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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美 망명 탈북연예인 마영애씨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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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충무 칼럼

2009. 11. 15.

망명 탈북연예인 마영애씨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노무현 정권이 여권 무효화 시켜 4년 동안 무국적자 신세, 미국서 고통..
서석구 변호사가 맡아, 노무현 정권 손충무씨 여권도 무효화 시켜

 



 

 



▲ 지난 10월 29일(뉴욕시간)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건물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마영애씨- 윗쪽 사진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신선호 대사와 그를 감시하며 따라다니는 북한 정치보위부 참사관의 모습

(서울) 미국에 망명중인 탈북 연예인 마영애씨 부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마영애씨는 소송 대리인 서석구 변호사를 선임, 노무현 정권이 여권을 무효화 시키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고 미국에 있는 3년 7개월 동안에도 노무현 정권의 공무원들이 괴롭히고 협박한 사실을 증거를 제시하며 정신적 위자료와 한국의 재산이 날아가고 영업하지 못해 입은 재산상 피해액을 보상하라고 청구했다.

마영애씨는 지난 2004년 4월 미국 동포사회 교회들의 초청을 받아 평양예술단 단원들을 데리고 미국 순회공연을 떠났다.

이때 노무현 정권의 국가정보원과 통일부는 탈북자들의 해외순회 공연에 정보원을 동행시켜 탈북자들을 감시하도록 했으며 국정원이 보낸 정경석(남북 청소년교류연맹 총재)이 그들과 동행 감시 역할을 했다.

노무현 정권은 미국 순회공연을 하는 탈북 연예인들에게

(1) 북한 인권문제를 말하지 말라

 (2) 북한정권을 자극하는 증언이나 간증을 하지 말라

(3) 노무현 정권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

(4) 디펜스포럼 수쟌 솔티 를 만나지 말라는 지시를 하고 각서를 받고 출국시켰다.

미국 LA 공항에 도착한 후 정보원 정경석은 단원들의 여권과 비행기 표를 빼앗아 보관하면서 탈북자들을 지휘하고 감시했다. 그러나 마영애씨는 북한의 인권문제,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 사실, 위조달러 제작, 가짜담배 제작 판매, 정치범 수용소 문제 등을 집중 고발, 간증하고 폭로했다.

그러자 감시자 정경석이 마영애와 그의 남편을 구타하고 한국으로 강제 송환하려 하는 등 갖은 행패와 협박을 가했다. 이에 한국에 돌아가면 체포될 것으로 판단한 마영애씨는 현지 동포들의 도움으로 숙소를 탈출, 워싱턴 DC로 가서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힘든 고생을 견뎌야 했다.

노무현 정권은 그를 강제 송환하기 위해 여권을 무효화 시키고 연장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미국에 정치망명을 신청했다.

4년 여 동안 여권도 없이 무국적자로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살다가 이명박 정권 탄생 후 여권을 다시 받아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이번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잘못에 대한 소송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의 국가정보원과 통일부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소송이다.

노무현 정권은 마영애씨 여권을 무효화 시켰으며 언론인 손충무씨 여권도 무효화 시키는 악행을 저질렀었다. 이제 마영애씨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접수시킴으로써 다음 차례는 손충무씨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북한자유주간 행사때 백악관 앞에서 양금을 연주하는 마영애씨

◆ 다음은 서석구 변호사가 서울 중앙지법에 접수시킨 소장 내용이다.

손해배상(국가배상) 청구 소장

국가배상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의 소

청 구 취 지

피고는 원고에게 돈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소장부분이 송달된 다음날부터 다 갚을 때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 구 원 인

원고의 인적사항과 탈북한 경위 (갑 제1호 증, 탈북연예인 마영애, www.chnk21.org, 갑 제2호 증의 1, 주민등록등본, 2, 주민등록증, 갑 제3호 증 “그녀 때문에 평소 친분 있던 국정원 요원들은 나를 멀리했다” 임종규, 29.2.26.기사)

북한공작원 생활에 회의를 느낀 원고(갑 제3호 증)

탈북자인 원고는 북한에서 태어나 평양예술단에서 아코디온과 양금연주자로 실력을 인정받다 지난 1980년 북한군 연예단에 징집 당해 8년 동안 근무한 후 1988년 상사로 제대했습니다.

1990년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국가보위부 공작원(간첩)으로 선발돼 특수교육을 받고 중국에 파견근무를 했습니다.

임무는 남한에서 오는 여행객을 납치하거나 정보입수, 외화벌이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공작원들은 평양에서 보내는 위조달러를 받아 생활비와 공작금으로 사용하고 그들이 벌어들인 진짜 달러는 평양으로 보냈습니다.

원고는 1996년 아들과 함께 단동지방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한인지하교회를 찾아 예배를 본 것이 밀고가 되어 평양으로 소환된 후 체포되었지만 공작원 임무의 실적과 남편의 출신성분이 좋아 자아비판과 재교육을 받은 후 다시 국가보위부에 복귀되었습니다.

대성무역회사 직원으로 위장한 원고는 특수임무를 부여받아 중국에 파견되었는데 2년여 동안 평양에 1백만 달러가까이 투자를 했지만 이익이 발생하지 않아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하는 백성영씨가 북한의 국가보위부에서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중국으로 추방된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그의 억울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김정일에게 전하기 위해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백성영씨의 편지를 상부에 전달한 사실이 발각되자 원고와 백성영씨는 보위부에 체포되어 1개월 동안 같은 감방에 수감되었습니다. 다행히 편지의 행방을 묻는 심문에 끝까지 부인하는 바람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지만 북한독재정권은 백성영씨가 투자한 돈 1백만 달러를 모두 착복하고 그를 간첩혐의로 처형해 버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고참 공작원들을 갖가지 죄목을 뒤집어 쓴 채 처형당하거나 수감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작원 생활에 회의를 느낀 원고는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선을 극복한 원고의 탈북과 한국에 귀순하기 까지의 과정(갑 제3호 증)

1999년 1월 북경 소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망명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해 할 수 없이 예전에 활동하던 연변과 도문 지역에 숨어들어 잡화가게를 경영하는 친척 아주머니의 집에 숨어 살다가 조선족동포의 밀고로 체포되었습니다. 친척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뇌물을 주고 극적으로 탈출해 용정에 숨어 있다가 한국여권을 구입해 그 후 하얼빈에서 지내다가 2000년 9월 5일 극적으로 한국에 귀순했습니다.

2000.12.20. 경기도 안산시 삼죽면 용월리 산 27-8 로 주민등록을 하고 탈북자 최상호씨와 결혼해 2001.9.5. 최상호씨의 주민등록에 등재했습니다.(갑 제2호증의 1, 2)

원고의 아들 최효성군도 중국에 사는 친척들로부터 어머니인 원고가 탈북하여 한국으로 간 사실을 알고 탈북을 하였다가 탈북자들을 잡아 중국인들에게 파는 인질법에게 붙잡혀 원고가 보내준 돈으로 풀려났습니다.

원고가 가짜여권을 사주어 아들도 2002년 10월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의 가짜 여권 때문에 원고는 여권법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미국 한인교회의 초청과 미국에서의 원고의 활동(갑 제1호증, 갑 제3호 증)

2004년 4월 LA 한인교회들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원고는 미국내 주요도시를 순회하면서 한인교회와 NGO 단체에서 연주와 신앙간증을 하며 북한의 인권실태와 김정일집단을 고발하고 비판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원고의 공연과 활동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4년 4월 미국 국회증언 및 초청공연

2004년 10월 뉴욕 리버사이드 church 음악회

2004년 11월 17일 미 국회 초청공연(상원)

2005년 4월 뉴욕 탈북난민돕기 음악회 공연

2005년 4월 LA 라디오 코리아 주최 음악회

2005년 10-11월 뉴욕 탈북난민돕기 음악회

2005년 - 2006년 까지 KCC 통곡기도대회 증언자

2006년 3월 24일 힐러리 클린턴과 접견 기념사진촬영

2006년 4월 22일 백악관 앞 이벤트 공연

2006년 4월 19일 뉴욕 이민국 공연 국토안보부공로표창

2006년 6월 17-18일 국제문화예술대제전공연

2006년 8월 3일 미 국회 초청방문 샘 브라운 백 상원의원과 여러 상원의원들, 그리고 부시 대통령 보좌관과의 면담

뉴욕 크리스천 신학대학에서 선교사로 임명

2007년 3월 24일, 4월 19일 4월 21일 워싱턴 필라델피아 뉴저지 탈북난민구출음악회

현재 CHNK 탈북자선교회 대표

국가배상법 또는 민법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갑 제3호증, 임종규, 뉴스메이커 “그녀 때문에 평소 친분있던 국정원 요원들은 나를 멀리했다” 2009.2.26.기사, 갑 제4호 증, 임은주, 뉴스메이커, “한국정부는 친북정권입니까?” 한국 국정원, 통일부 관계자들, 탈북동포 마영애씨 부부에게 “북한실상 미 동포들에게 말하지 말라”위협, 2009.9.7.기사, 갑 제5호 증, 임은주, 뉴스메이커, “진정한 자유를 찾아 이 땅에 머무르게 됐죠” 미국정부에 정치적 망명신청한 탈남 북한동포 마영애씨 가족, 2006.5.10.기사, 갑 제6호 증, 손충무, 유에스인사이드월드, 탈북연예인 마영애씨 미국에 ‘정치망명’ 신청. 2006.6.22 기사, 갑 제7호 증, 유에스인사이드월드, ‘엄마찾아 10만리-평양에서 뉴저지까지’ 2006.6.22.기사, 갑 제8호 증, Corn Song, 유에스인사이드월드, FBI, 마영애-손충무씨 신변보호 강화, 2006.6.22.기사, 갑 제9호 증 유에스인사이드월드 “국정원 요원 3명, 마영애씨 주변사람들 협박” 2009.7.27. 기사, 갑 제10호 증, 유에스인사이드월드, 망명 탈북자 마영애씨 암살협박 범인기소, 2007.6.25 기사, 갑 제11호 증, 확인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의하면 국가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민법 제756조에 의한 사용자로서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입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뉴스메이커와 인사이드월드 즉 갑 제4, 5, 6, 7, 8, 9, 10호증 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가혹한 독재에 신음하다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에 귀순해 정착한 원고가 미주한인교회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통일부 산하 사단법인 남북정소년교류연맹 정경석 총재과 연맹소속 감시자들이 김정일을 자극하는 북한인권을 비판하지 말도록 금지하는 지시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고 귀국하면 가만두지 않고 제재를 할 것이라는 협박을 받고 여권과 항공표도 빼앗긴 사실, 여권연장신청도 기각되어 귀국이 금지된 사실, 원고가 미국에 망명신청을 하게 된 사실, 국회에서 김승규 국정원장 조차 원고의 망명신청이 뚜렷한 이유가 없어 기각될 것이라는 발언으로 망명신청을 한 원고는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사실, 그 직후에 미국에서 국가정보원 소속 2명과 통일부 소속 외교관 1명, 또 외교통상부 고위 외교관 1명 등 4명이 뉴욕, 워싱턴 등지에서 탈북자지원단체 책임자들에게 원고 마영애 가족을 도와주지 못하도록 협박한 사건, 정권교체후에 여권이 새로이 발급된 사실을 들어났습니다.

뉴스메이커와 유에스인사이드월드 갑제4, 5, 6, 7, 8, 9, 10호증에 보도된 원고가 불법으로 여권연장이 기각되고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피고로부터 박해를 받은 불법행위의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0년 9월 5일 한국에 귀순한 원고는 북한의 가혹한 독재에 신음하다가 탈북한 탈북자입니다.

탈북동포들은 중국공안에 붙잡혀 강제북송되기 때문에 정치적 망명을 위해 외국 대사관 담을 넘기도 했으며 몽골, 태국, 베트남 등 제3국을 경유하는 머나먼 길을 택해 한국에 왔습니다.

아직도 수십만명의 탈북동포들이 한국이나 미국행을 원하면서도 중국등지를 떠돌며 비참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귀순한 원고는 북한음식 전문점을 차려 생계를 유지했고 생활이 안정되자 ‘평양예술단’을 창단, 한국 전역을 돌며 공연을 했고 TV에도 자주 출연을 했습니다.

국군포로의 아들이자 탈북동포인 최상호씨와 재혼했고 북한을 탈북한 아들 효성군이 2002년 10월 한국에 귀손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2004년 4월 LA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원고가 단장으로 활동하는 평양예술단단원 10명을 초청했지만 주한미국대사관에서는 예술단원 3명에게만 비자를 발급하고 7명에게는 비자발급을 거절했습니다.

국가정보원 탈북자 담당 오태수는 비자가 거절된 단원 7명에게 “미국대사관앞에 가서 데모하라, 마영애는 워싱턴 백악관앞에 가서 데모하면서 미국 놈들을 비난하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갑 제3호증)

공연 때문에 미국에 가야한다고 국정원측에 보고하자 국정원 관계자들이 위협적으로 “미국에 가서 절대로 북한의 실상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 말했다간 재미없을 줄 알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갑 제4호 증)

미국 LA에 도착한 원고와 단원들은 미국내 주요도시를 순회하면서 한인교회와 NGO 단체에서 연주와 신앙간증을 하며 그들이 실제로 겪은 북한의 비참한 인권실태와 김정일 집단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갑 제3호 증, 갑 제4호 증)

그들을 감시하던 통일부 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 총재 정경석(국정원 요원으로 추정)은 원고가 북한정권의 죄악상,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의 비참한 현실, 한국정부의 외면으로 강제송환 당하는 탈북자들의 참상을 계속 폭로하자 원고의 뺨을 때리며 “너 같은 계집년은 두 번 다시 외국에 못나오게 만들 것이다. 서울에 돌아가면 용서하지 않는다. 각오하라”고 협박했습니다. (갑 제3호 증) “우리정부가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는가. 한국에 돌아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갑 제4호 증) 국가정보원으로 알려진 한국정부 관계자는 원고의 여권을 빼앗으며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갑 제5호 증)

2000.7.20. 통일부산하 사단법인으로 소속 감시자들이 국정원과 통일부의 지시에 따라 미국공연에서 김정일을 자극하는 북한인권발언을 금지시키고 북한인권을 공연과정에서 고발한 원고를 폭행하고 협박했습니다.

원고와 남북교류청소년연맹 정경석 총재등과 같이 국정원에 갔던 탈북자 심미숙씨도 국정원에서 정영석 총재가 미국에 가는 단원들에게 미국의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북한실상을 말하지 말 것, 김정일을 자극하는 말, 북한정권 비난하는 말을 하지 말 것, 미국에서 2억을 준다 해도 가지 말 것 등을 조항별로 서명하라도 해서 서명을 한 사실과 미국에 가서 평양예술단 마영애 단장과 같이 LA, 시카고, 아틀란타 교회 행사를 했는데 원고와 변상호 부부가 북한인권을 비판하자 남북교류청소년 연맹 정 원고의 얼굴을 때리고, 변상호의 멱살을 잡고 때렸고 LA 공항에서는 원고와 변상호씨의 여권과 항공표까지 빼앗아 버린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갑 제11호 증)

뺨을 때리며 “한국에 돌아가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감시자의 협박에 원고 부부는 공포감에 떨었고 가혹한 보복이 두려운 원고 부부는 미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시카고에 남았다가 버지니아로 가서 활동하다가 고향사람들이 있는 뉴욕으로 왔고 다시 뉴저지 릿지필요 팍에 거주했습니다. (갑 제3호 증)

원고는 뉴욕, 뉴저지에서 목회자들의 도움으로 간증과 강연, 공연활동을 했습니다. 체류자격변경을 위해 영어학원에 등록, 학생비자를 받아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확보했습니다. (갑 제3호 증)

2005년 6월 27일 뉴욕 총영사관에 학생비자와 증명서를 제시하며 여권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8월 중순 뉴욕총영사관으로부터 여권연장 거부통고를 받았고 그때부터 원고는 무국적자가 되었습니다. (갑 제3호 증, 갑 제5호 증)

뉴스메이커 임종규 편집인은 원고로부터 딱한 사정을 듣고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야지 원고를 도와줄 것이라 판단하고 2005년 9월 7일 미국에서 발간되는 뉴스메이커에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갑 제3호 증)

원고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 후 임종규 편집인은 탈북단체 관계자들과 개신교계 목회자들을 만나 원고에 대한 도움을 요청을 요청했고 다행히 많은 동포들이 원고에게 온정을 베풀었습니다. (갑 제3호 증)

무국적자가 된 원고는 2006년 1월 25일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원고는 망명신청이유에서 “노무현 정권이 여권을 무효화시키고 한국에 있는 주민등록까지 말소시켰다. 노무현 정권은 내가 서울에 돌아오면 처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정치 망명’을 신청한다”고 밝혔습니다. (갑 제3호 증)

원고의 망명신청과 진행과정에서 주로 인사이드월드 손충무 발행인과 워싱턴 재미동포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원고는 연방상원, 하원의원들도 만나 무국적자의 처지를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무렵 원고는 남한과 북한 양측 기관원들 모두에게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원고를 협박하는 괴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온 것을 알게 된 뉴스메이커 임종규 편집인은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중에 북한 간첩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갑 제3호 증)

미국 지역경찰이 원고를 보호했고 연방수사국(FBI)요원들은 원고의 안전을 정기적으로 살폈습니다.

김대중 비자금 뉴욕 유입사건과 원고 망명사건이 터지자 노무현정권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4월 27일 김승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나가 “마영애 미국 망명신청 사건은 마영애가 미국의 우방인 한국인이고 망명사유가 뚜렷하지 않아 기각될 것”이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갑 제3호 증)

망명사유가 뚜렷하지 않아 기각될 것이라는 김승규 국정원장의 국회증언은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고발한 원고가 망명신청을 한 상태에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입었습니다. 망명신청이 기각되어 강제로 한국에 송환될 경우 통일부 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 정영석 총재와 소속 감시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한국에 귀국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탈북자 원고 마영애 개인 문제를 국정원장이 국회에 나가 변명을 하고 증언해야 할 정도로 원고 마영애 망명사건은 노무현정권의 거짓과 위선을 단적으로 드러내며 국제사회에 물의를 빚었습니다. (갑 제9호 증)

한국정보기관들이 원고에 대한 협박과 위협은 물론 원고 가족을 돕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위협을 가했습니다. 동포 단체장들과 교회, 음악 관계자들은 “마영애를 도와주지 말라. 도와주면 좋지 않다”는 등의 협박과 위협을 받았던 것으로 전혀졌습니다. (갑 제9호 증)

김승규 국정원장의 증언이 있은 후 워싱턴 한국대사관과 뉴욕총영사관에 파견된 국가정보원 소속 2명과 통일부 소속 외교관 1명, 또 외교통상부 고위 외교관 1명 등 4명이 뉴욕, 워싱턴 등지에서 탈북자지원단체 책임자들에게 원고 마영애 가족을 도와주지 못하도록 협박한 사건이 몇건 발생한 것도 뉴스메이커와 유에스인사이드월드에 보도되었습니다. (갑 제3, 제9호 증)

원고 집 주변에 밤마다 정체 모를 흑인 1명과 중동인 2명이 나타나 원고 가족을 감시했으며, 신원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살해협박 전화가 수십차례 걸려와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갑 제3호 증)

원고는 그간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밤이면 집 앞에 트럭이나 밴을 몇시간씩 세워두고 감시하는 가하면 집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자동차에 협박편지를 남기는 등 살해 위협에 시달려왔습니다. (갑 제3호 증)

경찰이 보호를 강화하는 동안에도 몇몇 흑인들이 야간에 원고의 집 유리창을 깨도 자동차를 파손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돼 FBI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FBI는 이들을 조사하며 “한국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그랬다”는 진술을 받아 내고 돈을 준 한국인 체포에 나섰으나 이미 도주해 검거에 실패했습니다. (갑 제3호 증)

한편 이 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태식 주미대사를 청와대로 불러 김대중 비자금 뉴욕유입사건과 원고 마영애 망명사건에 대해 자세한 브리핑을 요구했고 이에 이태식 대사는 귀국하기 전 유에스인사이드월드 손충무 발행인을 대사관에서 만나 두 사건에 대한 설명과 조언을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손충무 발행인은 “김대중 비자금 유입사건은 모두 사실이며 현재 미국 수사기관이 조사중이고 마영애 망명사건은 명백한 국정원의 잘못”이라며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임종규 편집인도 마영애 사건을 묻는 한국정부관계자들에게 국정원요원들의 그릇된 언행을 지적했습니다.

인민군 고급장교이자 김일성 별장을 건축할 정도로 북한의 신망이 두터웠던 마영애씨의 전남편은 총살을 당했습니다.

2006년 9월 14일 조지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점심식사중이던 오후 12시 30분 그 시간에 국토안보부(DHLS) 시민권 및 이민서비스국(USCIS) 뉴욕지부가 발송한 노동허가서가 원고에게 발송됐습니다.

국토안보부가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간에 사실상의 망명허가서인 노동허가증을 전달한 것은 당시 미국은 겉으로는 한국과의 혈맹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좌파정권을 못 마땅해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 제3호 증)

뉴저지 거주지가 노출된 탓에 불안해서 못살게 된 원고는 노동허가증을 받은 후 LA로 이사를 갔지만 그곳에서도 국정원 직원들과 친북좌파세력의 협박은 계속되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나니 원고를 괴롭혔던 국정원 요원들은 임종규 편집인에게 “어떻게 합니까 윗분들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지 우리야 별수 없잖아요. 이해해 주세요. 마영애씨가 어려운 일 있으면 이제부터 제가 돕겠습니다” 라고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갑 제3호 증)

국정원의 지시로 원고를 탄압해온 사실을 그대로 자인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가 돼야만 하나, 이는 모두 정권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잘못이라고 뉴스메이커는 보도하고 있습니다. (갑 제3호 증)

원고는 본인과 아들의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드린 진정서에서 “저희가 조국을 버린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좌파정권이 저희를 버린 것이었습니다”라고 한 고백은 여권연장을 기각시킨 좌파정권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좌파정권의 만행을 고발한 것입니다. (갑 제3호 증)

뉴스메이커가 보도한 원고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드리는 진정서에서 고발한 지난 좌파정권으로부터 받은 박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갑 제3호 증)

원고는 2004년 4월 탈북예술인들로 구성된 평양예술공연단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통일부 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의 정경석 총재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국정원에서 탈북자들을 담당하고 있는 오태수가 그 무렵 전화로 강남구 세곡동에 있는 국정원으로 와달라고 해 네 번이나 국정원에 갔습니다. 그는 2004년 4월 26일 워싱턴 DC에서 디펜스 포럼이라는 인권단체가 주최하는 자유북한의 날 행사에 참석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미국에 가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 것, 김정일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말 것, 북한 실상을 폭로하는 발언을 하지 말 것, 미국의회측에서 20만 달러를 준다해도 절대 가지말 것, 이를 지켜준다면 평양예술단이 한국에 돌아온 후 2억원을 주겠음, 이에 대한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마영애 단장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원고가 미국을 떠나기 전에 국정원에서 탈북자를 담당하는 오태수의 요청을 네 번이나 국정원에 가서 북한인권을 폭로하지 말것을 지시받았습니다.

원고등 10명 단원들은 정경석 총재가 국정원에서 받아온 서류에 서명을 했고 미국에 가서 북한을 비판하는 언행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비자가 나온 3명만이 정경석 감시하에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정경석은 로스엔젤레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저희의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갑 제3호증, 갑 제11호증)

국정원에서 받아온 서류에 서명을 한 것이나 여권과 비행기표를 빼앗은 것은 국정원의 지시인 북한인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국정원의 명백한 불법행위로 원고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2004년 5월 초 아틀란타에서 집회를 하던중 동행한 남편 최상호가 북한의 인권상황과 국군포로의 비참성을 공개하고 원고도 북한의 공개처형 상황을 간증했습니다. 원고부부가 국정원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은 북한의 실상을 미주동포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죄스러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황한 정경석은 시카고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남편 최상호의 멱살을 잡고 “이 새끼야, 국정원에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하나?”라고 욱박 질렀습니다.

정경석은 원고에게도 “이 새끼들, 한국가서 두고보자.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정경석은 시카고에 도착해 민박을 할 때도 원고부부에게 욕설을 퍼붓고 구타를 하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하루전날인 5월 16일 원고부부가 정경석에게 “여권과 비행기티켓을 달라”고 하자 그는 “못 주겠다”고 한 후 백지에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돌려줬다는 허위내용을 적게 한 후 “여기에 서명을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원고부부는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했습니다.

원고부부는 졸지에 여권과 항공권도 없는 국제고아로 전락했습니다. 원고 부부가 조국을 버린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좌파정권이 원고부부를 버린 것입니다. 원고부부가 미국에 망명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망명신청과정에서 워싱턴 주한미국대사관의 국정원 직원 박흥식과 뉴욕총영사관의 국정원 직원 함병락 부총영사로부터 받은 공갈과 협박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권이 교체되었기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서 로스엔젤레스 총영사관을 찾았지만 여권을 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한 국민으로 세계각국을 다니며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원고, 정부가 매달 탈북자들에게 주는 기초생활비도 원고보다 더 어려운 탈북동포들을 위해 사용하라고 반납하고 열심히 식당을 운영해 살아온 원고, 누구보다도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원고가 미국에서 망명객의 신세로 전락해 한을 품고 살아가기 보다 당당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진정서를 받아들여 2009년 2월 3일 원고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었습니다.

뉴스메이커 임종규 편집인은 전화로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한 원고의 음성을 다음과 같이 뉴스메이커에 보도했습니다. “저 마침내 대한민국 여권 받았어요. 이제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 가게 됐습니다. 모두 임사장 덕분입니다. 우리 부모도 못해주는 것을 임사장님이 해주셨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

그동안 북한과 남한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무국적자가 되었다가 꿈에도 그리던 한국에 가게 된 원고가 흘린 눈물은 뉴스메이커 임종규 편집인에 대한 감사와 그리운 고국 한국에 갈 수 있게 된 희망이 그녀를 감동시킨 것입니다.

유에스인사이드월드 손충무 발행인은 미국에 정치망명을 한 원고가 겪은 고난을 다음과 같이 유에스인사이드월드 칼럼으로 고발했습니다. (갑 제10호 증, 손충무, 유에스인사이드월드, 미 망명 탈북자 마영애씨 암살협박 범인기소, 2007.6.25.)

미국에 정치망명을 하고 있는 탈북연예인 원고를 암살하고 그 아들을 납치하겠다고 협박한 범인이 로스앤젤레스 경찰에 기소되었습니다. 원고 가족을 두차례나 중국으로 유인, 납치하려던 자칭 K목사라는 사람이 원고가 경찰에 신고한 사실을 알고 도주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원고 가족을 납치하려한 K목사를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 파견 국가정보원 박홍식 영사가 두차례나 만난 사실이 원고 부부가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증언, 또 원고가 사법기관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이미 김대중정권 때부터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스파이를 잡아야 할 정보기관이 국가 최대의 적인 김정일에게 4억5천만 달러를 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유에스인사이드월드 본사가 입수한 LA법원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박흥식 참사관은 과거에도 마영애 부부를 미국에서 추방하기 위해 워싱턴의 탈북자 후원단체 책임자들을 포섭, “마영애 가족을 돕지 말라. 그들이 미국에서 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충동질하고 다녔습니다. (갑 제10호 증)

이런 사실들은 원고의 변호인들이 미 국무부와 FBI(연방수사국)에 알린 것 으로 전해진다.

BRETZ & COVEN, LLP 로펌 대표인 Jules E. Coven 변호사를 비롯하여 원고 마영애씨 가족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이 미 연방상원 샘 브라운백(Sam Brownback) 의원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미국 정부 고위인사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밝힌 내용에 의하면 한국의 통일부와 정보부가 원고의 망명신청을 노골적으로 비판 방해하고 원고를 도와주는 주변사람들을 협박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을 다음과 같이 들어내고 있습니다. (갑 제10호 증)

“한국정부의 통일부와 정보부는 마영애씨가 경박하게 망명신청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유력신문사들과 인터뷰를 통해 그녀를 공격 비판하고 있다”

“워싱턴 소재 한국대사관 직원으로 있는 한국 국정원 요원이 끊임없이 괴롭히며 주변사람들을 통해 협박하고 있다”

“뉴욕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 파견된 정보요원들로부터 협박과 위협을 당하고 있다”

“한국정보부 요원으로부터 협박 당한 사람들이 마영애씨에게는 협박사실을 털어놓지만 법원에서 증언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한국정보부 요원들이 그들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뉴스메이커와 인사이드월드 즉 갑 제3, 4, 5, 6, 7, 8, 9, 10호증 보도와 갑 제11호 증에 의하면 국가배상법에 의한 피고의 배상책임을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가혹한 독재에 신음하던 원고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에 귀순해 정착한 사실.

미주한인교회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오태수가 네 번이나 원고를 비롯한 미국방문 탈북자 연예인들을 국정원으로 소환한 사실.

원고는 통일부 산하 사단법인 남북청소년교류연맹 정영식 총재과 연맹소속 감시자들과 같이 국정원으로 가서 미국방문 동안 김정일을 자극하는 북한인권에 관한 비판을 하지 말 것을 서면으로 맹세한 사실.

김정일을 자극하는 북한인권을 비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위반하면 제재를 받고 지키면 귀국하면 거액을 받을 것이라고 협박과 회유를 받은 사실.

원고가 미국의 한인교회에서 북한동포들의 비참한 인권실태를 고발하자 남 북청소년교류연맹 정영식 총재와 연맹소속 감시자들로부터 폭행과 협박을 받고 여권과 항공표까지 빼앗기고 여권연장신청도 기각되어 무국적자로 미국에 망명신청을 하게 된 사실.

김승규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원고의 미국 망명신청 사유가 뚜렷하지 않아 기각될 것이라는 증언해 망명신청을 한 원고가 망명신청이 기각되어 한국으로 강제송환될까 두려워하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실.

원고는 미국에 체제하는 동안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밤이면 집 앞에 트럭이나 밴을 몇시간씩 세워두고 감시하는가 하면 집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자동차에 협박편지를 남기는 등 살해 위협에 시달린 사실.

한국정보기관원들이 재미동포 단체장들과 교회, 음악 관계자들에게 원고를 도와주면 좋지 않다고 협박과 회유를 한 사실.

원고 가족을 담당하는 변호인들이 “한국정부의 통일부와 정보부는 마영애씨가 경박하게 망명신청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유력신문사들과 인터뷰를 통해 그녀를 공격 비판하고 있다” “워싱턴 소재 한국대사관 직원으로 있는 한국 국정원 요원이 끊임없이 괴롭히며 주변사람들을 통해 협박하고 있다” “뉴욕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 파견된 정보요원들로부터 협박과 위협을 당하고 있다” “한국정보부 요원으로부터 협박 당한 사람들이 마영애씨에게는 협박사실을 털어놓지만 법원에서 증언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한국정보부 요원들이 그들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미 연방상원 샘 브라운백(Sam Brownback) 의원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미국 정부 고위인사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밝혀진 사실.

위와 같은 사실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원고는 미국 한인교회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하기 전부터 국정원 오태수로부터 네 번이나 소환되어 남북청소년교류연맹 정영식 총재와 관계자들이 함께 국정원에 가서 미국에서 절대로 김정일을 자극하는 북한인권을 비판하지 말도록 협박과 회유를 받았고, 미국에 가서도 통일부 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으로부터 같은 취지의 협박과 회유를 받았으며, 미국 순회공연에서 북한인권을 비판하자 갖은 폭행과 협박으로 귀국하면 보복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심지어 여권과 항공표까지 빼앗기고 여권연장신청도 기각되어 무국적자가 되었고, 원고가 망명신청을 하였을 때 한국의 국정원장이 국회증언에서 원고의 망명신청사유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기각될 것이라고 하였을 때 망명신청기각으로 강제로 한국에 송환되어 보복될 것이 두려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워싱턴과 뉴욕의 한국 정보요원들로부터 원고와 주변사람들을 협박하였고, 한국정보부가 두려워 증언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망명신청과정에서도 한국정부가 원고의 망명신청을 경박하다고 비판해 원고는 망명이 기각되어 강제귀국으로 보복을 받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극도의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저희가 조국을 버린 것이 아니라 조국이 저희를 버린 것이다” 라는 원고의 절규 그대로 원고는 북한의 가혹한 독재에 신음하다가 자유를 찾아 한국에 귀손했다가 미국 한인교회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방문 전부터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비판한 이후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국정원, 통일부 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 국정원장, 통일부, 한국정보기관원들의 갖은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면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또는 민법 756조(사용자의 배상책임)에 따라 원고가 입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위자할 의무가 있습니다.

본인은 변호인으로서 지난 2009년 7월 12일 미국의 한미우호증진협의회(American & Korean Friendship National Council, 송건 사무총장, 이장연 대표의장, 한진관 총재, 박윤식 특별고문, 싱글러브 장군 특별고문), 유에스인사이드월드(손충무 발행인), 뉴욕 뉴스메이커(편집인 임종규), 뉴욕 정의실천시민연합(임종규 대표), 워싱턴 예비역 기독 군인연합회의 초청과 후원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워싱턴 무궁화 교회에서 신앙간증을, 버지니아 한인교회(담임 이장연 목사)에서 시국강연을 하고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원고 가족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원고는 여권을 발급받자(갑 제12호 증, 서울신문, 미 망명 탈북자 마영애씨에 한국여권 발급, 2009.2.7.기사) 원고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뉴스메이커 임종규 편집인, 유에스인사이드월드 손충무 발행인에게 눈물의 감동적인 전화를 했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서럽고 기뻐서 울었습니다. (갑 제13호 증, 한국여권 받은 마영애씨, 연합뉴스, 조선닷컴 2009.2.7.기사)

원고는 미국에서도 꾸준히 북한인권을 위하여 탈북자강제북송을 반대하는 단식투쟁도 하였습니다. (갑 제14호 증, “탈북자 북송반 대 난민 인정하라” 마영애 선교사, 8월 4-8일 단식농성 LA 중국영사관 앞서, 크리스찬 투데이, 2008.8.7.기사) 워싱턴 공연에서는 원고를 비롯한 탈북자 연예인들이 북한의 인권침해를 고발했습니다. (갑 제15호 증, 탈북자 고총 ‘무대위 고발’ 미주 한국일보. 2007.12.5. 기사, 갑 제16호 증, 탈북자 실상 세상에 알린다, 미주 중앙일보 2007.12.5. 기사) 원고 부부가 하와이를 방문해 “종교단체 북한지원금 체제유지비로 전용”을 고발했습니다. (갑 제17호 증, 탈북자 부부 하와이 방문 첫 강연 “종교단체 북한 지원금 체제유지비로 전용” 한국일보)

미국망명을 도와주기 위해 샘 브라운 백 미 상원의원(공화)과 면담을 하였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브리운백 의원의 초청으로 워싱턴 사무실에서 약 40분간 면담을 가졌다”며 “브라운백 의원은 내가 낸 미국 망명신청이 받아 들여지도록 돕고,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도 주선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브라운백 의원과의 면담 자리에는 원고 가족을 돕는 미주북한선교회 회장 박시몬 목사등이 참석했습니다. (갑 제18호 증)

북한과 한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원고부부를 미국이 보호해주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원고 가족들로부터 그들의 기구한 생애를 전해들은 저는 사선을 넘어 북한을 피해 온갖 우여곡절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자유를 찾아 한국에 귀순한 원고 가족이 한국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아 미국에서 망명을 하게 되었고 미국에서까지 못살게 원고 가족을 괴롭힌 지난 노무현정권의 국정원, 정보요원들, 통일부, 통일부 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 국정원장은 북한독재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고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제기하겠다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협조해 주기로 수락했습니다.

원고의 소송대리인 저는 미국방문동안 전세계에 북한인권운동을 위해 공헌해온 수잔 숄티 여사와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을 하여온 원고가족들을 만났는데 한미우호증진협의회(이장연 대표의장, 박윤식 특별고문, 이휘문 목사)와 원고부부를 같이 만난 자리에서 수잔 숄티여사는 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2009.7.14.)에 직접 기고한 “남한 정부는 북한의 인권유린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알릴 수 있다”는 기사를 번역해 나눠주는 데 감동을 느꼈습니다. (갑 제20호 증, 2010년 4월 북한주민 살리기 인권행사는 서울에서. 서석구 변화의 현장을 가다. 유에스인사이드월드, 2009.7.22.기사)

왜냐하면 번역한 글에 의하면 그녀는 정치범수용소와 국경수비대의 구금소에서 탈북한 사람들을 때려잡는 북한과 중국의 인권탄압을 고발해 북한동포의 인권개선을 강력히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갑 제20호 증)

원고는 지난 2009년 10월 29일 미국 뉴욕에서 맨해튼 820 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건물 밖에서 신선호 북한대사가 지나가는 현장에서 탈북자 연예인 원고를 비롯한 20여명이 ‘독재 살인마 김정일을 ICC에 제소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에 속지말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렸습니다. (갑 제19호 증)

원고가 북한인권투쟁을 하게 된 것은 북한의 가혹한 독재로 신음하다가 생명을 걸고 탈북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와서 북한인권탄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북한과 남한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95년이래 4백만명이 굶어죽고 정치범수용소에서만 백만명 이상이나 고문, 강간, 굶주림 등으로 죽어간 죽음의 수용소 북한의 인권을 고발한 원고의 용기는 하나님(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결단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해를 피해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원고가 북한의 비참한 인권실태를 고발한 것은 신음하는 북한동포의 해방을 위한 그녀가 선교사로서 기독교적인 신앙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박해하고 여권연장을 기각시키고 국정원장까지 망명신청이 기각될 것이라고 국회증언으로 망명신청이 기각되어 강제송환되어 귀국될 경우의 보복으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무국적자 원고가 입은 고통, 미국에서도 끊임없이 가해지는 신변위협과 원고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까지 한국정보요원들과 통일부의 협박으로 원고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녀의 영웅적인 북한인권 투쟁을 가능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주신 뉴스메이커 임종규 편집인의 불굴의 투혼은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임종규 선생님은 미국에서 북한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뉴스메이커 신문발행을 꾸준히 해왔고 그녀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던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신변의 협박도 받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유에스인사이드월드 손충무 발행인도 원고가 겪는 박해를 교포사회에 고발하고 그 때문에 협박을 당하였고 정권이 교체된 이후 귀국하려다가 쓰러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의문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원고가 겪는 수난을 걱정했습니다.

뉴스메이커 임종규 편집인과 유에스인사이드월드 손충무 발행인의 교포사회와 미국에 던진 원고가 겪는 박해를 고발한 희생적인 용기가 원고의 망명신청을 승리로 이끈 주역으로 그분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고 미국 방문동안 그분들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 북한과 남한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원고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북한인권을 위한 기회를 주신 자유와 기회의 나라 미국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북한도 남한도 버린 탈북자 선교사 마영애 가족을 받아준 미국, 미국의회가 북한인권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미국, 미국 워싱턴에 6.25 무력남침을 저지하다 희생된 미군의 거룩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한국전 기념 메모리얼에서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는 구호로 희생의 가치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갖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북한인권을 고발한 원고를 만나 북한인권을 위한 소중한 감동을 느끼도록 해주신 하나님(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상의 노예가 아닌 인간의 인권이 존중되고 자유와 정의의 가치가 살아 숨쉬는 사회로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권을 노예로 만들고 돈과 권력과 탐욕의 노예로 인간을 전락시키는 모든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을 하나님(하느님)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도처에서 위태롭게 하는 대못보다 북한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가치가 한국의 역사를 주도할 때, 정체성과 도덕성 묻지마가 아니라 국가정체성과 도덕성에 헌신하는 역사를 꾸려갈 때, 개발의 탐욕으로 하나님(하느님)의 창조질서인 산림을 훼손하기 보다 인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는 산림보호와 저탄소 녹색경영으로 나갈 때, 북한동포도 자유민주주의도 한국도 인류도 구원될 것입니다.

원고가 여권을 발급받기까지 3년 7개월간(갑 제12, 13호증) 무국적자로 미국에 망명을 하였습니다.

미국에 망명을 하기 까지 미국에서 발행하는 뉴스메이커 임종규 편집인(갑 제3, 4, 5호 증)과 유에스인사이드월드 손충무 발행인(갑 제6, 7, 8, 9, 10호 증), 미국 샘브라운백 상원의원(갑 제18호 증), 원고를 변호해준 BRETZ & COVEN, LLP 로펌의 Jules E. Coven 대표가 미연방 상원 샘 브라운백 의원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 뉴스메이커와 유에스인사이드월드 기자들, 한미우호증진협의회(이장연 대표의장, 박윤식 특별고문, 이휘문 목사), 미주한인교회, 미국망명을 허가해준 미국, 그리고 북한과 남한으로부터 버림을 받고도 불굴의 투혼으로 북한인권을 위해 헌신적인 투쟁을 해온 원고 가족들에 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국이 탈북자들을 강제로 북송되는 것처럼 원고 가족들도 한국에 강제송환되어 정치적 보복을 당했을 것입니다.

북한도 한국도 원고를 버린 결과 그녀가 입은 극도의 정신적 충격, 국정원장의 국회증언으로 무국적자로서 망명신청이 기각되면 강제귀국으로 받을 보복으로 떨어야 했던 그녀,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기반을 잃어버려야 했던 손해, 미국에서 까지 그녀의 생활을 위협하는 국정원, 통일부, 한국정보요원, 통일부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 그들의 불법행위로 한시도 편할 날 없이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그녀가 입은 고통을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의 당사자로서 또는 민법 제756조(사용자의 배상책임) 소정의 사용자로서 그녀가 입은 손해를 한국의 사법부가 국민의 인권의 정의의 마지막 보루로서 사명을 다하여 위로하고 보상하는 의무를 다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원고가 3년 7개월간 무국적자로 미국에 망명하도록 하게 한 국정원 오태수 등 관리, 통일부, 통일수 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 정경석과 관계자들, 망명을 한 이후에도 계속된 워싱턴과 뉴욕의 한국 정보요원의 불법행위의 불법행위로 원고가 겪은 정신적 고통, 여권연장 신청 기각으로 한국에 두었던 경제적인 기반까지 상실했던 고통, 여권이 다시 발급되기 까지 무국적자로 지내게 한 지속적인 불법행위로 인한 고통을 모두 위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억원을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과연 그렇다면 청구취지로 구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그 이유가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고 가집행을 선고해 신속한 권리구제를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9. 11. 13.

원고 소송대리인 영남법무법인
담당 변호사 서 석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