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가을이 깊어가는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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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베를린

2020. 9. 3.

베를린은 서울의 면적보다 넓다고 합니다.

파리의 9배나 된다고 하고요.

그러나 베를린 시민은 서울 인구의 반도 되지 않는 4백만 명 미만인데 면적은 넓다고 합니다.

 

숙소 뒤로 들어가면 샤를로텐부르크성(Schloss Charlottenburg)이 있다고 하여 잠시 들러봅니다.

내부는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정원은 무료입니다.

프로이센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1세가 부인 조피 샤를로테를 위해 지었다는 여름 별궁이라고 합니다.

 

허!!! 그것 참!역시 권력이 있으니 이런 정도의 궁전을 지어 쉽게 선물할 수도 있네요.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전쟁 중 폭격으로 부서지기도 했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라고 합니다.

 

이제 브란덴부르크 문을 향하여 천천히  비스마르크 스트라세를 걸어갑니다.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거리상으로는 6.5km 떨어져 있다고 하지만, 주변 모습을 보며 가고 싶어 걷습니다.

그 유명한 베를린 공과대학(Technische Universität Berlin) 건물이 오른쪽에 보입니다.

 

베를린 공과대학을 지나자 강이 나타납니다.

베를린 시내를 관통하는 슈프레강을 파서 물길을 만든 인공운하입니다.

란트베어 운하(Landwehr Canal)라고 하는데 유람선이 다니네요.

 

슈프레강 유람선 투어가 있어 이런 것도 좋지 싶네요.

슈프레강을 따라 1시간에서 3시간 정도 배를 타고 다니며 강변의 모습과 유서 깊은 베를린을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다고 하네요.

타는 곳은 여러 곳에 있지만, 주로 박물관 섬 주변에서 타는데 짧은 코스가 15유로 정도 한다고 합니다.

 

이곳부터 티어 가르텐이라고 부르는 베를린 시내에 있는 제일 큰 시민 공원이네요.

다리 위에는 샤를로텐부루크 게이트(Charlottenburg Gate)라고 멋진 조형물을 세워두었습니다.

문 앞에는 마치 중국의 석패방(石牌坊)과 화표(華表)라고 하는 조형물과 거의 유사하게 보입니다.

 

이 문은 예전에 베를린시와는 별도로 독립된 도시였던 샤를로텐부르크시에서 베를린의 관문처럼 보이는

브란덴부르크 문에 대응하기 위해 이 운하를 경계로 샤를로텐부르크 다리 위에 만든 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쌍벽을 이룬다는 말인데 워낙 잘생긴 브란덴부르크 문에 밀려

지도상에는 다리 이름조차 나오지 않더군요.

 

다리를 지나면서 오른쪽부터 베를린의 허파 역할을 하는 티어 가르텐(Großer Tiergarten)이 시작됩니다.

티어 가르텐은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공원입니다.
따라서 베를린 시민들에게는 대단히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네요.

 

숲이 우거져 있기에 신선한 공기를 내뿜어 베를린에 산소 공급도 하지 싶습니다.

17세기에는 선제후의 사냥터였다고 합니다.

1830년부터 시민에게 돌려져 시민의 휴식처가 되었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시내 한가운데가 아니었겠지만, 어떻게 이런 곳에 사냥할 정도로 짐승이 많았을까요?

아마도 지금으로 치면 갑질이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아랫것들을 시켜 짐승을 잡아 오게 하여 이 숲에다가

풀어두고 선제후는 열심히 그 동물을 쫓아다니며 잡는 생쇼를 했지 싶습니다.

뭐... 저수지에 물고기 풀어놓고 낚시질하는 것이랑 다를 게 없네요.

 

불평등하고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그때는 그게 질서였지 싶습니다.

그랬던 것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과감히 사냥터를 폐지하고 시민들에게 쉴 수 있는 공원으로 개방했다니...

당시에는 파격적인 조치였다고 생각되네요.

 

어찌 생각하면 그런 사냥터로 오래도록 존재했기에 지금의 거대한 시민 공원이 되었다고 생각되네요.

만약, 이곳도 사냥터가 아니고 그냥 나대지로 있어 개발되고 했다면 지금 이런 큰 공원은 생겨날 수 없지 싶습니다.

 

브란덴부르크를 향해 큰길을 따라 계속 걷고 있는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반대 차선을 달리던 차들이

일제히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유턴하며 달려 나갑니다.

이게 베를린의 트라비 사파리(Trabi Safari) 투어 차입니다.

 

트라비는 동독에서 생산한 무척 작은 국민차였다고 합니다.

이제는 성능이 훨씬 뛰어난 독일 차 뿐 아니라 수입차까지도 트라비 성능을 뛰어넘기에 더는 생산되지 않지만

그러나 이런 올드카를 몰고 시내를 돌아보는 투어가 있는데 보통 1시간 15분에 5유로 정도 한다고 하네요.

 

차의 성능이라든가 재미는 전혀 기대하지 말고 타야 하지 싶습니다.

동독에서 생산했던 올드카를 탔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투어가 아닌가요?

 

오늘 걷는 길이 조금은 멀다 싶지만, 베를린의 이런 가을의 풍경을 즐길 수 있기에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베를린에도 가을이 왔고 이제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10월의 어느 날 우리는 이렇게 가을의 베를린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런 가을의 어느 날 사진처럼 낙엽이 떨어져 뒹굴고 단풍이 물든 베를린 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행운이지 싶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베를린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는 분단의 상징이며 또 독일로는 통일의 상징인 곳이죠.

베를린이란 그런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다 보니 독일의 여느 도시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르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버려진 동네에 많은 이민자가 모여들고 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곳.

그곳이 베를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