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배철수와 결혼하였다 발췌문들

짝퉁 배철수 2005. 7. 15. 10:22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모텔의 경제학, 대학의 경제학

2005년 한국의 모텔은 보쌈집이나 피자집과 같다. 경제적 주체로서 그렇다는 말이다. 일례로 모텔에도 '보너스'가 있다. 열 번 주문에 1회분 음식을 덤으로 주는 치킨집처럼 요즘 일부 모텔에선 '마일리지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섹스를 둘러싼 남녀 간의 도발적 대사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연애의 목적'에 나오는 장면 하나. 일단 찍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작업남 교사' 유림은 모텔 앞에서 연상의 교생 홍에게 이렇게 수작을 건다.

"단골이 있을 것 아니에요. 요즘 마일리지 카드도 있던데. 열 번 가면 한 번 공짜." 빤질빤질한 유림에게 모텔은 집보다 친숙한 장소다. 두 남녀의 의사소통도 학교보다 모텔에서 이뤄진다. '광장형 인간'보다 '밀실형 인간'이 넘쳐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그런 유림도 이달 출간된 소설 '그리하여 그녀는 짝퉁 배철수와 결혼하였다'의 캐릭터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은 "나를 키운 8할은 여관이었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전국의 모텔을 순례한 그들은 각 모텔의 특징을 요약한 가이드서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여관에서 배웠다'를 펴내 대박을 친다.

물론 상상, 픽션이다. 아직 서점가에는 그런 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에선 모텔 사이트가 성업 중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만 수백 개의 카페가 개설됐다. '모텔 가이드' 한곳에만 9만여 명이 가입한 상태다. 그만큼 수요가 있고, 시장이 형성됐다는 증거다.

사회현상에 민감한 대중문화에 최근 모텔이 자주 등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 '가능한 변화들'(3월), '연애술사' '극장전'(5월), '녹색의자'(6월) 등은 여관, 혹은 모텔이 없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연애술사'는 모텔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찾아 나선다는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도 내포했었다. 15일 개봉하는 '목두기 비디오'도 여관방 '몰카'에 찍힌 귀신을 추적한다.

이 영화들은 솔직하다. 인간의 성욕, 그 욕망이 분출되는 모텔을 음습한 곳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번듯한 양복을 입은 채 속으로 호박씨를 까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서의 여관을 수용했다고나 할까.

"점잖은 척 뜸들이며 설 풀기는 싫어"를 외치며 '가자, 장미여관으로'라고 유혹했던 마광수 교수가 1980년대의 '억눌린 성'을 여관이란 메타포를 통해 풀었다면 '연애의 목적'의 유림은 "저 정도 모텔이 3만5000원이면 진짜 싼 거네. 요즘 숙박업계도 장사가 잘 안 되나 보네"라고 서슴없이 뱉는다.

영화 '녹색의자'의 시나리오와 소설 '…배철수와 결혼하였다'를 쓴 작가 김전한씨는 "모텔에도 품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국 수십 곳 모텔을 일일이 돌며 소설을 쓴 그는 "위치.가격.인테리어 등 모텔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르다"며 "대다수 청춘이 한번쯤 들어갔을 법한 모텔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륜을 부추기는 퇴폐적 공간이 아닌 사랑을 확인하는 구체적 장소, 겉과 속이 다른 우리의 이중성을 벗겨내는 통로, 다양성.차별화.시장경쟁 등의 경제원리를 따르는 재화로서의 모텔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의 답사 체험에서 나온 법칙 하나. 서울에서 먼 모텔일수록 서비스가 좋고, 가격은 저렴하다. 조급한 욕망이 넘치는 '서울 모텔'은 크게 치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반면 시간 많고, 전망 좋은 방을 찾는 손님이 찾는 '지방 모텔'은 실내장식 하나, 비품 하나에도 신경을 집중한다고 한다.

모텔도 이렇게 진화하는데, 한국의 대학은 어떤가. 서울대가 준비하는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과연 '나쁜 뉴스'가 될 수 있을까. 모텔도 다양성을 추구하고, 수요에 따라 우열이 결정되듯 대학의 차별화와 우수학생 선발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미래를 헤쳐갈 상아탑의 경쟁력 또한 동일한 원리에서 비롯한다. '모텔의 경제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청와대가 이를 정말 모를까.


박정호 문화부 차장  
광장형 인간과 밀실형인간..저는 두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