大船이다>라 정의正義한대로 단연코 우리 민족이다.   즉 [노용해박櫓用海舶]이다(Joseph needam*Wang ling  중국中國의 과학문명).


여기에서 만이蠻夷는 그 무렵 [극동極東의 지중해地中海]이었던 발해渤海와 그 아래 동해東海를 주름잡으며 내해內海의 연안沿岸들을 쥐고 흔든 발해渤海와 동남해東南海의 동방족(東方族-百濟와 新羅 세력집단)들이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후술後述하기로 한다.


이에 반하여 한족漢族의 배는 어떠했을까?   이를 알려주는 기록은 [부桴를 타고 바다에 떴다.  乘桴浮於海-공자孔子 권5 공야장公冶長]과 [구부정한 사다리와 같은 모양의 주舟zhōu-갑골문甲骨文]이다.   즉 제주도濟州道의 방언方言으로 <테우>라고 하는 뗏목 배이다.  


여기에서 조금 발전한 것이 [통나무를 파서 만든 선船에 나무를 깎은 노(櫓-도棹)을 단 배  舟 船也 木爲舟剡木爲楫-설문해자說文解字]이며 <배 뒤의 타柁는 땅에 끌리어 정규定規의 배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큰 도櫂를 선미船尾에


엇비슷하게 장착裝着한 선미대도船尾大櫂가 <키>이었고 뱃사람들이 대나무 밧줄인 착窄을 당겨야 움직였다.  在後見柁曳且弼正舡不使柁...窄作也起舟使動作也-후한後漢 석명釋名>라 했으니 물이 얕은 강江이나 해변海邊을 운항運航한 도용강선(櫂用江船-노를 젓는 배)이다.


한족漢族들이 개발하여 사용한 배는 뗏목에서 진화한 [선船]이라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에는 이 둘을 합쳐 [선박船舶]이라고 한다.


일설一說에는 후한後漢 무렵 루선(樓船-높이가 10여 장丈되는 큰 배)으로 바다를 누볐다는데(주운관周連寬*장영방張英芳  漢代我國與東南亞國家的海上交通和貿易關係) 아마도 범선帆船이 아닐까? 라고 추정만 한다(장운범張雲軓이 최초의 범선帆船으로 기록되었다-후한서後漢書 권60 마융전馬融傳 영초永初 2년 조條).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 것은 내해內海가 비교적 안전하고 수심水心이 얕으며 기상氣象이 안정된 날이 많고 좋은 조건의 피항避巷과 기항寄港이 가능한 천연적인 항구港口나 섬들이 특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다. 내해內海를 흐르는 해류海流의 흐름을 이용한 [연안항해술沿岸航海術에서 근해항해기법近海航海技法-원양항해방법遠洋航海方法]의 발달이 연안경영지沿岸經營地의 확대를 자연발생적自然發生的이며 동시다발적同時多發的으로 촉진促進한다. 



우리는 고대古代의 항해航海가 아무나 배를 타고 운항運航하는 쉬운 방법이 아니라 세대世代를 이어 오랫동안 배를 만들고 별과 바람을 따라 바다를 누빈 특정한 기술력技術力을 발전시킨 특별한 민족에 의해 세습적世襲的으로 이어진 생활양식임을 다른 역사적인 기록에서 적지 않게 발견한다.


만이蠻夷 즉 강남동이江南東夷가 바다에서 타는 배를 박舶이라 했다거나(集韻  蠻夷汎海舟曰迫) 해중대선海中大船을 해박海舶이라 한다거나(광운廣韻) 진晋 무제武帝 태강太康 3년(AD 232)까지 건재健在하였던 복건성福建省의 신라해박(新羅海舶-내해內海를 수월하게 항해하는 노용해박櫓用海舶)들이라는 존재를 볼 때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가는 곳마다 식량을 주고 환대歡待하며 만이고선蠻夷賈船을 되돌려 보내 교交易을 해도...<한서漢書 권28 지리지地理志>



분명하게도 바다를 장악한 세력들이 만이蠻夷 즉 강남江南의 동방민족東方民族임을 알려주고 있다(해중대박海中大舶).   하지만 한韓*중中*일日 정사正史에는 이상스럽게도 유럽의 <바이킹>과 같은 어떤 두드러진 세력에 의한 해상활동 기록이 아예 없다.

   

특히 역대歷代 정사正史의 <식화지殖貨志>에 모든 경제활동이 언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무역상海外貿易商은 거론擧論되지 않는다.   [연안항법沿岸航法-근해항법近海航法]이라는 기본적인 항해술航海術을 자연스럽게 진화進化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천혜天惠의 내해內海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1]


[1] 한족漢族은 한漢 왕조王朝에 이르기까지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에서 줄곧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무제漢武帝가 비로소 동해東海 바다를 굽어보았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는 그들의 도읍都邑이 대개 중토中土 서쪽 깊숙이 박혀있던 <서안西安-장안長安>이었음을 보아도 명백하다.



왜 그랬을까?   해답을 푸는 열쇄는 오로지 하나다.   그들의 행적行蹟이 말살抹殺된 것이다.   그러한 민족의 활동이 도깨비처럼 사라진 것이다.   역사란 늘 [논어論語]에서의 말처럼 <술이부작述而不作-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무조건 정사正史만 옳다고 전제前提하여 거기에 달린 주석註釋만을 되풀이 인용해 온 훈고학적訓詁學的 접근이 문제였다는 말이다>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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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시사점示唆點이 있다.   상고上古 이래 발해渤海와 동해東海 바다는 황무지荒蕪地나 다름이 없었다는 환상幻想에 머물면서 같은 시기를 거친 다른 대륙에서조차 자연발생적으로 진화한 해상활동들은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어이없는 착각을 하게 만든 기록 태도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이미 반도半島에서 건너간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이주移住 세력이라는 존재와 기착지寄着地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출토出土되는 항해용航海用 배의 유물遺物로 말미암아 여지없이 박살나고 있다.   만일에 이를 부정否定한다하더라도 곧바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疑問에 관해 정확한 해명解明이 어렵다.



1) 역사 이전에 반도半島 끝까지 이른 우리 민족이었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의 후예後裔가 확실한 동방민족東方民族들일진대 남하南下 과정에서 내해內海라는 걸림돌에 부닥칠 경우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방향을 틀어 똑같은 이동 경로라고 본 반도半島가 아닌 중토中土 동해안으로 진입進入할 수 없는 어떤 중대한 문제가 있었단 말인가?


2) 이 무렵 한족漢族의 핵심이라고 추정되는 세력집단들도 서방西方에서 느리게 진입進入하고는 있었으나 이윽고 동해東海까지 이르러 정착定着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고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이 혹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우차(牛車-수레)를 타고 천천히 이동할  때 <육지의 배>라고도 할 수 있는 기마騎馬의 이점利點을 일찍부터 개발하고 충분하게 활용한 동방민족들이었다.


3) 사실 역사적으로 보나 발견되는 유물遺物로 보나 거칠 곳이 없이 뚫고 나갔던 기마세력騎馬勢力들은 결국 중간을 막아선 내해內海라는 난관難關을 극복해야만 하였다.   이와는 달리 끝없이 이어진 육로陸路로 이동하고 있었던 한족漢族의 원류源流들이 걱정하는 문제는 가파른 산맥 줄기와 큰 강江 그리고 험악한 벼랑들이었다. 

 

  그러한 어려움들이 해소解消되는 과정에서 강江을 타고 이동하던 [도용강선櫂用江船]과 연안沿岸의 바다를 빌어 움직인 [노용해박櫓用海舶]이라는 뚜렷한 차별성을 확대시킨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진입 방향이나 여건與件이 확연히 다른 점도 크게 한 몫을 하였다.   


다시 말해 한족漢族 집단은 서방西方에서 동편으로 이동하였고 동방東方 세력은 북쪽에서 서남과 동남으로 확산되어갔다는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반도半島-내해內海-중토中土 연안]을 잇는 <해상로드 확산>이라는 업적과 내해연안內海沿岸 지역의 경영 형태는 이런 난점難點을 해결하는 가운데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들에 대한 의문疑問은 여러 문헌文獻에 화석化石처럼 남아있는 다양한 기록들의 재해석에 의해 차츰 차츰 분명해지면서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또한 그 마지막 작업을 완성하는 일은 정말로 우리 후손後孫들에게 남겨진 책임이며 현실적인 문제를 현명하게 풀고 닥쳐온 어려움을 슬기롭게 해결했던 선조先祖들이 숨겨 놓은 매우 귀중하고 값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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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물遺物과 유적遺蹟을 통한 고고학적考古學的 고찰考察



내해內海를 사이에 둔 양兩 연안沿岸이 일찍부터 열려있었다는 증거들은 의외로 많이 그리고 확실한 유물상遺物相로서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특히 선사先史에는 나아가기에 가장 가까운 거리인 요동遼東과 산동山東의 연결망이 보인다.   그 사례事例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절강성浙江省 남쪽 여요余姚 하모도河姆渡의 [노櫓]   BC 7960

2) 산동반도山東半島 대장산도大長山島의 [선박船舶 유물]   BC 6600

3) 산동반도山東半島 근처 장도長島 대호촌大浩村의 [선미船尾 잔적殘跡] BC 4000


4) 요동반도遼東半島 남단南端 장산군도長山群島 장해현長海縣 광록도廣鹿島 오가촌吳家村의  [주형도기舟形陶器]   BC 6000년 경

5) 대련시大連市 여순구구旅順口區 곽가촌郭家村의 [주형도기舟形陶器]  BC 5015-BC 4870

6) 압록강鴨綠江 하구河口 동구현東溝縣 마가점향馬家店鄕 삼가자촌三家子村 후와後洼의 [주형도기舟形陶器]   BC 6000년 이상



특히 [고인돌 유적]의 분포에서는 양兩 연안沿岸의 활발한 교통交通을 완전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망眺望했을 때 내해內海 연안沿岸을 중심으로 하여 환상環狀으로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론적文字論的인 자료로서는 상商의 갑골문甲骨文에 이미 선박船舶과 관련된 글자가 여럿 등장한다(주舟*범帆 등).   특히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엔 오인吳人과 월인越人의 해상능력海上能力이 아주 뛰어난 걸로 기술記述되어 있다.



3. 지명고地名考*물명고物名考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활동영역의 고증考證



중국中國과 일본사日本史에 등장하는 고대古代의 지명地名들 가운데 우리 민족과 관련이 있는 어휘語彙는 모두 한국韓國 독음讀音과 같거나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얼핏 들어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가. 물명고物名考의 사례事例들



1) 예족濊族의  <예> ➡ 濊 ꀹ  hui*huὸ*wei  


이 음절音節은 역사적인 연원淵源만큼 다양한 음가音價를 가지고 있다.   이 족단族團들이 부여계夫餘系 fūyύ로서 같은 소리 값을 음사音寫한 것으로 보이는데 예濊의 고형古形인 예穢가 똑같이 <hui>이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자독음漢字讀音이 차츰 [예]로 고정되면서 변음變音 <wei>가 혼용混用되고 있다.


2) 맥족貊族의 맥(또는 막莫) ➡ 貊*莫 ꀹ  hάo*he*mὸ와 mὸ


이 종족種族은 [밝고 환하다는 발간가라나 해(한)가라]라고 자칭自稱하였는데 그대로 옮겨 <hάo*he>로 발음發音하였다.   <밝다>에서 나온 [막莫*맥貊]은 몽골이란 표기表記의 원형原形인 <모구리*모가라*모골>이나 성산聖山을 중심으로 하여 정주定住한다는 의미로서의 우리말 <모 ➡ 모이 ➡ 뫼>의 소리 값으로서도 등장하고 있다.

 

3) 이족夷族의 이 ➡ 夷 ꀹ  yi*li


우리말로 사람을 지칭指稱하는 [○○이]에서 나왔으며 이와 비슷하거나 같은 용례用例로 활용된 한자漢字는 모두 같은 음가音價이다(이伊*이爾*이彛*이離*리麗*이黎*리驪).


4) <사내 즉 수컷인 수씨>를 뜻하는 수(웅雄*웅熊*융戎으로 전화轉化한다) ➡ 燧*遂*肅 ꀹ  sui*sui*sὺ


5) 부여족夫餘族의 부여 ➡ 夫餘*扶餘 ꀹ  fūyύ*fύyύ

6) 시라(신라新羅이다) ➡ 尸羅 ꀹ  shī luὸ

7) 백제 ➡ 百濟 ꀹ  băi ji나 băi zhāi

8) 나라(낙랑樂浪이다) ➡ 樂浪 ꀹ  lė lὰng


[땅을 라*나*내]라 하였으니 여기에서 음차音借하거나 파생派生된 모든 글자들은 우리 한자독음漢字讀音과 비슷하거나 같은 소리 값이다(나那*나奈*라羅*라喇*라臝*내耐*내內*내乃).


9) 대방帶方*대수帶水의 대 ➡ 帶 ꀹ  dὰi

10) 나라 이름으로 삼은 은*상 ➡ 殷*商 ꀹ yīn*shāng  


하夏는 xiὰ로서 음가音價가 다르다.   이는 앞으로 더욱 연구해야 할 과제課題이기도 하다.   아래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분명하게도 하夏를 세웠다는 <우禹>는 성姓이 사씨姒氏이며(사기史記 권2 하본기夏本紀 말미末尾)


이를 집중적으로 고증考證한 사해(辭海 1979  2137p)와 중국역대각족기년표(中國歷代各族紀年表  1980  1p)는 <하夏의 시조始祖는 계왕啓王이다>라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매우 혼란스럽다.


11)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제 ➡ 帝 ꀹ  di 


우리말은 [ㄷ 이 ㅈ 으로 구개음화口蓋音化]한다   그리고 [어른]의 높임말을 <○○지나 ○○치>라는 어미語尾를 붙였음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나. 지명고地名考의 예시例示들



1) 회대淮岱의 대 ➡ 岱 ꀹ  dὰi


우리말 [땅*터]로서 원래의 소리 값은 격음激音을 회피回避한 <다-우리지명「다라」에서 보인다*더-더불어 또는 더부살이에서 보인다>이었다.   [대垈*토土]도 <땅*터>에서 나온 우리말의 한자차음漢字借音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한족漢族들이 스스로 <동방인東方人들 특히 진한인辰韓人은 자기들이 사는 곳을 도(度-터를 그렇게 들은 것이다)라 한다>라고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금문金文 요전堯典에서 <도거度居>로 고문古文에서는 모두 <택거宅居>라 썼으며 고대古代에 사社와 토土는 동음同音이었다.



후한서에서 말하기를...<...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도徒라 하고>...최치원이 말하길 <...원래 살던 탁수의 이름을 따서 사는 고을의 이름을 사탁*점탁으로 불렀다(그 나라 방언에 탁을 읽을 때 도道라고 한다. 그래서 사량으로도 쓰는데 량도 역시 도를 표기한 것이다). 


後漢書云 辰韓耆老自言 秦之亡人, 來適韓國 而馬韓割東界地以與之 相呼爲徒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十二小國 各萬戶, 稱國 又崔致遠云 辰韓本燕人避之者 故取涿水之名 稱所居之邑里 云沙涿漸涿等[羅人方言 讀涿音爲道 故 今或作沙梁 亦讀道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기이紀異 제1 진한辰韓>  


2) 해고루(해성解城)의 해 ➡ 해亥*해海*해解*해蟹 ꀹ  hὰi*haĭ*jiě*xiċ


[해]라는 의미로 부른 모든 명칭名稱들이 한자漢字로 음사音寫하면서 같은 발음發音을 공유共有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주목할 시사점示唆點은 우리말의 음운변화音韻變化를 그대로 따라 발음發音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해는 개나 새로 변화하는데 이를 그대로 옮겨 X 음音이나 j 음音으로 표기表記하고 있다).

 

와.. 내공이 엄청나시네요..~~
...점차 흥미를 느끼고있습니다
많이 적어놓았지만 있는 그대로 선입견 배제하고
모든 가능성을 따져봐야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느껴지는군요.
정말 화가 나는 글. 초록불 이 양반 식민사관의 나팔수로서
말도 안되는 글을 이글루인가에 쓰고 유식함을 늘어놓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해석해도 대륙설은 가능성이 충분한데 굳이 힘들게 반박글로서 시간을 허비하고 참 어이가 없네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진짜 양심 있는 지식인이라 생각함. 지금의 역사는 문제가 많다고 봄. 도무지 원문과 달라도 너무 다른데 아무런 의문도 없이 그저 기존 주장(소위 기존 정설)에 꿰 맞추려고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가 그지 없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