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특수수색대의 추억들

Benhur 2017. 10. 3. 03:38

 

해병 김영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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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16일 밤10시 황해북도 연산군의 위치한 124군 북한 특수부대가 영하 25도의 혹한 속에 남파 특수 공작원 31명을 개성 남동부에 위치한 남파공작원 초대소에서 김일성 수령동지의 명령대로 임무를 수행할 것을 맹세 하면서 남파하였다.  김일성 수령 동지의 특별 배려로 이들 모두가 하사관에서 파격적인 소위로 승진 발령 받은지 6일만에 특수침투 임무를 받은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청와대를 습격하여 정희통령을 암살하고, 미 대사관.  육군본부,  교도소,  서빙고 간첩 심문소를 파괴하고 모든 요인을 암살 하는 것이며,  김신조는 2조 조장으로 청와대를 맡았으나 아군에 의해 모두가 사살되었고 김신조만이 생존하여 지금은 목사로서 살아가고 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긴급히 이에 보복 수단으로서 육, 해, 공군 해병대에 북파 특수 공작대를 중앙정보부 산하에 두고 각 군에서 강하게 육성 운영하라는 박정희 대통령 특별 지시에 따라 극비밀리에 운영되어 오다가 역사에 불미스럽고 미스테리로 남긴 공군 첩보부대에서 발생한 실미도 사건과 같이, 해군 첩보부대 매도섬에서도 실미도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아직까지 그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정도로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 지시를 따라 최초 강화도 화도면 마니산 북동쪽 끝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막사 설립 계획 중에 있었으나 인근 지역에 부식되어 있는 고정 첩자들에 의해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정보를 입수 분석한 결과 이동에 필요성을 느끼고,   68년 4월 강화도 불온면 까치골로 다시 이전하여 해병대 장기 하사관 27명, 수병 4명으로 편성하여 극비밀리에 훈련을 해 오다가 요원을 증편하고 고도화된 특수 훈련과 위치 보안을 위하여 강화도 길상면 사기리 마니산 정수사계곡 , 함허동천  숲속으로 이동, 그곳에 기존 막사를 짓고 차원 높은 암살 파괴공작에 의 특수 훈련을 지도하기 위하여 당시 해병대 대위 김영빈은 해군참모총장의 긴급특별 인사명령을 받고 북파특수 공작관으로 부임하게(74.4.15) 되었다.  

 

훈련 목적은 북한의 주석궁(5호댁)에 은밀히 고공 침투하여 요인들을 암살 납치하며, 북한군 특수8군단 정예부대에 지휘부를 와해시켜 모든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특수적인 교란 능력을 배양하고 항상 출전 준비 태세 중에 있다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명령에 따른 어떠한 임무에도 불가능이 없이 임무를 완수하는 중앙정보부 산하 극비밀리에 운영되어온 비 편제 특수부대였다.  

 

본명은 해병대 대위 김 영빈

군사 훈련 경력은,

* 해병 사단 특수수색대 소대장 

* 해병대 특수수색훈련 7기

* 육군 특전단 기본공수 64기

* 해군 특수전 여단  UDT / NAVY-SEAL 18기

* 육군 특전단 Jump Master 46기 ( 공인기록 108회 )

* 공군 7069부대(오류동 첩보부대) 공중침투 훈련  

* 해병북파특수공작대 공작관(실미도와 같은 비편제부대)

* 백령도 나바론 포대장

* 해첩 (UDU) 대북 특수 공작관

* 중앙정보부 대북 특수공작관

* 5,18 당 해병수색대장 (33명 인명구조 대통령 표창및 훈장) 

* 당시 첩보에 따른 실존적 공작훈련 이수

소령으로 예편 쌍룡건설 해외인력부장으로 입사

83년 미국으로 이민, ATS 신학대학원 졸업(MDV)

미국 C&MA 교단에서 목사 안수(86년)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에서 한국연합선교교회

욕 얼바니에서 생명샘 교회

1974년 4월부터 75년 9월까지, 해병북파특수공작대 공작관으로 임명을 받은 후 산과 바다와 공중을 무대 삼아, 

칠 때는 성난 호랑이 같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피할 때는 무서운 독을 발하며 뱀 처럼 흔적 없이 은밀히 사라지는 임무에 불가능이 없는 은밀, 신속, 정확특수부대로 명명하고 피와 땀과 눈물과 의리와 전우애로 엮어서 어려운 모든 훈련에 충실히 임하였다 .


                     M I U ( Mission Impossible Unit )

그 후  해병특수수색대장 당시 훈련 방침은밀, 신속, 정확으로 부대를 운영하였다.

그 당시 강화도 주민들은 까치부대에 대한 의구심과 호기심과 공포심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어린 아이가 울면 "까치부대가 온다" 라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말이다. 1973년 9월 30일 해병대 역사에 치욕적인 불운을 앉은 체 해군예하로 합병됨에 따라 중앙정보부 산하에서 해첩으로 이관, 부대 명칭을 해첩 503기지(신성기업,동해개발)로 명하였다.  

 

아직도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실미도와 똑 같은 불미스런 사건이 해첩 UDU / 매도에서 또 다시 발생함에 따라 상부에서 분석하기를 503 까치부대의 위험성이 더 강한으로 판정되었기에 정책상 급히 해체 분산시키므로 7년간 극비밀리에 전설같이 중앙정보부에서 운영던 해병북파특수공작대는 역사속으로 조용 자취를 감춰지고 말았다.  

 

피와 땀으로 얼룩졌던 강화도 마니산 정수사 계곡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인경 소리와 함께 빈터만 앙 남아있고 졸졸 흐르면서 친밀감 있게 땀을 씻겨주며 갈증에 시달 요원들의 마른 목을 적셔주던 고마운 계곡 물도 503까치부대와 함께 말라서 더욱 막감을 보여준다.  

 

이제 전우들에게는 대한민국 특별 보상법과 예우법 (2004.1.18 국회통과) 에 따라 보상금을 1억에서 2억까지 계속 수령 중에 있으나, 나는 당시 북파특수공작관으로서 국가 공무원이라는 장교의 직분이라고 제외되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어서 국가와 국민 위한 애국적 사명감을 갖고 대한민국에 헌신한 것이었기에 늘 자부심 갖고 늦게나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가고 있는 이다.  

 

마지막 나의 소원이 있다면 다시는 인간병기로서 인간의 귀중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하여  하루속히 반공정신이 투철한 국군통수권자를 뽑아, 나라 안에 부식되어 있는 빨갱이 모조리 소탕한 후 은 망해서 자유 대한민국으로 흡수되, 미국과 일본과의 친선 우호로 맺은 삼형제가 하여, 먼저 중공 오랑케를서 때려부수고, 다음은 쏘련을 박살내어, 지구안에 공산주의 국가들이 없어지그날간절히 고대하면서,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하나님의 축복이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도드리면서....

                                       

                                 1984. 11.5

 

                             까지부대 김 상무가

                         

 

            

                             

                                    
                 지은 책

*.  흙에서 천국까지<도의 신앙교재- 1단계-7단계>


*.  광야의 식탁<신앙컬럼- 1부-2부>

 

*.  ! 혼좀나볼래!<1부-4부>

*.  한번 해병은 천국까지 해병<신앙컬럼- 1부-3부>
   

   1986-2008, 목회22년 65세 은퇴

 

   위에 책들을 보시려면,  DAUM - oldbenhur(블로그)

 

  http://blog.daum.net/oldbenhur/8125220


 

 

 

 

                       

                

                 강화도 사기리 하마동천 계곡에서 심신단련을 하는 요원들!

 

 

  

                                          강화도 하수도와 시궁창을 포복하면서

                             윤종만(우측)동지 입가에 인분이 묻어 있으나...

                                              

해상침투를 위하여 PT 체조로 몸을 푼다음.....

                       

                                          유속이 심한 강화도 초지진에서 해상 침투훈련을 마치고

                                김영빈 공작관(좌측 5번째) 과 기념 촬영을....

                                                                                               

                        

                                          강화도 갈상면 사기리 정수사 계곡에 위치한 사격장

 

                                           

                   강화도 길상면 사기리 갯뻘에서 인분을 뿌려 논 갯뻘 위로 포복하는 피부단련 훈련 !

                        적진안에서 숨어 있기에 가장 안전한 장소가 바로 인분통과 하수도이기에.....

                           인분이 묻은 몸을 씻기에 좋은 Drop & Pikup 훈련과 고무뽀드 훈련 !

                                                                           

 

 


                2010년 9월 마니산 함허동천 계곡세워진 기념비 앞에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공작관 시절

 

 

                                      중앙 정보부 시절                         

 

                        세월이 흘러 30 여년 !

 

                                         

2006년 9월22일 한국함대 하와이 진주만 입항

 

                                                       

 

 

                                    2007년 11월 5일

 

 

     

 

 

 

          부산 제 4부두에서 40여년만에 만나는 옛 나의 부하들과 함께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면서

                             웃고 울며 밤을 지세웠답니다.

 

부산 제 4부두에서 40여년만에 만나는 옛부하들의 총회장 임명제, 해병대 공정식 사령관(해사1기/해병대6대 사령관)김인식 사령관(해사24기/ 해병대 제26대 사령관) 과 함께 그때 그시절에 이야기로 ....

 


 

 

 

                 사격은 실탄의 발사수도 아니요 폭음도 아니요 오직 명중뿐이다!하와이 경찰 사격장

 

 

 

 

 

 

 

                                    25야드 규정상 5발만 장전                                     M-16도 규정상 5발만 장전

 

 

 

 

 

                          

 

 

                             

                   목회22년 (미국 C&MA 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