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한의 엣세이들

짝퉁 배철수 2008. 11. 25. 16:38
 
 

키낮은 음성으로

 

한 친구가 결 고른 노래를 불러주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달과 흰구름이 두웅실 떠 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 다니겠지 

 

.....

 

 

 

이렇게나 아름다운 노랫말이 있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대명동 안지랭이 라는 동네.

 

아지랭이가 많이 피워오르는 곳이라 하여

 

그 이름, 안지랭이 골.

 

가을날 스산한 바람 등지고 집으로 가는길에

 

키큰 미류나무들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고 미류나무 낙엽들 마구 흐드러지게 낙하하던

 

그길.

 

 

 

 

 

그 길 아래쪽에 있었던 연못 비슷한 웅덩이에 나뭇잎배들 처럼

 

둥둥 떠 다니는 미류나무 낙엽들.

 

가을 바람 창문 흔드는 밤이 되면

 

웅덩이에 떠 다닐 나뭇잎들이 걱정되었다.

 

그 어둠속에서 이렇게나 몰아치는 바람속에서

 

우리 모두는 어둠속으로 홀로 떠 다니는

 

외로운 것들이라는 막연한 공포감.

 

나는 이렇게 따뜻한 방에 누워있는데

 

그 나뭇잎들은 어둠의 물위로 떠다니고 있겠지 싶은 공포감

 

그럴 때 조용히 불러보았던 그 노래

 

엎드려 웅얼 웅얼 거렸던 그 노래

 

낮에 놀다 두고온 나뭇잎배는

 

엄마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이렇게나 아름다운 노래가

 

그렇게나 외롭고 공포스럽게 다가 왔다니.

 

 

 

 

 

 

 
 
 

요즘 문화 읽기

짝퉁 배철수 2006. 11. 10. 04:32

난조를 탄 선녀 仙女乘鸞圖
주문구周文矩 (중국 오대십국 시대) 작

 

 

   한 선녀가 흰 옷깃을 휘날리며 오색찬란한 깃털을 가진 난조鸞鳥를 타고 날아갑니다. 그녀는 구름에 둘러싸인 금빛 달을 잠깐 돌아보죠. 신선의 풍류가 느껴지는 참 매혹적인 그림이에요. 이 그림의 선녀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녀가 달에 사는 상아嫦娥(항아姮娥라고도 불림)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상아가 잠시 지상으로 외출하면서 집을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요.

 

   우리의 한가위는 중국에서는 중추절이지요. 그런데 중추절의 주인공이 바로 달의 여신 상아랍니다. 중국인들이 중추절에 먹는 월병月餠 - 말 그대로 달떡 - 포장에는 달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선녀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녀가 바로 상아지요. 우리에게도 고전문학에서 미인을 묘사하는 상투적인 표현 “월궁항아”라는 말 때문에 익숙한 선녀예요.

 

   상아가 어떻게 달의 여신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는데, 전설의 버전이 여럿입니다. 그 이야기들을 오늘은 한번 단편소설로 풀어봤습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의 “금오신화” 중 "취유부벽정기"에 한가윗날 밤 대동강변에서 한 선비가 선녀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본떠서 달밤에 한강변에서 상아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는 형식으로 써봤습니다. ^^

 

 

계수나무 가지를 든 상아 嫦娥執桂圖
당인唐寅 (1470-1523 중국 명나라) 작

 

  

   취유고수부지기(?)

  

   Moon 지음

 

   그건 내가 안 하던 운동 좀 해보겠다고 한강 둔치까지 나왔던 어느날 밤의 일이었다. 빠르게 걷기 겨우 몇 번 하고 잔디에 주저앉아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는데, 물 한가운데 하얗게 빛나는 것 – 마치 동화 속 야광주 같은 것이 보였다. 순간 놀랐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역시… 보름달이 떠있었다. 엷은 금빛 달이 맑고도 깊은 검푸른 하늘에 둥실 떠있었다.

 

   강물에 달 그림자가 비치는 걸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극을 많이 본 탓인지 난 갑자기 옛 선비나 명기를 흉내내서 달을 보며 한시漢詩를 읊어보고 싶어졌다. 근처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좀 떨어져 있어서 소리 내 외어도 거기까지 들리진 않을 것 같았다. 읊을 시는 뻔했다. 내가 외울 수 있는 한시는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온 것 중에서도 제일 짧은 몇 개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 달밤에 맞는 건 딱 한 개였다. 그건 당나라 말기 시인인 이상은李商隱 (812~858) 이 상아에 대해 노래한 시였다.

 

   雲母屛風燭影深 (운모 병풍에 촛불 그림자 짙어지고)
   長河漸落曉星沈 (은하수 점점 기울어 새벽별 잠긴다)
   嫦娥應悔偸靈藥 (상아는 영약 훔친 일을 후회하겠지)
   碧海靑天夜夜心 (푸른 바다 하늘에서 밤마다 지새는 마음)

 

 

   갑자기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무안해져서 뒤돌아보니까 여자 한 사람이 서있었다 – 홀연히. 나는 그녀를 보고 얼떨떨해졌다. 옛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옷을 걸친 사람이었으니까. 바람에 나부끼는 소맷자락은 넓어서 하늘을 덮을 것 같고, 굽이쳐 흐르는 물길 같은 옷자락은 길어서 땅을 덮었다. 옷은 은은한 광채를 띄는 흰색이었는데, 신기한 건 보는 각도에 따라 그 광채가 푸르스름한 은빛을 띠기도 불그스름한 금빛을 띠기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나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멀리 않은 곳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이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들이 꿈결같이 아득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아까와 달리 대기는 고요하고 더없이 청정했다. 이 여인 주변에는 특별한 공기가 감도는 것 같았고 그 공기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차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귀신한테 홀리는 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걸음걸이가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구름 위를 걷는 듯 미끄러져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구슬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잘 보니까 날씬한 허리에 맨 띠에 정교하게 조각된 백옥 노리개가 두세 벌 달려있어서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였다. 옛 글에 “패옥 소리 쟁쟁하다”라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아가 영약 훔친 것을 후회한다고 했소?”
   그녀가 다가와서 물었다. 가까이서 보니 새카맣고 윤이 나는 긴 머리카락에 하얀 얼굴은 상아를 깎아 만든 것 같고 길쭉한 눈매에 커다란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표정은 차가운 듯 온화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이한 향기가 풍겼다.


   “아니, 저… 시가 그렇게 돼있어서요. 저는 다른 전설도 아는데요, 그게 맞는 건지도…” 나는 당황해서 횡설수설 했다. 이 사람이 바로 상아구나!
   “그대가 원래 상아에 대해 아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다른 전설이란 건 또 무엇이오?”

 

   “저기… 제가 아는 얘기는 ‘회남자淮南子’랑 ‘초사楚辭’ (모두 중국 한나라 때의 저서) 에 나온 건데요. 사실 저도 원문은 못 읽어봤지만… 학자들이 말하길 거기 나오는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상아와 남편인 명궁 예羿는 원래 신이었는데 예가 특별한 임무를 맡아서 지상으로 내려온 거래요. 그 임무란 하늘에 갑자기 열 개의 태양이 떠오른 사태를 해결하는 거였대요. 그 해들은 천제 제준帝俊의 열 아들인데 원래는 하루씩 번갈아가며 하늘로 올라가는 거였지만 어느날 장난 삼아 한꺼번에 떠올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강물은 순식간에 말라버리고 동식물은 타죽고 말라죽고 세상은 엉망이 됐죠. 그래서 제준이 예를 보냈던 거고, 예는 지상에 내려서자마자 활을 들어 태양들을 쏘기 시작했대요. 해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리저리 도망갔지만 예는 신궁의 솜씨로 차례차례 쏘아 맞춰서 결국 하나만 남았대요. 그래서 세상은 정상으로 돌아갔지만, 제준은 자기 아들들을 그렇게 거의 다 죽일 필요가 있었느냐고 화를 내며 예가 천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대요.

 

   예 부부는 이렇게 신에서 인간으로 격하돼버렸고 상아는 불만이 대단했대요. 그래서 예는 해결책을 찾아 신선들의 여왕 서왕모 (서왕모에 대해서는 예전 글 "신선들과 서왕모의 복숭아 잔치로" 를 참고)를 찾아갔대요. 서왕모는 예에게 영약 두 개를 주면서 하나를 먹으면 지상에서 불로장생할 수 있고 두 개를 한꺼번에 먹으면 신선이 되어 날아오른다고 했대요. 예는 영약을 아내와 하나씩 먹기 위해 가져왔지만,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상아는 남편 몰래 두 개를 혼자 다 먹어 버리고 날아올라 달로 도망쳤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거기서 남편을 배신한 벌을 받아 두꺼비가 되었다고도 하고, 그냥 달에서 쓸쓸하게 혼자 산다고도 해요.”

 

고구려 고분 벽화의 해의 신과 달의 신
오회 4호분, 집안
사진 출처: cafe.naver.com/kogooryo

 

   (이 벽화에서 남신이 든 해 속에는 세발까마귀 즉 삼족오가 들어있고 여신이 든 달 속에는 두꺼비가 들어있습니다. 예가 아홉 태양을 쏘았을 때 그것들이 땅에 떨어진 것을 보니 삼족오였다고 되어있습니다. 삼족오와 두꺼비는 각각 양과 음을 상징하는 동물로 해와 달과 결부되었다고 합니다. 상아는 태고에 독립적인 달의 여신이었으나 기원 후 음양설이 널리 퍼지면서 태양과 관련 있는 예와 부부로 엮어지고 또 두꺼비로 변한 전설도 생겼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나는 그녀가 혹시 화를 내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는 그녀가 상아라고 확신했다) 바라봤지만 그녀의 얼굴은 조용하고 알 수 없는 미소가 감돌았다. 나는 얼른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다른 전설도 들었어요. 어떤 전설에 따르면 오히려 예가 나쁜 사람이었다고 하던데요. 그는 아홉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공로로 왕이 되었는데 점점 폭군이 되었대요. 백성들을 착취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그걸 영원히 누리고 싶어서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얻었대요. 그의 아내 상아는 어진 사람이었는데, 백성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걸 보고 저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약을 훔쳤대요. 예가 그걸 알고 쫓아오자 상아는 얼떨결에 약을 삼키고 신선이 되어 달로 솟아올랐다고 해요. 그 후 예는 백성들에게 쫓겨났고 백성들은 상아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음력 8월 보름이 되면 햇과일과 술과 음식을 차려 달에게 바치게 되었대요. 그게 중국 중추절의 기원이라고… 한국에도 한가위란 게 있는데요. 달에게 제사를 지내진 않아요. 대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지요.”

 

   그녀는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셋째 버전! 이건 상아와 예가 모두 좋은 사람인 이야기예요. 예가 서왕모에게서 영약을 얻어온 것까진 앞의 얘기들과 같구요. 그 다음부터가 다른데, 예의 제자 중에 탐욕스러운 자가 하나 있어서 그 자가 예가 집을 비운 사이 무장을 하고 예의 집으로 쳐들어와서 불사약을 내놓으라고 했대요. 상아는 그를 막을 힘이 없었고 어떻게든 약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약을 삼켜버렸다는 거예요. 그러자 몸이 가벼워지며 천상으로 날아오르게 되었지만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더 멀리 가지 않고 달에 머물렀대요. 집에 돌아온 예는 슬퍼하며 아내가 날아간 8월 보름마다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과 음식을 차려 달에 바쳤다고 해요. 그게 중추절의 기원이고요. 요즘 중국 사람들은 이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는데… 제일 로맨틱하니까요. 혹시 이게 맞나요?”

 

상아가 달로 달아나다 嫦娥奔月 (1955)
임솔영 任率英 (중국, 1911-1988)작
비단에 채색, 89.5×53.5cm

 

   “아니, 첫째 전설이 맞습니다. 내가 나쁘게 나오는 이야기가… 이미 알아챈 듯 싶은데, 내가 바로 상아입니다. 단지 후회한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지요…”
   나는 좀 어안이 벙벙해졌다. 상아가 내 표정을 보더니 다시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 “나와 한 잔 하며 내 이야기를 듣고 싶소?”

 

   나는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몸을 돌려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몸집이 자그마하고 동그란 눈을 한 귀여운 시녀가 가볍게 뛰어왔다. 그리곤 (도대체 언제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곧바로 하얀 비단방석 두 개를 깔고 방석 사이에 백옥 소반을 놓고는 은으로 된 주병과 잔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상아는 시녀를 시켜 내 잔을 채우게 했다. 그녀가 권하는 대로 한 모금 마셨지만 너무 써서 난 그만 울상이 되었다.
 
   그걸 보고 상아가 또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인간이니 어찌 백옥례白玉醴를 알겠소?”
   “저…백옥례가 뭔데요?”
   “신선이 마시는 술입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럼 적어도 몸에는 좋겠구나 히힛… 혹시 나 불로장생하는 거 아니야?’
   “인간이 먹는다고 불로장생하게 되지는 않는다오.”

   나는 뜨끔하면서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을까 궁금했다. 상아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지상에서 불로장생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요?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말이오. 내 남편은 그것을 바랬었지…”
   상아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본래 신이었다고 하나 나는 그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와 달리 원래부터 그저 인간이거나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이미 천상의 기억을 잃어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었던 게지요. 내 남편이 아홉 태양을 쏘아 떨어뜨려 세상을 구한 것은 그대가 말한 대로입니다. 그로 인해 남편은 지상에서의 명성과 부와 권력을 얻었지요. 또 사람들이 절세미녀라고 칭송하는 아내도 두었으니 아무런 부러울 것이 없다고, 다만 늙고 죽는 것이 두렵다고, 남편은 말하곤 했지요.

 

전한시대 고분 벽화의 달두꺼비와 해까마귀

마왕퇴한묘
사진 출처: cafe.naver.com/inhasia

 

   ‘이 행복을 영원히 지속하고 싶지 않소?’ 그는 내게 묻곤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지요. ‘그렇다면 행복도 지루해지고 더 이상 행복이라 느끼지도 못하지 않겠습니까? 이승에서 불로불사하면 하나의 세계에 끝없이 정체해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늙고 죽어 다른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죽는다고 끝은 아니지 않습니까?’ ‘쯧쯧, 늘 거문고를 안고 달과 구름을 보며 시나 짓더니 정말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구려.'

 

   그의 말대로 나는 늘 달과 구름을 사랑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결 같으면서도 변화무쌍하고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듯 싶습니다. 특히 구름이 달 위로 흘러가는 날이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방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요. 나는 언제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가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편 불로장생의 꿈에 집착하던 남편은 어느날 서쪽 곤륜산崑崙山의 신선 서왕모가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겠다고 했지요. 나도 같이 가겠다고 졸랐습니다. 불사약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도道와 일체가 되어 자아와 세상 만물과의 구분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신선을 직접 보고 또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위험하다며 허락하지 않았지요. 남편이 떠나있는 동안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만 가고 방랑하고픈 마음도 강해져만 갔습니다.

 

   마침내 몇 달 후에 남편이 돌아왔습니다.나는 곤륜산이 어땠는지 서왕모가 어땠는지 꼬치꼬치 물었지만 그는 짤막하게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금과 마노로 장식된 옻칠 상자를 자랑스레 보여주며 이 안에 그와 내가 먹을 영약이 두 개 들어있다고 했지요. 약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 했더니 내가 철이 없어 못 믿겠다면서 때가 되면 볼 테니 그때까지 잘 숨겨놓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요.
 
   ‘내가 그걸 버리기라도 할까 봐 아니면 혼자 다 먹어치우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것인가?” 하고 하루는 내가 혼잣말로 불평하자 하녀 아이가 말했습니다. ‘제가 주인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엿들은 바로는 그 약을 하나만 먹으면 인간으로 불로장생하는 것이고 두 개를 먹으면 아예 인간을 벗어나 신선이 된다 합니다.’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신선! 한눈에 세상을 굽어보고 동쪽 아지랑이의 기운과 서쪽 서리의 기운을 한 찰나에 느낀다는 신선! 하지만 영약 두 개를 혼자 먹겠다는 생각은 그때까지는 하지 못했지요. 단지 나는 그 약이 보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상자를 어디에 감추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늘처럼 보름밤이었지요. 나는 우연히 들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과연 남편이 내게 보여주었던 상자가 있었고 그 상자 틈으로 광채가 스며 나오고 있었습니다. 상자를 선뜻 열어보지도 못하고 한참을 조심스레 살피고 있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광채가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며 금빛에서 은빛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득 집히는 바가 있어 달려가 얇은 비단으로 된 둥근 창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달이 보였습니다… 상자의 광채는 달빛에 따라 변하는 것이었지요. 나는 왠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심정이 되어 상자를 열었습니다. 둥근 환약 두 개가 들어있었는데, 눈부신 광채를 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환약을 바라보고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충동적으로 영약을 삼켰습니다.

 

 

   순간 하얀 달빛이 온통 내 눈 안으로 내 온 몸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고 내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습니다. 나는 한 순간에 지상의 잎새에서 밤이슬이 듣는 것부터 은하수 속 별들의 일렁임까지 느낄 수 있었지요. 나는 그 모든 것을 느꼈지만 또 그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할 수도 있었습니다. 청아한 공기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르는 내 마음은 한없이 자유롭고 거칠고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 어느새 계수나무가 매운 향내를 내뿜는 금빛 대지가 보였습니다. 나는 달에 발을 딛었습니다. 그리고 붉은 먼지로 뒤덮인 지상을 굽어보았습니다.

 

   그때 공중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부부의 의를 저버린 이 몹쓸 것아. 대가를 치르리라.” 그러자 갑자기 내 몸이 오그라들고 피부가 울퉁불퉁해졌습니다.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으나 꾸엑거리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두꺼비가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던 남편이 생각나며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벌을 받았구나. 영약을 삼키지 말 것을… 하였지요.

 

상아가 달로 달아나 두꺼비로 변하는 모습

한나라 시대 벽돌 탁본

 

   그때 마음 속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너는 평생 그 환희를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야. 너는 죽지도 못하고 겉만 화려한 밋밋한 삶을 끝없이 살아야 했을 것이야.’ 그러자 자책하는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나를 벌준 이들도 탓하지 않았지요. 남편을 배신한 죄가 있었으니까요.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담담히 지냈습니다. 마음을 비우니 두꺼비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홀연히 한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장려한 옷차림, 신비한 기품이 있는 자태, 양 옆에 거느린 푸른 옷의 시녀들… 나는 곧 그 부인이 서왕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죄를 뉘우쳤느냐? 영약 훔친 것을 후회하겠지?’ ‘…죄를 지은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벌을 달게 받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영약 훔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서왕모는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표정은 엄숙했으나 미묘한 미소가 감도는 것이 내 마음을 아는 듯 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구나. 너에게 더 벌을 주는 것도 소용없겠다. 너는 미치광이가 틀림없으니 말이다. 네 남편 예의 한도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가셨으니 너도 두꺼비의 굴레에서 풀어주마. 너는 여기 살며 너 같은 미치광이들이나 돌보도록 해라.’
   서왕모는 크게 웃으며 돌아갔고 나는 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의 주인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지요.”
   상아가 말을 마쳤다.

 

상아가 달로 달아나다 (1885)
요시토시 (일본) 작, 목판화

 

   “그렇지만 외롭지 않으신가요?” 내가 물었다. “이백李白 (701-762) 의 '파주문월把酒問月'에 이런 구절이 있거든요.

   白兎搗藥秋復春 (하얀 토끼는 봄 가을 없이 영약을 찧고)
   姮娥細栖與誰隣 (상아는 외로이 사니 누구와 이웃할까)”
 
   “아까 서왕모의 말씀을 못 들었습니까? 세상의 모든 광기 들린 자들이 나의 벗이라오. 그 시인도 마찬가지지요. 그는 달 그림자를 잡으러 물에 뛰어들 정도로 미친 자였습니다.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관직을 집어 던지고 술병을 차고 방랑을 떠난 자, 여염집 아낙이길 포기하고 기녀가 되어 거문고 둘러메고 산천을 누빈 자, 그들은 모두 나를 좇고 나를 바라보고 노래를 불렀지요. 나는 달빛을 타고 내려가 그들과 만납니다. 교분은 순간이면서도 영원한 것. 그들과 나는 모두 빈 잔과도 같습니다. 고독하고 서글프나 충만하기도 합니다. 그 무엇도 담을 수 있으니까요. ”

 

   이때 갑자기 묘한 화음이 들렸다. 상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조鸞鳥가 나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된 듯 합니다. 갑자기 나눈 이야기였지만 즐거웠습니다.”

 

   곧 오색 깃털을 가진 커다란 새가 날아와 앉았다. 상아는 훌쩍 난조 위에 올라탔다. 동그란 눈의 시녀가 한 번 재주를 넘더니 보송보송한 하얀 털의 옥토끼로 변신하여 그녀의 품에 안겼다. 상아는 나를 향해 한 번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난조가 다시 묘한 화음 같은 울음을 한 번 울고 땅을 박차고 오르며 한번 날갯짓을 하자 큰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술상이 있던 자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인이 돌아간 탓인지 달빛은 더욱 눈부셨다. 눈부신 달을 보며 내 마음은 한없이 뿌듯하고 한없이 허전하여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상아가 말한 심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 마지막 구절을 생각해냈다.

 

   永結無情遊 (무정한 놀이를 영원히 맺어)
   相期邈雲漢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길)

 

 

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글쓴이 : Mo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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