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좋은사람 2020. 11. 27. 19:11

영조(英祖)의 근검절약(勤儉節約)

 

선왕인 경종(景宗1688/1720/24) 독살설에 휘말리지만 않았다면
아들 사도세자(思悼世子) 문제만 없었다면

영조(英祖1694/1724/76)는 훨씬 성공한 군주가 될 수 있었다.
영조는 근검절약(勤儉節約)을 솔선하는 애민(愛民) 군주였다.

재위 20년 1744년 5월 영조가 병이 들어 약원(藥員)의 진찰을 받을 때

신하들은 영조의 침실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일국의 왕의 침실이 민간의 부잣집만도 못한 것을 보고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한다.
뿐만 아니라 의복도 이따금 빨고 기워 입었다.
영조는 절검을 솔선함으로써 사대부들의 사치를 금지하려 했지만
흉년과 전염병으로 백성들이 죽어 가는데도 사대부들의 사치는 계속되었다.

 
영조(英祖)의 생모 숙빈 최씨(淑嬪崔氏)
최씨(崔氏1670-1718)는 7세에 궁에 들어가

침방나인(針房內人)으로 궁녀생활을 시작했다.
영조(英祖)는 세자 시절 어머니로부터 침방일 중에서 `

누비옷`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말을 듣고
왕이 되어서는 절대 누비옷을 안 입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