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2020년 07월

29

제주의 자연 제주 돌하르방의 변신

최근 서귀포경찰서 중앙 계단 옆에 우람하게 서 있는 '발 달린 돌하르방'을 만났다. 이 돌하르방은 오래 전, 제주가 낳은 저명한 돌예술가 양기훈 선생님 작품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발로 뛰는 경찰의 이미지를 상징화하여 발이 있는 돌하르방을 제작했다고 한다. 당시 서귀포경찰서의 '발 있는 돌하르방'은 '돌하르방 어드래 감수강' 방송인으로 더 유명한 양기훈 작가다운 작품이라며 경찰관은 물로 지역 주민들에게도 호평을 받아 화제가 되었었다. 이 돌하르방의 변신을 시점으로 여러가지 캐릭터로 변형하여 돌하르방을 만들게 되었고, 최근에 와서는 '돌하르방 공원'이 개장되면서 다양한 모습의 돌하르방들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돌하르방을 거이 만날 수 없었던것 같다. 육지부의 장승과 비교할 수 있는..

24 2020년 07월

24

역사기념사업 신축교안 참상을 알리는 하논성당 朴고스마 회장의 편지

1901년 5월에 발생했던 신축교안(이재수의 난)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하논성당의 박 고스마 회장은 피정차 육지부로 출타한 김원영 주임신부에게 신축교안의 참상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1901년 5월 10일자 하논에서 쓴 이 편지는 당시 목포에 체류하고 있었던 김원영 신부에게 전달되었으며, 현재 천주교 한국교회사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다. 김(원영) 신부님전 상서 찬미 예수 무궁하시옵소서. 기체후 두루 안녕하신지요. 아뢰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오라 방금 상무사 수령 오을길, 마천삼, 강백이, 강희봉이 모두 부화뇌동하여 무리를 지어 가지고 갑자기 각 마을의 백성들을 수십만 軍으로 내몰아서, 만약 교우를 만나면 결박해 구타하니 혹은 상하고 혹은 사망한 자가 부지기수로소이다. 한논의 교인이 허둥거리며 달아나..

20 2020년 07월

20

나의 이야기 제주에서만 주는 '현충수당'

지난 4월에 제주도 보훈청에서 아내에게 공문이 한 장 배달되어 왔다. 국가유공자 자녀에게 현충수당을 지급하겠으니 은행계좌를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선망하신 장인은 군인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였다가 부상을 입은 국가유공자(전상군인)였으며, 아내는 몇 년전부터 선순위 유족이 되어 제주보훈청에 유가족으로 등록되었다. 그동안 국가유공자의 선순위 유족이라고 해도 다른 자녀들과 다른 특별한 혜택을 없었는데, 제주보훈청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보훈예우수당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올 해 처음으로 선순위 유족에게 연1회 현충일에 10만원 지급하겠다는 것 - 비록 적은 돈이지만 유가족들에게는 마음의 위로가 되었을것이다. 우리는 현충수당을 받은 날, 처제 내외와 식사를 하면서 제주보훈청의 국가유공자를 위한 예우..

15 2020년 07월

15

나의 이야기 손녀 서현이는 마스크 세대

두 돌 반, 내 손녀 서현이는 외출할때 마스크를 쓴다. 숨쉬기도 갑갑할듯 하지만 집에서 나갈 때면, "마쯔꾸 주세요"하며 스스로 찾아 쓴다. 7월의 둘째 주말, 경기 지역 어느 놀이 가든에는 마스크를 쓴 아이들로 붐비고 있었는데, 어느새 착하고 예쁜 우리 아이들이 불편한 마스크를 쓰고 놀아야 하는 세대로 바뀌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내 삶에도 영향을 주어 손녀가 보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만들었다. 항공기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혹시나 하는 우려 때문에 참아야만 했는데, 이렇게 가장 작은 미물인 바이러스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 동안 아들네가 이사를 간다고 해도 코로나 감염 우려로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6개월 만에 어렵게 만난 손녀와 할아버지는 마스크를 쓰고 대면해야 했..

14 2020년 07월

14

나의 이야기 항공기 탑승이 두려운 세상

지난 6월, 서울 사는 아들네가 이사를 했는데 이제야 겨우 다녀왔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항공기 이용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에도 코로나 감염자가 20명 발생하였는데 대부분 항공기를 이용한 사람들이었으며, 그 동일한 항공기를 이용했던 승객들은 모두 격리되었다. 우리 부부는 지난 주말을 이용하여 아들네 집을 가기로 하고 항공기를 예약했었는데, 여기 저기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아 결국 엄마의 항공기 예약을 취소하고 혼자서 방문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확진자와 동일 항공기를 이용했을 경우, 부부 둘 다 격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내는 아직도 현직 간호사로 취업 중이므로 여러모로 내가 움직이는 것이 편리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코로나로 항공기 탑승이 두려운 세상이 되었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09 2020년 07월

09

나의 이야기 안전한 먹거리

우리가 언제부터 안전한 먹거리를 걱정하게 됐는지 모른다. 예전 우리는 먹을 것은 배고픔을 이기는 방편이었다. 제주 농촌의 아이들은 60년대까지만 너무 가난했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산과 들과 바다로 나돌면서, 땅이나 바다에서 나는 모든 동식물과 하늘을 나는 날짐승들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어떤 때는 개구리까지 구워 먹었으니 아프리카 오지에서 사는 아이들과 다름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면역력이 강했는지 아니면 신선한 자연식이었는지 배탈이 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런데 먹거리가 넘쳐나는 현대에 와서 오히려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아야 하는 어이없는 사실이다. 배달의 나라 야식의 대표푸드는 반반으로 불리는 치킨이다. 그리고 가족외식의 단골, 삼겹살 불고기와 생선회 ~ 이렇게 ..

03 2020년 07월

03

나의 이야기 위미마을 '구두미 바당'

내 어릴 적 제주는 척박하고 가난한 섬이었다. 국민학교에서 봄, 가을 소풍을 제외하고는 도시락을 가지고 가 본 기억이 없으며, 점심시간은 아이들이 배고픔을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학교가 끝나 책보자기를 허리에 차고 집으로 왔지만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이럴 때 우리가 찾았던 곳이 바로 ‘구두미 바당’이었다. 남원읍 위미리 동 가름(위미2리)에 있는 구두미 바당은 우리에게 바다 수영장이었으며 해산물로 배고픔을 달래주고 물장구치던 아이들이 놀이터였다. 오래전부터 구두미 바당은 ‘고망 낚시’ 장소로 일품이었다. 대나무로 만든 ‘청대(낚시대)’에 ‘물지렁이’를 미끼 삼아 바위 구멍에 집어넣으면 ‘보들락’(베도라치) 두어 마리를 낚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닷가 바위틈에는 구쟁기(소라)와 ‘메옹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