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8. 8. 23:19

 

 

□□□□□□□□□□ [여기서 잠깐] □□□□□□□□□□

 

최초의 부호글자라고 인식되는 [ ․ ]은 [ ○ ]으로 완성되어 갔던 우리 동방민족을 지칭指稱하는 상징부호象徵符號였다. 즉 [불의 알 즉 불의 씨알] 들이다. 여기에서 불은 해를 뜻하며 <밝은*환한>이란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말하자면 [밝은 씨알] 들이다.

 

[해]는 고려高麗 때 지은 [청산별곡靑山別曲]에 <가는 새 본다. 가는 새 본다. 물 아래 가는 새 본다>란 구절句節에서 [새=해]로 같이 썼으니 이 무렵까지 <새>로도 상통相通했음을 보여준다.

 

[새알]은 [불알-부랄 즉 부호符號 ○나 ●]과 같다. 때문에 시조始祖가 알에서 깨어난다는 설화說話가 생겨난 것이다. 전통적으로 동짓날 쑤어먹는 팥죽의 동그란 새알이나 설날 떡국에 둥글게 썰어 넣는 가래떡도 이와 무관無關하지 않다. 이렇듯 [예족濊族=조이鳥夷=해족]는 모두 같은 실체實體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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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방민족이 처음 만들어낸 [누에치기 -그래서 우리에게는 「뽕 할매*삼신 할매」란 친숙한 말이 있다]를 중토中土에서 시작한 신농神農의 [신]에서 나온 <누에의 상형부호象形符號>인 [진辰 chén]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9]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신*진>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신辰 chén*진辰 zhin 혹은 chén>

 

 

[설문해자說文解字]

 

 

󰊱 진은 진이다. 을과 화로 구성되었다. 辰...震也 從乙七 <설문해자說文解字>

 

※ 진은 식과 린의 반절反切이다. 辰...植鄰切(진辰 chén = 식植 zhí + 린鄰 lín - 우리말 「진」과 같다)

 

 

가) 신농神農의 [농農]은 원래 <누에를 키워 비단을 만드는 일 -누에치는데 쓰인 잠박 곡曲으로 원래는 누에가 구부러진 모양인 입 벌린 감凵 + 누에 신辰으로 만들어졌다>을 함축含蓄한 글자이다.

 

중토中土의 의복문화衣服文化에 획기적인 혁명을 일으킨 비단옷감을 마련해주어 [하늘벌레 -잠蚕 즉 천충天虫] 이라고도 불린 누에를 알려 준 신농神農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 그의 상징기호象徵記號인 [|]의 음가音價를 그대로 빌려 [신]이라 한 것이다.

 

나) 지금은 한족漢族의 상징처럼 된 [용龍 또는 별 진辰]으로 슬그머니 바꾸어 통용通用되고 있지만 원래 금문(金文 -농農의 아래 부분인 신辰 혹은 진辰)을 보면 똑똑하게 <누에>의 그림글자가 등장한다. 그래서 한자漢字 분류로는 [신*진]에 모두 나타나고 발음發音만은 똑같이 [zhin*chén]으로 읽는다.

 

다) 한족漢族의 기록(사마정司馬貞이 황보밀皇甫謐의 제왕세기帝王世紀를 인용해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색은索隱에 달아 놓은 주注)엔 서릉씨西陵氏의 여식女息인 누조累祖로 되어 있는 신농神農의 딸인 뉘조(嫘祖 -대대례大戴禮)가 [누에치는 일]을 도맡았을 건 뻔하다. 원래가 여인네의 일이니까.

 

왜 이런 이름일까? 한족漢族들은 아예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누에]는 우리가 보기에 잠을 잘 때는 고개를 쳐들고 상반신上半身을 세우지만 뽕을 먹을 때는 눕는다. 그리고 [|]에 이어서 등장한 [ ㅡ ] 자字는 신농神農의 딸인 누조嫘祖를 상징한 부호符號이다. [ ㅡ ]은

 

 

❶ 누에(붓글씨로 [ㅡ]을 쓸 때 꼭 지켜야 하는 게 잠두마제蠶頭馬蹄란 필법筆法이다. 즉 왼쪽 끝은 누에머리 모양으로 오른쪽은 말발굽 형태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❷ 땅

❸ 음陰인 여자로 풀어지는데

 

 

❸이 바로 잠사蠶絲를 맡은 신농神農의 부인 임사씨姙巳氏나 딸인 누조嫘祖를 말한다. 그러므로 신농神農의 상징인 [|]을 뉘어서 [ㅡ]로 한 것이다. 우리말로만 누조(누워 있다 의 누)가 뉘조(뉘어 놓다 의 뉘)라고도 읽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 여자는 누워야 <씨>를 받는다. 따라서 지금은 다르게 쓰고 있는 [누님*누나]는 원래 [누운 임*누운 아기씨인 아이]를 말하는 보통명사였다. 결국 여인네로 <누에치기의 조祖>가 되었으니 [뉘조*누조]이다. 누嫘는 <밭에서 田 실을 만드는 糸 여자 女>이다. 그러므로 신농神農의 직계直系 여인들의 부호符號는 모두 누에에서 나온 부호글자이다. [1]

 

[1] 나방인 아蛾는 뉘조의 딸인 상아*항아嫦蛾 -역대종정이기관식 권1-18*고치 속에서 나오는 나방은 제곡帝嚳 고신高辛의 부인 간적簡狄 -역대종정이기관식 권2-37.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다시 북쪽으로 200리를 가면 알려산이 있으며...단림과 단림수가 흘러나와 남으로 황하에 들어간다. 又北200里 曰閼戾之山...其東有林焉 名曰丹林 丹林之水出焉 南流注于河 <북차3경北次3經>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저여산이 있으며...又東300里 曰沮洳山 <북차3경北次3經>

 

다시 북쪽으로 300리를 가면 신균산이 있으며...又北300里 曰神囷之山 <북차3경北次3經>

 

다시 북쪽으로 200리를 가면 발구산인데 산에는 산뽕나무가 많이 자란다...이곳의 어떤 새는 생김새가 까마귀 같은데 ...이름을 정위라고 하며...본래 염제의 어린 딸로 여왜라고 하였다...又北200里 曰發鳩之山 其上多柘木...有鳥焉其狀如烏...名曰精衛...是炎帝之少女名曰女娃 <북차3경北次3經>

 

 

<태행산太行山> 줄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첫머리를 귀산歸山 guī이라 했는데 신농계열神農系列 어군語群인 귀鬼 guĭ와 발음發音이 같으며 족族의 상징象徵인 영양羚羊을 특별히 거론擧論하고 있다) 모시는 제사祭祀 신神들의 절반 이상이 돼지 머리이거나 몸을 지니고 있다.

 

산뽕나무와 염제炎帝가 특별하게 거론擧論되는 발구산發鳩山을 중심으로 서남 지역에서 신농神農의 발자취가 있는 지표지명指標地名(신균산神囷山*단림丹林*단수丹水*박수薄水*발환산發丸山*알려산閼戾山*저여산沮洳山 등)이 눈에 뜨이게 드러난다.

 

서남으로 연이어지는 [서차삼경西次三經]을 보아도 신농神農의 족적足跡에 발맞추어 고유固有 지표어군指標語群인 [신산申山*상신산上申山*신수산申水山*단수端水*신수申水*신치神○]이 보인다.

 

특이한 점은 중심지대로 여겨지는 신산申山과 상신산上申山 사이에 있는 조산鳥山에만 다른 곳과는 달리『뽕나무가 많다』는 구절을 기록한 사실이다.

 

신농족단神農族團이 황하黃河 남부에서 동쪽으로 진입進入하여 산동山東 아래에서 장강長江 사이의 지대에 정착지定着地를 형성하는 과정을 알려주는 [중차12경中次十二經]의 내용을 보면 이 무렵 [누에치기]가 얼마나 귀중한 <일감>으로 여겨졌는지? 뚜렷하다.

 

누에치기는 뽕나무의 재배栽培와 직결되는데 유난히 이와 관련된 지명이나 기록이 많다(귀鬼와 소리 값이 같은 귀산龜山의 존재*신神 우아于兒가 사는 부부산夫夫山의 뽕나무*즉공산卽公山과 양제산陽帝山 그리고 시상산柴桑山의 뽕나무).

 

그런데 부기附記로 이들 산山은 모두 신神과 귀鬼의 거처임을 명시明示해 놓았다. 이 가운데 동방계東方系 어군語群이 확실한 영여산榮余山을 천신天神의 거주지居住地로 명기明記한 점이 이채롭다.

 

 

10. 위와 같은 연원淵源에서 <농農 nόng>도 우리말 소리 값과 일치한다.

 

 

가) 이 무렵부터 <기둥 즉 솟대가 머물러 살 데를 정하는 곳>을 [터*다라*달>이라 하여 이를 바탕으로 <토 tŭ>가 만들어졌음은 이미 밝혔다(우리말 훈訓인「따 지地」에서 따가 다라에서 나온 「다」의 경음硬音이다). 우리말로 [터전 즉 정주지定住地]을 의미하는 <살 데*머물 데*더운데 찬 데를 가리지 않고>의 [데]에서도 그 흔적이 보인다.

 

나) 이 무렵에 등장한 [싹 철屮 ăo]은 아주 의미가 깊다. 새싹이 나는 모양이라 했는데 공교롭게도 신농神農의 첫 아들인 희화羲和의 어릴 때 이름이다(그래서 소리 값도 우리 말 아이 즉 애이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묘족苗族과 인연이 깊었다.

 

한족漢族들은 기둥 양쪽에 가지가 난 모습으로 풀어 여기에 아래로 뿌리를 뜻하는 ㅅ 을 더하여 <나무 목木>이 되었다고 하나 조금 서투른 해석이다. 우리의 인식으로 바라보면 아주 모범적인 <솟대>의 초기형태 그림( Ψ )이기 때문이다.

 

신神의 옛글자라고 해석되는 이유(설문해자說文解字의 독약신讀若囟 즉 신囟의 우리 말 「씨에서 나온 시」로 읽는다)는 그 모습의 중심에 [|] 가 들어있기 때문이며 결국 동방민족의 상징인 <솟대>가 처음 중토中土에 등장하면서 그곳이 우리의 땅이라고 선언하는 가운데 이를 굳게 따른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대황의 한 가운데 융보산이 있다...견융이란 사람이 있다. 황제가 묘룡을 낳고 묘룡이 융오를 낳고 융오가 농명을 낳고 농명이 흰 개를 낳았는데 암수가 있다. 이것이 견융으로 육식을 한다. 붉은 빛을 한 짐승이 있는데 말 같은 생김새에 머리가 없다. 이름을 융선왕시라고 한다. 大荒之中有山名曰融父山...有人名曰犬戎 黃帝生苗龍 苗龍生融吾 融吾生弄明 弄明生白犬 白犬有牝牡 是爲犬戎肉食 有赤獸馬狀無首 名曰戎宣王尸 <대황북경大荒北經>

 

서북해의 밖 흑수 북쪽에 날개가 달린 사람이 있는데 이름을 묘민이라 한다....성이 이씨이고 육식을 한다. 西北海外 黑水之北 有人有翼 名曰苗民...苗民釐姓肉食 <대황북경大荒北經>

 

 

이 대목은 융족戎族과 신농神農의 관계를 복원復原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사료史料이다.

 

󰊱 융보산融父山은 이들의 성산聖山이며 견융犬戎이 그곳에 있어 융融 róng과 융戎 róng은 통함을 알려준다. 융融*융戎*농農 nóng*용龍 lóng은 발음發音이 같거나 비슷하다.

 

󰊲 융戎은 축융祝融과 연결되는데 묘룡苗龍은 묘족苗族이라고 한족漢族이 기록한 융족戎族 계열을 어울렀을 것으로 보이는 신농계神農系의 후예後裔이다. 위 두 번째 기술記述에서 분명하게 서북지역의 묘족苗族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姓이 <이씨>라 함은 우리 민족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 따라서 융오融吾는 신농계神農系인 [축융祝融과 오회吳回 성盛의 묘예苗裔]를 말한다. 농명弄明이 견융犬戎을 낳았음은 그 무렵에 이르러 견융犬戎이라는 실체實體가 완성되었음을 이야기해주는데 농弄 lòng*nòng은 신농神農의 농農 nòng과 발음發音이 같다.

 

농명弄明의 명明은 백견白犬과 백白과 댓 귀를 이루어 [밝다*환하다] 는 상징을 가진 동방계東方系를 표현한다. 결론적으로 위 기록에서 <황제黃帝>라는 언급은 중토中土 동방계열들이 족조族祖로 숭배崇拜한 [제준帝俊]으로 바꾸어져야 마땅하다. 조작造作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남쪽으로 500리를 가면 부려산이라는 곳인데...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여우같은데 9개의 꼬리와 9개의 머리에 호랑이 발톱을 하고 있다. 이름을 농질이라고 하며...又南500里 曰鳧麗之山...有獸焉 其狀如狐而九尾九首虎爪 名曰蠪姪...<동차이경東次二經>

 

다시 서쪽으로 200리를 가면 곤오산이라는 곳인데...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돼지 같은데 뿔이 있으며...이름을 농지라고 하며...又西200里 曰昆吾之山...有獸焉 其狀如彘面有角...名曰蠪蚳...<중차이경中次二經>

 

 

신농계神農系의 이동 정착지에서 다시 등장하는 괴수怪獸 [농질蠪姪]은 소리 값이 <lóng-zhí>로서 발음發音이 농農*농弄*용龍*융戎*융融과 모두 같은 계열이다. 존칭어尊稱語 <zhí 지>는 더 설명하지 않는다.

 

신농계열神農系列이 이곳의 9이(九夷 -묘족苗族)를 관리하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내용이다. 이들 세력군勢力群이 나중에 여余와 리黎 그리고 부여夫餘와 고구려高句麗와 관련이 있음은 [부리산鳧麗山 fú lí]의 명칭名稱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두 번째 기록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의 <농지蠪蚳>를 학의행郝懿行은 <농질蠪姪과 같다>고 주석註釋했다. [곤오昆吾]는 신농계神農系의 묘예苗裔로서 아무래도 나중에 요堯에게 밀려 북쪽으로 이동한 중여衆艅 곤鯀과 오회吳回 성盛을 말하는 듯한데 [돼지 같은 생김새 와 양각羊角>이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11. 신농神農의 아들인 <희화羲和를 표시한 족표族表와 씨칭氏稱>에서 나온 [족足 ]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에서 위에 붙은 걸 떼어낸 모양과 ] [첨부 10]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족과 주>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足 zύ 그리고 柱 zhὺ>

 

희화족羲和族의 생활기물生活器物인 주호住壺의 족(足 -가재집고록 14책의 8)*청동기靑銅器 술통 병유丙卣의 뚜껑에 새겨진 족(足 -가재집고록 18책의 11)

 

 

[설문해자說文解字]

 

 

󰊱 족은 사람의 발이다. 足...人之足也 <설문해자說文解字>

 

※ 족은 즉과 옥의 반절이다. 卽玉切(족足 zύ = 즉卽 ji + 옥玉 yύ - 우리말 「주」와 같다)

 

 

 

가) 동일한 대상을 지칭指稱하였으므로 발음發音이 같으며 따라서 [족足]은 <족단族團을 이끌고 나아가는 어르신 -그래서 뒷날 族 이라는 글자가 등장하는데 음가音價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기둥 주柱]는 <머물 곳을 마련하고 기둥을 세운 우두머리 -때문에 후일後日 주住 zhὺ라는 글자도 등장했는데 음가音價도 완전하게 일치 한다>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

 

나) 실제로 그는 아들인 전욱顓頊 고양高陽의 부탁에 따라 민정관民政官이 되어 조카였던 축융(祝融 -주柱를 씨표氏表로 삼은 융戎이라는 이름이다)과 같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남악南岳 형산(衡山 -그런 이유로 성님 산이다)에서 묘족苗族을 다스리며 삶을 마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곳에 [천주산天柱山]이란 명칭名稱이 있는 것이다.

 

 

전욱顓頊 고양高陽은 즉위卽位하자 아비인 대화(大禾 -희화羲和) 주씨柱氏를 남정南正으로 아들인 려(犁 -축융祝融)를 화정(火正 -화전경작火田耕作의 책임자)으로 하여 신농神農의 일(묘족苗族의 포용包容하는 일이다)을 돕도록 보냈다. <사기史記 역서曆書>

 

 

다) 또 하나 씨표(氏表 - △ 모양)로서 완성된 [직稷 ji]은 [좌씨춘추左氏春秋]에 나오는데 우리말로 풀면 아주 명확해진다. 즉 [직稷]은 <농사를 짓다>가 원래의 의미로서 지금도 쓰고 있는 [농사를 짓다(지으니*지어서)나 터를 지키다]에서 소리 값의 원형(原形 -어근語根을 채용採用하였다)을 알아낼 수 있다.

 

 

열산씨의 아들인 주는 직신이 되어 하나라의 이전까지 제사를 받았다. 有列山氏之子曰柱爲稷 自夏以上祀之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召公 29년 조條>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발 족足]을 특별하게 상징한 묘사描寫 방식을 강조한 괴수怪獸들의 명칭名稱은 아무래도 희화羲和의 세력집단과 친연성親緣性을 가진다. 특히 그런 형상을 지닌 존재가 이들 집단의 이동과 정착 경로에서 마치 족적(足跡 -발자취)처럼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❶ [북산경北山經]의 서북지역에 있는 <족자足眥> 란 괴상怪狀한 짐승은 특히 눈초리를 강조하고 있는데 성축成祝과 구축瞿祝의 상징인 날카로운 눈매를 떠오르게 한다. [북차이경北次二經] 의 북효산(北艹가 없는 효산虈山 -구축瞿祝의 상징인 쌍목雙目을 변邊으로 하였다) 지역의 괴수怪獸인 돼지 갈기를 가진 독곡獨(犭+谷)이 눈길을 끈다.

 

❷ [서산경西山經]에 보이는 <4개의 뿔과 앞발이 사람 손과 같은 괴수怪獸 영여(犭+嬰)如와 사람의 발을 가진 새인 수사數斯>가 주목된다. [서차삼경西次三經]을 보면 <숭오산崇吾山 -오회吳回를 받드는 산으로 보여 진다.

 

오吾 wú는 오吳 wú와 발음發音이 같다>에 <거보擧父 -부父는 우리말로 ~보이며 거擧 jŭ는 족族 zú*주柱 zhù의 발음發音과 같다)를 곽박郭璞은 과보夸父로 해석했는데 동방계의 계보系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다.

 

학의행郝懿行은 [동산경東山經]에서 시산(승냥이 시犭+才 山 -학의행郝懿行은 시산豺山이라 주注했다)에 산다는 돼지털이 난 과보夸父라는 괴수怪獸를 서산경西山經의 거보擧父와 같은 것으로 풀었다.

 

❸ [동산경東山經]의 태산泰山 지역은 신농계神農系의 주요 정착지였는데 이곳의 환수(環水 -환수桓水와 발음發音이 같다)가 장강長江으로 들어가는 위쪽 지대地帶에 돼지 형상을 한 동동(狪狪 -한족漢族이 오랑캐의 이름이라고 해석한 것은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보아서도 이유가 타당하다)이라는 짐승이 나온다.

 

그 남쪽으로 사람의 발을 가진 새인 여호(鵹鶘 lí-hú -전욱顓頊 집안 상징의 하나인 여우는 우리말로 여호나 여시라고도 한다)가 더 남방인 부리산鳧麗山의 신농계열神農系列이 확실한 농질蠪姪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❹ [남차이경南次二經]에서 등장하는 <사람 손과 같은 다리足를 지닌 솔개 주鴸 zhü> 돼지 형상의 이력貍力 lí-lì 그리고 사람 얼굴에 돼지 갈기를 가진 활회猾褢 huá-huí와 그리고 구여산句餘山이 있는 부근의 괴상怪狀한 돼지 체彘 와 함께 짝을 이룬다(돼지는 성축成祝과 여목余目의 상징이다).

 

알택閼澤이 있는 순산順山에서 죽일 수도 없다는 신농계神農系 지표指標인 양과 같은 생김새의 환(羊+患 huàn으로 환桓과 발음發音이 같다)이란 괴수怪獸가 등장한다. 결정적으로 [남차3경南次三經]에서 전욱顓頊의 아들인 구축瞿祝(畜) 여旅의 이름을 상징하는 사람얼굴을 한 새로서 구여瞿如란 짐승이 등장한다. 구축瞿祝의 씨칭氏稱은 돼지 해亥이다. 여如 rú는 그의 이름인 여旅 lŭ와 발음發音이 같다.

 

※ 한번쯤 생각해야 할 것은 이 괴수怪獸들이 보이는 [산경山徑]의 말미末尾에서 제사祭祀를 드리는 뭇 신神들을 설명하는 가운데 <돼지의 몸>을 지닌 성산聖山의 신神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다시 서쪽으로 370리를 가면 낙유산이다...도수가 여기에서 나와 서쪽으로 직택에 흘러드는데...又西370里 曰樂游之山...桃水出焉 西流注于稷澤...<서산경西山經>

 

다시 북쪽으로 420리를 가면 밀산이다. 산 위에서는 단목이 많이 자라며...단수가 여기에서 나와 서쪽으로 직택에 흘러드는데...又北420里 曰(산 이름 밀)山 其上多丹木...丹水出焉 西流注于稷澤...<서산경西山經>

 

 

[산해경山海經]의 기술記述 태도는 명백하다. 희화羲和의 직稷과 구별하기 위해 뒷날에 등장한 기棄는 반드시 [후직后稷]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해내경海內經 도광야都廣野*제준帝俊의 기록 부분*대황서경大荒西經 서주국西周國*해내서경海內西經 앞쪽*서차삼경西次三經 괴강산槐江山의 신神인 후직后稷 등)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제사祭祀를 맡은 희화羲和 주柱를 [직稷]이라 한 것처럼 [산해경山海經]에서 각 경經의 말미末尾에 붙인 기록에 나오는 제의祭儀에서 올리는 예물禮物을 반드시 멧 기장인 [직미稷米]라고 표기表記하고 있다.

 

 

12. 신농神農이 직계直系 아들인 <희화羲和에게 처음으로 내려 준 씨칭氏稱>에서 비롯된 [부父 hὺ]

 

 

[설문해자說文解字]

 

이 소리글자(부父)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분명하게 [육서六書의 부父]에서 여러 가지 변체자變體字로 등장하고 허신許愼도 전체자篆體字로서 소개한 대목에서 상고금문上古金文의 모범 체體를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수手*곤|] 부部에서 한마디의 설명조차 없다.

 

이 소리글은 그 후에 발굴發掘된 금문金文이나 갑골문甲骨文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부父]의 고유固有한 유래由來를 몰랐거나 외면하였다는 걸 의미한다.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11]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아비 부>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父 hὺ*hŭ>

 

성부정(盛婦鼎 -가재집고록 3책의 13-1)*저작부을이(貯作父乙匜 -가재집고록 18책의 16)*을미고(乙未敲 -금문총집 권3 2515)*직작(稷爵 -가재집고록 2책의 19-1)에 새겨진 [부父]

 

 

가) 부호符號는 <신농神農의 족표族表인 『|』를 한 손으로 쥔 모양>인데 오늘날까지 한자漢字로 부父라 쓰여 진 고대古代 기록들을 대부분 <보>로 읽는 까닭은 우리말에 [ 「보」는 한 세력집단을 이끄는 두드러진 사내*용사勇士 -산해경山海經 과보夸父*박보博父*이보貳父의 용례用例]를 뜻하고 지금도 <싸움보*꾀보*느림보*먹보 등>에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 이 글자는 전욱고양顓頊高陽 무렵 [보保]라는 기호글자를 새로 만듦으로서 따로 완성되었다. <소호금천小皥金天>의 딸인 칭稱에게 장가들어 [사위아들]로서 모계母系를 잇게 되자 소호小皥에게서 새로 얻은 이름인 <보추保郰> [1]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1] 청동술잔인 보추작(保郰爵 -가재집고록 22책 14-1)의 새김글자로서 나중에 <취取*추雛>라는 변화형을 만들어 낸다. 보保는 원형原型이 <지킬 보呆>로 아들 자子의 오른쪽 아래에 한 획( / )을 더했는데 뒷날 왼쪽에 특별한 사람이란 뜻을 강조하려고 인人을 덧붙였다

 

그림을 보면 신농神農의 [|]을 한손으로 잡고 있는 모양으로 자신이 의지한 족표族表에 기대어 세력을 얻었음을 알려준다. 즉 스스로가 모든 후손後孫들 가운데 우두머리로서 종묘宗廟에 제사祭祀를 지낼 자격을 갖추었음을 상징한 것이다. 이후에 등장하는 전욱顓頊의 4 아들이 지닌 씨표氏表도 똑같이 [|]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차츰 실제로 우두머리의 권위를 나타내는 권장拳杖이나 지휘봉指揮棒으로 변했음은 아이러니하다.

 

 

다) [회남자淮南子]가 다시 이를 입증立證해주는데 <어머니가 낳은 아들을 일러 보라 한다. 母生子曰 保>하여 우리말로 지금도 즐겨 부르는 [싸움보*먹보*울보 등]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다. 전욱顓頊 무렵엔 <권위를 인정받은 사내다운 사내로서의 보>로 사용되어 그의 입지立地를 새삼 굳혀 준 글자이기도 하다.

 

라) 이 때문에 우리의 열국시대列國時代 초기까지 왕王의 측근側近으로서 믿을만한 사내를 앉히는 자리를 [대보大輔 즉 큰 사내 - 좌보左輔인 왼쪽의 사내와 우보右輔인 오른편 사내>라 하였다. 그래서 고대古代 기록 가운데 [박보博父는 밝고 똑똑한 사내*거보渠(擧)父는 허우대가 크고 힘센*재빠른 사내*거보夸父는 용감하고 사나운 사내]로 풀이된다.

 

마) 순수하게 발성학적發聲學的으로만 본다면 [보*부]로 읽히는 까닭이 <집안 모두를 보듬어*부둥켜 안은 사내 혹은 소리글자의 형태에서 알 수 있듯이 혈족血族의 기둥이며 어른 씨인 |를 붙잡고 집안을 보살피는 사람*눈에 확 드러나 보이는 사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만물萬物을 새로 나게 하여 기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부분 참고]

 

[부父]는 여러 부분에서 등장하는데 특이하게도 인명人名으로서는 모두 <보>로 읽도록 하고 있다(과보夸父*이보貳父 등). 우리도 그렇게 읽는다(협보陜父). 이는 전욱顓頊 무렵에 이미 순 우리말의 지위나 신분칭身分稱이 [어른계 - 아비계 - 성계兄系]로 완성되어지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아비 부夫 fū와 사내 보呆 fŭ]라는 소리글이 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내 보呆 fŭ>는 여러 가지로 인신引伸되어 가는데 [보輔 fŭ*보甫 fŭ*보保 băo]가 있으며 [부父 hŭ]도 마찬가지로 나중에 일반화되어 [아비]로만 굳어지게 된다. 발음發音은 모두 같거나 비슷하다.

 

하지만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부父]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매우 특별한 글자로서 모든 세력의 정수리인 [어르신]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어른]과 족단族團으로는 그들을 대표하는 [큰 아비]라는 이중二重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대부일계大父日癸*중부일계中父日癸*부일계父日系 등의 용례用例).

 

그러므로 한족漢族들의 인식 범위에서 벗어 난 [부父]로 표기表記되어 기록된 명칭名稱들은 분명히 순 우리말이며 그 표현방식으로서 기록된 지표지명指標地名들 또한 동방족東方族의 전유물專有物이다.

 

 

❶ [해외서경海外西經]의 사람들이 모두 의관衣冠을 갖추고 칼을 찬 장부국丈夫國*무당巫堂들이 오르내리는 등보산登葆山 [1] *등림(鄧林 -나라 이름이다)에서 죽었다는 과보(夸父 -원가袁珂는 대인大人으로서 염제炎帝의 후예後裔라고 해석했다)나 그곳에 자리 한 박보국(博父國 -원가袁珂는 과보夸父로 풀었다)

 

전욱顓頊이 묻혔다는 무우산務隅山은 신농계神農系 보물이었던 <누에치기>의 텃밭으로 볼 수 있는 삼상무지(三桑無枝 -이 신목神木은 여러 곳에서 동방계의 중심지에 줄곧 등장한다)와 구사야歐絲野 [2] 부근이다. 따라서 신농계神農系의 지표지명指標地名으로서 이동 경로마다 보이는 [해내동경海內東經]의 부어산鮒魚山과

 

[대황북경大荒北經]의 부우산(咐禺山 -전욱顓頊이 목욕한 침연沈淵과 그가 묻힌 곳이다)과 같은 맥락이다. 이 명칭名稱들은 모두 발음發音이 같거나 비슷하며 부여夫餘 fū-yú와도 같다. 결국 [부]의 어원語源은 <부父 fù*fŭ>인 셈이다.

 

[1] 이 당시 무당巫堂은 하늘과 소통疏通하는 신격神格이었으며 오직 큰 어르신인 부(父 -부신父辛*부기父己*부알父● 등)만이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큰 아비 부父가 오른 데였으므로 이름조차 등부산登父山이다. 그래서 본문本文에 <하늘로 오르내린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를 인명격人名格인 「보」로 보아 글자를 바꾼 것이다.

 

[2] 원문原文은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나무에 기대어 실을 토해내고 있다. 一女子跪據樹歐絲>는 구절인데 신농계神農系 여인이 비단실을 자아내는 모습을 이야기 한 것이다.

 

 

❷ [해내서경海內西經]의 섬서성陝西省 지역으로 추정되는 이보貳父와 그 북방으로 연결되는 [해내북경海內北經]의 이부시貳負尸는 틀림없이 상호相互 친밀성親密性이 있다. 가까이에 대행백大行伯이 있는데 [산경山徑]의 위치 추정으로

 

부근에 자리하는 풍백산風伯山의 존재로 보아 풍백風伯 계열이 분명하니 이 지역 동방계 세력의 구심점求心點으로 보인다. 동편에 견봉국(犬封國 -견융국犬戎國)을 거론하는 걸로 보아서도 입증立證이 가능하다. 부父 fù와 부負 fú는 발음發音이 같다.

 

❸ [대황남경大荒南經]에 등장하는 <부정산不庭之山>은 삼신국三身國의 존재와 관련해 전욱顓頊의 아들 중여衆艅 곤鯀의 자식子息들 가운데 하나인 삼산(三山 -중衆)의 이름 칭稱을 생각해야 한다.

 

맨 위의 ▲ 은 중여衆艅의 족칭族稱으로 그 아래 세 사람이 다소곳하게 서 있는 그림글자(三身)인데 [부父] 를 상징象徵으로 삼는 신농계神農系로서 [부알父珠*부●]인 전욱顓頊의 성산聖山 [부정산父庭山] 으로 보아야 한다(뒤에 나오는 부정호여不庭胡余란 고을도 이들 집안의 지표어指標語인 호와 여가 모두 들어 있으므로 마찬가지이다).

 

이런 바탕으로 본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불강지산不姜之山]은 <강씨姜氏인 신농계神農系>의 산이므로 대표적 상징을 빌어다 쓴 [부강지산父姜之山 -실제로 불不은 「부」로 읽는다]이며 [불사국不死國]도 <부씨국父氏國>이어야 한다. [사死 sĭ]는 [씨氏 shì]와 발음發音이 같다.

 

❹ [대황서경大荒西經]의 중심에 있는 고을인 일비삼면국一臂三面國도 매우 친연성親緣性을 가진다. 기술記述 내용을 보면 <有人焉三面 是顓頊之子 三面一臂 三面之人不死>로서 위와 동일한 설명구조인데 세 사람으로 집안의 부호글자를 만들었으니 삼면三面일 것이고 전욱顓頊의 묘예苗裔라고 명시明示했으며 [불사不死]는 <부씨父氏라는 상징을 가진 나라>라는 이야기이다.

 

13. 신농神農의 [ | -어르신 신*기둥 주柱의 원형]가 후대後代에 기본적인 족표(族表 -고유固有의 기물器物이나 상징물象徵物 또는 깃발 등에 표기表記하였다)로서 기능하는 변화된 상황에 이르러 같은 겨레임을 나타내기 위해 변형시킨 상징부호象徵符號 [인人 rėn 원래 발성發聲은 yi]

 

 

[설문해자說文解字]

 

[첨부 80] 은 인人의 고문기자이다. 상형이다. 공자는 <인은 아래에 있으므로 구부렸다>라고 하였다. 儿 古文奇字人也 象形 孔子曰 儿在下 故詰詘

 

 

허신許愼은 여기에서도 후대後代의 문헌文獻을 인용하면서 얼버무린다. 예시例示로 든 고자古字는 6서六書에 포함된 것이다. 금문金文과 갑골문甲骨文의 자형字型은 전혀 다르다.

 

주문籒文에서부터 사람의 팔과 다리 모양을 그렸으며 그 전에는 사람이 구부린 전체를 상형象形하였다. 여린절如鄰切이라 하였으니 발음은 [린]이며 [yi 에서 rėn]으로 변화하는 과도기過渡期를 겪고 있다.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12]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같은 겨레라는 뜻으로서 사람 인>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人 rėn 원래 발성發聲은 yi>

 

희화羲和의 씨표氏表(군고록 권2-3-92)*인방人方이라는 표기表記(군고록 권2-3-92)*곡유嚳卣의 우禹 이름(가재집고록 18책 19)*구부계유咎父癸卣의 표기表記 글자(가재집고록 19책 11)에서 보이는 [인人]

 

 

가) 한자음漢字音은 말음末音이나 받침이 간혹 탈락하거나 [1] 앞부분이 비슷한 발성發聲으로 전화轉化하는 사례事例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음가音價의 원형原形은 최초로 변화한 희화羲和의 부호符號 속에서 알아낼 수 있다. 원형原型인 [ | ]를 구부린 형상(인人이란 기호記號의 최초 그림글이다)의 위쪽에 [무엇을 받쳐 인-이고 있는] 기호記號인데

 

나) 즉 족조族祖로 인식된 표기(表記 -후에 우리 민족의 조선祖先으로 형상화 된 제준帝俊을 묘사描寫한 눈처럼 그린 새 머리 모양 위에다가 그 후예後裔로서 신농神農의 양羊 뿔을 두 개 붙인 그림)를 다소곳이 머리에 이고 있는 기호記號이다.

 

[머리에 이고 몸으로 떠받들고 있는] 주인공들이 모두 한겨레임을 나타낸 [이다] 에서 태어난 [인*이]란 소리 값이다. 또한 [이고 있는 인물]이 <임*님>으로 표현되었음을 알려준다.

 

[1] 우리 말 연음連音을 그대로 받아들여 앞부분만 채용採用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우리말은 뒤에 연음連音을 합쳐 하나의 음절音節로 되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굴은 구루]였다. 이를 <굴屈>로 기호화記號化했는데 한자음漢字音은 뒤의 <루>가 전형적典型的 어미語尾라 보고(가루*나루*모루 등) <gū>로 발성發聲한다. 하지만 우리는 나중의 합쳐진 소리 값으로 [굴]이라 발음發音하는 경우이다.

 

 

다) 제곡고신帝嚳高辛 때(조상祖上을 모신 사당祠堂에서 사용한 코뿔소 술두루미인 중여준衆艅樽의 새김글자)엔 [사람이 머리를 굽혀 예禮를 갖추는 모양인 ] [첨부 13]으로 변화한다.

 

고신씨高辛氏는 스스로 이름을 [신辛]으로 하였을 만큼 중토中土에 흩어진 동방족東方族들의 융합融合을 위해 애를 썼는데 바로 족조族祖에 대한 기본적인 우러름을 갖추어야 같은 겨레들로서 사람 꼴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는 [인사]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라) 그러나 고신씨高辛氏의 후대後代인 제지帝摯에 이르러서는(경신각庚申角의 부호글자 -가재집고록 21책 15) 동계同系 형제였던 요堯와의 치열한 계승권繼承權 다툼으로 겨레 간의 갈등이 격렬하여서인지 [인人]은 두 개의 예禮를 갖춘 사람의 형상(겨레의 두 무리)이 서로 꼬리를 맞대고 위 아래로 붙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인人]의 변화 과정도 우리말과 글로서 풀어야 만이 매우 정확하게 본래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한족漢族의 글자 발성發聲이나 자의적恣意的인 해석으로서는 도무지 문자변화의 사정事情을 알 길이 없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부분 참고]

 

계무민이 있다. 성이 임씨이고 무골의 자손이다. 有繼無民 任姓無骨子 <대황북경大荒北經>

 

무장국이 있는데 성이 임씨이며 무계국 사람의 자손으로 물고기를 먹고 산다. 有無腸之國 是任姓無繼子 食魚 <대황북경大荒北經>

 

당이국이 있어 성이 임씨이고우호의 자손으로 곡식을 먹고산다. 有儋耳之國 任姓 禺號子 食穀 <대황북경大荒北經>

 

우려국이 있다. 뼈 없는 사람이 있는데 담이의 자손이다. 有牛黎之國 有人無骨 儋耳之子 <대황북경大荒北經>

 

유리국이 일목의 동쪽에 있다. 그 사람들은 외팔에 외다리인데 반대쪽으로 휘어진 무릎과 구부러진 발로 땅위를 딛고 있다. 혹은 유리국은 사람들의 발이 반대쪽으로 꺾여있다고도 한다. 柔利國在一目東爲人一手一足 反膝曲足居上 一云留利之國 人足反折 <대황북경大荒北經>

 

 

[계繼]는 전욱顓頊의 정비正妃인 칭稱의 씨칭氏稱인 <계癸>이다. 성姓이 임씨任氏라는 이야기는 그 고을나라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임任 rèn이나 임壬 rén 즉 ~님]이라고 부른다는 말이다. 이 시기의 <인人 rén>과 발음發音이 같다.

 

[대황북경大荒北經]의 다른 기록에서는 무계국無繼國이라고도 하는데(원가袁珂) 이들의 묘예苗裔라는 무장국無腸國도 임성任姓으로 기록되어진 걸로 보아 다 같은 계통의 세력군勢力群이다.

 

<무골無骨>은 원가袁珂가 근처에 있는 <우려국牛黎國 과 해외북경海外北經의 유리국柔利國을 말한다 -발음發音이 비슷하다> 라고 해석했는데 탁월한 지적이다.

 

<리黎 lí와 리利 lì>는 같으며 우리 동방족의 별칭別稱이다. 모두 여목余目과 친밀성親密性이 있음은 이미 설명하였다. 유리국(柔利國 -留利國) 사람들의 <발이 반대쪽으로 꺾여있다>는 이야기는

 

족표族表를 만들 때 신농계神農系의 상징인 <발 족足 -족族으로 인신引伸되었다>을 엇갈리게 하거나 반대로 뒤집는 관습이 있다는 걸 말한다(묘예苗裔임을 뜻할 때 흔히 그렇게 한다). 특별하게 [족足]에 관한 설명으로 도배한 까닭은 이들 세력이 바로 족足을 기본으로 씨칭氏稱이나 씨표氏表를 삼고 있기 때문이다.

 

 

14. 황제黃帝 시대에 등장한 족표族表에서 비롯된 [황黃 huάng]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14]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누르 황>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완성형으로서 <黃 huάng>

 

 

[설문해자說文解字]

 

 

󰊱 황은 땅의 색이다. 전으로 구성되어 있고 광이 발음을 나타낸다. 광은 광의 옛 글자이다. 黃...地之色也 從田광聲 광古文光 <설문해자說文解字>

 

󰊲 화는 불이다. 불이 나서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다. 火 燬也...炎而上 <설문해자說文解字>

 

※ 황은 호와 광의 반절이다. 乎光切(화火 huάng = 호乎 hū + 광光 guāng - 우리말 「황」과 같다)

 

화는 호와 과의 반절이다. 呼果切(화火 huŏ = 호呼 hū + 과果 guŏ - 우리말 「화」와 같다)

 

 

가)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하다. 한족漢族들이 오로지 황제黃帝에만 초점을 맞추어 견강부회牽强附會한 대표적인 글자이기 때문이다(토덕土德을 입었다거나 흙의 기운을 지닌 왕王이라는 설명이 그렇다). 우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황黃을 무어라 했는지? 살펴보자.

 

 

❶ <땅의 색깔이다. 地之色也>라고 한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흙 토土나 따 지地>는 우리말 <다*터>에서 나왔음을 명심해야 한다.

 

❷ [황黃]을 다시 설명하는 부분에서 『황黃은 밭을 좆는 (艹밑에 火)의 소리 값이며 옛글의 광光이다. 從田(艹밑에 火)聲 (艹밑에 火) 古文 光』이라 하였는데 [광光]을 설명하는 기록들에서는 『(그림글자 광)은 옛글의 광光으로 밝다는 말이다.

 

(그림글자 광)은 옛글인 (艹밑에 火)로서 불 밑에 사람이 있다는 뜻에서 광명의 뜻이다. (그림글자 광) 古文 光, 明也. (그림글자 광) 고문 (艹밑에 火) 從火在儿上 光明意也』라고 아주 친절하게 풀어준다.

 

 

나) 이 해석은 한족漢族의 관념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신농神農 세력이 환국桓國에서 중토中土에 전한 화전경작火田耕作의 실상實狀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밭을 좆아 불빛의 소리 값으로 읽는다*불 밑에 사람들이 있어 불빛의 뜻을 가진다>는 설명이 덧붙여 있는 것이다.

 

다) 불빛을 보고 우리는 [밝다*환하다]라고 말한다. 황黃이 토덕土德인 까닭도 우리 민족이 거친 산과 들을 태워 밭을 만들고 가축을 기르면서 [터 土]를 닦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소리글자는 바로 [우리말인 「환한」 에서 변한 황]이다.

 

라) 그래서 비슷한 형성과정을 가진 [화火 huŏ]도 <활활 타다*하다*밝다*붉다>에서 소리 값의 뿌리가 나왔다. 우리말인 <불>과 불꽃이 솟아오르는 모양인 <활활*화르륵>이 그 어근語根이다.

 

 

15. 소호금천小皥金天의 족표族表에서 등장하는 [조鳥 diăo]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의 중간 모양] [첨부 15]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새 조>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鳥 diăo>

 

※ 조는 도와 료의 반절이다. 都了切(鳥 diăo = 도都 dū + 료了 liăo - 우리말 「됴」와 같다)

 

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노魯 소공昭公 17년 조條]에는 <방문한 소호씨小昊氏의 후예後裔인 담자郯子와의 대화에서 소호씨小昊氏가 새로서 관직官職 이름을 삼은 이야기>가 상세히 적혀있다. 그런데 왜 공자孔子는 이 내용을 깡그리 지우고 다만 [춘추春秋]에 <담자郯子가 내조來朝했다>는 한 마디 짤막한 단말마로서 끝냈을까?

 

나) 삭제削除한 글 가운데 <공자孔子가 이 말을 듣고 담郯나라 임금을 만나고 난 뒤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듣건대 천자天子가 직분職分을 잃으면 학문이 사방 오랑캐에게 있다는 소리가 오히려 믿을 만 하다」라는 글귀가 <키 포인트>이었기 때문이다.

 

다) 요순堯舜 시기를 역사의 정통으로 삼고 싶은 공자孔子는 소호小昊 시대에 이미 [새]로서 상징된 지배자의 통치구조가 정립定立되어 있었음을 기록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이게 아니다.

 

[새 족族 -조이鳥夷]의 시조始祖로 인정받는 소호小昊의 족표族表는 [발음發音으로는 해로서 통용通用되는 새]이다(그래서 새 왕王=밝은 해와 같은 왕王이다). 그렇다면 [조鳥]는 어떤 과정을 거쳐 소리글자로 완성되었을까?

 

라) 우리말로 흔히 [해 즉 왕을 따른다]는 [해를 좆다 -나중에 쫒다 로 변화한다]*[새가 부리로 좆아댄다 -쪼아댄다]라고 한다. 이를 상징하여 부호글자로 표기한 것이 [좆는 짐승이라는 조]이다. [ㄷ ➡ ㅈ]의 관계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둊다 ➡ 좆다). 기록상에도 <도이島夷 dăo 와 鳥夷 diăo>는 비슷한 지역에서 존재했으나 중복되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 이 무렵 느슨한 관직체계官職體系가 등장했음은 지금도 우리말로 [새의 벼슬 즉 볏 ➡ 벼슬]이란 말로 통용通用하고 있음으로 보아 충분한 짐작이 가능하다.

 

필자筆者의 견해로 이 시기에서부터 비롯되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술잔을 작(爵 -참새주둥이 모양의 술잔*벼슬)으로 표현한 점도 그 이름과 관련하여 다시 한번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다(작위爵位*관작官爵도 마찬가지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부 기록 참고]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점은 어째서 우리 민족이 [조선朝鮮]과 [조이鳥夷]로서 인식되는 경향성을 보이며 신농神農의 뒤를 이어 중토中土의 어른이 된 소호小皥가 구태여 <새 조鳥>를 상징으로 삼았느냐? 하는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朝 zhāo는 조鳥 diăo와 발음상發音上 연관성이 깊다(ㄷ ➡ ㅈ 의 음운변화音韻變化를 감안하기 바란다).

 

[산해경山海經]에 유난히 <새 -신조神鳥나 괴조怪鳥>에 관한 기술이 많으며 새의 형상으로 묘사描寫한 신인神人들이나 고을나라가 자주 등장하는 까닭도 한 몫을 거드는데 [하늘과 인간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로서 그 <사이-새>를 이어주는 전달자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서로 멀리 떨어진 [틈새]를 가장 먼저 그리고 빨리 이어준다는 소망所望이 표현되는 과정이었으며 그래서 소통이 안 되어 틈새가 벌어진 걸 [금이 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금>이었을까?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이아爾雅 석조釋鳥]에서 <다리가 둘이고 날개가 있는 것을 금禽이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古代로부터 그렇게 인식한 우리의 관념을 받아들인 것이다.

 

순 우리말로 [새*쇠*세]는 서로 통하며 지금도 금*김金으로 읽히는 사실과 비슷하다. 금金 jīn과 금禽 qín은 발음發音이 비슷하다. 중토中土로 퍼져나간 동방계열들이 조선祖先으로 받드는 제준帝俊이나 중토中土의 어른이었던 신농神農의 큰 아들로 집안을 도맡은 희화羲和가 똑같이 [새의 머리 모양]을 한 부호글자를 쓴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해내경海內經]을 보면 동방제국에서 중토中土로 나아가는 출발지역에 조운국朝雲國이 자리하고 서변西邊의 중심 산山으로 조산鳥山*남변南邊에 조산肇山을 언급하고 있다.

 

이를 갈무리하는 중심인물로서 서변西邊은 염장국鹽長國의 조씨鳥氏를*남계南界는 처음으로 중토中土에 나아간 태호太皥의 묘예苗裔인 함조(咸鳥 -불함산不咸山의 조씨鳥氏)를 구태여 기록한다.

 

소호小皥는 [신농神農-황제黃帝의 전역戰役]을 수습한 동방제국의 자오지천왕(慈烏支桓雄 -치우蚩尤)의 중심 세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가 중토中土를 맡으면서 스스로 새 어른(조왕鳥王)으로 행세한 건 지극히 마땅하다.

 

아무튼 소호小皥가 모든 관제官制를 <새>로 통일하였으니 <고을나라>에서도 이에 따랐음이 틀림없다(이런 부호符號를 족표族表나 씨표氏表로 삼거나 그렇게 불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황을 [산해경山海經]은 매우 분명하게 설명해 놓고 있다. 진가眞價를 다시 한번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공통적으로 [새]의 모양이나 특징 또는 날개를 지니고 있는 괴수怪獸나 사람의 얼굴 등을 한 괴조怪鳥 등은 모두 소호小皥와 관련이 있다고 보아도 좋다. 예例를 들면 새 날개를 가진 괴어怪魚로서 [남산경南山經]에서 저산柢山의 육(鯥 -우리 어군語群인 lú)*

 

태기산泰器山의 문요어文鰩魚 [북산경北山經]에서 대산帶山의 새 같은 숙어儵魚*초명산譙明山의 까치(까마귀가 맞다) 같은 습습어鰼鰼魚

 

괴조怪鳥로서 [남산경南山經]에서 기산基山의 창부*거산柜山의 주鴸*녹오산鹿吳山의 고조蠱雕*도과산禱過山의 구여瞿如*영구산令丘山의 옹顒 [서산경西山經]에서 태화산太華山의 비유肥遺*유차산羭次山의 橐비*녹대산鹿臺山의 부혜鳧徯*종산鍾山의 흠비欽(丕+鳥)와 고鼓*삼위산三危山의 치鴟*익망산翼望山의 기여鵸(余+鳥)*엄자산崦嵫山의 인면효人面鴞

 

[북산경北山經]에서 사람 얼굴을 한 관제산灌題山의 송사竦斯*양거산梁渠山의 외눈박이 과보夸父와 같은 효(虈에서 艹를 뺀 글자)*경산景山의 산여酸與*[해외서경海外西經]에서 기굉국奇肱國에 있다는 머리가 둘인 새와 나타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람 얼굴을 한 차조(次 아래 鳥)鳥 - [대황서경大荒西經]에도 같은 종류로서 현단산玄丹山에 청문靑(文 아래 鳥)과 황오黃鷔를 언급하고 있다.

 

괴수怪獸로서 [서산경西山經]에서 엄자산崦嵫山의 새 날개를 가진 숙호孰湖*[동산경東山經]에서 새 부리와 솔개의 눈을 한 구여犰狳*새 날개를 가진 고봉산姑逢山의 여우 폐폐獙獙*[해내북경海內北經]의 날개를 지닌 호랑이 궁기窮奇

 

※ 이들이 실제로 어떤 세력집단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❶ [서차삼경西次三經]에서 종산鍾山의 흠비欽(丕+鳥)와 고鼓는 보강葆江을 죽였다가 천제天帝의 노여움으로 물수리나 솔개와 같은 준조鵔鳥로 화化하였다. 는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❷ [북산경北山經]에서 실제로 난폭한 세력인 알유窫寙는 소 모습에 사람 얼굴에 말발굽을 하고 있다 ❸ 역시 발구산發鳩山의 까마귀 같은 정위精衛는 염제炎帝의 딸이다. ❹ [대황서경大荒西經]의 반쪽이 사람의 형상인 물고기 어부魚婦는 전욱顓頊의 환생還生이다. 와 같은 기록이 적지 않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인神人으로서 소호小皥의 이동 경로나 정착지로 보여 지는 [남산경南山經]과 [중산경]의 산신山神들(새의 몸을 하고 있다)*[서산경西山經]에서 새 날개를 지닌 괴강산槐江山의 영소英招*천산天山의 네 날개를 가진 제강帝江*[해외북경海外北經]에서 주신主神인 새 몸을 한 우강禺彊*[해내동경海內東經]에서 동방東方의 신神인 새 몸을 한 구망句芒*[대황서경大荒西經]에서 새 몸을 한 서해西海의 신神 엄자弇玆

 

지명地名으로서는 [서차이경西次二經]의 부근에 부혜鳧徯 세력이 있는 조위산鳥危山*[서차사경西次四經]에서 신농神農 집단의 성산聖山인 신산申山 부근에 있는 조산鳥山*소호小皥의 활동영역과 친밀한 [동산경東山經]에서 남쪽으로 번조산番條山*[동차이경東次二經]의 공상산空桑山 남방 근처인 조석산曹夕山이 등장한다.

 

소호小皥의 정착지와 매우 깊숙이 관련된 [중산경中山經]에서는 첫머리인 박산薄山에 감조산甘棗山이 나타나고 역시 박산薄山에서 시작하는 [중차오경中次五經]에 조곡산條谷山과 조가산朝歌山이 보인다.

 

고을나라로서는 [해외남경海外南經]의 우민국羽民國 -서북편의 비익조比翼鳥 [1] 라는 기록과 나란히 나타난다. 또한 우禹의 필방조畢方鳥와 대치 국면을 이루는 것처럼 새의 부리에 날개를 지닌 환두국(讙頭國 -희화羲和 주柱의 고을나라인 환주국讙朱國)*[해내동경海內東經]의 두 마리의 새가 부축하고 있는 현고국玄股國

 

[1] 서차삼경西次三經에서 오회吳回를 받드는 성산聖山인 숭오산崇吾山의 날개와 눈이 하나이어서 나란히 붙어있지 못하면 날지 못한다는 새를 만만蠻蠻이라고 곽박郭璞이 풀었는데 학의행郝懿行은 서산경西山經의 낙수洛水가 황하黃河로 흘러드는 부근인 강산剛山에도 있는 짐승 만만蠻蠻이라고 하며 모두 오랑캐로 취급했다.

 

 

16. 소호금천小皥金天의 족칭族稱에서 나타나는 [호皥 hὸu]

 

 

[설문해자說文解字]

 

이 소리글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호瓠 hù 부部에서 <호瓠는 박이다. 瓠匏也>라 하여 우리말 소리 값이라는 흔적을 남겨주고 있다. <박 즉 바가지>는 우리의 정서상情緖上 [밝]으로서 둥글게 생긴 모양이 해나 달과 같음을 공유共有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詩 빈풍豳風 칠월七月 七月食瓜 八月斷壺>의 [모전毛傳]에서도 <호壺 hù는 박 호이다. 瓠 壺也>라 하여 가차假借임을 밝히고 있는데 <단지나 박>의 모습을 [밝음의 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호부壺部에서 호壺를 해석하며 악부岳部를 거론擧論하는 가운데 다시 <호는 곤오昆吾가 만든 둥근 그릇으로 상형이다. 壺昆吾圜器也 象形>이라고 거듭 설명하여 우리 민족의 사유思惟에 바탕을 둔 순 우리말에서 나왔음을 더욱 분명히 해주고 있다. [1] 우리 소리로 [둥근 것]은 모두 <환하다. 인 huàn> 이란 소리 값이다.

 

[1] 예기禮記 상대기喪大記의 적인이 호를 내어 놓고,,,狄人出壺란 구절句節이나 우리 전통 놀이인 투호投壺를 보라. 대대례기大戴禮記나 소대례기小戴禮記의 투호投壺는 모두 북중국北中國에서 성행한 동방족東方族의 풍속을 본받은 것이다. 항아리에 특별하게 화살을 왜 던지겠는가?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己] [첨부 16]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밝을*흴 호>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皥 hὸu>

 

 

가) 원래는 [해]를 말하는 소리글자였을 것이다. 이는 후세後世에 등장한 북방세력들을 모두 [호胡]로 범칭凡稱한 사례事例로서도 설명되어질 수 있다. 같은 음가(音價 hὰo)인

 

<하늘 호昊 - 터럭 호毫 [1]*밝을*빛날*해뜨는*햇빛 날 호皓*흴 호皜>나 [해의 ㅎ ➡ 개의 ㄱ 변화]와 같은 음운변이音韻變異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高gāo*고皐gāo>도 모두 같은 의미이다.

 

[1] 이 글자는 원래 밝다는 뜻인 <박亳>에서 나온 것으로 고대古代에는 모두 같은 의미로 쓰였다. 전욱顓頊 고양高陽 때의 기물器物에 처음 등장하는 고高도 고皐의 변체變體로서 원래는 같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