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주교회/역사자료

바지랑대 2012. 12. 30. 08:59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마 14:17)

 

요즈음 가정생활에서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부인의 말을 듣지 않고 가장의 권위만 주장하는 남자들을 가리켜 간 큰 남자라고 한다. 세상살이 경험도 일천할 뿐 아니라 교회생활에서도 큰일을 감당해 보지 않은 젊은 서리집사들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빈손 들고 교회 개척을 시작하였다면 정말 간 큰 사람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당시 개척요원 대부분이 20-30대의직장인이고 행상을 하여 생계를 꾸려나가는 셋방살이 서민들이었기에 당장 개척자금을 마련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 故 이인호집사의 유지(遺志)

목자잃은 양떼와 같이 방황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개척요원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일어났다. 약 1년전 경주-포항간 국도상에서 교통사고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고 이인호집사(당시 제삼교회 안수집사이며 의료기상사 운영)의 미망인 최영자집사가 위자료로 받은 보험금 24,400,000원(원리금 포함)을 보람된 일에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신창수 목사에게 전해왔다. 며칠 동안 사용처를 생각하던 신 목사가 교회 개척자금으로 사용토록 제안한 바 최영자집사가 이에 찬성함으로써 '새경주교회'창립 자금으로 봉헌하게 되었으니 '여호와이레'의 축복이었다.

 

 

최영자집사의 특별헌금 사용내역

○ 특별 봉헌금액

24,400,000 원

○ 지출금액

15,162,000 원

- 건물임차료 (10개월분)

- 차량구입비 (부대경비 포함)

- 의자 구입

- 피아노 구입

4,000,000 "

9,272,000 "

1,000,000 "

890,000 "

○ 잔 액

9,238,000 원

                                                  ※ 잔액은 성전건축 재정에 포함하였음

 

 

■ 예배처소의 준비

예배처소로 사용할 건물을 임차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건물주들이 임대를 꺼려했고 또한 임대료를 높게 요구했다. 부동산 중개소에 위탁하였으나 대상 물건이 나오지 않아 동분서주 하던 중 시내 북부동 153번지에 과거 애향원(고아원) 세탁소 작업실로 사용하던 낡은 창고 건물이 있다는 제보로 현장을 방문한 바, 입구의 철대문 부터 녹이 쓸었고 그마져 한쪽 문은 사용이 불가능 하였다.

300여평의 넓은 마당 구석구석에는 오물이 쌓였고 오른쪽에 본당으로 사용할 건물은 약 40여평 남짓 되는데 바닥은 꺼졌고 천정에는 거미줄이 쳐진 폐가였다.

 

그러나 왼쪽편 안쪽에 사택과 교육관으로 사용할 수 있는 30여평의 벽돌조 기와집이 있었고, 바깥쪽에는 담장에 붙여지은 ㄱ자형 낡은 기와집 건물에 방이 다섯개가 있어 형편이 어려운 성도들의 거처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개척요원들이 찬성함으로 연간 사글세 사백팔십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그 이튿날부터 전 교인이 퇴근 후 이곳에 모여 1주일 동안 대청소를 실시하였다.

 

특히 전기 시설이나 음향시설 등은 손재주가 뛰어난 김동환집사가 자재를 직접구입하여 설치하였고 용접공을 불러 철대문을 수리하고 합판을 구입하여 꺼진 마루를 고치고 창문 유리를 갈아 끼우고, 위생회사에 위탁하여 재래식 화장실을 퍼 내고 오물을 치우고 사택을 수리하는 등 환경정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장비 및 비품을 준비함에 있어서 잠시 머물다 갈 임차건물에 맞춰 고액의 비품 등은 구입할 수가 없었기에 가능한 재활용품을 구해서 사용하였다. 예컨대 강단은 한국통신 경주전화국에서 공사 후 철거한 목제품을 기증받아 사용하였으며 케비넷, 책상 등도 유관기관이나 성도들의 기증품으로 충당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는 특정인이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여 개척하지 않은 교회이기에 성도들 상호간 갈등이 없으며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존중히 여기고 협력하는 교회로서의 아름다운 전통이 대대에 계승할 줄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