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8. 12. 14:56

 

 

가) 우禹가 제곡고신帝嚳高辛이 죽은 다음 우러르는 이름으로서 내세운 기호글자이다. 가장 큰 특징은 한 사람이 머리에 투구 같은 보호장구保護裝具를 단단하게 얽어매어 쓴 모습이거나 머리를 가지런히 하기 위한 상투를 특별하게 과장誇張한 듯하다(상투 귀䰎 kui와 같은 소리 값이다).

 

아무튼 한 눈에 보아도 중요한 머리 부분을 충실하게 무장武裝을 한 차림새이다. 그러므로 한자변화형漢字變化形에서도 특별하게 머리를 강조한 <가리마*정수리*머리꼭대기 신囟>을 <사람 인儿> 위에 붙였다.

 

나) 나중에 귀방鬼方이나 신방(神方 -요堯시대에 곤鯀이 스스로 족원族源을 따르는 우리들이라는 뜻으로 낮추어 불렀다) 이 동방민족東方民族의 직접 경영지역을 말하게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신神보다 한 단계 높은 의미로 끌어 올린 때문이었다.

처음엔 신농神農을 말하는 [ | ]를 쓰고 신神이나 귀鬼로 읽었음을 이 글의 앞에서 밝힌 바 있다. 같은 음가音價인 괴魁 kuì도 마찬가지 용례用例로 쓰였음이 이 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으뜸*우두머리*큰 어르신*크다*선구자先驅者 괴魁).

 

 

신神은 귀부鬼部의 신(鬼+申)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다) 갑자기 이러한 모양이 등장하며 강조되어지는 까닭은 고신高辛 시기에 사방四方의 족단族團들과 혼인동맹(婚姻同盟 -기록상으로는 4 명의 부인夫人)을 맺어 세력을 팽창한 듯한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사실 동맹同盟도 힘과 위세威勢가 없으면 주체자主體者가 될 수 없다. 의욕적으로 시행한 군사적인 개혁과 강화의 성과를 소리글자로 표현한 것 같다.

 

앞으로 연구해볼 과제로서 이 글자가 유난히 강조한 큰 두 「귀」는 공교롭게도 순 우리말인 [귀]와 같은 소리 값이라는 점이다. [귀가 밝다*귀가 열리다] 또는 [기물器物에 붙은 장식裝飾을 귀*귀신鬼神을 뜻하는 귓것]라고 하는 까닭과도 친근성親近性이 있다.

 

아울러 상투와 같이 머리에 곁들여 붙은 모양을 표현하는 의미와도 비슷한 [물건의 네 귀*두루마리나 저고리의 섶 끝인 귀*더 붙어 있다는 귀 달리다*건물 모퉁이에 세우는 귀기둥*툭 튀어 나온 복사뼈인 귀머리]와 같은 순 우리말의 용례用例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라) 그래서 이 글자는 분명히 <치우蚩尤>와 연결시켜야 한다. 전체의 모습이 두꺼비가 걷는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황제군黃帝軍이 몸서리를 칠만큼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하여 뒤뚱거리면서도 잰 걸음으로 진격하는 형상이 경악스러워 [도깨비 군軍 -이매망량군魑魅魍魎軍]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둑纛]을 <도>라고 한 다거나 <두꺼비-둑아비>의 관계를 볼 때 그 형상을 뒷날까지 간직하여 [귀면와鬼面瓦]로 만든 이유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을 제어制御하여 가두거나 갈무리하는 걸 모두 <둑>이라고 표현하는 우리의 관습慣習을 결코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큰 항아리를 독纛*논둑과 밭둑*둑방*두둑*둑사리 즉 독사리 등).

 

[이의실록貳義實錄]에 <둑은 치우蚩尤의 모습이다. 마름모꼴의 투구에 뿔이 달린 모양으로 활 같은 받침대를 가진 그림>이라고 설명했는데 여러분들도 [귀鬼의 소리글자]와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해내북경海內北經]에서 <귀국鬼國이 이부시貳負尸의 북쪽에 있다. 鬼國在貳負之尸北>고 했다. 즉 성축成祝 부분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들 세력도 어느 시기엔가 북방으로 이동하여 이 무렵에는 귀국鬼國으로 불려진 것을 알게 해준다.

 

신농神農을 말하는 신神과 귀鬼는 이 무렵에 서로 통했으며 성축成祝은 신농계열神農系列로 전욱顓頊의 아들이면서 일목一目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산해경山海經]의 귀국鬼國 대목에서도 <사람의 얼굴에 외눈이다. 爲物人面而一目>라고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누가 [산해경山海經]을 기설잡서奇說雜書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한족漢族의 인식에서만 그렇다. 동방계열에게는 중토에 진입하여 역사적 발전과정을 온 몸으로 거친 치열한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괴강산이 있다. 구시수가 여기에서 나오며...괴귀 이륜이 그곳에 살고 있으며 매와 새매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동쪽에 사층으로 이루어진 항산이 보이는데 유궁귀들이 각기 산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며 살고 있다. 여기에는 요수가 있어 맑게 흐른다...이곳의 천신은 생김새가 소 같은데 여덟 개의 발과 두 개의 머리 말 꼬리를 하고 있다.

 

曰槐江之山 丘時之水出焉...槐鬼離侖居之 鷹鸇之所宅也 東望恆山四成有窮鬼居之各在一搏 爰有淫水其淸洛洛...有天神焉 其狀如牛 而八足二首馬尾 <서차삼경西次三經>

 

 

제곡帝嚳은 전욱顓頊의 뒤를 이은 뒤 주자왕(●子王 -전욱顓頊의 아들로서 큰 어르신)으로 한동안 칭稱하다가 응왕(鷹王 -새 왕이라는 조왕鳥王 즉 새로운 어르신)으로 바꾸었다. 이를 <매와 새매가 둥지를 틀었다>고 기술記述한 것이다.

 

[4층으로 된 항산에 유궁귀들이 나누어 산다>는 이야기는 제곡帝嚳이 4 세력집단을 포용包容하기 위해 부인을 4명 맞은 사실을 뜻하며 이들이 후계後繼를 놓고 치열한 각축角逐을 벌이다가 결국 요堯가 승리한 사건史件을 빗대어 <요수淫水가 여기에서 나와 흐른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음淫을 곽박郭璞은 <요遙 yáo>로 학의행郝懿行은 <요瑤 yáo>라고 읽는다고 해석했는데 모두 요堯 yáo와 발음發音이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자는 <요>와 <음> 이중발음二重發音이다.

 

제곡帝嚳은 전욱顓頊의 딸인 중계(仲癸 -종규終葵)를 정비正妃로 맞았는데 그녀가 지금도 중국인中國人들이 쿠데타를 [종규타終葵打]라고 부를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순舜을 내치고 우禹를 올린 여걸女傑이다. 천신天神이라고 표현된 제곡帝嚳 계열이 <왜 머리가 두 개인지?> 이유가 분명하다.

 

제곡帝嚳은 나중에 공식적으로 <소 -소 머리 곡嚳*뿔 각角>를 족표族表로 내세웠다(금문총집 권3-1684 금문편 1079). 그래서 이 표식表式을 바탕으로 삼아 그린 깃발이 천신天神의 모습으로 설명되어졌을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중차구경中次九經*중차십경中次十經] 말미末尾에 나오는 괴*귀산騩山 guī이 신령神靈과 귀신鬼神 혹은 천제天帝의 거처居處로 기록되었으며 [서산경]의 귀산騩山도 전욱顓頊의 아들이라는 신神 기동(耆童 -곽박郭璞의 노동老童)이 살고 있다.

 

□□□□□□□□□□ [여기서 잠깐] □□□□□□□□□□□

 

이쯤에서 한번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제곡고신帝嚳高辛에 이르기까지 족표族表에서 빠지지 않는 상징象徵이 있다는 걸 벌써부터 짐작하셨을 것이다. 하나는 [부父]로서 읽혀지는 [|]라는 솟대나 권장拳杖의 상징부호象徵符號이다. 이걸 양兩 손이나 한 손에 잡고 있는 형상이다.

 

두 번째는 이것이 변하여 [꼭대기에 삼지창(三枝槍 -동방족의 성수聖數 3 이다)을 단 모양의 깃발 아래에 사람이 공손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족漢族의 엉뚱한 해석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의 부호符號는 순 우리말이나 우리의 전통적인 관습慣習으로 풀어야만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그림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둥이나 솟대 그리고 삼지창三枝槍과 깃발]은 모두 이들 족단族團의 원래 고향인 [동방민족사회구성체東方民族社會構成體]에서 내려준 신표信標들이다. 그것들을 한결같이 받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역설적逆說的으로 알려준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솟대] 는 이렇듯 늘 우리 민족의 중심에 있던 기본 의식과 사유思惟의 기둥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중간에 약해졌다가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생활 속으로 녹아들어가서 뒷날의 당간지주幢竿支柱나 전통 무속인巫俗人의 집 앞에 세워진 장대 깃발에서 그 파편을 알아보게 된다.

 

 

그런데 고신高辛 이후에는 조금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그 뿌리는 그가 새롭게 만든 새 왕(王 -솔개*새매라는 응왕鷹王)이라는 기호記號를 [父○]라는 전통적이고 관례적慣例的인 부호符號와 같이 쓰기 시작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생겨난다.

 

즉 씨칭氏稱이 주고양珠高羊 ● [▵ 아래에 △을 붙이고 그 밑에 ||을 그렸다] [첨부 36] 이었던 전욱顓頊의 맥脈을 잇는 <사위 아들>이라는 점을 밝힌 <형계유兄癸卣*중여준衆艅尊>의 주자왕(珠子王 - ●子王 군고록 권2-3-92)을 사용하였지만 이 시기부터 조금씩 분기점分岐點이 도드라지고 있다.

 

씨칭氏稱이 차츰 변화하면서 <중여준衆艅尊 -왕王 10년에 제작>에서부터 응왕鷹王 즉 새를 뜻하는 추왕隹王> [첨부 37] 으로 새김글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왕王]이라는 뜻이다.

 

어렵사리 신농神農의 뒤를 이은 소호小皥가 황제黃帝 이후의 어지러움을 정리하는 가운데 [조왕鳥王 즉 새로운 왕王]으로 불린 사실을 떠올리게 하지만 속뜻은 많이 다르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부신父辛]으로 서명署名하면서(庚父辛敲 -가재집고록 21책 16*아궤亞簋 -가재집고록 7책 17) 새롭게 나온 사람이라는 [조신祖辛 ] [첨부 38]이라는 칭호稱號가 같이 등장하기 때문이다(상정象鼎 -가재집고록 3책 3). 순 우리말로 풀면 <새로운 씨를 만드는 좆을 가진 씨 아버지-시아버지>란 뜻이다.

 

다른 이름으로 고신高辛 [ 안에 ] [첨부 39]도 나타나는데 전욱顓頊의 씨칭氏稱에서 딴 [고]와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드러내려는 새로운 어른이란 뜻이 짙은 [신辛]을 합친 것이다. 따라서 이 소리글자들의 형성 단계는 [부신父辛 - 고신高辛 - 조신祖辛]의 변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러다가 당연히 다음 어르신이 될 중리 취허(中黎郰墟 -성축成祝의 아들)을 죽이고 자신의 아들인 지摯 zhi에게 자리를 물리면서 내려 준 이름에는 [부父]가 없어지고 <새매 지摯 -손에 새 즉 새매인 지鷙를 잡고 있다>로 달라진다(제주祭酒인 울창주鬱鬯酒를 담는 술통인 족백유鏃伯卣에 새긴 기호記號 글자 가재집고록 18책 15).

 

그러므로 이 당시를 전후前後로 하여 등장한 <새 한 마리*짝에서 떨어져 나갈 척隻 zhī>과 <제곡帝嚳이 아들들에게 이름으로 내린 뻐꾸기나 비둘기 같은 새 추隹 zhuī>는 모두 같거나 비슷한 소리 값이다.

 

 

새 한 마리를 쥔 것을 척隻이라하고 두 마리를 쥔 것을 쌍雙이라 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

 

 

지摯를 제거하고 자리를 빼앗은 요堯는 반발을 의식했는지 처음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부을父乙]이란 이름을 사용한다(책책부을정冊冊父乙鼎 -군고록 권1-3-76). 그러나 어르신이 된 3년부터 스스로 [父○]라는 칭호稱號대신 천군天君

 

[첨부 40] 이란 호칭互稱을 사용하고 있다(병오정丙午鼎 가재집고록 5책 14-1).

 

반면에 자리를 빼앗긴 전욱계顓頊系에서는 여전히 [부父]를 족표族表로 삼고 있음을 알려준다(오회吳回 성盛의 아들 육종이 쓴 부용父甬 가재집고록 19책 21). 결국 요堯를 밀어내고 뒤를 이은 순舜이 [부주父珠 -부알 ] [첨부 41]라는 전욱顓頊의 호칭呼稱을 족표族表로 다시 회복한다(역대종정이기관식 권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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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순舜 무렵에 정립定立된 [진陳 chén]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사람이 꿇어 앉아 동쪽을 등에 짊어진 모양 즉 머리부분이 ● 인 을 등에 짊어진 모습 ] [첨부 42]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참*늘어설 진>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陳 chén>

 

금문총집 권5-3153 과 권8-5851

 

 

가) 공자孔子가 중국 역사를 요堯에서부터 기술記述한 이유는 뻔하다. 위에서 본 족표族表와 씨칭氏稱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동방제국東方帝國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꿈틀거린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 그러나 이런 시도는 곧바로 중토中土 안에서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던 동방계東方系 세력들에 의해 좌절되었으며(특히 요 시기에 빈번해진 묘족苗族과의 갈등과 알력관계를 살펴보라) 그런 과정에서 [순舜]이 등장하여 옛 부호符號들을 모두 회복시키고 있다.

 

순舜이 권력을 쥔 다음 곧바로 자기 이름글자로 만든 이 부호符號야말로 그 무렵의 시대적 상황을 대표적으로 말해주는 좋은 본보기이다(사실 순舜 shùn이란 글자도 말을 잘 들어 순하다*착한 사람이라는 순 우리말을 그대로 살린 소리글자인데 한족漢族이 엉뚱하게 왜곡歪曲한 것이다).

 

동東을 한족漢族들은 <무엇을 묶은 보따리라든지*나무에 해가 걸린 것>으로 해석하는데 조금 어색하다. 그림을 보면 금방 우리의 생각대로 읽히기 때문이다. 즉 가운데의 터전(밭 전田)에 솟대를 아래위로 장식한 모양이다.

 

다른 이름인 [해 떠오를*받들 승昇] [두 손으로 해 인 를 받드는 모양] [첨부 43]의 원래 소리글자도 비슷한 의미인데 [동방東方에서 떠오르는 해를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으로서 동방주의자東方主義者인 자신이 경영하는 터전을 충실하게 맡는다는 각오이다.

 

 

다) 원래의 소리 값은 [참 또는 진]으로서 <참말*참하다*참기름이나 진하다*진국이다*진짜다*진가민가하다>가 그 사용례使用例들이다. 즉 [참을 따른다 또는 진짜에게 기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표기에서 [진眞 zhēn*진辰 chén*신神 shén*진震 zhén*진陳 chén]이 모두 같은 음가音價인 이유가 명확하다(중토中土의 동방족東方族 영역을 처음엔 신방神方이라 불렀다).

 

라) 이 글자로 말미암아 <너무 진하여 끈끈한 사이>라는 뜻으로 [친親]이 생겨난다. 따라서 먼저 <친하다>라는 순 우리말이 나타나고 이를 [친親]으로 채용採用한 것이다. 아무튼 [진陳]을 동방東方으로 풀면서 [진震*진眞*진辰]과 같이 취급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전욱이란 나라가 있는데...또 종산(같은 zōng인 종규終葵의 산이다)*성산(같은 shèng인 성축의 산이다)*학산(hè로 해의 산이다)*진주산(진陳으로 순舜의 산이다)*동주산(동東으로 동방족의 산이다)이 있다. 또 백수산이 있어...곤오의 군대가 목욕한 곳이다. 有國曰顓頊...又有宗山 又有姓山 又有壑山 又有陳州山 又有東州山 又有白水山...昆吾之師所浴也 <대황남경大荒南經>

 

 

이쯤에서 우리가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치우蚩尤-황제黃帝 전역戰役] 이후 중토中土는 비록 족원族源은 같아도 신농계神農系와 소호계小皥系로 대별大別되었다. 즉 신농神農-전욱顓頊과 소호小皥-제곡帝嚳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소호小皥가 조왕鳥王으로 제곡帝嚳이 응왕鷹王이나 추왕隹王으로 말하여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소호小皥는 모든 관직官職과 고을나라 어른들을 새의 이름으로 내렸고 제곡帝嚳은 자기의 아들들에게 올빼미나 새매(송골매) 혹은 비둘기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전욱顓頊은 아들들에게 양*돼지*호랑이*여우*말 등의 상징을 주었으며 순舜은 그런 전욱顓頊의 아들인 거호巨互의 자식이다. 중여衆艅 곤鯀이 삼촌이기도 하다.

 

전욱顓頊은 성축成祝*구축瞿祝*중여衆艅 곤鯀*여목余目*거호巨互*승축乘祝 즉 양지기羊止己*용甬과 딸인 종규終葵가 있었으며 성축成祝의 아들이 오회吳回 성盛이고 소호小皥는 교극蟜極과 칭稱이 있었으며 교극蟜極의 아들이 제곡帝嚳이다.

 

 

아무튼 위의 원문原文 기록에 붙인 필자筆者의 해석과 지금까지 말한 혈통계보를 서로 대조해보면 왜 백수산白水山에서 곤오昆吾의 군대가 목욕을 하게 되었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곤오昆吾는 곤鯀와 오회吳回의 연합세력이며 백수산白水山은 여목余目의 아들인 백익伯益의 산이기 때문이다.

 

 

35. 순舜이 <자신을 도와 준 세력과 같은 뿌리이며 이를 옹호擁護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표기表記>한 [묘苗 miáo]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새싹이 자라나는 자신의 땅을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그림 ] [첨부 44]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모*새싹 묘>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묘苗 miáo>

 

금문총빕 권1-738

 

 

[설문해자說文解字]

 

이 소리글자는 설문說文에 없으며 비슷하게 생긴 부호도 나타나지 않고 연관지어 설명한 기록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족漢族들의 인식 밖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이다.

 

 

가) 순 우리말로서 <모심다의 모*모 나다 의 모*솟아난 뫼의 모*각角 지게 만든 두부나 묵을 세는 단위인 모*뾰족한 창槍을 말하는 모矛*패거리의 우두머리인 모가비*몸에서 돌출한 목을 뜻하는 모가지의 모*목재木材의 모서리를 깎아 둥글게 하는 행위인 모걷기*뾰족한 침針을 가진 모기*모눈종이의 모*모질다의 모*날카로운 각을 지닌 모래의 모*연장 가운데 하나인 모루의 모*모퉁이의 모>와 같은 의미이다.

 

2) 이들 세력은 오래 전부터 중토中土 안에서 확산擴散되어갔는데 이 무렵 순舜의 생각에 손을 들어줌으로서 권력을 쥐게 한 전환점轉換點을 만들어 주어 모두가 같은 둥지 안의 동아리로서 든든하게 서로 받쳐준다는 뜻으로 소리글자가 생겨난 것이다.

 

소리 값은 <모 -冒 máo 혹은 mò*모毛 máo*모牟móu 혹은 mù*모慕 mù가 모두 같다>에서 그 형상形象은 이 세력들이 머리를 갈무리하는 솜씨였던 [상투]에서 착안着眼된 것임을 이미 설명했다.

 

다) [순舜]의 이러한 철저한 동방회귀주의東方回歸主義는 그가 쓴 모든 소리글자에서 일관一貫되게 나타나는데 그래서 문자文字도 역사歷史의 한 부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❶ 맨 처음 씨칭氏稱은 자신의 네모진 땅을 네 개의 발(같은 마음으로 뭉친 세력들)이 서로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보호하는 모양인데 <위衛 wèi*위偉 wěi*韋 wéi > [첨부 45] 로 읽는다(역대종정이기관식 권3-55).

 

바로 여기에서 원래 <제국帝國을 나누어 맡은 어르신>이라는 우리말 [한]이 만들어진다. [조선朝鮮]을 의미하는 <조朝>에서 [월月 대신 위韋 wéi]로 바꾼 글자(韓 hán -우리는 하나이다. 란 뜻이다)이다.

 

❷ 또 다른 이름은 지극히 동방주의자東方主義者였던 희화羲和와 전욱고양顓頊高陽의 족칭族稱인 <발 足>을 오른쪽으로 뒤집어서 머리에 얹거나 (가재집고록 22책 22와 13책 14*금문총집 권7-5425) 두 개를 서로 엇갈린 모양으로 하여 나란히 쓰거나(천舛 chuăn -금문총집 1권 790) 지붕 아래에 놓은 소리글자로 그 시대로 되돌아갔음을 말해주고 있다.

 

❸ 이를 더욱 입증해주는 이름은 [신辛]로 풀이되는 글자로서 요堯 이전의 [신神 |이나 솟대인 삼지창三枝槍 혹은 기둥이 중심을 이루면서 가운데에 <터전*밭 전田>을 꿰뚫은 꼭대기에 ▼을 단 기본 구성]을 극적으로 부활시킨 점이다(금문편 1160).

 

이 기호글자가 훗날 동방계열東方系列 국가였던 상(商 shāng-성님 나라라는 ) [첨부 46] 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매우 특별하다.

 

❹ 이런 관념은 극에 달하여 마침내 [사위아들 자子 zĭ]를 만든 모양에서 맨 위에 신농神農을 뜻하는 <귀신 귀鬼>를 붙이면서 노골적으로 받든다는 <기댈 자리 궤几 ji > [첨부 47] 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에 이른다(군고록 권 2-1).

 

더욱 분명한 사실은 그가 있던 시기에는 서로 마주 앉아 있던 두 사람의 모양이 완전하게 등지고 돌아 선 그림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요堯와는 뚜렷하게 노선路線의 차별을 긋는다는 뜻으로 보여 진다. 때문에 이 글자는 요堯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 [우禹]에 이르자 가장 천박淺薄한 [쥐 서鼠]로 읽혀지고 말았다(군고록 권2-1).

 

라) 아울러 요堯 앞서 까지 주류主流였던 전욱顓頊의 계통系統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음을 내세우고 있는 사실도 모두 그의 이름자에서 나타난다. 한족漢族의 기록에 공식적公式的으로 등장하는 [유우有虞의 우虞]가 <구축瞿祝의 다른 이름인 속호束虎의 호虎와 오회吳回의 오吳를 합친 글자]이며

 

[저씨貯氏 우순虞舜의 저씨貯氏] 또한 <자신들을 저희...로 부른 곤鯀>의 칭호稱號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연確然하다. 필자筆者가 원래는 [여黎 li]로 본 [화華]를 본보기로 하여 지은 이름인 [중화中華-작은 리黎 li]도 마찬가지이다. 결정적으로 또 다른 이름인 [위衛*위韋 wèi]에서 보이는 네 개의 발 족足은 이 같은 정황에 못을 박아준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부분 참고]

 

삼묘국이 적수의 동쪽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서로 붙어 다닌다. 혹은 삼모국이라 한다. 三苗國在赤水東 其爲人相隨 一曰三毛國 <해외남경海外南經>

 

위국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기장을 먹고 살며 호랑이*표범*곰*말곰 등 4종류의 짐승을 부린다. 有蔿國黍食使四鳥虎豹熊羆 <대황동경大荒東經>

 

대황의 한 가운데 부정산이 있다...몸둥이가 셋인 사람이 있다. 제준의 아내인 아황이 삼신국을 낳았으며 성이 요씨이다...순이 목욕하던 곳이다. 大荒之中有不庭之山 有人三身 帝俊妻娥皇生此三身之國姚姓...舜之所浴也 <대황남경大荒南經>

 

 

[순舜]의 첫 번째 이름이 <위衛 wèi>라는 건 이미 설명했다. 위蔿 wěi와 위衛는 발음發音이 같다. 순舜이 세력을 잡은 다음 그를 도운 묘족苗族들의 어른으로 인정받은 사실을 [대황남경大荒南經]은 알려주고 있다.

 

 

교경국이 동쪽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종아리가 엇갈려 있다. 交脛國在其東 其爲人交脛 <해외남경海外南經>

 

효양국이 북구의 서쪽에 있는데...발 뒤꿈치는 반대로 향하였다. 梟陽國在北朐之西...反踵 <해외남경海外南經>

 

 

순舜의 다른 이름인 <엇갈릴*어그러질 천舛>에서 나온 고을 나라들인데 상고금문上古金文은 서로 발이 엇갈려 있는 모양이다. 교경交脛이란 나라 이름은 그걸 설명해주는 것이다. 근처에 순舜의 무덤이 있다는 기록도 의미심장하다.

 

 

모산의 끄트머리에 이른다. 至于旄山之尾...<남차삼경南次三經>

 

남쪽으로 300리를 가면 모산에 이른다. 又南300里 曰旄山 <동차사경東次四經>

 

제여산이라는 곳인데...제여수가 나와 동쪽으로 모수에 흘러든다. 曰諸餘之山...諸餘之水出焉而東流注于旄水 <북산경北山經>

 

 

앞서 말했듯이 [모旄 máo는 동방계열의 상징인 솟대에서 발전한 족단族團 세력들의 표表와 정체성正體性을 나타내는 깃대 장식이다. 후에 둑纛으로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를 뜻하는 지명이 [산경山經]의 곳곳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지금도 남아있는 우리말에 <우뚝 서다 - 오뚜기>는 어르신의 주독(主纛 -솟대에서 변화한 족표기族表旗)을 높이 세운다. 에서 나왔다. 여기에서 이끌린 다른 어휘御諱들이 <꼭두서니*마루 둑 즉 말뚝*굴 둑 즉 굴뚝> 등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 볼 문제는 왜 하필 <숫양>를 [모양牡羊]로 표현하였는가? 이다. 바로 뿔이 솟아나는 모양과 형상이 마치 싹이 나는 것이나 새싹(묘苗)과 같기 때문이다. 이 부호글자가 바로 양羊과 같은 들짐승에서 나왔으니 틀림없이 유목사회에서 만들어진 언어이다.

 

 

대황의 한 가운데 융보산이 있다...견융이란 사람이 있다. 황제가 묘룡을 낳고 묘룡이 융오를 낳았으며 융오가 농명을 낳고 농명이 흰 개를 낳았는데 암수가 있다. 이것이 견융으로 육식을 한다. 붉은 빛을 한 짐승이 있는데 말 같은 생김새에 머리가 없다. 이름을 융선왕시라 한다.

 

大荒之中 有山名曰融父山...有人名曰犬戎 黃帝生苗龍 苗龍生融吾 融吾生弄明 弄明生白犬 白犬有牝牡 是爲犬戎肉食 有赤獸馬狀無首 名曰戎宣王尸 <대황북경大荒北經>

 

 

묘민苗民이 원래 북방에서 시작하여 서부지역과 남쪽으로 확산되어 자리 잡았으며 견융犬戎이 서편으로 간 묘족苗族에서 기원起源되었고 모두가 시대만 달리하여 변화한 같은 계보系譜임을 알려주는 아주 귀중한 기록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① [해내경海內經]에서 곤鯀의 출자出自를 밝혀주는 중요한 문구文句로 <黃帝生駱明 駱明生白馬 白馬是爲鯀>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위 글의 <融吾生弄明 弄明生白犬 白犬(有牝牡)是爲犬戎>과 설명구조가 똑같다. [산해경山海經]에서 족원族源의 배경을 말할 때 쓰는 전형적인 기록 방식이다.

 

즉 견융犬戎이 농명弄明과 융오融吾에서 비롯되어졌음을 이야기해주는데 [농弄 nòng*lòng]은 신농계神農系의 농農 nóng과 발음發音이 같고 같은 소리 값인 융融 róng은 축융祝融을 오吾 wú는 그 묘예苗裔인 오회吳回 wú를 가리킨다.

 

그래서 융戎 róng에 앞서 융融 róng을 쓴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백견白犬에 암수가 있다함을 군더더기로 덧붙인 이유는 이들의 원류源流인 묘인苗人들이 서북과 동남으로 갈려진 걸 말해준다. 신농神農이 신용神龍 lóng과 신융神戎으로도 불려진다는 건 이미 말했다.

② 결국 이 세력군勢力群들은 [신농神農-묘룡苗龍-축융祝融-오회吳回-견융犬戎]으로 이어진다는 걸 이 기록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융融*戎의 아비산 즉 융부산融父山이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③ [융선왕시戎宣王尸]는 이곳으로 와서(요堯 시기에 중여衆艅 곤鯀의 묘예苗裔들과 그 집안들은 다시 서북방인 유주幽州 지역으로 밀려났다) 묘인苗人 집단을 견융犬戎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을 말해준다.

 

그가 신농계神農系임은 선宣 xuān이 상고금문上古金文에서 사람이 산위에 있을 선仚 xiān(지금은 선仙 xiān으로 달라진다)과 발음發音이 비슷하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높이 솟을 역屴이 고금문古金文에서는 솟대를 꽂은 모양을 아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머리가 왜 없다고 했는지?> 이제 짐작이 갈 것이며(우두머리가 중심 권력층에서 설 자리를 잃고 해체되어가는 족단族團의 운명) 붉은 빛을 한 짐승은 밝은 민족인 적적赤狄으로 표현되는 적狄을 말해준다.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종종 족단族團 세력의 계보系譜가 끊기거나 주도 세력에서 밀려났을 경우 그 집단의 상징물을 내세워 <머리가 없다>고 하는 기술記述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위 기록에서 황제黃帝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④ [대황북경大荒北經]에서 거듭 서북해의 흑수黑水 북쪽에도 묘민苗民이 있으며 전욱顓頊의 묘예苗裔로 이야기하고 동방계열인 이씨釐氏 lí라고 설명한 까닭이 분명하게 밝혀진다.

 

 

36. 순舜에 이르러 완전하게 자리 잡힌 [일日 ri]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우리나라 태극기의 가운데 모습을 닮은 형태 ] [첨부 48]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해*새 일>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日 ri>

 

 

[설문해자說文解字]

 

일은 가득차있다는 뜻이다. 태양의 정수는 어그러지지 않는다. ○과 ㅡ 로 구성되었다. 상형이다... [첨부 48]은 고문으로 상형이다. 日...實也 大昜之精不虧 從○ ㅡ 象形... [첨부 48]古文象形

 

 

가) 순 우리말로 [해와 새]는 서로 통한다. 그래서 소리글자는 <○ 속에 새를 말하는 을(乙 ~)이 들어가 있다. 이러한 관념 속에서 이윽고 <태양속의 신조神鳥인 세발 까마귀라는 삼족오三足烏*양오陽烏>가 등장하게 된 바탕을 이룬다.

 

 

글자 모양 가운데 까마귀가 있다. 마침내 무후武后가 <네모 안에 을乙>자字로 잘못 만들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단옥재의 주注>

 

 

나) 구태여 <까마>라 하여 <귀신 귀鬼=신神>과 연결시키는 이유가 분명하다. 이 글자가 왜 변음變音이 되었는지? 는 분명하지 않으나 처음에는 [새*해 -가라 새]라는 소리 값으로 읽혔음은 확실하다.

 

다만 <새>가 들어가면서 일반적 지칭어指稱語인 [이와 리 -부엉이*조롱이*수리*오리] 로 대표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앞으로 더욱 연구해만 할 과제課題 가운데 하나이다.

 

다) 이 부분에서 생각의 전환轉換이 필요한 것은 바로 [갈 지之 zhī] 의 출현이다. 한족漢族은 이 글자를 [멈출 지止 zhĭ] 部에 억지로 구겨 넣는데 금문金文의 형상이 전혀 다르고 왜 이런 부호 글이 나타났는지?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다.

 

동방민족의 관념으로는(여러분들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새 을乙의 위에 ●이 있는 그림>이다. 소리 값도 [~지]로서 하늘의 뜻을 알리는 전달자인 새의 인도에 따라 중토中土에서 집단을 이끌어 나아갈 『어른인 지』로 보아야 보다 정확하다. 용례用例가 완전히 바뀐 글자의 모범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해-새-개]의 순 우리말 어군語群에 바탕을 두고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새는 조鳥로도 표현되었으니 물론 그 처음은 소호小皥 때부터 뿌리가 내렸지만 완성은 동방계열의 관습과 사유思惟를 복원하려고 노력한 순舜이 이루었다.

 

 

대황大荒의 한 가운데 일월산日月山이 있다. 신神이 있는데 하늘의 지도리인 오거천문吳姖天門으로 해와 달이 지는 곳이다. 신神이 있어 사람의 얼굴에 팔은 없고 두 발이 거꾸로 머리에 붙어 있는데 허(噓 -해이다)라고 한다. <대황서경大荒西經>

 

번우가 해중을 낳고 해중이 길광을 낳았으며 길광이 비로소 나무로 수레를 만들었다. 番禺生奚仲 奚仲生吉光 吉光是始以木爲車 <해내경海內經>

 

서해의 안쪽 유사의 한 가운데 학시라는 나라가 있다. 西海之內 有沙之中 有國名曰壑市 <해내경海內經>

 

대황의 한 가운데 합허산이 있는데 해와 달이 돋는 곳이다. 大荒之中 有山名曰合虛 日月所出 <대황동경大荒東經>

 

동해밖에 대학이 있는데 소호의 마을이 있으며 전욱을 이곳에서 키웠다. 東海之外大壑 小皥之國 小皥孺帝顓頊于此 <대황동경大荒東經>

 

 

󰊱 [해]는 태호太皥 복희伏羲를 거쳐 신농神農때부터 동방족의 사유思惟를 본격적으로 이어받아 중토中土에서 사용하였으며 본국本國과 구별하기 위해 <일日 혹은 지之>이란 소리글을 만들어 낸 듯하다. 그가 경영하고 있을 무렵에 같은 뜻에서 이끌어 낸 [ 일 | *일 ㅡ ]과 지之가 모두 등장한 사실로서도 추측이 간다.

 

해가 뜨는 이른 아침*이른 새벽의 [이른 -옛말은 일찍이의 『일*이르』이다]이 가장 모범적인 용례用例이며 <일찌감치*잠을 설치고 일찍 일어나는 걸 일깨다*이른 더위를 일더위*초목草木이 일찍 영그는 걸 일되다>하는 등은 이 소리글에서 확장된 것으로 보여 진다.

 

위 글에서 허噓 shì나 해중奚仲 xī은 모두 버금가는 해(중仲)을 말하며 [새]로 이끌리는 과정의 소리 값을 지니고 있다. [지之]가 새를 의미연결기호로 삼은 까닭도 마찬가지이다. 순舜은 신농神農 계열로서 전욱顓頊의 자식인 거호巨互 hù(해이다)가 아비이고 순舜의 아들이 번番 혹은 반潘이다.

 

[해경海經]에서는 명확하게 원향原鄕에서 큰 해가 나오거나 나라가 있고(대황동경大荒東經의 합허合虛 hé*gě xū로 해의 모든 소리 값의 진열장이다*대황동경大荒東經의 대학大壑) 진출확장지인 서방의 일월日月에서 작은 해(허噓)가 지거나(머문다) 고을 나라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준다(해내경海內經의 학시壑市). 그러한 작은 해가 일日과 지之로 표기表記된 듯하다.

 

 

큰 게가 바다 한 가운데 산다. 大蟹在海中 <대황북경大荒北經>

 

명조읍이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 明組邑居海中 <대황북경大荒北經>

 

 

느닷없이 출현하는 큰 게(해蟹 xiè)는 해석이 분분한데 거란을 계단(契丹 xiè -단丹은 우리 어군語群으로 더 설명이 필요 없다)으로 쓰고 해족단奚族團이 족원族源이란 설說도 비로소 풀리는 아주 중요한 구절句節이다. 그리고 바로 [산해경山海經]이 이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부근에 조선朝鮮과 대인지시大人之市라는 이름이 특별하게 언급되고 있으며 직할直轄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열고사(列姑射 -열列 hé 사射 shè)와 야고국射姑國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밝은 해 마을이라는 명조읍明組邑이 이들의 고을일 것이다.

 

여기에서 계契 xiè는 제곡帝嚳 시대부터 우禹 무렵까지 소호小皥의 딸인 칭稱을 이어 막강한 실세實勢로 군림하면서 소호小皥 집안을 실질적으로 이끌던 중계(仲癸 -종규終葵)의 계癸 guĭ나 개蓋 gài*gĕ와도 관련된다.

 

 

염장국이 있다. 새의 머리를 한 사람이 있는데 이름을 조씨라고 한다. 有鹽長之國 有人焉鳥首 名曰鳥氏 <해내경海內經>

 

유사의 서쪽에 조산이 있고 세 개의 강이 여기에서 흘러나온다...유사의 동쪽 흑수의 서쪽에 조운국과 사체국이 있다. 流沙之西 有鳥山者 三水出焉...流沙之東 黑水之西 有朝雲之國 司彘之國 <해내경海內經>

 

나라가 유사 가운데에 있는 것들은 돈단과 새환이다. 國在流沙中者埻端璽喚 <해내동경海內東經>

 

유사의 서쪽에 조산이 있다. 流沙之西 有鳥山者 <해내서경海內西經>

 

어떤 사람이 지금 호랑이 꼬리를 깨물고 있는데 이름을 조상시라 한다. 有人方齒虎尾 名曰祖狀尸 <대황남경大荒南經>

 

 

󰊲 [새환璽喚]은 <밝은 새 고을 -새璽 sāi*sài*sè는 표현 그대로 새이며 환喚 huàn은 환桓과 발음發音이 같다>이란 이야기이며 그 마을들이 변경(邊境 -돈단埻端 zhūn은 중토의 아비인 제준帝俊의 뛰어날 준俊 jùn과 발음發音이 같으며 과녁이 꽂히는 끄트머리라는 말이다)을 구성하고 있다는 기록이다.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특별히 바람을 이야기할 때는 어떤 세력의 확장이나 진입을 은유하는 때가 많은데 [남산경南山經]에서 괴조怪鳥인 옹(顒 -동북세력인 우씨禺氏의 주력主力인 예족濊族으로서 머리나 목덜미를 말하는 혈頁 yè을 기본 요소로 한다)과 함께 언급한 조풍條風도 동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하고 있다(곽박郭璞).

 

[대황남경大荒南經]의 조상시朝狀尸는 남방한계점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조鳥 diāo]는 [해내경海內經]에서 기본적으로 규정한 학시壑市 hè와 같이 말한 조산鳥山*조산肇山 zhào을 근본으로

 

[서차이경西次二經]의 조위산鳥危山과 조위수鳥危水*[서차사경西次四經]의 조산鳥山*[해내남경海內南經]의 조제국(雕題國 diāo-왕일王逸은 초사楚辭 초혼招魂의 주注에서 사람들이 이마에 그림을 그린다. 라고 풀었으나 동방계에 관한 인식부족이다. 조雕는 원래 동방계의 말로 독수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중차오경中次五經]의 조곡산朝谷山*[중차십일경中次十一經]의 조가산朝歌山 zhăo*[동산경東山經]의 조석산曹夕山*[북산경北山經]의 조간수條菅水 tiăo 등의 지표지명指標地名은 소호小皥 때의 영향력이 비치는 지역들을 말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괴수怪獸와 괴조怪鳥도 대부분 새와 연관지어서 설명한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산경中山經]의 본문本文에 보이는 조당彫棠 diāo은 [해내서경海內西經]에서 개명수開明獸와 같이 등장하는 조질수鳥秩樹와 마찬가지로 소호小皥 계열의 당수棠樹이다.

 

 

개산국이 있다. 有蓋山之國 <대황서경大荒西經>

 

개유산이 있다...푸른 말이 있고 이름을 삼추라고 하는 붉은 말도 있다. 有蓋猶之山者 有靑馬 有赤馬名曰三鵻 <대황남경大荒南經>

 

하주지국과 개여국이 있다. 有夏州之國 有蓋余之國 <대황동경大荒東經>

 

개국이 거연의 남쪽 왜의 북쪽에 있다. 蓋國在鉅燕南倭北 <해내북경海內北經>

 

흉노*개제국*열인국이 모두 (모마旄馬의) 서북쪽에 있다. 匈奴 開題之國 列人之國並在西北 <해내남경海內南經>

 

󰊳 [개]는 전욱顓頊-순舜 시기에 나타난 소리 값일 것으로 여겨진다. 개유산蓋猶山 부근에 전욱顓頊의 고을과 묘예苗裔들의 지표지명指標地名인 성산成山*진주산陳州山*학산壑山과

 

순舜의 아비인 거호巨互와 우애가 깊은 승축乘祝의 경영지를 말해주는 삼청마三靑馬와 삼추三鵻가 등장하며(남유산南類山) 같은 집안인 제곡帝嚳과 순舜을 장사지낸 악산岳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개산恝恝山 부근에도 틀림없이 성산成山과 순舜이 목욕하던 부정산不庭山을 비롯해 그의 묘예苗裔인 질민국臷民國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해내서경海內西經]에서는 개명수開明獸가 상당히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위 기록에서 보이는 각 방향 지역의 중심부와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 개산국蓋山國은 전욱顓頊 계열인 일비국一臂國*삼면국三面國*호인국互人國*어부국魚婦國과

 

개여국蓋余國은 이름 자체로 여余 계열임을 나타내면서 곤민국困民國을 비롯해 커다란 게(해蟹)*양곡湯谷의 부목(扶木 -부상수扶桑樹)에 있는 해와 연결된다. 개제국開題國은 이미 본문本文에 열거되어 있으니 두 말이 필요 없다.

 

특이한 점은 [남산경南山經]을 보면 모산(旄山 -솟대 장식 깃발이 서있는 중심산)에서 불어 나오는 바람을 특별하게 개풍凱風이라고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개凱 kăì*蓋 găì*개開 kāì*개로 읽을 때의 개恝와 게(해蟹)는 모두 <개>와 발음發音이 같거나 비슷하다.

 

 

37. 순舜의 시기에 다시 등장하는 [상商 shāng과 기己 qi]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신辛 아래에 신농계열神農系列인 ▽▽가 붙은 모습인 상商과 깃대를 상징화象徵化한 기己 ][첨부 49]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집안의 성님이라는 상과 족원族源을 간직한다는 기>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商 shāng과 己 즉 旗 qi>

 

군고록 1-3-64와 권2-3-5

 

 

[설문해자說文解字]

 

기는 중궁이다. 만물이 오그라들어 구부러진 모양을 상징하였다. 기는 무를 잇는다. 사람의 배를 상형하였다. 己...中宮也 象萬物辟藏詘形也 己承戊 象人腹

 

 

가) 기본 골격인 [신辛]은 순舜이 다시 부활시킨 <솟대>를 조금 달리 다듬은(머리 부분이 ∇로 되었다. 고신高辛의 신辛은 그 위에 ●이나 ―을 덧붙였다) 소리글자이다. 그 아래에 신농계神農系 글자인 <가래 조鉏>를 덧붙였다.

 

나) 순舜은 아들인 <상균商均>에게 이 이름을 내렸는데 글자 그대로 [상商]은 <집안의 형兄으로서 제의祭儀를 떠맡은 사람인 성님>이란 뜻이다. 그래서 뒷날 순舜이 죽은 다음 동생인 상象이 그의 무덤을 지켰다는 일화逸話도 만들어졌다.

 

다) 자리를 이은 그 해에 곧바로 그리고 스스로 지은 씨칭氏稱이 [기] 인데 이를 한족漢族들은 <기己 ji>로 해석했지만 모양으로 보나 그 부호符號를 굳이 선택한 까닭(형님인 오회吳回의 것을 옆으로 뒤집었다)으로 보나 [기旗 qi]로 불러야 옳다.

 

왜냐하면 형태가 <긴 솟대 Ψ 의 목 부분에 매단 깃발이 깃대를 S 자字로 휘감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라) 이런 노골적인 복고주의復古主義는 마침내 이를 못마땅하게 본 외가外家 쪽 사람들을 등에 업은 우禹의 쿠데타로 이어졌다(큰 어미인 종규終葵가 주동이 되었으므로 지금도 중국中國에서는 쿠데타를 <종규타終葵打>라고 한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적수의 동쪽에 창오야가 있는데 순과 숙균을 장사지낸 곳이다. 赤水之東 有蒼梧之野 舜與叔均之所葬也 <대황남경大荒南經>

 

서주국이 있는데 성이 희씨이다. 어떤 사람이 지금 밭을 갈고 있는데 이름을 숙균이라고 한다. 제준이 후직을 낳고...그의 아우 태세가 숙균을 낳았다. 숙균은 부친과 후직을 대신하여 온갖 곡식을 심어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다. 有西州之國姬姓 有人方耕名曰叔均 帝俊生后稷...稷之弟曰台璽生叔均 叔均是代其父及稷播百穀 始作耕 <대황서경大荒西經>

 

숙사라는 나라가 있는데 전욱의 자손이다. 有國名曰淑士 顓頊之子 <대황서경大荒西經>

 

숙촉국이 있다. 전욱의 자손으로 기장을 먹고 산다. 有叔歜國 顓頊之子 黍食 <대황북경大荒北經>

 

계곤산이라는 곳이 있어...발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자 머무는 곳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숙균이 황제에게 말하자 그녀를 적수 북쪽에 살게 하고 그리하여 숙균은 밭농사의 책임자가 되었다. 有係昆之山者...魃不得復上所居不雨 叔均言之帝後置之赤水之北 叔均及爲田祖 <대황북경大荒北經>

 

 

󰊱 순舜의 자식들은 상고금문上古金文의 기록상으로는 반(潘-번番)*상균商均 그리고 딸로서 우禹의 비妃가 된 사모신司母辛이다. 한동안 순舜의 동생인 상象이 맡았던 역할을 이어받은 상균商均 shāng도 [집안을 이끄는 성님]이라는 뜻을 이름 속에 포함하고 있다.

 

한 족단族團을 이끌어가는 <아재비>로서 다르게는 숙균叔均이라 불렸던 사실은 원가袁珂가 [대황남경大荒南經]에 나오는 창오야蒼梧野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숙叔과 상商은 같은 발음發音의 변화로 순舜의 아들 상균商均이다>라고 해석한데서도 입증立證된다.

 

한 세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집안을 걸머쥐어야 하는 책임자로서 일가一家의 상징인 족표기族表旗를 잡고 있는 사람이라는 기旗가 바로 그래서 아들이나 후손後孫에게 붙여지는 [기己나 기杞 또는 기棄]라는 이름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금문계보金文系譜로 보면 후직后稷은 제곡帝嚳의 아들이고 전욱계顓頊系인 순舜의 아들이 상균商均이다. 물론 크게 보면 같은 족원族源이므로 제준帝俊의 묘예苗裔라고 한 설명은 이해된다. 이렇게 흔들린 까닭은 다른 이름으로 모두 [기]라는 칭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계곤산係昆山]은 곤昆을 잇는 성산成山이란 뜻이니 동방계열이다. <숙균이 황제에게 말했다>고 했지만 본문本文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황제黃帝를 말할 때는 모두 황제黃帝로 표기表記하고 있으며 이 대목만 특별하게 제帝로 표현한다. 또한 한족漢族 사가史家들도 제帝라고 말할 때는 천제天帝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게 통설通說이다.

 

 

따라서 순舜의 묘예苗裔인 상균商均의 행적行績은 ❶ 아비와 같이 서쪽에 있다가 ❷ 권력을 잡은 순舜이 아우인 상象을 남방으로 보내어 그곳을 관리하게 할 때 함께 농경農耕을 일으킨 다음 ❸ 힘을 잃자 북부로 이동하여 뒷날 상商이라 나라의 밑거름이 된 고을을 경영하였음을 알게 해준다.

 

역사 기록의 빠진 부분을 [산해경山海經]이 충실하고 또 친절하게 보충補充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 중심지역은 어디였을까? 기록을 훑어보자!

 

 

9개의 언덕이 있는데 물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다. 이름을 도당구*숙득구*맹영구*곤오구*흑백구*적망구*참위구*무부구*신민구라고 한다...나무가 있는데...건목이라 한다. 키가 백길에 가지가 없으며 위는 9갈래로 꼬불꼬불 구부러져 있고 아래는 9차례 뒤얽혀 서려있다...태호가 하늘로 오르내렸고 황제가 키우고 지켰던 나무이다.

 

有九丘以水絡之 名曰 陶唐之丘*叔得之丘*孟盈之丘*昆吾之丘*黑白之丘*赤望之丘*參衛之丘*武夫之丘*神民之丘 有木...名曰建木 百仞無枝有九欘下有九枸...太皥爰過黃帝所爲 <해내경海內經>

 

 

중토中土에 확장된 동방 계열의 영역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구문句文이다. 상징수象徵樹인 건목建木이 <키포인트>를 이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동방족의 중심지역에 늘 등장하는 삼상무지三桑無枝에서 변화한 신목神木이다). 가장 처음 진입進入한 태호太皥가 동방제국과 각별하게 소통疏通하고 있었음을 특별히 언급해준다.

 

두 번째 핵심은 <9개의 언덕>인데 ① 도당구陶唐之丘는 물론 요堯의 출자出自로서 뒷날 당唐지역인 산서山西와 섬서陝西 중남부이고 ② 숙득구叔得之丘는 상균商均(숙균叔均)이 이동한 하북河北이며맹영구孟盈之丘는 다른 판본板本에 개영蓋盈으로 나와(곽박郭璞) 작은 해를 상징한 소호小皥 지역이다.

 

④ 곤오구昆吾之丘는 물론 중여衆艅 곤鯀과 오회吳回 성盛의 관리지대이고 ⑤ 흑백구黑白之丘는 뒷날 단군檀君이 나온 흑수백산黑水白山 지역이며 ⑥ 적망구赤望之丘는 적수赤水를 바탕으로 삼은 나중의 적狄 지역이다.

 

⑦ 참위구參衛之丘는 삼위參衛 즉 삼위산三危山을 중심으로 한 지방이고 ⑧ 무부구武夫之丘는 우리말로 <우>를 즐겨 <무武>로 썼으니(우열수-武列水) 부계열父系列 상징을 완성한 전욱의 경영지이며 ⑨ 신민구神民之丘는 잘 알다시피 신농神農의 개척지이다.

 

 

백려국*이이국*조제국*북구국 등이 모두 울수의 남쪽에 있다. 울수는 상릉의 남해에서 나온다. 혹은 상려라고 한다. 伯慮國 離耳國 雕題國 北朐國 皆在鬱水南 鬱水出湘陵南海 一曰相慮 <대황북경大荒北經>

 

외뿔소가 순의 무덤 동쪽 상수의 남쪽에 있다. 생김새는 소와 비슷한데 몸빛이 검푸르며 뿔이 하나이다. 兕在舜葬東 湘水南 其狀如牛 蒼黑一角 <해내남경海內南經>

 

 

[대황북경大荒北經]의 이 부분에 언급된 마을들은 모두 동방계열이다. 바로 이곳에 순舜의 경영지가 있으며 지표지명指標地名도 아우나 아들과 친밀성을 지닌 상릉湘陵과 상려相慮 xiāng이다.

 

또한 순舜의 장지葬地와 친밀하게 연관되어 나타나는 상수湘水 xiāng는 분명히 [성님]의 의미를 간직한 상象 xiàng*상商 shāng과 관련이 있다. 울鬱은 상고금문上古金文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제의祭儀에 바치던 술인 울창주鬱鬯酒와 관련이 많다. 같은 곳에 등장하는 <사람 얼굴에 돼지 몸을 하고 순의 무덤 서쪽을 지키는 성성狌狌 shēng>도 눈길을 끈다.

 

 

남해의 안쪽에 형산*균산*계산이 있고 삼천자도라는 산이 있다. 南海之內有衡山有菌山有桂山 有山名三天子之都...토끼처럼 생긴 푸른 집승이 있는데 이름을 균구라 한다. 又有靑獸如菟名曰菌狗 <해내경海內經>

 

...제균산이라는 곳인데...제균수가 산 위에서 나와 기슭을 숨어 흐른다. 曰帝囷之山...帝囷之水出于其上潛于其下 <중산경中山經>

 

균인이라는 난장이가 있다. 有小人名曰菌人...키 작은 사람이 있어 이름을 초요국이라 하는데 성이 기씨로 오곡을 먹고 산다. 有小人名曰焦僥之國 幾姓 嘉穀是食 <대황남경大荒南經>

 

주요국이 삼수국의 동쪽에 있다. 그 사람들은 키가 작달막한데 관을 쓰고 띠를 두르고 있다. 혹은 초요국이 삼수의 동똑에 있다고 한다. 周饒國在其東 其爲人短小冠帶 一曰焦僥國在三首東 <해외남경海外南經>

 

소인국이 있는데 이름을 정인이라 한다. 有小人國 名靖人 <대황동경大荒東經>

 

 

순舜을 장사葬事지낸 창오구蒼梧丘와 창오연菖梧淵 그리고 구이九夷를 말하는 구의산九(山 아래 疑)山이 있는 지역에 형산衡山과 상균商均과 긴밀한 균산菌山과 제균산帝囷山 그리고 제균수帝囷水가 등장하고 있다.

 

상균商均의 세력집단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 지는데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왜소矮小해지면서 북상北上하여 상商에 이르는 과정을 [대황남경大荒南經의 균인菌人]에서부터 [대황동경大荒東經의 정인靖人]에 이르기까지 압축壓縮하여 기록하였다. 성姓이 기幾 jĭ라고 하는 것은 아비인 순舜이 권력을 잡으면서 처음 자칭自稱한 이름이 기己*旗 jĭ*qí였기 때문이다.

 

원가袁珂는 주요周饒와 초요焦僥를 주유侏儒와 동일한 발음發音의 변화로 간주하였다. 아울러 균囷 qūn과 균菌 jūn은 균均 jūn과 발음發音이 같거나 비슷하다.

 

󰊲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자기*몸 기己>에 대한 해석을 보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동방민족의 관념체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여 진다. 이 소리글자는 한족漢族으로서는 생소하기 때문이다.

 

[기己 jĭ]는 자기自己라는 말에서 느끼듯이 남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밝히는 행위와 관련이 깊다. 이 글자는 소호小皥 자신의 상징으로 [부기父己]라는 소리글자를 썼을 때의 씨칭氏稱인 기己로서 보인다. 즉 신농神農의 사위아들로서 대代를 이을 자격을 지닌 묘예苗裔라는 정체성을 당당하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글자의 뿌리가 신농神農의 보물이었던 <누에>가 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세우고 활동하는 모양을 그린 새 을乙을 바탕으로 삼은 것으로 설명되어진다. 허신許愼이 [태일경太一經]을 인용한 <사람의 배를 상형象形하였다>는 어르신의 대代를 이어갈 아들을 밴 어미의 배를 본 땄다. 는 의미로 본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태일경太一經]이 설명하려고 한 진정한 속내는 깊이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이 글자가 소호小皥에게서 나왔음은 아들인 교극蟜極이 이를 뒤집어 쓴 걸로 증명된다.

 

동방회귀주의자東方回歸主義者였던 순舜은 자리를 이어받자마자 집안의 형뻘인 오회吳回 성盛의 이름이었던 기己를 옆으로 뒤집어 그대로 썼는데 이것이 바로 솟대의 변화형인 삼지창三枝槍 목 부분에 기己를 단 기호글자이다(어른이 된 기념으로 친족親族들에게 나누어준 명씨이기命氏彛器에 새겨진 소리글).

 

아무려면 소호小皞나 오회吳回 그리고 순舜 모두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바보 같아서 <만물이 오그라들어 구부러진 모양을 상징하려고> 그런 글자를 만들어 이름으로 썼을까? 한족漢族이나 동방계 서로 간의 관념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빚어낸 엉뚱한 결괴이다.

 

 

38. 우禹가 권력을 잡은 뒤 노골적인 형태로 출현出現하는 [인人 rėn*강羌 qiāng*필畢 bi]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 * 그리고 용用을 시계방향으로 180°회전한 그림과 새가 위아래로 있는 밑 부분에 그물이 있는 모양 ] [첨부 50]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 큰 어른 인*양족 강*새와 융戎을 잡는 그물 필* >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人 rėn*羌 qiāng*畢 bi>

 

군고록 1-3-64

 

 

[설문해자說文解字]

 

 

개( 에서 양쪽의 을 지운 모양) [첨부 75] 는 양의 뿔이다. 개...羊角也 <설문해자說文解字>

 

 

허신許愼은 강羌에 관해서 뚜렷한 확신이 서지 못한 듯하다. 강羌의 구성부분인 <개>를 들어 양羊의 모양을 해석할 따름이다. 결국 이 글자도 모범적인 동방계열東方系列 소리글자이다.

 

 

가) 자리에 오른 우禹가 먼저 한 일은 신농神農의 흔적을 지워내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가장 존귀尊貴한 글자인 신농계神農系 부호符號 <귀신 신 신神>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귀신 귀鬼 -자신의 아비인 제곡고신帝嚳高辛을 상징했다]를 공식적으로 올려놓는다(가재집고록 18책 19).

 

나) 다음으로 하늘의 아들을 섬기는 무리라는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우러르는 모습인 [사람 인人 im*in이 yi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을 고개를 바짝 쳐든 <어른 가운데 어른 인人 rén 어른 른>이라는 모양으로 바꾸어 스스로의 칭호稱號로 자리매김한다(가재집고록 18책 19).

 

다) 기본적으로 [솟대 -변화형으로 삼지창三枝槍 ѱ ]를 축軸으로 삼은 신농계神農系 족칭族稱인 [강姜]을 약간 비튼 <강羌>이란 소리글을 만들어 스스로가 그들을 다스리는 진정한 자격을 가진 어른으로 칭稱한다(설문해자說文解字).

 

아마도 순舜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서북과 동남의 묘苗 즉 강족姜族과 묘족苗族 -설화說話에서 해마다 찾아오다가 요堯를 떠나간 중명조重明鳥라고 표현된 세력들이다]을 특별히 의식하고 경계했을 것이다.

 

라) 권력을 빼앗자마자 모든 관행慣行과 제도를 바꾸어버린 그였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특히 그 당시 으뜸자리 별인 서방西方 7수宿 가운데 하나인 묘수(昴măo宿 -묘수苗宿)를 밀쳐내고 자신을 상징象徵하는 필수(畢bi宿 -산해경山海經엔 필방조畢方鳥로 은유되어있다)의 아래로 자리매김한 이유와도 매우 관련이 있다.

 

라) 우禹가 이 무렵부터 적극적으로 쓴 이름이 <새와 융戎을 잡는 그물인 필畢 -한족漢族은 가래 화鏵로 읽도록 유도하는데 상고역사上古歷史 부정공정否定工程과 깊은 관련이 있다>이기 때문이다(산해경山海經에 우禹와 연관된 필방조畢方鳥가 등장하는 원인이다). 이 소리글자는 특히 주목을 요하는데(역대종정이기관식 221)

 

마) 그물 안의 새는 바로 소호금천小皥金天으로부터 비롯된 해족(새 족族 즉 조이鳥夷)이며 흔히 용用 yòng으로 읽는 글자를 뒤집은 <새> 위의 [융戎 róng -그래서 롱隴 róng이란 서북지역 이름이 생겼다]은 신농(神農 -이 농農 nóng에서 롱隴이 나온다)의 족원族源을 밝히는 족칭族稱인 [신융神戎]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은殷나라 계契의 어미는 유융씨有娀氏의 딸로 제곡帝嚳의 차비次妃이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 머리글>

 

전욱顓頊이 곤鯀을 낳았는데 요堯가 숭백崇伯으로 봉했다. <제왕세기帝王世紀>

 

 

[손빈병법孫臏兵法]의 신융씨神戎氏나 [좌전左傳]에서 등장하는 전욱顓頊의 아들인 여黎 즉 축융씨祝融氏와 곤鯀의 작위爵位인 숭백崇伯도 모두 같은 겨레임을 말하는 동일한 씨칭氏稱이다.

 

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뒷날 주周의 시조始祖로 받들어진 우禹의 형님인 후직后稷 기棄 qì의 씨칭氏稱에서도 발견된다. <손 혹은 갈고리로 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기호글자>이다(술잔 직작稷爵 가재집고록22책 19-1)

 

 

결론적으로 이들 족단族團 모두에게 영향력을 미치거나 경계한다는 의미를 간직한 부호글자라고 할 수 있는데 한족漢族은 구태여 [삽*큰 자귀*대패*낫 산鏟 chăn]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풀이를 하여 핵심을 흐리고 있다. 이 글자가 왜 <일을 다 끝내다*마치다*옥죄이다 나 상하게 하다*죽이다>란 뜻으로 확장擴張되었는지 그 까닭이 있는 것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관련 기록 참고]

 

다시 동남쪽으로 159리를 가면 요산이 있다. 又東南159里 有堯山...다시 동남쪽으로 100리를 가면 강부산이 있다. 又東南100里 曰江浮之山 <중차십이경中次十二經>

 

 

동정호洞庭湖와 동정산洞庭山이 근처에 있는 지역으로 [요堯-순舜-우禹]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관리 영역이었는데 바로 요산堯山 부근에 스스로 강족단羌族團의 어른이라고 칭稱한 흔적으로 강부산(江浮山 -강보산羌父山)이라는 지명地名을 남기고 있다. 강江 jiāng은 강羌과 부浮 fú는 부父와 발음發音이 같다.

 

 

39. 우禹가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의 씨칭氏稱으로 삼은 [비羆 pi*bi]

 

새김글로서 부호화符號化된 [곰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그림글] ➡ 금문표기金文表記로 정착定着 ➡ 소리 값으로 공유共有된 <곰 족단族團의 할아비*아비라는 큰 곰 비> ➡ 한자전환漢字轉換과 발성發聲의 변이형變異型으로서 <비羆 pi*bi>

 

술잔 병신각丙申角에 새겨진 부호글자(가재집고록 21책 16)*사월양비厶月兩匕로 표현된 웅자(熊字 -금문편 682)

 

 

가) 우禹가 곰 족단族團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황제계黃帝系의 도움을 받았음을 상징한 기호글자이다(그가 치수治水를 할 때 곰으로 변해서 일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때문에 <곰 족族의 큰 아비라는 큰 곰 비羆 bì가 생겨난 것이다.

 

이 글자는 소리 값으로 필畢과 같다. 또한 모두가 <우禹>를 말하는 기호 글이기도 하다. [산해경山海經]에 필방조畢方鳥가 등장하는 원인을 준 글자임을 주목해야 한다. 마치 한 둥지 속의 알과도 같이 잘 맞아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