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라이프치히 아우구스투스(Augustusplatz) 광장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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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라이프치히

2020. 8. 14.

유리의 빛이 오묘한 느낌이 드는 건물이 아우구스투스 광장(Augustusplatz) 앞에 보입니다.

원래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던 대학교회였는데 동독 치하에 부숴버렸다가 통일 후 다시 만든 파울리눔

(Paulinum)이라고 불리는 푸른 빛의 유리로 지은 성 파울리 대학 교회(Universitätskirche St. Pauli) 건물입니다.

오늘은 아우구스투스 광장에 서서 주변 모습을 구경합니다.

 

물론, 대학 건물이 이곳에만 있지는 않고 시내 여러 곳에 단과대학이 분산되어 있더라고요.

라이프치히에서 아주 유명한 학생 식당인 멘사 식당이 뒤에 있다고 합니다.

라이프치히 대학은 동독 치하에는 카를 마르크스 대학으로 한때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는데

다시 옛 이름으로 개명했다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책 모양의 높은 우니리제(UniRiese)라는 건물은 위에서 보면 마치 책을 편 모습이라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의미의 우니와 거인이라는 리제의 합성어라고 하네요.

지금은 이름도 시티 호흐하우스(City Hochhaus)라고 부른다네요.

 

라이프치히가 원래 출판이나 인쇄로 유명한 곳이었다지요?

그래서 위의 사진에 보이는 높은 건물은 책 모양으로 건축했을까요?

처음 건축할 때는 라이프치히 대학 건물로 지었으나 지금은 미국의 메릴린치 투자회사의 건물이 되고 말았다는데

120m의 높이로 꼭대기에는 레스토랑 겸 전망대(Panorama Tower)가 있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라이프치히 대학 이집트 박물관(Egyptian Museum of the University of Leipzig)

있는 건물로 주변에 대학 건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대학촌을 이루고 있나 봅니다.

1928년 처음 건축할 때 베네치아 시계탑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위의 해머를 들고 종을 치고 있는 모습은 매우 비슷합니다.

그런데 베네치아의 종치는 사람은 무슬림의 모습인데 이곳은 평범한 유럽인으로 만든 게 다른 점입니다.

시계의 직경이 4.3m 종의 크기는 3.3m로 라이프치히 대학의 부속건물로 사용 중이라네요.

 

라이프치히 대학은 140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교라고 합니다.

괴테도 이곳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바그너도 졸업했다고 하니...

동독 시절에는 아무래도 모든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어 주춤했겠지만,

다시 예전의 명예를 되찾으려고 활동 중이라네요.

바흐나 멘델스존이 활동했던 도시라 라이프치히를 걷는다는 일은 음악의 산책이라고 봐야 할까요?

 

문화예술의 도시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아우구스투스 광장 한가운데 18m 높이의

멘데 분수(Mendebrunnen)는 이곳을 한층 빛내는 역할을 합니다.
가운데 오벨리스크로 장식하고 주변에 역동적인 천마로 보이는 청동 조각으로 만든 분수입니다.

 

조각상은 소라고동 나팔을 부는 것으로 보아 바다의 신이라는 트리톤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유럽에서는 분수 조각에 늘 단골로 등장하는 조형물이 포세이돈이나 트리톤이지 싶습니다.

그 유명한 로마 트레비 분수의 조각상도 트리톤이잖아요.

 

말의 의미는 하나는 고요의 바다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격동의 바다를 의미한다고 하겠지요.
분수 이름을 멘데라는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라이프치히를 빛낸 멘델스존을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주변에 유서 깊은 대학이 있고 오페라하우스며 콘서트홀이 있어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지성의 광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동독 시절에는 카를 마르크스 광장으로 개명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네요.

시류에 따라 변하는 게 세상의 이치인가 봅니다.

모든 트램이 이 광장을 거쳐 간다고 합니다.

 

게반트하우스라는 콘서트홀(Gewandhaus)은 앞에 보이는 오페라하우스와 쌍벽을 이루는 예술의 전당이라고 합니다.

처음 이 건물은 콘서트홀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직물회관으로 만든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최신식 건물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활동 근거지라고 합니다.

바로 앞에 있는 오페라하우스와 더불어 예술의 중심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광장 주변으로 많은 벤치를 만들어 편히 쉬었다가 갈 수 있습니다.

 

1981년에 다시 지어 최신식 현대적인 건물로 음향시설이 뛰어나다고 하네요.

대형 홀은 무대를 가운데에 두고 객석을 6각형으로 배치한 특이한 모습으로 수용인원은 1.900여 명이라고 합니다.

500여 석 규모의 작은 홀이 있는데 멘델스존의 이름을 따서 만든 실내악 공연을 주로 하는 연주 홀이라고 하네요.

멘델스존이 살았다는 곳으로 찾아가다가 보았던 하녀 분수(Mägdebrunnen)입니다.

물동이를 짊어진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눈길을 끌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이 강인한 이미지의 독일 처자 얼굴 한 번 더 보고 갑니다.

하녀 분수라고는 하지만, 아가씨 분수라고 바꾸면 어떨까요?

이 정도라면 아이돌 수준의 여자로 보입니다.

 

멘델스존이 살았다는 아파트인 멘델스존 하우스(Mendelssohn-Haus)입니다.

 

함부르크 출신의 음악가였지만, 이곳에서 주로 활동하며 살았기에 바흐만큼 라이프치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음악가라고 합니다.

 

낭만파 음악의 창시자라고도 부르는 음악가라지요?

우리 귀에도 익숙한 결혼행진곡이 있고요.

 

그는 조금 전 우리가 보고 왔던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여러 거장의 숨겨져

빛을 보지 못하는 작품을 발굴해내는 재주를 지녔다고 합니다.

그의 흉상이 아파트 마당에 보입니다.

 

그는 이곳 아파트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하네요.
특히 푸줏간의 고기 포장지로 사용된 바흐의 작품을 찾아내 공연함으로 유명해진 곡이 바로 마태수난곡이라고 합니다.그는 이곳에서 살며 여생을 보냈기에 함부르크 사람들보다 이곳 라이프치히 사람들이 더 사랑하나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라이프치히에서 하루 숙박하며 구경할 정도가 아니라면

걸어서 다니며 보아도 될 정도로 넓지는 않습니다.

서너 시간 정도만 걸어 다녀도 라이프치히의 대부분을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정도는 머물며 아우구스투스 광장의 화려한 야경까지 본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