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포츠담 오랑주리 궁전(Orangery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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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포츠담

2020. 10. 16.

앞에 연못이 있고 정원으로 꾸민 앞뜰이 보입니다.

그 뒤로 아주 멋진 궁전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오랑주리 궁전(Orangery Palace)이라고 합니다.

 

오랑주리라는 말은 원래 더운 지방에서 생산되는 오렌지 등을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북방에서 재배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흔히 우리가 온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건물을 짓는다는 일은 당시로는 서민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대체로 넓은 대지에 큰 온실을 지어야 하기에 많은 투자가 뒤따르겠네요.

게다가 재배가 쉽지 않은 식물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전문적인 기술자도 필요할 것이고요.

따라서 왕실처럼 권력과 재력을 겸비했던 부류의 사람이 만든 호사라고 생각합니다.

 

궁전 아래 정원에는 활을 쏘는 조각상이 하나 서 있는데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조차 없습니다.

아폴로가 아닐까요?

 

상수시 공원 안의 오랑주리 궁전은 빌헬름 4세가 1851~1864년 사이에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탈리아를 동경해 이탈리안 르네상스 양식으로 궁전을 지었다고 하네요.

옥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일품이라고 하지만, 당시 보수하는 중으로 입장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옥상에 오르지 않아도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도 좋습니다.

상수시 궁전과 더불어 계단을 올라가야만 궁전에 접근할 수 있네요.

 

건물의 길이가 300m나 된다고 합니다.

포츠담에 있는 궁전 건물 중 가장 긴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상수시 궁전으로 방향을 돌려 걷습니다.

 

잠시 걷다 보니 풍차처럼 생긴 곳이 보이네요.

이곳은 제일 먼저 1738년에 프리드리히 윌리엄 1세에 의해 완공된 물레방아를 돌리는

풍차를 설치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궁전이 즐비한 곳에 웬 풍차랍니까?

 

이곳을 상수시 Historic Mill of Sanssouci라고 한다는데 예전에는 이곳에서 풍차를 이용해 방아를 돌렸다는데

지금은 그냥 옛 모습대로만 서 있고 건물은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영업 중이네요.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예전부터 이곳 상수시에 뮐러의 전설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상수시 공원(Sanssouci Park)은 포츠담의 서쪽에 있어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곳입니다.

그 넓이만 290ha라고 하니 짐작이 되시죠?

당시 이 공원을 설계할 때 프로이센의 최고 조경가였던 레네가 심혈을 기울인 곳이라고 합니다.

 

18세기 프랑스식 정원 조경 양식에 따라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연못도 있고 수백 종의 나무도 심어 놓아 숲이 우거져있습니다.

그 사이마다 정자도 배치하고 작은 소규모 궁전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왕후들의 취향에 따라 만든 듯하네요.

그 사이를 걷는 일도 체력이 약한 분은 조금 무리가 될 정도로 넓은 곳입니다.

동서로 약 2.3km 정도가 되고 남북으로 2km 정도 됩니다.

 

신궁전과 상수시 궁전 사이만도 1.8km 정도는 되니 걸어서 공원 내부를 모두 다닌다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고

시간 또한 하루는 족히 걸리지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나절만 슬쩍 돌아보고 가려고 합니다.

 

여기 또한 사냥터로 시작한 곳이기에 대단히 넓은 정원이 있는 곳이더라고요.

동서양을 불문하고 예전의 왕들은 공통으로 즐기는 3대 엔터테인먼트가 있지요.

하나가 바로 여기서도 즐겼다는 사냥입니다.

 

매일 궁궐에만 머물기에 워낙 활동량이 적은 왕이기에 운동하기 위해 일부러 움직이게 하는 것 중

사냥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물론, 직접 사냥감을 쫓아다니며 힘들게 사냥하지는 않고 일정 장소에 잡아 온 짐승을 풀어놓고 주변으로

몰이꾼이 왕이 사냥하기 편하게 짐승을 몰아주면 왕은 호기롭게 잡도록 하는 생쇼에 불과하지만요.

 

그다음이 음주 가무입니다.

당시에 제법 이름께나 알려진 무희를 불러다가 함께 춤추며 술 마시고 노는 일이지요.

지금으로 친다면 아이돌 수준의 무희였을 겁니다.

 

당시 앉아서 하는 놀이 중 가장 재미있었던 놀이가 바로 음주 가무였을 겁니다.

다만, 동양과는 달리 서양은 뭐 조금 머리에 든 것 같이 오페라나 유명 음악가를 궁정으로 불러 음악 연주 등

이런 것을 듣거나 보기는 하지만, 동양권에서 가희와 무희 등을 불러다가 노는 것은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하지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예능이 바로 주색잡기입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권력자가 했던 최고의 놀이였을 겁니다.

국가 경영에 중요한 정사를 돌보지 않고 개인적인 정사에만 몰입해버리면 나라도 개인도 결딴나지 싶습니다.

 

자고로 '영웅은 미인의 관문을 넘기 어렵다(英雄難過美人關)'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권력을 잡으면 마치 영웅이나 된 듯 생각하기에 여기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면 올바른 말을 한다는 신하는 늘 경국지색으로 망했던 고사를 들먹이며

달기가 어떻고 포사나 여희를 들먹이며 아니 되옵니다만 연발하다가 가끔 죽임을 당하기도 하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런 일은 권력을 가진 권력자에게는 동서양 불문입니다.

중국 서주의 마지막 왕이었던 유왕 궁열은 자기도 영웅이라고 미인만 밝히다가 제후국 군주 중 한 사람인 포향이

진부하게 폐하! 아니 되옵니다라고 했다고 잡아 가두어버렸지요?

몇 년이 지나도 아비가 풀려나지 않자 그의 아들인 포홍덕이 이이제이라고 미인을 밝히는 군주를 나무라다가 붙잡힌

아비를 구하려면 또다시 미인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구해온 여인인 포사라고 있지요.

결국 신무기 포사로 인해 서주는 사라지게 되었으니 경국지색이 맞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