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좋은사람 2021. 1. 15. 18:57

이씨 왕족과 양반은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상놈, 종놈, 

노비를 착취하고 조선을 말아 처먹은 당사자입니다. 

일본놈들이 조선백성을 착취한것보다  양반이 착취한 것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합니다. 

자기동족을 노비로 삼은나라


성도 없었고 족보도 없었던 상놈과 노비는 글을 배울 기회도 없었고, 

양반이 때리면 맞았고, 강간하면 당했고, 죽이면 죽었습니다. 

양반으로의 신분상승은 절대 불가였구요.

노비종모법을 만들어 조선에 노비를 가장 많이 양산한 

왕이 세종대왕입니다. 

같은 민족인 조선인의 전 인구 40%까지 노비를 늘렸던 

위대한 왕입니다. 

천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퇴계 이황은 노비가 3백 명이란 

설도 있을 정도입니다. 정말로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구한말 고종이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판윤을 44년 동안 

2주에 한 번씩 갈아 치우면서 매관매직으로 수 천 명의 

양반을 만들어 냈듯이 양반 족보를 사고 팔아 양반의 

숫자가 늘기는 했지요.

그런데, 이씨 왕족과 양반이 상놈과 노비에게서 단물을 빨고 있는데 

스스로 반상을 없애려고 했겠습니까? 

종놈과 노비는 양반의 재산인데 아무댓가 없이 놔 줄 것 같나요?
한국인 70%는 상놈이고 종놈 노비였는데 

 이런국가를 만든 세종대왕과 퇴계이황이 존경을 받는  대한민국

우숩다 우스워 으하하하  우습다

 
 
 

기타/어쩌구 저쩌구

좋은사람 2021. 1. 15. 18:35

----닭 이야기---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경기도 화성군의 

어느 한 양계장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IMF사태로 사료값이 폭등하자 하루 세 번 주던 

모이를 한 번으로 줄였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배가 고파진 닭 2만 마리가 서로 싸워 죽이더니

죽은 닭의 내장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한다.

배고픔이라는 공동의 고통 앞에서

이렇게 2만 마리의 ‘닭 사회’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개미 이야기---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 동물’은 개미라고 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책 <개미세계의 여행>을 보면, 

앞으로의 지구는 사람이 아니라 개미가 

지배할 것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주장을 펼친다.

그 근거는 

첫째,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미의 무게를 합치면

      모든 인간의 무게를 합친 것보다 더 나가며

둘째, 개미들의 희생정신과 분업 능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개미는 굶주린 동료를 절대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개미는 위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개인적 위’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위’다.

굶주린 동료가 배고픔을 호소하면 두 번째 위에 

비축해 두었던 양분을 토해 내 먹이는 것이다.

 

한문으로는 개미 ‘의(蟻)’자는 벌레 ‘충(蟲)’자에 

의로울 ‘의(義)’자를 합한 것이다.

‘의로운 곤충’이라 불리는 것은 아마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주께서 딱 하나의 위만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인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굶주림의 고통이 닥쳐올 때

닭보다 더 무자비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음을 인류역사는 말해 준다.

이성을 가졌음에도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는 더한 짓도 주저치 않는다.

그러나 또 놀라운 사실은 위가 하나뿐인 우리 인간들이 때로는 

위를 두 개나 가진 개미들보다 더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자기 일처럼 감싸왔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본능과 이성, 욕망과 양보, 착취와 사랑이라는 

양면성에 의하여 인류역사와 우리 사회는 전쟁과 평화, 

갈등과 화해, 질투와 사랑, 후퇴와 발전을 반복하며 지나왔고,

앞으로도 그 틈바구니 속에서 갈팡질팡하나 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경기도 화성군의 

어느 한 양계장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IMF사태로 사료값이 폭등하자 하루 세 번 주던 

모이를 한 번으로 줄였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배가 고파진 닭 2만 마리가 서로 싸워 죽이더니

죽은 닭의 내장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한다.

배고픔이라는 공동의 고통 앞에서

이렇게 2만 마리의 ‘닭 사회’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개미 이야기---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 동물’은 개미라고 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책 <개미세계의 여행>을 보면, 

앞으로의 지구는 사람이 아니라 개미가 

지배할 것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주장을 펼친다.

그 근거는 

첫째,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미의 무게를 합치면

      모든 인간의 무게를 합친 것보다 더 나가며

둘째, 개미들의 희생정신과 분업 능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개미는 굶주린 동료를 절대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개미는 위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개인적 위’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위’다.

굶주린 동료가 배고픔을 호소하면 두 번째 위에 

비축해 두었던 양분을 토해 내 먹이는 것이다.

 

한문으로는 개미 ‘의(蟻)’자는 벌레 ‘충(蟲)’자에 

의로울 ‘의(義)’자를 합한 것이다.

‘의로운 곤충’이라 불리는 것은 아마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주께서 딱 하나의 위만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인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굶주림의 고통이 닥쳐올 때

닭보다 더 무자비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음을 인류역사는 말해 준다.

이성을 가졌음에도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는 더한 짓도 주저치 않는다.

그러나 또 놀라운 사실은 위가 하나뿐인 우리 인간들이 때로는 

위를 두 개나 가진 개미들보다 더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자기 일처럼 감싸왔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본능과 이성, 욕망과 양보, 착취와 사랑이라는 

양면성에 의하여 인류역사와 우리 사회는 전쟁과 평화, 

갈등과 화해, 질투와 사랑, 후퇴와 발전을 반복하며 지나왔고,

앞으로도 그 틈바구니 속에서 갈팡질팡하나 보다

 
 
 

기타/어쩌구 저쩌구

좋은사람 2021. 1. 15. 18:33

무아지경(無我之境)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천하에 둘도없는 극치와 쾌감을 느꼈을때

무아지경(無我之境)이란 말을 쓰지요

예를들어 천하제일의 비경(悱境)을 보았을때와

활홀한 음악을 감상했을때 그리고 엉덩산 고갯길(?)을 넘나들며

짜릿한 쾌감으로 황홀경을 느꼈을때

이를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 하기도 하지요

그럼 과연 무아지경이란 어떤 말일까요?

 

무아지경(無我之境) 이란 불교에서 유래된 말로서

"정신이 한곳에 통일되어 나(我)를 잊고 있는 경지(境地)"를 말함이라 하지요

즉 무의식(無意識)의 세계란 뜻인데 다시말해 무아(無我)의 경지란

자기라고 하는 조그마한 껍질 즉 가짜 자기의 탈을 과감히 벗어 버릴때

자성(自性)의 본질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불교는 인간이 자기만 알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극히 경계하고

자아(我)가 가진 탐(貪;욕심), 진(瞋;성냄), 치(癡;어리석음)

이 세가지를 3독(毒)이라 했어요

 

그러므로 자아의 속성을 과감히 뛰어 넘어 참 깨달음인

열반의 경지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있지요

즉 무아는 자아(自我)의 벽을 허물어 무아지경에 이르도록 힘쓰는 것이라 하네요

 

다시말해 무아지경(無我之境)은 자기를 잊음,

곧 무의식(無意識)또는 그런 경지,사사로운 마음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불교는 일체는 무상(無常)한 것이므로 자아(自我)의 존재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무아지경이란 무엇에도 내 마음이 예속 되지 않는

무의식(無意識)의 세계를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선인(仙人)이나 철학자들은 천하의 절경을 보고

무아지경을 느끼고 오랫동안 참선한 선승들은 무의식의

경지에 이르러 무아지경을 느끼지요

그러나 우리같은 범인들은 환락을 통해서만 

무아지경을 느끼려 몰입하고 있어요

 

'몰입(沒入)'은 고도의 집중을 유지하면서'충분히 즐기는' 상태로서

우리가 말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나 

'무아지경(無我地境)'과도 같은 맥락이지요

그런데 경북 군위군에 가면 인각사(麟角寺)라는 사찰이 있는데

이 사찰에는 오래전 많은 보살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시주(施主)를 하여

선당(善堂)을 지었는데 이를 무무당(無無堂)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지요

 

아무리 호방(豪放)하고 심오한 사찰의 기풍(氣風)이라해도

선당의 이름을 아무것도 없다는 무무당(無無堂)이라 이름을 짖다니 ........

우린 여기서 과연 무무(無無)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무무(無無)라 “ 없고 없다 ” 일까요?

아니면“ 없는게 없다 ” 일까요?

 

한문으로 풀이하면 없을무(無) 없을무(無) 이니

"없고 없다"도 되고 "없는게 없다"도 되니

이도저도 다 맞는 말이지만 득도(得道)하여 해탈(解脫)한 어느 선승은

“ 없고 없는게 없는게 없는것이다 ” 라고 풀이 했다 하는군요

 

없고 없는게 없는게 없는것이라 ~~

다시말해 아무것도 없지만 없는게 없다는 뜻이 아닌가 ~~

정말 지고한 불심의 세계는 혜량(惠諒)할수 없는 것인가봐요

 

그래요 오랫동안 수도하여 해탈(解脫)에 경지에 이르면

그 생각이 깊고 넓어 우리같은 범인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높고깊은 지혜(智慧)에 늪에 빠지나봐요

우리도 이 가을에 혜량없는 지혜에 늪에 빠져

백지같은 무무(無無)처럼 마음을 비우면 아무것도 없음이

없는게 없는것임이 된다는것을 헤아려 보시기 바래요

 

꽉 차 있으면 채울수 없지만 언제나 비우면

다시 채울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마음속 깊이

여미고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보기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