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돔 플라츠(Domplatz)와 밤베르크 대성당(Bamberger 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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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밤베르크

2020. 5. 14.



유럽 주택의 특징이 붉은 지붕이 아닐까요?

물론 검은 기와를 얹은 곳도 가끔 보았지만, 극히 일부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지붕 색도 유럽 문화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곳 밤베르크 또한 전통적인 붉은색 기와를 얹어 두었네요.



이제 밤베르크 구시청사 구경을 마치고 언덕 위로 올라갑니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대성당 광장인 돔 플라츠(Domplatz)라는 곳입니다.

과거 이 광장은 주교 세력의 근거지였던 곳이지요?



바로 밤베르크의 시작은 이곳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왜?

중세는 신이 다스렸고 그 신의 위임을 받은 주교가 지역의 맹주로 힘을 썼을 것이니까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은 주교의 거처였던 신궁전입니다.



당시 이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2세의 세상이었지요.

그는 이곳 밤베르크에 주교구를 설치하며 거대한 신의 동네를 만들기로 하였다네요.

그때는 그랬지요.



왕권과 신권이 서로 짬짜미하여 서민의 등골을 빼먹던 시기가 아니겠어요?

먹이 사슬로 치면 최상위에 있는 존재가 바로 이들이었을 테니까요.

주교는 신으로부터 주민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하고 왕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에게만

그런 권한이 주어졌다고 믿었으니 두 사람이 서로 의기투합하면 세상에 두려운 존재가 하나도 없습니다.



81m 높이의 첨탑이 앞뒤로 각각 2개씩 있어 모두 4개의 첨탑을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밤베르크 대성당(Bamberger Dom)입니다.

무슬림은 모스크에 계급을 부여하듯 미나렛 수에 따라 서열을 정한다지요?

그런 네 개의 첨탑이 있는 곳의 계급은 어찌 될까요?



언덕 위에 있어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밤베르크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하겠네요.

처음 1007년 하인리히 2세가 시작했고 1012년에 건립되었으니 1237년에 화재가 발생해 다시 지었다네요.

그래서 첨탑은 고딕식이고 출입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되었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석상은 1230년경 만들었다는 밤베르크의 기사상(Bamberger Reiter)입니다.

한가운데 1513년 틸만 리멘슈나이더가 조각한 것으로 알려진 석관이 있네요.

틸만 리멘슈나이더는 뷔르츠부르크 마리엔카펠레(Marienkapelle)라는 교회의 입구 위의 아담과 이브 석상을 만든 조각가지요.

뚜껑에는 부부의 모습을 조각했고 주변으로는 그들의 삶을 조각했다고 하네요.



유럽에서는 죽은 후 성당 안에 이렇게 모셔진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석관의 주인공은 이 성당을 건립했던 황제 하인리히 2세와 황후의 석관이라고 합니다.

이런 대단한 성당을 지었으니 이 정도 호사롭게 석관을 만들어도 갑질이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대성당을 나와 왼편에 보이는 구 궁전(Alte Hofhaltung)으로 들어갑니다.

내부는 박물관이라 돈을 내야 들어가고 마당은 아름다운 문이라는 쇠네 포르테(Schöne Pforte)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답니다.

르네상스 양식의 구 궁전이나 지금은 프랑켄 지방의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처음 지을 때는 이곳 주교와 함께 밤베르크를 다스리려고 하인리히 2세가 주교와 함께 거주할 목적으로 지은 궁전이라고

하는데 왜 남자끼리 같은 집에서 살려고 그랬을까요?

목조 건물로 독일틱한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입구 왼쪽의 건물은 박물관이고 오른쪽은 영상 시청실이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중세에는 왕권과 신권이 진짜 주인인 민초은 내팽개치고 서로 주인행세를 하기 위해 다투었지요.

그런데 이 두 세력이 서로 짬짜미하면 죽어나는 것은 민초입니다

두 세력이 모두 민초을 위해 머리 싸매고 고민했으면 좋았을 텐데...

전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얼마나 더 기름 짜듯 고혈을 짜낼 궁리만 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