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도

누구랑 2019. 12. 30. 17:07


소설 '수라도' 문학현장

양산 용화사 (龍華寺)


ㅁ.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원동로 199-133


ㅁ. 문화재

   .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491호

   . 전통사찰 제6호


설 '수라도'는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 선생이

1969년 <월간문학>에 발표한 중편 소설로,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6.25에 이르기 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

낙동강 하류 어느 시골 양반 집안의 수난사를 그린 이 작품은

한 집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집약해서 말해준다.


작품 속의 공간이 실제 공간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이 일대는 요산소설 중 가장 명확하게 현존하는 문학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황산베리끌' 길은 물금 취수장 ~ 원동 취수장에 이르는 약 2km의 구간으로서 경부선 철길과 낙동강 사이에 있다.

'수라도'는 '아수라도'의 준말로 불교에서 이르는 지옥의 하나이다.

「수라도」제목이 상징하 듯 우리 민족의 근대사가 아귀다툼의 고통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쓰여진 작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주인공 가야부인의 삶의 역정이 '수라도'로 나타난다.

작품은 내용 자체가 전쟁과 증오, 파괴가 그치지 않는 어둠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 속 '미륵당' 및 '돌부처'는

서간도에서 돌아간 시할아버지 허진사으,ㅣ 입젯날 제삿상을 보아 머리에 이고

'황산베리끝' 길을 돌아오다가 가야부인은 우연히 땅에 묻힌 돌부처를 발견한다.

그곳에 조그만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기로 작정을 하지만 엄격한 유교 집안이어서 마음에 병이 생긴다.


소설 속 이 내용이 바로 용화사에 얶힌 이야기다.




[ 물금 취수장 ]


부산 시민들의 식수를 취급하는 물금 취수장

이 곳 옆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용화사가 나온다.




[ 물 문화전시관 ]


물금 물 문화전시관 여프 경부선 철도 밑을 지나면 용화사가 50m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 물 문화전시관은 1962년 12월 제2차 상수도 확장사업 일환인

수원지 수원 보충용으로 취수능력 (12만톤/매일)을 가진 물금 제1취수장을 건립하여 운영하였으나

취수장의 노후 및 취수능력 확장 (1975~1983년까지)을 위해

취수 능력을 가진 제2취수장을 건립하면서 취수장의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제1취수장을 2004년 물문화회관으로 용도 변경이 결정되어 물문화전시관으로 탄생되었다.




[ 용화사에 이르는 길 ]


물금 물 문화전시관 아래에 있는

경부선 철길 아래 지하도를 지나야 용화사에 접근할 수 있다.




[ 경부선 열차 ]


용화사에서 바라 본 경부선 철길의 무궁화호

용화사 바로 옆을 경부선 철길이 지나고 있다.




[ 용화사 ]


전통사찰 제6호로 지정되어있는 용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인 통도사의 말사로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낙동강변에 자리한 사찰이다.

성종2년(1471) 승려 성옥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그 이후의 연혁은 남아 있지 않다.

대웅전을 제외한 현재의 가람은 대부분 1990년대 이후 정비된 것이다.

가람의 구성은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가 있다.

대웅전은 소박한 익공을 가진 맞배지붕 건물이다.


통일신라 시대 이후 우리나라의 가람은 대부분 산지가람으로 만들어진 반면

용화사는 강변에 조성된 가람이라는 특징이 있고,

양산에서는 유일하게 강변에 만들어진 전통 가람이다.

사찰 뒤로는 오봉산이 자리하며 앞으로는 넓은 낙동강이 흘러 안락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 황산잔로비 ]


강희33년(1694) 황산잔로 정비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으로

용화사 대웅전 좌측에 위치해 있다.

「갑술년 (1694)에 군수 권성구가 탄해 스님과 별장 김효의를 시켜

깊은 곳을 메우고 험한 곳은 깎아 평탄한 도로를 만든 공을 기려 세운 것이다.」





[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491호로 지정된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은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춘 불상으로 불상 자체의 높이는 125cm 정도이다.

처음부터 용화사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김해시 상동면 감로리 절터에 있던 것을 1947년 용화사 대웅전을 중창하면서 옮겨 왔다고 전해진다.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둘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당한 어깨와 풍만한 가슴, 양감이 살아있는 팔과 다리의 표현에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왼쪽 어깨만 감싸고 있는 법의는 조각 수법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몸에 밀착하여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에는 불꽃무늬, 연꽃무늬, 구름무늬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윗부분에는 작은 부처 1구와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광배에 비천상이 조각된 것은 매우 드문 예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8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꽃 무늬와 비천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