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무 아리랑

오솔 2018. 5. 22. 17:00



123.  

  


   “ 이런 선물은 처음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라인 투어 중에 갑작스런 선물 공세에 구본무 회장은 잠시 당황한 듯 하다가 이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만면에 웃음을 띄우면서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조그마한 사진 액자였다. 

   “ 현장에 있는 저가 이런 선물이라도 드릴 수 있는 것이 영광입니다.  저희들은 축하해주신 회장님 덕분으로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

   “ 그래요.  열심히 사세요.  기억이 납니다. ”


   ‘ 여기는 World Best의 현장입니다 ‘ 라고 쓰인 배너를 배경으로 구본무 회장과 권이석 사원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사진 액자를 가운데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옆에 서있던 허창수 회장, 이문호 사장  그리고 우리 현장사원들은 다같이 축하의 박수를 쳤다.  이어  C-emotion팀 전원과 다시 사진을 찍었다.
   이를 바라보는 나는 뿌듯했다.  오늘 혁신 현장에서 얻은 또다른 하나의 성과창출이었다.





   금년(1997년) 1월 21일 그룹의 < LG Skill Olympic '97 >은 3박 4일간 경주에서 열렸다.  작년의 발리에 이어 올해는 태국으로 하느냐, 하와이로 하느냐 그룹차원에서 실무적인 검토가 있었으나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여 경주로 결정이 되었다. 
   지난해는 그룹내 임직원 6백 여명이 전세기를 이용해 인도네시아의 발리로 이동한 국내 초유의 < LG Skill Olympic '96 >이 있었다.  많은 대기업의 부러움과 시샘이 어린 가운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었다.

 

   경주 보문단지 입구에서부터 온통 < LG Skill Olympic '97 >을 알리는 깃발의 물결이었다. 경주 힐튼과 현대호텔 두 군데서 벌어진 행사는 발리 못지 않은 CU간의 경쟁으로 열기가 대단했다. 
   나는 애당초부터 ’ 이번만큼은 우리 산전CU의 차례다 ‘ 하는 기대와 자신감으로 임했다.  작년의 사업그룹대회에서부터 제대로 된 테마를 선정하고, 사내 대회를 거쳐 그룹에 출품을 하는 과정에 내가 직접 참여하여 프리젠테이션을 지도 조언하면서 칼을 갈았다.

 

   내가 주목하고 공을 들인 핵심은 두 가지였다.  대상 후보에 선정되는 것과  해외법인 테마의 출품이었다.
   산전이 ‘ 글로벌 ’, ‘ 세계화 ’, ‘ World Best ' 이런 단어에 취약하다는 그룹내 이미지를 < LG Skill Olympic '97 >을 통해 잠재우고 싶었다.  < LG Skill Olympic '97 >에서 전기를 만들어야하겠다는 일념이었다. 
   C-emotion팀은 World Best의 수준의 테마였고 China Crazy 팀은 산전CU 최초로 참가한 해외 팀이었다.  지금까지 전자CU 외는 참가 해외팀이 없었으므로 China Crazy 팀의 참가는 남다른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룹의 예비 심사 결과, 산전은 C-emotion팀과 China Crazy 팀, 2개 팀이 프리젠테이션에 참가했고 다른 일반 3개 팀이 우수상 자격으로, 특별상, 장려상 등을 합해 산전CU에서는 6십여 명의 인원이 테마 활동에 참가해 역대 스킬 올림픽 중에 가장 많은 6개 팀이 수상을 했다. 
     산전의 위치는 이런 면에서도 확실하게 자리 매김을 해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 ‘ 56 데시빌 저소음 에스컬레이터 제품개발 ’ 이라는 창원공장 스킬 테마를 < LG Skill Olympic '97 >에서 대상 수상을 목표로 전력투구를 했던 것이다.

   에스컬레이터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높은 소음, 과다한 무게 그리고 제조원가였다.  이 중에서 소음발생이 내수는 물론 수출시장에서 LG의 제품에서 등을 돌리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 과제에 C-emotion팀은 도전했다. 
   소음 해석을 통한 구조 개선과 one body( 통째 ) 생산으로 원가절감,  ' 당나귀 귀( Asinine Ear ) 시스템 ‘ 이라는 제목의 품질보증 체계의 적용 등으로 소음의 획기적인 저감과 제조원가를 낮추었다. 
   종전의 글로벌 타사 제품이 64 데시빌인데 비하여 56 데시빌은  World Best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출품 테마명을  < World Best 56 데시빌 저소음 에스컬레이터 제품개발 >로 했다.


 




   “ 상무님,  창원 C-emotion의 권이석 주임 아시죠.  ‘ 56 데시빌 저소음 ’ 말입니다.  얼마 전에 결혼했는데  스킬 준비로 신혼여행을 못갔답니다.  이번에 신혼여행 겸해서  < ‘97 LG 스킬 올림픽 >에 오는 모양입니다. ”

   김기웅 스킬팀장이 내 방에 들어와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경주의 < ‘97 LG 스킬 올림픽 >인 1월 23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산전CU에서는 모두 여섯 테마를 출품시켰다.  타 CU의 정보도 들어가면서 마지막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 아주 잘 했어....  기념품이라도 하나 준비하지그래.  ”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른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 그러지 말고 우리 산전CU의 정식 참가자로 두 사람을 넣어. 응..  ”

   “ 예? ”

   “ 그리고 현대호텔에 별도 방을 하나 예약해.  최고로 좋은 방으로...  그 친구 내외가 쓰도록 말이야.  신혼여행을 우리 스킬 올림픽으로 하면 금상첨화지.  평생에 기억에 남을 거고.
   그 친구  ‘ World Best 56 데시빌 에스컬레이터 ’ 테마 하느라고 고생했는데 우리가 축하해 주어야지.  잘 모시자구.  우리 팀의 마스코트로 말이야. ”

   느닷없는 내 제안에 놀란 건 오히려 김 부장이었다.

   “ 상무님, 감사합니다.  권이석이가 정말 좋아할 겁니다. ”

   김 부장이 자기 일인 양 고마워했다.  전사 스킬을 주관하는 실무자 입장에서 김 부장의 행동이 오히려 믿음직스러웠다.  이런 마음가짐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혁신 활동의 흡인력이 생기는 법이었다. 


 

   “ 오늘 이 자리에는 정말 우리가 축하를 해주어야 할 분이 있습니다. 오늘 우수상을 받은 산전CU의 < World Best 56 데시빌 저소음 에스컬레이터 제품개발 >의 주역인 권이석 사원이 신혼여행을 경주로 왔습니다.  우리 < ‘97 LG 스킬 올림픽 >에 참으로 경사입니다.  축하를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갑작스런 사회자의 멘트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저녁의 축하공연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 누구야.  일어서 봐. ”

   여기 저기서 웅성거리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 신혼 부부 두 사람은 일어서 주십시오. ”

   사회자가 뜸을 들이며 천천히 이어나갔다.

   두 사람이 부끄러운듯 얼른 일어나지 못했다.  산전 쪽으로 온 시선이 집중이 되고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장본인들을 비추자 마지못해 두 사람이 일어섰다. 천 여명의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쳐서 축하를 했다.

   “ 오늘은 완전히 산전 날이군. ”

   “ 산전 독무대야. ”

   조용했던 장내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묻혀서 나오는 소리들이었다.

   그 순간  구본무 회장이 일어섰다. 흔들거리는 특유의 기분 좋은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무대 앞으로 걸어나갔다.  얼굴은 벌겋게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게다가 바로 조금 전에 청주공장의 김지흔 여사원이 무대를 완전히 한번 휘저은 다음이었다.  축하공연에서 우리 CU가 내보낸 장기자랑의 대표였다.  흘러간 옛 노래까지 앵콜을 받았다.  까만 이브닝 드레스에다 무대 매너도 좋았다. 
   김지흔은 단 아래로 내려가 구 회장을 이끌어 무대로 자연스럽게 내 세웠다. 구 회장의 18번. 흘러간 노래 울고넘는 박달재를 손잡고 같이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 여명 참가자 전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관객의 일부는 무대로 몰려나가서 이어지는 디스코 메들리에 흠뻑 빠져들었다.  북경 현지법인의 China Crazy 팀도 흥겨움을 못이겨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다.  발표 때 입었던 원색의 화려한 의상이 화려한 조명을 받아 다시 한번 돋보였다.


   China Crazy 팀은 오늘 오후 발표에서 다른 팀과 달리 중국 전통복장에다  사자무(獅子舞)까지 선을 보여 박수갈채를 받은 바가 있어 이미 눈에 익었다.  테마 발표는 주최측의 요구로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했다.  국제화의 이미지를 심기 위한 시도였다.  
   오늘 China Crazy 팀의 발표시간은 다른 팀 7분에 비해 4분이었다.  32개 팀이나 되어 억지로 끼워넣어 할애받은 시간이었다. 

   “ 한번 발표를 해보겠다는 데 못하게 하면 이게 어째서  LG 스킬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소?  산전만큼은 단 1분이라도 배려해 주시요.  그 이유는 잘 알지 않소. ”

   나는 행사를 주관하는 회장실을 몇 번이고 압박했다. 심지어 산전CU는 < LG Skill Olympic '97 >에 보이콧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무대에 오른 팀이었다.  이런 과정을  China Crazy 팀도 다 알았다.  그래서 뒤지지 않겠다는 ‘ 본 때 ’가 발로되었던 것이다. 

   발표자인 서혜청 사원의 특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장내를 압도했다.  오후에 다소 쳐져있던 분위기를 완전히 다잡았다.  4분이 아니라 환호소리에 묻혀 정상적인 시간 7분을 넘어가고 있음에도 진행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제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저 멀리 뒷좌석에 앉아서 이 광경을 조마조마하며 한편으론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김지흔 사원이 분위기를 달군 무대가 이 직후였으므로 보기에 따라 ‘ 산전의  연속상영 ’이었다.  '산전 다 해먹어라'하는 질투가 격려였고 '독무대야!'하는 투정이 되레 찬사였다. 산전이 주도하여 북돋아놓은 열기가 아직 그대로 이어져 살아있음이었다.







   흥겨운 발걸음으로 무대로 올라온 구본무 회장은 권이석 사원 부부를 바라보며 연신 손짓을 했다.
 
   “ 그 자리서 축하를 받을 게 아니라 이리로 나와요. ”

   구 회장은 재촉을 한 다음 뒤를 돌아보며 맥주 석 잔을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권이석 사원 부부는 나란히 앞으로 나갔다.  스포트라이트가 발걸음 따라 길게 비추어졌다.  만장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 두 분 결혼 축하합니다.  우리 같이 축하 건배합시다. ”

   구 회장이 건배를 제의했다.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가 범벅이 되어 터져나왔다.  진을 치고있는 카메라의 섬광이 여기저기서  번쩍였다.  전혀 뜻밖의 해프닝에 관중들은 신기해하면서 나의 일처럼 흠뻑 빠져들었다.
 
   우리는 일제히 ‘ 산전! 산전! 산전! ’을 연호 했다.  우리 산전CU의 참가자들은 이미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그러자 C-emotion 팀의 한만치 과장을 비롯하여 팀 동료들이 우루루 몰려났다.  팀 동료의 축하가 나의 일만 같았다. 

   대상을 노렸으나 지나친 과열을 우려하여 갑자기 대상 자체를 없앴다.  일년을 우리는 최우수상인 대상을 노렸다.  모두가 ‘ 이번만은... ’ 산전의 차례여야 한다고 확신했다.  우수상으로 머문 아쉬움이 대상을 없앤 허탈감이 그대로 남아있을 때였다. 

   이를 보상이라도 하듯 두 손을 쳐들며 달려들어 구본무 회장과 권이석 사우 내외를 에워쌌다.  구 회장을 헹가레 쳤다.  다시 한번 박수와 환호가 진동했다.  
   사원들의 자연스런 열정에 이희종 부회장, 이종수 CU장도 한 마음이었다.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같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래 위가 따로 없는 < LG Skill Olympic '97 >이 진짜로 빚어낸 축하의 한마당이었다.

   경주의 < LG Skill Olympic '97 >은 말 그대로 산전의 독무대였다. 

   작년 발리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이번 경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자와 화학CU가 지금까지 누벼왔던 그 자리를 산전에 양보한 모습이 완연했다.

   “ 산전이 완전히 달라졌어.  이 사장 축하합니다. ”

   연신 들려오는 인사말에 이종수 사장도 기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오늘 점심시간에 만났을 때도 이 사장은 얼굴이 밝았다.  사장단 모임에서 산전에 대해 많은 축하를 받았노라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낮의 성과발표회에 이어 저녁 무대까지 이어진 축하는 이례적이었다.

   “ 산전이 달라졌어. ”

   “ 완전히 분위기 메이커야. ”

   여기 저기서 들려왔다.
 

   공식행사가 끝났으나 여운은 진하게 남았다.  이대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이희종 부회장, 이종수 사장, 권태웅 하니웰 사장 그리고 사업그룹장과 수상 팀의 사업유닛장을 비롯하여 스킬 올림픽 참가자 전원을 집결시켰다.  산전CU 만의 뒤풀이였다. 

   호텔 인근의 단란주점 홀을 통째로 점거했다.  5십 여명이 포진을 했다.  누가 앞장서는 사람이 없어도 저절로 한데 어우러져 오늘 하루의 기분을 이어나갔다.  통합산전의 하나된 진면목이 바로 이런데 있었다.  끼와 신바람이 밑바탕에 깔린 산전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밤이 깊어 새벽이 오고 있었지만 누구 한사람 피곤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끝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와 함께 한 덩어리가 된 율동은 폭소에 곁들여 만개했다.

 
   다음날 새벽 나는 김해공항을 경유하여 일본 나고야 인근에 있는 기후차체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공장장 15명이 참여하는 < 4차 공장장 교류회 >를 기후차체가 주관하는 TPS ( Toyota Production System )연수로 했기 때문에 종강식에는 내가 참여하기로 되어있었다. 
   이런 날,  내일은 내일이었다.

  


   “ 십 년만에 한을 풀었어.  김 상무. ”

   이희종 부회장이 말했다.  그러면서 내 손등을 눌러 잡았다.  그 순간 솥뚜껑같이 묵직한 손에서 CU장의 체온이 나에게 넘어왔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중이었다.  87년 그룹에서 '산전'이라는 기업 조직이 만들어진 후 십 년에 이르는 시점이었다.

   “ 산전,  산전은 해냅니다.  두고 보십시오. ”

   “ 그래,  못할 이유가 없지. ”

   “ 전, 끝까지 해낼 겁니다. ”


   이 부회장의 '한'은 내가 해석하기에 여러 갈래가 있었으나 스킬 올림픽에 국한하자면 이랬다. 93년 2월에 스킬 올림픽의 첫 대회가 열렸다.  첫 대회에서 수상 팀이 한 팀도 없어 ‘ 수모 ’를 겪었다.  그야말로  산전은 초상집이었다. 
   이후 매년 꾸준히 성과를 내다가 97년에 와서야  여섯 팀이 수상을 하여  ‘ 역대 최고의 성적 ’을 올렸던 것이다. 

   ‘ 십 년의 한 ’

   그것은 스킬 올림픽에서 달성한 수상 테마에 국한된 숫자만이 아니라 ‘ 본 때 ’의 정신 바로 그것이었다.



 




   올해 정초 경주 < LG Skill Olympic '97 >이 반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 일행의 창원공장 방문 계획이 각 CU에 통보되었다.  구 회장의 현장 방문의 목적은 < 도약2005 > 실천 현장의 격려이자 그룹 스킬 올림픽에서 수상 테마에 대한 실천여부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는 구 회장의 방문을 하나의 기회로 생각했다.  그것은 95년 10월의 '악몽' 때문이었다. 그 당시를 회장이 기억할 리는 없지만 그런 저런 일로 남아있는 부정적이 이미지를 차근차근 바꾸어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 평생 잊지 못할 신혼여행이 될 거예요 ’ 라고 말한 장본인이 생각났던 것이다.
 
   산전의 방문 일정은 LG전자의  1, 2공장에 이어 다음날인 7월 15일이었다.  오전 열 시에 도착하여 창원공장의 현황을 듣고  < World Best 56 데시빌 저소음 에스컬레이터 제품개발 > 현장의 라인투어를 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본사의 임원들은 일부러 공장에 내려갈 필요는 없었으나 나는 가보기로 했다.

   나는 급히 김기웅 부장을 불렀다.

   “ 회장님이 창원에 오시는데...  권이석이 한테 연락을 해.  회장님도 기억하실 거야.  경주에서 신혼여행 축하를 하셨지?
   혹시 그 때 같이 찍은 사진 필름이 있는지 물어봐.  그리고 크게 한 장을 확대해서 준비하라고 해.  액자는 우리가 준비를 하고... “

   내 말에 김 부장은 잠시 갸우뚱했다.

   “ 어디 쓰실라고 그러십니까? ”

   “ 한번 생각해봐.  답을 빨리 가르쳐주면 재미없잖아. ”

   “ ... 아아,  정말 좋은 아이디업니다.  축하에 대한 답례로는 최곱니다. ”

   김 부장은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금새 넓은 웃음을 터트렸다. 

   “ 그리고 ‘ 여기는 World Best의 현장입니다 ‘  배너도 준비하도록 하고...  이번 기회에 현장을 알리자구. 
   현장 라인 투어를 하면 제일 먼저 보여드려야 할 곳이  ‘ 여기는 World Best의 현장입니다 ‘ 아녀.  회장님이 스킬 우수 현장을 돌아보면서 확인하는 취지에도 부합하고... 세계 최고의 현장을 보여드려야 해.  우리도 이런 현장이 있다는 것을... ”

   보고 싶어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의였다.  그런 한편으로 이년 전 청주공장의  회장단 혁신현장 투어를 되짚어 생각했다. 그때 그 낭패감.





   경주 이후 다섯 달만에 구본무 회장과 권이석 사원의 재회였던 것이다. 

   “ 그래요.  열심히 사세요.  기억이 납니다. ”

   구 회장은 경주의 그 날을 확실하게 기억해냈다.
  
   회장이 직접 확인해준 기억 만으로도 C-emotion 팀은 물론,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창원공장의 현장사원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사원들은 구 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몇 날 며칠을 누에고치의 실처럼 두고두고 풀어내는 재미가 있었다. 
   그것은 관심이었다.  관심은 내려올수록 애정이 되고 감동으로 재생산되었다.  어른이 현장에 있을 때 관심의 위력은 연쇄반응으로 커지는 법이었다. 

   노사관리 노무관리,  심지어는 노경관리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면서 강조하지만 별 것이 아니었다.  이런 하나 하나가 모이고 쌓여서 구축이 되는 것이 노사의 문화였다.

 

   회장단이 다녀간 며칠 후였다.  김기웅 부장이 싱글벙글하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 오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

   “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

   “ 뭐가 엄청난 일이야.  그렇게 입이 함박이야? ”

   “ 지금 막 권이석이 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 아침에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답니다.  지난번 현장에서 준 사진 선물 고맙다는 감사 전화랍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집무실 당신 방에 잘 놓아두었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더욱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고 격려 말씀도 계셨답니다. “

   “ 보기보다 섬세하시군. ”

   “ 그게 끝이 아니고요...  사진 선물에 답례를 하고싶은데 LG제품 중에서 하나 골라주면 보내주겠답니다. ”



   “ 구본무 회장과 현장 사원간에 오고간 훈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

   화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또 한번 놀랐다. 
   그룹의 LGCC  TV방송을 통해 권이석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화면에는 깨알같이 쓴 권이석 사원 부인의 편지가  소개되었다.

   “ ..........   보내주신 식기 세척기는 오늘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께서 저희들에게 일일이 베풀어주신 관심은 오로지 열심히 잘 살라는 말씀 이상의 격려가 되었습니다. .............  ”

   IMF로 축 늘어진 어깨를 감싸안는 듯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 녀석, 고르기는 비싼 걸 골랐군.  이왕이면 대형 냉장고를 말씀드리지 그래. ”

   사내방송이 끝나자마자 싱글벙글하며 들어온 김 부장에게 내가 던진 한마디였다.(123화 끝) 







  


2016, 5  어느 행사장에서




1996. 2  발리에서 (뒷줄 가운데)



고 구본무 회장님을

삼가 애도합니다.




삼가 구본무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정도경영과 정열로서 초지일관 경영일선에서 투혼을 불사르신 구본무 회장님의 영정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재벌에 대한 국민의 막연한 거부감이 사라지는 시대적 역할을 다하셨습니다.
언제 보아도 박진감있는 히스토리입니다. 이제는 어른이 현장에 오는 게 더이상 반갑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게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