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저녁노을도 고운 드레스덴(Dresden)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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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드레스덴

2020. 8. 6.

드레스덴은 무척 화려한 유적이 있는 곳입니다.

해 질 무렵 엘베강을 건너서 바라본 드레스덴 구시가지의 풍경입니다.

아직도 완전한 복구가 되지 못했는지 건설 장비가 어지럽게 널려있어 피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곳이 화려한 이유는 아마도 부유했던 작센 왕조(Wettin dynasty)가 터를 잡고 살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들은 주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했고 또 그들의 생활 태도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이곳을 맹폭함으로 아름다웠던 구시가지는

대부분 파괴되고 민간인 희생자만 수십만 명이 발생했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 후 전쟁이 끝나고 이곳은 동독지역으로 편입되며 경제적으로 서독과 비교해 낙후되었기에 정체 상태에

머물다가 통일 후 활발한 복구작업이 진행 중인 곳으로 우리가 머문 기간에도 구시가지는

온통 공사판이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공사해야 마무리가 될까요?

 

작센 왕조의 지배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Friedrich August I:1750-1827)는 욕심이 무척 많은 사람으로

그는 녹색의 둥근 천장(Grünes Gewölbe)이라는 보물 창고를 가지고 있었다네요.

그 외 많은 건물을 지었기에 지금의 드레스덴이 여행자를 불러 모으지 않나 생각됩니다.

 

여행자가 주로 찾는 구시가지는 엘베(Elbe) 강변 남쪽에 자리하고 있더라고요.

엘베강 북쪽은 신시가지라고 하네요.

아우구스투스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올라가면 노이슈태터 마르크트(Neustädter Markt)라는 광장이 있는데

광장 한가운데 드레스덴의 맹주였던 황금색으로 장식한 아우구스투스 왕의 동상이 있습니다.

 

아마도 드레스덴은 아우구스투스 왕의 재임 시기에 가장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그래서 황금기였기에 황금 기마상을 세웠나요?

뭐... 아직 드레스덴의 전성기는 이제부터라고 하겠지만요.

 

해가 질 무렵 엘베강을 건너가 바라보는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만드는 실루엣으로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할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피렌체에 비교해 이곳을 독일의 피렌체라고 부르나 봅니다.

 

이 아름다운 드레스덴도 1945년 연합군의 대공습으로 도시 대부분이 초토화되다시피 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꾸준한 복구작업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되찾아있지만, 아직도 구시가지 곳곳은

복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공사판과도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더라고요.

 

전쟁이란 이렇게 인류의 소중한 유적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듭니다.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구시가지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걷다 보면 정말 박물관 안을 걷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워낙 방대한 유적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30여 개나 된다고 합니다.

 

신시가지의 중심광장인 알베르트 광장(Albertplatz)은 이 숲길을 따라가면 저 끝에 있다네요.

옛날에 저 광장이 옛 성벽의 문이 있던 자리라지요?

 

광장 한가운데는 슈틸레 바써(Stille Wasser)라는 두 개의 큰 분수가 있답니다.
그곳부터 여기까지의 멋진 숲길은 중앙거리(Hauptstraße )라는 이름으로 아주 멋진 길입니다.

이 멋진 숲길을 따라 다녀오고 싶지만, 저녁이 되니 멀리 가기가 그래서 ...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일본식 궁전(Japanisches Palais)이라고 하네요.

지붕 모습이 일본식이지요?1715년에 지었다고 하는데 한때 도자기 박물관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건너편 강가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실루엣으로만 볼 수 있는 유적 건축물의 모습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에 여운을 남기지 싶습니다.

이곳은 매년 5월이 오면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그런 장소라고 하지만,계절이 10월이면 황량한 강변일 뿐입니다.

 

이 커다란 드레스덴은 사실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다시피 했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장본인은 바로 아우구스투스 2세로 강건왕이라고 불린답니다.

그는 무척 낭비와 사치가 심했고 바람둥이로 소문난 군주였다고 합니다.

 

로코코 최고의 풍경 화가였다는 베르나르도 벨로도는 아우구스투스 3세의 궁정화가로 있으며

14점의 바로크 드레스덴의 대형 풍경화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중 엘베의 베니스를 그렸던 앵글을 캔버스로 만들어 남겨둔 곳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림을 남겼지만, 여행자는 이곳에서 사진을 남겨보지만, 공사 장비 때문에...

 

츠빙어(Zwinger) 궁전이나 레지덴츠 궁전과 젬퍼 오페라하우스(Semperopera) 등 여러 건물을 지음으로

오히려 지금 후손에게 많은 관광자원을 물려준 셈이 되었습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2세의 공식적인 아들만 354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역시 변강쇠와 같이 세긴 세군요.

 

무슨 아기 만드는 공장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부모 잘 둔 덕분에 작센 군주는 그동안 부를 축적했고 폴란드 왕까지 겸임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지 싶습니다.

 

츠빙어 궁전, 레지덴츠 궁전, 사치를 위해 필요했던 도자기 생산을 위해 마이센 도자기까지...

이 모든 것이 그의 사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성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치 때문에 지금의 드레스덴은 세상의 많은 여행자가 오고 싶어하는 곳이 되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요?

 

그 또한 드레스덴을 사랑했기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사망했지만, 유언으로 심장은 드레스덴에 묻어달라고 하여

지금 궁정 교회에 안치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폴란드 크라쿠프에 묻혔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선제후 시절에는 루터교도였으나 즉위 후에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다네요.

그 이유가 가톨릭이 대부분인 폴란드를 다스리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쇼팽은 죽어서 폴란드에 심장을 묻어달라고 하여 지금 바르샤바에 안치되어 있는데...

심장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사람의 중요한 인식표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