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논성당터 본당의 날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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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사람들

2019. 6. 18.


하논성당터에서 서귀포성당 본당의 날 미사가 있었다.

2010년 하논성당터 발굴과 순례길 조성 이후 본당 차원에서는 처음 열리는 미사였다.  



하논성당터를 발굴한 이후 여러번 본당의 날 미사를 시도했었지만

화장실 등 부대 시설이 없어 추진하지 못했었고,


그 동안 봉헌미사와 인천교구 자매결연 미사 등 몇 번 있었을 뿐이었다.

 


하논성당은 1900.6.12일 '한논본당'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


그 후, 1901년 신축교안 당시 많은 신자들이 희생과 함께 성당이 피폐되자

제3대 타케신부에 의해 1902년 홍로 본당으로 이전되었다가

1937년 라이언 신부에 의하여 현재 서귀포성당으로 이전 현재까지 정착되었다. 



제주의 불행한 역사인 4.3사건때 토벌군의 소개령으로 하논마을 전체가 불타버렸으며

그 후 60여년 동안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 하논성당 역시 잊혀져 버렸는데,


2010년도 110주년 기념사업으로 하논성당터를 발굴해 내고 순례길을 조성하면서

하논성당은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오늘 하논성당터 본당의 날 미사는' 건너감'을 뜻하는 '빠스카' 미사로 드렸는데,

본당 설립 119년을 넘어 새로운 120주년을 맞이 하면서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제 본당 차원에서도 뿌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본당의 날 미사는 33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아마도 하논순례길 개장식날 이후 가장 많은 신자들이 하논성당터를 방문한 것 같다.




2010년 하논성당터 발굴은 신비 그 자체였다.


성령께서는 60여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았던 하논성당터로 이끄심을 주셨고,

제주도의 예산지원으로 용역조사와 순례길 조성 그리고 하논성당순례길 개장식까지 이어졌다. 



연동성당 소나무 밭에서 버려질 위기에 있던 돌제대를 찾아오고

식물학자 타케신부와 왕벚나무 그리고 온주밀감 등 많은 이야기들이 하논성당터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도 시련과 역풍도 있었다.


"쓸데 없는데 투자하여 하논성당터를 찾는 일을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순례길을 만들었다."

"110주년 기념사업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1대 신부도 2대도 아닌 제3대 타케신부에 대한 기념사업을 왜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더 어설프다.


"알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제주도 방언에 "동네 심방(무당) 안 알아 준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도 당신의 고향 예루살렘에서는 목수의 아들이라며 놀림을 받았었다.



성령께서는 왜 이 시점에 하논성당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을까?


아마도 호수개발과 같은 무분별한 자연훼손을 방지하고

하논의 생태 자연을 보전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논순례길은 2013년 교구장 주교에 의해 공식순례길로 선포되었으며,

그후 전국 교구와 도내 순례자들이 매년 4,000여명 이상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2019. 6. 6일 하논분화구>


교구장 강우일 주교님과 부교구장 문창우 주교님은

하논의 생태환경 보전에 많은 관심을 두면서 지난해 하논순례길을 다시 걸었다. 





역사는 119년전 하논성당터에서 본당의 날 빠스카 미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논의 생태환경 보전에 대하여 더 많은 노력을 하라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