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천국(天國)과 지옥(地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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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2008.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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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天國)과 지옥(地獄)


글 : 오소운 목사



약 반세기 전인 1960년 2월, 내가 대한기독교계명협회(大韓基督敎啓明協會, The Korean Christian Literacy Association, KCLA)의 작가 겸 편집인(Writer & Editor) 으로 있을 때,《얘기 주머니》란 책을 낸 일이 있다.


농어촌 계몽(啓蒙)용 소책자인 이 책에는 짤막한 얘기를 20여개 실었는데, 거기에「천국과 지옥」이란 얘기를 넣었다.


어떤 사람이 꿈에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 먼저 천국엘 가 보았더니, 듣던 대로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행복한 세상이요, 사람마다 모습이 건강해 보였고 또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옥엘 가 보니까, 세상에서 듣던 것과는 딴판으로 천국과 꼭 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것은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삐쩍 말랐고, 빌빌하더라는 것이다. 이상하다, 왜 똑같은 환경인데 이렇게 다를까? 그 이유를 알아보자, 생각하고 한참을 있던 그는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아냈다.


그 비밀은 식사 시간에 밝혀졌다. 대연회장에 마련된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하여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것들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지옥 사람들은 저마다

 

 먼저 먹겠다고 달려들어 음식을 먹으려 하는데, 이게 웬 일인가? 모두들 뻗정 팔이어서 음식을 입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일껏 음식을 퍼서는 입에 넣지를 못하고 옆으로 쏟아버리는 것이었다.

지옥 사람들은 모두 속이 상해서 서로 상대방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막판에는 온통 난장판으로 싸우다가 지쳐 버리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천국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거기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음식이 차려있는 대연회장으로 갔는데, 연화장이나, 테이블이나, 음식이나 모두가 뻗정 팔인 것까지 똑같았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었다. 그들은 음식을 떠서는 자기가 먹지를 않고 앞자리에 앉은 사식람에게 먹여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음식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남에게 서로 먹여주기 때문에 뻗정 팔이라도 음식을 맛있게 먹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남을 섬기는 곳이 천국이요, 나만 아는 곳이 지옥이로구나….


대강 이렇게 썼다. 이 얘기가 실렸던 본디 책명은 기억 안 나지만, [세계일화집]이란 책으로 기억된다. 이 얘기를 읽고 나 나름대로 써서《얘기 주머니》란 책에 실렸던 것이다.

 

                                                                                

세계의 지상낙원이라는 남태평양 마오리 섬의 절경


 

그런데 최근에 우리교회 정의선(鄭義善) 담임 목사님이 설교에 이 예화를 들려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오래간 만에 추억에 잠기었다. 얘기 중에 다른 게 하나 있었다. 나는 분명히「뻗정 팔」이라고 썼는데, 기다란 젓가락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이 얘기의 출처를 찾기 위해, 먼저 일어와 중국어 웹 사이트를 훑어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영어로 찾았더니 있었다.


가톨릭 교황 요한 바오로 I세가 한국 장군에게서 들었다는 글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었다. 번역과 원문을 싣는다.

 

                                                

   교황 요한 바오로 I 세


“요한 바오로 I세 (1978. 8. 26~9.28 재위) 는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한국인 장군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소에 자주 하였다.


― 한국인 장군이 죽어서 심판을 받고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 앞에 인도되자, 지옥을 잠시만 구경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베드로는 이를 허락하였다. 장군이 문을 조금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대연회장 한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고, 커다란 밥그릇과 산해진미(山海珍味)들이 놓여 있어 식욕을 돋우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배고파 죽어가는 지옥의 사람들 앞에는 음식접시가 놓여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식탁의 손님들은 아주 길다단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야 했는데, 젓가락이 너무나 길어서 집은 음식을 자기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큰 고통을 주는 고문(拷問)이었다. 이게 바로 지옥이었다.  한국인 장군은 이만하면 충분히 보았다, 생각하고는 천국 문 앞으로 돌아가서 안으로 들어갔다.


천국 문 안에 들어서서 보니, 신기하게도 지옥과 똑같이 넓은 연회장이 있고, 커다란 테이블에 음식이 차려져 있고, 아주 기다란 젓가락이 놓여 있었다. 지옥과 다른 것은, 모든 손님이 즐겁게 담소하며 미소하거나 웃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기다란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는, 서로 맞은편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입에 넣어주어 먹게 하는 것이었다.


교황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보다 먼저 이웃을 배려할 때 지옥은 천국으로 변하는 것이다.” 


[원어]

Pope John Paul I used to teach about heaven and hell through the story of a Korean general. He died, was judged, and assigned to paradise. But when he came up before St. Peter he thought of something he would like to do. He wanted to peep into hell for a moment, just to have an idea of it. "Right you are," said St. Peter.


So the general peeped in at the door of hell and saw an enormous banquet hall. In it were a number of long tables with bowls of rice and delicacies on them, well-flavored, smelling delicious, inviting. The guests were sitting there hungrily, opposite one another, each with a plate of food.


What was happening? The guests all had chopsticks which they had to use but these were so long that, however hard they tried, not a grain of rice could they get into their mouths. And this was their torment, this was hell. “I’ve seen it, that’s more than enough for me,“ said the general and went back to the gates of heaven, where he went in.


Inside, he saw the same banquet hall, the same tables, the same food, and the same long chopsticks. But the guests were cheerful, all of them smiling and laughing. Each one, having put the food onto his chopsticks, held it out to the mouth of his companion opposite, and so they managed to eat their fill.


“Thinking of others instead of oneself,“ the Pope said, “had solved the problem and transformed hell into heaven."


이 내용과 출전이 전혀 다른 버전도 있었다. 미국에 있는 젊은 선승(禪僧, Zen monk)가 노승(老僧)에게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더니, 노승이 대답한 얘기라고 되어 있었다. 젓가락길이는 1미터가 넘고, 음식은 국수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선승이 미국에 들어간 것은 70년대 이후로서 근자의 일이니까, 우리나라에서 이 이야기를 읽은 어느 젊은 중이 올린 글 같아보였다. 이 이야기가 본디 불교에서 나온 것이라면, 중국이나 일본 웹사이트에 반드시 올라 있어야 하는데,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는, 사이트에 따라 디테일이 상세하게 묘사된 글들도 보이는데, 한결같은 것은 한국(Korea) 에서 전해지는 얘기라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인도에 가서 선교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 1884-1973) 목사가 한 말이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아직 원전을 찾지를 못하고 있다.

 

앞으로 후학 누군가에 의해 원전(原典) 출처가 밝혀지기를 바라면서 여기서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