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주교회/역사자료

바지랑대 2012. 12. 29. 21:40

 

    1987. 10. 25일 새경주교회 창립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 깊은 축복의 날이다. 교회개척에 동참한 27명의 성도들은 경주시 서부동 5번지 경주 제삼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로서 구역장, 권찰, 교사 및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였으며 신앙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모범적인 성도들이었다.

 

    특히 교회의 각종 행사시나 성도들 가정의 경조사 때에는 앞장서서 봉사해 왔다. 경주제삼교회는 문화학원구내(현 명사마을 서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인들의 대다수는 문화중고등학교 교직원과 그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타지에서 온 교인들은 문화학원 부설교회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은 외적요인이 교회 운영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반면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장점이라면 고정적인 교인의 확보와 재정적인 안정성을 들 수 있으며, 단점이라면 다양한 사회 계층에 대한 선교활동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의사결정이 문화학원과 관계되는 당회원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비 문화학원 교인들은 이런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좌절과 갈등을 느끼게 되었으며 때로는 개방적이고 넓은 신앙의 세계를 갈망하게 되었다. 1987년 하반기에 접어들어 제직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특정  당회원이 취소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불만을 가진 비 문화가족은 별도의 회합을 자주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타 교회로의 전출과 교회개척이라는 두 가지 방안을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그 해 8월경에는 교회개척의 의견이 모아졌으나 동참을 유보하는 이들도 있었다. 교회개척의 동참을 망설이는 이유로는 첫째, 경제적인 한계성, 둘째, 집단이탈의 비 양심성, 셋째, 가족의 반대 등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교회개척을 선두에서 추진하던 주영구, 정정태, 윤무진, 박정남집사 등은 기도하는 가운데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빌4:19)는 말씀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협력자를 보내주실 것으로 확신하고 9월 말경 교회설립의 의사결정을 확정짓게 되었다.

 

    그해 10월에 들어서면서 결정적 계기가 된 사전이 발생하였으니 제삼교회 신창수 담임목사가 임지를 옮길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교회설립을 추진하던 일부 교인들이 제삼교회 담임목사를 방문하여 교회설립 의사를 밝히게 되었다. 신 목사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교회개척은 일생일대의 크신 은사이며 영광된 일이지만 그 힘든 일을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라고 하였으며 이는 위로와  격려의 말로 받아 들였다. 교회개척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젊은 혈기에 쉽게 결정을 하고 시무중인 담임목사에게 교회개척 계획을 밝히게 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였으나 엎질러진 물이 되고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교회 창립계획은 실천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개척당시의 나이가 마흔을 넘긴 두 사람 가운데 한 성도는 "사람이 마흔 전에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지만 그 이후에 하는 일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헨리 포드의 말을 연상하면서 심히 망설여지더라고 회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