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껍질까지 진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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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

2020. 4. 25.

성산 신천마장에서 말로만 들었던 감귤껍질 말리는 광경을 보았다. 


마소를 키웠던 넓은 마장에 노란색 감귤껍질을 널어 놓아서

겨울 햇볕과 차가운 바닷 바람에 자연건조를 시키고 있었다.

   


제주에서도 이렇게 많은 감귤껍질은 구할 수 있는 곳은 감귤가공공장 뿐이다.


감귤 성분의 원료 제품을 생산하는 가공공장에서

파치감귤을 뜨거운 물에 데우고 기계로 벗겨내면서 만들어진 감귤껍질을 이렇게 말리는 것 같다. 


   

말린 감귤껍질은 동물의 사료나 한약재로 쓰여진다고 하는데,


한약재로 쓰기에는 말리는 방식이 비위생적인것 같고

또한 감귤껍질에 남아있는 잔류 농약성분이 어떠한 방식으로 처리하여 약재화 하는지 의문이다. 



조선시대의 제주 감귤은 임금에게 보내는 진상품이었으며,

궁전이나 사대부 가문에서 제례용이나 빈객 접대에 필요한 고급 과일로 사용되었다. 

 

농정회요(農政會要) 등 옛 기록에서 감귤의 활용을 보면 

꿀에 졸여 먹는 정과, 사탕에 재워 과자를 만드는 유감당과, 유자를 썰어 꿀물에 넣어 먹는 유자차,

술에 담가 먹는 유자주와 유자화채를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어

제주 감귤은 귀한 과일로 인기를 끌었던것 같다.



제주 감귤은 약방의 감초에 견줄 만큼 과육, , 껍질 모두가 중요한 한약재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감귤껍질을 말린 진피는

허준의 저술한 동의보감(東醫寶鑑)600가지가 넘는 각종 처방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한약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원진 제주 목사의 저서 탐라지(耽羅志)에 의하면

진피(陳皮), 청피(靑皮) 지각(枳殼) 감귤을 가공한 껍질 229근을 모아 

전의감 및 혜민서로 매년 약재로 상납하여 보내졌다고 기록하고 있어


제주감귤은 왕실과 사대부는 물론 백성들의 병환 치료제로도 널리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닷가 넓은 초원에서 마소를 키웠다는 신천마장은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흐르다 멈추면서 바닷가에서 넓게 퍼져 굳어진 지형 

평야가 거이 없는 제주에서 특이한 마장인데 겨우 감귤껍질 말리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예전에 한약재로 쓰였던 감귤껍질은

신천마장과 같은 넓은 곳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말리지 않았다.


 농가들이 식용하기 위하여 우녕팟에서 재배하던 감귤을 따먹고

껍질을 곱게 씻어 멍석에 널어 말리면 엿장수들이 다니면서 수집해 갔었다.



이렇게 껍질까지도 진상품이었던 제주감귤은

제주의 백성들을 54개소에 이르는 감귤과수원 강제 노역에 동원되면서 고통을 받게 하였다.


제주인들은 조선의 감귤 진상 제도가 폐지되는 1893(고종 31)까지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감귤나무를 뽑아 버리면서 감귤재배에 대한 기피가 이어져 왔었다.




이렇게 껍질까지도 진상품으로 제주민을 괴롭게 만들었던 제주감귤이

생명산업으로 거듭나게된 계기가 있었다.

 

홍로성당의 에밀타케 신부는 

1911년 일본에서 온주밀감을 도입하여 농가에 분양해 주면서 감귤산업화의 기초가 되었으며

그 후 제주감귤은 제주농민들이 가장 중요한 소득원으로 자리잡은 것은 신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