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8. 8. 23:09

 

 

[앵무새 죽이기-비틀어진 역사] 한자발음의 비밀...반론

(만들어진 한국사 제2부 미스테리가 아닌 미스테리 제3항 한국사 미스테리 관련)

 

 

[앵무새의 주장]

 

한국사 미스터리 60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 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 민족밖에 없다』 저 글을 읽으면 무슨 말인가? 싶습니다. 저 주장의 근원은 한자를 만든 사람들이 우리 조상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오래된 것은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이어야 직성이 풀리는 유사역사가들이 한자라고 해서 남의 나라 고안품으로 남겨둘 수가 없었죠. 그래서 한자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바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고문헌에 나오는 발음법이란 무엇일까요? 한자는 잘 알다시피 표의문자입니다. 한글과는 달리 발음을 표기하는 글자가 아니지요. 하지만 어쨌든 읽어야 합니다. 전혀 모르는 글자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이 때문에 잘 알려진 글자를 통해 전혀 모르는 글자의 발음을 표기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첫 자음을 나타내는 한자 하나와 모음과 받침을 나타내는 한자 하나를 써서 새로운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는 방법이죠. 이것을 반절법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쓰는 한자의 발음은 고대의 반절법과는 발음이 다른 것이 많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좀더 고대 발음과 비슷합니다. 이런 것을 이유로 고대 발음을 좀더 많이 간직한 우리가 한자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큰일날 주장인 것입니다.

 

언어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어서 한자는 외국어여서 외국어로 학습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변화가 느리게 일어났습니다. 이런 현상은 언어학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중국은 지배층이 변경될 때마다 지방 방언이 표준어로 변경되는 등의 일을 겪었으나 우리는 외국어로 한자를 대하면서 그런 급격한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이나 베트남의 경우도 한자의 고대 음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우리말 공부를 하다보면 경상도 사투리와 비슷한 것들을 발견하는 것과도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한자는 갑골문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한자까지 그 발전 양상이 수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갑골문 유물이 16만 점이 넘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그런 것이 있나요? 달랑 고대 발음을 가지고 있으니 한자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주장이지요. 물론 대륙론자에게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중국 대륙에서 발견된 갑골문 유물은 모두 우리 조상이 만든 것이라고 우기면 됩니다.

 

그런데 왜 거기에 우리나라 단군 이야기는 안 나오고 은나라 주나라 이야기만 나올까요? 우리말도 세종 시절에 쓰인 글은 지금 읽으면 발음이 아주 많이 달라진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말에는 늘 쓰이는 조사 <를>이라든가 <에> <즐>과 같은 것들은 한자에는 없거나 드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발음들 <바*너*더*러*머> 등의 한자도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임승국 교수는 한자에 대하여 이런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반절음半切音은 한자의 발음기호다. 예를 들어 "學"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우리는 "學"의 반절음은 "할각절轄覺切"로 적는데 끝의 "切"은 발음기호라는 암호이다. 절切 위의 두 글자 "轄覺"이 학學의 발음을 결정하는 요소다.

 

할轄*각覺은 첫 자 할轄에서 초성 <ㅎ>을 취하고 둘째 글자 <각覺>에서 중성과 종성 <ㅏ*ㄱ>을 취하여 <학>이라는 음을 이룸을 뜻한다. 이것이 <학>의 발음인 것이다. <절切>의 4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입성入聲 표시인데 입성이란 <ㄱ*ㄹ*ㅂ>이 받침으로 쓰이는 소리를 말한다. 과연 <학學>은 4성인 <학>의 발음이다. 그런데 지나인들은 입성 발음이 자전에만 표시가 있지 실제로 발음은 하지를 않는다. <학*날*입> 등의 발음을 못한다.

 

중국인들이 입성을 발음하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입성은 송나라 이후부터 중국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여 원나라 쯤 되면 완전히 사라집니다. 북방 방언권내로 말하자면 하북성 중부 이북에서는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하북성 중부 이남에서는 일부 입성이 화석화되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남부 방언권에서는 입성이 거의 보전되어있고요. 그래서 한국 한자음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이 놀라고 그런다지요.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지요. 늘 변화합니다.

 

 

[블로그 원문原文]

 

옛날에 임승국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자는 지나의 글자가 아니라 우리 글자입니다. 약 4만 3천여 자가 옥편 속에 있는데, 글자 하나 하나마다 대개 발음기호가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學"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우리는 "學"이라는 발음기호를 적었을테고, 지나인은 한글을 모르니까 자기네 발음기호를 적었습니다. 즉 "轄覺切"으로 표시되어있습니다.

여기서 "切"은 "轄覺切"이 발음기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읽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첫글자에서는 자음(ㅎ)만 취하고 두번째 글자에서는 모음(ㅏ)과 받침(ㄱ)을 취해 읽으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轄覺切"로 중국옥편에는 2000년동안 적혀 내려오고 있는데, 지나인은 "學"발음을 못하고 "쉬에"라고 합니다.

 

가,띵,밑으로 끝나는 글자를 사성 중 입성이라고 하는데, 지나인은 입성을 발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문자(漢文字)는 지나인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것이고, 한민족의 발음으로서만이 완벽히 소리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중국어를 잘 몰라서 입성을 중국인이 발음하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자 사전을 보면 轄은 xia라고 하고 覺은 jue 라고 한다. 學은 xue이다. 반절대로 읽는데? 임승국은 學을 hak이라고 발음해야 되는 건지 알았을까? 저런 떡밥에 아직도 걸리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가, 띵, 밑으로]라는 부분은 뭔가 글자가 깨졌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나오는 글에는 다 이렇게 되어 있으니 확인 불가능. 환○들은 글을 옮기면서 읽어보지도 않는 모양이다.

 

추가 : 도원님 댓글에 의하면, 중국어 발음에 입성이 없어진 것은 청나라 만주족이 입성 발음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음체계를 자기들 쉽게 정리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군요. 자칭 역사학자 임승국은 어째 그런 조사도 없이 저렇게 자신만만했던 걸까요?

 

추가2 : 講壇走狗님의 해설 (講壇走狗님은 이 방면의 전문가십니다) 중국어에서 입성이 사라진 것은 송대 이후이며, 원대 쯤 되면 완전히 사라집니다. 북방방언권 내로 말하자면, 하북성 중부 이북에서는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하북성 남부 이남에서는 일부 입성이 화석화되어 남아있는 흔적이 나타납니다.

 

남부방언권에서는 오, 상, 감과 같은 중부 방언권에서는 북방방언과 마찬가지로 화석화되거나 아예 탈락되는 경우가 종종 보이며, 월, 객가, 민과 같은 남부방권에서는 입성이 거의 온전히 보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한자음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이 놀라고 그런 거지요. 문제는 말이죠, 현재의 한국한자음은 보통 당대 전후의 중국 중앙방언이 들어온 거라니까요. 입성을 보존하기로는 베트남한자음이나 일본한자음이나 매일반이고.

 

 

[앵무새들의 합창]

 

<도원> 이미 아시겠지만, 중국인들이 입성을 발음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만주인들이 대륙을 장악하고 보니 만주로로 입성을 발음하기가 힘들어서 받침을 없애 버린 것이 오늘날의 만다린(mandarin)입니다. 낚시에 걸리지 않기가 힘든 세상이죠.

<초록불> 도원님 / 몰랐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시퍼렁어> 궁금한게 있는데... 국정 교과서나 교재에 나온 간도문제에 대한 정보를 알수 없을까요 궁금하네요?

<초록불> 시퍼렁어님 / 국사편찬위원회 Q&A에 물어보시면 됩니다.

<카시아파> "우리는 "學"이라는 발음기호를 적었을테고" 에서 "테고"에 방점. 아주 추측성 발언의 정수네요. 학자로서 할 수 없는 말. -_-

 

중국어의 역사에서 발음은 두 번의 대변화가 있었습니다. 몽골족의 원나라가 들어온 뒤 장단음 원칙이 흐트러지고 평성 거성 입성의 규칙이 흐려지죠. 그리고 만주족의 청나라가 들어온 뒤 도원님 말씀대로 받침이 없어지며 장단음이 아닌 높낮이와 가락으로 구분하는 지금의 4성체계가 되고요.

 

이런 변화는 남방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서 남방 방언에는 4성이 불분명하고 입성이 살아 있습니다. 홍콩어나 대만어에는 현대 중국어에는 없는 ㄱ 받침, ㄷ 받침 등이 있고요.

 

사실 한자 자체가 외교 공용어처럼 쓰이다 보니 각 민족마다 자체 개발한 한자와 한자어휘를 쓰기도 했고, 그게 다시 한족에 역수입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영향관계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제작자는 다른 민족이고 한족이 수입해서 쓰는 한자"만 발견한 뒤 감격하여 "이건 우리 민족어로만 뜻이 밝혀지는 걸? 한자는 우리 민족이 만든 거였어!"라고 외칠 민족이 상당히 많습니다.

거꾸로 중국 한족들이 다른 민족이 만들었던 어휘를 역수입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아예 문화 자체가 모두 중원에서 뻗어나간 거라 우기기도 하고요. -_-;;

 

(우리나라에선 별로 장사 안 되고 있는) 돈황학의 한 파트에 그런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들이 만든 한자체계를 연구하여 중앙아시아의 민족어를 밝히는 분야도 있습니다. 한국인 중에서도 돈황학 전공하고 돌아온 분이 계시고 돈황학회가 있습니다. 그쪽 분들도 외부에 연구 결과 좀 턱턱 풀어놔 주시면 많은 갈증이 해소될 텐데 아직 여러 난관이 있다 보니 아쉽네요...

<kiekie> 안녕하세요, 링크타고 놀러왔습니다. 앞으로도 가끔 들리지요

<chione> 남방에서 올라온 친구가 자기네 방언으로 책을 읽는데, 한국식으로 한자 읽는 것과 거의 같아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현대 중국어에 없는 발음도 그 친구는 하더라고요. ^^

<초록불> kiekie님 /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chione님 / 카시아파님이 트랙백한 내용과 상통하는군요.

<홍비홍신랑> 그냥 역사에 관심이 많은 보통사람입니다...여기 와서 많이 배우고, 또 심각한 저의 무지를 많이 깨우칩니다......전부터 자주 들렸었는데 글은 오늘 처음 남기는군요 더 자주 와서 많이 배우고 궁금한 건 질문도 하고 가겠습니다...앞으로도 무지몽매한 저를 부디 환○들로 부터 구원하시어 바른길로 인도하소서....^^ P.S 삼국지도 잘 읽고 있습니다

<초록불> 홍비홍신랑님 / 반갑습니다. 삼국지도 빨리 업데이트 해야 하는데...

<講壇走狗> 제가 보충하지요. 중국어에서 입성이 사라진 것은 송대 이후이며, 원대 쯤 되면 완전히 사라집니다. 북방방언권 내로 말하자면, 하북성 중부 이북에서는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하북성 남부 이남에서는 일부 입성이 화석화되어 남아있는 흔적이 나타납니다. 남부방언권에서는 오, 상, 감과 같은 중부 방언권에서는 북방방언과 마찬가지로 화석화되거나 아예 탈락되는 경우가 종종 보이며, 월, 객가, 민과 같은 남부방권에서는 입성이 거의 온전히 보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한자음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이 놀라고 그런 거지요.

 

문제는 말이죠, 현재의 한국한자음은 보통 당대 전후의 중국 중앙방언이 들어온 거라니까요. 입성을 보존하기로는 베트남한자음이나 일본한자음이나 매일반이고.

<팬티팔이녀> 學"이라는 발음기호를 ?????이거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네요 뜻글자인데 어떻게 저게 발음기호가 되는건지 `학' 이나 'hak'이런게 발음기호 아닌가요

<초록불> 팬티팔이녀님 / 저 동네 이야기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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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언젠가 한번쯤은 건드려 보겠다는 생각을 한지 1년이 지나서 [앵무새]의 새로운 주장을 접한 다음 시작하였는데 생각보다 꽤 시간을 잡아먹었습니다. 제 견해見解의 근거로 사용한 서책書冊은 [설문해자說文解字]와 [산해경山海經]을 비롯하여 여러 연관되는 문헌文獻들을 종합하였지만......

 

완전하다기보다는 앞으로 이 부분을 좀더 집중적으로 연구하시게 될 분들을 위해 조금 대문을 열어놓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에 관한 최종적인 완성은 이제 다른 분들의 몫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아무튼 쓰다보니 분량이 많아졌지만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한 가지로 생각이 모아지는 걸 느끼게 될 것입니다. 졸필拙筆이지만 그런 마음으로 접接해주셨으면 저로서는 무척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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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위 글을 보면서 [앵무새]가 <한자음漢字音>의 비밀이랍시고 분석한 내용들이 서술구조敍述構造에서 얼마나 논리論理 비약飛躍이 심하고 결정적인 아니 제대로 된 논거論據조차 제시提示하지 못한 자기 생각으로만 내린 결론을 중심으로 설명하였는지? 를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이런 논술論述 태도는 학자學者가 아니라 선동가煽動家의 모습이다.

 

그래서 필자筆者는 앞으로 논지論旨의 전개에 있어서의 기준을 그가 해결사解決士로 선택한 [반절법反切法]의 원칙에 충실하되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주섬주섬 읊조린 한자漢字의 발현發顯 과정에 있어서의

 

순 우리말 표기表記 방식과 저들의 표현방식은 분명하게 차별성差別性이 있다는 제대로 된 논거論據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왈가왈부曰可曰否한 문제의 보다 정확한 해석에 철저히 주력할 것이다.

 

 

제1절 머리글

 

 

글자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유물遺物인 동시에 변천과정 또한 하나의 역사이다. 오랜 옛날부터 곳곳에 살아왔던 민족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말이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이른 바 약속되고 공유共有된 기호記號로서 [문자文字]가 등장한다.

 

따라서 한 글자체계를 연구할 때 문자가 생겨나기 전에 이루어졌던 말이나 그 시대의 공통적인 사유관념思惟觀念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까닭으로 그러한 모양과 발음형태發音形態가 만들어졌는지? 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필자筆者가 이 문제에 접근하면서 가장 먼저 우리의 상고역사上古歷史 발전과정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갑골문자甲骨文字] 이전의 금문金文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글]이란 맨 처음부터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약속되고 수용受容된 하나의 [부호符號]이었으므로 마치 도형圖形과도 같은 기호記號를 빌려 어휘語彙들을 발현發顯시키기 때문에 탄생과 함께 [문자의 역사]가 시작되며 그 기원起源을 알아낼 수 있는 꼬투리를 그 안에 잠재潛在시키고 있다.

 

한자漢字의 발원發源은 [금문金文]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금문金文은 역사시대 개막開幕까지 발견된 각종 나무 류類와 동물의 껍질과 뼈는 물론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부호符號와 글자를 모두 대상으로 삼는다.

 

아울러 농기구農器具와 병장기兵仗器 그리고 그 시대에 통용通用된 돈과 제기류祭器類도 주요 비교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특이한 시사점示唆點이 발견된다. 즉 한족漢族의 시조始祖라고 그토록 추앙推仰받고 있는 황제黃帝의 이름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이후의 명문銘文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중국中國 학계學界는 여전히 [상고금문上古金文]을 인정하지 않는다. 들추어 보면 동방족東方族의 흔적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신화神話와 전설傳說로 뭉개버리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모든 사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글자였기 때문에 선뜻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듯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역사로 간주하고 싶어 하는 은殷의 [갑골문자甲骨文字]를 최초의 글자라는 자리에 대신 올려놓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이전의 문자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통상通常 우리가 알고 있는 금문金文을 좀더 명확하게 분류한다면 [오제금문五帝金文인 상고금문上古金文 - 은주금문殷周金文 - 춘추금문春秋金文]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에서 현재 존재하고 있는 한자漢字에 관해 음운구조音韻構造나 발성체계發聲體系 그리고 어휘구성語彙構成 면에서의 기원起源을 알고자 할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문자는 [하夏 시기 중간까지로 늘려 잡은 상고금문上古金文]으로 한정되어질 수밖에 없다. [1]

 

[1] 본 논의論議에서 적용되는 금문金文들은 그동안 전래傳來되어 오던 것을 정리한 <전적집典籍集>과 출토出土된 다양한 화폐貨幣에 새겨진 글자를 풀이한 <화폐집貨幣集> 그리고 병장기兵仗器에 새겨진 문자를 해석한 <병명집兵銘集>과

 

서적書籍에 등장하는 오제시대五帝時代 인물을 집중 연구한 <인물집人物集>을 표본으로 삼는다. 참고로 현재까지 발견된 금문金文이 새겨진 기물器物들은 대략 1만 여점餘點인데 그 가운데 한족漢族들의 사고思考와 인식 범위 안에서 해독解讀이 가능한 글자들은 겨우 1천자千字 미만이다.

 

 

어쨌든 상고上古에 글자가 생기게 된 까닭은 대부분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동기動機가 작용하였다. 주요한 계기契機로서 작용한 원인들을 손꼽자면

 

 

그 당시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했고 통용通用되어야 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단적인 삶의 양태樣態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招來할 실체實體들을 공유共有시킬 필요가 있을 때(물명物名*지명地名*인명人名 등)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의식구조意識構造나 사유방식思惟方式 등의 관념체계觀念體系들을 대내외적으로 표현할 이유가 생겨날 경우(서열序列*신분身分*권위權威*고유固有의 인식과 세계관*정신적 창조물創造物 등)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알리거나 자신들 집단의 정체성正體性을 차별화差別化시켜 부각浮刻하려 할 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씨칭氏稱과 씨표氏表*족칭族稱과 족표族表 등) [1]이다.

 

[1] [씨칭氏稱]은 스스로 칭稱하거나 아비*어미의 씨氏를 자신의 것으로 이어받은 명칭名稱이다. [씨표氏表]는 씨칭氏稱이나 족칭族稱을 이어받으면서 고유固有의 표시表示 글자를 덧붙인 것이다. 대개 깃발이나 상징을 나타낼 때 쓴다. [족칭族稱]은 해당 종족種族을 대표하는 글자이며 [족표族表]는 족칭族稱을 다음 대代에서 이어받은 것이다.

 

이 가운데 표表가 발전하면서 주기主旗와 종기從旗로 구성되어 움직였는데 이때 주기主旗를 [둑纛]이라 하였다. 즉 한족漢族들이 <진군할 때 치우기蚩尤旗가 불꽃처럼 일렁이면서 종기들이 뒤따라 마치 혜성彗星과 같이 움직인다>라고 표현한 그런 형태이다.

 

 

이런 단계에서 생겨난 글자들의 소리 값과 발음방식發音方式들의 정형화定型化 과정을 비교하여보면 [󰊱 표기목적물表記目的物 선택 - 󰊲 기호화작업記號化作業 - 󰊳 공유화共有化 유도 - 󰊴 민족의 기본관념 속에 녹아들은 소리글자로서 인정]이라는 기본적인 발전양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아울러 이러한 프로세스를 어떤 세력이 주도主導하고 있었는지? 금방 깨닫게 해준다.

왜냐하면 한자漢字의 발전과정(은주금문殷周金文-춘추금문春秋金文-대전大篆-소전小篆)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상고금문上古金文>에 이르기까지 한족漢族들의 인식으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거나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던 관념체계 상上으로는 해독解讀하지 못하던 부분들이

 

마치 하나로 이어진 고구마 줄기처럼 일맥상통一脈相通하게 순수한 우리말로 슬슬 풀리는 아주...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 글을 통해서 체험體驗 [1]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말이 아니면 손쉽게 그 뿌리(근원적根源的인 뜻)와 생겨난 이유들을 풀어낼 길이 없다는 말이다.

 

[1] 여기에서 필자筆者의 언어구조학적言語構造學的*음운구성학적音韻構成學的 비교분석방법을 같이 경험하기 위한 한 가지 TIP을 설명해 주겠다. 즉 우리들이 지금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체험體驗]의 <체體 Tĭ*Tī>는

 

우리말 [티내다*티껍다*촌티 나다]의 <티>와 지극히 관련이 깊다. 말소리(몸*모양이라는 뜻인 체體)와 순 우리말로 표기表記된 소리글(티)로 이중화二重化된 우리말의 음운구성법칙音韻構成法則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정말로 한족漢族들처럼 풀어놓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해석상의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제 이런 방법을 한자漢字의 초기 생성 과정과 발전 단계에 적용해보자! 여기에서 한 가지 머리에 담아둘 일은 생각의 전환轉換이다. 즉 [말]은 입에서 터져 나오는 대로 얼마든지 손쉽고 다양하며 길게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소리글]로서 옮길 때는 어지간한 경우 이외에는 결코 그렇지 않으므로( 새기기 편하도록 간단하면서 가장 빠르게 공유共有될 수 있도록 단순화시켜야 되며 쉽게 인식화認識化 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어미語尾나 덧붙임 말을 줄여야 한다는 표기원칙表記原則이 절대적으로 적용된다)

 

자연스럽게 <긴 말의 뜻이 정확히 그리고 분명하게 전달되도록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줄인 글자>로서 표기表記l되어져야 하는데 가장 합당한 방식을 고르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우리 어휘語彙는 [1 글자 1 음절音節]이라는 관습慣習이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되도록 이에 맞추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기본적인 숙제를 안고 있다.

 

 

제2절 본론本論 시작

 

 

우리가 이 문제를 짚어나가기 전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안事案이 있다. 즉 신화神話는 과연 설화說話로서만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야 할까? 라는 명제命題이다.

 

신화神話와 역사의 차이란 무엇일까? 기존旣存의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이고 관례적慣例的인 안목眼目에서 벗어나 역사해석의 진정성眞正性에 보다 접근한 시각視覺에서 새로운 관점觀點으로 본다면 이렇게 한 마디로 모아질 것이다.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인식 밖이어서 도저히 이해 불가능할 경우 해답은 하나이다. 이를 신화神話와 전설傳說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처지에서 남들이 신화神話라고 보는 역사적인 진화과정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던 집단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분명하게 느껴지는 엄연한 그리고 치열했던 삶의 이야기이다.

 

즉 그 시대적인 상황에 끼어들 수조차 없었던 한족漢族들에게는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개될 수도 없었으며 수용受容하기도 어려운 내용이기에 신화神話이지만 동방족東方族에게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였고 역사의 연결고리처럼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삶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그 모범적인 사례事例가 바로 [삼황오제三皇五帝의 발자취]이다.

 

별안간 하늘에서 툭! 떨어지거나 우주宇宙에서 날라 온 게 아니라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발생적이며 원초적原初的인 물음(정체성正體性 확인)인 [우리는 정말로 누구에게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또한 어떻게 뜨거운 삶을 이어나갔는가?]란 명제命題를 기준으로 할 때

 

전혀 생소한 이야기라든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든지 아니면 맞출 수 없는 다른 조각임이 분명한 당사자當事者들에게는 신화神話나 전설傳說이상으로 밖에 기능할 수 없을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집단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고上古 역사로 재조립된다는 의미이다. 이를 말해주는 좋은 금언金言이 있다.

 

 

1) 과거의 현실은 신화神話의 환상幻想에 반영되어 있다. <칼 마르크스>.

 

신화神話로만 여겨졌던 [트로이 전쟁]도 독일의 쉴리만이란 열성적인 학자가 14세 때 <일리아드 -호메로스의 서사시敍事詩>를 읽고 확신한 집요한 노력으로 마침내 1873년 트로이 성城과 에게 해海 유적遺蹟을 발굴해내었다.

 

 

2) 신화神話나 전설傳說은 살아있는 것이어서 언제든 다시 논의論議될 수 있고 어느 때든 보다 많은 진실眞實을 드러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전설적인 왕조王朝라고 여겼던 은殷이 19C 말부터 은허유적殷墟遺蹟의 발굴로 실존實存했음이 드러났다.

 

 

□□□□□□□□□□ [여기서 잠깐] □□□□□□□□□□

 

이쯤에서 특히 명심할 부분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앵무새]가 <반절反切>을 거론擧論하면서 사례事例로 든 한자漢字들이 과연 앞으로 필자筆者가 설명할 초기初期 소리글자 형성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시원적始原的인 한자漢字이냐? 라는 점이다.

 

즉 나중에 한족漢族들이 자체진화自體進化시킨 글자는 본 글의 논의論議 대상에서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필자筆者는 앞으로의 발음체계분석發音體系分析에서 이 원칙을 최대한 지킬 것이다.

 

그리고 문자 형성 내용에 대한 설명은 사례분석事例分析의 본보기로 선택한 각 소리글자의 [설문해자說文解字] 인용引用 대목에서 이루어질 것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감안하여

 

자형字形과 성운聲韻 그리고 자의字義를 합리적이고 공정한 선별選別 방식으로 택擇 할 것이다. 그 이유는 <허신許愼> 자신이 다음과 같이 실토實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문籒文은 고문古文과 간혹 다르다. 공자가 육경을 쓰고 좌구명이 춘추전을 기술하였는데 모두 고문으로 썼다. 이 때 진시황은 경서를 태워 없애고 옛 전적을 말끔히 제거하였다...고문은 이로부터 단절되었다. 籒文與古文或異 孔子書六經左丘明述春秋傳皆以古文 是時 秦燒滅經書滌除舊典...而古文由此絶矣

 

멸망한 신의 거섭에 이르러...가끔 고문을 달리 고쳐 썼다...지방 제후국에서도 가끔 산과 내에서 솥과 제기 등을 얻어 볼 수 있는데 거기에 새겨진 명문이 바로 전대의 고문으로서 모두가 본래 서로 비슷한 것이다. 及亡新居攝...頗改定古文...郡國亦往往於山川得鼎彛 其銘卽前代之古文 皆自相似

 

이런 것들이 대단히 많은데 모두 공자택의 고문(벽중서壁中書)와 부합되지 않는다. 이제 전문을 씀에 있어 고문*주문에 부합시켰다. 이른바 역맹씨(역경)*서공씨(서경)*시모씨(시경)*예주관(주례)*춘추좌씨(좌씨전)*논어*효경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고문이다. 若此者甚衆 皆不合孔氏古文 今敍篆文合以古籒 其稱 易孟氏*書孔氏*詩毛氏*禮周官*春秋左氏*論語*孝經 皆古文也 <설문해자說文解字 서序>

 

 

이로보아 허신許愼의 인식에서 고문古文은 한대漢代에 발굴된 고문경전古文經典의 서체書體를 말하며 그 이상을 올라가지 못하였음을 이해하게 해준다. [1] 또한 실제로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보여주는 해석의 기준이 진전秦篆을 제외한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모든 서적書籍에서 사용하던 문자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백한 사례事例를 들어보겠다.

 

[1] 주문(籒文 -주周 선왕宣王의 태사太史 주籒가 쓴 대전大篆)이라도 그가 있을 무렵엔 잔본殘本인 사주편史籒篇에 실린 15편 가운데 겨우 9편만 남아 있었다. 석고문石鼓文이나 조초문詛楚文은 아직 출토出土되지도 않았다.

 

 

疋는 발이란 뜻이다. 제자직弟子職에(관자管子) 이르기를 (어른이 누울 때의) 발은 어느 쪽에 두어야 하는가? 를 묻다. 라 하였고 고문으로는 <시*대아>의 아 나 혹은 족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疋部 疋 足也...弟子職曰 問疋何也 古文以爲詩大疋字亦以爲足字 <설문해자說文解字 소부疋部>

 

 

허신許愼은 관자管子를 예例로 들어 설명하는데 이로보아 분명하게 상고금문上古金文에 관한 인식에서가 아니라 [1] 관자管子에서 보이는 자체字體를 기준으로 삼아 풀이하는 걸 느끼게 해준다.

 

[1] 이 당시 그가 참고로 할 수 있는 기본 사료史料는 승상丞相 이사(李斯 -창힐편蒼頡篇)와 중거부령 조고(趙高 -원력편爰歷篇) 그리고 태사령太史令 호무경(胡毋敬 -박학편博學篇)이 전문籒文을 줄이고 고친 소전小篆이 바탕이었음이 [서序]에서 나타난다(진시황제秦始皇帝가 천하天下를 통일하자...진秦 문자와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없애버렸다...(완성된 3300자字는) 모두 사주史籒의 대전大篆을 취하여 다소 줄이고 고친 이른바 소전小篆이란 것이었다).

 

이는 [서序]에서 스스로 상고금문上古金文이 존재하였음을 밝혔는데도(솥이나 제기祭器 명문銘文을 수집하여 이것들도 고문古文이라 불렀다) 거의 인용하지 않았음을 보아도 그렇다. 그 까닭은 자기 판단에 의해 [1] 생략하거나 버린 것인데 이것이 필자筆者가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해설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하는 이유이다

 

[1] ...새겨진 명문銘文이 바로 전대前代 즉 춘추시대春秋時代의 고문古文으로서 모두가 본래 서로 비슷한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소전小篆*전문(篆文 -해석에서 속俗이나 금문今文으로 말해지는 것들이다)*주문籒文과 춘추시대春秋時代 고문古文을 주主 대상으로 하였다는 걸 알려준다. 그래서 수록된 자수字數도 소전小篆의 3300자가 아닌 9천자이다. <속俗>은 한漢 소제 때 곽광霍光이 만든 속전俗篆이다.

 

 

둘째,

 

우리가 [COCA-COLA]를 접接하였다 하자. 우리말로는 들리는 대로 <코카-콜라>라고 한다. 한족漢族들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들도 가능한 한 귀담아들은 원래의 음가音價에 맞게 <가구가락可口可樂 Kĕkŏu-Kĕlè 즉 커코우 커러>라고 표기表記한다.

 

결국 세 나라의 소리 값은 원原 제품명에 걸맞게 모두 비슷하다. 아마도 반절법反切法이 통용通用되었다면 그렇게 읽으라고 설명했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물건을 접한 나라에서는 가능한 한 원산지原産地의 발음發音을 존중하여 그렇게 들리는 대로 표현하려고 애쓴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옛 소리는 거의 [거센 소리와 된 소리]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한어漢語를 <카쿠카라-커코우커러>라고 하지 않고 비슷하게 순한 소리를 적용하여 [가구가락]이라 읽는다. 결국 우리나라나 중국中國은 그대로 원음原音을 따라 발성發聲한 것이며 따라서 이 물건의 이름을 원래 만들어낸 나라가 어디인지? 짐작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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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기본적인 비교언어학적比較言語學的 입장과 관념적 인식을 가지고 [한자漢字가 과연 우리말로 읽고 이해해야 정확하게 원래의 뜻으로 풀어지는지?] 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事例 중심으로 함께 종합적으로 접근해보자!

 

 

의미에서 의문이 있는 글자는 성음聲音으로서 이를 탐구해내고 성음聲音에서 의문이 있는 글자는 의미로서 이를 바로잡는다. 疑語義者以聲求之 疑於聲者以義正之 <대진戴震 전어轉語 서언序言>

 

 

1. 순 우리말로서 <지극하고 높은 우두머리이며 밝고 큰 어르이라는 극존칭極尊稱>을 표현한 [신 神 shén]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신」으로서 [|]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신>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完成形으로서 <신申 shēn 과 神 shén>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태산泰山 아래에서 만든 조폐(鉏貝 -한족漢族은 대개 기둥 주패柱貝라 한다)에 새겨져 있는 글(사고전서四庫全書 844-12*가재집고록 26책 20)

 

 

[설문해자說文解字 등]

 

 

󰊱 신申은 신神이다. 7월에는 음기가 몸을 이루어 스스로를 폈다 오무렸다 한다. 스스로 가진 것을 좆는다. 申 神也 7月陰氣成體自申束 從臼自持也 <설문해자說文解字>

 

󰊲 신申은 음陰이 일을 하는 걸 말한다. 펼쳐지면 곧 만물萬物이므로 신이라 한다. <사기史記 율서律書>

 

󰊳 신申은 몸을 말한다. <석명釋名 석천釋天*진서晉書 악지樂志*광운廣韻 상평성上平聲 17 진眞운>

 

󰊴 신辛은 모든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거나 새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율서律書*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석명釋名 석천釋天>

 

※ 신囟은 식과 진의 반절反切이다. 囟...息進切(신囟 xín = 식息 xī + 진進 jìn - 우리말 「신」과 같다)

 

신申은 실과 인의 반절反切이다. 申...失人切(신申 shēn = 실失 shī + 인人 rén - 우리말 「신」과 같다)

 

신辛은 식과 린의 반절反切이다. 辛...息鄰切(신辛 xīn = 식息 xī + 린鄰 lín - 우리말 「신」과 같다)

 

 

가) 이 기호記號 글자에 대한 상징부호象徵符號의 가장 처음 형태는 [ ․ ]이다. 여기에서 먼저 아래와 위로 늘려 [|]가 만들어졌고 다음으로 좌우로 잡아당겨 [ㅡ]가 되었다.

 

나) 즉 [가장 높고 큰 어르 신]으로 밝은 터에 기둥(수리대*솟대)을 세워 비로소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중토中土에서 농경목축혼합경제기반農耕牧畜混合經濟基盤을 열었다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그래서 설문해자說文解字도 밝음의 뜻을 지닌 신명神明이라고 풀이한다) .

 

다) 앞으로 이 글의 전개에서......특히 중토中土의 동방제국東方帝國 영향력 확산擴散을 위한 실제적인 밑거름을 만들었으며 그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소리글자 체계] 발현發顯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또 발전의 바탕을 완성시킨 [신농神農]의 존재는 정말로 독보적獨步的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까지도 하나의 금자탑金子塔처럼 우뚝 서있으며 한족漢族들이 유난히 그의 후반기後半期 치세治世를 독선獨善과 억압抑壓으로 말미암은 혼란과 갈등葛藤의 국면局面으로 만들고 깎아내려 황제黃帝의 등장을 정당화시키는 빌미로 삼은 이유가 분명하다.

 

누가 무어라 해도 그 무렵 [동방계열東方系列의 대부代父 -큰 아비이며 큰 어르신]로서 존재했고 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한 예例로서 그는 아비인 소전少典이 고시씨高矢氏 [1] 의 방계傍系이며 어미는 치우씨蚩尤氏 집안의 여자로 알려진 강씨姜氏이었다. 그가 우양족단牛羊族團의 어른이며 강씨姜氏로서 강수姜水에서 기반을 닦은 사람이라고 알려진 이유이다.

 

[1] 뒷날의 거수渠帥 즉 순 우리말로 <커다란 씨 어른인 고시高尸*거시渠尸*거시巨尸>란 말이다. 이런 뜻에서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상고시相顧尸=상고지시相顧之尸>와 같은 용례用例인 거시(居尸 -큰 씨 어른)와도 통한다. 그래서 시尸 shī와 씨氏 shì와 시尸 shĭ는 소리가 같다.

 

 

한 마디 더 하자면 [산해경山海經]을 어느 누구라도 한번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중토中土 전역全域에 걸쳐 우리 동방계열이 틀림없는 세력들의 흔적이 의외로 많아 곳곳에 등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해외동경海外東經>의 군자국君子國 북쪽 사비지시奢比之尸와 간유지시肝楡之尸 <해내북경海內北經>에서 융戎의 근처인 거비지시據比之尸와 왕자야지시王子夜之尸 그리고 이부지시貳負之尸

 

<중산경中山經>의 염제炎帝 딸 여시女尸 <해외서경海外西經>에서 여축지시女丑之尸 <대황북경大荒北經>의 견융국犬戎國 융선왕시戎宣王尸 <대황동경大荒東經>에서 대인국大人國 근처의 이령지시 <대황남경大荒南經>의 祖狀之尸 <대황서경大荒西經>에 하경시夏耕之尸와 황거지시黃姖之尸 가 보인다.

 

 

라) [산해경山海經-북산경北山經]을 보면 황제黃帝가 처음 신농神農과 대치對峙한 북방 한계선으로 보이는 지역을 상징하는 [헌원산軒轅山 -호타수虖(池 -물 이름일 경우 타沱로 읽는다)水 남방에 있다] 북쪽에 우리 계열로 보여 지는 단수丹水와 알려산謁戾山 [1] 이 대치對峙하는 형국形局으로 나타나고

 

[1] 우리말인 예濊 yè와 리黎 lì이다. 바로 북편에 비록 한족漢族들이 글자를 어지럽혀 놓았지만 우리 계열인 <여와 기>가 확실한 저여산沮洳山과 기수濝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 부근에 [신균산神囷山 shēn qūn]이 분명히 등장한다. 그리고 곧바로 특별하게 까마귀를 같이 언급하며 [발구산發鳩山]을 설명한다. 이곳은 황하黃河에서 멀지 않은 북편이다. 이어지는 [해내경海內經] [1]에서

 

<새의 머리를 한 조씨鳥氏가 어른으로 있는 염장국鹽長國 -염yán으로 염제炎帝의 염炎과 같은 소리 값이다> 근처에 있는 <9개의 중요한 언덕 九丘>의 하나로 태호太皥 복희씨伏羲氏가 하늘로 오르내렸다는 건목(建木 -우리말로 큰 나무 즉 솟대)과 함께 [신농계神農系인 신민지국神民之國]을 특별히 말한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1]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현재의 관념으로 삼황오제三皇五帝-하夏 시대의 지역 구분을 오버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 당시에도 해내海內는 한족漢族들의 인식 속에서는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관중지역(管中地域 -그들이 후에 중원中原이라 부른 곳이다)에 불과했으며 그 바깥을 모두 해외海外로 보았다.

 

신농神農의 서쪽 한계선限界線를 알려주는 기록으로는 [서산경西山經]의 󰊱 황하黃河 북편에 있는 조산鳥山과 이어지는 [신산申山]과 [상신지산上申之山] 󰊲 낙수洛水와 위수渭水가 있으며 특별하게 <박달나무*송백松柏*목우牧牛와 암양이 많다>는 글과 함께 등장하는 [신수申水가 발원發源하는 신수지산申首之山] 을 어우르는 영역領域으로 보여 진다.

 

󰊳 신농神農의 선조先祖 출자出自가 황하黃河 상류上流인 황토지대黃土地帶라는 기록과 일치되기 때문이다. 이는 특별하게 같은 부분에서 위수渭水로 흘러드는

 

<강수剛水 -강철같이 굳세다는 뜻인데 신농神農이 처음 세력을 형성한 강수姜水와 친밀성이 보인다)에 사는 무리들을 [신치神(光+鬼)]라고 하여 마치 도깨비와 같이 두렵고 무서운 부류로 말하고 있는 걸로 보아서 (곽박郭璞의 주注) 충분한 짐작이 가능하다.

 

남방으로의 최대 경계선境界線은 [대황남경大荒南經]에서 제곡帝嚳*요堯*순舜의 장지(葬地 -악산岳山으로 곽박郭璞이 보통은 적산狄山으로 불린다고 풀었다)로서 설명하는데 등장하는 [신산申山]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곧바로 필자筆者가 묘민苗民을 장난질 친 것이라고 본 <우민국羽民國> 과 나란히 [신인神人 28인人]이란 특별한 기록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 <팔이 이어져 있고 천제天帝를 위해 들판에서 밤을 맡아 본다>는 말은 [서로 마음을 하나로 뭉쳐 동방계열의 강역疆域을 밤새 지킨다>는 이야기로도 풀릴 수 있으며

 

󰊲 16명의 우두머리 속에 포함된다고 여겨지는 [환두국讙頭國]과 [우민국羽民國] [삼묘국三苗國]이 모두 가까이에 있고 󰊳 뒷날 우禹가 크게 신경을 쓸 만큼 큰 세력이어서

 

그의 이름인 필畢이란 소리글자인 <새 잡는 그물 속에 이들을 의도적으로 그렸을 정도>이었으며 그 때문에 서로 대치對峙하는 형국形局처럼 왜 <필방조畢方鳥가 그들의 동쪽에 있다>라고 구태여 덧붙여 기술記述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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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는 부호符號 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본 배경에는 나름대로 다양한 역사적 과정을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파악하지 않고 단지 한쪽 면面만을 보고 유추類推한 단정이라는 걸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1) 고본절古本切 즉 <곤袞 gŭn-임금이 입는 곤룡포袞龍袍>으로 읽고 <셈대 세울 곤 象數之縱也>으로 풀이한다(장삼식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

 

2) 뒤로 물러설 퇴이다. 退也(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 또는 아래로 그어서 읽기를 <물러갈 퇴>로 읽는다. 引而下行 讀也 退(설문해자說文解字)

 

 

그 소리는 곤坤으로 읽는다. 古本切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說文解字 퇴退라는 풀이에 대한 주注>

 

 

3) 위 아래로 통할 곤이다. <신>과 음이 같다. 同音 신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 또는 위아래로 환히 통한다. 上下通也 (설문해자說文解字)

 

 

모두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해석解釋을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신농神農]의 행적(行蹟 -솟대를 세워 농경목축農耕牧畜을 열다*황제黃帝에게 져서 물러서다)을 그대로 상징기호화象徵記號化한 것이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 하나를 한족漢族들은 빠뜨리고 있다(혹시 일부러 외면外面하였던 건 아닐까?).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구태여 <위로 그어 정수리*가마 신囟으로 읽는다. 引而上行 讀若 囟>라고 강조한 구절句節이다. 다시 말해 <우두머리 중에서도 머리 한 가운데를 말하는 정수리에 해당하는 큰 어르신>을 나타내는 부호符號 글자라는 점을 결론으로 덧붙이고 있다.

 

이 말은 정확하게 전달되어 일본日本에서도 [가마 또는 가미]로 표현되면서 신神으로 규정되었다. 아울러 단옥재段玉裁가 많은 문자들을 고찰考察한 뒤 결국 <꽃을 곤坤 - 음音이 kūn인데 우리말 꽂는다. 의 「꼰」과 비슷하다>으로 주해註解한 이유도 [흙土에 신申을 합친 모양]으로서 절대자나 신성한 권위의 상징인 <솟대>를 대지大地에 꽂는 행위를 기호화記號化한 것이기 때문이다.

 

❸ 뒤에 언급할 [누에와 뉘조] 부분에서 다시 설명되겠지만 신농神農 당시 가히 의복衣服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누에>를 기르는 일은 비妃와 딸이 도맡았을 만큼 매우 중요한 [일감]이었다. 그래서 [|]과 함께 가장 먼저 나타난 [ ㅡ ] 가 <일 yi> [1]이라는 소리 값을 가진 이유는 순 우리말과 관련되었음이 명백하다.

 

※ [이二 èr] 는 위아래의 ㅡ 모양이 원래는 길이가 같았으며 하늘과 땅을 형상화形象化 한 것이다. 두 세계의 중간에 큰 사람들이(大人 -그래서 동방민족東方民族을 대인국大人國이라 불렀다) 우뚝 서서 하늘과 땅의 <얼>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소리도 [얼] [2] 이다.

[2] 여기에서 새끼를 친 우리말은 적지 않은데 <얼굴*어라하*얼라*얼이 있는 애인 어린애*어루만지다*어리둥절하다*어리벙벙벙하다*얼빠지다*얼간이*얼가리 배추*얼먹다*어릿어릿하다*얼쑤~> 등이다. 따라서 소리글은 [이二 나 이爾*이耳]로 썼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삼三 sān] 은 처음 부호符號가 <∴> 으로 △ 세 개가 모인 걸 단순화시킨 것이다. 즉 신농神農으로부터 삼대三代(신농神農 - 희화羲和 - 전욱顓頊)를 내려와 비로소 모든 게 완전히 갖추어졌다(족단族團의 뿌리와 할아비-아비-아들로 꾸며진 집안의 기본적인 혈통계보血統系譜와 제의祭儀 등이다)는 삼산三山과 서로 통함으로서 그 소리를 취取하였다.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 ㅡ ]의 글자 형상도 누에에서 비롯되었음은 더 이상의 군더더기가 필요 없다. 한 가지 덧붙일 말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풀이했듯이 [|]이 <신 또는 곤坤 kūn>으로 읽혔음도 순 우리말로 <재주가 많고 무엇이든지 눈썰미가 밝은 사람>을 [○○군 -지금은 ○○꾼으로 변했다. 아예 일반화되어 보통의 사내를 부를 때도 김군*이군으로 말한다]이라고 불렀다는 걸 이해하면 금방 왜 그런 소리 값이 나는지 깨달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보통 쓰는 말처럼 되었지만 처음에는 두 사람을 같이 부르는 [일꾼 즉 ㅡ 와 |] 이란 말이 이 무렵부터 생겨났고 둘이 합쳐 | 의 가운데가 불룩하게 배부른 <열 씹 즉 십十 즉 이를 신농神農의 씨를 밸 신娠이라고도 했다>을 만들었음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렇듯 글자 발생 초기에는 음音이 같으면 그 어근語根을 서로 빌려다 쓰고 뜻이 다르지 않으면 그 어간語幹을 가져다가 함께 사용했다는 사실을 가장 기본적인 소리글 해석과 소리 값 판단의 잣대로 삼아야 함을 앞으로의 비교검증과정比較檢證過程 전반을 통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한眞韓이 신한으로 통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밝혀진다. 우리말의 높임말에 <신>이 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어르*당 등). [신]은 정수리 신囟과도 통하는데(설문해자說文解字) 옛날에 썼던 진짜 뜻은 <가장 높은 어른*절대자絶對者*가장 밝고 우뚝 선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이 글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신농神農]이 바로 이 이름(신囟=신神=신申)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신농(神農 -사고전서四庫全書 844-12*가재집고록 26책 20에 나오는 조패鉏貝에는 | 라고 똑똑하게 새겨져있다) 시대에 중토中土에서 비로소 환국桓國의 영향력 안에 있는 고을나라 기초가 닦여졌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신囟]은 신神 등과도 넘나들며 모두 같거나 비슷한 음가音價이다.

 

황제黃帝가 등장한 시기와 중토中土에서 패권覇權 다툼이 시작된 실마리도 신농시대神農時代 이후와 맞물려 있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정상적인 흐름을 벗어난 황제黃帝의 움직임에 환국桓國의 치우蚩尤가 이를 다스리고 바로잡기 위한 군사적 행동을 한 것이라는 정황과 절묘하게 일치一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후 <최고지배자*절대자>를 뜻하는 [신]은 더욱 정형화定形化되어 마침내 제곡帝嚳의 시대에 <절대지배자이신 크고 높으신 어르신이며 새로운 우두머리>로서의 [고신高辛]이라는 어휘語彙를 완성하게 된다. 그래서 물론 발음發音이 모두 같다. 우리 민족들은 이를 늘 [신-진]으로 같이 말했고 한자음漢字音도 똑같다.

 

사실 더 깊이 캐보면 [어르신]의 <신>이 처음에는 [그 집안의 「씨 즉 시」를 만들어 뿌린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느낌이 강하다. 모두 같은 소리 값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이 서로 부르는 ○○씨*우리 민족의 호칭互稱인 시尸 shī>란 글자가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초기엔 격음激音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발음發音의 원형原型은 [시] 이었을 듯하다. 이 대목에서 [수메르]도 절대권력자絶對權力者를 [신인 GIN-부루 *부루 삭]으로 표기表記했다는 사실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❶ 신申 ➡ 우리말 신 ➡ 중국 발음 shēn

❷ 신囟 ➡ 우리말 신 ➡ 중국 발음 xin

❸ 신神 ➡ 우리말 신 ➡ 중국 발음 shén

❹ 신辛 ➡ 우리말 신 ➡ 중국 발음 xin

 

 

이런 이유 때문에 독특하게 진辰은 <진과 신>이라는 우리말 음가音價를 같이 가지고 있다.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진한은 원래 신한이다]라고 설명한 이유는 물론 이런 관계를 여러 고전古典 연구를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지금 어리석고 경망스러우며 천박한 지식과 얕은 학문적 소양素養을 지닌 변종變種 앵무새들이 함부로 헐뜯으면서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다.

 

진辰이 순 우리말인 <신>의 음가音價를 포함하고 있음은 이 글자를 핵심요소로 하는 글자들 가운데 동방계열의 습속習俗과 관련된 한자漢字들의 소리 값이 대부분 그렇게 난다(shèn)는 사실에서도 입증立證해준다.

 

❶ <제기祭器 또는 용龍이 되지 못한 이무기 신蜃>

❷ <원래는 어른 씨의 아이를 가진 신娠>

❸ <하늘이나 조상祖上의 제사祭祀에 쓸 날고기 신脤>

❹ <둥그런 무쇠 신鋠> 과 <큰 사슴 신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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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말 <가장 맏이로서 같은 또래 가운데에서도 우뚝 솟은 어른을 높여 부르는 존칭尊稱>과 그 서열序列의 자리매김으로 나타난 <형兄이라는 의미를 지닌 경칭敬稱> 인 [형계兄系 부호符號로서 성成 cheng과 상相 xiāng]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1]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형님 성과 상>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형兄 xiōng에서 비롯된 성成 cheng과 상相 xiāng-지금도 우리의 사투리로 인식된 「성」이란 표현이 있다>

 

아형모계고亞形母癸敲(가재집고록 7책 15-1)의 성成*상작부주고相作父珠敲(가재집고록 21책 10)의 상相

 

 

[설문해자說文解字 등]

 

[첨부 74] 은 나이가 많다는 뜻이다. 인儿과 구口로 구성되었다. 兄...長也 從儿從口 <설문해자說文解字>

 

남자 중에 먼저 난 사람을 형兄이라 부르고 뒤에 난 사람은 제第라고 부른다. <이아爾雅 석친釋親>

 

 

[필자筆者 해석解釋]

 

어김없이 [솟대]를 모시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해설이 있다. <군君이나 부父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므로 정자正字를 사용하고 형兄과 제第는 발음發音에 의거하여 그 이름을 삼는다>는 기록이다.

 

즉 형兄의 소리 값이 [xiōng] 이니 그대로 <셩-성>이라고 부른다는 뜻이다. 이 소리글은 가장 많이 변화했는데(형兄 ➡ 황況 ➡ 황貺 ➡ 황荒 ➡ 황况) 그 의도가 심상치 않다. 신분관계와 집안의 제의祭儀를 맡는 어른을 규정해주는 동방민족東方民族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형의 지금 발음은 허와 영의 반절이다. 許榮切(형兄 xiōng = 허許 xū + 영榮 róng -우리 말 「성」과 같다)

 

 

가) 이 소리글자는 상당히 긴 시기에 걸쳐 반복되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그 뜻이 순 우리말인 [형兄]을 말하는 [성님]에서 나온 글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집안을 도맡아 갈무리하는 <큰 성님>이란 의미이다.

 

나) 그 무렵부터 싹이 돋기 시작한 씨氏나 족族의 돌아가신 위 어른들을 모시는 사당祠堂에서의 제의祭儀를 맡은 자리였기 때문에 한 집안의 [큰 성님]으로서 이름 지어 질 필요에서 생겨난 소리글자이다.

 

다) 이러한 사례事例로서 신농神農의 큰 아들인 축융祝融이라고 알려진 상相 xiāng*축융祝融의 큰 아들이 일찍 죽자 뒤를 이어 집안을 맡은 동생인 오회吳回 성盛 shèng 또는 상象 xiàng 등이 있다. 이들의 이름 칭稱으로 부각浮刻되기 시작한 시기는 모두 공교롭게도 집안의 형兄이라는 책임을 졌거나 제의祭儀를 오로지하고 있던 무렵과 맞물려 있다.

 

라. 먼저 성축成祝의 첫 이름인 [성成]을 보면 눈에 확 들어오는 솟대(삼지창三枝槍) 깃발과 그 아래 기旗를 잡고 있는 사람*깃대의 뿌리 쪽에 세로로 붙은 발바닥 모양의 족(足 -발을 맞추다 에서 나온 같은 무리들이라는 족族의 근원根源 글자이다)이 보인다.

 

마) 상고금문上古金文을 인정하지 않는 한족漢族의 금문金文 분류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그래도 흔적은 무시하지 못하는데 바로 다음 단계인 [갑골문자甲骨文字]에 등장하는 이 모양을 더 간략하게 부호화符號化한 글자[

 

] [첨부 1-1]로서 연관성 입증立證이 가능하다.

 

 

 

□□□□□□□□□□ [여기서 잠깐] □□□□□□□□□□

 

이쯤에서 우리는 뒷날 등장한 북방계열 정복세력이었던 [흉노匈奴 xiōng nύ]의 어원語源을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족漢族들은 [슝뉴]와 비슷하게 부르는데 <노奴>는 동방계東方系의 족단族團 분류인 [노奴*로盧*나那]란 일반칭一般稱 어미語尾이니 제외하면 [흉匈]이 기본 명칭이 된다.

 

이 글자의 정확한 발성發聲은 [셩]이며 순 우리말로는 [형계兄系 어군語群]으로서 그 당시 유라시아 초원벨트에서 군림君臨한 모든 세력집단들의 [큰 형님-큰 성님]이라는 자부심自負心이 깃든 이름이었다.

 

누가 스스로를 [흉匈 -오랑캐]라고 하였겠는가. <흉匈과 흉凶과 흉兇*형兄>은 모두 소리 값이 같다. 그러므로 원래는 [인儿]이 붙은 [형계兄系 소리글자 -아兒*귀鬼*두兜*모皃*시兕*고○ 등]의 하나였을 것이다.

 

참으로 끈질긴 민족 언어의 씨 내림을 보는듯하다. 그렇다면 이들의 족원族源은 과연 어느 세력이었으며 중토中土의 집단들과 친연성親緣性은 있었을까? 그렇다! 해답 역시 [산해경山海經]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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