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SH 2008. 6. 9. 08:24

기독교 복음의 핵심(요3:16)

1. 서 론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나름대로 꺼내가지고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효를 중요시 생각하는 분은 효가 기독교의 복음이다. 그래서 성경을 효경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산상수훈에서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을 가지고 무저항 비폭력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핵심복음은 요3:16절로서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이 구절을 ‘소 복음’이라 했고 윌리암 템플은 이것을 요한복음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의 핵심인 요3:16절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본 론
   1)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사랑했다는 말은 세상에 있는 바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여기 표현된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되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음으로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자식을 낳았다는 것 외에 다른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조건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받을 만한 조건에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죄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조건에 있지 않았지만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이 땅에 죄가 들어와 우리 모두가 죄로 얼룩지어 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그 마음이 담긴 선물로 표현됩니다. 선물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마음을 주고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에 어떤 조건이 붙을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거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거래로서 우리를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온전하시고 만물의 주인으로 모든 것이 부요하신 분이 무엇을 우리에게서 얻으려고 우리와 거래하시려고 우리를 사랑하시겠습니까?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조건적으로 아이들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잘 먹여주면 내가 늙으면 아이들이 나를 잘 먹여 주겠지 하면서 키우지 않습니다. 또 내가 아이들의 필요를 따라 학비를 대주고 용돈을 주면 이아들이 커서 나에게 풍족한 용돈을 줄 것을 기대하면서 준적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아이들이 자신들을 키워준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고 부모의 희생을 고마워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죄 많은 인간도 자식에게 이렇게 조건 없이 사랑한다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 그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단지 주님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시길 바랄뿐입니다.
    예) 어버이날 아침 아들들의 부모에 대한 고마움
    예) 사랑의 의미
  6.25 직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 미국 로터리 클럽에서 회원들이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미국에서 파견 나온 간호사 선교사 한 사람이 나병 환자의
고름이 흐르고 있는 상처를 간호하고 있는 뜨거운 인간애의 장면을
포착하였습니다.
한 사업가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백만 불짜리 가치가 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에게 백만 불을 주어도 이 일을 못할 것이다."

간호사 자매는 이 사업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일을 못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사업가가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소?"라고 물었더니 자매가 대답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향해 보여 주신 조건 없는 그 놀라운 사랑!
내가 그를 신뢰했을 때 나에게 놀라운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허락하시고 지금 내 삶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랑은 희생을 동반합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 없이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랑하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에게 무엇이든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아까운 마음이 든다면 아직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라서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큰 것을 주고도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그 사람을 정말 크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크기는 그가 지불한 희생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아낌없이 줍니다. 주고 또 주고도 아까운줄 모릅니다. 그만큼 크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은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작은 선물을 사려해도 멈칫 멈칫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사 세상에 사는 당신과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요15:13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 사랑을 어떻게 다 헤아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예)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에서는 총각이 장가를 가려면 결혼 지참금으로 소 한 마리를 내야 한다. 한 못생긴 처녀가 있었다. 청혼하는 총각이 없었다. 소 반 마리 값만 치러도 되겠는데…. 그러는 사이 나이는 들어 노처녀가 되었고 볼품은 더욱 없어졌다. 결혼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최고의 신랑감이 나타났다. 추장 외아들이 청혼을 해온 것이었다. 그것도 소 여덟 마리나 지참한 채. 둘이는 결혼했고 행복하게 살았다. 신부의 얼굴은 몰라보게 아름다워졌고 만인이 우러러보았다. 어느 날 밤, 신부는 신랑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나를 선택했습니까?" "왜 소를 여덟 마리나 가져왔습니까?" 신랑의 대답은 분명하고 또렷했다. "사랑하니까." 그렇다. 사랑 때문이다.
사랑하니까 하나님은 그 외아들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보내주신 것이다. 오직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준 것이다.

3) 멸망치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죄를 지으면 그 결과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선악과를 먹었고 그래서 죽음이 왔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고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공포를 떠나서 영원히 사는 길이 없을까? 이것이 모든 사람의 고민입니다. 영원히 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폭정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불안을 갖는 이유는 마음의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서 치명적인 병으로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인간이 처한 가장 절박한 운명은 죽음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불안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아기가 되어 웃고 울고 떠들 때는 시간이 기어갔다.
내가 소년이 되어 꿈속에서 좋아할 때는 시간이 걸어갔다.
내가 성인이 되자 시간은 달음박질했다.
내가 이제 반백이 되자 시간은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빨리 가는 인생이 왜 불안합니까? 죽음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인간을 보시고 주님은 죽어가는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그를 지배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죄 값을 지시므로 우리가 살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 그것은 죽음과 관계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죽음이 없는 존재로부터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영생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만이 영생의 길입니다. 이 시간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생의 선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도록 하셨습니다. 영생은 노력해서,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주셔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주셔야만 내가 얻는 것입니다. 내가 달란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철학이나 자선사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선행을 하면 영생이 자동적으로 굴러들어 오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생은 믿음으로 얻어지는 선물입니다. 광야에서 장대에 단 구리 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산 것처럼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3.  결 론
  이제 한 이야기를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예) 잔해 더미 속 모성애 사신도 고개 숙인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개역]사 4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