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8. 12. 14:54

 

 

가) 곤鯀은 [삼명명三兵銘]에 <중부일계中父日癸>로 새겨졌다. 전욱顓頊의 두 아들(성축成祝과 구축瞿祝)이 일찍 죽자 셋째로서 집안을 이끌어 <작은 아비>라고 불렸음을 알게 해준다(일日은 「불알인 해」로서 그리고 고양高陽 무렵에 등장한 계癸는 「개」로서 칭稱의 씨표氏表인데 둘 다 「해」를 상징하고 있다).

 

나) 딸인 간적簡狄이 고신高辛의 작은 부인*누이인 종규終葵도 큰 부인*간적簡狄이 낳은 아들들이 후대後代에 모두 한 몫을 한 지摯*직稷*우(禹-사위 아들이다)였으니 족단族團의 위세威勢를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다) 그가 사실은 신농神農의 아들 희(熙 xī -해 혹은 신神을 상징한다)가 소호小皥의 딸인 계(系 xi)을 맞아 낳은 인물인 계(鷄 jī*雞 jī)이었으니 이 족표族表가 [해奚 xī -새는 해와 통한다. 때문에 계系도 해奚로 읽었다]로 변한 걸로 보면(그 무렵엔 그래서 계雞와 해奚가 같은 음音이었다) 이해가 된다.

 

그래서 해奚 옆에 새 조鳥나 새 날개 추隹를 붙여 <닭 계鷄*雞>로 만들었는데 닭이 새벽 해가 뜨는 걸 가장 먼저 알려주므로 그렇게 만든 우리 민족의 기가 막힌 아이디어이다.

 

라) [곤鯀]은 이런 혈통血統을 잇는다(계系 즉 소리글자의 실타래를 손으로 잡고 있는 그림에서 나타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인데 원래는 <양쪽 눈이 흰 말 어魚 변邊>을 써서 동방민족임을 나타내었다.

 

중토中土 동남부에서 확실하게 위엄을 떨치는 가운데 <북방北方의 큰 새가 남쪽으로 내려가 커다란 물고기가 되었다>라는 설화說話로 변화되었지만 지금도 순 우리말에

 

 

큰 물고기의 수컷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고니-곤鯤]

뽐내는 걸 [곤댓질하다].

머리 위로 솟다 를 [곤두서다].

곤鯀이 요堯 때에 권력의 정점頂點에서 무너진 사실을 빗대어 머리를 아래로 하여 거꾸로 넘어지는 걸 [곤두박질치다].

 

 

라고 하여 선조先祖의 위대했던 기억을 파편처럼 간직하고 있다. 후에 <환한*밝은>이란 뜻을 함축含蓄하고 있는 [환鰥]으로도 읽혀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마) 동방민족의 상징 부호글자인 [선鮮 xiān]도 이 무렵에 완성되는데 그가 신농神農과 소호小皥 그리고 전욱顓頊을 포용包容한 <중부일계中父日癸>로 인정되면서 곤鯀의 오른쪽 변邊인 계系를 우양계牛羊系의 족표族表인 양羊으로 바꾸어 사용했기 때문이다(군고록 권1-2-130).

 

곤鯀의 후예後裔로 이루어진 족단族團들이 기둥이 되어 세운 걸로 짐작되는 노魯 [글자 형태가 변한 밑에 해를 상징한 ] [첨부 30-1]가 원래는 [어魚 밑에 양羊]을 붙인 기호글자(양羊이 신농神農의 씨칭氏稱을 따라 상고금문上古金文에서 해 일日로 통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였음이 이를 입증立證한다(군고록 권2-2-66).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필자筆者가 앞부분에서 [곤鯀의 물고기 어魚 변邊을 양쪽 눈이 흰 말 변邊]으로 풀어낸 이유가 있다. [해내경海內經]에서 돌출突出한 문장文章처럼 <황제가 낙명을 낳고 낙명이 흰 말을 낳았는데 흰 말이 곧 곤이다. 黃帝生駱明 駱明生白馬 白馬是爲鯀>라는 외마디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왜 <어魚>라는 글자가 마치 남의 집에 더부살이하는 것처럼 <양쪽 눈이 흰 말>이라는 풀이를 덧붙이고 있는지? 명쾌해진다. [곤鯀] 이라는 이름을 만들 때 그러한 내용을 담은 부호符號를 자연스럽게 붙였기 때문이다.

 

[해내경海內經]은 다른 모든 산경山徑과 해경海經에 등장하는 기록들의 근원을 밝혀주며 계통系統의 흐름을 이해하게 해주는 종합적인 설명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글을 읽어가면서 많은 걸 놓치고 헤매게 된다. 따라서 풀지 못할 의문점이 있으면 가장 먼저 [해내경海內經]을 보아야 할 것이다.

 

 

기굉국이 북쪽에 있다. 그 사람들은 팔이 하나에 눈이 셋이며 암수 하나에 무늬 있는 말을 탄다. 奇肱之國在其北 其人一臂三目 有陰有陽昇文馬 <해외서경海外西經>

 

 

매우 중요한 문구文句이다. 바로 중여衆艅 곤鯀의 고을 나라 가운데 하나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단서로서 [중衆]을 나타내는 상고금문上古金文이 눈 세 개인 <삼목三目>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의 아들인 삼산三山 중衆을 말하는 삼신국三身國이 남쪽에 있으며 큰 형님인 성축成祝을 의미하는 일비국(一臂國 -그 사람들은 눈과 팔과 콧구멍이 하나이다)도 나란히 있고 조금 더 북방에는 여목余目의 고을인 병봉(幷封 -생김새가 돼지이며 앞뒤에 다 머리가 있다)이 있다는 점이 이를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들 나라만의 공통점으로 한결같이 팔이 하나라고 표현한 점(일비국一臂國*일비삼면국一臂三面國 등)은 앞으로 더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아마도 요堯와의 갈등에서 권력을 상실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두 번째로 이들 세력이 동방계인 것을 알려주는 설명이 보인다. 일비국一臂國과 기굉국奇肱國에서 모두 말을 탄다고 써있는데(호랑이 무늬인 황마黃馬와 문마文馬) [해내북경海內北經] 견봉국(犬封國 -견융국犬戎國에서 난다는 <무늬 있는 말인 길량吉量> [1] 이란 말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1] 길량吉量은 문헌文獻에 따라 길황吉黃*길황吉皇*등황騰黃*계사지승雞斯之乘*길광吉光이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주목할 이름은 길광吉光이다. [해내경海內經]에서 제준帝俊의 묘예苗裔로서 수레를 만들었다는 <길광吉光>이 보이기 때문이다.

 

 

곤륜의 남쪽 못은 깊이가 300길이다. 개명수는 크기가 호랑이 비슷하고 9개의 머리를 가졌는데 모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昆侖南淵深300仞 開明獸身大類虎而九首 皆人面 <해내서경海內西經>

 

 

이 기록은 앞서의 <낙명駱明>이란 대목과 연결시켜야 풀어진다. [가리온 말*종족 이름 락駱]은 바로 기마민족騎馬民族으로서 우리 동방족을 상징하는 말이다. 낙명駱明과 개명開明이 맏형*다음 자손이라는 후예後裔 곤(昆 -곤鯀)을 중심으로 얽혀있으며 곤鯀과 곤昆은 발음發音이 같다.

 

그러므로 곤륜(昆侖 -여기의 곤륜昆侖은 결코 해외海外가 아닌 해내海內의 곤륜昆侖이다)에는 말과 이어지는 신神들이 거처居處한다(말 몸을 한 신神 영초英招*소의 머리에 말 꼬리를 한 천신天神). 혹은 곤륜지허昆侖之墟에 뭇 신神들이 몰려있다고 한다.

 

이들 세력의 또 다른 원래 중심지는 전욱顓頊으로부터 비롯된 [해외남경海外南經]에서 등장한다. 백수산白水山과 백수白水와 백연白淵을 바탕으로 삼은 백복伯服이 어른으로 있었는데 곤오昆吾의 군대가 그 못에서 목욕을 했다 하니 [해내경海內經]의 낙명駱明이 낳은 백마(白馬 -곤鯀)와 친연성이 있다.

 

권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북쪽으로 밀리는 상황은 [중차이경中次二經]에서 말해주는데 곤오산昆吾山의 괴수怪獸인 농지蠪蚳를 <생김새가 돼지 같은데 뿔이 있으며 소리는 통곡하는듯하다. 曰昆吾之山...有獸焉 其狀如彘而有角 其音如號 名曰蠪蚳>라고 의미 있는 단서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제곡帝嚳 이후 세력을 잃고 이동하여 마지막으로 정착한 지역도 찾아 낼 수 있는데 [대황서경大荒西經]의 <세 개의 못 즉 삼뇨三淖 大荒之中 有龍山 日月所入 有三澤水名曰三淖 昆吾之所食也>이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삼묘三苗로 연결된다. 이를 [해내경海內經]의 중토지역 안에 있는 9 군데의 중요한 관리영역(구구九丘)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특별히 곤오구昆吾丘라 일컬어 포함시키고 있다.

 

 

전욱이 노동을 낳고 그가 중과 여를 낳았는데 천제가 중에게 명해 하늘을 들어올리게 하고 여에게 명하여 땅을 억누르게 했다. 顓頊生老童 老童生重及黎 帝令重獻上天 令黎邛下地 <대황서경大荒西經>

 

 

[중衆 zhòng-중重 zhòng]과 관련하여 중요한 부분이다. 여黎는 바로 아비인 전욱顓頊의 명命으로 남방으로 내려가 묘민苗民을 관리한 성축成祝 계열인데 아우였던 중여衆艅 곤鯀이 곁에 남아 동방제국의 뜻을 받들어 내정內政에 힘쓰면서 뒷날 한 때 막강한 권력을 이룩한 사건史件을 함축含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산경西山經]에 곤鯀과 형님의 연결 통로를 보여주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중곡산에 생김새가 외 뿔에 몸이 희고 꼬리가 검은 말 같은 박 曰中谷之山...有獸焉 其狀如馬而白身黑尾 一角...其名曰駮>의 존재이다.

 

이는 낙명(駱明 -낙駱은 검은 갈기의 흰 말이다)과 백마白馬인 곤鯀을 연상케 하며 중中 zhòng은 중衆*중重과 발음發音이 같다. 동편으로 이어지는 연결망은 [동차삼경東次三經]의 시호산尸戶山과 상산(歹+羊)山-기산岐山을 거쳐 <중보산中父山>에서 완성되는데 삼병명三兵銘의 명문銘文에서 중여衆艅 곤鯀이 바로 [중부일계中父日癸]이기 때문이다.

 

 

29. 제곡고신帝嚳高辛 때 드러나는 <집안의 제사祭祀를 맡은 어른이라는 상징>으로서 등장하는 [산山 shān*묘廟 miὰo]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즉 ▲ 세 개가 가로로 나란히 붙어있는 부호符號 ]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산 즉 뫼 산>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으로서 <山 shān*廟 miὰo>

 

산부주고(山父珠觚 -군고록 권 1-2-81)와 중여준(衆艅尊 -가재집고록 13책 10)에 새겨진 글자

 

 

[설문해자說文解字]

 

 

󰊱 산은 널리 편다는 뜻이다. 기운을 널리 펴서 만물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山...宣也 謂能宣(산)氣生萬物也 <설문해자說文解字>

 

󰊲 山山(△△)은 두 개의 산이다...(해석은) 비워둔다. 山山...二山也...闕 <설문해자說文解字>

 

 

필자筆者의 의견

 

이 글자는 특히 중요하다. 기본 바탕이 [모이-뫼]인 <山 △ 또는 ▲>이며 이 부호符號는 가장 기본적인 [솟대 -동방계東方系의 일원一圓이라는 인식]와 함께 그 주체主體임을 명시明示하는 수단으로서 쓰였다.

 

특히 중토中土 방계傍系 세력의 중심이라는 신농계열神農系列의 기반을 이어받아 굳건하게 가다듬은 소호小皥와 전욱顓頊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칭稱과 표表로서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산山]의 의미를 특별히 <기운을 널리 펼치다>라 하였으며 [이산二山]을 설명하면서 <~와 같이 발음發音한다> 라고 할 수 없어서 해석을 비워둔다는 이야기이니 우리 민족의 글자 용례用例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초기 한자漢字의 발현發顯이 동방민족東方民族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입증立證하는 대목이다.

 

산은 소와 한의 반절이다. 所閒切(산山 shān = 소所 suŏ + 한閒 xián -우리말 「산」과 같다)

 

 

가) 셋째로서 집안을 이끈다는 의미로 원래는 솟대 깃발 아래 다소곳이 서 있는 세 사람을 그려서 썼으나 조상祖上을 처음 모시는 제례祭禮를 만든 희화羲和의 씨칭(氏稱 -여기에서 원래는 사당祠堂이라는 『△ 즉 집集 ji이나 가家 jiā*jiė』라는 우리말 기호글자가 만들어졌다)을 바탕으로 △을 세 개 그려 삼대(三代 -할아버지 희화羲和와 아비인 전욱顓頊 그리고 자신) 째라는 삼 ∴ 으로서 형상화되는 가운데 [산山 shān]이 생겨난 것이다.

 

나) 즉 곤鯀의 씨칭氏稱이 된 <산山>과 같은 기호記號로서 [ ∴ ]라고 쓴 것도 나타나는 걸로 보아 여기에서 3대(代 -희화羲和의 △ ➡ 전욱顓頊의 위에 작은 △+아래의 큰 △ ➡ 곤鯀의 △△△ )를 함께 모신다는 [삼 sān]이 나온 듯하다. 아무튼 역사 이래 <중여衆艅 곤鯀>에 이르러 제대로 된 제사祭祀를 올린 기록이 중여준衆艅尊에 처음 보인다는 사실로 보아서도 매우 중요한 기호글자이다.

 

중衆은 [밑에 ] 인데 한족漢族들이 내력도 모르고 어설프게 해석한 신臣이 아니라 을 90° 왼쪽으로 돌려세운 것이다. 이들의 씨칭氏稱인 눈 세 개라는 의미로서 셋째라는 말이 설득력을 더 갖기 때문이다. [첨부 30-2] 바로 <모이다>는 뜻에서 <모일*무리 중衆>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 산山은 사람이 죽으면 모시는 순 우리말 <조상을 뫼시는 모이-뫼>에서 기원起源하였는데 지금도 <뫼 산>이라 한다. 그래서 [묘墓 mù*묘廟 miào]도 모두 <뫼>의 소리 값을 바탕으로 한다.

 

라) 중여衆艅의 [여余 yὺ]는 특히 주목을 요한다. 앞으로 등장할 [부여계夫餘系 ➡ 고구려계高句麗系*백제계百濟系*신라계新羅系]의 모든 뿌리를 간직하고 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왼쪽 변邊인 주舟는 제사祭祀 상床에 술잔을 올린다는 <잔 올릴 수酬 chòu와 받을 수受 shòu>와 통하는 우리말 [술 -수루*수라로서 밥 한 술이나 숟가락도 여기에서 확장된 말이다]에서 나왔음을 이미 말했다.

 

또한 오른편의 [여余]가 제사 집을 말하는 <△>를 떠받들고 있는 <솟대인 | 의 가운데가 불룩한 기호>를 붙인 모양이다. 이 글자의 소리 값이 < 십>이며 『열』에서 인신引伸된 <여余>가 [사당祠堂의 문을 여는 자격을 지닌 사람인 나 자신]이란 의미를 가졌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여닫다*~을 여는> 은 <열다>로도 서로 통한다.

 

마)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곤鯀은 요堯가 실권實權을 잡으면서부터 씨칭氏稱이 변하기 시작한다.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감監 jiān]이란 기호글자로서 스스로를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나타난 중요한 글자는 [자신을 일컫는 짐朕 zhèn과 어린 제주祭主를 말하는 유주幼柱]이다. 여기에서 [짐朕]은 그대로 순 우리말인 <전 -저는>[술잔을 올리는 자격을 말하는 잔을 그린

 

오른편에 두 손으로 <조상신祖上神 신농神農의 솟대인 |>를 받든 모양 ] [첨부 31]이며

 

어린 손자孫子로서 집안의 제의祭儀에 참가하는 자격을 가진 유주幼柱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사점示唆點은 두 글자 모두의 핵심 부분에 손으로 [|]를 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주幼柱>는 가장 아래에 족표族表인 발바닥을 붙인 [머리에 ●를 붙인 인人]이 권장拳杖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엉덩이 부근에 그를 받친 <손 수手>가 그려진 것은 바로 할아비의 무릎에 앉아 제의祭儀에 참여한다는 은유隱喩에 다름이 아니다(가재집고록 13책 5).

 

 

이 소리글은 집안의 전형적인 씨표氏表인 눈(目 - )의 눈알을 손으로 찌르거나 눈물을 흘리는 그림이다. [첨부 31-1] (가재집고록 7책 7과 3책 12).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의미로서 요즈음에도 [위 사람을 몰라보고 눈이 멀었다*눈이 삐었다]는 표현이 보인다. 소리 값은 순 우리말 [저는 이라는 전...]과 같다.

 

바) 매우 특별한 소리글자가 나타난다. 위엄을 잃고 몰락沒落하던 곤鯀의 말기末期에 요堯가 권력을 장악하고 베푼 잔치에 참석하면서 요堯가 내려 준 돈으로 만들어 바친 제기祭器인 병오정(丙午鼎 -가재집고록 5책 14-1)에 등장한 씨칭氏稱이다. [요堯를 천군天君으로 높인 글자 아래 납작 엎드린 모양]인데 한족漢族은 이를 개구리 와蛙*맹꽁이 와䵷로 풀었다.

 

바로 여기에서 움직일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개구리로 보면 그들은 스스로 자충수自充手를 둔 꼴이 되고 만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이해할 길이 없이 등장한 기사記史인 <부여夫餘의 왕王 해부루解夫婁가 곤연鯤淵에 이르자 갑자기 말이 눈물을 흘린 다음 그곳에서 금와金蛙를 아들로 얻었다>는 기록이다.

 

눈여길 점은 곤연鯤淵과 곤鯀 그리고 그의 이름과 관련된 말과의 연관성이다. 틀림없이 해부루解夫婁의 말은 [두 눈이 흰 말]이었을 것이다.

 

 

곤鯀의 후손後孫이 개구리로 표현되었으니 그 후예後裔가 바로 같은 혈통血統인 부여夫餘에서 받아들인 [금와金蛙 -쇠 금金으로 새 즉 해이니 개구리 어른의 후손後孫이란 뜻이다] 세력으로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이쯤에서 필자筆者는 이를 곤鯀의 상징이었던 [돼지]로 해석한다. 그래야만 뒤에 언급할 곤씨족단鯀氏族團의 셋째 아우인 [여목余目]의 씨칭氏稱으로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나중에 부여夫餘의 축관畜官 가운데 하나로 나타나는 <돼지 저가豬加>이며 부여夫餘의 맥脈을 이은 고구려高句麗에서 가장 신성하게 취급한 제삿감으로서의 <돼지>와 이어진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기록 참고]

 

서북해의 밖 유사의 동쪽에 중편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전욱의 자손으로 기장을 먹고 산다. 西北海外 流沙之東 有國曰中(車+扁) 顓頊之子 食黍 <대황북경大荒北經>

 

 

중여衆艅 곤鯀의 집안은 구축瞿祝으로 이어진다. 즉 구축瞿祝은 제곡帝嚳으로부터 속호束虎란 이름 칭을 받았는데 스스로는 중여重黎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뜻하겠는가? 묘예苗裔인 곤鯀은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름 칭稱을 씨칭氏稱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중中 zhōng은 중重 zhòng*중衆 zhōng과 발음發音이 같다.

 

 

대황의 한 가운데 부정산이 있다...몸둥이가 셋인 사람이 있다. 제준의 아내인 아황이 삼신국을 낳았으며 성이 요씨이다. 大荒之中有不庭之山 有人三身 帝俊妻娥皇生此三身之國姚姓 <대황남경大荒南經>

 

 

[삼신三神]을 흔히 우리 고유의 사유로 해석하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조금 더 생각을 넓혀 현실적인 고을나라의 이름으로 여기고 싶다. 구태여 <삼신三身>으로 기술記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할 상고금문上古金文이 보인다.

 

신농神農의 둘째 아들 희熙의 손자孫子이며 전욱顓頊의 양자養子로서 실질적으로 집안을 이끌면서 한 때는 막강한 권세權勢를 누렸던 중여衆艅 곤鯀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삼산(三山 -중衆)의 이름 칭稱이다.

 

맨 위의 ▲ 은 중여衆艅의 족칭族稱으로 그 아래 세 사람이 다소곳하게 서 있는 그림글자(三身)인데 모두 제준계열帝俊系列로 범칭凡稱된다. 하지만 족단族團으로 보면 [부父] 를 상징象徵으로 삼는 신농계神農系로서 부알父珠*부●인 전욱顓頊의 성산聖山인 [부정산父庭山] 으로 보아야 한다.

 

 

옥법산이 있다...어떤 짐승은 개 같은데 사람의 얼굴을 하고...이름을 산휘라고 하는데 다니는 것이 바람과 같고 나타나면 천하에 큰 바람이 분다. 曰獄法之山...有獸焉 其狀如犬而人面...名曰山(犭+軍) 其行如風見則天下大風 <북산경北山經>

 

경산이 있다...어떤새는 생김새가 뱀같은데 4개의 날개와 6개의 눈 세 개의 발을 가지고 있다. 이름을 산여라 하며 나타나면 그 고을에 두려운 일이 생긴다. 曰景山...有鳥焉 其狀如蛇 而4翼6目3足名曰酸與...見則其邑有恐 <북차삼경北次三經>

 

 

삼산三山의 요소를 지닌 <산휘>는 북악산北嶽山의 신농神農-전욱顓頊-제곡帝嚳의 상징을 포함하고 있는 사람의 눈과 돼지 귀를 지니고 뿔 넷 달린 소인 제회諸懷 그리고

 

전욱顓頊의 아들인 거호巨互의 손자이며 순舜의 아들인 반潘을 의미하는 반후산潘侯山과 친밀하며 <산여酸與>는 동방족의 성산聖山인 발환산發丸山과 이어지는 여계(余系 -여餘*여艅 yú) 어군語群이다.

 

 

복상수 위에 머리 셋 달린 사람이 있어서 낭간수를 몰래 지키고 있다. 服常樹其上有三頭人 伺琅玕樹 <해내서경海內西經>

 

일비민이 있다...대황산의 어떤 사람은 얼굴이 셋인데 전욱의 아들로 세 얼굴에 외팔이다. 有一臂民...有山名曰大荒之山...有人焉三面 是顓頊之子 三面一臂...<대황서경大荒西經>

 

삼묘국이 적수의 동쪽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서로 붙어다닌다. 혹은 삼모국이라 한다. 三苗國在赤水東 其爲人相隨 一曰三毛國 <해외남경海外南經>

 

삼수국이 그 동쪽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한 몸에 머리가 셋이다. 三首國在其東 其爲人一身三首 <해외남경海外南經>

 

삼신국이 있다...그 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하나에 몸이 셋이다** 三身國...一首而三身**대황의 한 가운데 부정산이 있다...몸둥이가 셋인 사람이 있다. 제준의 아내인 아황이 낳았는데 성이 요씨이다. 大荒之中 有不庭之山...有人三身 帝俊妻娥皇生此三身之國姚姓 <해외서경海外西經**대황남경大荒南經>

 

 

[산해경山海經]의 기술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 위의 기록이다. 아울러 동방족의 상고上古 역사에 있어서 대비될 수 있는 이름은 곤鯀의 아들인 <삼산三山>과 우禹가 제곡帝嚳을 위해 만든 글자였다는 <귀鬼> 밖에 없다.

 

[삼산三山]은 중衆이라고도 풀이하는데 ▲ 밑에 한 팔만 그린 세 사람이 나란히 붙어 다소곳이 서 있는 모습이고 [귀鬼]는 머리와 귀를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여 마치 세 개의 머리가 붙은 것처럼 형상화形象化되었다.

 

따라서 위 기록을 보다 분명하게 해석하려면 부근에 있거나 함께 등장하는 지표지명指標地名을 반드시 참고해야만 한다.

 

 

의 경우 복상수服常樹는 중국학자 <오임신吳任臣>이 곤륜산昆侖山 동쪽의 사당沙棠일 것 같다는 애매한 해석밖에 못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습속習俗으로 보면 틀림없이 건목建木*부상수扶桑樹*신목神木*웅상雄常 등으로 표현되는 솟대의 원형목原形木인 당수(棠樹 -마을이나 소도蘇塗를 지키는 성수聖樹)이다.

 

낭간수琅玕樹는 구슬과 옥이 열리는 나무라 했으니 전욱顓頊의 부계열父系列 칭호稱號인 부주(父珠 -부●)을 상징한 것이다. 이들 세력을 압도壓倒하려고 한 제곡帝嚳을 삼두인三頭人이 애써 지킬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는 [삼산三山]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근처에 곤鯀과 친밀성을 가진 개명수開明獸가 있는 걸로 보아서도 설득력이 있다.

 

② 는 [대황서경大荒西經]에서 같은 부분에 연이어 기록되었다. 또한 전욱顓頊의 아들(자손이라야 맞다)이라 하였으니 삼산三山의 고을이 확실하다.

 

③ 은 결정적이다. 곽박郭璞은 요堯에 반항했던 유묘씨有苗氏가 남해南海에 내려가 세운 나라이며 원가袁珂는 유묘有苗의 나라 백성들이 줄을 지어 멀리 남해南海로 옮겨가는 모습이라고 했는데 매우 어색하다.

 

삼산三山의 부호글자를 보면 왜 서로 붙어 있다고 했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바로 위 구절에서 잎이 모두 구슬이라는 <삼주수三珠樹 -전욱顓頊의 상징인 구슬● 주珠>를 언급하여(三珠樹在厭火北) 전욱顓頊 계열임을 은유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는 적수赤水 동쪽에 있는 삼산三山의 마을이다.

 

④ 에서는 [산해경山海經] 저자著者의 절묘한 기술記述 방식과 정확한 이해능력의 진수眞髓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마도 그는 틀림없이 삼산三山의 씨칭氏稱을 보았을 터이고 그것이 표현하려는 내용을 충분히 알아차렸으며

 

그 기호글자를 족표族表나 상징부호象徵符號로 쓰고 있던 마을의 성격을 파악했을 것이다. 즉 삼산三山은 세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을 말하는 기호(記號 -중여衆艅 곤鯀의 세 번째 아들)라는 사실을 표기한 것이다.

 

⑤ 마지막으로 못을 박은 구절句節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준帝俊이라고 잘못 표현한 순舜의 부인이 아황娥皇이며 아황娥皇의 아들인 삼신三身으로 설명되어졌으나 곤鯀의 자식인 삼산三山으로 보아야 전후前後 맥락脈絡이 완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순舜의 아비인 거호巨互와 곤鯀은 모두 전욱顓頊의 자식으로 형제이다.

 

 

30. 요堯 시대에 중여衆艅 곤鯀의 직계直系 아들이 받은 이름인 [제祭 ji]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아래에서 사람

 

이 두 손으로

 

를 받쳐 든 모습] [첨부 32]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제사 제>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祭 ji>

 

울창주鬱鬯酒를 담는 술통에 새겨진 부호글자(가재집록 18책 16)

 

가) 지금의 한자漢字와는 매우 다른데 모두 3개의 부호符號로 만들어졌다. 맨 위 부분은 <도마 조俎 zŭ>라고 풀이하나 순 우리말인 [기댈 거리 궤几 ji]가 맞다(주례周禮도 그렇게 해석하였다). 지금도 <기대는 기물器物을 고이다*괴다>라고 말하며 원래는 <지대다 -기대다>이었다.

 

그리고 [제사 지내다]를 <지사 지내다>라고 이야기한다. [제祭]의 순 우리말이 밝혀진다. 그리고 주목할 사실은 머리에 얹은 상징부호象徵符號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제곡帝嚳 시기에 모계사회母系社會 전통의 영향으로 늘 머리에 얹었던 중계(仲癸 -종규終葵) 집안의 족표族表인 [계癸 -

 

또는 亞 혹은 ] [첨부 32-1] 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즉 권력의 정상에 서 있을 때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생각으로 아들에게 물려준 이름엔 머리에 조상祖上을 섬기는 부호符號로 바꾸어 장식하고 있다.

 

한족漢族이 <도마 조俎 -조俎는 좌우左右의 안석(궤几)이다. 주례周禮>로 해석한 기호記號인데 그 형상을 보면 원래는 차且나 궤几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리글자의 원형은 [ 또는

 

에서 아래의 ━ 을 뺀 글자] [첨부 33] 인데 다시 말해 <제물祭物을 올려놓는 기물器物인 도마 조俎>로 읽건 다른 글자로 보건 간에

 

이 상징이 등장한 의미는 족원族源과 자신들의 조상祖上에 관한 근본바탕을 인식하고 섬긴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글자를 나중에 <북녘 북北> [ ] [첨부 33-1]으로 풀이 한 것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조는 천신薦新하는 것이다. 궤를 좇으며 옆으로 발이 두 개 있는데 그 아래를 땅이라 하고 로 썼다. 조를 그렇게 쓰면서 또 이를 궤라고 했다...禮俎也 從半肉在且上 讀且 <설문해자說文解字>

 

 

나) 특히 중요한 대목은 기록에 <옛날에 제사祭祀를 지낼 때는 아들이 아닌 손자孫子가 모셨는데 이를 시동신상尸童神像이라 한다>라고 기술記述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글자 형태는

 

<궤几 아래에 큰 사람이 아기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양 -죽은 할아버지의 신주神主로 손자孫子를 앉히고 제주祭主인 아비가 제사祭祀를 지내는 모습>이다. 이를 한족漢族들이 <보일 시示 shi>라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한 까닭은 그렇게 인식한 바탕에 아래에 설명할 [동방민족東方民族 즉 시尸 shi의 풍습風習이라는 질투 섞인 생각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군자君子는 손자孫子를 안으며 아들은 안지 않는다. 손자孫子는 조부祖父의 시동尸童을 할 수 있으나 아들은 아버지의 시동尸童을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왜 그런가? 하고 증자가 물으니 공자孔子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祭를 지내는 상주喪主는 반드시 시(尸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제사를 받는 사람인 시동尸童*신주神主*신상神像)가 있다. 손자孫子는 어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안는다. 이것이 옛날의 시주尸主이다. 라고 하였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

 

 

이렇게 풀어 놓고서도 한족漢族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감을 잡지 못해 해석이 분분하다(기자손祈子孫*보일 시示 등으로 분분하다). 순 우리말과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제祭]는 동방민족東方民族의 사유思惟와 관습慣習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를 본 한족漢族들이 받아들이면서 그대로 [시동尸童*시주尸主 -이夷를 시尸라고 했음을 생각하면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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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한 마디 덧붙일 말은 지금의 판단으로 옛 사람의 생각을 넘겨짚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의 소리글자가 가장 단순한 모양으로부터 차츰 복잡한 형태로 변화하는 것처럼

 

그 무렵의 사람들은 명칭名稱을 표현하는 방법도 아주 간단했다. 그저 소리 나는 대로 그리고 늘 서로 이야기를 하던 방식대로 표기表記하였으므로 오늘날의 관념으로 보아서는 어쩌면 우습기조차 할지도 모른다.

 

즉 어떤 사물事物이나 관념觀念을 표현하거나 하나의 물명物名을 표시할 때 통용通用되던 소리글자체계로서 매우 간단하게 만들었고 그 소리 값도 단순명쾌했다는 말이다. 예例를 들어 낮춤말인 [저]라는 글자를 알릴 때는 그 당시 사람들이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같은 뜻의 그림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쓰던 말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면서 글자가 되고 아울러 그것들이 고스란히 읽힘 소리로서 모두에게 인정되는 것이다. 이 같은 단순한 사실을 놓치면 상고금문上古金文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결국 [앵무새]와 같은 진흙탕에 빠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 뒤 글자표현방식의 단순성에 따른 불편함과 점차 복잡해지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상호연결성의 모자람을 해소解消하려고 나타난 [가림토]의 체계는 정말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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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두 번째 아들인 [ 삼산三山][아래에 세 사람이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는 모양] [첨부 33-2]은 그야말로 곤鯀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씨칭氏稱의 모범이다. 중衆으로도 읽는 글자인데 족단族團의 정체성正體性을 뚜렷하게 부각浮刻시키려는 생각을 담아

 

곤鯀의 씨칭氏稱인 <여余>의 오른쪽을 구성한 그림을 바탕으로 삼아 집안의 사당祠堂을 말하는 중여衆艅의 족칭族稱인 ▲ 는 그대로 둔 채 아래의 <열 십十>을 떼어내 세 사람이 절을 하듯이 손을 모으고 있는 모양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가재집고록 18책 8).

 

라) 요堯에게 몰락당하는 원인을 제공해주기도 했던 족원族源을 지키려는 곤鯀의 야심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소리글자가 바로 또 다른 아들에게 내려준 이름인 무궁화 근槿 jĭn이다.

 

[ ] [첨부 33-3] 그 무렵에 사촌동생인 순舜과 비슷한 이름글자인데 중심에 분명하게 [ 솟대 ψ ]를 그려 넣었다는 사실은 매우 도전적이고 의욕적이다(군고록 권2-1-43).

 

 

31. 전욱고양顓頊高陽의 네 째 아들 여목(余目*餘目)을 상징하는 [해亥 hὰi*시豕 shĭ*저猪 zhū*돈豚 tύn]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돼지를 세로로 세워 그린 그림 와 비슷한데 주둥이가 뭉툭하고 앞다리가 하나 더 그려졌다 ] [첨부 33-4]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돼지 해*시*저*돈>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해亥 hὰi*시豕 shĭ*저猪 zhū*돈豚 tύn>

 

여목余目이 제곡帝嚳에게 받은 돈으로 아비인 전욱顓頊을 위해 만든 예기禮器인 쟁반 모양인 을미고(乙未觚 -가재집고록 7책 4)의 이름*산동성山東省 안양安陽 노예제사갱奴隸祭祀坑의 시형과(豕形戈 -금문총집 10권 7282)의 창槍 자루와 창槍 날*시유(豕卣 -역대종정이기관식 권 3-45)에 새겨진 부호符號

 

 

[설문해자說文解字]

 

 

󰊱 ❶ 해亥는 뿌리라는 뜻이다. ❷ 10월에 미미한 양陽이 일어나 성盛한 음陰과 접한다. 이上으로 구성되었다. 이二는 상上의 고문古文이다. 한 사람은 남자이고 한 사람은 여자이다. 은(L) 으로 구성되었는데 아이를 밴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❸ 해는 돼지이다. 시豕와 같다. ❹ 해가 되어 자식을 낳으니 다시 일一에서 일어난다.

 

亥...荄也 十月微陽氣接盛陰 從二 二古文上字也 一人男一人女也 從 L 象褱子咳咳之形也..亥爲豕與豕同 亥而生子 復從一起 <설문해자說文解字>

 

해亥는 호와 개의 반절이다. 胡改切(해亥 hὰi = 호胡 hú + 개改 găi -우리말 「해」와 같다)

 

 

필자筆者의 의견

 

아래에서 설명하게 될 여목余目의 집안과 이들 족단族團의 의지와 관련한 모든 내용을 함축含蓄하고 있는 풀이이다. 허신許愼이 이해를 하고 있는지? 는 궁금하지만 이 애매모호한 내용을 풀어내는 대전제大前提는 여목余目이 스스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돼지 해亥 -해를 말한다]라는 씨칭氏稱을 썼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❶ 해는 뿌리를 찾는 신념의 표시이다. [1] 아울러 역易의 괘상卦象(음효陰爻와 양효陽爻의 기운으로 달을 이해하는 방법)에서 양기陽氣가 소생하는 ❷ 10월을 집안의 달인 [시월 -돼지 달로서 곤괘坤卦이기도 하다]로 정하고 화복和福과 자손子孫의 번성繁盛을 꾀한다.

 

그래서 상上으로 해석한 남녀男女 머리위에 붙은 이二(ér 얼)는 바로 이 집안의 [얼]이다. 그 얼이야말로 신농계열神農系列의 뿌리를 잇는 전통이다. 이 글자가 뒷날 상(上 -위 어르신*높이 받들)으로 확장된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글자에서는 일부러 두 획劃을 그은 것은 순 우리말인 [얼]로 읽혔기 때문이다. 주周 이후에 하나로 달라졌다.

 

자손子孫을 번성繁盛하려니 애를 밴 모습이다. 돼지가 집안의 복福과 번영(繁榮 -돼지는 다산多産이다)을 의미한 까닭도 이 무렵부터 실마리가 잡혔음을 알게 해준다. 그런 이유로 ❸ 해日가 해亥이며 돼지로 상징되었다. 아니면 돼지를 집안의 씨칭氏稱으로 삼아 <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뜻으로 새긴 <시월 10月>을 생각해 <시豕>라고도 하였음 직 하다. ❹ 여기의 <해>는 어르신을 말하고 그 후예後裔들이 다시금 신농계神農系의 부호符號인 ㅡ 을 업고 되살아난다는 걸 염원念願한 것이다.

 

 

󰊲 시豕는 돼지이다. 희豨와 같이 발음한다. 豕...彘也 讀與豨同 <설문해자說文解字>

[좌전左傳 정공定公 4년]의 封豕長蛇를 [화남자淮南子]에서 封豨脩蛇로 기록했다.

 

시豕는 식과 시의 반절이다. 式視切(시豕 shĭ = 식式 shì + 시視 shí -우리말 「해를 말하는 새*시」과 같다)

 

 

필자筆者의 의견

 

글자 형태를 보면 거의 같이 나타난 고금문古金文으로서 시豕는 해亥와 구별이 어렵고 돈豚의 전자형篆字形도 시豕의 고문古文이 들어있다(단옥재段玉裁). 구태여 <희豨와 같이 발음한다>라고 덧붙인 이유가 있다.

 

원래는 희狶로 비유되어야 할 것이다. <고대古代에 황제를 부르는 이름 -아마도 신령한 돼지로 꾸며진 동방계東方系 군장君長인 봉희封豨를 이야기하는 듯하다>으로 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두 [xī] 소리 값을 나타내며 이는 <제帝 dì>와 같이 순 우리말인 [어른을 의미하는 ○○지 -그래서 대표적인 상징인 돼지가 ~지란 어미語尾를 갖는다]를 따른 것이다. 그 지방에서 공포스럽게 해악害惡을 끼쳤다는(사실은 요堯의 권력탈취에 반발한) 이 동물(세력)을 요堯가 무찌른 걸로 보아 틀림없이 이 집안과 친밀성을 가진다.

 

 

󰊳 돈豚은 작은 돼지이다. 시豕의 고문古文 모양으로 구성되었다...[시)는 전문이다. 육과 시로 구성되었다. 豚...小豕也 從古文豕...(시)篆文 從肉豕 <설문해자說文解字>

 

돈豚은 도와 혼의 반절이다. 徒魂切(돈豚 tύn = 도徒 tύ + 혼魂 hύn -우리말 「돈-도야지」와 비슷하다)

 

 

필자筆者의 의견

 

작은 돼지는 새끼 돼지이다. 그래서 우리말에 자식을 [저의 돈아]라고 하는 것이다. <방언方言 -즉 동방계東方系의 말> 권8 에서 「저猪의 새끼를 혹은 돈豚 또는 혜豯 xī이라고 한다」라 한 기록은 정확하게 꿰뚫은 것이다.

 

허신許愼도 설명했듯이 뒷날의 전문篆文에 고기 육肉이 들어가서 변화한 글자라 하였으니 상고금문을 보지 못한 그로서는 왜 새끼 돼지를 돈豚이라 하는지? 는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였을 것이다. 지금 글자인 돈豚은 모두 주문籒文과 소전小篆이다(이아爾雅 음의音義 석수釋獸 「猩猩小而好啼」 석문釋文*옥편玉篇 돈부豚部 제367 참조).

 

 

가) 이 단락은 곤鯀의 후예後裔들과 부여夫餘와의 친연성親緣性 그리고 완성된 기본적인 기마전사집단騎馬戰士集團의 출현과 기마전술騎馬戰術의 중토中土 경영지역 보급 확산과 관련하여 아주 특별하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이 시기에 등장하는 금문金文을 추적하는데 다음과 같은 시사점示唆點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동물토템에서 나온 게 분명한 [해亥*저猪*돈豚*시豕]가 모두 한 집안과 연결되어있다.

 

부여夫餘의 관명官名인 저가猪加와 고구려高句麗의 신성한 제사희생물祭祀犧牲物인 돼지와의 친밀성을 뒷받침해주는 동기動機로서 이 이름들을 모두 성축成祝과 여목(余目*餘目)이라는 인물人物들이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어수선했던 제례祭禮를 세련되게 완성시킨 집안이었으며 제곡帝嚳 말기末期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기반基盤이 되는 [돈]을 관리한 직관職官을 독점獨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생겨 난 풍습으로 꿈에 돼지가 보이면 돈을 번다. 부자가 된다. 와 복 돼지*돈 돼지라는 관념이 있다. [순 우리말인 돈과 돼지 돈豚 tύn]의 연관성이 매우 주목된다.

 

이 집안을 무너뜨리는데 힘을 쏟은 요堯와 우(禹 -여목余目의 아들 백익伯益을 죽이고 자리를 빼앗는다) 시기에 권위權威가 철저히 무너지면서 그동안 씨칭氏稱 등으로 사용하던 소리글자가 모두 낮추어지고 비하卑下되었는데 그 본보기가 <내가*우리 가 에서 저는*제가*저희들이>로 바꾸어진 상징부호象徵符號 글자로서 나타난 [돼지 저猪 zhū]이다.

 

곤鯀의 막내아우인 승축乘祝의 씨칭氏稱인 <양지기마羊止己馬>에 처음으로 등장한 [말] 그림은 매우 주목을 요한다.

 

 

나) 전욱顓頊의 네 째 아들 여목余目은 [삼명명三兵銘名]에 그냥 <부일계父日癸>로 새겨졌다. 큰 성님인 큰 아비(大父)*작은 성님인 작은아비(中父) 다음의 자리라는 [아비父]로서의 집안 어른 서열序列임을 잘 보여준다.

 

특히 여목餘目에 이르러 나타난 [집 가家]는 <사당祠堂의 안에 돼지 시豕 shĭ>가 들어있다(금문총집 10권 7994). 따라서 소리 값의 원형原型은 오늘날 높임말의 대표적인 [모시다*올리시다*주시다의 어간형語幹形 ]이다.

 

아울러 지금도 <자기 아이를 낮추어서 부를 때 제 돈아豚兒...>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돼지 해亥 hài]인데 집안의 족표族表에서 핵심인 <해>를 여목余目의 족표族表로서 토템화 시킨 것이다. 그래서 10월인 시월豕月을 구태여 해를 모시는 해월亥月이라 달리 말하는 이유도 우리말로는 술술 풀려진다.

 

다) 이 무렵에 이르러 이윽고 깃발(솟대)이 사라지는데 아마도 실력자로 떠오른 요堯나 우禹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돌연히 여부(余父 -형소부준亞形召夫尊 군고록 권1-3-42) [ 아래에 붙인

 

 

머리 부분이 +

 

안에 들어가 있다.] [첨부 34]란 독자적인 이름기호가 출현한다. [부여夫餘의 아비란 뜻이나 혹은 거꾸로 쓴 기호記號]로 생각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소리글자이다.

 

그의 이름 칭稱이 사방四方을 단단하게 막은 아(亞 -뒷날 우禹를 도와 권력의 정수리에 올린 모계母系 쪽 대모代母인 중계仲癸의 족칭族稱 계癸에서 나왔다) 안에 갇혔음은 아주 뜻하는 바가 크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결코 변하지 않고 족조族祖인 | 를 받들던 손을 그린 기존의 부父가 보통 사람의 모습의=을 그린 부호符號의 머리 부분에 + 가 달린 모양으로 달라지면서 [지아비 부]로 등장한다.

 

 

아무튼 이런 까닭으로 부여夫餘의 원래글자는 [부여夫余 -부여父余일지도 모른다. 부父가 부夫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라 하였으며 여목余目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던 눈 4개(그래서 사방책봉四方冊封이다. 술통인 사방책봉유四方冊封卣 금문총집 6권 5087)를 함축含蓄한 4 축관(畜官 -마가馬加*우가牛加*구거狗加*저가豬加)이 나누어 다스리던 4출도出道의 통치체제를 만들어낸 뿌리가 된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요堯가 등장하면서 신농계神農系는 차츰 힘을 잃어버리는데 집안의 대형大兄이었던 중여衆艅 곤鯀이 몰락하면서 성축成祝의 아들 오회吳回 성盛도 북방으로 몰린다. 이들의 행적은 뒷날 우禹가 백익伯益을 죽일 때 나타나는데 바로 [안양安陽 노예제사갱奴隸祭祀坑]의 학살虐殺이다.

 

[돼지 해亥 -작은 해님을 뜻한다]는 처음엔 전욱顓頊의 첫째 아들 구축瞿祝의 이름 칭稱으로 해님의 씨알을 말하는 [돼지 시豕]로도 확장되었으나 후에 넷째 아들인 여목余目*餘目은 세력을 잃어가면서부터 [돼지 저猪]로 바꾸어 자신의 토템으로 삼아 족표族表로 사용하였다.

 

결국 이 족단族團은 안양安陽 지역에서 황하黃河 북방의 동편으로 이동하였는데 요堯와 순舜의 권력다툼 과정에서 계승권을 잃고 북방으로 밀려 난 오회吳回 성盛이 마지막 중심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들의 자취가 그 지역에도 기록되어져 있을까?

 

 

❶ [북산경北山經]의 옥법산獄法山에 사는 사람 얼굴을 한 산휘山(犭+軍)는 신농神農의 아들인 희화羲和가 쓰던 △에서 나와 중여衆艅 곤鯀의 씨칭氏稱으로 완성된 삼산(三山 △△△ 즉 ∴ ) 과 관련이 있다. 옥獄 yù은 부여夫餘의 여餘 yú와 발음發音이 같다.

 

그 북방의 북악산(北嶽山 -악嶽 yuè은 옥獄과 발음發音이 비슷하다)에 뿔이 넷이며 사람의 눈과 돼지 귀를 가진 제회(諸懷 -제諸 zhū는 저猪 zhū와 발음發音이 같다)와 [북차이경北次二經]의 돼지 갈기를 강조한 독곡獨(犭+谷)이 등장한다.

 

❷ [동산경東山經]의 태산泰山 부근의 환수環水에 있는 돼지 몸을 한 동동狪狪이 구슬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욱顓頊의 상징인 [ 부주父珠 ○ 나 ● ]를 말하는 것이다. [동차사경東次四經]의 사람 얼굴에 돼지 몸을 한 합유合窳와

 

❸ [중산경中山經]의 첫머리 부분에 나타나는 박산(薄山 -밝산)과 거저산(渠猪山 -큰 돼지 산) 그리고 거저수渠猪水와 오림산(吳林山 -오회吳回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는 유의할만하다. 아마도 이동한 곤昆과 오회吳回 세력의 중심지역으로 보이는데 [중차이경中次二經]에서 곤오산(昆吾山 -곤鯀과 오회吳回의 산)의 통곡하는 소리를 내는 뿔을 가진 돼지 형상의 농지(蠪蚳 -신농계열神農系列임을 알려준다)와

 

곤鯀이 죽음을 맞은 선저墠渚 shàn-zhŭ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곤鯀이 누런 곰으로 변해 우연羽淵에 들어가다). 선墠은 산山*선仙*선先과 저渚은 저猪와 발음發音이 같다. 여기에 산다는 비어飛魚도 돼지 모습이다.

 

❹ [중차팔경中次八經]부터 다시 등장하는 체산(彘山 -돼지 산)과 기산岐山의 서남에 있는 우양산(隅陽山 -우양산牛羊山일 것이다) 그리고 용석산勇石山의 돼지 꼬리를 한 새인 기종跂踵*[중차십일경中次十一經]의 돼지 같은 모습의 문린聞獜은 지명고地名考의 연결성으로 보아 아마도 이들 족단族團이 북부로 이동하기 전에 살았던 곳으로 여겨진다.

 

 

동방계와 관련성이 있음직한 괴수怪獸들 대부분의 이름에 신농계열의 상징인 <개 犬>을 붙이고 있으며 그들이 정착했던 지역(북산경北山經*중산경中山經과 동산경東山經의 일부)의 신神들에 대한 제사祭祀에 반드시 [돼지*양]이 희생물犧牲物로서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매우 특별하다.

 

 

성성이는 사람의 이름을 아는데 그 생김새는 돼지 비슷하나 사람의 얼굴이다. 순의 무덤 서쪽에 있다. 狌狌知人名 其爲獸如豕而人面 在舜葬西 <해내남경海內南經>

 

북적국이 있다. 황제의 손자를 시균이라 하는데 북적을 낳았다. 有北狄之國 黃帝之孫曰始均 始均生北狄 <대황서경大荒西經>

 

순산에...시주국과 단산이 있다. 有順山者...有始州之國有丹山 <대황북경大荒北經>

 

 

[산경山經]에서 전욱顓頊의 아들들이 지닌 상징과도 같은 [여]라는 이름을 포함한 산천명山川名이나 신귀神鬼들 그리고 괴수怪獸들은 일단 짚어볼 까닭이 있다.

 

아울러 [산경山經]과는 달리 대부분을 나라이름이나 어떤 집단 그리고 계보系譜를 설명하는 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해경海經]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괴수怪獸나 동식물動植物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외뿔소가 순舜의 무덤 동쪽에 있다 등).

 

특히 짐승 등의 모습에서 ❶ 사람의 얼굴로 표현하거나 ❷ 어떤 형태를 강조하거나(돼지의 생김새나 몸 등) ❸ 기이한 형상으로(몇 개의 날개가 있다 등) 묘사하는 설명구조의 경우는 분명히 저자著者의 의도가 있다. 즉 그러한 상징을 표表나 기旗로 삼은 세력집단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같은 부분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외뿔소 시兕 sì는 시豕 shĭ]와 [성성狌狌 shēng은 형계兄系 어군語群]과 친밀하여 성축成祝*구축瞿祝이나 여목余目 세력의 지표指標이다. 왜냐하면 [산경山經]을 살펴 볼 때 저자著者는 원숭이의 모습을 매우 정확하게 알고 또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아래 나란히 덧붙인 대목에 나오는 [시우(尸 아래에 牛)牛 -곽박郭璞은 돼지 머리에 뿔이 셋인 무소*물소로 해석했다]도 시豕와 발음이 같고 동방족을 말하는 시尸를 얹었으며 우양계牛羊系 어군語群이다. 또한 시始 shĭ는 시豕와 발음發音이 같다.

 

이들 족단族團의 이동 경로는 ❶ 축계祝系 zhù 어군語群인 축수逐水 zhú(돼지 시豕가 들어갔으며 발 얽은 돼지걸음 축豖과도 통한다)를 품은 솟대가 뚜렷하게 꽂힌 시산峕山 즉 시산時山(서산경西山經) ➡ 주변에 동일한 지표지명指標地名인 성후산 成侯山과 양여산良餘山과 여수餘水가 보이는 시산尸山 shī과 시수尸水 그리고 시산視山 shì과 시수視水와 영여산榮余山과 나란히 있는 시상산柴桑山 cī(중산경中山經)

 

북쪽으로 우양계牛羊系 지표어군指標語群인 상산(歹+羊)山이 보이는 시산豺山과 시호산尸胡山과 동시산東始山(동산경 東山經) ➡ 돈豚 tún과 발음이 같으며 여계余系 어군語群을 포함한 돈여산敦與山 dūn*duì과 「저」라는 표현을 연상시키는 저수泜水 바로 부근인 시*자산柘山 zhè(북산경北山經) ➡ 세력을 잃은 다음 마지막 정착지로 보이는 시주지국始州之國(대황북경大荒北經)으로 짐작된다.

 

 

저인국이 건목의 서쪽에 있는데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이고 발이 없다. 泜人國在建木西 其爲人人面而魚身 無足 <해내남경海內南經>

 

 

[저猪 zhū]는 전욱계顓頊系 지표어군指標語群이 많이 보이는 [중차팔경中次八經]의 박달나무와 함께 언급된 저수雎水 jū를 주목한다. 바로 동북편에 형산荊山이 있고 유난히 신神들이 집중되어 있다(타위*계몽計蒙*섭타).

 

다시 형산衡山에서 시작되는 줄기에 돼지를 상징하는 체산彘山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앞서 말한 [북산경北山經]의 돈여산敦與山과 저수泜水와 저택泜澤이 있는 일대를 중심으로 우수수牛首水*발구산發鳩山*발환산發丸山의 범위 안에서 저여산沮洳山 jŭ*산여酸與*알려산謁려山*구수歐水 등의 명칭名稱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신농神農이래 중요한 경영지인 공상산空桑山으로 이어지는 길목(동차이경東次二經)에 저오(沮吳 -여목余目과 오회吳回의 상징)가 있으며 세력이 힘찰 때 생겨난 거호巨互의 호인국(互人國 -대황서경大荒西經)과 같다고 원가袁珂가 착각한 저인국(氐人國 -저인국猪人國으로 보고 싶다)이 [해내남경海內南經]에 보인다. 염제炎帝의 자손子孫이기 때문이다.

 

동방족의 성수聖樹인 건목建木과 나란히 이야기된 이유가 밝혀지며 <물고기의 몸>은 중여衆艅 곤鯀의 이름에 등장하는 어魚나 전욱顓頊이 죽어 어부魚婦로 환생했다는 이야기(대황서경大荒西經)와 밀접하고 <발이 없다>는 말은 후에 권력을 잃고 나서 희화羲和에서부터 [족칭族稱]의 상징으로 즐겨 쓰였던 <발 족足>이 표表나 기旗에서 사라지거나 생략되었음을 의미한다.

 

[돈豚 tún]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면서 돈황敦荒*모돈冒頓에까지 이어지는데 그 흔적을 찾아보면 [북산경北山經]의 이시산(爾是山 -시是 shì는 시豕와 발음發音이 같다)*제여산諸餘山*구오산鉤吾山*제여수諸餘水*솟대장식을 말하는 모수旄水가 있는 지역 일대에

 

돼지를 족표族表로 삼은 어르신이 있는 돈두산敦頭山*그가 돌아가신 동훙산敦薨山과 돈수敦水*돈훙수敦薨水와 [북차이경北次二經]의 돈제산敦題山이 있으며 특히 저수泜水가 흘러나온다는 돈여산敦與山은 이 모든 지표명指標名의 [키]를 쥐고 있다(돈敦이 돈豚이고 저猪*저泜이며 여씨余氏 족단族團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연결해준다).

 

 

32. 전욱고양顓頊高陽의 다섯 째 아들 거호巨互와 여섯 째 아들인 승축乘祝에서 비롯된 [거호巨互 와 마馬 ]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사람이 큰 활을 지니고 있는 그림 아래에 □즉 C 안에 옆으로 누운 대 또는 사람大 과 ▫ 이 위아래로 그려졌다*말 그림 ]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큰 활을 가진 사람 거호*말>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互 hύ와 馬 mă>

 

부계종이(父癸宗彛 -군고록 권2-1-33)*양지기마작(羊止己馬爵 -군고록 권1-3-40)

 

 

[설문해자說文解字]

 

거는 사람이 서로 헤어진다는 뜻이다. 대로 구성되어 있고 거(ʗ를 눕힌 글자)가 발음을 나타낸다. 去...人相違也 從大(ʗ를 눕힌 글자)聲

 

 

가) 순舜의 아비인 <거호巨互>는 대大의 초기 부호符號를 옆으로 눕히고(후손後孫이란 의미이다) 그 옆에 자신의 터전을 말하는 나라 국囗을 붙였다고 하나 필자筆者는 <활을 가진 사람>으로 푼다.

 

왜냐하면 이 당시 [아비]라는 존칭尊稱의 모양이 달라지고 있었으며 바로 그 부호符號를 옆으로 눕힌 걸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때부터 어떤 신분身分을 말하는 [○○아비 -활잡이인 활재비]로서의 일반명사화一般名辭化 과정의 씨가 뿌려진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거호巨互>는 다른 부분에서 고양계高陽系 쪽으로는 <부일신父日辛 -아비>으로 삼병명三兵銘에서는 모계母系 집안의 <형일계兄日癸 -형님>로서의 두 가지 신분身分을 가지고 등장한다.

 

관련기록의 기술記述과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사실 우리말에도 [크다는 소리 값은 「거」로 말하여지며 -거서간居西干*거발성居拔城*거창하다*거룩하다 등] [활은 호弧 hù로서 표기表記된다] 이런 인물人物이 활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나) 동방사회구성체東方社會構成體의 활은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독특하였기 때문에 쓰지 않을 때 시위를 풀어 놓으면 원래 모양의 반대편으로 완전하게 휘어져 다시 쓸 때에는 처음 그대로 강력한 탄력성을 회복한다.

 

다시 말해 ʗ 와 같은 형태로 되는데 거호巨互를 구성하는 기본 틀인 ʗ 과 똑같다. 이것이 감싸주는 형태로 되어 테두리 안쪽으로 대大를 눕히고 아래 부분에 ㅁ 을 넣은 것이다. 후기後期 금문金文의 [거巨]는 아예 사람이 한손에 활과 비슷한 걸 잡고 있는 모습으로 정형화定型化되었다.

 

이 기호글자는 같은 소리 값인 [거去]와도 연관되는데 <화살이 시위에서 벗어나 날아간다*화살이 나아간다>에서 비롯되어 활인 ʗ 가 없어지고 그 안에 있던 대 또는 사람大을 바로 세운 아래에 작은 ㅁ 을 그대로 살렸다.

 

다) 다른 아들인 <승축乘祝>은 매우 특별하게 [양지기羊止己 -순 우리말 그대로이다]라는 부호符號 [ ? 己] [첨부 34-1]가 곁들여졌으며(우양계牛羊系로서 목축牧畜 세력을 추슬렀음을 알려준다)

 

그 아래로 뚜렷하게 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말을 길 들이고 부리는 솜씨가 있음을 특별하게 표시한 것이다).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뒷날의 부여夫餘와 고구려高句麗 세력과 아주 친밀성親緣性을 가진다.

 

다) 이 두 사람은 한족漢族의 기록에 가장 몹쓸 사람(순舜의 아비인 고수瞽瞍)이나 악당惡黨의 아비(천하악인天下惡人 도올檮杌을 낳은 아버지)로 표현되어졌다(상서尙書 요전堯傳*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사마천司馬遷 사시史記). 활과 말을 자유자재로 쓰던 집단을 이끌던 인물人物로서 그만큼 위세威勢가 대단했고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호인국이 있다. 영개(계)라는 염제의 손자가 있어 그가 호인을 낳았다. 하늘에 오르내리기를 잘하였다. 有互人之國 炎帝之孫名曰靈恝 靈恝生互人 是能上下于天 <대황서경大荒西經>

 

 

염제炎帝는 신농神農으로서 손자孫子라고 표현된 인물人物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점욱顓頊의 다섯째 아들이며 순舜의 아비인 [거호巨互]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록에서 영계靈恝의 <계恝>는 모계母系인 칭稱의 씨칭氏稱을 족칭族稱으로 삼은 [계癸]이다.

 

 

염제의 아내이며 적수의 딸인 청요가 염거를 낳았다. 炎帝之妻赤水之子聽訞生炎居 <해내경海內經>

 

대황의 한 가운데 거치라는 산이있다. 大荒之中有山名曰去痓 南極果 北不成 去痓果 <대황남경大荒南經>

 

거비시는 목이 꺾이고 머리를 산발하였으며 한손이 없다. 據比之尸 其爲人折頸被髮無一手 <해내북경海內北經>

 

방산 위에 거격송이란 푸른나무가 있는데 해와 달이 지는 곳이다. 有方山者 上有靑樹名曰拒格之松 日月所出入也 <대황서경大荒西經>

 

 

거호巨互의 입김을 찾으려면 먼저 [해경海經]의 기록을 더듬어야 한다. 여기에서 거去 qù와 거據 jù와 거拒 jù 또는 거居 jū는 거巨 jù와 같거나 비슷하다. <염거炎居>에서 계보를 나타내는 염炎을 떼어내면 말 그대로 <거호巨互의 거巨>와 같으며 거비시據比尸가 <목이 꺾이고 한손뿐이라는 것>은

 

전욱顓頊의 아들들이 공통적으로 그린 사람의 모습이 고개를 숙인 채 다소곳하게 서있는 표表나 기旗에서 팔 하나만을 그린 걸 말하고 있다. [치]는 우리 말 <~치>의 용례用例와 같다.

 

이들 세력의 이동정착지는 어디일까? 먼저 [북차이경北次二經]의 구오산鉤吾山에서 조금 떨어진 양거산梁渠山의 털이 붉고 우는 소리가 돼지 같다는 <거기居曁>란 괴수怪獸가 보인다. [서차삼경西次三經]에 숭오산(崇吾山 -오회吳回의 성산聖山)의 거보擧父가 등장한다.

 

[중산경中山經]을 보면 이들 세력의 지표지명指標地名이 나타나는 일대(一帶 -아계兒系 어군語群인 역아산歷兒山*호互와 발음發音이 같은 탈호산脫扈山 hù*오회吳回를 연상시키는 오림산吳林山 등)에 큰 돼지라는 거저산渠猪山과 거저수渠猪水가 있고 그 속에 사는 물고기도 호어豪魚이다.

 

[중차사경中次四經]의 비슷한 지역에 환거산讙擧山 jú이 나오는데 현호수玄扈水와 곤鯀의 아비로 묘사描寫된 낙명駱明 luò와 발음發音이 같은 가리온 말을 의미하는 낙수雒水와 아우인 양지기羊止己의 상징인 마장(馬腸 -학의행郝懿行은 중차이경中次二經의 괴수怪獸 마복馬腹과 같다고 해석한다. 복腹 Fù은 호互 hù와 같다)이 함께 등장한다.

 

호互 는 활 호弧 hú나 여우 狐 hú와 발음發音이 같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산경北山經]의 생김새가 말 같다는 수마水馬가 있는 구여산求如山과 환소(月+雚)疏가 있는 대산과 나란히 등장하는 단호산單狐山이 있으며

 

[서차사경西次四經]의 엄자산崦嵫山에 있는 사람 얼굴에 말 몸이며 새 날개를 지닌 숙호孰湖 hú와 [동차삼경東次三經]에 시호산尸胡山의 원호妴胡 hú 등이 주목된다.

 

 

마성산이 있다...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흰 개 같은데 머리가 검고 사람을 보면 날아오른다. 이름을 천마라고 한다...어떤 새는 까마귀같은데...굴거라 한다. 曰馬成之山...有獸焉 其狀如白犬而黑頭見人則飛 其名曰天馬...有鳥焉 其狀如烏...是名曰鶌鶋 <북차삼경北次三經>

 

모마는 생김새가 말 비슷한데 네 무릎 관절에 털이 있다. 旄馬 其狀如馬 四節有毛 <해내남경海內南經>

 

 

형님인 거호巨互와는 매우 우애가 깊어 이윽고 기마궁사집단騎馬弓士集團의 발판을 닦았던 [양지기羊止己]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록으로 짐작된다. [중차이경中次二經]의 사람 얼굴에 호랑이 몸을 한 마복馬腹 mă-도 호互와 친밀하고 [중차사경中次四經]의 마장馬腸과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차칠경中次七經]의 말산末山과 말수末水 mò*mė는 더욱 극적이다. 그대로 순 우리말을 옮긴 듯하기 때문이다. [동산경東山經]의 고아산姑兒山과 시산豺山 일대와 이어지는 독산獨山의 말도수末塗水도 마찬가지이다. 소도蘇塗 그리고 말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세력이 한 때 관리하였던 지역이 있는 [해내남경海內南經]의 <모마旄馬]란 표현이 아주 주목된다. 승축乘祝의 다른 이름인 양지기羊止己에서 특별하게 덧붙여 그려진 말 그림과 친연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승乘은 말에 오르는 행위를 표시한 글자이고 모旄는 동방계의 상징인 솟대에서 변화한 깃대 장식으로서 여기에 그려진 [말 그림]이었을 것이다. 이 괴수가 높은 산 남쪽에 있다는 사실도 이 표시기가 펄럭이는 걸 말할지도 모른다.

 

마성산馬成山의 천마天馬로 대표되는 [북차삼경北次三經]에 공교롭게도 그 연결고리로 보이는 백마산(白馬山 -거호巨互와 관련 있는 공상산空桑山과 호타수虖沱水가 있는 곳이다)의 목마수(木馬水 -말에게 물을 먹인 개울)가 등장하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형님인 여목余目의 경영지역인 [북산경北山經] 돈두산敦頭山에 때맞추어 모수(旄水 -깃발을 세운 냇물)와 발마(馬+孛)馬가 등장하는 점과 남쪽으로 확장했던 시기에 가장 경계지역의 교통로이었다고 추측되는 개유산(蓋猶山 -해님이 있는 산이다)에서 사육飼育*관리되었음을 알려주는 지표指標인

 

푸른 삼청마三靑馬와 붉은 삼추三騅가 보인다. 특히 같은 계열인 일비국一臂國과 기굉국奇肱國 사람들이 잘 다루었다는 황마黃馬와 문마文馬는 승축乘祝과 연결시켜 눈여겨 볼 까닭이 있다.

 

 

33. 제곡고신帝嚳高辛의 존칭尊稱에서 완성된 [귀鬼 guĭ]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사람의 머리에 큰 가면 같은 것을 쓴 모양으로 머리는 ⊕ 에 꼭지가 있고 양 귀는 크게 그려져 무엇으로 덮어 진 모양 ] [첨부 35]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귀신 귀>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鬼 guĭ>

 

곡유(嚳卣 -가재집고록 18책 19-1)

 

 

[설문해자說文解字]

 

 

󰊱 사람이 돌아갈 바를 귀鬼라고 한다. 인儿으로 구성되었고 (불)은 귀신의 머리를 상형하였다. 人所歸爲鬼 從儿 (불)象鬼頭 <설문해자說文解字>

 

󰊲 모皃는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인으로 구성되었다. 白은 얼굴의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皃...頌儀也 從儿 白象面形 <설문해자說文解字>

 

󰊳 (고 -儿의 위 편 좌우에 ㅁ이 붙은 모양)는 가린다는 뜻이다. 인儿으로 구성되었다. 좌우가 모두 가려진 모양을 상징하였다...고와 같이 발음한다. (고)...廱蔽也 從儿 象左右皆蔽形...讀若瞽 <설문해자說文解字>

 

󰊴 특히 [투구*쓰개 두兜]는 위와 같은 모든 소리글을 다 합친 종합판으로서 아주 흥미롭다. 그래서 위소韋昭는 [국어國語 진어晉語 6] 에 나오는 이 글자를 상대방을 미혹시킨다는 뜻으로 풀었다. 이 소리글들의 기본형은 바로 [맏이 형兄]이다.

 

󰊵 불由은 귀신 머리이다. 상형이다. (由)鬼頭也 象形

 

 

필자筆者의 의견

 

앞으로 설명하게 될 [귀鬼]의 순 우리말 본 뜻과 관련하여 참고가 될만한 비슷한 소리글자를 모아 본 것이다. 모두 머리부분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는데 [모貌]의 경우 그 안의 얼굴이 아닌 밖으로 드러나보이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한족漢族의 입장에서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각인刻印된 우리 민족의 형상이라고 보여 지는 데 한결같이 머리에 무엇을 뒤집어쓰거나 얼굴을 특별히 보호한 듯한 형태로 그려지고 있음이 뚜렷하다(신神과 같은 의미로 쓰인 귀鬼의 머리를 형성하고 있는 <불>은 그야말로 완전하게 얼굴을 쓰개로 감싼 모양이다).

 

이는 [고]의 형상을 설명하는데 더욱 명쾌해지는데 (얼굴을) [옹廱 -가려서 막다] 과 [폐蔽 -덮고 싸서 숨기고 막다]란 풀이를 앞세웠다는 점이다. 발음發音도 구태여 <고瞽 gŭ>를 따른다고 하여 [귀鬼]와 연결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글자를 [화목할*물이 사방을 빙 두른 땅 옹邕]으로 써야 한다느니 [막힐*막을 옹壅]라고 하는 한족漢族들의 해석은 소리글자가 등장하게 된 진짜 속뜻을 모르거나 진실을 가리고 덮어 숨기는 해석이다. 왜 이 글자가 자신들의 경전經典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지?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아무튼 소리 값이 [독毒*악기惡氣 고蠱]와도 같아서 <사람을 미혹시키다>는 뜻을 지닌다. 고 말하는 걸로 보아 이런 짐작 즉 우리의 소리글자였다는 사실은 제법 설득력을 가진다.

 

귀鬼는 거와 위의 반절이다. 居偉切(귀鬼 guĭ = 거居 jū + 偉 wĕi-우리말 「귀」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