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해군기지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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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pol)스토리

2017. 7. 25.

 지난 일요일 경우회 행사로 강정해군기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강정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해군기지에 대한 여러가지 감상이 있겠지만,

기지건설 당시 서귀포경찰서에 근무했던 나를 비롯한 경찰관들은 더 감회가 깊을 것이다.

 


강정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는


건설기간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입지선정에서 공사기간이 9년여가 지나 

2016. 2. 26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 축포를 쏘아 올렸다.



오늘 방문한 서귀포경우회원들 중에서도

강정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의견이 여러 가지가 있듯,


아직도 많은 강정주민들은 해군기지건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귀포경우회 강정해군기지 방문기념사진>


강정주민들에게는 여러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강정해군기지는 준공이 되어 


대양해군을 지향하는 전초기지로

우리나라 최신예 이지스함이 배치되어 제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강정해군기지에서 승선 견학했던 이지스 구축함 서애류성용함(西厓柳成龍艦 : 사진은 다음백과>


잘 아시다시피 강정해군기지는 군사보안구역으로 사진촬영이 금지된다.


이하 사진들은 2014년 9월 경찰교육원 입교 당시 방문했던

당진항 해상관광공원에 전시된 함정 사진들이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말은 20여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 첫번째 후보지로 최고 입지 조건의 화순항이 오래도록 거론되었으며

제주도민 대부분은 화순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화순항>


그러나 화순주민들은 모슬포의 공군비행장 건설 조차도 반대하였으며,


화순해수욕장이 있는 천연의 자연항구로 삼방산과 용머리 관광지가 있어

도민 반대여론으로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은 자연히 추진력을 잃어갔다.

 

그 다음으로 느닷없이 거론 된것이 위미항이다.


당시 제주도정에서 어떠한 공작을 했는지 모르지만

위미리 마을유지 몇 사람에 의해 '해군기지 유치 추진' 선언을 하였으나

어촌계 해녀회를 비롯한 마을 주민 전체의 강력한 반발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위미항>


나는 당시 제주도경 정보과에서 치안정보를 총괄했었는데

개인적으로 내 고향 위미리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마을 지도자들에게 반대 운동에 대한 방향을 조언하는 등

반대운동 중에 위법사항을 피해가면서 단 한사람도 사법처리 되지 않았다.    

 

 당시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은 제주도민 대부분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름다운 강정천과 함께 살기가 좋아 '일강정'이라고 불렀던 마을,

강정은 범섬앞 바다가 거칠어 포구조차도 변변치 못하였던 농촌마을이었다.

 


어느 날 강정마을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선언이 나오고

다음 날 주민들은 마을회를 해산시키고 반대추진위를 결성하였다.


그리로부터 지금까지 강정마을은 유치와 반대로 분열되어 버렸다.

찬성하는 집은 '태극기'를 달고 반대하는 집은 '노란 색깔의 깃발'을 달았다.  

  


 강정해군기지 건설로 인하여 서귀포경찰의 수난이 시작되었는데,

서귀포경찰서장이 1년 사이에 무려 다섯 번이나 바뀌면서 부임하였다.


그리고 경찰청장이 서귀포경찰서를 방문했다가 마을주민에게 포위되기도 했었고,

특정한 경우에는 전국에서 무려 100여개 기동대가 파견나오기도 했다.  

 

강정주민들이 처절한 외침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이 사법처리 구속되고 벌금형에 처해 졌다.


그러나 전국에서 종교계를 비롯한 평화활동가들이 강정으로 모여들어 반대활동에 더욱 거세졌으며

지금도 길거리 강정 평화미사는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민들도 4.3사건 이후에 가장 많은 분열을 안고 있는 이슈가 바로 강정해군기지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무분별하게 동원된 댓글부대들에 의하여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과 종교인 그리고 활동가들을 빨갱이로 매도하였다.


 

불행한 제주의 역사 4.3사건때

군경토벌대가 웃드르 마을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무조건 사살해 버렸듯,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과 종교인 ,활동가들을 빨갱이로 여론몰이 하는 것,

이것은 4.3사건 때와 빨갱이로 몰려 죽음을 당해야했던 억울한 도민과 무엇이 다르랴!

 

 

나는 경찰에서도 강정해군기지 추진의 대민 절차성에 의문을 가졌고,

그로인하여 남모르는 불이익도 여러번 당하였다.


특히 내가 제주경찰 가톨릭신우회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활동했던 시기가

강정해군기지 건설과 묘하게도 연계되는 같은 기간이었다.


<경찰교육원 교육 동기들>


나는 국가의 시책에 따른 치안을 책임져야하는 경찰의 일원으로써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천주교 사회교리의 양심적 성찰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강정해군기지 문제로 종교와 직장 사이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야했다.



4.3사건 당시 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사살했던 군경토벌대원들은

상관의 명령에 따랐으니 자신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악의 평범성'

2차대전 당시 유대인 600만명 사살에 앞장섰던 나치들도 악마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 군인이었다.


<'서애유성룡함'에서 유일하게 촬영이 허락된 곳>

 

이제는 정책결정에 민의와 절차가 중요한 시대이다.


아무리 중요한 국책사업이라도 치안력으로 밀어 부칠것이 아니라

주민들을 이해시키면서 끝까지 함께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의미에서 강정 해군기지내에 '구럼비 바위'를 보존한 것은 본 받을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