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8. 1. 22:01

 

3) 서주徐州의 서 ➡ 徐 ꀹ  xύ 슈


모두 [수su*시우shu*슈xu] 소리로서 우리 민족의 한 갈래인 [수씨 ➡ 웅씨雄氏] 어군語群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리 값이다.


4) 여수시(麗水市-절강성浙江省)의 여 ➡ 麗 ꀹ  li


앞에서 말한 [이]라는 소리 값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5) 절강성浙江省 여요余姚의 여 ➡ 余 ꀹ  yύ  


부여계열夫餘系列 어군語群인 <yύ>에서 나온 것이다.


6) 회수淮水의 회 ➡ 淮 ꀹ   huάi  


원래부터 <해와 관련된 지명地名>이었다.


7) 백하白河의 백 ➡ 白 ꀹ   bάi


우리가 [밝은 터]라는 <밝*박*발>로 부른 곳을 한자漢字로 옮긴 지명地名들은 예외 없이 [밝과 비슷한 음가音價]를 가지고 있음이 뚜렷하다(박朴*박薄*박亳*박剝*발拔*발渤*발跋*발魃*발犮*발勃*발發*백伯*백柏*백栢*백百*백苩 등).


8) 조하潮河의 조 ➡ 潮 ꀹ  chάo


9) 상간하桑干河의 간 ➡ 干 ꀹ  gān


10) 검터의 검 ➡ 鈐 ꀹ  qiὰn


[님검]이라는 뜻으로서 극존칭어極尊稱語인 [검]을 의미하는 어휘語彙는 거의 발음發音이 비슷하다(감甘*감邯-우리말에 따라 구태여 hὰn으로 독음讀音한다*감龕).


11) [많다*크다*길다*넓다]는 뜻인 한 ➡ 韓 ꀹ  hὰn


같은 어군語群들인 [한旱*한罕*한翰*한厂*한邗*한釬*한駻*한銲]도 모두 동일同一한 소리 값을 이룬다.


12) [환한 분이 다스리는 밝은 곳]이란 말인 환 ➡ 桓 ꀹ  huὰn


지명地名이나 물명物名을 막론하고 같은 계열系列로서 [환寰*환丸*환環*환驩*환圜]도 역시 같거나 비슷한 음가音價로 소리 난다.


13) 벌판*들녘이라는 의미인 불(부루*부리)*달(다라*다루) ➡ 不*弗*達 ꀹ  bὺ*fύ*dά*dἀ


원래 전田은 나무와 풀이 무성한 들이나 벌을 불태워 밭을 일구는 것(화경火耕)에서부터 시작되었다(산과 늪에 불을 질러 초목草木을 태웠다.  蓋烈山澤而焚之草木-맹자孟子).   그래서 농경農耕의 시조始祖였던 신농씨神農氏를 열산씨烈山氏라 부르고 있다(예기禮記 제법祭法 참고-청靑의 왕중汪中이 술학述學에서 이를 자세히 고증考證하였다). 



분焚은 밭을 태운다는 뜻이다.  焚 燒田也   <설문해자說文解字>


함구 땅을 태우다.  焚咸丘- 焚 火田也   <춘추春秋 환공桓公 7년의 두예杜預 주注>



화전火田이 본격적인 경작농법耕作農法으로 분리되기 이전에 불을 피해 달아나는 짐승을 먼저 잡고 그 다음에 밭을 가는 농경農耕과 수렵狩獵을 함께 하는 형태에서 시작되어 근원이 동방족東方族에게서 내려왔음은 [주례周禮]의 <수씨遂人들은 전래田萊를 한다>는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밭을 갈고田 사냥을 한다萊>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방족東方族 가운데 가장 먼저 [전래田萊]를 중토中土 서부에 전파傳播한 [여파달余巴達의 해씨 족단族團] 후예後裔들을 <견이畎夷>라고 표기表記한 이유가 명백해진다.   즉 견(畎-산골짜기*밭도랑*물대어 통하다)은 전田과 이夷로 풀어지기 때문이다.   표의부表意部가 전田이고 표음부表音部가 견犬이니 이는 분명히<해씨-개씨)가 주체主體이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농경農耕]의 시초인 화전火田이 이루어졌던 <들녘이나 벌판>은 그대로 우리 독음讀音을 따르고 있다(불-부루-bὺ*들-다라-dά).



이밖에 대표적인 본보기만 하나 더 들자면 우리말 [고루*구루*가라] 등에서 나온 [골*굴*갈 系] 한자음漢字音들에서 우리 독음讀音과 같거나 비슷하면 모두 우리의 원래 소리형태를 차용借用한 것이다.   비슷하다는 말은 우리말의 연음화連音化로 말미암은 소리 값조차 그대로 따랐다는 뜻이다(골-고루인데 한자음漢字音은「고」로 발음發音하는 현상).

  


이러한 음운고音韻考를 빌어 순수한 우리 고대古代 말과 지명地名들을 찾아내거나 중토 연안에서 우리 민족이 활동한 자취를 찾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아울러 한자음漢字音일지라도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어휘語彙는 모두 우리말 독음讀音과 같거나 비슷하며 속뜻도 우리의 의미와 거의 가깝다는 걸 한눈에 알아낼 수 있다.  


즉 [대-모두 땅*터라는 기본적인 음운형식音韻形式에서 나왔다]를 예例로 든다면 독음(讀音-dὰi)이 비슷한 [대大*대代*대岱*대帶 등]은 하나같이 우리말이 원형原形이다.   그러나 소리 값이 다른 <對dui*隊dui 등>은 한족漢族들이 별도로 응용應用한 것이다.



이렇듯 환한 사실들이 숨겨지고 잊혀진 까닭도 오직 하나이다.   역사 이래 꾸준하게 진행되어온  ❶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패배시켜 중토中土 전역全域을 지배했다는 황제공정黃帝工程 


❷ 상商과 은殷 민족을 한족漢族과 어떻게든지 연관시켜보려는 사기공정史記工程  ❸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존재를 형해화形骸化시켜 그 지역을 상고역사上古歷史 이래 텅 빈 들판과 바다로 만들려는 단군공정檀君工程 


❹ 우리 민족을 내해內海의 바다 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좁은 한반도韓半島 속의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려는 삼한정통공정三韓正統工程  ❺ 한족漢族만이 처음부터 발해渤海와 동해東海에 접接하여 성장했다는 발해공정渤海工程이라는 일관一貫된 [역사왜곡歷史歪曲]의 심각한 폐해弊害이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세뇌洗腦된 환상幻想 속에 빠져 지금도 헤매고 있는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중해地中海를 발판으로 그 연안沿岸의 구석구석마다 찬란한 세계를 건설하고 유럽문명의 맹아萌芽를 만든 [팍스 유로파 PAX EUROPA]를 역사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처럼


이제라도 발해渤海와 동해東海라는 내해內海를 중심으로 그 지역과 똑같이 하나의 [팍스 코리아나 PAX KOREANA]를 만들었던 실체實體를 진정으로 복원復原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과감하게 눈길을 돌려 바다에서 바라 본 우리 역사에 관한 문헌적文獻的 검증檢證과 이러한 새로운 범주範疇를 바탕으로 한 고대사학古代史學의 재발견이 극히 필요하다.



【본론本論 시작】



먼저 우리의 눈에 띠는 이상야릇한 기록들이 있다.   앞으로 [삼국三國의 원조元祖가 대륙에서 발흥發興했음]을 말해 주는 아주...아주 결정적인 단서를 품고 있는 [키 워드]가 모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인新羅人들 스스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예後裔이어서 성姓을 김金이라 했다.  羅人自謂少昊金天氏之後故姓金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1 김유신전金庾信傳>


제帝인 계啓는 다른 이름으로 건建 또는 여余이다.  帝啓一名建一名余   <제왕세기帝王世紀>


여余는 서徐이다.  余語之舒也...   <설문해자說文解字>


시조始祖인 여수기余守己가 아홉 아들을 데리고 천하天下를 다스렸다.   <이천利川 서씨족보徐氏族譜>


무신 10년 두지주豆只州의 예읍濊邑이 반란을 일으키니 여수기余守己에게 명하여 그 추장酋長 소시모리素尸毛犁를 베게 하였다.  戊申十年豆只州濊邑叛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 단군檀君 가륵嘉勒>


서남해西南海 밖 적수赤水 남쪽 유사流沙 서쪽에...한 사람이 있으니 푸른 뱀을 귀에 걸고 두 마리 용龍을 탔으며 이름은 하후夏后 개開(계啓)로 세 번 하늘에 올라 천제天帝께 잘 보여 구변구가九辯九歌를 얻어 2000길 높이 천목지야天木之野에서 처음으로 구초가九招歌를 노래했다.   <산해경山海經 대황서경大荒西經>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적수赤水와 유사流砂*하후夏后 개開*구변구가九辯九歌*구초가九招歌]라는 몇 가지 구절句節들을 결코 잊지 않으면서 본론本論을 진행해 나가야만 한다.   즉 위의 기록을 다시 한번 찬찬히 풀어주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그대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1) <개開 즉 계啓>가 나라를 세운 <적수赤水 남쪽과 유사流砂 서편>은 당시 동방족東方族과의 암묵적暗黙的인 경계였음을 알려 준다.   그렇지만 남방의 한계는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빈邠과 기冀 지역에 여파달黎巴達의 여씨黎氏 세력집단(여黎는 여余와 같은 혈족血族이다)이 튼튼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2) <푸른 뱀과 9> 는 동방족東方族의 성색聖色이며 성수聖數이다.   <계啓>가 이 세력을 등에 업었거나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씨氏를 [여余]라고 하였다.  


3) <구변구가九辯九歌*구초가九招歌>는 [구이九夷를 설득說得하여 품다*구이九夷를 오라고 불러 뜻을 같이 하다]라는 뜻이 매우 진하다.   여기에서 [가歌]는 정당성을 보증하는 언변言辯이나 논리論理를 함축含蓄하니 그걸 얻었다는 것은 구이九夷에게 설명하도록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를 얻어 구이九夷를 회유懷柔하여 그들을 배경으로 나라를 세웠으니 그걸 얻으려고 찾아 간 천제天帝는 누구였을까?   후일後日 구이九夷가 줄기차게 하夏를 견제牽制한 이유는(한족漢族의 기록으로는 귀속歸屬과 반란叛亂이 끈질기게 반복되었으며 한 때는 나라까지 잃었다) 계啓가 세 번씩이나 찾아가서 도움을 받은 사실을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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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가 자랑스럽게 말하는『해海』라는 관념에 대하여)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이상스럽게도 지역 구분의 중심이 되는 지명地名들이 모두 동방족東方族과 관련이 깊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세계와 변경지대邊境地帶로 생각한 지방들을 경계境界 짓는 지리적 기준을 보통 적수赤水 [1]와 유사流砂 [2]와 곤륜昆侖 등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1] <서산경西山經>에 기록된 적수(赤水-우리말 밝내)는 동쪽으로 종산鍾山의 신神 흠비(欽丕+鳥-고鼓와 함께 황제黃帝의 부하 보강葆江을 죽인다)*고(鼓-주신主神으로 표현된 지배자 촉음燭陰의 아들로 황제黃帝에게 살해된 다음 동방족 성수聖獸인 준조鵔鳥로 화化한다)


    *천신天神 촉룡燭龍*괴귀怪鬼로 표현 된 이륜(離侖-우리 언어군言語群인 이離로 이爾*이夷와 같다)*요수(淫水-곽박郭璞은 요遙로 풀었는데 먼 경계라는 뜻인 요遼와 같다)*흑수(黑水-우리와 친밀한 강江이다)도 발원發源하는 곤륜구昆侖丘와 관련이 깊게 나타난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화하족華夏族과의 경계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주목할 시사점示唆點은 이곳의 곤륜구昆侖丘는 곤륜산崑崙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명히 해내海內에 있는 곤륜지허昆侖之虛로서(해내서경海內西經)


   유사流砂와 흑수산黑水山과 같이 등장하며 천신天神 이부貳負*동호東胡*이인夷人*예羿와 이유(離兪-주석註釋에 이주離朱 즉 삼족오三足烏로 풀었다)*위유(委維-곽박郭璞은 묘민苗民의 신神 연유延維라고 해석했다.  苗民神延維) 등이 부근에서 모두 등장한다.


[2] 유사流砂는 <심괄沈括 몽계필담夢溪筆談 권3]에 <서북쪽-무정하無定河 북방>에 이르는 지역에 존재하는데 지리적인 위치를 [해내동경海內東經]에서 곤륜허昆侖虛 동남방으로 단정해 결국 해내海內에 있으며 대하大夏*수사竪沙*거요居繇*월지月支가 경계 밖에 있는 걸로 기술記述하였다.  


   <계啓의 하夏>가 동방제국東方帝國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동편에 나타나는 명칭들이 전욱顓頊의 자손子孫인 중편국中(車+扁)國*견융국犬戎國*씨氏가 이(釐-이夷)라는 서북지역의 묘민국苗民國 등인 걸로 보아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두 번째로 [산해경山海經]의 설명구조에서 당시의 방향과 지역을 가르는 지표指標는 한족漢族의 인식 범위 안이었던 [해내海內]를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그 밖의 변경邊境은 [해외海外와 대황大荒]이었다.   여기에서 그동안 관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해海]라는 생각과는 너무나 뜻밖이어서 우리를 매우...매우...매우 당황스럽게 한다.  


한족漢族은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지역의 변두리에 관한 사방四方 한계를 가르는 구분을 뚜렷하게 [4 방향의 해海]로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토中土의 동쪽에는 해海는 있으나 나머지 지역에서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정말로 없다!!! 


그런데도 저들은 고집스럽게 <해海>를 기준으로 삼았다(해내동경海內東經과 해외동경海外東經*그들의 중심지역인 해내경海內經 등으로 구분한 편집체계編輯體系).   그렇다면...과연 저들이 보는 [해海]라는 관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바다>만을 지칭指稱하고 있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표현을 우리는 결코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들만이 즐겨 사용하고 있으며 그렇게 기록에도 명시明示하고 있다.   지금도 중국中國 정부에서는 지도자들이 거주하는 가장 정치적인 핵심지역을 북경北京 안에 있는 [중남해中南海]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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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중토中土 서북과 동남지역에 정착한 동방족東方族의 중심이 된 <씨氏>의 뿌리는 [여余와 여黎]로서 이들이 단군조선檀君朝鮮의 해체 과정에서 북방으로 이동하면서


원류源流와 합친 세력은 [여餘-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 계系의 원조元祖인 부여夫餘*마한계馬韓系]로 남쪽으로 진입進入해 자립自立한 집단은 [서 혹은 여畬*서徐-신라新羅*가라加羅*왜倭 계系의 원조元祖인 변진계弁辰系]로 갈라졌다.



1. 신라新羅 건국세력의 태동胎動과 이동 행적行蹟



신라新羅는 <시라尸羅>라고도 표기表記되는데 독음讀音의 일치성으로 보나 출현의 근거가 되는 시대적 상황으로 보나 [시라]가 원래 명칭名稱인 듯 하다.   이들은 후일後日에 들어 북방에서 중토中土로 진입進入하여 족적足跡을 남겼는데 한족漢族의 인식 범위에서에서는 [동이東夷의 원형原形인 동시東尸]로서 뚜렷하게 기록되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원향原鄕은 어디일까?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먼저 지명고地名考로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북방의 <시라무렌 강江>이다.   여기에서 [무렌은 몽고말로 물 즉 냇물>이며 이름을 <시라>라 했으니 정확하게 [시라의 물]이다.


다음으로 인식해야 할 점은 신라新羅의 시조始祖 집단들이 간직한 또 하나의 [족조설화族祖說話]이다.   이른바 <서술성모西述聖母 이야기>인데 신라新羅와 백제百濟가 분명하게 한반도韓半島 이주移住 세력이었음은 시조신화始祖神話나 개국설화開國說話 등에서 입증立證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원출지原出地가 정말로 북방北方이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기록이 명백히 해주고 있다.   [전승설화傳承說話의 이중성二重性]이다.


즉 신라新羅의 경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어미라는 선도성모仙桃聖母와 뒤섞어진 서술성모西述聖母의 설화說話나 백제百濟의 초기세력 출현에 대한 의미심장한 서술敍述이다.   이들이 초기에는 분명하게도 [단군조선檀君朝鮮 계열系列]로서 일부분을 구성했음을 알려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단군조선제국檀君朝鮮帝國]의 일원一員으로서 발아發芽했음을 알려주는 <족조설화族祖說話>와 후에 단군조선檀君朝鮮의 해체解體 와중에서 이동하여 열국列國으로 자립自立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국작설화國作說話>가 서로 뒤섞여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서는 [시라계尸羅系]의 발원發源과 이동상황이 모두 이 설화說話들 속에 녹아있다는 결론만 내리고 자세한 설명은 아래 [신라新羅 세력의 탄생誕生과 이동] 부분에서 다시 거론擧論하겠다.



하여튼 이 세력은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던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시대에 다시금 건강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산해경山海經]에서는 <활>을 만든 <소호少昊의 아들 반般>을 다르게 <예羿>로 표현하였는데 이 대목은 특히 주목을 요한다.



1) 소호少昊의 바로 전前 시대는 중토中土에서 대전란(大戰亂-치우蚩尤와 황제黃帝 전역戰役)이 일어난 시기이다.   이 때 소호少昊는 이윽고 치우蚩尤에게 귀속歸屬한다.


2) 그런 소호少昊의 아들이 활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이 무렵부터 중토中土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한 <활>을 소호씨少昊氏 족단族團이 주도적主導的으로 전파傳播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활>은 동방족東方族의 전용무기專用武器로서 오래 앞서부터 북방초원사회구성체(北方草原社會構成體-환국桓國과 단군조선제국檀君朝鮮帝國)에서는 전투의 주력무기主力武器로 널리 쓰여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산해경山海經]은 한족漢族의 시각視覺으로 본 견문서見聞書이다.   그러므로 중토전역中土戰役이 벌어진 <치우蚩尤-소호少昊> 이전까지 그 북방에 관해서는 인식의 경계 밖이었다.   그래서 응당 한족漢族들의 눈에 가공할 실체實體로 출현한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기를 바탕으로 산동山東 지역에 군림君臨하면서 지속적으로 접촉한 소호씨少昊氏가 각인刻印되었을 뿐이다.



이 같은 사실은 <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예羿]라는 존재가 유난히 중토中土 지역의 기록에서만 강한 인상으로 부각浮刻되기 때문이다.   즉 이 시기부터 강렬한 위력으로 부상浮上한 중토中土 동부지역의 단군조선檀君朝鮮 계열 동이예족東夷濊族이라는 기마전사집단騎馬戰士集團의 표상表象으로서 한족漢族의 머릿속에 뿌리가 박힌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소호족단少昊族團에 포함된 신라계新羅系 김씨족金氏族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대世代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그 존재를 나타내고 있음이 뚜렷하다.



소호少昊가 반(般 혹 예羿)을 낳았는데 그가 처음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었다.  少昊生般 般是始爲弓矢   <산해경山海經 권18 해내경海內經>



은殷 갑골문甲骨文에는 [금자金字]가 없어 여*서余가 김金이었다.  甲骨文無金字是余字卽金字   <중국학자 위취현衛聚賢  태백지봉재서오太伯之封在西吳-오월문화총론吳越文化叢論  1950  36p>


쇠는 금이다.  鐵曰金   <옥편玉篇>


쇠를 세歲라 하며 삼 수水 변邊인 氵을 붙여 예濊라고 하였다.  鐵曰歲   <설문해자說文解字>


예하는 현의 북쪽인 방산에서 발원發源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다가 행당현 경계에 서 합쳐진다. 濊河在縣北源出房山 東流入行唐縣界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권14 진정부부眞定府部 평산현平山縣 조條-현現 하북성河北省 행당시行唐市>


환수는 두 주州 사이를 흘러가다가 동남으로 사현에 이르러 석산 서남에서 바다에 들어가는데 혹은 예수라 한다.  渙水經宿二州間 東南之泗 石山西南入海 亦謂之濊水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권21 봉양부鳳陽府 숙주宿州-현現 안휘성安徽省 회북시淮北市>


청장수는 장무현의 옛 성인 예읍의 서쪽을 흘러 예수라는 한 갈래를 이룬다.  淸漳逕章武縣故城西古濊邑也 枝瀆出焉謂之濊水   <수경주水經注 권상卷上 탁장수濁漳水 조條-현現 하북성河北省 창주시滄州市>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와 [수경주水經注]에서는 모두 <쇠-세-예>로 지칭指稱되는 김씨족단(金氏族團-서족徐族 혹은 서족舒族*여족余族*쇠족歲族 등)들이 원래 단군조선계 동이예족東夷濊族의 일부를 형성하면서 하북성(河北省-행당行唐*창주滄州 지역)과 안휘성(安徽省-회북淮北 지방)에 걸쳐서 정착定着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들은 강역疆域을 팽창膨脹하였을 때는  ❶ 경영여족자치현景寧畬族自治縣에 진입한 사족畬族(절강성浙江省 여수시麗水市) [1]  ❷ 여남如南에서 회수淮水를 따라 내려와 강소성江蘇省 서주徐州에 정착한 서족(徐族-서국徐國 언왕偃王의 세력) [2]  ❸ 산동성山東省 태산泰山 지역으로 들어와 세력을 형성한 여족餘族으로까지 분화分化하면서 그 영향력을 크게 뻗쳤다.


[1] 사*여畬는 <shē>로 세*쇠歲sui와도 통하며 [여余+전田 즉 여족余族의 밭]으로서 따비로 밭을 경작하던 전형적인 우리 민족계열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여수驪水가 우리말 독음讀音인 <이*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도 지명고地名考로서 증명된다.


    <사족사원畬族史源-1993 여수시驪水市 발행  6p-13p>에서 족원族源을 고신씨高辛氏의 귓속 버러지에서 태어난 용기龍麒의 아들들인 <반盤*람藍*뢰雷>라고 하는데 아래의 기록(우리의 성수聖數 9*람藍과 남이藍夷와 남후藍侯의 친밀성親密性 등)과 일치하는 걸로 보아 분명하게 단군조선계열檀君朝鮮系列인 동이예족東夷濊族이다.



시조始祖인 9족族을 우러러 제사한다.  九族推尊緣祭祖   <절강성浙江省 수창현지遂昌縣志 사민시畬民詩-시연주施聯朱  여족풍속지畬族風俗志  1989  10p>


이들의 원향原鄕은 하남성河南省 장강長江 지류支流에 있는 남양南陽과 회수淮水 상류上流인 여남如南 지역이다.   <사족사원畬族史源>


은殷 중정 때 남이가 침입했다.  至于仲丁藍夷作寇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서문序文>


제순유우가 유주*영주의 두 주를 남국藍國의 이웃에 두었기 때문에 단제께서 병사를 보내어 이를 정벌하여 그 왕들을 모두 다 쫒아내시고 동무와 도라들을 그곳의 제후로 그 공을 표창하였다.  初虞舜置幽營二州於藍國之隣帝遣兵征之盡逐其君封東武道羅等 以表其功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 부루扶婁 단군檀君 조條>


임인 19년 하나라 왕 상이 백성들에게 덕을 잃어버리니 단제께서는 식달에게 명하여 람藍*진眞*변弁 3부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이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壬寅十九年夏主相失德帝命息達率藍眞弁三部之兵往征之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 오사구烏斯丘 단군檀君 조條>


을묘 20년 이 때에 남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쫒고 남으로 이동하여 엄독골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으니 은나라 땅에 매우 가까웠다.  乙卯二十年至是藍國頗强與孤竹君逐諸賊南遷至俺瀆忽居之近於殷境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 색불루索弗婁 단군檀君 조條>


해대의 땅은 이미 엄**양*개*우*래*서*회의 8족이 자리 잡고 사는 곳이 되었으니...海岱之地 旣爲奄藍陽介裴萊徐淮八族之所宅...<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



[2] 서徐는 [彳+余]로서 여余와는 본래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성수聖數 9*토템이 원래는 「해」였으나 한족漢族이 소리가 넘나들었던「날이 개다」의 「개」를 개犬로 사기 쳤다>인 동이예족東夷濊族 계열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언왕偃王>이 <태어나면서부터 뼈가 없어 흐느적거렸으며 마음이 약하고 너그러워 끝내 나라를 빼앗겼다>는 한족漢族 기록의 궤변詭辯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언偃이나 언堰>은 근원자根源字인 언匽이 <도랑이나 방죽>이란 뜻이 있으며 [집운集韻]에서도 <막고 가리다>라 풀어 [물을 막는 둑]이란 뜻이어서 이를 바탕으로 나중에 나온 글자라는 게 통설通說이다.   따라서 [언堰]은 <토土>를 붙여 <보를 막다*방죽을 만들다>라는 행위를 말하고 [언偃]은 <인人>을 추가하여 <제방을 쌓은 사람>을 내포內包한다.


    서언왕徐偃王의 지역은 장강長江과 회수淮水를 중심으로 수많은 물길이 얽힌 범람지대氾濫地帶이었다.   이를 그 무렵엔 생각할 수 없는 관개수로사업灌漑水路事業을 통해 물길을 제대로 돌리는 가운데 터진 곳은 막고 넘치는 데는 터서 농경지農耕地로 변화시킴으로서 36개 방국方國이 즐거이 귀부歸附하였을 만큼 높은 신임信任과 권위權威를 세웠다고 보아야 한다.



[한족漢族의 기록]



서국徐國의 궁녀宮女가 임신한 뒤 낳은 알을 냇가에 상서롭지 못하가 여겨 버리자 남편과 자식을 잃은 노파老婆가 기르던 <곡창鵠蒼>이란 <개>가 물고 왔다.  기이하게 여겨 따뜻하게 보살피니 아기가 반드시 누워 태어났기 때문에 <누울 언偃>이란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서徐나라 왕王이 소문을 듣고 데려가 길렀는데 어질고 지혜로워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 후 <곡창>은 죽을 때 구미황룡(九尾黃龍-뿔과 9개의 꼬리가 났다고 한다)이 되었다...진陳과 채蔡 사이에 운하運河를 파다가 문득 붉은 활과 화살을 발견해 하늘의 상서로운 물건을 받았다하여 마침내 자기 이름으로 호號를 지어 서徐 언왕偃王이라 했다.  


강회江淮의 제후諸侯들이 모두 복종했으니 36국國이나 되자 주周 목왕穆王이 소식을 듣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로 사신을 보내 하루 만에 이르러 초楚로 하여금 정벌케 했다.    인자한 언왕偃王은 차마 싸움을 벌여 백성들을 괴롭게 할 수 없어 결국 패하고 팽성彭城 무원현武原縣 동산東山 아래로 달아났는데 따르는 백성이 1만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산山을 서산徐山이라 하고 산 위에 석실石室을 세웠는데 신주神主가 있어 백성들이 기도를 하며 오늘날까지 이런 것들이 다 남아있다.  . <장화張華  박물지博物誌>



서언왕徐偃王의 기록을 보면 [동방계열東方系列]이 확실한데 ❶ 설화구조說話構造가 매우 동일同一하고  ❷ 성색聖色이 같으며(곡창鵠蒼의 푸를 창蒼)  ❸ 씨족氏族의 기원起源이 다르지 않고(개 즉 견이犬夷)  ❹ 성수聖數가 똑 같다(9개의 꼬리).  


또한 몰래 주周를 치려고 운하運河를 파다가(이로 보아 물길에 매우 익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얻었다는 <활과 화살>은 원래 동방군장東方君長이 제후諸侯에게 지휘권의 사여賜與라는 표징表徵으로 나누어 주는 동궁彤弓이다.



[우리의 기록]



을유 2년 남국의 임금 금달이 청구의 임금*구려의 임금과 주개에서 회합하고 몽고리의 병력을 합쳐 가는 곳마다 은나라의 성책을 부수고 깊숙이 오지로 들어가 회대의 땅을 평정하더니 포고씨를 엄으로 영고씨를 서 땅에 방고씨를 회땅에 각각 임명하니 은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위세를 우러러보며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乙酉二年藍國君今達與靑邱君句麗君會于周愷合蒙古里之兵所到 破殷城柵深入奧地定淮岱之地分封蒲古氏於淹盈古氏於徐邦古氏 於淮殷人望風煌怯莫敢近之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 단군檀君 아홀阿忽 조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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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조설화族祖說話와 국작설화國作說話에서 알려주는 사실들)


시라계열尸羅系列이 북방에서 내해연안內海沿岸을 타고 강남江南까지 내려와 일차적一次的인 기반을 완성하고 다시 한반도韓半島로 이동해 왔다(즉 서쪽의 중토中土 강남江南 연안沿岸에서 반도半島 동남부로)는 사실은 필자筆者의 주장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설화說話가 웅변雄辯해준다.



(거두)...신모는 본래 중국 제실 [1]의 딸인데 이름이 사소娑蘇다.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에 와 머물며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부황이 편지를 솔개 발에 매달아 보내 말하기를 “솔개가 이르는 곳에 집을 지으라”고 하였다.   사소가 편지를 받고 솔개를 놓으니 날아와 이 산에 이르러 멈추었으므로 드디어 거기서 살다가 지선이 되었다.


고로 이름을 서연산이라 하였다.   신모는 오랫동안 이 산에 살면서 나라를 도와 영이함이 많았다.   나라가 세워진 뒤로 늘 삼사三祀의 하나로 삼았는데 그 차례도 여러 망제의 위에 두었다.   제54대 경명왕이 매사냥을 좋아하여 일찍이 이 산에 올라 매를 놓았다가 잃어버렸다.   신모에게 빌기를 “만약에 매를 찾게 되면 봉작하겠습니다”하자 얼마 안 가 매가 날아와 책상 위에 와서 앉으므로 이로 해서 대왕에 봉작하였다.


그가 처음에 진한에 이르러 성자를 낳아 동국의 시조가 되었는데 아마도 혁거*알영 두 성인의 출자일 것이다.   고로 계룡*계림*백마 등으로 일컫는 것은 닭이 서쪽에 속하기 때문이다.   성모는 일찍이 제천녀諸天女에게 비단을 짜게 하고 붉은 빛깔로 물을 들여 조복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은 이로 해서 비로소 신의 영험을 알게 되었다.


또 국사에 사신이 이르기를 “식軾이 정화 연간에 일찍이 송에 사신으로 들어가 우신관에 갔더니 당이 하나 있어 여선상이 모셔져 있는데 송의 관반학사 왕보가 말하기를 ‘이는 귀국의 신인데 공은 그것을 아시오?’ 라고 하고는 또 말하기를 ‘옛날에 중국제실의 딸이 있어 바다를 건너 진한에 도착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해동의 시조가 되었소.   그녀는 지선이 되어 선도산에 오래 머물렀는데 이것이 그 상이오’라고 했다” 한다.


또 대송국 사신 왕양이 우리나라에 와서 동신성모를 제사지냈는데 제문에 “어진 이를 가져 나라를 처음 세웠다”는 구절이 있었다.    지금 성모가 금을 시주하여 부처를 받들고 중생을 위하여 불법을 열게 하였으니 진량을 만들었으니 어찌 한갓 장생술만 배워 저 아득한 속에만 사로잡힐 뿐이랴!   찬하여 일렀다.”  서연에 와 산 지 몇 십 년인가.   천선들을 불러 예상을 짰었네.   장생에도 영이함이 없지 않았는데 금선을 뵙고 옥황이 되었네“


(去頭)...神母本中國帝室之女 名娑蘇 早得神仙之術 歸止海東 久而不還 父皇寄書繫鳶足云 隨鳶所止爲家 蘇得書放鳶 飛到此山而止 遂來宅爲地仙 故名西鳶山 神母久據玆山 鎭祐邦國 靈異甚多 有國已來 常爲三祀之一 秩在群望之山上 第五十四景明王好使鷹 嘗登此放鷹而失之 禱於神母曰 若得鷹 當封爵 俄而鷹飛 來止机上 因封爵大王焉


其始到辰韓也 生聖子爲東國始君 蓋赫居閼英二聖之所自也 故稱鷄龍鷄林白馬等 屬西故也 嘗使諸天仙織羅緋 染作朝衣 贈其夫 國人因此 始知神驗 又國史 史臣曰 軾政和中 嘗奉使入宋 詣佑神館 有一堂 設女仙像 館伴學士王보曰 此是貴國之神 公知之乎 遂言曰 古有中國帝室之女 泛海抵辰韓 生子爲海東始祖 女爲地仙 長在仙桃山 此其像也


又大宋國使王襄到我朝 祭東神聖母 女(文)有娠賢肇邦之句 今能施金奉佛 爲含生 開香火 作津梁 豈徒學長生 而유於溟몽者哉 讚曰 來宅西鳶幾十霜 招呼帝子織霓裳 長生未必無生異 故謁金仙作玉皇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감통感通 제7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조條>


[1] 12c 무렵 극성極盛했던 고려高麗 사대부士大夫들의 모화주의적慕華主義的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성모聖母가 있던 곳은 중토中土의 강남江南 지역에 존재했던 어떤 나라의 여자라고 해석되어야 옳다.



(신라에서 지내는) 소사(小祀-작은 제사)로 상악*설악...서술(西述-모량牟梁에서 지내는 제사) 등등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잡지雜誌 제1 제사편祭祀篇>


(경주시 서현동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의 여러 가지 별칭別稱 중 하나로 서술西述도 들어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경주시慶州市 산천편山川篇>


신라 진평왕 재위 시절이다.   안흥사安興寺라는 한 절의 비구니인 지혜智惠는 사찰건물 전각을 수리하고 싶었는데 힘이 모자랐다.   어느 날 꿈에 선도산 성모가 나타났다.   모습이 아름답고 머리는 구슬로 장식을 한 여인이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도산 신모神母인데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는 것이 기뻐서 금 열 근을 주어 그 일을 돕고자 한다.   내 자리 밑에서 금을 꺼내어 주불삼상主佛三像을 장식하고 벽에는 53불佛과 6종류의 성중聖衆 및 여러 천신天神과 오악五岳의 신군神君을 그리도록 하라.   그리고 해마다 봄가을 10일에 남녀 신도를 많이 모아서 널리 모든 함령含靈을 위해 점찰법회占察法會를 베푸는 것을 규정으로 삼아라.”


지혜스님은 깜짝 놀라 꿈에서 깨었고 곧바로 무리를 데리고 선도산 성모사당으로 갔다.   그리고 사당의 자리 밑에서 황금 160량을 파내어 불전 수리비를 충당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감통感通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정화 연간에 우리나라에서 상서 이자량을 송에 사신으로 보낼 때 나 부식은 글쓰는 임무를 띠고 보좌로 가게 되었다.   우신관에 갔더니 당이 하나 있어 여선상이 모셔져 있는데 송의 관반학사 왕보가 말하기를 ‘이는 귀국의 신인데 공은 그것을 아시오?’ 라고 하고는


또 말하기를 ‘옛날에 어떤 제왕의 딸이 남편없이 잉태하매 남들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어 바다를 건너 진한에 도착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해동의 시조가 되었소.   그녀는 지선이 되어 선도산에 오래 머물렀는데 이것이 그 초상이오’라고 했다” 한다.


또 송나라 사신 왕양이 우리나라에 와서 동신성모를 제사지냈는데 제문에 “어진 이를 낳아 나라를 처음 세웠다”는 구절이 있는 걸 보고서 이 동방의 신이 곧 선도산의 신녀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이 어느 때 왕노릇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며...


論曰 政和中, 我朝遣尙書李資諒 入宋朝貢 臣富軾以文翰之任 輔行 詣佑神舘, 見一堂設女仙像 舘伴學士王黼曰 “此貴國之神 公等知之乎?” 遂言曰 “古有帝室之女 不夫而孕 爲人所疑 乃泛海抵辰韓生子 爲海東始主 帝女爲地仙 長在仙桃山 此其像也.” 臣又見大宋國信使王襄祭東神聖母文 有‘娠賢肇邦’之句 乃知東神則仙桃山神聖者也 然而不知其子王於何時   <삼국사기三國史記 경순왕敬順王 조條 김부식金富軾의 사론史論>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들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눈여겨지는 부분은 [서술성모西述聖母]와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이야기가 마구 헝클어져 있다는 점이다.   일단 조금은 정리가 필요하다.



1) 성모聖母는 본래 이름이 사소娑蘇이다.


2) 편지를 솔개 발에 매달아 보내 말하기를 “솔개가 이르는 곳에 집을 지어라”고 하였다...정착한 곳의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 하였다...선도산仙桃山은 경주慶州의 진산鎭山으로 서악西岳*서연산西鳶山*서술산西述山*서형산西兄山이라고 부른다.


3) 처음에 진한辰韓에 이르러 성자聖者를 낳아 동국東國의 시조始祖가 되었는데 아마도 혁거赫居*알영閼英 두 성인聖人의 출자出自일 것이다.


4) 그녀는 선도산仙桃山에 오래 머물렀는데...선도산仙桃山의 여러 가지 별칭別稱 중 하나로 서술西述도 들어있다.


5) 신라에서 지내는 소사小祀로...서술(西述-모량牟梁에서 지내는 제)이 있다.

 


첫 번째로 [서소娑蘇 - 솔개 - 서연산西鳶山]은 모두 같은 어휘語彙를 다르게 표기表記한 것이다.   즉 서술성모西述聖母는 [서소西蘇-서수리]로 이름 되며 이것이 바로 [소리개의 수리]나 [서연산西鳶山*서형산西兄山의 서수리西鳶]와 같은 한자차음漢字借音이다.   자연스럽게 [서씨족徐氏族의 수리인 우두머리]라고 해석될 수 있는 여지餘地가 충분히 있다.   말하자면 [족조설화族祖說話]이다.


두 번째로  설화說話 구조에서 선도성모仙桃聖母는 분명히 중토中土에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였을까?   [점탁부漸涿部 - 모량부牟梁部*서도산仙桃山]이라는 연관성을 주목해야 이 의문이 풀린다.   [탁수涿水 지역의 모씨牟氏 집단이 한반도韓半島 동남으로 이주移住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므로 이동 세력과 근거지와 도래지渡來地가 놀랍게도 일치되는 흐름이 잡혀진다.   


<이병도李丙燾>씨는 여기에서도 우왕좌왕하여 선도산仙桃山을 경주시慶州市 충효동忠孝洞 서쪽으로 비정比定했는데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 틀림없이 탁수涿水와 관련되는 안휘성安徽省에 엄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혁거세赫居世 족단族團의 [국작설화國作說話]이다.


기록으로 보면 서술제西述祭를 모량부牟梁部에서 지냈다고 했는데 [모牟]는 모씨계牟氏系 지명地名이라 더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다.   다만 [탁涿]은 탁수涿水 지역을 말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이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풀어낼 수 있다   


따라서 모량부牟梁部의 전신前身인 점탁漸涿은 <점漸이 점점 나아가자*천천히 움직이다>란 뜻이니 바로 [탁수涿水 지역에서 진한족단辰韓族團이 차츰차츰 이동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진한인辰韓人들은 원래 탁수涿水에서 살았으나 진역秦役을 피해 옮겨왔다>는 다른 기록이 확실하게 보증해준다.



후한서에서 말하기를...<...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도徒라 하고>...최치원이 말하길 <...원래 살던 탁수의 이름을 따서 사는 고을의 이름을 사탁*점탁으로 불렀다(그 나라 방언에 탁을 읽을 때 도道라고 한다. 그래서 사량으로도 쓰는데 량도 역시 도를 표기한 것이다).  後漢書云 辰韓耆老自言 秦之亡人, 來適韓國 而馬韓割東界地以與之 相呼爲徒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十二小國 各萬戶 稱國 又崔致遠云 辰韓本燕人避之者 故取涿水之名 稱所居之邑里 云沙涿漸涿等[羅人方言 讀涿音爲道 故 今或作沙梁 亦讀道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기이紀異 제1 진한辰韓> 



이 점탁漸涿을 개칭改稱하여 점량부漸梁部 혹은 모량부牟梁部라고도 했다고 했으니 탁수계涿水系나 모씨牟氏 집단은 모두 같은 지역에서 살던 무리들이니 서로 어우러지는 가운데 그들 고유固有의 지표지명指標地名으로 바꾸어지는 게 마땅하다.



진한 땅에는 옛날 6마을이 있었다...무산 대수촌은 마을 어른이 구례마인데 점량부 또는 모량부(량은 탁으로도 쓴다) 손씨의 조상으로 되었다.  辰韓之地 古有六村...三曰 茂山大樹村 長曰俱[一作仇]禮馬 初降于伊山[一作皆比山] 是爲漸梁[一作涿]部 又牟梁部孫氏之祖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기이紀異 제1 신라시조新羅始祖 혁거세왕赫居世王>



세 번째로  이들 설화說話가 혼합되어 하나로 이루어진 시기는 어느 때였을까?   그 대답도 이미 나와 있다.   진평왕眞平王 무렵의 또 다른 설화(說話 -불사佛事와 관계된 지혜智惠 스님의 꿈)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도래渡來 세력인 모씨족慕氏族에 의해 신라新羅 왕통王統이 바뀐 법흥왕法興王의 손자孫子로서 어느 정도 안정화 되어가는 시기였다.    아마도 이 작업은 아비였던 진흥왕眞興王의 국사편찬國史編纂 연장선 상上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를 <일연>은 혁거세赫居世 설화說話의 작은 주석註釋에서 <어떤 사람은 서술성모西述聖母가 박혁거세朴赫居世 거서간居西干을 낳았다고 한다>라고 말한다.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설화說話(안휘성安徽省 선도산仙桃山을 중심으로 한 세력집단의 딸인 사소娑蘇가 혼인도 않고 임신하여 그곳을 떠나 반도半島의 사로국斯盧國에 정착한다)를 간직한 박씨족단朴氏族團이나 김씨족단金氏族團도 역사적 연원淵源으로 보면 결국 같은 동류同類로서 보다 넓게 포용包容하기 위한 각색이 필요하였지 않겠는가?(박씨계도 처음의 나라 이름을 서나벌徐羅(那)伐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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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시라尸羅의 원향原鄕인 시라무렌 유역 ➡ 소호少昊 시대의 족적足跡을 알려주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 ➡ 하후夏后인 계啓의 중심세력이었던 여족余族의 실체實體 ➡ 이천利川 서씨족보徐氏族譜에 나타난 시조始祖 서씨徐氏와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여수기余守己와 친밀성


➡ 산동성山東省과 회사淮泗 지방의 서족徐族과 사족畬族에 관한 활동 ➡ 고신씨高辛氏의 아들 남藍과 은殷 때의 람이藍夷 그리고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보이는 람후藍侯라는 존재 ➡ 동이예족東夷濊族의 일원一員으로서 조이(鳥夷-새 씨氏)란 이름으로 꾸준하게 등장]


이라는 이동 경로 및 정착定着 과정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고 관련 기록들도 잊혀져 있던 퍼즐조각처럼 다시금 가지런하게 맞추어지는 사실로 보아 신라新羅 세력의 중토中土 존재 가능성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 이제부터 신라新羅 기원起源 세력의 이동과 정착定着 과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주周 목왕穆王의 사주使嗾를 받은 초楚 문왕文王에게 밀린 서국徐國은 북쪽인 팽성彭城의 동산東山 아래로 달아났다北走彭城武原縣東山下    그런데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달아났다는 팽성彭城 지역은 바로 언왕偃王이 지금까지 살아온 서주徐州 그곳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헌데 [춘추春秋]의 같은 내용에서 서국徐國을 친 나라들은 모두 북쪽에 있던 나라들(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의 노魯*하남성河南省 상구商邱인 송宋*곡부曲阜 북방인 임치臨淄의 제齊)이었다.   아무려면 패배한 언왕偃王이 아무리 미련하다해도 제 발로 북주北走하여 호랑이 굴로 들어갔을까?   따라서 서언왕徐偃王은 노魯 장공莊公(초楚 장왕莊王) 무렵 이들의 연합공격으로 남주南走한 듯하다.



노魯 장공이 송인*제인과 함께 서국을 벌하였다.  莊公會宋人齊人伐徐   <춘추春秋 장공莊公 26년 조條  BC 668>



서족(徐族-서라벌徐羅伐의 서라徐羅나 새 벌은 모두 같은 우리말이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의 소흥시紹興市 지방은 원래 절강성浙江省 회계會稽인 월주越州이었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의 기록이 서족徐族의 정착지역을 매우 명확하게 알려준다.  


기록에 나오는 예산(穢山-예穢는 예濊와 같다)은 이글의 모두에서 이야기 한  지명고地名考에서 처럼 우리말에서 유래由來한 땅이름이다.   하여튼 <월越>이 BC 510년에 일어났으니 언왕偃王 세력은 158년 동안(BC 668-BC 510) 이 지역을 점유占有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무렵 월越이 돌출突出하여 강국强國이었던 오吳와 각축전角逐戰을 벌일 정도로 갑자기 흥성興盛해졌던 이유가 비로소 밝혀지는 부분이다.   서족계열徐族系列 신라新羅 집단의 존재가 다시 부각浮刻되고 있다.



예산穢山은 일명一名 직산稷山으로 월왕越王이 농사짓던 곳이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권96 회계군會稽郡 조條에 인용된 예산군국지穢山郡國志>



그 후의 기록을 보면 예산국穢山國을 중심으로 월주越州를 장악한 신라계新羅系의 원류源流인 [서족徐族]의 활동범위가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그려진다. 



주산군도舟山群島 고취산은 서徐 언왕偃王이 피해 와서 정착한 곳이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권92>

서徐 언왕偃王 묘廟가 시안현始安縣 남쪽 70리 영산 아래에 있다(월주越州 전당강錢塘江 상류上流이며 절강성浙江省 남쪽인 구주衢州).   <방여승람方輿勝覽 권24 구주衢州 사묘祠廟 조條>

태주부台州府 황엔현 남쪽 35리에 서徐 언왕偃王의 고성古城과 묘廟가 있다(절강성浙江省 동부 해안지대).   <여지기승輿地紀勝>



또한 이들 세력이 지속적으로 오吳나 월越과 연합하거나 동조同調하여 동남중국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음은 많은 기록에서 보이고 있다.



1) 마지막으로 오吳를 제압制壓한 월왕越王 구천(勾踐-gōu giὰn로 우리 언어군言語群인 구勾의 독음讀音이다)이 오왕吳王 부차(夫差-fū chā로 우리 언어군言語群인 부夫의 독음讀音이다)를 용동(甬東-용강甬江 동편인 주산군도舟山群島)에 보내려 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를 짐작케 해주는 기록이 [월절서越絶書 권7]의 <오와 월 두 나라는 동족이다.  吳越二邦同氣共俗>란 구절句節이다.   그는 치욕恥辱과 굴욕屈辱을 참지 못한 것이다.


2) 그런데 오吳를 멸滅하여 강남江南의 패자覇者라고 일컬었다. 고 하던(사기史記 권41 월왕越王 구천전勾踐傳)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웬일인지 곧바로(BC 497) 조상祖上의 근거지라는 월주越州마저 버리고 산동성山東省 랑야대瑯琊台로 달아난다.


   이 무렵 기록을 보면 <오吳를 멸滅한 월越은 강북江北인 회북淮北을 통치할 수 없어 초楚가 사상泗上 땅을 모두 차지했다 -사기史記 권40 초세가전楚世家傳>가 주목되는데 100년 후에(BC 379) 다시 돌아와 결국 초楚에 망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동가同家인 오吳와 월越이 각축角逐하는 동안 그동안 협력했던 월주越州 지역의 서족(徐族-시라족尸羅族)이 염증厭症을 느끼고 슬쩍 빠져 초楚가 서북에서 압박하는 가운데 동편에서 합세하여 월越을 밀어낸 것이다.



월왕越王이 산동성 랑야대瑯耶台로 천도한 후...(초楚가)...어느 나라와 함께(강남동이江南東夷인 월주越州 서족徐族?) 출정하여 그동안 제하諸夏를 노략질한 작은 나라들을 드디어 토벌하였다.  後越遷瑯耶...?...與共征戰 遂陵暴諸夏 侵滅小邦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서문序文>


회계산(會稽山-월주越州 지역)은 초楚의 남쪽이다.   <산해경山海經 권13  해내동경海內東經>



3) 이 지역을 한번이라도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역사적인 유래由來가 깊은 [시라계尸羅系 지명地名]으로 뒤덮여있음을 금방 발견한다. [1]


[1] 신라군도新羅群島라고도 불렸던 주산군도舟山群島 동쪽 보타도普陀島 남단南端의 신라초新羅礁와 신라오산新羅奧山*태주台州의 신라산新羅山과 신라서新羅嶼*온주溫州 평양현平陽縣의 신라산新羅山과 신라왕묘新羅王廟*그밖에 절강통지浙江統志 권9  산천조山川條에 즐비하게 보이는 지명들).



라부산(羅浮山-구강甌江 북방 영가현永嘉縣 구북진甌北鎭 라부촌羅浮村)은...영가기에 이르기를 진시황 때 바다로 떠왔다.  羅浮山...永嘉記云 秦時從海上浮來   <절강통지浙江統志 권20 온주부지溫州府誌 산천조山川條>



시라계尸羅系 지명이 진秦 이전에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기史記 권27  천관서天官書]에서도 <진*초*오*월은 이적이다.  秦楚吳越夷狄也>라고 분명하게 명시明示하고 있다.



4) 이 지방의 서족徐族들은 한어漢語*객가어客家語로 말할 때는 한문漢文의 문장구조이지만 자기들끼리는 우리말과 똑같은 형식으로 통한다. 는 사실이 주목된다.



[한인漢人과 대화할 경우]    나는 간다...용문으로   我們-去-龍門

[서로 대화할 경우]           나는 용문으로 간다.   我們龍門-去



5) 특히 <삼성방언三省方言> [1]이라 불리는 언어(言語-사어畬語*서어徐語*여어余語*객가어客家語=시라어尸羅語)의 음운구조音韻構造에 있어서 어미語尾 자음子音이 한어漢語와는 달리 우리말과 같다는 점과 유달리 [한韓-광동성廣東省 한강韓江 등]과 연관되는 지명地名이 유달리 눈에 뜨인다는 사실도 결코 무시無視할 수 없다.



[어미자음語尾子音]


우리말 독음讀音  람覽 - 한어漢語 발음發音  lăn  - 서족徐族 성음聲音 lam

우리말 독음讀音  담淡 - 한어漢語 발음發音  dὰn  - 서족徐族 성음聲音 tam

우리말 독음讀音  점店 - 한어漢語 발음發音  diὰn - 서족徐族 성음聲音 tiam

우리말 독음讀音  립立 - 한어漢語 발음發音  li    - 서족徐族 성음聲音 lip

우리말 독음讀音  불彿 - 한어漢語 발음發音  fύ    - 서족徐族 성음聲音 bul

우리말 독음讀音  각各 - 한어漢語 발음發音  gĕ   - 서족徐族 성음聲音 kɔk



[1] 복건성福建省 용암시龍岩市 - 강서성江西省 공주시贛州市 - 광동성廣東省 조주시潮州市를 잇는 삼성교회지역三省交會地域




아울러 절강성浙江省을 포함한 복건성福建省까지는 한 때 삼국三國의 오(吳-이들 세력을 흡수하여 성장한 손권孫權도 구태여 오吳라는 옛 이름을 찾아 다시 이름을 한 이유도 의미심장하다)에게 일부가 점유(占有-건안군建安郡)되기도 하였지만 진晋이 비로소 진안군晉安郡과 건안군建安郡을 다시 설치할 무렵까지도 여전히 무시 못 할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결국 진시황秦始皇의 민중군閩中郡 설치(사기史記 권114  동월열전東越列傳-이를 담기양譚其驤은 중국역사지도집中國歷史地圖集을 주유간朱維幹은 복건사고福建史稿를 통해 복건성福建省과 절강성浙江省의 정복으로 억측臆測했다)는 위와 같은 사실은 물론 진秦 이후의 기록들과도 비교해보았을 때 오락가락하는 것도 모자라 서로 아귀가 안 맞아 명백한 사기詐欺이다(이 문제에 관한 설명은 필자筆者가 이미 동이족東夷族 관련 반론反論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후한後漢 때 시라尸羅의 세력과 그들이 장악하였던 고유영역을 한족漢族으로 뭉뚱그리면서 저들의 땅으로 싸잡으려는 검은 욕심이 빚어낸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이 무렵에만 그런 기록(민중군閩中郡 등 설치)이 등장하며 다른 문헌文獻 내용과 유난히 충돌하고 있다.



월인越人끼리 서로 싸우는 것은 오랜 관습이고(여기서도 오월쟁투吳越爭鬪의 고사古事를 빌어 모두 같은 종족種族임을 알려주고 있다) 반란도 빈번하여...진秦 이래 포기하고 속하게 하지 않았다(自秦時弃弗屬)...<사기史記 권114 동월열전東越列傳 건원建元 3년 조條에서 한무제漢武帝에게 태위太衛 전분田扮이 한 말>



이런 모든 분석 결과로 비추어 볼 때 이 지역들은 분명하게도 시라尸羅 즉 신라계新羅系의 민족들이 상고上古 시기부터 둥지를 틀고 성장하였으며 확고한 지역적인 기반을 만들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한족漢族의 [사기공정史記工程]에 의해서 함몰陷沒되어버린 정체성正體性을 다시 찾는 작업은 길고도 어려운 길이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2. 백제百濟 세력의 내해연안內海沿岸 경영



백제百濟가 고대시기古代時期 [극동極東의 지중해地中海]였던 발해渤海와 동남해東南海를 주물렀으며 연안沿岸 경영이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로 귀착歸着되었으리라는 사실은 그 원인을 서두序頭에서 충분히 밝혔다고 본다.


또한 내해內海 주변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산 과정도 필자筆者의 앞선 [대륙백제大陸百濟나 요서경영遼西經營]에 대한 글에서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했으므로 더는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백제百濟가 중토中土와 반도半島의 두 영역領域에 대한 경영이 가능하였던 원인과 신라新羅 세력을 이어 내해內海의 패자覇者로 군림君臨했던 이유와 그 저력底力은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要因이 서로 보완적補完的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여 진다.  



가) 발해연안勃海沿岸과 동해(東海-중토中土의 동쪽 바다)의 도서점령島嶼占領으로 말미암은 해상교통중계망체계海上交通中繼網體系의 완전한 구현具現



AD 5C 말엽까지 중토中土의 월주越州 즉 상해上海 지방과 한반도韓半島 서해西海와의 사이에 있는 섬을 신라인新羅人들과 백제인百濟人이 나누어 장악掌握했으며 당唐 태종太宗 때에는 산동반도山東半島 앞 바다의 [오호도烏呼島*대사도大謝島*구흠도龜歆島*유도游島]가 있어


열국列國 말기 고구려군高句麗軍은 백제百濟에게서 빼앗은 이 섬들을 발판으로 자주 산동반도山東半島를 엿보아 백제百濟는 군사기지軍事基地를 설치해 대비하기도 했고 백제국百濟國은 서쪽 앞바다의 주호국州胡國까지도 차지했으나 후에 그 섬은 침몰沈沒하였다.



백제百濟의 서남쪽 발해渤海 바다에 사람이 많이 사는 15개의 큰 섬이 있는데 모두 백제百濟에 속했다.   <괄지지括地誌*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의 주注> 


나라의 서남에 걸쳐 사람들이 사는 15개의 섬에 성읍을 세워 머물고 있다.  國西南人島居者15所皆有城邑...<수서隋書 백제전百濟傳>



나) 기항요충寄港要衝인 주산군도舟山郡島 지역으로의 진출進出



고대古代의 회계會稽는 항주만沆州灣 남쪽의 절강성浙江省 소홍紹紅이었고 그 앞 바다에 있는 20개 소국小國들이 주산군도舟山郡島이었으며 이곳까지 동제인東鯷人이 진출했다.



회계會稽의 바다 밖 동제인東鯷人이 20여 국으로 분립分立해 매년 조공朝貢했다.  會稽海外有東鯷人分爲20餘國以歲時來獻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 권28 하下 오분야지>


삼한三韓의 경계는 제학鯷壑에 연沿했으며......제학鯷壑의 동제인東鯷人들은 해중海中의 섬인 오파鼇波에 산다  <한원翰苑 한전韓傳>


동제인東鯷人이 사는 제학鯷壑은 바다의 섬으로 오파(鼇波-소산현지의 오자산鼇子山)와 함께 바다에 있다.  鯷壑 東鯷人居海中州 鼇波俱海也有也   <위략魏略>



제학(鯷壑-메기들의 구렁)이 바로 주산군도舟山郡島이고 여기까지가 삼한三韓과의 경계란 말이며 당唐 때의 월주越州가 한漢의 회계會稽이니 백제인百濟人들이 무역을 빙자憑藉해 주산군도舟山郡島를 장악하고 우글거리니 한인漢人들은 <제濟를 제鯷 즉 메기 떼>로 비하卑下해 <동쪽의 메기 떼라는 동제인東鯷人>이라 했다(이로 보아 아마도 어느 시기엔가 신라계新羅系를 압도壓倒하기 시작한 듯하다).



백제百濟의 서쪽 경계는 월주越州이다.  (百濟)西界越州   <신당서新唐書 백제전百濟傳>



주산군도舟山郡島 동쪽의 보타도普陀島는 고대古代의 해상요충지海上要衝地로 처음 지명地名은 담로계擔魯系인 단주亶州로서(亶州山在縣東北近海岸-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명주溟州 무현鄮縣 조條) 단주산亶州山은 지금의 항주만沆州灣 금당도金塘島로 비정比定되는데 담擔*담淡과 단亶은 한음漢音(dan*tan)으로 동일하고


절강성浙江省 온주溫州의 단두산檀頭山*대만臺灣 대북臺北의 담수항淡水港*고웅高雄의 담수사淡水社*광동성廣東省 혜주惠州의 담수장淡水場*광동성廣東省 감광시의 담수채淡水寨*흠주欽州의 담수만淡水灣 등은 모두 동해안에 한정되어 있는 다물多勿에서 비롯된 백제어百濟語 담로계淡路系 지명地名이다.



보타도普陀島는...지난날 일본日本*고려高麗*신라新羅로 가려면 길을 잡으려고 모두 여기에서 바람을 기다렸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권92 보타락가산普陀落迦山 조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