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담이 없는 '흙담 소나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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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2020. 6. 23.

서귀포 북초등학교 뒤에는 소형차가 겨우 교차할 수 있는 작은 골목길이 있다.

이 길은 별 의미 없이 걷는다면 그냥 ''이며 차량이 오가는 도로일 뿐이다.

 

하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운치 있는 기품을 가진 소나무 고목들이 길을 따라 울창하게 이어져 있는 흙담 소나무길임을 알 수 있다.

 

이 흙담 소나무길은 서귀북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양측 600m 구간에 건물 15층 높이 120년생 소나무 100여 그루가 늠름하게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길은 서귀포시 서홍동 주민들이 8경으로 지정하여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길이며,

2002년 산림청에서 아름다운 마을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행정기관과 서홍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지난 몇 년 간 제주지역 소나무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던 소나무 재선충도

아직은 흙담 소나무에 피해가 없어 다행이다.

 

고려 초에 설촌 된 서홍마을은 주변이 오름으로 둘러싸여 마치 넓은 화로와 같다고 홍로(洪爐)라 불렸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마을 남쪽이 허해 화재 등 재앙이 빈번히 일어난다고 했다.

 

이에 1910년경 주민들은 마을 남쪽에 흙으로 담을 쌓고 맑은 물을 고이는 못을 만들어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심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오늘날 흙담 소나무길을 이루게 되었다.

 

나는 2010년 하논순례길을 조성하면서 흙담 소나무길을 알게 되었다.

이 소나무들을 심을 당시 사제이자 식물학자였던 타케 신부가 이곳 홍로성당 주임신부로써 직간접적으로 흙담 소나무의 식재와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삶과 교회의 역사가 함께 살아있는 이 길은 당연히 하논성당순례길에 포함되었으며 순례자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흙담 소나무길로 알려진 이곳에 가장 중요한 흙담은 없다.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망각한 관리 소홀과 재산권 수익을 이유로 흙담이 허물어졌으며 다닥다닥 소나무에 붙어 지어진 건축물들로 걸어서 다니기에 힘들 정도 흉물스러운 골목길이 되어 버렸다.

 

흙담은 돌담이 많다는 제주에서도 흙과 돌로 담을 쌓았기에 아주 희귀하다. 아마도 돌로 이중 담을 쌓으면서 가운데는 흙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만약 1910년에 쌓았다는 600m에 달하는 이러한 흙담과 연못이 지금 남아 있었다면 아주 소중한 문화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흙담 소나무길은 세계적인 서민 문화유산이 되어 지금과는 다른 관광 발전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1950년대 서홍마을(양 옆으로 흙담과 소나무가 보인다.)

흙담이 없어진 흙담 소나무길

지나는 차를 피하며 20여 분 정도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거리의 길이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보전이 필요한지 개발을 위해 옛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