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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롱기누스의 창이 보관된 에치미아진(Echmiadzin)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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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에치미아진

2020. 7. 14.

지금 여러분은 예수의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로마 병사가 찔렀던 롱기누스의 창을 보고 계십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했다고 하는데 당시는 검시를 위해 옆구리를 찔렀던 행동이라고 하네요.

롱기누스(또는 론지노)의 창이란 당시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던 로마 병사의 이름이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론지노는 예수를 찌르는 순간 눈이 멀었으니 흐르는 예수의 피로 눈을 씻어 다시 시력을 회복하자

이에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어 선교 활동에 남는 삶을 바치다가 순교함으로

지금은 성 론지노로 모셔지고 있다네요.

위의 사진은 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찍은 성 롱기누스의 모습으로 역시 그때처럼 창을 든 모습이네요.

 

롱기누스의 창을 다른 말로는 성스러운 창(The Holy Spear)이라고도 부르고요.

이때 예수의 옆구리에서 흐른 피가 창끝에 묻었다고 하여 성스러운 창이라고도 하지요.

요한복음서 19장 34절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창이 바로 오늘 찾아갈 에치미아진(Echmiadzin) 대성당 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그런데 성스러운 창이라고 하는 창이 여기 말고도 바티칸이나 빈 등 여러 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어느 것이 진짜인지 사실 진위 여부는 쉽게 가려지지는 않지 싶습니다.

 

아르메니아 지도입니다.

예레반에서 시작한 여행이 왼쪽에 있는 에치미아진과 오른쪽의 가르니 신전과 주상절리, 게르하르트 수도원까지

보고 코르비랍과 타테브까지 둘러보는 것으로 아르메니아 여행을 마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가 아르메니아라고 하지요.

그 시작은 바로 우리가 나중에 찾아갈 예정인 코르비랍이라는 곳이고요.

코르비랍이 아르메니아 기독교 출발지였다면 그 중심은 에치미아진(Echmiadzin)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석조 조형물은 에치미아진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정문에 세운 기념 조형물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악수를 하려는 듯한 모습을 조각으로 남겼습니다.

2001년 교황 바오로 2세가 이곳 대주교관을 방문함을 기념하여 만든 문이라고 하네요.

1054년 상호 파문을 한 후 900여 년이 지나서야 화해와 "마침내 만났다, 우리는 형제다, "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네요.

 

가까이 크게 찍어보았습니다.

왼쪽은 가톨릭을 대표하는 교황의 모습이고 오른쪽이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 

가톨릭코스(Catholicos)의 모습입니다.

아르메니아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했던 성 그레고리와 교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만든

화해와 만남의 기념문이겠지요.

 

2015년 교황 성 프란치스코는 또 이곳을 찾아 아르메니아 학살 100주년 추모식에 참석해 미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때 교황은 "악을 숨기거나 부인하는 것은 상처에 붕대를 감지 않아 계속 피를 흘리는 것과 같다."라고 했답니다.

아직까지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해 세계는 언급하기를 꺼리고 있다는데...

 

에치미아진은 성스러운 도시(Holy City)로도 불리는 곳입니다.

에치미아진이 왜 이들이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하느냐 하면 301년~303년에 성 그레고리가 건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는 점과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 사망을 확인했다는 롱기누스의 창,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의 조각, 그리고 노아의 방주 파편이 보관된 곳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또 아르메니아 정교회 총대주교인 가톨릭코스(Catholicos)가 거주하는 총본산이 이곳이고요.

이런 이유로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지요?

그래서 신이 지켜온 땅 아르메니아라는 말이 생겼나 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돌 십자가는 하치카르(Khachkars)라고 부르는 아르메니아 고유의 십자가입니다.

모두 석공의 수작업으로만 만드는 십자가라 세상에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라네요.

보통 제작 기간이 짧게는 4개월이고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냥 우리가 수없이 많이 보았지만, 아르메니아 수제 십자가인 하치카르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그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2010년에는 하치카르가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답니다.

 

앞으로 아르메니아 여행을 하며 이런 하치카르는 수없이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하치카르는 여느 하치카르와는 다릅니다.

크기가? 모양이?

위의 하치카르는 무슬림에 의해 제노사이드로 희생당한 아르메니아 인을 추모하기 위해 1965년에 세운

일종의 추모비로 현무암으로 R. Israelyan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많은 아르메니아 사람은 이곳 에치미아진은 바티칸보다 더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한답니다.

에치미아진은 대성당을 비롯해 여러 개의 성당과 수도원, 신학교, 박물관 성자의 무덤 등

그야말로 기독교에 관한모든 시설이 하나의 단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네요.

 

에치미아진은 아르메니아에서는 정신적인 지주로도 생각되는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성지라고 하네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예수가 죽었을 때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를 찔렀던로마 병사의

롱기누스 창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라고 해서 더 유명세를 얻고요.

 

롱기누스의 창은 해외 전시를 위해 수시로 반출되기에 쉽게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또 노아의 방주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 아라라트산에서 발견했다는 방주의 목재로 만들었다는 십자가 또한

이곳 에치미아진 대성당 보물실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아르메니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도입하게 했던 성 그레고리의 손 부분이

함께 보관되어 있답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위의 사진에 보듯이 늘 엄지와 약지를 마주하게 하여 원을 그리게 하지요.

그러면 나머지 펴진 세 개의 손가락은 삼위일체를 의미하고요.

 

사실 여부는 우리같은 사람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기에 차치하고라도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대단히 큰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아르메니아 동방 정교회 총본산이라고 하지요.

대성당은 현재 대대적인 수리를 하는 관계로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에치미아진은 주민이 5만여 명도 되지 않은 아르메니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합니다.

사실은 예레반과 같은 생활권이지만요.

 

140년경 파르티아의 왕 볼로가세스 3세가 이곳에 아르메니아 왕국의 도읍으로 정하고

바가르샤파트라고 불렀다지요.

344년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에치미아진은 아르메니아의 도으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네요.

 

대성당으로 드나드는 정문 안쪽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Open Air Altar라고 부른다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많은 행사를 진행하나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동방정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예수의 모습을 그리는 그림 기법은 위의 사진처럼 왼손은 정의 또는 공의의 손으로

거의 성경책을 든 모습이고 오른손은 긍휼과 축복의 손으로 엄지와 약지가 만나 원을 그리며

이는 인성과 신성의 만남을 의미하며 무한대를 상징하며 나머지 세 개의 펴진 손가락은 삼위일체를 의미한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