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8. 12. 14:51

 

 

 

 

별첨자료.hwp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남해의 모래섬 속에 신이 있는데...부정호여라 한다. 南海渚中...曰不庭胡余 <대황남경大荒南經>

 

 

신神으로 기술된 [부정호여不庭胡余]는 바로 전욱顓頊의 아들인 <여목余目>을 말한듯하다. 전욱不庭胡余의 부계열父系列 칭호稱號가 [부알父●]이니 <부不는 부父>일 것이고 호胡 hú는 해와 통하니 <해인 부알을 따르는 여씨余氏들>이란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나중에 여余*서徐*여麗*사畬*여餘*여黎 등의 씨氏가 된다.

 

참고로 이들 세력(여씨余氏)은 나라가 태평하면 나타나는 신령한 구미호(九尾狐 -구미九尾는 구이九夷이며 호狐 hú는 호胡와 발음發音이 같다)와 자주 연관되는데 순 우리말은 원래 [여호]이었으나 <여우>로 일반화 되었다.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여우>와 관련된 기록은 대부분 이들 족단(族團 -특히 오회吳回)의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동쪽으로 370리를 가면 구보산이 있다. 又東370里 曰瞿父之山 <남차이경南次二經>

 

다시 동쪽으로 400리를 가면 구여산이 있다. 又東400里 曰句餘之山 <남차이경南次二經>

 

다시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부옥산이라는 곳인데 북쪽으로 구구가 있다. 又東500里 曰浮玉之山 北望具區 <남차이경南次二經>

 

다시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성산이 있다. 又東500里 曰成山 <남차이경南次二經>

 

다시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도과산이라는 곳인데...사람 얼굴에 세 발을 지닌 구여가 있다. 又東500里 曰禱過之山...三族人面 其名曰瞿如 <남차삼경南次三經>

 

 

[구축瞿祝]과 관련된 지표지명指標地名이 몰려있다. 더구나 아비(父)인 전욱(顓頊 -부알父●) 상징하는 부옥산浮玉山에서 <돼지 체彘>라는 짐승이 특별하게 언급되고 있다. 돼지는 그의 세 번째 이름 칭稱이다.

 

더구나 구구具區는 집안의 묘예苗裔인 오회吳回와 같은 오현吳縣 서남쪽에 있으며 형님인 성축成祝의 상징으로 보여 지는 성산成山도 함께 있다. 여기에서 동쪽으로는 회계산會稽山과 이산夷山 구역이다.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구니산이 있다. 又東300里 曰勾檷之山 <중산경中山經>

 

다시 동쪽으로 55리를 가면 선산이 있다. 又東55里 曰宣山 <중차11경中次11經>

 

다시 동쪽으로 45리를 가면 형산이 있다...구욕새가 많이산다. 又東45里 曰衡山...其鳥多鸜鵒 <중차11경中次11經>

 

다시 동쪽으로 40리를 가면 풍산이 있다. 又東40里 曰豊山 <중차11경中次11經>

 

다시 동쪽으로 70리를 가면 구산이 있다. 又東70里 曰嫗山 <중차11경中次11經>

 

다시 동쪽으로 30리를 가면 선산이 있다. 又東30里 曰鮮山 <중차11경中次11經>

 

 

구니산勾檷山은 옆의 산인 풍우산風雨山의 선여수宣余水와 연결된다. 이는 다음 정착지로 여겨지는 [중차십일경中次十一經]에서도 같은 서술구조敍述構造를 반복하고 있는 데에서도 잘 알 수 있다(구축瞿祝을 연상시키는 구욕鸜鵒 새가 나오는 형산衡(兄)山과 선여수宣余水와 대비되는 선산宣山 그리고 풍우산風雨山과 풍산豊山 등).

 

 

다시 남쪽으로 500리를 가면 구씨산이 있다. 又南500里 曰緱氏之山 <동차이경東次二經>

 

곤민국이 있는데 성이 구씨이다. 有困民國 勾姓...<대황동경大荒東經>

 

구영국이 그 동쪽에 있는데 한 손으로 혹을 잡고 있다. 혹은 이영국이라고도 한다. 拘纓之國在其東 一手把纓 一曰利纓之國 <해외북경海外北經>

 

 

공상산空桑山으로부터 시작하는 [동차이경東次二經]은 전욱顓頊의 주요 영역에 속한다. 여기에 구씨산緱氏山이 보이고 주변엔 같은 전욱계顓頊系 지표어군指標語群들인

 

<주별어珠蟞魚가 사는 여택余澤*여아산餘峩山과 잡여수雜余水와 구여犰狳라는 괴수怪獸*두보산杜父山*고야산姑射山*남고야산南姑射山*부리산鳧麗山 등>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다(동차사경東次四經의 여여택餘如澤과도 연관이 된다).

 

묘예苗裔인 중여衆艅 곤鯀과 친밀성이 있음직한 곤민국困民國도 씨성氏姓이 구씨勾l氏이며 권력을 잃은 집안들이 이동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해외북경海外北經]에 이들 세력의 흔적으로서 <구영국拘纓國>이란 고을 나라가 다시 보인다.

 

 

구句 jù와 구具 jù와 구緱 gōu 그리고 구拘 jū와 고姑 gū는 모두 발음發音이 구瞿 qú*jù와 같고 선宣 xuān은 선鮮 xiān과 비슷하며 곤困 kùn은 곤鯀 gŭn과 발음發音이 같다. 또한 여余*여餘*리麗는 구축瞿祝 여旅와 매우 관련이 깊다. 다른 이름이 여黎이기 때문이다.

 

 

다시 동쪽으로 10리를 가면 시산이란 곳인데...시수가 여기에서 나와 남쪽으로 낙수에 흘러들며...又東10里曰尸山...尸水出焉南流注于洛水...<중차오경中次五經>

 

다시 동쪽으로 10리를 가면 양여산이란 곳인데...여수가 그 북쪽에서 나와 북쪽으로 황하에 흘러들며...又東10里曰良餘之山...餘水出于其陰而北流注于黃河...<중차오경中次五經>

 

다시 동남쪽으로 10리를 가면 고미산이란 곳인데...용여수가 여기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낙수에 흘러든다. 又東南10里曰蠱尾之山...龍餘之水出焉而南南流注于洛 <중차오경中次五經>

 

 

시산尸山*시수尸水*고미산(蠱尾山 -고미 즉 곰산이다)은 모두 동방계 어군語群이며 바로 거기에 구축瞿祝 여(旅 -아우인 여목余*餘目도 마찬가지다)를 상징하는 지표지명指標地名이 몰려있다. 또 다른 영역인 중차십일경中次十一經의 시수視水와 여犭+戾라는 괴수怪獸가 있는 지역에도 여수汝水와 의제산倚帝山의 저여狙如란 괴수怪獸가 있다.

 

이 부근을 말하는 [해내동경海內東經]에서도 여기餘曁*여강廬江*회수淮水가 나오는 여산餘山과 여수汝水란 명칭名稱이 즐비하며 근처에 자리한 <소실산少室山 북편에 있는 옹씨雍氏를 구씨緱氏라고도 한다>라고 단정했다. 또한 한수漢水지역은 전욱顓頊이 묻힌 곳이다.

 

 

24. 전욱顓頊의 첫째 아들인 축융祝融의 다른 이름에서 비롯된 [성成 chéng ➡ 성盛 shèng과 상相 xiāng]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깃발인 ʅ 을 솟대인 ψ 의 목 부분에 매단 것을 잡고 꿇어앉은 그림 ] [첨부 27]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성님이라는 뜻을 함축含蓄한 성과 상>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成 chéng*盛 shèng*相 xiāng>

 

아형모계고(亞形母癸敲 -가재집고록 7책 15-1)에 보이는 성成*상작부주고(相作父珠觚 -가재집고록 21책 10)와 군고록 권 1-2의 상相*물 담는 주전자인 모계이(모계이母癸匜 -군고록 권1-2-136)에 새겨진 모계母癸 즉 칭稱이 장남長男을 얻고 나서 새로 지은 다른 이름

 

 

가) 이 소리글자의 어원語源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말에 지금도 보이는 [형계兄系 어군語群]이다. 대표적인 것이 <형님! 하는 형 xiōng과 성님! 이란 사투리로 남아 있는 성 xiāng>인데 모두 [성成과 상相]의 발음發音과 같거나 비슷하다.

 

사실 축융祝融은 그 뒤에 태어난 이복異腹 아우들에게는 감히 무시하지 못할 [큰 성님]이었다. 성축成祝은 남악南岳 형산衡山의 신神인데 산山 이름이 형산衡山인 것도 위와 같은 사실과 무관無關하지 않다(주봉主峰이 축융봉祝融峰이다).

 

그래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형兄은 어른이나 우두머리라는 뜻이고 사람을 따르고 입을 따른다. 兄長也 從儿從口>라고 정확하게 풀었다. [금문상용자전金文常用字典]에서도 <사람이 꿇어앉아 축문祝文을 읽는 형상이다. 象人跪跽祝告之形>이라 하여 집안의 큰 형으로서 제주祭主의 역할을 한 것을 알려준다.

 

이 말은 [삼병명三兵銘]에서 보이는 전욱顓頊의 손자孫子 순舜의 이름이 특별하게 <형일계兄日癸>로 표기表記되었음을 보아서도 확실하다.

 

 

나) 나중에 이 명칭들이 하나의 고정된 신분身分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재상宰相의 뜻으로 확장되거나 부여夫餘와 고구려高句麗에까지 이어져 처음에는 관직官職의 우두머리 급級으로서 [형兄]이라는 칭호稱號가 나타나는 사실도 매우 의미가 깊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 한자漢字 발성發聲에서는 원래부터 둘 다 같은 뜻인 성成과 상相 가운데 <성成 chéng>의 처음 소리 값이 나중에 다시 칭稱한 이름 <상 xiāng>과 다소 틀리는 이유는 그의 어미가 다름 아닌 신농神農의 직계直系로 소호小皥가 가장 사랑했던 <칭稱 -두 되들이 술잔인 칭고稱觚에 새겨진 글자 가재집고록 21책 8>이었기 때문에

 

모계중심母系中心의 관습慣習이 짙은 시대적 상황에서 맨 처음엔 그녀의 소리글자를 따른 듯하다. [1]. 그러나 자신의 씨칭(氏稱 -상相으로 다시 삼지창三枝槍 모양의 솟대가 이번에는 아비인 전욱顓頊의 ●을 가운데에 품은 모습으로 나타난다)을 완성하면서는

 

그대로 [형 ➡ 성xiōng]이라는 우리말 소리 값으로 되돌아간다. 이를 한족漢族의 기록에서는 [처음엔 어미의 이름인 칭稱을 따서 성成이라 했다. 성成과 칭稱과 평平은 같은 의미이다]라고 둘러댄다.

 

[1] 칭稱 chēng과 성成 chéng의 발성發聲이 같은 이유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가하면 그녀의 다른 이름인 모계母癸의 계癸도 전욱顓頊의 아들 대代에서는 공통적으로 사용한 족칭族稱으로 쓰여 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초기엔 모계母系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

 

큰 아들 성축成祝은 [삼병명三兵銘]의 두 번째 창날에서 <大父日 -큰 아버지>로 셋째 아들인 중여衆艅 곤鯀은 <中父日 -작은 아버지>로 세 번째 창날에서 전욱顓頊의 손자孫子 순舜은 <형일계兄日>로 새겨졌다.

 

 

라) 이 이름은 대代를 이어 나타나는데 [삼병명三兵銘]에 축융祝融의 직계直系로서 알려진 중리重黎 취허郰墟(제곡고신帝嚳高辛을 위해 만든 제사용 술그릇에 새겨졌다-가재집고록 13책 10-1)가 <대형일을大兄日乙>로

 

동생인 오회吳回가 태어나서 받은 이름인 성盛 shèng(금문총집 권1-68 922*술통인 성유盛卣 -가재집고록 18책 17*성부정盛婦鼎 -가재집고록 3책 13-1)이 <형일계兄日癸>란 신분으로 같이 등장하고 있다(형과 성의 음가音價가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다).

마) 특히 오회吳回는 아비와 똑같이 솟대(삼지창三枝槍 깃발)를 들고 꿇어 앉아 있어 제사祭祀를 지내는 모습이이다. 또한 아비의 씨칭氏稱을 오른쪽으로 뒤집어서 쓴 대형大兄 중리重黎 취허郰墟가 요堯에게 살해 되자

 

대신하여 집안을 이끌고 제사祭祀를 맡으면서 그 이름을 고스란히 내려받아 사용함으로서 [형계兄系]로서의 자리를 이어받았음을 알려주어(군고록 권2-1-36) 필자筆者의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음을 뒷받침해준다.

 

바) 그가 집안을 이끈 [성님]이었다는 사실은 그 뒤에도 일관되게 내려 진 이름으로도 [1] 알게 해주는데 요堯가 그의 형을 죽이자 제곡帝嚳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오늘날 재상宰相과 같은 자리를 주며 내린 칭호稱號인 [상象 xiàng -상정象鼎에 새겨졌다. 가재집고록 3책 3] [

 

] [첨부 27-1]이다.

 

앞서의 <相 xiàng>과 똑같은 발음發音이다. 이를 모르는 한인漢人들은 논리정연 한 설명도 하지 않고 그림만 보고 그저 <코끼리 상象>로 풀면서 왜 뜬금없이 이 글자가 등장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 이어 요堯때에도 재상宰相이 된 다음 그에게 내린 이름이 다음 자리를 약속한 [그릇 우盂 yú -가재집고록 7책 21]인데 소리글자 안에 [고신高辛*전욱顓頊*소호小皥*희화羲和의 씨표氏表가 모두 들어있어 그야말로 집안의 가장 <우 어른>임을 나타내준다. 그래서 글소리 값도 우리말 [우]이며 이번에도 변함없이 솟대가 가운데에 들어앉아 있다.

 

솟대의 중간에 꿰뚫려 매달린 <밭 전田 ⊕>을 이루는 十의 <―>가 길게 뻗어 나와 ○ 양쪽에서 아래로 늘어진 형태로 그려졌는데 앞서 말한 성축成祝 여黎에서 보인 세 개의 전田이 하나로 줄어들었다. 이는 권력이 침몰한 만큼 영지領地가 줄어들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1] 그 무렵에 내려지는 이름은 대부분 집안 씨氏에서의 위치를 인정하거나 신분身分을 나타내주는 후일後日의 관직官職과도 같은 칭호稱號임을 알아야 한족漢族들이 왜 그런 이름을 내리고 소리글자로 발음發音했는지? 를 이해하지 못하여 엉뚱한 해석을 한 안개 속에서 벗어나 똑똑하게 그 무렵에 벌어졌던 사건史件의 전모全貌를 이해할 수 있다.

 

 

아) 이때 나타난 이름글자가 오(吳 -어르신이라는 부호符號인 솟대가 y 같은 권장拳杖 모양으로 작아져 오른 손에 지팡이처럼 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가재집고록 21책 18) [⊄ 아래에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오른 손 밑에 y 반대 모양 솟대를 지팡이처럼 쥐고 있는 그림] 인데 실제적인 모든 권력을 요堯에게 빼앗긴 다음에는 다시 저(貯 -돼지 그림으로 표현했다)로 바뀐다. [1]

 

[1] 술잔 정미각(丁未角 -가재집고록 21책 18)에 등장하며 입지立地가 좁아진 지금의 자리를 인정한다는 의미의 소리글자로 순 우리말로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저는...저희들은...제기...]라는 <저>이다. 사투리로서는 <지가*지 까짓 것*지 에미*지 놈이>로도 말한다.

 

 

결국 완전히 힘을 잃고 난 다음 오직 집안의 어른 씨로서만 존재한다는 족표族表를 써서 요堯에게 바친 예기禮器에 새겨진 저(貯 -청동기 물주전자인 저작부을이貯作父乙匜 가재집고록 16책 19-20*계오고癸吳觚 군고록 권1-1-48과 금문편 부록 상 129)는

 

그 상징象徵으로서 어미인 모계母癸의 족칭族稱을 머리에 인 소리글자(그래서 계癸 밑에 신농神農 때부터 나타난 「족族」이라는 정체성正體性을 가진 걸 의미하는 「발 족足」을 오른쪽으로 뒤집어 덧붙였다)로 정착되었다. [2] 이런 배경설명이 확실한 것은 마침내 오회吳回는 요堯에 의해 황하黃河 북방인 유주幽州로 쫓겨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2] 이 당시에 [족族]이라는 관념이 세련된 형태로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은 [족族]이라는 소리글자가 필요한 경우 예외 없이 [족足 -발바닥을 그리거나 이를 상징화한 표기表記]을 인용했다는 점이 말해 준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같은 세력에 합류合流할 때 <발을 맞추다>라거나 무리에서 나온다는 말을 할 때 <발을 빼다>란 표현을 한다.

 

결정적으로 <제주祭主가 흠향歆饗하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쓰는 상향尙饗을 백신형지百神亨之라 하는데 이때의 형亨 hēng은 형님이란 뜻이 강한 상相과 같다는 게 통설通說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기록 참고]

 

도과산이 있는데 이곳의 어떤 새는...머리가 희고 세 개의 발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름을 구여라고 하며...禱過之山...有鳥焉...而白首三足人面 其名曰瞿如 <남산경南山經>

 

숙촉국이 있다. 전욱의 자손으로 기장을 먹고살며...곰같이 생긴 검은 빛의 짐승이 있는데 이름을 적적이라고 한다. 有叔歜國 顓頊之子 黍食...有黑蟲如熊狀名曰(犭+昔)(犭+昔) <대황북경大荒北經>

 

 

구축瞿祝이 제곡고신帝嚳高辛의 세력에 눌리면서 받은 이름이 [속호束虎 -거친 호랑이를 묶어 매다는 뜻이다]인데 형兄인 성축成祝의 <상相 -성님>이란 신분을 물려받아야 할 즈음 제곡帝嚳이 일부러 그걸 없애고 새롭게 <재宰 -저이로 저라는 낮춤말이다>라는 자리를 만들어 준 속셈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아재비 숙叔 shū은 속束 shù과 발음發音이 같다. 이는 다른 기호글자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호랑이 그림 위에 덧붙인 한족漢族이 <왕王>의 고자古字로 풀은 부호符號를 필자筆者가 왜 우뚝 솟아 있던 솟대 두개를 붙인 걸 작게 만들어 옆으로 뉘였다고 하였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속호]의 이름글자에서도 솟대가 아주 작아져서 꼬리 부분에 겨우 붙어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이 세력군勢力群이 뒷날 북중국北中國에서 [적적赤狄*적狄]이란 강력한 집단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犭+昔)은 적狄과 발음發音이 같다.

 

 

또 하나, [해내북경海內北經]에서 <귀국鬼國이 이부시貳負尸의 북쪽에 있다. 鬼國在貳負之尸北>고 했다. 이를 원가袁珂는 [해외북경海外北經]의 <일목국一目國>과 [대황북경大荒北經]의 <일목민一目民>이라고 풀었다.

 

정확한 해석으로 보이는데 성축成祝의 씨칭氏稱이 바로 [솟대의 아래에 붙여서 그린 눈 하나인 일목一目]이기 때문이다. 즉 성축成祝의 세력도 어느 시기엔가 북방으로 이동하여 이 무렵에는 그 묘예苗裔들이 귀국鬼國으로 불려진 것을 알게 해준다.

 

 

일목국이 그 동쪽에 있는데 외눈이 얼굴 한복판에 있다. 一目國在其東 一目中其面而居 <해외북경海外北經>

 

외눈이 얼굴 한가운데 달린 사람이 있다. 혹은 그가 성이 위씨이고 소호의 아들로 기장을 먹고 산다고도 한다. 有人一目當面中生 一曰是威姓小皥之子食黍 <대황북경大荒北經>

 

대황의 한 가운데 부우산이 있는데 전욱이 9명의 후궁과 묻힌 곳이다...위구의 언덕은 둘레가 300리이며 남쪽에 제준의 대숲이 있어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넓다. 東海之中 附禺之山 帝顓頊與九嬪葬焉...衛于山 丘方圓300里丘南帝俊竹林在焉大可爲舟 <대황북경大荒北經>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은 한족漢族들의 판단과는 달리 동방민족의 역사과정에 비추어 해석할 때 매우 정확함을 알 수 있다. 그 실례實例가 <일목국一目國의 성姓이 위씨威氏이다>라고 한 문구文句인데

 

필자筆者가 다른 부분에서 설명하였듯이 [순舜]의 첫 번째 이름에서 그 근거가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역 주변을 네 개의 발이 서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지키는 모습을 새긴 <호위護衛할 위衛 wèi>인데

 

위韋 wéi*위偉 wěi*違 wéi가 모두 여기에서 인신引伸되었으며 발음發音도 같거나 비슷하다. 따라서 소리 값이 같은 위威 wēi도 마찬가지이다. [순舜]은 아비가 전욱顓頊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거호巨戶이고

 

삼촌들이 일목一目인 성축成祝과 쌍목雙目인 구축瞿祝 그리고 삼목三目인 중여衆艅 곤鯀과 사목四目인 여목余目 등이다. 그렇다면 <위衛>와 관련된 지표지명指標地名들은 [산해경山海經]에 어떻게 표기表記되어 있을까?

 

 

신농神農-전욱顓頊 세력과 깊은 관련이 있는 지역인 [서산경西山經]에 보이는 위수渭水는 한족漢族이 중토中土에 들어와 영향력을 확산했던 시기에 별안간 튀어나온 지명地名이 아니다. [부계父系 어군語群]인 부우산符禺山이 있고 부우수符禺水가 흘러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渭渭 wèi의 발음發音도 위衛와 같다.

 

[대황북경大荒北經]의 첫 부분에서 전욱顓頊과 관련된 부우산符禺山 가까이에 있는 위우산衛于山은 곽박郭璞이 위구산(衛丘山 -위씨衛氏들의 언덕)으로 해석했다.

 

[대황서경大荒西經]을 보면 서북쪽 모퉁이를 지키는 석이石夷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해와 달의 길고 짧음을 맡아보고 있다. 司日月之長短) 바람이 불어오는 걸로 표현한 어느 세력의 영향력 확산을 <위韋>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근처에는 어김없이 전욱顓頊의 자손이라는 숙사국(淑士國 有國名曰淑士顓頊之子)을 언급하고 있다.

 

❹ [해내동경海內東經] 말미末尾를 보면 요수潦水가 [위고衛(鷎에서 鳥를 없앤 글자)]에서 나와 발해渤海로 흘러드는데 똑같이 낙수洛水도 상락上洛에서 나와 성고成皐에서 황하黃河로 들어간다. [성축成祝의 성成]과 [순舜의 위衛]라는 대비對比가 공교로운 지명地名이다.

 

[해내경海內經]에서 <묘민이 있다. 이곳에 사람 머리에 뱀 몸을 한 신은 키가 수레 끌채와 같고 머리가 좌우에 있으며 자주색 옷에 털로 된 관을 쓰고 있다. 이름을 연유라 하며 임금이 이걸 잔치해 먹으면 천하를 재패하게 된다. 有人曰苗民 有神焉 人首蛇神長如轅 左右有首 衣紫衣冠旃冠 名曰延維人主得而饗食之 伯天下>라고 기록한 구절句節은 이와 관련하여 매우 특별하다.

 

곽박郭璞이 이를 위유委維 wĕi wéi와 같다고 본 건 뛰어난 견해이다. 위委*유維는 모두 위衛와 발음發音이 같으며 성축成祝 이래 묘민苗民을 관리한 집안이었음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족漢族이 <털로 된>으로 풀은 [전旃]은 우리 민족의 <솟대 기旗>를 말하는 [깃대 전]이기 때문이다.

 

이걸 잡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위衛>로 상징되는 <순舜>의 묘예苗裔들이었다. 그래서 뒷날 제후諸侯들이 이 세력들을 완전하게 장악하여야만 천하天下를 얻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성산이 있다...계우국이 있는데 전욱의 자손으로 기장을 먹고산다. 又有聖山...有季禺之國顓頊之子食黍 <대황남경大荒南經>

 

 

[성成]은 축융(祝融 -성축成祝)의 이름 칭稱이며 그는 실제로 전욱顓頊의 장남長男이다. 계우국季禺國은 소호小皥의 딸로서 전욱顓頊의 정비正妃이고 성축成祝의 어미였던 [칭稱] 의 씨칭氏稱인 모계(母癸 -신농神農 후손後孫들인 계씨癸氏의 어미라는 뜻이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계사회母系社會라는 관습 때문에 전욱顓頊의 아들 시기엔 일반적으로 쓴 족칭族稱이 되었다. 그래서 삼병명三兵銘에 보이는 성축成祝의 존칭尊稱도 [大父日癸 -해인 일日을 씨칭氏稱으로 사용한 자신의 집안과 계癸인 모계母系를 두루 이끈 큰 아비]이다. 계季 jì는 계癸 guĭ와 발음이 연결된다(ㄱ ➡ ㅈ 변화).

 

그래서 부근에도 역시 묘족苗族인 우민국羽民國과 알에서 나온다는 난민국卵民國 그리고 양산襄山의 제준帝俊이 낳았다는 계리국(季釐國 -계이국癸夷國)이 있다. 동방계열의 인식으로만 슬슬 풀어지는 [산해경山海經]의 진정성眞正性이 다시 한번 돋보이는 순간이다.

 

 

󰊱 앞서 설명했듯이 구축瞿祝과 친연성親緣性을 지닌 명칭名稱들이 몰려 있는 [남산경南山經]의 <구부산瞿父山 - 구여산句餘山> 지역에서 동쪽으로 성축成祝을 떠올리게 하는 성산成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대황남경大荒南經]에서 성산成山을 다시 언급하는데 그곳의 고을 나라인 계우국季禺國이 전욱顓頊의 자손이라고 아예 못을 박아 놓았다. 실제로 우禺 yú는 성축成祝의 아들 오회吳回 성盛의 네 번째 이름 우盂 yú와 발음發音이 같다.

 

아울러 전욱顓頊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점을 구태여 강조한 성산姓山과 낙수洛水가 황하黃河로 들어가는 지역에 성고(成皐 -아래에서 다시 나올 고수皐水와 관련이 있다)가 특별한 친밀성을 갖는데 [1] [대황동경大荒東經]의 성산盛山과 관련하여 매우 의미가 크며

 

염제(炎帝 -신농神農)의 자손子孫이라는 과보夸父가 등장하는 [대황북경大荒北經]의 성도재천산成都載天山과 분명한 연결고리가 보인다. 성고成皐에서 동쪽으로 전욱顓頊 계열의 지표指標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중차오경中次五經]에 바로 <성후산成侯山>이 중심으로 버티고 있다.

 

[1] 고皐는 백白을 핵심 형태소形態素로 가지고 있는데 [대황남경大荒南經]에서 전욱국顓頊國을 만들었다는 사람이 백복伯服이며 여기에 백수산白水山*백수白水*백연白淵이 있고 중여衆艅 곤鯀과 오회吳回 세력으로 생각되는 곤오昆吾의 군대가 머문 곳이라고 단정한다.

 

 

󰊲 [축祝]과 관련하여 형산(衡山 -형兄 즉 성님으로서 성축成祝이 주신主神으로 있는 산山이다)에서 시작하는 [중차십일경中次十一經]에도 유난히 이들 세력을 상징하는 名稱들이 몰려있다(구산嫗山*선산鮮山*구오산區吳山*종구산踵臼山*구산求山*오산奧山*구욕瞿鵒 새*고수皐水*예수灃水*구수求水*오수奧水). 그리고 그 중심에 형산衡山과 성흉산聲匈山과 축양산丑陽山이 있다.

 

고대古代 세력들은 이동하거나 정착한 지역에 흔히 자신들의 정체성正體性을 드러내기 위한 특징을 지닌 이름을 붙인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의미심장하다.

 

󰊳 [오吳 wú]에 대하여는 분명하게 우리 민족 사유思惟의 중심에 서있는 <오烏 wū>와 친연성親緣性을 가진다. 또한 이 부분의 핵심 포인트는 [대황서경大荒西經]의 <오거천문吳姖天門>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원문原文부터 소개한다.

 

 

대황의 한 가운데 하늘의 지도리라는 일월산이 있다. 해와 달이 지는 곳이다. 신이 있어 사람의 얼굴에 팔이 없고 두 발이 거꾸로 머리 위에 붙어있는데 이름을 허라고 한다. 전욱이 노동을 낳고 노동이 중과 여를 낳았는데 천제가 중에게 명하여 하늘을 들어올리게 하고 여에게 땅을 억누르게 했다. 땅이 열을 낳았는데 서쪽 끝에 살면서 해*달*별의 가고 머무름을 주관한다.

 

大荒之中 有山名日月山天樞也 吳姖天門 日月所入 有神 人面無臂兩足反屬于頭山(원가袁珂는 산山이 상上의 잘못이라 했다) 名曰噓 顓頊生老童 老童生重及黎 帝令重獻上天令黎邛下地 下地是生噎 處於西極以行日月星辰之行次 <대황서경大荒西經>

 

 

[해와 달]에 주목해야 한다. 순 우리말로서 <해>는 큰 어른이나 그 아래 어른씨]들을 의미하며 <달 -다라*다루*다로*다리>은 그들이 관리하는 땅이나 세력>을 말한다(제준帝俊의 아내라는 상희常羲가 여기에서 구태여 12개의 달을 씻기는 까닭이 밝혀진다). 그래서 하늘의 끄트머리라는 일월산日月山이 등장하는데 <해와 달이 지는 곳>이라는 표현이 결국 이들 세력이 경영하는 경계점임을 알 수 있다.

 

<열噎 yē -예족濊族으로 원가袁珂는 허噓와 같다고 풀었다>이 가고 머뭄을 주관(세력의 진퇴進退 결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되어진다. 허噓 xū*shì는 오회吳回의 회回 huí 와 발음發音이 비슷하다(우리말에서 해는 새나 개로 통한다)

 

❷ 분명히 이들의 중심에 전욱顓頊이 등장하고 있다. 묘예苗裔가 중重과 여黎 - 열噎인 오회吳回로 이어짐을 알려주는데 중重이 중토中土를 놓고 보았을 때 위쪽이며 천제天帝와 직접 교통하는 북중국을 맡고 여黎는 중토中土 남방을 어우르는 일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천제天帝는 누구일까? 이미 짐작하셨을 것이다.

 

❸ 주목할 대목은 <두발이 거꾸로 머리에 붙어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전욱顓頊 집단의 족표族表나 씨표氏表를 떠오르게 해주는 기술記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회吳回의 다른 이름인 성盛에는 팔이 하나만 그려져 있고 <오吳>를 낳게 한 소리글자를 보면

 

이들 세력의 대표적 상징부호象徵符號인 <발 족足>이 다리가 아닌 머리 위에 거꾸로 올라가 붙어있는 게 분명히 나타난다(계오고癸吳觚*정미각丁未角 등). 그러므로 허噓가 오회吳回라는 사실에 더욱 못을 박아준다.

 

같은 부분의 다른 구절句節에 <오회라는 사람이 있는데 왼 팔뿐이고 오른팔이 없다. 有人名曰吳回 奇左是無右臂>라는 표현이나 위 원문原文의 <신이 있어 사람의 얼굴에 팔이 없고...>는 분명히 관계가 있으며 같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음을 짐작케 해준다(곽박郭璞은 이 대목을 보고 오회吳回를 축융祝融의 동생으로만 사실상 인정했다).

 

❹ 그 다음 구절句節에도 다시 <팔이 거꾸로 달린 사람이 있는데 이름을 천우라고 한다. 有人反臂 名曰天虞>하였는데 [우虞 yú가 첫째 삼촌인 성축成祝의 다른 이름 속호束虎의 호虎 밑에 오吳 wú가 있어] 실제로 오회吳回임을 은유해준다. 우虞와 오吳는 발음發音이 비슷하다(대황동경大荒東經이나 해외동경海外東經에서는 천오天吳라고 했다).

 

❺ 이곳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려고 그 다음 줄에 각별하게 <대황의 한 가운데 오오거라는 산이 있는데 해와 달이 지는 곳이다. 大荒之中 有山名曰鏖鏊鉅 日月所入者>라고 재차 설명해준다.

 

❻ 마지막 부분에서는 특별하게 전욱顓頊 계열의 또 다른 상징인 [돼지]를 뜻하는 <좌우에 머리가 달린 짐승이 있는데 이름을 병봉이라고 한다. 有獸 左右有首 名曰屛蓬>라고 덧붙여 주고 있다. 마치 더 이야기해주려는 듯 병자屛字에 동방족의 징표徵表인 시尸까지 덮어주고 있으니 참으로 친절하다

 

(모든 기록들을 교통정리해주는 설명구조를 가진 해내경海內經에 염제炎帝의 손자孫子 부인夫人의 아비로서 오권吳權을 다시 거론擧論하며 최종 방점傍點을 찍은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외에 [중산경中山經]의 오림산吳林山*황하가 바라다 보이는 남쪽인 [중차삼경中次三經]의 첫머리로서 오안산敖岸山*[중차11경中次十一經]의 오산奧山과 오수奧水*顓頊 고양高陽의 상징인 부양산(符愓山 -곽박郭璞은 양愓을 양陽이라 했으니 순 우리말로는 부알산父●山*부양산父羊山이다) 옆 삼위산三危山에 사는 괴수怪獸 오열傲(彳+因)도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남산경南山經]의 녹오산鹿吳山과 칠오산漆吳山*[서차삼경西次三經]의 숭오산崇吾山*[서차이경西次三經]의 훈오산薰吾山*[해내북경海內北經]의 양오산陽汙山*[동차이경東次二經] 첫머리의 저오沮吳란 지역도 앞으로 주시해야 한다.

 

 

󰊴 [상相]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눈여겨야할 부분은 [해내경海內經]의 <상고지시相顧之尸>이다. 이 대목 부분에 전욱顓頊 계열이 모두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고顧 gù는 구축瞿祝의 구瞿 gú와 발음發音이 같다.

 

<호랑이 머리에 새의 발을 한 시커먼 사람>으로 기술된 속호(束虎 -구축瞿祝으로 소리글을 보면 마치 네 개의 새 발톱을 가진 짐승처럼 보인다)*<새 발을 한 영민嬴民과 동시에 성축成祝의 상징인 돼지를 뜻하는 봉시封豕>가 나타 난다*주변에 형산衡山과 구의산九(山 아래 疑)山이 있다.

 

 

북해의 안쪽에 두 손이 뒤로 묶이고 형틀에 채워진 채 창을 든 사람이 있으니 상배를 모시던 부하로 이름을 상고시라고 한다. 北海之內 有反縛盜械 帶戈常倍之左名曰相顧之尸 <해내경海內經>

 

 

주목할 점은 이 문구文句에서 곽박郭璞은 상고시相顧尸를 [해내서경海內西經] 이부시貳父尸의 신하臣下로 보는데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는 옳지 않다.

 

[산해경山海經]의 어느 기록을 살펴보아도 <시尸>라는 이름을 지닌 어떤 세력의 어른이 다른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는 사례事例가 없다.

 

상고금문上古金文을 보면 [상相]이란 칭호稱號를 가진 성축成祝의 소리글이 깃발 달린 창槍과 같은 솟대 앞에서 무릎을 굽혀 몸을 꿇고 있는 모양이다. 꼭 [산해경山海經]에서 이부시의 모습과 비슷하다. 동방족의 예를 모르는 한족의 눈에는 적어도 묶여서 무릎을 꿇린 모양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아무려면 형틀에 매인 사람이 창을 들고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상고시相顧尸는 상相이란 이름을 가진 성축成祝의 묘예苗裔가 가장 유력하다. 그는 전욱顓頊의 명命으로 묘민苗民을 어우르려고 남방으로 내려갔는데 이를 말해주는 기록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울수는 상릉의 남해에서 나온다. 혹은 상려라고도 한다. 鬱水出湘陵南海 一曰相慮 <해내남경海內南經>

 

공공의 신하를 상류씨라고 하는데 9개의 머리로 9개의 산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우가 상류를 죽였는데 그 피가 비려서 오곡을 심을 수가 없었다...그걸 없애려고...여러 임금들의 누대를 만들었고...감히 누대를 향해 활을 쏘지 못하는 것은 공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共工之臣曰相流氏 九首以食于九山...禹殺相流其血腥 不可以樹五穀種...禹厥之...乃以爲衆帝之臺...不敢北射畏共工之臺<해외북경海外北經 -대황북경大荒北經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이름이 상요相繇로서 상相이란 소리글을 그대로 간직 한다>

 

성산이 있다...남해의 물가에 신이 있는데...부정호여라 한다...대황의 한 가운데 융천이 있다... 又有成山...南海渚中 有神...曰不廷胡余...大荒之中 有山名曰融天...<대황남경大荒南經>

 

역산이라는 곳에 역민국이 있는데 성이 상씨로 기장을 먹고 산다...어떤 사람이 지금 호랑이 꼬리를 깨물고 있는데 이름을 조상시라고 한다. 有𧌒山者 有𧌒民之國 桑性 食黍...有人方齒虎尾 名曰祖狀之尸 <대황남경大荒南經>

 

 

전욱顓頊 ➡ 축융(祝融 -성成) ➡ 여목(餘目 -여余와 여餘) ➡ 오회(吳回 -성盛과 상象) ➡ 그 묘예苗裔들의 행적行蹟이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으로 고스란히 복원復原된다는 점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상湘 xiāng과 상桑 sāng은 상相 xiāng*상象 xiàng과 력𧌒 yú는 여余*여餘 yú 와 발음發音이 같다.

 

󰊵 전욱顓頊 계열의 공통 이름 칭稱인 [여]가 등장하는 기록들과 이들 세력군의 이동 및 정착 그리고 관리지역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즉 전욱顓頊의 첫째아들인 일목一目 성축成祝의 4번째 이름인 [여黎*犂.]이고

 

둘째인 쌍목雙目 구축瞿祝도 [여旅]이며 셋째였던 삼목三目 중여衆艅 곤鯀이 [여艅]이다. 넷째로서 사목四目이었던 여목余目은 [여余*餘]인데(이때부터 본격적으로 4개의 눈을 형상화한 여余 아래에 족칭族稱인 눈을 그려 붙인 소리글이 등장한다)

 

3대代로서 성축成祝의 첫 아들은 중여重黎 취허郰墟인데 이름에 [여黎]가 있고 둘째인 오회吳回 성盛의 5번째 이름(서청고감 권4-5에 나오는 호정狐鼎에 새겨졌다)이 [여우 모양을 그린 여우 호狐]이다. 순 우리말 여우와 구미호九尾狐의 기원起源으로서 처음에는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쓰인 이유가 있었다.

 

여우는 지금도 우리말에 <여시>라고 두루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해경山海經]에서 등장하는 <여>와 발음發音이 같거나 비슷한 지표지명指標地名과 <여우*여시>와 친밀한 기록들은 일단 숙고熟考해 보아야 한다.

 

 

25. 제곡고신帝嚳高辛 시기에 나타난 <어린애라는 기호글자>인 [아兒 ėr]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첨부 28]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어린 아이 아*애>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兒 ėr>

 

 

[설문해자說文解字 등]

 

 

신은 머리의 두개골이 접합되는 곳이다. 상형이다. 囟...頭會腦蓋也 象形 <설문해자說文解字 신부囟部>

 

모는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인으로 구성되었다. 백은 얼굴의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皃...頌儀也 從儿 白象面形 <설문해자說文解字 모部>

 

신은 그 자형이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합쳐지지 않은 모양을 상형하였다. 囟..其字象小兒腦不合也 <예기禮記 내칙內則의 角男女羈 에 관한 주注에 대한 정의正義>

 

내가 보기에는 인부의 아자에서도 인으로 구성되었다. 위는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아직 합쳐지지 않은 모양을 상형하였다. 從儿 上形小兒頭腦未合也 <단옥재段玉裁의 인부儿部 아자兒字 설해說解>

 

 

가) 오늘날에도 사투리로 남아 있는 순 우리말이다. 나중엔 어린 해님이라는 <아해>로 변화되기도 하였는데 [얼라 들-어린 아(이)들-어린 애]*[아~ 들이 버릇이 없어!] 등이 보이고 변화형으로 <애들*애벌레>가 있으며 [누나]도 원래는 <누운 임-누님처럼 누운 아-누나]가 된 것이다.

 

나) 이 소리글자는 나중에 다양하게 퍼지는데 [버금*동서 아亞 yà*벙어리*어린애의 서투른 말 아啞 yā*주로 여자에게 붙인 접미어接尾語인 아娥 é*어린 남녀의 이름 앞에 붙이는 阿 ā]로서 모두 발음發音이 같거나 비슷하다.

 

다) 소리글자의 모양은 제의祭儀와 관련되어 자주 나타나는 전형적인 꿇어앉아 있는 형상이며 머리통이 유난히 크고 정수리의 숨골이 터 있는 것은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라) [아兒]의 소리 값은 <어리다-얼이다 의 어*얼 아이라는 >로 이중화二重化된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한유는 길쭉한 머리에 근이로서 사람의 얼굴에 돼지주둥이...돼지의 발을 하고 있는데 촉산씨의 자손인 아녀를 맞아 전욱을 낳았다. 韓流擢首 謹耳 人面豕喙...豚止 取淖子曰阿女 生帝顓頊 <해내경海內經>

 

염제의 손자 백릉이 오권의 아내인 아녀연부와 정을 통해 잉태한지 3년 만에 고*연*수를 낳았다. 炎帝之孫伯陵 伯陵同吳權之妻阿女緣婦 緣婦孕3年 是生鼓延殳 <해내경海內經>

 

아산이라는 곳이 있다...적수 동쪽에 창오야가 있는데 순과 숙균을 장사지낸 곳이다...불사국이 있는데 성이 아씨이며 감목을 먹고산다...有阿山者...赤水之東有蒼梧之野 舜與叔均之所葬也...有不死之國 阿姓 甘木是食. <대황남경大荒南經>

 

대황의 한 가운데 얼요군저(머리통이 큰 숫양의 얼이 있는)라는 산이 있다. 그 위에 부목(부상수*불사수)이 있는데 높이가 300리이고...양곡 위에 부목이 있는데 한 개의 해가 막 조착하자 한 개의 해가 막 떠오르며 모든 해가 까마귀를 싣고 있다. 大荒之中 有山名曰孼搖頵羝 上有(扶木 -扶桑樹*不死樹) 湯谷上有扶木 一日方至 一日方出 皆載于烏 <대황동경大荒東經>

 

 

󰊱 [아]는 다음 세대世代를 뜻하는 기본 소리글로서 우리말 호칭呼稱에서 자주 접하는 [순돌 아!*아들*이놈 아!*저 애]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의 단옥재段玉裁 주注에서

 

이 [아兒]와 가장 가까운 소리글이 자子인데 <아이가 자라나서> 그럴듯한 어른의 아들로 만들어진다는 매우 현실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문해자說文解字]가 가장 첫 번의 뜻으로 <자란다는 것이다>라고 풀이한 건 탁월한 견해이다.

 

필자筆者는 이런 생각에서 <아직 정수리가 여물지 않은 아>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얼을 이어주는 과정을 거친 다음 그 문이 닫혀 하나의 존재로서 일어서는 자子의 단계를 이야기 해주는 소리글자가 바로 머리가 닫혀있는 [모皃 mò]라고 본다.

 

이 글자가 우리 동방족東方族을 말하는 막莫 mò*맥貊 mò*맥貉 mò 그리고 맥을 이을 맥脈 mò*북방종족 맥貘 mò과 발음發音이 같은 [막]으로도 읽히는 이유가 분명하다. 또한 [막]은 순 우리말 <막혀있다>이다.

 

󰊲 두 번째로 이 소리글과 깊은 친연성親緣性을 가진 말은 [얼]이다. 어른의 씨가 이어져 태어난 첫 생명으로서 그 얼을 이어간다는 뜻이 함축含蓄되어 <얼라>라고 부른 것이다. 순 우리말 가운데 <얼싸안다*칭얼대다*아이를 어르다*얼뚱아기>가 특별하게 아兒와 친숙하게 사용되어지는 이유이다.

 

따라서 순 우리말의 원형은 [아]이며 덧붙인 <~지*~기*~이>는 모두 지칭어指稱語이다(뒤에 변화한 아해가 아+해의 구조를 지닌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아이>는 일반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며 <아지 -뒤에 아저씨라는 변화형을 만든다>는 사내에게

 

<아기 -뒤에 아가로 달라져 아가씨가 되었다)는 계집에게 붙이는 게 관습이었다고 보여 진다. 지금도 방언方言으로 남아있는 <아지매 즉 아줌마>는 아지(아이)를 가진 엄마라는 뜻이다.

 

그런 까닭으로 오늘날 한족漢族들까지 어릴 때의 이름이나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애칭愛稱으로 [아阿]를 붙이는 게 보편적이 된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덧붙여 [아저씨 즉 아-저씨]는 여목余目에 이르러 제곡帝嚳 계열에 눌리면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저-저氏>에서 비롯되어 진 것으로 필자筆者는 보고 있다.

 

 

이부의 신하에 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부와 함께 알유를 죽였다...貳父之臣曰危 危與貳父殺窫窳...<해내서경海內西經>

 

이부시가 태행백의 동쪽에 있다. 貳父之尸在太行伯東 <해내북경海內北經>

 

사람의 얼굴과 짐승의 몸을 한 신이 있는데 이름을 이령시(이부시?)라고 한다. 有神 人面獸神 名曰이령之尸 <대황동경大荒東經>

 

파보산이라는 곳인데 이수(하남성河南省에 있다)가 여기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낙수에 흘러든다. 曰罷父之山 洱水出焉 而西南流注于洛 <서산경西山經>

 

이밖에 [북산경北山經]의 이시산爾尸山과 [해내남경海內南經]의 이이국離耳國과 [대황북경大荒北經]의 담이국儋耳國*[해외북경海外北經]의 섭이국聶耳國 그리고 이유(離維 -한족漢族들은 많은 대목에서 이離로 바꾸어 놓았다)로 표현되었지만 원래는 이유(爾維-이주爾朱)라야 맞는 삼족오三足烏*[대황동경大荒東經]의 해와 달이 돋는 국릉우천산鞠陵于天山과 같이 나오는 離瞀山도 눈여겨 볼 까닭이 있다.

 

 

󰊳 우리말로 [아이-아얼-얼라]를 구성하는 <얼>은 통상적으로 동방족東方族들이 인명人名이나 지명地名 등에서 관용慣用적으로 쓰고 있는(이를 한족漢族들이 듣고 옮겨 적은) [이爾*이耳*이貳 -모두 얼èr]로 표현된다.

 

 

고아산이란 곳에...고아수가 흘러나와 서쪽으로 바다에 흘러든다. 曰姑兒之山...姑兒之水出焉北流注于海 <동산경東山經>

 

동쪽으로 20리를 가면 역아산이란 곳인데 산위에서는 참죽나무나 여목이 많이 자란다. 又東20里 曰歷兒之山 其上多橿多(木+厲)木 <중산경中山經>

 

동쪽으로 150리를 가면 부부산이 있는데...신 우아가 살고 있다. 又東150里 曰夫夫之山...神于兒居之 <중산경中山經>

 

 

고아산姑兒山은 그 북편으로 고시산(高是山 -북산경北山經) 그리고 남방 400리里 지점에 제곡고신帝嚳高辛과 친연성이 있을 듯한 <고씨산高氏山>을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다.

 

역아산歷兒山은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 틀림없는 박산薄山 근처이며 여목(木+厲)木이라는 신목神木도 같이 보인다(경經의 말미末尾에 동방계열을 상징하는 신령神靈과 귀신鬼神들의 거처居處라고 강조한 점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부부산夫夫山은 같은 발음發音인 <부신父辛*부을父乙>처럼 부계父系 상징을 말하는 뜻을 품은 성산聖山이 틀림없는데 바로 근처에 예수灃水 그 서북에 풍백산風伯山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26. 제곡고신帝嚳高辛 무렵 완성된 <나 또는 우리>라는 [아我 ]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형이 삼지창三枝槍을 어깨에 멘 아래에 아우가 지닌 시위를 푼 활에 화살이 메겨진 그림 ]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나 혹은 우리*울인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我 wŏ>

 

아자이我字彛에 나타나는 我(아 -군고록 권 1-1-51)

 

 

[설문해자說文解字]

 

 

󰊱 아는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 그리고 수의 고문古文이라 하는 글자로 구성되었다. 我...施身自謂也 從戈(수) (수)古文(수)也 <설문해자說文解字>

 

 

필자筆者의 의견

 

즉 여러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어 자칭自稱하는 말(施身自謂)이라고 허신許愼은 풀고 있는데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우리 민족이 쓰던 글자를 잘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시施]가 원래 아래로 드리워진 깃발의 모습으로서 그 깃발을 가지고 자기의 정체성正體性을 알리는 행동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 언( 오른편의 ∧이 人의 모양으로 길게 그려졌다) [첨부 73] 은 깃발이 날려 춤추는 모양이다. 철屮이 구부러져 아래로 드리워져 깃발이 펄럭거리는 모습으로 구성되었다. 언과 같이 발음한다. (언)...旌旗之游(언)蹇之兒 從屮曲而(수)下(언)相出入也 讀若偃 <설문해자說文解字>

 

 

필자筆者의 의견

 

철屮은 깃대 모양을 설명한 것으로 우리의 인식으로 <솟대>이다. 여기에 단 족표기族表旗를 펄럭이며 사용하는 것을 언건偃蹇이라 하였으니 바로 서언왕徐偃王과도 친밀성親密性을 가진다(왕일王逸 초사楚辭 구가九歌 『靈偃蹇兮姣服』의 주석註釋*사기史記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에 대인부大人賦를 인용한 「掉指橋以偃蹇兮」의 색은索隱에 인용된 장읍張揖의 언건偃蹇은 높은 모양이다. 란 주해註解 참고).

 

이 족단族團의 행적行蹟으로 진晉의 적언籍偃과 순언荀偃(좌전左傳 성공成公 18년*양공襄公 13년)과 정鄭의 공자언公子偃과 사언駟偃(좌전左傳 양공襄公 26년) 그리고 공자孔子의 제자로 언언言偃이 보인다(논어論語 양화陽貨).

 

※ 주는 직과 류의 반절이다. 職流切(舟 zhōu = 직職 zhí + 流 liύ - 우리말 「테우-데우-제우*젓다의 저어」와 비슷하다)

 

언은 어과 헌의 반절이다. 於𨏥切(偃 yăn = 어於 yū+ 헌𨏥 xiàn- 우리말 「언」과 비슷하다)

 

 

가) 축융(祝融 -성축成祝)이 동생인 구축(目+目)祝 여旅 함께 자신의 터전과 실권實權을 지킨다는 소리글자이다(그래서 삼병명三兵銘에 구축瞿祝이 대부일계大父日癸라는 신분칭身分稱으로 새겨져있다).

구축瞿祝의 이름글자는 둘째라는 뜻에서 형의 이름글자에 보이는 눈 하나 를 바탕삼아 좌우로 두 개를 대칭으로 붙였다(구축부주정瞿祝父珠鼎 -가재집고록 7책 22*쌍목형고 -가재집고록 7책 22).

 

[나 의 변화형]인 <우리>는 [울]로서 한 울타리에서 살고 있는 같은 겨레라는 뜻으로 발전하며 아울러 짐승들을 한 군데로 몰아서 키우는 [우리-울]이나 이를 갈무리하는 [울타리]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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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등장하는 씨氏와 족族의 표表나 칭稱이 아닌 [격*력鬲]이라는 소리글자에 대한 해석이다. 성축成祝의 아우인 구축瞿祝의 다른 이름인데 [역*격鬲 -일력日鬲]으로 풀이되는 부호글자이다(형兄인 성축成祝을 위해 만 청동 술잔인 兄癸卣 -역대종정이기관식 권3-62).

 

족표族表인 <호미 조鉏>의 양 옆에 따옴표 <󰡐 와 󰡑> 같이 도형화圖形化된 눈을 하나씩 붙인 글자이다(구격유瞿鬲卣 군고록 권1-1-31). 그리고 <력>은 아주 역사가 오래 된 세발달린 청동 솥이다(동방민족東方民族의 제의祭儀에서 매우 긴요하게 쓰인 동복銅鍑의 완성형이라고 한다) 또한 완전한 이중발성二重發聲으로 [역 li과 격 gé]이다.

 

이와 관련하여 순 우리말로서 통용通用되고 있는 기물器物의 용도用途와 관련된 <깔개*마개*덮개*가리개*씌우개*얼개*찌르개*베개*지게>의 [개*게]와 담는 그릇과 연관된 [항아리*광주리*소쿠리*또아리*반짓고리] 그리고 내용물을 담는 행위와 연관된 <국거리*먹거리*제사祭祀 거리*김장거리]의 [거리]라는 용어用語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격鬲]은 [담을 거리*차림거리*올림거리 혹은 피울 거리]들을 담는 세 다리를 가진 청동 항아리이다. 이를 줄인 일반적인 명칭으로 <개>라고도 하는 것이다. 즉 순 우리말을 보면 <터는 것인 털이개*지는 물건인 지게*지우는 것인 지우개*막는 것인 마개*베는 물건인 베개*덮는 기물器物인 덮개> 등

 

이처럼 [사용 용도 + 물건이나 기물器物이란 의미소意味素]라는 형태소形態素를 가진 말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격鬲도 [~게*~개]라는 소리 값을 땄을 것이다. 발성發聲이 [개와 리] 이중二重으로 나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자표기漢字表記에 [무엇을 담는 그릇]은 흔히 <이*리*니>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순 우리말 <광주리*항아리*바구니*도가니*가마니*조랭이*양동이>와 깊은 친밀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담은 소리글 형태소形態素로서 [개]가 선택된 것이며 원형原型은 <거리>이다. [개와 리]의 음절音節이 이중발성二重發聲으로 등장한 사실은 이와 무관無關하지 않으리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순 우리말의 원래 소리 값도 <격>이 아닌 [거리에서 변화한 개나 리]이다.

 

사실 뒷날 등장하는 [고구려高句麗의 麗 li*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의 여呂 lŭ*여黎 li*리犁 li]는 모두 이러한 소리글자 형식을 원형原型으로 충실하게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세력이 전욱고양顓頊高陽의 후예後裔라는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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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비인 전욱顓頊을 상징한 족칭族稱인 삼지창三枝槍 깃발 아래 형제인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씨칭氏稱을 가진 걸로 보면 아주 우애友愛가 좋았던 듯하다(응공이鷹公彛에 새겨진 글자 -금문총집 권3-2097). 이와 비슷한 족칭族稱도 같이 쓴 그림글자가 보인다(구유咎卣 -가재집고록 19책 11).

 

구축부주정瞿祝父珠鼎을 보면 <구축瞿祝>이 벼슬로 받은 칭호稱號에서 두 눈 아래에 [돼지]가 그려져 있는데 한족漢族은 이를 제사祭祀를 지내는 일을 맡아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말 관습慣習을 전혀 몰라서 내린 해석이다. 그 무렵 <돼지 저猪 zhū>는 순 우리말 [저]와 서로 넘나드는 소리 값이었다. 아비가 준 벼슬이니 자신을 낮추는 글자로 표현하는 게 지극히 정상적이다.

 

 

다) 아무튼 형제가 합쳐 이룩한 입지立地가 강화될 시점에서 등장한 [나 또는 우리 아我}는 <형님인 성축成祝이 삼지창三枝槍을 어깨에 둘러 맨 그림 아래에서 구축瞿祝이 지닌 시위를 푼 활(끌이 아니다)에 화살을 메긴 모습이다.

 

이 이름이 [손 手 shŏu*드리울 수垂 chui]라고 풀이 된 까닭도 의미가 있는데 소리 값이 우리 말 <시위*찌르개의 옛말인 슴베>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동쪽으로 30리를 가면 아산이라는 곳이다. 예수가 여기에서 나와 동쪽으로 시수에 흘러드는데...又東30里 曰雅山 灃水出焉東流注于視水...<중산경中山經>

 

 

풍灃은 반드시 <예>로 읽고 시視 shì는 시尸 shī와 발음發音이 같으니 이 지역은 동방계열의 활동영역이다. 따라서 이 산山은 [우리들의 산인 아산我山]으로 불렸을 것이다.

 

서편 30리里에 의제산倚帝山과 우리말과 친숙한 저여狙如란 괴수怪獸가 동쪽 55리里에 선산宣山과 시수視水와 신농족단神農族團의 보물인 <누에>와 관련 있는 제녀상(帝女桑 -신농神農의 딸 집안이 관리했다)이 있음도 이를 입증立證해준다.

 

 

동쪽으로 280리를 가면 장아산이란 곳인데...又東280里 曰章莪之山...<서산경西山經>

 

장아산章莪山은 [동산경東山經]에서의 잡여수雜余水나 구여犰狳란 괴수怪獸가 등장하는 여아산餘峩山과 서술敍述 구조가 비슷하다. [대황남경大荒南經]에서 성씨姓氏가 아성阿姓인 불사국不死國과 같이 등장하는 아산阿山도 아마 연관이 있을 것이다.

 

 

27. 제곡고신帝嚳高辛 때 드러나는 <군사적 능력자의 상징>으로서 등장하는 [화華 huά]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삼지창 두개를 가로로 붙여 눕힌 아래에 맹수猛獸를 그린 모양 ]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활과 창 화>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華 huά와 虎 hū>

 

청동 술잔인 속호가(束虎斝 -가재집고록 21책 -12)와 경신각(庚申角 -가재집고록 21책 15)의 그림글자

 

 

[설문해자說文解字]

 

󰊱 화는 꽃이다. 초艸와 화로 구성되었다. (화)...榮也. 從艸(화) <설문해자說文解字>

󰊲 나무에 피는 꽃은 화華이고 풀에 피는 걸 영榮이라 하며 열매가 달린 것을 수秀라하고 꽃은 피지만 열매가 없는 것은 영英이라 한다. <이아爾雅 석초釋草>

 

※ 화는 호와 과의 반절이다. 戶瓜切(화華 huά = 호戶+ 과瓜 guā - 우리말 「화」와 같다)

 

 

가) 처음으로 구축瞿祝이 스스로 정한 씨칭氏稱으로서 이는 자신의 능력과 집안의 정체성正體性을 입증立證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글자이다. 그런데 한족漢族들은 이를 형兄의 이름을 그대로 따른 <가래 화華>의 또 다른 글자로 대수롭지 않게 풀었다.

 

하지만 필자筆者가 설명했듯이 같은 글자를 가지고도 여러 의미를 함축含蓄시키는 정도였던 아주 초기 문자 발현發顯 단계에 이처럼 같은 뜻으로 여러 글자를 만들만큼 문자창조능력이 완숙完熟하였을까?

 

나) 아무튼 형인 성축成祝이 죽자마자 [성님]의 자리를 잇는다는 의미인 <상相>과 동시에 아비인 제곡帝嚳에게 받은 벼슬이름에서도 연이어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맹수猛獸만 등장하는 걸로 보아 군사적인 권한을 인정한 것으로 보여 진다.

 

다) 여기에서 중요한 시사점示唆點은 그가 시종일관 <활>과 관련되어 있으며 속호가束虎斝나 경신각庚申角에도 변함없이 이 부호符號가 장식되었다는 사실이다(한족漢族은 왕王의 변자체變字體로 보았으나 당시 그는 왕王이 아니다. 그러므로 필자筆者는 화살을 쟁인 활이나 솟대를 위 아래로 두개 겹친 것으로 본다).

 

속호束虎와 관련된 부호글자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칭稱과 표表를 나타내는 부호符號가 본격적으로 상징성과 간략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솟대를 말하는 삼지창三枝槍이 매우 도형화圖形化되어 중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머리를 장식하거나 꼬리 위에 있는 것은 특별하게 단순화되거나 생략된 형태이다. 특히 말기末期의 기호글자는 매우 격렬하고 날카로운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맹수猛獸의 머리 부분이 단순화*추상화되면서 턱 부분에 상징적으로 축약縮約된 부호符號로 등장한다(한족漢族이 물 수水로 본

 

). [첨부 29]

 

 

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런 그림들이 형님이 살아 있을 무렵엔 꼬리 부분에 있었으나 그 뒤로는 머리 쪽으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당시 실력자인 아비가 내려주었다. 또한 한족漢族이 해석한 범 호虎 는 활 호弧 hύ와 발성發聲이 거의 같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인인호라고 하는 신이 있다. 남방을 인호라 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호민이라 한다. 有神名曰因因乎 南方曰因乎 風曰乎民 <대황남경大荒南經>

 

북쪽으로 180리를 가면 호산이 있고...단수가 여기에서 나와 동쪽으로 황하에 흘러든다. 又北180里 曰號山...端水出焉而東流注于河 <서산경西山經>

 

 

호乎 hū와 호號 hào는 호虎 hū*華 hùa와 발음發音이 같다. 호산號山은 특히 파보산罷父山*이수洱水*신산申山*상신산上申山*조산鳥山*구수區水와 같은 동일 계열 어군語群이 몰려있는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우산盂山은 오회吳回의 다른 이름인 우盂와 친연성이 돋보인다.

 

똑같이 [중차이경中次二經]의 호산豪山 háo도 주변에 동방민족의 지표지명指標地名인 발시산發視山*선산鮮山*이수伊水*선수鮮水와 함께 자리 잡고 있는데 같은 계통인 곤오산昆吾山이 등장하는 사실은 유난히 이채롭다.

 

그리고 사람 얼굴에 호랑이 몸을 한 마복馬腹이 살고 있다. 복腹 fù은 호虎 hū와 발음發音이 같다. 이와 관련하여 [중차십경中次十經]과 [중차십일경中次十一經]은 서쪽에서 동편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호수산虎首山과 호미산虎尾山>이 등장한다.

 

 

호인국이 있다. 영개라는 염제의 손자가 있어 그가 저인을 낳았다. 有互人之國 炎帝之孫名曰靈恝 靈恝生互人 <대황서경大荒西經>

 

 

염제炎帝의 계통임을 밝혀주는데 부근에 뿌리가 같은 전욱顓頊 계열인 오회吳回와 삼면일비국三面一臂國과 어부魚婦가 나란히 등장한다. [남산경南山經]의 호작산虖勺山도 마찬가지로 오회吳回를 떠올리게 하는 녹오산鹿吳山*칠오산漆吳山과 함께 있다.

 

호互 hù와 <맹수가 울부짖을*사람 이름> 호虖 hū나 호虎 hū는 발음發音이 같다. 또한 이들이 힘을 잃고 북상北上하는 과정에서 남긴 [북산경北山經]의 호타虖池*虖沱란 지명도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화산과 청수의 동쪽에 조산이 있고 백고라는 사람이 여기로부터 오르내려 하늘까지 올라간다. 華山靑水之東 有山名曰肇山 有人名曰柏高 柏高上下于此至于天 <해내경海內經>

 

 

[서산경西山經]은 화산華山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백익(伯益 -백이伯夷)은 전욱顓頊의 넷째 아들 여목余目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구축瞿祝은 삼촌인 셈이다.

 

화산華山과 청수靑水를 바라보는 조산肇山의 어르신이라는 백고柏高가 백익伯益 계열임이 분명할진대(백柏 băi은 백伯 băi과 발음發音이 같다) 결국 신령神靈과 귀신鬼神들의 거처居處로 돼지를 제사祭祀하는 화산華山은 구축瞿祝의 [화華와 상징인 돼지 해亥]를 따른 이들 집안의 성산聖山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전욱顓頊 계열의 지표지명指標地名이 몰려있는 [중차이경中次二經]의 중심으로 황하黃河의 구도九都이며 선신善神 태봉泰逢이 산다는 산山도 <화산和山>이며 주신主神인 성축(成祝 -축융祝融)의 형산衡山을 비롯하여

 

집안들의 입김이 곳곳에 배어있는 [중차십일경中次十一經]에서 천제天帝의 거처居處로 돼지를 희생물犧牲物로 바치는 산山도 화산禾山이다. 화和 huó*hé와 화禾 hé는 화華 huá와 발음發音이 같거나 비슷하다.

 

이곳의 신神들이 모두 돼지의 몸이라는 사실과 귀신鬼神들이 거주하는 도산堵山이 우리의 소도蘇塗와 끈이 닿는 사실도 매우 주목을 요한다. 도堵 dū와 도塗 tú는 발음發音이 같다.

 

특히 호虎 hū나 화華 huá로도 발음發音이 통하는 호*확수濩水 huò가 태화산太華山*소화산小華山 등 화산華山 줄기와 이어지는 부근에 있으며 확확수濩濩水가 호타수(虖沱水 -호의 터를 흐르는 물)와 연결되는 점도 주목을 요한다. 즉 호*확濩과 호虎와 호虖와 화華는 모두 같은 소리 값에서 나온 다른 글자이다.

 

 

28. 제곡고신帝嚳高辛 당시 실력자였던 <중여衆艅 곤鯀의 뿌리를 상징>한 [곤鯀 gŭn과 곤鯤 kūn]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족族을 이어간다는 실타래를 ㄱ 자 모양으로 하여 끝에 족표族表인 손 수手 [첨부 20의 기호記號 참고]를 붙인 안쪽에 뒤 날에 물고기로 변형된 초기 형태의 두 눈이 흰 말을 형상화한 그림 ] [첨부 30]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사람 이름 곤>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곤 gŭn>

 

금문편金文篇 756

 

 

[설문해자說文解字]

 

 

󰊱 |은 아래에서 위로 통하는 것이다. 위로 끌어당겨 쓰는 경우에는 신囟으로 발음하고 아래로 끌어당겨 쓰는 경우에는 퇴로 발음한다. |...下上通也 引而上行讀若囟 引而下行讀若退 <설문해자說文解字>

 

󰊲 곤昆은 일부日部에서 <모두 같다>로 <하소정夏小正>의 전傳에서 [곤昆이란 많다(중衆)]으로 해석하였다.

 

 

필자筆者의 의견

 

위 설명으로 볼 때 [곤]은 분명히 그 뿌리가 신농계神農系인 [|] 에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그가 같은 무리들을 모아 한겨레를 만들어 이끌었음을 보여준다. 일족一族을 거느렸던 중부일계(中父日癸 -작은아비)로 인정되는 가운데 이름에 중여衆艅 곤鯀이 들어간 까닭이 확실해지는 부분이다.

 

 

|은 지금의 발음(發音 -한韓 시대)으로 사思 sī와 이二 ér의 반절인데 신囟 xin과 쌍성雙聲이며 다른 발음은 고古 gŭ와 본本 běn의 반절이다. 今音思二切 囟之雙聲也 又音古本切(우리말 「신*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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