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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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베를린

2020. 9. 10.

문 위로 멋진 장식 보이지요?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탄 승리의 여신상입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만든 지 2년 후인 1793년 요한 고트프리트 샤도(Johann Gottfried Schadow)가 만든

작품으로 승리의 콰드리가(Quadriga)입니다.

 

콰드리가는 사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고대 로마 시대의 전차지요.

쉽게 생각하면 벤허를 떠올리면 되겠네요

승리를 상징하기에 빅토리아 여신이 타야 제맛이겠네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은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입구의 정문인

프로필리에 열주문을 흉내 내 만들었다고 하네요.

당시 막강했던 힘을 지닌 프로이센의 개선문으로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프리드리히 2세의 명령으로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의 설계로 1791년 완공했다고 하니 200여 년이 넘었네요.

가로 65.6m에 높이 26m라고 합니다.

외에 눈에 띄는 장식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독일에 대한 뉴스에 무조건 등장했던 문이라서 분단 독일의 상징이었기도 했고요.

동시에 통일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독일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랜드마크와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문 앞에 분단 당시의 장벽이 지나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돌로 만든 선이 바로 분단 당시에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곳입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의 서쪽 앞으로 이런 선이 있으니 문의 위치는 바로 동베를린에 있었다는 의미겠지요.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하고 이 승리의 콰드리가 여신상이 탐이나 1806년에 가져갔다고 하네요.

물론, 나중에 다시 돌려주기도 했지만요.

탐낼만한 멋진 조각상이 분명합니다.

원래는 평화의 상징이었으나 돌아오고 난 후부터는 승리의 상징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승리의 콰드리가에 집착이 강했다지요?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 위에 장식한 콰드리가도 가져가 파리 개선문 위에 장식했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주기도 했다는데 베네치아의 콰드리가도 사실은 콰드리가의 원본과도 같은 고대 그리스에서 만든

것으로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베네치아 공국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문 앞에 있는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은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늘 혼잡합니다.

분단 당시의 미군이나 그런 모습을 하고 함께 사진 찍는 사람도 많고요.

늘 이 광장에서는 여행자 뿐 아니라 시위도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시위는 요란스럽지 않고 조용하게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하는 모습이 이채롭더라고요.

 

파리저 광장 부근에 여러 나라의 대사관 건물이 보입니다.

지금 이곳은 지하철 공사를 새로 한다고 공사 장비로 사진이 어지럽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나치 치하에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입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로 이런 곳에 오면 독일 민족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같은 전범국인데도 일본과 어쩌면 이렇게 비교가 될까요?

일본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생각은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몇 년 후 침범 사실조차 없었다고 할 민족이지요.

 

그러니 나치 정권 아래서 학살당한 유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추모 공간입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네모반듯한 직사각형 돌이 가득 메워져 있습니다.

가로세로 크기는 같고 높이만 20cm에서 4.7m로 모두 다른 2.711개의 돌이라고 하네요.

 

2005년 종전 60주년 되는 해에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로 만든 것으로

추모 공원 넓이가 축구장의 3배나 된다고 합니다.

돌의 모습을 보면 석관처럼 생각됩니다.

 

지하에는 피해자들의 증언이나 수기, 사진 등을 전시한 공간이 있습니다.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는데 내부가 협소해 입장 인원을 제한하며 위의 사진에 보듯이 늘 대기했다가 들어가야 하기에

시간이 없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그냥 외부의 모습만 보고 지나갑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곳은 크게 볼 것은 없는 공터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무척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히틀러의 지하 벙커(Führerbunker)가 있던 자리입니다.

위치는 추모 공원 바로 근처입니다.

특별한 표시가 없고 작은 표지판만 남아있기에 그냥 쉽게 지나칠 곳이네요.

 

이곳은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벙커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히틀러는 이곳 지하 벙커에서 숨어지내며 연인이었던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까지 올렸다지요?

지하 약 8m 지점에 4.2m의 두께로 벙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린 그다음 날인 4월 30일 동반하여 권총 자살을 한 곳이라고 합니다.

결혼식까지 했으니 총각 귀신은 아니겠네요.

그렇게 쉽게 자살할 사람이 어찌 그렇게 모질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요?

 

그러나 그의 시신은 부하들에 의해 바로 화장했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남미로 피신해 살았다는 이야기도 들리더라고요.

그러니 시신은 없다는 말이 되는군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전쟁이 끝난 후 1947년에 벙커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지금은 그냥 공터로만 남아있습니다.

파괴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교육적인 의미로 그대로 두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