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村漫筆

오솔 2020. 9. 24. 09:09

 

 

 

우리집 거실에 꽤 괜찮은 제법 오래된 팔각상(실제론 12각)이 하나 있는데 한쪽 모서리가 찍히고 패이고 온통 상채기 투성이다. 16년 전, 귀촌하여 흙벽돌 집을 짓고 그 해 말 해가 바뀌기 전에 할 일은 해야한다며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집들이 할 때 남은 흔적이다. 늦은 시간에 거나해진 옆집 아주머니가 흥에 겨워 장수만세 메들리 니나노 장단에 맞춰 팔각상을 쇠숟가락으로 힘차게 사정없이 두드렸던 것.

 

 

 

 

한가위가 가까와 오면 어느날 이른 아침을 택해 온동네 주민이 동원되어 두레 풀깎이 미화작업은 장관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안마을까지 꽁잿길 1 키로 남짓의 길 양쪽에 여름내내 제멋대로 자란 잡초를 남정네들이 예취기로 잘라내면 부녀자들은 졸졸 따라가며 빗자루로 쓸어담아 끝내기 마무리를 했던 것. 반장은 넉넉한 웃음으로 박카스를 한 병씩 돌렸다. 

 

 

마을 이름 그대로 안도내. 가로림만 육지의 끝이자 옛 포구 자리에 황량한 개펄. 바닷가로 돌아앉은 오지 중에 오지였다. 여길 어찌 알고 찾아왔는냐고 신기한듯 다들 내게 물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여기 충청도 땅에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귀촌이라는 말이 생소했었다. 나에게 귀촌은 그동안 잊혀졌던 시골 고향마을의 한 식구가 되는 소박함 그것이었다.

 

 

 

 

 

최근 5, 6년 전부터 마을 들머리부터 꽁바위 고갯길을 따라 양쪽에 여러 모양의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재작년 어느날엔 기획 부동산 업체인듯 뚝딱 터를 닦더니 우리집 바로 뒤도 집이 네 채가 한꺼번에 들어섰다. 다들 어디서 왔으며 누가 사는 지도 모른다. 박카스 비타500 한 병만으로도 훈훈했던 명절 풀깎이도 추억으로 사라졌고 '팥시루떡 하나 돌리는' 통성명에 이사턱 인사치레 마저도 물 건너갔다.

 

 

우리시대의 마지막 귀촌... 허전하고 아쉽다 못해 썰렁하다...  오늘 우리집 뒷길가 한가위 맞이 미화작업을 혼자 하면서 느끼는 넋두리 감상이다.

 

 

 

 

 

 

 

 

아니 시골에서 살려는 인사들이 어찌 그리 인심이 시닙답니까?
이웃도 모르고 사는 도시 아파트촌에서도 이사떡은 내는 법인데....
마을회관에 한 번 집합시키시지요?
모르면 가르쳐아지요~
인생 70의 고개에서 그런대로 나이가 든 사람이 느끼는 소감입니다.
떡 하나가 중요한 건 아니지요.
그런 마음 가짐을 이야기하는 것일뿐.

사람 살아가는 기본 자세가 아쉽다는... 갈수록 삭막해진다는...
아, 이러면 안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