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세계문화유산 게하르트 수도원과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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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가르니

2020. 9. 21.

이곳은 게하르트 수도원은 물론, 이 부근의 계곡이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합니다.

수도원 건물군은 중세 아르메니아 전통 양식의 건축 형태를 볼 수 있고 특히 바위산을 뚫고 들어가 만든 수도원은

그 자체로도 희귀한 형태였고 이 수도원이 자리한 곳은 험준한 아자트 계곡 안이기에 함께 지정되었나 봅니다.

 

수도원이 자리한 곳은 저번에 들렀던 노라방크 수도원처럼 계곡 속으로 들어가 더는 길이 없는 막다른 산 밑에

있으며 주변에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처음 이곳에 수도원을 지을 때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

암굴 형태의 수도원이었다고 합니다.

 

게하르트라는 말은 아르메니아어로 창이라는 말이라 합니다.

유다(Thaddeus)가 아르메니아에 선교를 올 때 가져와 기증한 것으로 전해지는 롱기누스의 창을 처음으로

보관했던 곳이라 그런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처음 언제 이곳에 수도원 시설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4세기경 계곡의 바위를 파고 들어가 수도원을 넓히며

지금의 모습과 비슷하게 지어졌으나 9세기경 무슬림의 침공으로 완전히 파괴되기까지 했답니다.

그 후 지금의 모습은 13세기경에 와서야 만들어졌다네요.

 

4세기경 성 그레고리가 처음 만들 때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동굴 안에 샘이 솟아나는 신기한 장소라 생각에

그 위에 수도원을 지었다고 전해 온답니다.

지금의 성당의 모습은 1215년에서야 완공된 모습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천연의 바위를 파고 들어갔으며 그 바위 옆에 붙여 짓기도 하고...

곳곳에 바위를 파고 들어가 수도사들이 수도에 정진했을 겁니다.

그런 흔적이 이곳에는 아직 여러 곳에 남아있습니다.

 

정말 서유럽의 성당과는 달리 조지아나 아르메니아 수도원은 속세와는 거리를 둔 듯 이렇게 외진 곳에만 있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곳을 루사보리치 동굴 예배 묘당이라고도 부르는 동굴 속의 예배당이죠.

성 그레고리 예배당이라고도 부르고요.

 

동굴 속의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곳 중의 한 곳으로 아직 미완성으로 남은 곳입니다.

이곳 성 그레고리 예배당으로 내부에는 석관도 함께 있어 묘당이라고도 합니다.

 

수도원 동쪽 끝으로 올라가면 있는데 출입구를 철문으로 막아두어 그냥 철문 사이로만 볼 수 있네요.

동굴 벽에도 수없이 새겨진 하치카르...

이렇게 일일이 사람 손으로만 만들었기에 같은 하치카르가 없다고 하나 봅니다.

 

이제 상부 가비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바닥에는 이 수도원 재건에 큰 후원을 했던 프로시안 왕의 아들 둘과 그의 부인의 석관이 있다고 합니다.

네 개의 기둥으로 내부를 만들어 놓았네요.

내부는 묘지이자 동굴 형태의 예배당을 자마툰(Jhamatun)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기둥에 새겨진 것은 아르메니아 글자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들은 "나라 말싸미 주변 나라과 달라"라고 생각해 고유의 문자를 만든 나라입니다.

일종의 키릴 문자로 그리스의 영향이 많다고 하네요.

 

아까 아래층 프로시안 예배 묘당(Proshian chapel-sepulcher)에서 보았던 뚫어진 구멍이 이곳과 연결되네요.

이 예배당은 위에 있어 그나마 조금은 밝은 편입니다.

 

13세기 이후 이곳은 무슬림의 침공을 당하고 그 후 몽골은 물론, 티무르의 공격에도 노출되었고 1840년에는

지진까지 일어나 이곳은 거의 폐허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침에서도 살아남은 이유는 바로 롱기누스의 창 등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13세기경 이 수도원 재건에 큰 힘이 되었던 프로시안(Papaq Proshian) 왕자 외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건설했으면 왕이 된 후 그의 왕자들과 계속해 지원함으로 왕자와 부인은 죽어

이 수도원 안에 묻혔다네요.

 

그 외에도 대 예배당 안에는 12세기에 기증받은 사도 요한의 유물,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찾아온 신자로부터

기증받은 토지나 금전 같은 것을 성당 내벽에 상세하게 기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수도원 뒤로 가면 마치 우리나라 무당이 만든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도 초를 태워 그을음이...

 

그곳으로 가는 오솔길에는 소원을 적어 걸어서 둔 듯 정신이 사납습니다.

심지어 비닐봉지도 걸렸고 손수건도 걸어두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은 하나도 없지요.

 

게하르트 수도원은 처음에는 바위산을 뚫고 들어가 동굴 내부를 수도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조명시설이 전혀 없는 곳이지요.

오랜 세월 동안 촛불이나 다른 조명시설로 내부를 밝혔기 때문에 실내는 그을음으로 매우 지저분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페르시아나 오스만은 무슬림으로 늘 종교적으로 서로가 상대를 미워하고 껄끄러운 관계로 지냈거든요.

그랬기에 늘 고통받고 힘든 세월을 보냈지 싶습니다.

또 바로 위로는 현재 국경마저 폐쇄된 채 지내는 아제르바이잔도 무슬림이잖아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주권국이 되었지만, 아르메니아는 그 이전부터 로마 제국의 시달림을 받다가

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이번에는 주변의 큰 나라인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 끼어 또 힘든 세월을 보냈겠네요.

이들이 비슷한 동방 정교회인 러시아의 지배아래 들어가게 된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에 수없이 많은 하치카르는 이제 더는 눈길조차 끌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하치카르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영혼이겠지요?

이제 우리는 가르니에서 2박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예레반으로 돌아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정교회가 가톨릭과는 차별화하기 위함입니까?

대부분 수도원 터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그런 곳에만 있기에 주변 풍광이 뛰어난 곳에만 있습니다.

따라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여행은 수도원 여행이라고 투덜거릴 이유가 하나도 없지 싶습니다.

수도원 찾아 가는 길이 바로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