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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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베를린

2020. 9. 17.

웬 담장이냐고요?

담장은 맞지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담장입니다.

Berlin Wall, 그러니까 동서 베를린을 둘로 갈라놓은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입니다.

 

담장이란 나를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외부와의 소통을 방해하고

나를 더욱더 깊숙한 수렁 속으로 고립시키는 역할을 하지요.

세상에는 나를 보호하고 나로 인해 상대가 피해를 보지 않고 서로가 교통할 수 있는 그런 울타리는 없을까요?

 

베를린 장벽을 찾아가는 길에 보았던 독일 스파이 박물관(German Spy Museum)이라고 있습니다.

동서가 분단된 이곳에서 치열한 첩보전을 했기 때문에 이런 박물관이 있나 봅니다.

당시의 첩보전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바쁜 관계로 지나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동독 감시탑(DDR Watch Tower)입니다.

그러니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자국 시민을 감시하고 탈출을 감행하면 사살하기도 했던 곳이겠지요.

당시 베를린에서만 탈출하다 사살된 동베를린 시민이 200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제 베를린 장벽(Berlin Wall)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베를린 장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지요.

설치 당시의 모습 그대로 원형 상태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라서 더 의미 있는 시설물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으로 서로의 왕래를 막고 이념에 따른 반목과 다른 길을 가고자 했나 봅니다.

위의 사진에서 바닥에 보이는 선이 바로 장벽이 설치되었던 곳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통행 허가가 시행되자 동서독 주민 모두 장벽으로 몰려와

망치를 들고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네요.

이렇게 부서지기 시작한 베를린 장벽은 통일 독일로 나가는 밑거름이 되었겠네요.

베를린 장벽은 1961년 동독에서 세운 장벽이지요.

그 이전에는 서로 쉽게 왕복할 수 있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이곳에 오면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많은 생각이 나게 하는 곳이지요.

 

그러나 자유를 찾아 서베를린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며 동베를린은 43km에 이르는 장벽을

세우게 되었다네요.

그때가 바로 1961년 8월 12일 밤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철조망으로 처음에 장벽이 세워지게 되었네요.

 

처음에는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철조망을 쳤으나

점차 높이 5m의 장벽으로 바꾸어나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장벽은 30년간이나 동서로 갈라놓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분단 30년간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 5천여 명, 발각되어 구속된 사람이 5천여 명 그리고 탈출 도중

발각되어 사살된 사람이 200명 이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난 후에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9년 5월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이 발표되고 동유럽 권에도 자유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동독인들이 주변 인근 국가인 오스트리아나 항가리로 탈출이 시작되고...

한번 터진 물은 저수지의 작은 구멍이었지만, 금방 둑을 무너뜨리잖아요.

 

이렇게 한번 불기 시작한 탈출의 바람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1989년 11월 9일 저녁 7시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을 포함해 모든 국경을 개방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더는 버티기 어려웠지 싶습니다.

 

세계사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런 드라마틱한 일이 가장 크게 가슴에 와 닿았을 겁니다.

당시 우리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초조하게 지켜보았습니까?

 

1989년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월요 데모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동독 주민이 점차 늘어나고

체코를 통해 동쪽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며 동독 정부도 서독 방문을

점차 허락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언론에서 즉시 서독방문을 허락한다고 발표됨으로 동베를린 사람들은 즉시 장벽을 부수고

넘어가기 시작하자 장벽을 제재하던 동베를린의 군인조차 수수방관에 이르고...

오보였지만, 불을 댕긴 결과가 되었습니다.

 

장벽은 붕괴하고 초소는 있으나 마나가 되고 말아  동독 정부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네요.

그러나 공식적으로 장벽의 철거는 1990년 6월에서야 이루어졌고 그해 10월 3일 우리의 개천절에 독일의 통일도

이루어졌으니 그야말로 독일도 우리나라와 같이 하늘이 열린 개천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테러의 포토그라피 박물관(Topography of Terror)은 장벽과는 연관이 없는 곳이지요.

장벽 아래에는 나치 정권하에 자행된 공포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 있더라고요.

이곳은 나치의 만행을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답니다.

장벽 아래 반지하에는 나치 시절에 행했던 일들을 보여주는 사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장벽에 관한 사진도 함께 볼 수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