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의 팡세

오솔 2020. 9. 27. 05:55

 

 

 

나에게 담쟁이는 추억의 대상이다. 어느 작가의 '마지막 잎새'가 담쟁이 잎이였다는 소설과 그다지 관계 없다. 다만 국민학교 시절 학교의 상징이 담쟁이 였다.

 

교사가 온통 담쟁이 덩쿨로 뒤덮여 벽돌의 붉은 색과 사시사철 철따라 담쟁이 신록과 단풍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던 기억. 6.25 직후라 성한 건물이 흔치않았던 때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은 어린 마음을 우쭐하게 했다. 담쟁이 이파리 모양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다녔던 60여 년 전 코흘리개 시절이 그대로 추억으로 남았다.

 


일부러 심지도 않았는데 우리집 길가 쪽 벽으로 자생하는 담쟁이가 해마다 조금씩 영역을 넓히면서 자라고 있다. 오늘 자연담쟁이 넝쿨을 걷었다. 그냥 둘가 몇 번을 망서리다가 단안을 내렸다. 흙벽돌을 타고 오르는게 창문을 막고 지저분하게 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