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계(동물)/척삭 조류

자연인 2017. 8. 15. 12:02

까 치

학명 : Pica pica

분류 : 척삭동물문 - 조강 - 참새목 - 까마귀과

까치는 한자어로 작이라 하며 희작, 신녀라고도 하였으며, 몸길이 45cm, 날개길이 19∼22cm 정도로 까마귀보다 조금 작은데, 꽁지가 길어서 26cm에 이르며, 아랫배 부분과 어깨 부위만 흰색이며 나머지는 검은색으로 암수 같은 빛깔로 식성은 잡식성이어서 쥐 따위의 작은 동물을 비롯하여 곤충, 나무열매, 곡물, 감자, 고구마 등을 닥치는 대로 먹으며, 나무의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이기도 하지만, 다른 조류의 알이나 어린 새끼 등을 포식하는 때도 있고 많은 과수원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둥지를 중심으로 한곳에서 사는 텃새로서, 둥지는 마을 근처 키 큰 나무 위나 전신주 및 고압 송전탑 등에 나뭇가지나 철사토막 등,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둥근 모양의 둥지를 만들며 안에는 진흙, 풀 그리고 깃털 등을 깐다. 둥지는 어미 한 마리만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의 입구만 남겨 놓고 모두 나뭇가지로 덮어버리고 튼튼한 둥지를 짓는데 일반적으로 둥지는 해마다 같은 것을 수리해서 쓰기 때문에 점점 커진다.


까치의 신화, 민속, 상징

- 삼국유사에는 계림의 동쪽 아진포에서 까치소리를 듣고 배에 실려온 궤를 얻게 되어 열어 보았더니 잘생긴 사내아기가 있었는데, 훗날의 탈해왕이 되었다는 석탈해신화가 실려 있으며, 이로 인하여 까치는 귀한 인물이나 손님의 출현을 알리는 새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또한, 신라 효공왕 때 봉성사 외문 21칸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고 하였고, 신덕왕 때에는 영묘사 안 행랑에 까치집이 34개, 까마귀집이 40개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 동국세시기에는 설날 새벽에 가장 먼저 까치소리를 들으면 그 해에는 운수대통이라 하여 길조로 여겨왔으며, 불교에서는 보양이 절을 지으려고 북령에 올라갔다가 까치가 땅을 쪼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파 보았더니 해묵은 벽돌이 나왔는데 이 벽돌을 모아 절을 세우고 작갑사라 하였다는 설화가 전하며, 이 설화에서 까치는 부처의 뜻을 전하는 행운을 상징한다.


민간 세시풍속

- 칠월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놓은 오작교를 건너서 만나는 날로 알려져 있는데, 칠석에는 까마귀나 까치를 볼 수 없다고 하며, 칠석날을 지난 까치는 그 머리털이 모두 벗겨져 있는데, 그것은 오작교를 놓느라고 돌을 머리에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하며, 성실한 사람을 돕는 선행자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한편 유난히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을 “아침 까치 같다” 하고, 허풍을 잘 떨고 흰소리 잘 하는 사람을 “까치 뱃바닥 같다”고 빗대어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전설에서 오작교는 남녀가 서로 인연을 맺는 다리로 알려졌고 남원의 광한루에 있는 오작교는 바로 이도령과 성춘향이 인연을 맺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 또한, 까치는 상서로운 새로 알려져 있어서 ‘까치를 죽이면 죄가 된다.’는 속신이 전국에 퍼져 있으며,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사람이 온다.’고 한다.

- 경기·충청 등 중부지방에서는 까치가 정월 열나흗날 울면 수수가 잘 된다고 믿고 있으며, 까치가 물을 치면 날이 갠다고 하고 또한, 호남지방에서는 까치둥우리가 있는 나무의 씨를 받아 심으면 벼슬을 한다는 속신이 있으며, 충청도에서는 까치집을 뒷간에서 태우면 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까치집 있는 나무 밑에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는 속신도 중부지역 일원에 널리 퍼져 있고 『동의보감』에는 오래된 까치집은 미친병과, 뱀, 지네, 두꺼비들의 독기을 다스리는데, 이를 태워 재로 만들면서 숭물의 이름을 부르면 낫는다고 하였는데, 이처럼 까치는 반가운 사람이나 소식이 올 것을 알리는 새로서, 그리고 부자가 되거나 벼슬을 할 수 있는 비방을 가진 새로서 우리 민족에게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한편 경상북도 경기도 서면에는 ‘까치성’이라는 작은 토성이 있는데, 신라의 김유신이 백제를 공격할 때 군사를 이끌고 그곳에 이르자 이상한 까치가 날아와 진영을 돌다가 대장기 끝에 앉았다.

김유신이 칼을 빼어들고 까치를 향하여 호통을 치자 까치는 한 절세미녀로 변하여 땅에 떨어졌다. 그 여자는 백제의 공주인 계선으로 신라군의 동정을 염탐하러 왔던 것이다. 김유신은 계선의 항복을 받은 뒤 진군을 계속했는데, 그 뒤로 그 성을 ‘까치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이러한 전설 이외에도 까치에 관한 설화는 많다. <까치의 보은>으로 조사된 설화는 과거보러 가는 한량이 한 수쿠렁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까치를 그 구렁이를 죽이고 살려주었는데, 나중에 한량이 죽인 구렁이의 암컷의 보복으로 죽게 되었을 때 머리로 절의 종을 받아 종소리 세 번을 울려 한량을 구하고 까치는 죽었다는 이야기로서 전국 각지에 전승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까치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새로 되어 있다.

-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부석사는 까치가 나무껍질을 물어다 떨어뜨린 곳에 세운 절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뱀에게 잡아먹히게 된 까치를 구해준 사람이 뒤에 뱀의 독이 있는 딸기를 먹고 죽었는데, 까치가 온몸을 쪼아 독을 제거하여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 같이 설화에는 까치가 은혜를 알고 사람의 위기를 구해주는 새로 나타난다. 민요에도 까치가 등장한다. 아이들이 이를 갈 때 빠진 이를 지붕에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너는 헌 이 가지고, 나는 새 이 다오.”라는 동요를 부르기도 한다.

아이들의 눈에 티끌이 들어갔을 때도 그것이 나오도록 할 때 노래를 부르는데, 거기에도 까치가 등장한다. “까치야, 까치야, 내 눈에 티내라, 안 내주면 네 새끼 발기발기 찢겠다.” 이 밖에도 까치는 민요와 유행가의 소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