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8. 8. 23:15

 

 

[의문점을 푸는 주요 TIP]

 

 

󰊱 우리가 위의 문제를 푸는 데에 있어 [키포인트]는 <산해경山海經> 속에 감추어져 있다. 중토中土 지역에서 동방제국東方帝國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관문(關門 -길목인 교통로交通路로서 다른 기록에서는 천문天門과 지호地戶로 표현되어있다)으로서 기능하는 성산聖山들이 등장하는데 그걸 중심으로 고을 나라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 이를 차별하기 위한 기술방식記述方式으로서 저자著者는 매우 신중한 방법을 택했는데 중토中土의 산山 이름과는 달리 반드시 4자字로서만 명시明示하고 있다.

 

󰊳 명칭名稱 또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 민족의 관념을 하나로 모은 이름들로서 반드시 순 우리말로 풀려져야 하는데 한족漢族들이 처음부터 그런 말소리 값을 그대로 귀담아들어 한자漢字로 표기表記했기 때문이다.

 

󰊴 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부가附加 기록들을 저자著者는 아주 친절하게 [산해경山海經]의 곳곳에 암호暗號처럼 적어 놓고 있다. 한족漢族들은 이를 보고도 인식 밖의 문제였기 때문에 이해가 불가능한 허황된 기술記述로 보지만 우리는 금방 알아차린다.

 

 

바로 이 점들을 머리에 담고 [산해경山海經]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글귀들이 뚜렷하게 잡혀온다.

 

 

① [대황동경大荒東經]에 <의천소문산猗天蘇門山 아래 훈민국壎民國이 있다>는 구절이다. [의천소문산猗天蘇門山 -의猗 yī 즉 이족夷族의 하늘로 연결되는 곳의 소도蘇塗가 있는 산山인 천문天門]에 자리한 [훈민국壎民國]인데 <훈壎 xūn>은 흉노匈奴의 기원起源이라는 훈죽薰粥의 훈薰과 통한다. 그리고 소리 값도 [성]과 비슷하다.

 

② [대황동경大荒東經]에 다른 길목(천문天門)인 [학명준질산壑明俊疾山]은 <중용국中容國>이 맡고 있다. 이름 그대로 <중토中土 동방계열에서 우러르는 햇빛과 같은 큰 어르신인 제준帝俊의 산골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같은 기록에 <제준帝俊이 중용中容을 낳았다>는 표현이 있다.

 

여기에서 <학명壑明이 햇살>이며 [질疾 jí]은 우리말 그대로 <제준帝俊의 명命을 받드는 ○○지>이다. 학명壑明은 [대황동경大荒東經]의 맨 처음에 나오는 모든 세계의 근원 지역이라는 발해渤海 동쪽의 [큰 해인 대학大壑 hè -원가袁珂는 귀허歸墟로 풀었다]으로 그곳에서 중토中土로 내려온 <소호小皥-전욱顓頊>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 북중국北中國에서 올라오는 길목인 천문天門은 [해외동경海外東經]의 <우사첩雨師妾>과 분명하게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병예屛翳 bĭng yì를 말한다. -곽박郭璞>나 <나라 이름이다. -학의행郝懿行>의 주해註解처럼 일반적으로 우신雨神이라 여겨지는데

 

[치우蚩尤가 중토中土를 편안하게 하고 드디어 병예屛翳를 그곳에 남겨두었다*중토中土의 동부지방에 어름처럼 차갑고 거친 세력이 있는데 이를 빙이氷夷 bĭng yì라 한다>는 정황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빙이氷夷는 병예屛翳와 소리 값이 같다. [산동성山東省까지 걸친 동방세력 - 병예屛翳의 후예後裔 - 천문天門과의 상호교통로相互交通路 연결 - 천문天門에서 성장한 소호小皥와 전욱顓頊의 기록과 중토中土에서의 어른으로 자리를 이음]이라는 기본얼개가 잘 조립되기 때문이다.

 

 

③ 서쪽에서 오는 다른 교통로(지호地戶)였던 [얼요군저산孼搖頵羝山]은 <사비시奢比尸>가 맡고 있다. [피모지구산皮母地丘山 -지호地戶]은 <이령시>가 경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지역은 모두 그 다음에 천제天帝인 제준帝俊의 하계(下界 -중토中土)와 연결되는 두 제단祭壇으로 설명된 기술記述과 이어진다.

 

④ [성도재천산成都載天山 -하늘을 얹거나 하늘로 혹은 하늘에서 물건과 무리들을 실어 나르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은 황제黃帝와 싸운 <과보夸父>가 관리했다. 역시 천문天門이다.

 

⑤ [북산경北山經]에서 서방을 엄호掩護하는 [순우무봉산錞于毋逢山]은 신神 욕수(浴水 -곽박郭璞의 욕수蓐收)가 지키고 있다.

 

서북중국西北中國에서 올라오는 길목인 [지호地戶]는 [해내북경海內北經]의 <대행백大行伯>과 분명하게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공공共工의 아들로 멀리 다니기를 좋아해서 조신祖神 즉 행로신行路神으로 우러름을 받았던 수脩이다 -원가袁珂>란 해석解釋처럼

 

일반적으로 동방제국의 풍백風伯이 경영했던 직職이라 여겨지는데 주변에 견융국犬戎國*귀국鬼國*도견국(虫+匋)犬國 등 비교적 거세고 호전적好戰的인 세력들이 있어 이를 견이畎夷라 한다>는 정황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아마도 태행산맥太行山脈의 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우회迂回하거나 산줄기를 끊는 강물을 빌어 올라오는 교통로를 관장管掌하면서 지호地戶와 연결한 인물로 보인다. 대행大行은 태행太行 tài háng과 소리 값이 비슷하다.

 

또한 분명하게도 이름이 이부시(貳èr父尸 -그쪽 지방에 있는 세력들의 『얼』을 어루만지는 아비 혹은 「보』로 읽어 그들을 이끄는 사내라는 말이다)나 거비시據比尸 [1] 와 친밀성이 있음을 명시明示한다.

 

[1] 이 세력은 동쪽의 천문天門과 관련된 사비시奢比尸와 대조對照를 이루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奢는 동쪽인 새 shē이며 거據는 크다는 우리말 「거」로서 대大*태太와 통한다

 

[서북중국西北中國까지 걸친 동방세력들 - 대행백大行伯인 이부시貳父尸 후예後裔들의 존재 - 지호地戶와의 상호교통로相互交通路 연결망 구성 - 지호地戶를 등받이로 하여 성장한 훈죽薰粥의 기록과 나중에 서부 중국中國을 경영하는 큰 성님으로 자리를 잡은 흉노匈奴]라는 기본얼개가 잘 조립되기 때문이다.

 

 

⑥ 이밖에 동아지중해東亞地中海의 수많은 섬들(군도群島와 열도列島)를 경유하여 발해만渤海灣으로 들어오는 <물길 목>을 빼 놓을 수 없다. 바로 [대황북경大荒北經경]의 [북극천궤산北極天櫃山 -북편으로 바닷물이 들어온다]을 지키고 있다는 새의 몸을 한 신神 <구봉九鳳>과 호랑이 머리를 한 신神 <강량彊良>이다.

 

[북극北極은 북쪽 길의 종점終點이란 말이고 천궤天櫃는 하늘의 궤짝이거나 하늘의 신이 사는 산]을 말한다. 궤櫃 guì가 귀鬼 guì와 소리가 같으며 옛날에는 신神과 귀鬼는 같았다. <구봉九鳳이 조이계鳥夷系로서 9개의 머리를 가졌음은 구이九夷를 살핀다>는 이야기이다. 호랑이 머리인 강량彊良은 호족계虎族系이며 강姜 jiāng*강羌 jiāng의 소리 값을 다 가지고 있으니 그들 세력과 관련이 깊다.

 

※ 이들 길목과 긴밀하게 이어져 등장하는 중토中土의 신(神 -한족漢族은 한결같이 신神이나 귀鬼로 표현하였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존재들이었으면 그랬을까?) 들은 모두 순 우리말로만 자연스럽게 풀리는데 아마도 뒷날까지 자리를 이어 맡은 인물人物들을 함축含蓄하여 그렇게 표기表記하였을 듯하다.

 

❶ [중산경中山經]의 9개의 종鍾과 함께 있는 신神 <경보耕父 gēn(g) -견犬*견畎 quăn의 아비>는 몸을 드러내면 한 나라가 망한다. 다른 신神 계몽計蒙은 훈죽薰粥이나 후일 서북지역을 지배한 세력들과 친연성親緣性이 있는 [몽蒙]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견

 

기산岐山의 신神 섭타涉○와 양羊의 뿔을 가졌다는 장수漳水의 신神 타위○圍도 보이는데 [타는 단單 아래에 충虫 2개가 나란히 있는 글자]로 둘 다 필자筆者가 이 글에서 설명하는 신농계열神農系列로 보인다. 의소산(宜蘇山 -이夷의 소도蘇塗가 있는 산山)과 부산萯山의 신神 [태봉泰逢]은 선신善神으로 묘사描寫한다.

 

[서산경西山經]의 괴귀槐鬼 이륜(離侖 -곽박郭璞은 신명神名으로 풀었다)과 유궁귀有窮鬼 세력은 뒷날 하夏를 한때 멸망시킨 [유궁국有窮國]과도 선이 닿는다. 여기에서 [이離 lí]는 우리 민족의 관용어慣用語이며 [괴槐 huái]는 『해』의 음가音價를 받아들인 것이다. [대황서경大荒西經]의 새 몸을 한 신神 <엄자弇玆.>는 이미 설명했다.

 

❸ [해외동경海外東經]의 새 몸을 가진 신神 [구망句芒]은 훗날의 고구려高句麗 세력과 친밀성親密性을 보인다. <원가袁珂>도 소호씨小皥氏의 후예後裔로 보고 있다.

 

❹ [해내경海內經]에서 묘민苗民을 다스리는 신(神 -자주 빛 옷에 관冠을 썼다)을 연유(延維 -유維 wéi는 예濊 wèi와 같다)라 하였는데 <임금이 그를 잡아 잔치해 먹으면 천하를 제패制覇한다>란 기록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세력이 대단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❺ [해외북경海外北經*대황북경大荒北經]의 새의 몸을 지닌 신神 <우강禺彊>은 발해渤海로 들어오는 물길 목을 총괄한 듯한데 <곽박郭璞>이 「현명玄明으로 수신水神이다」라 했으며 <원가袁珂>는 「해신海神이며 풍신風神으로 장자莊子에 나오는 곤鯤과 붕鵬의 본체本體이다」라고 한 해석을 참고한다면 중토中土에 내려간 동방계의 [큰 성님]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듯하다.

 

별명別名인 현명玄明에서 현玄 xuán이 특별히 <성>과 발음發音이 비슷하고. 북해北海의 모래섬에 있는 해신海神으로서 풍신風神이라 함은 곧 풍백風伯 계열이며 곤鯤과 붕鵬의 이야기는 앞으로 설명할 중토中土로 확산되는 동방계의 움직임을 비유比喩한 것이니 이 일을 맡았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대황동경大荒東經]에서도 해신海神으로서 동해東海의 모래섬에 새의 몸을 한 우호禺(豸+虎)와 우경(禺京 -곽박郭璞은 우강禺彊으로 해석했다)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대대로 [동해東海-발해渤海]로 이어지는 섬들을 기반으로 물길 목을 관장管掌한 족단族團이었음을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에서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런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立證해주는 기술記述을 [산해경山海經]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중토中土로 확장시킨 연결망의 종점終點으로서의 박달나무가 있는 성산聖山이라고 할 수 있는 풍백산風伯山이 {중산경中山經]에 나오며 공교롭지도 않게 그 지역의 신神이 바로 우강계禺彊系인 <우아于兒>이기 때문이다. [우禺 yú와 于 yú]는 소리 값이 같다. <아兒>도 동방계열 어군語群이다.

 

[대황동경大荒東經]에서는 황제黃帝가 우호禺(豸+虎)를 낳은 걸로 되어있으나 [해내경海內經]은 제준帝俊의 후예後裔로 우호禺號를 기술記述하였다. 원가袁珂는 이 둘을 같은 인물로 보는데 시대적인 정황으로 보아 제준설帝俊說이 더 정확하다.

 

 

동쪽 끝에서 바람(동방계 세력들로서 풍백계風伯系가 주로 맡아서 그런 표현이 나왔다)을 내보내고 거두어들이는 일을 맡은 신神을 <절단折丹 -이름을 잘 보라>이라고 하며 그가 사는 성산聖山이 천문天門인 [국릉우천산鞠陵于天山]이다.

 

동쪽을 <절折 shé 로서 새이다)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었고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을 [준俊 -제준帝俊의 바람]이라 한다고 부기附記한 점은 아주 주목을 요한다. 즉 원래는 『새』인데 같은 발음發音인 절折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❻ [해외동경海外東經-대황동경大荒東經]을 보면 조양곡朝陽谷의 호랑이 몸을 한 수신(水神 -곽박郭璞은 하백河伯이라 했다)으로서 <천오天吳>가 있다. 이 족단族團의 영향력에 대한 중토中土 서부와 남방 경계점은 [대황서경]과 [중산경中山經]에서 찾을 수 있다.

 

서부는 오거천문吳姖天門과 일월산日月山에 있는 신인神人 천우天虞가 남방으로는 천우산天虞山과 도산(堵山 -도산塗山이다)의 신神 <천우天愚>가 있기 때문이다. 이걸 보고도 모두 같은 계열이 아니라고 한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다.

 

❼ [해외북경海外北經]에서 종산鍾山의 풍신風神 <촉음燭陰>을 곽박郭璞은 촉룡燭龍으로 주해註解하였다. 그러나 <촉룡燭龍>은 [대황북경大荒北經]에서 서북해西北海 쪽의 적수赤水 북방 장미산章尾山의 풍신風神으로 따로 등장한다. [미尾 wěi*yĭ와 예濊 wèi와 이夷 yí]는 같은 소리 값을 공유共有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추가로 얻어낼 수 있는 힌트는 결국 중토中土의 동방세력을 관장管掌한 족단族團 가운데 [우씨禺氏와 천씨天氏 그리고 촉씨燭氏]의 존재와 혈통계보血統系譜를 확인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면 촉燭 zhù은 추追 zhūi*추鄒 zōu*추雛 chú*추隹 zhuī*주柱 zhù*주朱 zhū*주珠zhū와 모두 통한다. 즉 신농神農의 아들인 희화羲和 주柱와 전욱顓頊의 상징인 부주(父珠 -父알인 부●)를 잇는 계보系譜이며 이들이 바로 부여夫餘와 고구려高句麗의 전신前身이다.

 

전욱顓頊은 머리*처음 수首의 옛 글자인 머리 혈頁 yè을 이름 안에 모두 지니고 있다. 아울러 글자의 변邊에도 분명하게 솟대(屮)와 어른이나 구슬인 알(王)이라는 기호記號가 있어 이를 뒷받침해준다.

 

 

⑦ 이제부터 [천문天門*지호地戶]와 관련하여 한족漢族의 기록에 나타나는 [신도神茶와 울루鬱壘]라는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해滄海의 도삭산度朔山에(다른 책에는 도도산桃都山 -남쪽에서 올라오는 천문天門을 말할 것이다) 있는 커다란 복숭아나무 끝에는 금계金鷄가 있는데(우리의 솟대 위에 장식한 가라새나 날짐승을 생각나게 한다) 햇살이 퍼지는 아침에 부상수扶桑樹의 옥계玉鷄가 울면 따라 운다. 3000리나 되는 가지 사이의 동북쪽을 귀문鬼門이라 하는데 온갖 귀신鬼神들이 출입히는 곳이다.

 

이 때 귀문鬼門을 지키던 <신도神茶와 울루鬱壘>라는 신인神人이 하계(下界 -중토中土를 뜻한다)에서 온 각종 귀신(鬼神 -옛날에는 신神과 귀鬼는 같았는데 아마도 산해경山海經에서 언급한 동방계 어른들일 것이다)들을 점검한다.

 

만일에 인간(동방계 세력인 인人으로 불렸을 것이다)들에게 몹쓸 짓을 하였으면 갈대 새끼줄로 묶어 호랑이 밥(뒷날 중토中土로 내려가 은殷을 세운 호족虎族이 징벌懲罰을 담당했을 것이다)으로 던져버린다. 그래서 뒷날 사람들은 두 사람을 문신門神으로 섬기며 섣달 그믐날엔 서대문에 이들의 형상形象을 그려 붙여 악귀惡鬼를 막는다. <논형論衡 정귀편訂鬼篇에서 산해경山海經의 원문原文을 인용한 기록>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관문關門들이 [대황북경大荒北經*북산경北山經*중산경中山經*해외서경海外西經] 등 우리 민족의 주요활동 지역에 같이 실려 있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즉 중토中土의 각지各地에서 동방제국東方帝國으로 오는 교통연결망 체계의 중간 목이거나 마지막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후後에 [해내서경海內西經]에서 우禹의 필방조畢方鳥와 곤륜(昆侖 -해내海內의 다른 곤륜허昆侖墟이다)에서 대치對峙한 인면호신人面虎神 <개명수開明獸> [1]도 매우 긴밀하게 관련이 있을 것이다.

 

동방의 성수聖數인 5와 9로 표현된 목화木禾나 우물(우리말 어을於乙로 얼을 은유한다) 그리고 문(門 -천문天門)을 지켰으며 그곳을 오직 동방의 맹조(猛鳥 -용장勇將)인 예羿만이 오를 수 있었다는 기록이 매우 주목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1] 해인 개로 해님(큰 어르신)에게서 나온 햇빛*햇살이라는 뜻이며 구이九夷를 의미하는 9개의 머리를 가졌다. 원가袁珂는 신神 <육오陸吾>라 했는데 아주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같은 책의 [서산경西山經]에서 비슷한 지역에 훈민薰民 즉 흉노匈奴 세력의 성산聖山인 훈오산熏吳山이 있기 때문이다. [오吾 wú와 오吳 wú]는 소리 값이 같다.

 

 

아무튼 천문天門의 한 구역區域을 맡고 있던 [흉노계匈奴系 훈민국薰民國]은 같은 지역인 [북산경北山經] 단훈산丹熏山의 당수(棠水 -솟대와도 같은 동방계열의 성수聖樹이었던 당수棠樹에서 비롯되어진 이름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 세력이 후에 소도蘇塗나 마을의 신수神樹로서 풍솟화風俗化된 당수棠樹를 지극히 숭배崇拜했음을 알려준다)를 젖줄로 삼고 있었으며

 

다른 이름인 험윤獫狁 xiăn yŭn과 엄윤玁狁 xiăn yŭn도 모두 [형계兄系 어군語群]이다. 그리고 이 세력은 분명히 [대황서경大荒西經]의 하늘의 지도리라는 오거천문(吳姖天文 -여기에서도 오吳라는 공통성을 갖는다)을 맡았던 허(噓-귀허歸墟의 허墟와 같다)와 매우 관련이 깊은 인면조신人面鳥身인 신神 엄자(弇玆 -엄주산弇州山에 있다. 서산경西山經의 엄자산崦嵫山이라는 다른 이름에서 비로소 숙호孰湖라는 명칭이 등장한다)와 연결된다.

 

흉노匈奴 계열들이 어느 시기에 서쪽으로 이동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행적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기록이 [해외서경海外西經]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멸몽조滅蒙鳥>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해외서경海外西經]에서 오랑캐라는 뜻을 지닌 <멸몽조滅蒙鳥와 결훙국結匈國 滅蒙鳥在結匈國北>은 서로 가까이에 있으면서 의미상意味上으로도 매우 친밀성을 나타내고 있다. 근처에는 전욱顓頊의 아들인 瞿祝 계열로 보이는 삼신국三神國과 일비국一臂國과 기굉국奇肱國이 모여 있기에 더욱 그렇다.

 

 

곧바로 염제炎帝의 신하臣下로서 황제黃帝와 싸우다가 죽임을 당했어도 젖을 눈으로 배꼽을 입으로 삼아 끝까지 저항한 형천(形天 -원가袁珂는 형요形夭라고도 하였는데 형形은 형계兄系 언어로서 발음發音이 xíng이니 「성」이다)과 부합附合되고 있다.

 

그가 우양계牛羊系 어군語群인 상양산常羊山에 묻혔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후예後裔들이 여전히 건재하였음은 [중산경中山經]에 황하黃河 북편으로 서쪽에 이 세력의 어른으로 짐작되는 신神 [훈지熏池]가 지배하고 있다는 설명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들 족단族團이 옮겨 간 이유는 [대황동경大荒東經]에 나오는 [흉려토구凶려土丘-토구土丘는 터이니 흉노匈奴의 터가 있는 언덕이다] 의 전역戰役 이후로 보인다. 여기에서 응룡應龍과 황제군黃帝軍이 치우蚩尤와 과보夸父 그리고 훈민薰民의 군사들과 대접전大接戰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

 

 

3. 우리말로 <다음 대代의 처가妻家를 잇는 사위아들이라는 신분칭身分稱>이었던 [자子 zi]

 

 

새김글로서 부호화된 [ ] [첨부 2]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아지의 지>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子 zi -지금도 일상적으로 쓰여 지는 송아지*망아지*강아지*도야지등의 「아지」란 표현에서 인용引用된 소리글로서 원래 우리말로 사내는 아지로 계집애는 아기(아기씨-아가씨) 라고 했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등]

 

 

󰊱 자는 만물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子...萬物滋 <설문해자說文解字>

 

 

필자筆者 해석解釋

 

이 글자가 처음부터 우리글인 이유가 밝혀진다. [무엇이 무럭무럭 크는 걸 자라다*자라나다]라고 말하는 순 우리말이 현재도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 자子는 즉과 리의 반절反切이다. 子...卽里切(자子 zi = 즉卽 jí + 리里 lĭ - 우리말 「아지의 지」와 같다)

 

 

가)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의 모계중심母系中心 가족제도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겹 사돈제 즉 누비혼인제 -후일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까지 이어진 단군조선계열의 매우 특이한 습속習俗이다] 때문에 나타나는 공동남편의 서열序列을 정하기 위해 등장한 말이다(어른 장長이란 뜻으로서 그 일부가 맡은 일에 따라 특화特化되어 성*형이라 부르는 가운데 부호화符號化되었음은 위에서 설명했다).

 

나) 아울러 모계사회母系社會의 전형典型이었던 [데릴사위제 -고구려까지 이어진 유습遺習이었다]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특별한 풍습에서 만들어진 [사위아들]이란 매우 독특한 신분을 기호화記號化하기 위해 나타난 [자子]가 그 원형原形이다.

 

다) 이 부분에서도 [상고금문上古金文]이 가장 원형原型을 갖춘 뿌리였음을 말해주는데 이 글자의 머리부분인 [ ○ ]가 후기 금문金文에는 [ ▽ ]로 그리고 갑골문자甲骨文字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 □ ]로 달라지는 과정을 환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4. 순 우리말로서 <한 족단族團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 부르는 높임말>이었던 [인*이人 yi ➡ rén]

 

 

새김글로서 부호화된 [ ] [첨부 3]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님*임*인>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人 yi>

 

 

[설문해자說文解字 등]

 

 

󰊱 인人은 천지에 태어난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다. 이 글자는 주문이다. 天地之性㝡貴子也 此籒文 <설문해자說文解字>

 

󰊲 사람은 천지天地의 덕德이요 음양陰陽의 교합交合이요 귀신鬼神의 만남이며 오행五行의 빼어난 기운氣運이다. <예기禮記 예운禮運 권9>

 

 

필자筆者 해석解釋

 

눈여겨 볼 부분은 [주문籒文] 과 [귀신鬼神] 이다. 먼저 주문籒文은 인人을 인儿으로 표기表記한다. 이는 귀鬼의 글자를 받치고 있는 부호符號인 儿과 같다. 머리 부분은 아이 숨골이 터져 있는 형상形象을 그린 것이다.

 

이 무렵에는 [인人과 신神과 귀鬼]가 모두 같이 신성神聖한 존재로 여겨졌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귀鬼 guĭ]는 [귀하다*귀엽다*귀찮다*귀하지 않는 모양인 구석지다 나 귀퉁배기 의 귀貴 guĭ]와 통하며 발성發聲도 순 우리말인 <귀>이다.

 

인人은 여과 린의 반절反切이다. 人...如鄰切(인人 rén = 여如 rύ + 린鄰 lín -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소리 값은 나중에 변화한 것이다. 그래도 우리말 「어른의 른」과 같다)

 

 

가) 이런 풍습風習은 지금도 상대방을 예의를 갖추어 부를 때 자주 사용하는 <○○님>과 높여 부르는 말로서 <임이시어!*임과 함께 하는 「임」>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런 칭호稱號가 처음엔 혈족血族 사이에서 만들어졌음이 <아버님*어머님*조상님*형수님*형님>등의 표현에서 확실하게 알려준다.

 

나) 또한 이 표기表記는 매우 일반적으로 쓰여 지게 되면서 다양한 변음變音을 보여준 모범이다. 상고금문上古金文을 보면 처음엔 분명하게도 동방민족東方民族 스스로 부르는 양방향존칭兩方向尊稱으로서 소리 값은 [림*님壬*임任에서 나온 인*이 -기록상으로도 인방人方이란 표현이 보인다]이었으나

 

다) 독자노선獨自路線을 취한 황제계黃帝系를 따르면서 자신들의 맥脈을 이어간 하족夏族들이 갈등의 상대방이었던 동방족東方族이 자신들의 어떤 상태를 말해주는 다른 표현으로서 [늙은*저 *어리석은 *○○]라고 하는 걸 보고 [서로 「이」 또는 족단族團이나 마을 이름을 「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란 뜻으로서 [이夷 yí 나 시尸 shī]를 쓰기 시작한다.

 

라) 이 과정에서 [임*님人]은 민족의 일반적존칭(一般的尊稱 -인방人方 등)에서 차츰 [사람이나 타인他人]을 범칭凡稱하는 부호符號로서 쓰여 지는 가운데 빌음發音도 한족漢族들 사이에서는 [rén -어른이란 말에서 채용한 「른」이다]으로 변화한다.

 

마) 아울러 [인人]을 대치代置한 [시尸]도 결국 이夷로 통칭通稱되다가 공자孔子 때에 와서 이윽고 동방민족을 비하卑下하는 뜻인 <오랑캐 이夷>로 고정되어 버린다(하지만 상고금문上古金文을 보면 하夏를 개창開倉한 우禹가 스스로 동방민족과 밀접한 관계임을 표시하려고 <이夷>라는 부호符號를 의식적으로 사용했음이 밝혀진다). 제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다.

 

상고금문上古金文에서 이 글자의 변화과정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데 [인人 ➡ 사람人이 두 팔을 벌리고 우뚝 선 모양인 대大 ➡ 대大에 정수리가 있는 머리를 얹은 형상으로 천天 ➡ 천天의 아래 두 발 밑에 땅을 표현한 ㅡ 을 그어 큰 어른이 하늘의 아들로 땅을 다스림을 나타낸 그림인 왕王]으로 연결되어진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하늘이고 곧 한님이다]이라는 우리 고유固有의 사유思惟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매우 좋은 표본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분석]

 

 

[대황남경大荒南經]을 보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전문全文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되짚어 볼 것은 한족漢族의 관념에서 <해외海外>나 <대황大荒>은 지금의 인식하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고대古代에 겨우 황하黃河 중류中流를 중심으로 위아래의 지역을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서 자리 잡아 [해내海內]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들에게는 그 밖으로 접해 있는 동서남북의 영역들이 [해외海外]이었으며 해외海外라고 규정한 경계 밖이 바로 불투명하여 마치 안개 속과도 같은 [대황大荒]이었다.

 

예例를 들어 중토中土의 남방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楚가 일어날 때까지도 진흙탕과 늪 그리고 물길이 거미줄처럼 얽힌 황무지荒蕪地로 인식되었으며 황하黃河 남쪽에서부터 장강長江 남북에 이르는 지대地帶가 오吳*월越에 이르기까지 차츰 개발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대황남경大荒南經]의 주主 기록 영역은 황하黃河 남부의 해외海外라고 한 구역의 변경邊境 - 장강長江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대(회수淮水와 사수泗水 수계水系를 중심으로 한다)를 대상으로 삼은 걸 알게 된다.

 

 

남해의 모래섬 속에 신이 있는데 ...부정호여라 한다. 南海渚中 有神...曰不廷胡余 <대황남경大荒南經>

 

인인호라고 하는 신이 있다. 남방을 인호라 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호민이라 하는데 이 신이 남쪽 끝에 있으면서 바람을 들어가고 나가게 한다. 有神名曰因因乎 南方曰因乎夸風曰乎民處南極以出入風 <대황남경大荒南經>

 

 

먼저, 이 지역을 설명하는 다른 기록들을 훑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마치 우리 민족의 색채로 도배한듯한데 덧붙여 이 지역을 대표하는 동방계 인물로 [조상지시祖狀之尸]가 등장하며 제곡帝嚳*요堯*순舜이 묻혔다는 악산岳山에 특별하게 신농神農과 관련된 <신산申山이 있다>라고 부연 설명한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 모두가 동방계東方系의 고유한 관념체계를 가진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농神農 - 전욱顓頊에 이르는 혈통계보를 알려주는 삼신국三身國*묘족苗族임을 알려주는 우민국羽民國*난생설화卵生說話를 공유共有하는 난민국卵民國*환桓과 친근성이 있고 새의 몸을 한 환두국驩頭國*제곡帝嚳과 요堯와 순舜이 묻혔다는 악산岳山의 다른 이름으로서 희화羲和 주柱의 존재를 보여주는 적산狄山

 

󰊲 중토中土에 퍼진 동방민족들이 조선祖先으로 받드는 제준帝俊과 관련된 기록들이 등장한다.

 

제준帝俊이 낳았다는 삼신국三身國 과 계리국季釐國*네모꼴 모양의 물인 준단俊壇*제준帝俊의 아내로 나오는 희화羲和의 나라

 

󰊳 신농神農과 뒤를 이어 나타난 어르신들의 행적行蹟이 지명地名 등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지역이다.

 

삼신국三身國의 성姓인 요씨姚氏*치우蚩尤의 흔적을 신앙처럼 여기는 풍습을 대표하는 풍목楓木*소호小皥가 낳은 배벌倍伐이 눌러 산 민연緡淵*곤鯀과 관련이 짙은 곤오昆吾의 군대가 목욕했다는 백연白淵*곤의 후예(염융炎融-환두驩頭)가 세운 환두국驩頭國*

 

순舜이 목욕하던 종연從淵*전욱顓頊이 낳았다는 계우국季禺國과 전욱국顓頊國*순舜이 낳은 무음無淫이 세운 질민국臷民國*우禹의 행적이 엿보이는 운우산雲雨山의 란欒*제곡帝嚳과 요堯 그리고 순舜을 장사葬事지낸 악산岳山

 

󰊴 지리地理와 지형地形을 설명하면서 대부분 우리 민족의 기본적인 사유思惟와 깊숙하게 녹아들어간 [흑수백산黑水白山]의 <흑수黑水>와 연결시키고 있다.

 

 

이로보아 이 지역은 신농계열神農系列의 발자취나 입김이 짙게 배어있는 고장으로 짐작되는데 바로 여기에서 [인人 yi]이 우리말소리 값이라는 실마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윗부분의 예例로 든 기록에서 [부정호여不廷胡余]는 나중에 이 지방의 주 세력이 <호胡 hú 즉 해를 상징으로 한 여黎*여余 ➡ 여餘*서徐*여畬 족단族團>으로 정돈되었음을 알려주는 지표指標에 불과하니 핵심은 [인인호因因乎]인데

 

신격神格으로 표기表記될 만큼 <인인호因因乎>는 이들 세력을 상징하는 명칭名稱이었을 것으로 보아서 바로 신농神農 무렵에 등장한 [인人 yi]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음을 잘 말해준다. 인因 yīn은 인人 yi의 변화형이다. 그래서 <남방을 인호因乎라 한다>라고 덧붙인 것이다.

 

 

4. 동방계東方系가 확실한 신농족단神農族團의 족표族表인 <염소와 양을 말하는 부호符號와 씨칭氏稱을 뜻하는 기호記號>로서 [양羊 yάng ]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4]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양 양과 굳센 종족 이름 강>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羊 yάng 과 羌 qiāng>

 

 

[설문해자說文解字 등]

 

 

󰊱 양은 상서롭다는 뜻이다. 양의 뿔 형상을 따랐다. 羊...祥也 從개(양의 뿔 부분) <설문해자說文解字>

 

※ 양은 여와 장의 반절反切이다. 羊...與章切(양羊 yáng = 여與 yύ + 장章 zhāng - 우리말 「양」과 같다)

 

 

가) <양>은 그 당시의 유목생활을 지탱하는 원천으로서 여겨진 주요한 가축이었으므로 그대로 같은 소리 값이다.

 

나) 모계母系인 어미의 씨氏를 따른 신농神農의 어미 출신은 씨칭氏稱이 원래는 발음發音이 비슷한 강羌이었을 것이며 여자이어서 강姜이란 표기表記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신농계神農系의 중요한 활동 영역이었던 [남산경南山經 과 서산경西山經]을 보면 <양羊>과 관련된 모습을 지닌 괴수怪獸들을 거론擧論하는데 그 이름이 우리민족 고유한 용례用例를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기산基山의 9개의 꼬리를 가진 <박이猼訑>는 글자 그대로 순 우리말인 [밝이 -발기]이다.

순산洵山의 알택閼澤 부근에 사는 <환羊+患>은 글자그대로 순 우리말인 [환한의 환]이다.

③ 곤륜구昆侖丘의 신神 육오陸吾가 사는 부근에 사는 <토루土螻>은 글자그대로 순 우리말인 [다루]이다.

④ 특히 [해내서경海內西經]의 핵심인 곤륜구昆侖丘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인 [적수赤水*흑수黑水*청수靑水*약수弱水]와 함께 <양수洋水>를 중요한 물길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명칭名稱이 우양계열牛羊系列에서 나온 것은 확실하다. 학의행郝懿行은 <양수漾水>라 하였는데 [양羊 yáng*양漾 yàng*양洋 yáng]은 모두 같은 소리 값이다.

 

 

5. 말년末年에 황제黃帝와의 전역戰役에서 패배한 신농神農이 <대파산大巴山으로 가서 산사람이 된 것을 상징象徵한 글자>인 [선仙 xiān]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5]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선>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仙 xiān>

 

 

[설문해자說文解字]

 

󰊱 [첨부 77] 은...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인과 지로 구성되었다. 先...前進也 從儿之

 

󰊲 * [첨부 78] 는 나온다는 뜻이다. 풀이 어린잎의 단계를 넘어서 자라나는 것을 상형하였다. 가지와 줄기가 점차 자라나면서 뻗어가는 것이 있음을 뜻한다. 일은 땅이다. 之...出也 象艸過屮 枝莖漸益大 一字 地也

 

󰊳 선(위에 양羊 하나*아래에 두개)은 양의 냄새라는 뜻이다. 세 개의 양으로 구성되었다. (선)...羊臭也 從三羊

 

󰊴 선羶 shān은 선의 다른 자로 단으로 구성되었다. 羶...(선 -위에 양羊 하나*아래에 두개)或從亶

 

 

가) 이 소리글자는 처음부터 신농神農과 매우 친밀한 기호記號이다. 그가 황제黃帝에게 밀려 대파산大巴山으로 들어갔다는 행적行蹟에서 나온 말로서 [人+山으로 옛 글은 산 위에 사람이 있을 선仚 xiān]이니 <신농神農이 산山에 들어갔다>는 정황에서 등장한 소리글자이다.

 

나) 우리 민족은 의례히 세력의 각축角逐에서 밀리면 성산聖山으로 들어간다(아사달阿斯達의 산신山神이 된 단군檀君*징기즈칸이 불칸 칼둔에 숨은 이야기 등). 결국 신농神農의 [신神 shén]에서 채용採用한 소리 값인 [xiān]이 그 뿌리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부분 참고]

 

백이보가 서악을 낳고 서악이 선룡을 낳고 선룡이 비로소 저강을 낳았는데 저강은 성이 걸씨이다. 伯夷父生西岳 西岳生先龍 先龍是始生氐羌 氐羌乞姓 <해내경海內經>

 

선先 xiān <솟대 혹은 소나 양 등과 같은 짐승의 뿔 아래에 사람이 있는> 소리글인데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를 지止로 보고 같은 음가音價인 지之로 본 다음

 

나올 출出로 인신引伸하여(이끌어) 새싹이 자라는 걸로 본 것은 농경민족農耕民族으로서의 발상發想인 듯싶다. 하지만 유목민遊牧民들은 매일 보고 접하는 들짐승의 뿔이 자라나는 모양에서 착안着眼하여 부호화符號化했을 것이다.

 

아니면 솟대를 지고 나아가는 어른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할 점은 상고금문上古金文에서 보이는 [선 자字]의 대부분이 양羊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先은 선仙과 발음發音이 같다.

 

이런 기본 인식을 가지고 [산해경山海經]으로 돌아가면 의문의 기록들이 아주 쉽게 풀린다. 곽박郭璞은 <백이보伯夷父>를 전욱顓頊의 스승으로 풀었는데 동방계가 분명한 인물이고 나이로 보아도 신농神農 무렵의 인물일 듯하다.

 

그의 손자孫子가 선룡先龍이라고 하는데 선先은 곧 선仙이므로 [선룡先龍은 신농神農의 후예後裔]이거나 매우 친밀한 계보系譜이다. 따라서 이 기록은 [신농족단神農族團]의 족보族譜를 은유隱喩한 것이다.

 

<서악西岳은 신농계神農系의 원출자原出自인 황하黃河 상류上流 황토지대를 말한다. 그러므로 [선仙*선先]도 어느 모로 보나 우리말소리글자이다. 성姓이라는 <걸乞>은 순 우리말인 [걸걸하다]에서 빌어 왔다.

 

[대황서경大荒西經]의 <선민지국先民之國 -학의행郝懿行은 우리 민족의 행적行蹟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선先을 천天으로 풀었으나 잘못이다> 과 <선민지산先民之山 -동방계의 지표指標인 반목槃木이라는 거대한 신목神木이 있다> 도 모두 [신농계神農系=저강계氐羌系]와 관련이 있으며

 

[대황북경大荒北經]에서 등장하는 <선함대봉산先檻大逢山 -함檻은 한 울타리라는 우리*울이고 대봉大逢은 크게 만난다는 뜻이다>도 동방제국東方帝國과 교통하는 관문關門 역할을 하는 성산(聖山 -신농神農과 동계열同系列인 강씨姜氏 북제국北齊國이 있다)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6. 우리말로 <모든 새로운 생명을 여는 것을 상징한 부호符號>인 [십十 shi]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의 가운데에 알을 밴 불룩한 모양인 ] [첨부 6]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생명을 만드는 「씹-십」에서 나온 열린다는 뜻이 강한 열 십>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십十 shi>

 

코뿔소 술 두루미인 중여준衆艅尊의 새김글(가재집고록 13책 10)

 

 

[설문해자說文解字]

 

󰊱 십은 수가 완비된 것이다. ㅡ 는 동서이고 | 은 남북이니 사방과 중앙이 갖추어져 있다. 十...數之具也 ㅡ爲東西 |爲南北 則四方中央備矣

 

󰊲 동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관부가 설에 의하면 해가 나무 사이에 있는 모습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동...動也 官溥說 從日在木中

 

󰊳 목은 머리로 밀고나온다는 뜻이다. 땅을 머리로 밀면서 뚫고 나온다. 동방의 행이다. 철로 구성되어 있고 아랫 부분은 뿌리를 상형하였다. 木...冒也 冒地而生 東方之行 從屮 下象其根

 

※ 십은 시와 집의 반절反切이다. 十...是執切(십十 shi = 시是 shì + 집執 zhí - 우리말 「십」과 비슷하다)

 

 

가)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해석은 매우 관념적이다. 나중에 정형화定型化 된 자형字形를 보고 그 모양만으로 추정하였기 때문이다. 글자가 생긴 이유와 유래를 고려하지 못하였던 듯하다.

 

사실 이 글자는 바탕이 [ | ]이며 처음에는 숫자를 헤아리는 <십>과는 무관無關하였다. [열린다]는 <열 십>이 그 원형原形이다. 새 생명을 배고 낳는 신성神聖한 행위를 상징하여 배가 불룩한 모양이다.

 

나) 우두머리 어른의 씨氏가 배어 열리는 아래 입을 말하는 <씨의 입으로서 십>이라는 말소리가 완성된 것이며 이를 소리글자로 나타낸 것이 [씨 즉 시로서 십十 shi - 이 소리글은 뒤에 나오는 소리에 맞추어 연음連音된다]이다.

 

다) 우리 인간들은 아이를 배면 열 달 만에 자궁子宮이 열리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그러므로 [열 십]은 숫자에서 자기완성형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여자가 <십규十窺>라는 열 개의 구멍을 지녔다는 표현을 강조하였음도 의미심장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설명할 부분이 있다. [동東 과 목木] 이라는 소리글이다. 허신許愼은 여기에서도 핵심을 놓치고 있다. 동 과 목 [첨부 79] 의 상고금문上古金文 전형典型은 한 가지 지극히 동방적인 기본 꼴을 동시에 공유共有하고 있다.

 

처음의 솟대가 삼지창三枝槍처럼 변화한 모양을 위 아래로 결합한 기호記號를 핵심으로 삼고 있는데 그래서 <동방의 길이다>이라고 풀이한 건 아주 정확하게 본 것이다. 그러나 부득이 모를 빌려 해석을 한 것은 조금 궁색하다. 후에 완성된 木의 ㅗ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만일에 그렇다면 위 부분은 아래와 똑같은 삼지창三枝槍 모양보다 같은 책에서 풀이한 지止인 지之를 붙였어야 했다. 따라서 [목木]은 솟대에서 확장된 우리의 성수(聖樹-建木*槃木*扶桑)를 일반화 한 것이다.

 

이러한 풀이를 바탕으로 보면 [동東]에 대한 어지러운 한족漢族의 해석이 군더더기를 벗고 잘 정리된다. 즉 솟대 사이에 낀 <>은 바로 중심을 이루는 불알*씨알 ○ 안에 십十이 들어간 것이다(혹은 영역을 의미하는 전田으로 보아도 좋다)

 

그러므로 [동東]의 기본적인 뜻은 솟대를 지닌 성수聖數 3(三)을 [알 혹은 여기에서 변화한 얼] 안에 품거나 그걸 품은 [알]이 열리어(十) 퍼지는 우리 민족의 성지聖地를 말한다고 필자筆者는 푼다. 동방이 <해가 뜨는 성스러운 방향이며 모든 것들이 거기에서 태어나고 나와서 움직인다>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 우리말로 <밝 족族이 사는 지역을 의미하는 상징부호象徵符號>이었던 [한韓 hάn]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오른쪽엔 두 손으로 가운데의 해님 ʘ을 떠받든 모양 + 오른편에는

 

위韋 ] [첨부 7]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하나라는 한>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韓 hάn>

 

가)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해석처럼 [|]은 위아래로 두루 통하는 <하나님 어르의 신>이다. 여기에서 [하나]는 <하 즉 해가 있는 하늘 + 나 또는 라 즉 땅이 있는 터>로서 이를 하나로 통하는 [가마 어르신囟]인 [임*님 人*主]이다. 바로 [하나 즉 해가 비추는 밝은 터의 주인主人인 해의 아들 한韓]이 등장한다.

 

나) 그러므로 [한韓]은 <왼편의 두 손으로 해를 받든 모양 + 그 세력들인 위(韋-예濊 wèi와 발음發音이 같다)>로 풀어지며 [조선朝鮮의 조朝]도 <왼편의 같은 모양에 달 월月을 덧붙인 모양>이다.

 

금문金文 [조朝]를 자세히 보면 모두 일곱 개의 기호글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해준다. 왼편에 신농神農을 뜻하는 [|] 초기 모계사회적母系社會的인 전통을 알려주는 부인과 딸을 의미한 [ㅡ] 해의 아들임을 나타내는 [日] 이 있고 오른쪽으로 하나의 <임*님>을 따르는 모두 같은 겨레임을 표시한 [인人] 전욱顓頊 무렵에 이런 소리글자가 기원起源되었음을 알려주는 [주舟]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 과 [ㅡ] 은 위 아래로 십十처럼 겹쳐져 있다.

 

조선朝鮮의 발원내력發源來歷과 그 뿌리가 무엇인지? 를 모두 표기表記해주는 매우 특별한 부호글자이다(이 글자는 진秦 이후 한족漢族들의 기원起源 세력이 등장하면서 오른쪽의 변邊을 달 월月로 바꾸어버린 걸로 알려진다. [1] 아무튼 [조]를 핵심으로 하여 위 어른이나 조상祖上을 모시는 모든 글자들이 만들어진다(묘廟*조정朝廷*묘墓*조알朝謁*입조入朝*왕조王朝 등).

 

[1]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실린 진秦 이전의 문자文字*강희자전康熙字典의 글자에 <배 주舟>가 들어간 조朝와 한漢 이전 진시황秦始皇이 문자를 통일 한 뒤 청동기靑銅器에 새겨진 명문銘文 등에 바뀌기 전의 사다리 모양의 <배 주舟>가 들어간 [조朝]가 등장한다.

 

즉 <장삼식>의 자전字典과 강희자전康熙字典 월부月部 10획劃에는 더 고형古形인 사다리 모양인 배 주舟가 들어간 글자가 똑똑히 실려 있다. 특히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사당祠堂 묘廟>에까지 고형古形인 <배 주舟>가 들어간 글자로 설명한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기록 참고]

 

한류는 길쭉한 머리에 근이 사람의 얼굴에 돼지주둥이 비늘 돋힌 몸에 통뼈로 된 굵은 다리와 돼지발을 하고 있는데 촉산씨의 자손인 아녀를 맞아 전욱을 낳았다. 韓流擢首 謹耳 人面豕喙 麟身渠股豚止 取淖子曰阿女 生帝顓頊 <해내경海內經>

 

서북해의 밖 대황의 모서리에 산이 있는데 쪼개져있어서 이름을 부주라고 한다. 한서수라는 강이 있는데 그 서쪽에 습산이 있고 동쪽에 막산과 우공공공국산이 있다. 西北海之外 大荒之隅 有山而不合 名曰不周負子...有水曰寒暑之水 水西有濕山 水東有幕山 有禹攻共工國山 <대황서경大荒西經>

 

한황국이 있는데 여제와 여멸이라는 두 사람이 있다. 有寒荒之國 有二人女祭女薎 <대황서경大荒西經>

 

형산의 첫머리는 익망산이다...황수가 여기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한수에 흘러드는데...荊山之首 曰翼望之山...貺水出焉 東南流注于漢...<중차십일경中次十一經>

 

 

한류韓流에 관한 기술記述을 살펴보면 모범적인 전욱顓頊 계열의 요소를 갖추었다(성축成祝과 여목余目의 상징인 돼지 형상). 그리고 동방계라는 사실이 길쭉한 머리와 근이謹耳라는 표현에서 입증立證된다.

 

부주산不周山은 전욱顓頊의 성산成山이며 습산濕山은 우리 민족과 매우 관계가 깊은 습수濕水와 친밀하고 막산幕山은 막莫 즉 맥貊의 산이다. 따라서 한서수寒暑水는 한서수韓暑水이다.

 

또한 원가袁珂는 여제女祭와 여멸女薎을 여자 무당으로 해석했는데 같은 영역 안에 있음으로 보아 한황국韓荒國으로 풀어야 옳다. 한寒 hán은 한韓과 발음發音이 같다.

 

형산荊山은 <성님 산>이고 익망산翼望山은 이 글 말미末尾의 백익伯益 부분에서 설명하겠지만 백익伯益과 무척 친밀하며 여기에 단수(湍水 -단수丹水)가 흐르니 한수漢水는 결국 한수韓水이다. 한漢 hàn은 한韓과 발음發音이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산경西山經]의 대시산大時山과 [해내서경海內西經]에서 맥국貊國의 서남쪽에 있는 한수漢水와 [해내동경海內東經]에서 전욱이 남쪽에 묻힌 부어산鮒魚山의 한수漢水는 한수韓水로 보아야 한다.

 

 

8. 우리말로 <어르신의 씨氏를 이어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기호글자>로서 [조祖 zhāo]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8]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좆*조*자지 >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祖 zŭ*朝 zhāo>

 

 

[설문해자說文解字]

 

󰊱 차는 밑에서 깔고 바칠 때 사용하는 것이다. 궤로 구성되었다. 다리에는 2개의 가로대가 있다. ㅡ 은 그 아래 땅이다. 且...所(艹 없는 苢)薦也 從几 足有二橫 ㅡ 其下地也

 

󰊲 궤는 걸터앉는 의자이다. 상형이다. 几...(거 尸 밑에 几로 현재의 거踞)几也 象形

 

 

가) 이 글자도 허신許愼이 우리 동방계의 사유思惟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춘추시대春秋時代 이후의 정황에 비추어 <풀로 자리를 깐다*다리에 가로대가 있다>는 등의 알아듣기 힘든 해석을 한다. 그림의 두 줄은 우리의 <자지를 감싼 꺼풀이 벗겨진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궤几와 같다 하면서 차且는 다리가 땅에 닿으므로 ㅡ을 땅이라 한다 했는데 궤几는 왜 그것이 없을까?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 <俎 有虞氏以梡 夏后氏以嶡 殷以구 周以房俎>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석註釋에 <유우씨가 나무를 쪼개어 네 다리만을 만들었는데 하후씨가 처음으로 가로대를 대었다>라 했는데 궤几는 왜 그게 없는가? 참고로 이 글자의 상고금문上古金文은 원래 가로줄 두개가 없다.

 

 

같은 연원淵源을 가진 신囟이 신申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이를 잘 알려준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신申은 신神이다...절구를 좆아서 스스로 가진 것이다. 神也...從臼自持也>라고 한 것은 매우 정확하다. 다만 해석이 잘못되었으므로 순 우리말로 풀이해야 한다. [1]

 

[1] 한족漢族들은 우리말 그대로 [자지自持]로 쓰고 <스스로 가진 것>이라 해석하며 천자天子나 다음의 자리를 이을 태자太子의 <좆>을 가리키는 경칭敬稱으로 인정한다.

 

 

나) 여성을 의미하는 구臼가 [|]를 감싸 받아들이면서 어르신의 씨를 잉태孕胎하는 상황을 상징하였으며 <절구를 좆는 자지이다. 從臼自持也>라 해석하는 게 가장 명확하다.

 

이를 모르는 한족漢族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밝은 민족의 큰 어르신 씨를 받든 고을나라인 <환할 신申>으로도 규정되는 것이다.

 

다) 자지 즉 좆 조(且 jŭ)을 바탕으로 하여 나온 글자들도 같은 친연성親緣性을 공유共有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르지 않은 음가音價이다. 후세後世에 이르기까지 왕조王朝의 근본을 지탱하였던 어른 씨의 이어짐을 중요시한

 

[혈통주의血統主義]의 기원起源이 이 글자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알려준다. 지금도 우리말(경상도慶尙道 방언方言)에 <좆도 모르는 자식이...좆도 아닌 게...>라는 흔적이 보인다.

 

라) 그러므로 지금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백과자전百科字典인 [이아爾雅]는 <조朝 zhāo를 이를 또는 이른 아침阿朕 조早 zăo>로 연관시킨다. 가장 이른 <씨알>을 지닌 선조先祖 할아비(祖 zŭ)를 이어받았음을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모두 소리 값이 우리말과 같거나 비슷함을 금방 알 수 있다.

 

마) [좆]에서 이런 혈통관계血統關係를 의미하는 상징부호象徵符號가 생겨났음은 오제시대五帝時代의 유물遺物로서도 입증立證된다.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근처 황제릉黃帝陵 자료관에 있는 흙으로 구운 남자 성기性器가 진열되어 있다.

 

설명에 도조[陶祖-구워 만든 조상祖上의 상像으로 방사선放射線 연대측정치年代測定値 BC 4500년 경]라고 했는데도 한족漢族들은 도무지 이해를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알아듣는다. 그 흔적이라면 옛 조상祖上을 모시는 묘지墓地의 양쪽에 돌을 다듬어 만든 둥근 알과 기둥으로 된 석물石物을 보면 된다.

 

 

결국 이 기호군記號群은 [ |과 且 ➡ 申 과 祖 ➡ 神과 朝 ➡ 씨알 ●과 신 辛]의 전화轉化 과정을 거쳤음을 뚜렷이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말로 읽히며 우리의 관념으로 풀어야 가장 잘 이해가 된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부분 참고]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적인 인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아주 중요한 대목을 놓치고 그냥 흘려보내기가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한족漢族의 기록해석 태도나 다름이 없어질 것이다.

 

 

❶ [신농계神農系]는 족원族源의 발상지發祥地가 중토中土 서북의 황토지대黃土地帶이었으며 세력의 방흥지發興地는 복희씨伏羲氏의 터전을 포용包容하면서 태행太行의 산줄기가 황하黃河에 이르는 좌우左右를 기반으로 중하류中下流를 기준으로 퍼져나가 남부지역에 이르렀고 마지막 정착지역은 장강長江의 중류中流 위쪽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부근이라는 사실을 머리에 담아야 한다.

 

❷ 이러한 이동 및 활동역역에 따라 확산된 그들 집단의 [지표지명指標地名]에 대한 지명고地名考 등의 추적은 필수적이며 이는 상고금문上古金文의 연구에서 나타난 고유의 소리글을 바탕으로 비교하는 게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다.

 

❸ 먼저 [차且]와 [조朝] 를 밑거름으로 하되 후대後代에 한족漢族은 차且를 <조俎>로 궤几를 <궤机*거踞*거居*처處>로 인신引伸하여 썼다는 분명한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 글자로 기록되어있는 지표지명指標地名은 모두 관계가 있다.

 

 

다시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조가산이 있다. 又東500里曰朝歌之山 <산해경山海經 중차오경中次五經>

 

다시 동쪽으로 10리를 가면 시산이 있다....시수가 여기에서 나와 남쪽으로 낙수에 흘러들며...又東10里曰尸山...尸水出焉 <산해경山海經 중차오경中次五經>

 

다시 동쪽으로 10리를 가면 양여산이 있다...여수가 그 북쪽에서 나와 북편으로 황하에 흘러든다. 又東10里曰陽餘山...餘水出于其陰而北流注河 <산해경山海經 중차오경中次五經>

 

시수는 천신天神이 깃드는 곳으로...한 마리 암양을 찔러 그 피를 바친다. 尸水合天也 刉一牝羊獻血 <산해경山海經 중산경中山經>

 

다시 동북쪽으로 150리를 가면 조가산이라는 곳이다. 又東150里曰朝歌之山 <산해경山海經 중차12경中次12經>

 

어떤 사람이 지금 호랑이 꼬리를 깨물고 있는데 이름을 조상지시라고 한다. 有人方齒虎尾 名曰朝狀之尸 <산해경山海經 대황남경大荒南經>

 

 

[中次5經]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박산薄山 -밝산>이다. 동편으로 이어가면서 중간에 <조가산朝歌山>이 나타나고 뒤를 이어 부근에 바로 <시산尸山> 과 <양여산陽餘山> 이 보인다. 한결같이 동방계 어군語群이며 [지표지명指標地名]이다. 조가산祖歌山은 신농神農 세력의 이동경로에 따라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유사의 동쪽 흑수의 서쪽에 조운국과 사체국이 있다....황제의 아내 뉘조거 창의를 낳았는데 창의는 약수에 내려와 살며 한류를 낳았다. 한류는 길쭉한 머리에 근이 그리고 사람의 얼굴에 돼지주둥이...돼지의 발을 하고 있는데 촉산의 자손인 아녀를 맞아 전욱 임금을 낳았다. 流沙之東黑水之西有朝雲之國司彘之國 黃帝妻雷朝生昌意 昌意降處弱水生韓流 韓流擢首謹耳人面豕喙...取淖子曰阿女生帝顓頊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

 

 

특히 이 기록은 [신농계神農系*동방계東方系]의 모든 계보적系譜的 움직임을 하나로 함축含蓄하고 있는 종합판綜合版인데 󰊱 유사流沙 동쪽*흑수黑水 서쪽이라는 원출지源出地에서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고

 

󰊲 사체국(司彘國 -돼지들의 나라)*한류(韓流 -한韓의 씨칭氏稱을 가진 돼지로 묘사描寫한다)의 모습은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신농계神農系의 후예(後裔 -사방책봉四方冊封)가 [돼지]를 씨표氏表로 삼은 사건史件이 사실임을 증명해준다.

 

󰊳 <이耳 ěr>는 동방계東方系의 <얼>을 담았음을 말하는 [이爾 -맥이貊耳라는 표현을 보라]의 별칭別稱이며 그래서 <근謹이나 한류韓流 -동방제국東方帝國을 따른다는 의식意識이 노골적으로 나타난다>라고도 표현했으며 󰊴 뉘조雷朝와 전욱顓頊은 다시 설명되어지겠지만 신농계神農系의 혈통血統에서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