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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5]배를 타고 신성한 마운트 아토스(Mount Athos)로...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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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그리스

2015. 8. 5.

 

 

그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산 마운트 아또스(Mount Athos)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아토스 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자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지역이다.

아토스 반도는 그리스의 북부 마케도니아에 속한 할키디키의 세개의 반도중에

제일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특이하게 수도자 자치국(Monastic Replbulic)이기도 하다.

 

아토스 산으로 가는 차편과 배편이 있다고 해서

아침 일찌감치 호텔에서 제공해 준 대형 버스에 올라서

포르토 카라스(Proto Carras)를 출발해서

약 30분 후에 아토스로 가는 배편이 있는 오르모스(Ormos)에 도착했다.

 

 

작고 조용한 오르모스 항구에 다다라서...

 

 

작은 배들이 조용한 항구에 떠 있다.

 

 

 

배가 떠날 때까지 조그만 항구를 구경하려고 몇걸음 움직이니 아주 작은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가정집보다는 더 작은 성당 규모이다.

 

 

 

성당 앞에는 촛불을 켤 수 있는 작고 허름하지만 누군가가 와서 대여섯개의 촛불이 타들어 가도 있어서

우리도 동전 하나 넣고 촛불을 하나 켜고 잠시 묵상한 다음에 성당 안으로 향했다.

 

 

 

화려하고 거대한 성당과 큰 대조를 보이는

아담한 성당 입구...

 

 

 

성당 안으로 천천히 들어 가 보니....

 

 

 

신자들이 앉는 자리도 없는 성당 내부엔

그리스 정교회의 성당답게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모님과 예수님의 아이콘(Icon)들로 둘러 쌓여 있다.

 

 

 

제대 앞...

 

 

 

성당 가운데에 은으로 만든 아이콘이 놓여져 있다.

그리스에 와 보니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신자들이

아이콘에 입을 맞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캐톨릭 신자도 정교회 신자처럼 해도 괜찮은지 몰라서 성호만 그었다.

 

 

성당답게 종탑은 있지만 종탑 구실은 하지 않는 듯 하다.

 

 

곧 배가 떠난다고 해서 11시 좀 넘어서 배에 우선 올라 타고

일단 36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그늘진 곳에 얼른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출발~~~

 

 

 

막 떠난 오르모스 항구

 

 

아토스 산까지 약 2시간 반까지 걸리기에 느긋하게 할키디키의 아름다운 바다와 반도를 구경하기도 하고

아토스 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보를 익혀 두었다.

 

 

 

출발한지 약 1시간 후에 먼 발치에 마운트 아토스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아토스 반도/산(Mount Athos)

아토스는 이미 9세기 중반부터 아토스 반도의 북부에 수도자들이 공생을 하고 있었지만,

 963년에 아타나시오스 안토나이트(Athanasios the Anthonite)라는

수도자가 대 라브라(Great Lavra) 수도원을 창립하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설립이 되었다.

그 후로 수백년에 걸쳐서 스무개의 수도원을 비롯해서

Sketae 라고 불리우는 다수의 소규모의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현재는 많은 수도자들이 그 중에서 켈리아(Kellia), 칼리배(Kalyvae),

카티스마타(Kathismata) 그리고 헤시하스테리아(Hesychasteria) 수도원과

소규모의 봉쇄 공동체에서 은둔생할을 하면서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

긴 세월을 거치면서, coenobiticidiorrhythmic, and solitary

세가지 형태의 수도자의 수도방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세노비틱은 수도원에서 수도원의 엄격한 룰에 따라서

새벽 1시에 일어나서 각자의 방에서 그리고 다 함께 중앙 성당에서

해가 뜰때까지 기도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그리고 다시 기도를 한다.

그 후에 각자 수도원에서 각 수도자에게 주어진 일을 한 후에 휴식을 취한다.

주어진 일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도원장도 자기 임무를 수행할 의무가 주어지며,

오후엔 다시 성당에 모여서 저녁 기도와 성서읽기를 한 후에

수도원 입구는 다시 닫히고,각 수도자들은 자기의 방으로 돌아가서

독서와, 성서읽기, 기도를 한 후에 취침을 하는 수도생활을 하는 방식이다.

 

이디오리드믹 수도생활 방식은 오토만 왕조가 그리스를 장악하던 시대에

기독교가 박해를 받거나, 수도원이자 수도자들에게 아주 높은 과세를 부과해서 생겨난 방식으로

성당대신에 스케테(Sketae)를 지어놓고,

그 안에서 단어말대로 일정하고 엄격한 룰에 따라서 수도생활이 아니라

수도자 각자가 추구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일과 기도생활을 정해 놓고 개인적으로 수도생활을 하다가,

일요일과 대축일에만 함께 모여서 미사를 드리고,

나머지 날들은 각 수도자가 기거하는 칼리바라고 부르는 작은 오두막집 내에 있는

소성당에서 기도와 신심활동을 하는 형태이다.

 

마지막으로 솔리태리 수도방식은 세가지 중 가장 힘든 고립과 은둔 수도방식으로

이런 수도방식을 택한 수도자들은 이 지역에 소재한 동굴이나 절벽위에 지어진 움막집에서 기거하면서

몸과 신체의 건강을 위해서  직접 땀흘려 일하고, 일구고, 음식을 알아서 해 먹으면서

나머지 시간은 오직 기도에 전념하는 수도방식이다.

이들은 때대로 가까운 수도원을 방문해서 성체 성사를 받기도 한다.

 

 

 

 

아토스 반도

 

 

해발 2,033 미터에 달하는 산이 먼 거리에서도 쉽게 보인다.

 

 

11시에 출발한 배가 2시간 반만에

아토스 산에서 가장 가깝게 다가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잠시 배가 멈추어서..

 

 

아토스를 방문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남성만이 아토스산과 반도를 방문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수도원이 창립한 후로 1000여년 이상동안 여성들이 이 지역에 발을 딛지 않은 풍습을 고수하기 위해서

여전히 여성들은 우리처럼 배를 타고 멀리 떨어져서 바라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방문을 하고자 하는18세 이상의 남성들은 우선 아토스 반도에 있는 관계 오피스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하루에 100명의 그리스 출신 정교회 신자들과 10명의 비 신자들에게 허가서를 내어주는데

그 허가서는 정해진 날짜 4일간 유효하다.

 

 

 

대적 별로 알아 본 아또스의 역사

 

고대 그리스 시대 

 

우선 아토스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 신화에 초반에 신들과 거인들이 서로 싸울 때에

아토스라는 거인이 포세이돈에게 거대한 돌을 던졌는데

그 돌이 지금의 반도가 되면서 아토스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전설과

또 하나는 반대로 포세이돈이 아토스에게 거대한 돌을 던져서

그 돌에 아토스가 압사해서 지금의 아토스 산이 생겨났다는 전설들이 내려오고 있다.

 

호머가 쓴 일리아드 중에 (랍소디 219) 아토스를 거론했고,

헤로도토스는 할키디키 지역의 도시와 더불어 아토스 반도에 위치한 6개의 도시를 거론했고,

한편  수세기 후, 플라이니(Pliny)도 아토스에 존재하던 도시들에 대해서 쓰기도 했다.

거론된 도시들은 아마도 트레이스나 펠라지언 출신으로 추정되며

다 마케돈의 필립 2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가

163 BC에 마케도니아 전체가 그랬듯이 로마인들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당시 존재하던 도시들마저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인들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

전설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님과 성 요한이 라자루스를 만나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자, 현 이비론 수도원이 자리잡았더 곳에 피신을 하게 되었는데,

성모마리아님이 그 수도원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아토스 반도의 선물이 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토스에 언제 수도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843년에 개최한 공의회에 아토스 출신의 수도자들이 참가한 기록이 있는 걸로 미루어서

8세기 이전에 이미 아토스에 기거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9세기 말에 아토스에는 다수의 소공체와 은둔자들이 이스머스 지역에 기거했고,

콜로부 수도원이 872년에 창립되었다.

 

911년에는 아토스의 종교적인 지도자인 프로토스가 중심이라는 뜻을 지닌 메세(Mese)로 옮겨졌고,

지도자인 프로토스는 아토스의 위치한 모든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었다.

그은 최고 종교적인 권리가 주어졌고, 사제 서품과 수도원장 임명권도 쥐고 있었다.

 

9세기 전반은 수도자들의 생활은 늘 굶주림과 동굴에서 주거환경도 열악했는데다가

해적의 침략에 시달리다가, 성 아탄시오스 안토나이트가 아토스에 오면서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오토만 통치 중의 아토스

오토만 제국의 터키인들은 14세기 말경에 처음으로 아토스 산에 도착해서,

15세기 초반에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수도자들은 그들의 권리와 생활방식, 그리고 자치권과 영토 소유권을 부여받았지만,

하라치라는 세금과 더불어 추가로 엄청 많은 부과세를 내야만 했다.

 

오토만의 지도자 술탄이 수차레 걸쳐서 반복적으로 그들의 권리를 보장받았지만,

1432-3년에 무라드 술탄, 1568년에 셀림 2세가 무력으로 장악하려는 시도가 발생했고,

두번 다 수도자들이 아토스를 지역을 소유하는 조건으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이런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타격이 잇게 되자,

자연히 수도자들 숫자도 줄어 들고, 수도원도 버려지게 되고

점점 작은 켈리아와 스케테에 기거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동생활 방식인 세노비틱에서 이디오리드믹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가 증가했고,

16세기 말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세계 공의회에서 이런 변화를 되돌이켜 보자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16-17세기에 걸쳐서 수도원들이 자체 존립이 어렵게 되자,

17세 후반에는 수도원장들은 러시아, 왈라키아, 몰다비아의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손을 뻐치게 되었다.

다행히도 이들이 큰 성금을 보태 주어서 숨을 겨우 돌릴 수 있었다. 

 

아토스의 수도원들은 18세기에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8세기 중반에 현재의 바토페디 수도원 자리에 아토스 신학교(Athonite School이

주로 신학, 철학, 논리를 수도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설립이 되었다.

설립 초반에는 그리스의 유명한 학자 에비니오스 불가리스가 학장을 맡게 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고, 명망도 높게 되었지만,

그가 떠나면서, 신학교도 1799년에 문을 닫고 만다.

그후 1832년에 신학교 형식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고

1953년에는 아토스 신학교(Athonite Ecclesiastical Academy)로 재 명명과 함께

공식적으로 새 출발을 시작해서

현재 6명의 선생님들과 약 100명의 신학생이 재학중이다.

 

 

근대의 아토스

 

19세기 초반에 수도원들이 거의 빚을 갚게 되고,

이디오리드믹 수도생활방식에서 제대로 수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세노비틱으로 서서히 바뀌어지고

신축공사도 시작되면서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1821년 그리스 독립전쟁에 발발하면서

이 신성한 산은 또 다시 불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전쟁 중에 많은 수도자들이 싸움터에서 싸워야 했고,

반도를 장악한 터키 군대는 또 다시 중과세를 부과했고

수도원을 막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독립전쟁이 끝난 후에 평화가 다시 깃든 아토스로수도자들이 다시 몰리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그리스 출신 수도자들보다 주로 근처에 있는 불가리아, 세르비아, 러시아, 루마니아등 출신의

수도자들이었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해서 슬라브계 국가들은 

그리스 지역의 그들의 영향력을 넓히는 한 도구의 목적으로

수도원 재건축에 아낌없이 경비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그 결과로, 조그라푸 수도원은 불가리아 영역으로 넘어가고, 보고로딧짜 수도원을 창립했고,

헬란다리 수도원은 세르비아,

판텔레이몬 수도원은 러시아 수도원으로 변경되었고, 성 안드류 수도원을 설립했고,

그리고 루마니아는 요한세자 수도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500년간 그리스를 통치하던 오토만 제국의 통치가 1922년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종지부를 찍게 되자,

그리스 해군이 점령되었던 아토스의 다프니에 성공적으로 상륙한 후

국제적인 정상회담을 거쳐도 아토스의 소유권을 가름하지 못하다가

결국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아토스는 그리스 영토로 인정하되, 자치국 형식이라는 조약을 맺게 되었다.

 

제 2차 대전중에 아토스는 독일군에 의해서 점령당했는데,

바티칸에서 임명한 4명의 수뇌위원회가 아토스의 권리를 넘겨달라는 요청을 히들러가 받아 들이게 되면서,

아토스를 점령한 독일과 불가리아 군대는 아토스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지 않았다.

 

 

 

 

파블로스 수도원(Agios Pavlos (Saint Paul))

 

 

이 수도원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따르다는 것이 모토이며 반도의 서쪽 제일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10세기 말경에 이 수도원의 존재가 한 문서 기록에 남아 있으며,

카탈란의 침략으로 수도원에서 켈리언으로 전락했다가

14세기 말경에 다시 수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5세기부터는 세르비아의 왕족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 시작했고

이어서 비잔틴 왕국이 오토만에데 멸망당한 후 동유럽 국가들로 부터 자금지원을 받아왔다.

현재까지 존재하는 20개의 수도원 중

14번 서열의 수도원으로 여전히 100명에 가까운 수도자들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위에 보이는 수도원의 건물과 대표적인 성당은1839-44년에 걸쳐서 건축이 되었으며,

성 바오로와 성 죠지에게 헌정이 되었다.

그 외에도 이 수도원에는 10개의 차펠과 1522년에 지어진 종탑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이 수도원이 자랑할 만한 것은

오래되고 귀중한 495의 manuscrips(수제 문서)와 12,500권에 달하는 고서들이 소장되었고,

제일 귀한 휴대용 성모님 아이콘(icon of Virgin the Myrovitissa)와

원조 십자가(True Cross),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예수님을 경배하러

먼길을 온 세 동방박사의 선물의 일부가 이곳에 소장되어 있다.

 

 

 

아토스 이야기가 2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