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팟 지엠 대성당(Phat Diem Cathedral)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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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여행기/베트남 2019

2020. 1. 4.



베트남에 천주교 마을이 있다고 하여 오늘 찾아갑니다.

우리 생각에 사회주의 국가에 웬 천주교 마을이냐고 하시겠지만,

정말 그런 마을이 있더라고요.



팟 지엠은 닌빈에서 27km 떨어진 곳이라 자전거로는 어려워 보여 버스를 타고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빌려 탈 수 있는 사람은 오토바이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지요.

2019년 1월 27일 일요일의 이야기입니다.



버스 출발 시각은 닌빈 터미널에서 9시 14분이네요.

요금은 25.000동/1인으로 우리 돈 1.300원 정도 되네요.

버스는 닌빈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 편 말고도 하노이에서 닌빈을 들렀다가 가는 버스 편도 많은 듯하네요.



시내버스인 듯 이 버스는 정류장 표시가 된 곳에만 섭니다.

터미널에서 출발할 때는 승객이 많지 않았는데 정류장마다 많은 승객이 타기 시작하니

금방 만원이 됩니다.



달리는 도중 주변 풍경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1월인데 모내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네요.

우리나라에서 한겨울인데 모내기를 하다니 삼 모작 한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벌써 주변에 많은 성당과 가톨릭과 연관된 건물이 보입니다.

호수 가운데는 가톨릭 조형물이 보이네요.

이 지역은 가톨릭 세상인가 봅니다.



또 주변에 보이는 묘지도 이채롭습니다.

베트남도 우리와 같은 유교 문화이기에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한가 봅니다.

특히 이 지역은 가톨릭을 믿는 주민이 많을 텐데 가톨릭과 유교의 결합인가요?



그래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에 1시간 10분이 지난 10시 25분에 팟 지엠 성당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줍니다.

버스 정류장은 바로 전자제품 파는 큰 가게 앞이네요.

이런 곳은 일 년 번 돈의 반을 쓴다는 베트남 음력설인 뗏(Tet) 기간이라 대목이 아니겠어요?



팟 지엠이라는 지역은 베트남 기독교의 성지라고 하더라고요.

베트남에서 D는 ㅈ으로 발음한다고 하니 팟 디엠이 아니라 팟 지엠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베트남 표기에 Đ라고 표기한 것은 영어 D처럼 ㄷ으로 읽는다고 하네요.



버스 내릴 때 닌빈으로 돌아가는 막차 시각을 물어보니 지금 내린 곳 건너편에서 5시에 출발한다고 알려줍니다.

전자제품 가게를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 천주교 성당이 보이고 흰색의 예수상으로 보이는 석상이 보이네요.



이곳이 팟 지엠 대성당(Phat Diem Cathedral)인가 봅니다.

대성당 앞에 호수가 있고 호수 가운데 예수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호수의 물 색깔이 탁하네요.



호수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대성당으로 다가가니 동문이 있네요.

안으로 들어가려니까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오늘은 미사가 있어 조용히 다녀야 하며 11시 이후에나

대성당 경내를 자유롭게 돌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일요일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팟 지엠 대성당(Phat Diem Cathedral) 본당 건물입니다.

전면의 석조건물은 종탑입니다.

뒤로 보이는 기와지붕이 대성당으로 동양식 고딕 건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대성당 건물 앞에 있는 종탑의 크기가 엄청납니다.

너무 커서 대성당이 위축된 듯 기가 죽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조조가 이곳에 왔더라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저 종탑 문에 活이라는 글자 한 자를 적어두었을 겁니다.

과대 포장은 법으로도 금하는 일이잖아요.



서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곳에 베트남틱한 색깔과 문 주변에 장식한 유럽 스타일의 석상이 있는 성당이 또 있습니다.

성당 색깔도 이렇게 칠을 한 나라는 베트남밖에는 없지 싶네요.



잠시 주변 산책이나 하려고 나갔다가 보았던 팟 지엠 타일 다리(Cầu ngói Phát Diệm)입니다.

이 다리의 모습은 어딘지 보았던 모습이 아닌가요?



그랬습니다.

호이 안에 가면 내원교라는 다리와 매우 닮았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가 즐겨 읽었던 삼국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요.

조조가 업성에 삼대를 짓고 첫날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들어가며 정원의 문에다가 活이라는 글자를 썼지요.

그곳에 모여있던 많은 신하는 조조가 썼다는 활이라는 글자에 대해 의미를 몰랐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양수만이 그 의미를 이해하고 문의 크기를 줄이라고 했다네요.

門 위에 活이라는 글자를 썼으니 넓고 클 䦢자로 해석해야 하기에 문이 쓸데없이 크다는 의미기에

크기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죠.

만약, 여기에 조조가 왔다면 우스꽝스럽고 언발란스한 저 종탑에다가 글을 쓰기보다는

먼저 도끼를 들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