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매너� 2011. 5. 11. 02:59

 

 

 

 

 

 

 

보아 검색하다가 찾은건데 제가 보아,동방신기 팬이여서 그런지 글이 꽤 감동적이여서 가지고 왔어요!

혹시나 핫이슈에 물의를 일으킨다던지..그러면 지울께요!!!!!!!!!!!!!!!!!!!!

보아,동방신기 뿐 아니라 배용준,윤손하씨 덕분에 일본 가는 길이 더 쉬워진게 아닌가 싶네요~

그 기를 받아 일본진출하는 모든 가수들이 성공해서 돌아오길!!!!

 

 

 

 

 

▲보아

 

 

본명 권보아. 활동명 보아. 2000년 만 13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가요계의 데뷔를 한 보아는,데뷔당시 "어린 나이"와 "어린나이임에도 춤을 잘추는 꼬마"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데뷔 전부터 해외진출을 위해 캐스팅되어 연습을 받아온 보아는 데뷔1년여만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보아가 당시 에이벡스와 계약을 한다는 기사들이 나왔고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무시를 하는 분위기였다.

그 전 S.E.S가 일본진출을 위해 일본으로 넘어갔으나, 일본진출의 큰벽을 넘지 못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당시 '한국'인으로써 오리콘차트 100위권안에 드는 것 자체가 힘든 시절이였기때문이다.

 

그 당시 일본내에서 '한국'이란 나라는 그저 '적'일뿐이였고, 한국과 북한을 구분못하는 사람들이 천지였고

제일교포들은 일본내에서 차별을 받으며 살았던 시절이였었다.

 

 

 

 

 

▲보아

 

그런 보아가 일본진출을 위해 일본으로 넘어갔고,

S.E.S의 실패이유를 바탕으로 몇년동안 머리를 싸매며 분석을 하던 이수만이 만나

1번째 싱글 ID PEACE B를 발매를 했고, 무려 20위권안에 진입해 한국언론들은 모두 깜짝놀랬었다.

 

 

그 당시 HEY X 3는 신인을 위한 프로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신인들이 많이 나왔었고,

S.E.S도 HEY X 3에 여러번 출연을 했기때문에 더이상의 성과는 없을것이다 라고 한국언론들은 보아를 말해왔었다.

왜냐하면 HEY X 3를 제외하고 보아가 나온 프로는 팝잼밖에 없었기때문이였다.

 

 

 

 

 

▲보아

 

당시 보아는 개인차가 없어 택시나 전철을 타고 이동을 했고 SM JAPAN역시 신생회사여서 큰 도움이 되질 못했다.

보아는 일본 지방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길거리캠페인을 비롯해 지방 레코드점을 돌며 직접홍보를 하고 라이브를 하고

씨디 구매회등을 가졌었다.

 

 

 

그렇게 활동을 하던 중 보아는 에이벡스의 최대이벤트인 에이네이션의 출장하게 되었다.

메인스테이지가 아닌 관객들이 입장할때 하는 비메인스테이지에 서는 조건으로.

한 여름 일본내에서도 폭염이였던 날씨속에 보아는 2곡을 연속으로 부르며 춤을 췄으나,

보아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일본스텝들이 "그렇게 하다간 넌 10년이 지나도 콘서트는 못한다"라는 맹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그 당시 보아는 만 14세의 나이였다.

 

 

 

 

 

▲보아

 

보아가 쓰러졌다. 2주의 입원이라는 기사가 나왔고, 그렇게 일본스케쥴들이 하나하나 캔슬이 되기 시작했다.

그 후 보아는 잡지인터뷰에서 "입원을 했던 2주내내 병실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었다. 남소영 이사님도 신생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바쁘셨고, 매니저는 신인가수를 계속 지킬수도 없는 노릇이였고 그렇다고 일본내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잡혀있던 스케쥴이 하나하나 캔슬이 되고 내가 나오기로 했던 프로그램에 다른 가수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아프면 자기손해라는걸 깨달았고,

세상에 나혼자 밖에 없으며 울어도 힘든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라는걸 알게 되었다."라며 말을 했었다.

그렇게 보아는 어린나이에 혼자만의 싸움을 하여야만 했다.

 

 

 

 

퇴원 후 보아의 모습은 방송에서 찾아볼수가 없었다. 

한국사람들은 보아가 이렇게 잊혀져 가는구나 라는 말과 함께 일본의 벽은 역시 너무 높다 라는 말을 했었고,

가을발매를 앞두던 보아의 싱글발매일조차 취소가 되었었다.

 

 

 

 

 

▲디지털 슈퍼 드림 라이브-氣持ちはつたわる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001년 연말.

공백을 깨고 보아는 氣持ちはつたわる라는 노래로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프로모션이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가나 싶었던 상황에 '디지털 슈퍼 드림 라이브' 라는 프로그램을 보아는 만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NHK에서 그 한해 인기가수들을 모아 특별프로그램을 만든 프로그램이였는데 그 프로그램에 보아가 출연하게 된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TV를 보던 일본사람들은 보아의 무대를 보게 되고,

그 이후 보아의 5:5생머리가 유행하게 된다.

일본에선 파워풀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수가 없었는데, 보아가 공백동안 피땀을 흘리며 배웠던 재즈댄스를

접목시킨 氣持ちはつたわる가 대 유행을 타게 된다.

 

 

 

 

 

 

당시 방송국엔 지금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수가 누구냐 문의전화가 오기 시작하고, 보아의 오리콘순위가 뛰어오르고

홈페이지는 마비가 올 정도로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신선하다." "멋있다."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였고 10대의 일본여자들은 보아의 팬을 자청하기 시작한다.

 氣持ちはつたわる는 무려 1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팝잼-Listen to my heart

 

  그리고 보아는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였고, 이번엔 앨범 타이틀이 문제였다.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더 강한 곡이 필요했기 때문.

그 당시 일본 댄스계는 주로 락이나 테크노적인 유럽풍 노래가 대부분이였고

보아는 테크노적인 유럽풍의 노래와 어느 한곡을 두고 고민을 했고, 에이벡스관계자들은 보아의 가능성을 믿고 모험을 하기로 한다.

모험을 하기로 한 대표적인 이유는 그 당시 도시바핸드폰 CM으로 뽑힌 노래를 믿기로 해서 이다.

 

그렇게 보아는 제이팝적인 성향도 없고 난해했던 그 곡을 타이틀로 하기로 정하고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그 곡은 Listen to my heart. 결과는 대 성공.

보아의 인생을 바꾼 명곡이 탄생하게 된다.

오리콘순위도 싱글 데일리차트 3위까지 올라가며 한국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하며 한일전경기를 보듯 모두 보아를 응원했다.

일본 현지내에서도 폭풍이라 부를정도로 대 유행을 타게 된다.

 

 

 

 

 

 

 

 

 

 

▲보아

 

하지만 문제는 보아는 그 당시 일본에없었다.

한국 2집녹음을 위해 한국에 있는 상황이였고, 그 덕에 일본내에 프로모션이 없었고,

일본방송자체가 하나하나 챙겨보지 않으면 재방송이 없는 체제이기 때문에 보아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보아

 

그래서 보아의 노래는 아는데 보아는 모르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일본의 일반사람들은 가수의 얼굴을 하나하나 챙겨보는 성향이 아니였고,그 당시 보아의 자연스런 일본어발음덕분에

Listen to my heart는 '일본의 신인가수가 부른 곡'이 되어버리게 된다.

 

 

 

 

 

2002년이 되고 에이벡스는 보아의 1집앨범과 동시에 5번째 싱글을 발매하게 된다.

무려 이누야샤의 엔딩곡인 Every heart였다.

Every heart는 발매전부터 벨소리차트1위를 기록하며 대단한 반응을 이끌었다.

보아의 창법자체가 일본내에선 없는 창법이였기때문에 "신선하다. 좋다. 일본의 신인가수인가?" 라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에이벡스는 각종매체에 Every heart를 부른 가수와 Listen to my heart를 부른 가수는 동일 인물이며,

그 가수가 한국에서 온 15세 소녀 BOA이다. 그녀는 춤과 노래가 모두 가능해. 대단한 한국인이지. 라며 홍보를 시작한다.

일본내에선 '어린나이'가 엄청난 경쟁력을 가지기 때문에 어린나이는 중요하다.

 

 

 

 

 

 

 

 

 

 

 ▲보아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한국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천재적인' 생머리 BOA의 모습을 보며

오랫만에 제대로 된 가수가 나왔다 라는 말을 하였고, 보아는 말 그대로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보아의 첫 앨범이 오리콘 첫등장 1위를 하게 되고 100만장을 팔게 된다.

보아 나이 만 15세였다.

그 이후 보아는 일본내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일본프로그램 총 통틀어 최고라 칭송받는 홍백가합전에 6회연속 출연하게 된다.

 

 

 

 

 

보아는 항상 어딜가나 한국사람들이 일본가수라 욕을 해온다.

일본에선 '한국'가수라 인정해주는 판국에 모국인 한국에선 '일본'가수라 말을 해오는 것이다.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가수들은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는다.

하지만 보아는 단 한번도 입지 않았다.

항상 방송에 나올때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라는 말을 해왔다.

 

 

 

 

 

 

▲보아

 

보아의 성공으로 한국연예인들에게도 일본진출의 꿈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 이후 수많은 한국연예인들이 2002년~2006년동안 진출하게 된다.

보아와는 다른 '한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 말을 하기 전에 반대로 생각을 한번 해봤으면 한다.

난 한국사람이다. 한국에 산다. 헌데 TV를 틀면 맨날 '최고의 가수','최고의 연기자' 라는 이름으로 일본연예인들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그러면 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나치면 보기 안좋다.

보아가 1년여동안 고생을 하며 이뤄놓았던 한국인의 '좋은'인식은 수 많은 연예인들의 일본진출로 '반한류'라는 감정이 생기게 된다.

 

 

 

 

 

 

'반한류'의 최고정점인 2005년.

그리고 동방신기가 일본진출을 하게 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방신기

 

동방신기는 2004년 한국에서 정식데뷔를 갖자마자 일명 100만대군에 팬을 양성하며 가요계 원톱으로 올라섰다.

데뷔싱글이 20만장이상팔리고,두번째싱글이 28만장이상팔려 대한민국 싱글차트1위,2위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서태지 이후 최초로 신인상과 본상을 동시 수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국활동에 매진하나 싶었던 2005년.

동방신기 역시 sm이 국내용이 아닌 국외용으로 만든 그룹이였기에 일본진출을 꿈꾸게 된다.

 

 

 

 

동방신기가 일본에 진출했던 2005년은 보아가 이루어낸 한국의 이미지를

수많은 연예인들이 '한류'란 이름으로 덧칠을 하여, 일본내에서 한국에 대한 반감이 거세게 불던 시기이다.

보아가 일본진출을 막 시작하였던 2001년보다 더 심했지, 덜하지 않을 정도로.

 

 

 

 

 

▲동방신기 첫 일본투어-통합 1만여명정도 동원. 동방신기가 한국에서 하는 콘서트 1회관객수랑 비슷하다.

 

일본의 남성아이돌 시장은 쟈니스(남성 아이돌전문 연예기획사)가 완전 장악하고 있으며, 방송 및 연예계 전반에 미치는

쟈니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처럼 진입장벽이 높은 일본의 남성 아이돌 시장에서 동방신기는 기적을 꿈꾸기시작한다.

 

쟈니스의 소속된 그룹들의 멤버들은 일본방송계의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남자그룹이 나오면 방송을 하지 않겠다. 말을 하였고 그럼 PD들은 그들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다른 남자그룹은

그들이 하는 방송에 나오는것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동방신기는 일본 데뷔후 메인프로그램의 출연하지 못했다.

외국인 남자그룹이 출연하기엔 방송의 벽이 너무나 높았기 때문이다.

 

 

 

 

 

▲동방신기 일본 무명시절(출처:블로그 AKTF)

그래서 그들은 쟈니스소속 그룹들과 경쟁을 피하고, 멤버들의 가창력을 강조하며 실력파 아티스트적인 요소를 전면적으로 강조했다.

가창력과 실력으로 승부하는 아카펠라 그룹으로 포커스를 맞추고,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이벤트나 소규모 공연, 아카펠라공연회 등을 하며 최고의 가창력을 관객들에게 어필하였다.

일본의 아이돌에겐 일본사람들은 수준급의 가창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점을 이용해 동방신기는

오히려 그들에게 없는 가창력과 아카펠라실력,화려한댄스실력을 내세웠고,

후에 그들의 차별화된 전략은 아주 성공적이였다 판단한다.

 

 

 

 

 

 

 

▲ 영웅재중과 유노윤호

 

조금 더 수월하게 활동을 할수 있는 '한국최고의 인기가수'란 타이틀을 동방신기는 버렸다.

동방신기는 J-POP가수로 일본시장에 '데뷔'를 하였고, 그들은 한류취재에 응하지 않고, 한국에서의 성공을 어필하지도 않았다.

일본팬들과 통역없이 만나고 싶어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일본대중들이 느끼는 외국인에 대한 이질감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우울증이 왔다.

'최고'란 수식어는 더이상 동방신기에게 붙지 않았고, 일본대중들은 동방신기를 몰랐다.

한국의 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였다.

동방신기는 무명의 신인으로 바닥부터 시작하였고, 무료공연및 길거리 공연을 하기도 했고, 유선마이크를 잡고 춤을 추기도 하였고,

쇼핑몰의 계단에서 노래를 불렀고, 음향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꾸준히 일본에서 싱글을 발매하며, 일본대중들이 원하는 일본스런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력해왔다.

 

 

 

 

 

 

 

▲ 시아준수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라는 말이 있듯 동방신기는 꾸준히 노력을 해왔고, 드디어 TV나 라디오방송에 나와

재미있는 토크도 할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입던 멋있는 옷들은 버리고, 일본 스타일에 맞는 옷들을 입었다. 화려하면서도 유치하고, 촌스럽기까지 한 옷들을.

 

 

 

그리고 동방신기는 '팀웍'을 내세웠다. 그들의 팀웍은 최대의 경쟁력이 되었다.

실제로 HW회원을 대상으로 '동방신기의 최고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일본인들은 2위가 34%로 가창력

1위가 37%로 팀웍이었다.

팀웍을 바탕으로 아카펠라,댄스및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그런 모습이 일본사람들에게 점차 호감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무대 밖 유쾌하고 우습고 헐렁한 모습과 무대 위 진지하고 실력있는 아티스트의 모습.

그런 갭이 동방신기의 매력으로 승화되며, 인기 중요 요인이 되었다.

 

 

 

 

 

 

 

▲  일본연예인들이 말하는 동방신기

 

그리고 동방신기는 '예의'를 중요시 하였다.

'노래'하나를 포인트로 맞췄던 보아시대와는 달리 동방신기는 여러면을 강조하였고, 그 중 하나가 예의였다.

동방신기의 일본초기 그들의 프로모션을 담당했던 일본인 한 음악관계자는

"한번이라도 동방신기와 같이 공연을 한 연예인,출연자,스태프는 반드시 그들의 팬이 된다는 것이 일본방송계의 전설이다.

그 이유로는 아티스트로서의 실력이외에도 예의바름,겸허한 자세,20대 초반이라고 생각할수 없을 정도의 품격및 안정감,밝고 순수한 모습등을 뽑을 수 있고,

실제로 일본의 연예인및 방송관계자들이 동방신기의 팬을 자처하는 일이 많다"

라고 말을 해왔다.

 

 

 

 

 

 

 

▲동방신기 팬을 자청한 세키네츠토무/데뷔 최초로 좋아하는 가수가 동방신기라 밝혀 화제가 된 하마사키 아유미

 

 

동방신기는 2005년 데뷔 이후 메이저프로그램의 출연을 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하지 않고,

일본의 케이블프로그램(일본의 케이플채널은 수백개가 된다.그것도 지역마다 다르다.)을 택한다.

일명 지역밀착형 프로모션을 택하게 된다.

남자그룹으로써 메이저프로그램의 출연하지 못하는 것을 역이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도쿄라는 수도 외에도 수백개의 지방도시들이 많다.

그런 지방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그 지역의 사투리를 쓰기도 하고 그 지역의 이름을 이용하여 오야지 개그를 하기도 하고, 그 지역의 문화를 체험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동방신기가 한 체험으로 젖소 젖 짜기, 말생회 먹기, 고양이 생회 먹기,소혓바닥요리먹기 등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즐기는 동방신기의 모습은 호감도를 올렸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는 한국에서 온 청년들에게 이런 구수한모습도 있구나 라는 것이 팬층을 다지는 것에 한몫하였다.

 

 

 

 

 

 

 

▲남성그룹(일본+외국그룹통틀어) 최초 여성최고잡지 JJ표지모델

 

그렇게 2년을 노력하였다.

2006년 한국에서 대상그랜드슬램을 하고도 일본으로 가 신인으로 지방을 돌아다녔다.

드디어 2007년 일본 메이저프로그램에 출연할수 있게 된다.

HEY X 3 (2002년 이후 HEY X 3는 어느정도 인지도가 없는 이상 나올수 없는 프로그램이 되었었다.) 등 메이저프로그램에 말이다.

비록 메인게스트로는 참여할수 없었다.하지만 한국에서 왔는데 일본어도 잘하며, 거기다 웃기기까지 해. 그런데 노래를 하면 엄청 진지하고 멋있어 라는 점을 부각시켰고, 그것은 대 성공이였다.

 

 

 

 

 

 

▲부도칸

 

동방신기는 2번째 일본 전국투어의 라스트스테이지로 '부도칸'을 만나게 된다.

부도칸은 말 그대로 일본가수들에게 꿈의 회장이고, 동방신기가 2년여동안 흘려온 땀의 결과물이였다.

'포기하고싶어'라는 생각을 '그래, 갈때까지 가보자. 우린 할수 있어'라고 바꿔준 눈물의 회장.

 

 

 

 

 

▲ PROUD

 

그러던 중 동방신기에게 코다쿠미의 노래를 피쳐링하는 기회가 생긴다.

Last angel이란 곡이였고, 그 곡으로 처음으로 일본 최고의 음악프로그램인 '뮤직스테이션'에 나갈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동방신기는 프로그램 오프닝 입장때 얼굴을 보일수 없게 된다.

토크때도 동방신기의 얼굴은 찾아볼수 없다. 동방신기 파트가 와서 동방신기가 노래를 불러도 개인샷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렇게 첫 뮤직스테이션이 끝이 났다.

아직도 일본의 벽은 높다 라는걸 실감할수있었다.

만약 동방신기가 그룹이 아닌 솔로였다면 이러지 않았을것이다.

 

 

 

 

 

 

 ▲ 2007년 11월 뮤직스테이션 -Last angel

 

 

그렇게 다시 동방신기는 지방프로그램을 찾아다니고, 직접 지방까지 내려가 자신의 CD를 스스로 홍보를 위해 돌리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자급자족' 동방신기의 일본활동은 그렇게 말할수 있었다.

 

 

 

▲하루종일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CD를 돌리는 시아준수

 

 

 

 

 

▲ 사이타마 슈퍼아레나(한회 3만명동원)

 

2008년 한국스탭들이 만든 Purple Line. 그 곡으로 동방신기는 데뷔 3년만에 첫 오리콘 위클리 1위를 하게 된다. 

그 이후 동방신기는 싱글을 냈다 하면 위클리 1위에 오르게 된다.

노력의 결과물이였고, 팬들의 기다림과 응원의 결과물이였다.

동방신기는 2008년 한국컴백이후 대상을 휩쓸고, 일본에서는 최다 위클리1위라는 영예스런 자리에 오르게 된다.

1년사이 그들은 더욱 크게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도 공연을 할수 있게 되었다. 관객동원력도 높아진 것이다.

 

 

 

 

 

▲ 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 ?

 

그러던 중 동방신기는 보아가 Listen to my heart를 만났듯,
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 ?라는 노래를 만나게 된다.
이 노래로 동방신기는 젊은 여성팬들의 지지와 더불어 젊은 남성팬들의 지지까지 받게 되었고,

쟈니스가 이루지 못했던 '남성그룹이 남성에게 사랑을 받는' 현실을 이룩해냈다.

 

 

 

 

 

 

 

▲ 2009홍백가합전 검색어 키워드 1위 동방신기

 

그리고 홍백가합전에 출장하게 된다.

외국남성그룹'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말이다. 한류로써가 아닌 그간에 노력의 결과물이였다.

홍백가합전은 일본통틀어 최고의 연말프로그램이다. 평균 시청률 3~50%였고, 우리나라 시청률로 계산을 해본다면

80~11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로 분석을 할 수 있다.

동방신기가 홍백가합전 출장을 하게 되었을때 일본내에서 동방신기를 욕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인으로 지냈던 3년하고도 더 많은 시간. 그렇게 보상을 받을수 있었다.

 

 

 

 

 

▲ 2008년 홍백가합전, 2009년 홍백가합전 출연모습

 

동방신기는 2008년,2009년 외국남성그룹 최초 2회연속 홍백가합전 출장을 하게 되었고,

만약 그들이 지금도 일본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3회,4회,5회...계속 기록을 만들어 갔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도쿄돔 공연 모습
 

도쿄돔을 만나게 된다.

도쿄돔은 일본가수에게 '마지막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곳이다.

도쿄돔을 설명을 하자면,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그 유명한 나카시마 미카도 돔 공연을 하지 못했다
2007년에는 세계적인 팝스타 비욘세도 월드투어로 도쿄돔에 섰지만 관객수는 2만여명에 그치고 말았다

동방신기와 라스트엔젤을 같이 부른 코다쿠미도 데뷔7년만인 2007년에 도쿄돔에 입성했다
이처럼 돔이라는곳은 누구나 공연 할 수 있는곳도 아니고 성공하기도 힘든 곳이다.]

 

 

 

 

이런 곳에 동방신기는 데뷔4년만에 입성하게 된다.

그것도 티켓을 매진하고도 신청한사람이 많아서 안보이는 사이드석까지 다 풀어서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로는 비가 도쿄돔에서 공연을 한적이 있지만, 2만석에 불과하였고 그중 반절이 무료티켓이였다.

외국인가수가 현지화로써 도쿄돔에 입성한건 동방신기가 최초이다.

심지어 동방신기 도쿄돔 사이드석티켓값이 100만원이상이 되어 팔릴정도였으니 말이다.

 

 

 

 

 

 

 

▲ 최강창민과 믹키유천

 

2009년 동방신기는 CD+DVD판매량으로 만 일본가수총통틀어 3위의 수익을 올린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900억원. 거기다 굿즈+콘서트의 금액등을 합치면 2009년 일본수익만 총 1300~15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9년 일본에서 가장유행한건 신종플루와 동방신기란 말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2009년 최고의 핫키워드 1위는 동방신기였고 그 뒤로 아라시, SMAP,미즈시마히로등이 있었다.

 

 

 

 

그런 동방신기를 일명 '모시기'위해 유명음반가게들은 부스 4개를 붙혀 동방신기코너를 만들어주었고,

(아무리 유명한가수라도 1~2개 부스만 사용한다.)

동방신기 사진으로 도쿄 신주쿠,하라주쿠,시부야등이 도배가 되며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걸리기 힘들다는 일본의 중심이라는 시부야109에 몇주내내 동방신기 사진이 걸려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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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부야 109의 동방신기 사진

 

 

동방신기는 싱글 총 8회의 오리콘 위클리1위를 이루어냈다.

지금 일본의 가는 아이돌들이 인기그룹피해 발매일을 조정하고 3,000장이란 판매량으로 데일리1위 한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생각된다.

동방신기는 동방신기가 발매일을 정하면 동방신기를 피하여 다른 가수들이 발매일을 조정하는 가수였다.

 

동방신기는 10만~28만장이란 싱글 판매량기록을 세웠고,

먼슬리1위,먼슬리2위가 수두룩하다.

2010년 발매된 'BEST SELECTION 2010'으론 56만장이라는 판매고와 위클리,먼슬리1위라는 기록, 더블플래티넘판정까지 받았다.

 

 

 

 

 

▲ JYJ 도쿄돔 공연 모습

 

JYJ로써는 도쿄돔 2회,오사카돔2회 총 20만명이란 관객수를 동원하였고,

JYJ의 공연을 보기 위해 100만명이란 사람이 티켓신청을 하였다고 한다.

 

 

 

(동방신기의 한일합산 판매량이 900만장이라고 한다. 슈주 분발합시다ㅠㅠ

2010년 8개월동안 판 판매량은 270만장..ㅎㄷㄷ..공식프로모션도 없었다고!?)

 

 

 

 

▲'믿음선언'이라 써져 있는 최초로 '전용계산대'가 생김

 

동방신기는 말 그대로 넘사벽이 되어버렸다.

물론 갭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라시를 한번 제치고 데일리1위를 하긴 하였으나, 아직도 '아라시'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아라시는 일본자국그룹이고 동방신기는 '일본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한국에서 온'외국인 그룹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맞다 생각된다.

 

 

 

 

 

 

보아의 성공이후 수 많은 한류의 유입으로 한국연예인들의 팬은 '4~50대'가 주축이였다.

하지만 동방신기가 그것을 깨기 시작한다.

동방신기의 팬층은 10대가 가장많다. 감히 상상할수도 없었던 일이다.

동방신기 일본팬층의 1위는 10대 여성, 2위는 10대 남성, 3위는 20대 여성이다. 누가 꿈꿀수 있었을까.

아줌마의 전유물이였던 생각틀을 동방신기가 4년여만의 노력으로 깬것이다.

지금 일본 진출을 하는 아이돌들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계기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동방신기 덕분에 라는 의견이 86%라는 압도적인 의견이라니 말 다한거다.

 

 

 

 

 

 

보아와 동방신기

 

보아와 동방신기를 두고 한류라 칭하는건 옳지않다.

한류. 한류란 드라마 대장금같은 한국적인 요소를 외국에 '그대로'가지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아와 동방신기는 말그대로 일본현지에 스타일을 맞추어 승부를 해왔고,

그것이 한류보다 더 오래,더 깊게 일본사람들에게 일명 '먹혀'들어갔다 라고 생각한다.

 

 

 

 

 

 

▲ 뮤직스테이션 , SMAP X SMAP의출연한 동방신기

 

지금 '한류'라 칭해지며 일본에 한국모든아이돌이 갔다 라고 말해도 될정도로

거의 모든 아이돌이 일본진출을 하고 있다.

'현지화'로 이끌어낸 일본인들의 관심을 '현지화'가 아닌 '한류'로써 얼마나 길게 관심을 끌것인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모든 아이돌들에게 '일본을 제패하였다' 라는 칭호를 붙혀주기 바쁘고,

일본내에선 그런 한국의 태도의 반감을 띄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보아

 

그리고 보아-동방신기를 보고 '한구가수들은 다노래를 잘하는구나' 라는 인식이 점점

'아 한국 가수도 노래 못하는 사람이 많네'라고 바뀌고 있느 추세이니..

 

 

(거기다 첫 데뷔무대가 뮤직스테이션,뮤직재팬들이라니..
푸쉬는 대단한거구나 느끼며, 보아-동방신기 팬이 아닌데도 화가나는데 그 팬분들은 어쩔까..

참고로 반한류와 남성그룹이란 점에 동방신기는 일본데뷔 4년만에 정식적으로 뮤직스테이션에 나갔다고 합니다.)

 

 

 

일명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한국인들.

그냥 시대에 맞추어 하는 일본진출이 아닌

보아,동방신기처럼 진심으로 일본의 진출할수는 없는 것일까?

 

P.S 동방신기 다시 일본활동..언제합니까..

 

 

 

+한국가수들 일본내 판매량(출처 :점핑보아갤)

 

앨범


1위 BoA <VALENTI> 1,249,197장 <2003년발매>

2위 BoA <BEST OF SOUL> 1,099,720장 <2005년발매>

3위 BoA <LISTEN TO MY HEART> 931,742장 <2002년발매>

4위 BoA <LOVE & HONESTY> 653,630장 <2004년발매>

5위 東方神起 <BEST SELECTION 2010> 561,640장 <2010년발매> 

6위 BoA <OUTGROW> 427,871장 <2006년발매>

7위 BoA <MADE IN TWENTY(20)> 348,093장 <2007년발매>

8위 東方神起 <The Secret Code> 317,314장 <2009년발매>

9위 BoA <NEXT WORLD> 193,695장 <2002년발매>

10위 BoA <THE FACE> 185,388장 <2008년발매>

 

 

 


싱글


1위 東方神起 <Break Out!> 289,412장 <2010년발매>

2위 東方神起 <Stand by U> 233,057장 <2009년발매>

3위 東方神起 <時ヲ止メテ> 228,112장 <2010년발매>

4위 시아준수 <XIAH> 225,040장 <2010년발매>

5위 BoA <VALENTI> 201,810장 <2003년발매>

6위 K <Only Human> 200,423장 <2005년발매>

7위 재중,유천 <COLORS ~Melody and Harmony~/Shelter> 184,050장 <2009년발매>

8위 東方神起 <Share The World/ウィーアー!> 180,826장 <2009년발매>

9위 BoA <LISTEN TO MY HEART> 179,590장 <2002년발매>

10위 BoA <DO THE MOTION> 169,542장 <2005년발매>

 

 

 

 

 


DVD

 

 
1위 東方神起 <4th LIVE TOUR 2009 ~The Secret Code~FINAL in TOKYO DOME> 257,668장 <2009년발매>

2위 東方神起 <TOHOSHINKI VIDEO CLIP COLLECTION -THE ONE-> 170,901장 <2010년발매>

3위 東方神起 <3rd LIVE TOUR 2008~T~> 153,718장 <2008년발매>

4위 東方神起 <History In Japan Vol.4> 125,521장 <2009년발매>

5위 東方神起 <2nd LIVE TOUR~Five in the Black> 104,591장 <2007년발매>

6위 東方神起 <All about 東方神起3> 98,609장 <2009년발매>

7위 BoA <8 Films & more> 85,938장 <2003년발매>

8위 東方神起 <History In Japan Vol.3> 65,529장 <2008년발매>

9위 JYJ(재중,유천,준수) <3HREE VOICES> 62,381장 <2010년발매>

10위 東方神起 <1st Live Tour ~Heart, Mind and Soul~> 55,422장 <2006년발매>

 

 

 

(보아-동방신기 팬이 아니라 슈주ㅠㅠ 팬입니다..

혹시 제가 보아-동방신기에 대해 잘못쓴점이 있으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출처 슈퍼주니어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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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엘프가 썼다니..♡♡

빨리 동방신기 일도 좋게 좋게 마무리되고 일본활동하는거 보고싶네요.. 스타디움에서 공연 진짜 해보고싶은데ㅠㅠ!

 

후출처는 쭉빵 안녕하세요현느님 글 입니다!

 

출처 : 쭉빵카페
글쓴이 : 봉마루한테 빠진 쫑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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