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전도 왕" 특별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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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 참고자료

2011. 2. 25.

 

노아속회 해설자료 (2011. 2. 25.)

 

 "전도 왕" 특별검사 

 

 

 

오늘 속회 주제는「비전과 열정」이다. 구약성경 학개서 2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건축의 비전을 선포하며 건축에 열정을 쏟는 학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데 열정을 쏟아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최근에 읽은 김인호 저《하늘의 특별검사》(규장)라는 책을 요약하여 이 자료를 만들었다. 현직 부장검사가 하나님께 이끌리어, 신앙 때문에 좌천됐지만 겸손한 맘으로 성경 1만권을 나눠주며 간 데마다 전도해 2만여명을 인도, 전도열이 높기로 유명한 명성교회에서 전도 왕의 칭호를 받았다. 우리도 그를 본받아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를 부흥시키자. (오소운).

 

1. 복음 전하는 부장검사

글: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신간안내]

 

김인호 검사 '하늘의 특별검사' 출간.

현직 부장검사가 성경 1만 여권을 나눠주면서 2만 여명을 교회로 인도한 이야기를 담은 '하늘의 특별검사'(규장)를 출간했다. 명성교회 장로인 김인호(55) 광주고검 부장검사는

"한때 검찰에서 출세하는 것을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는다면 세상의 출세는 진정한 출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라고 말했다. 김 검사가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서울대 법대 4학년 때이던 1977년 가을이었다. 이미 그해 3월 사법고시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불화로 가정이 평화롭지 못했다. 그는 평소 교회에 나갈 것을 권하던 이모할머니의 소개로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나갔다. 이후 거짓말처럼 부모님 사이가 좋아졌다. 그도 처음에는 일요일에만 교회를 나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서울지검 특수부, 대검 중수부에서 근무하는 '잘 나가는' 검사로 일이 바쁘기도 했고 출세 욕심도 있었다. 그러다 1999년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술을 끊고 동료와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면서 전도하는 일을 시작했다.(이하생략)

 

2. 국민일보 기사

김장로는 검찰권 행사를 통한 사회적 정의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느라 밤을 지새우곤 한다.

“성령이시여! 검찰권을 행사하면서 뼈끝이 시리도록 뭇 영혼을 사랑하게 하소서.”

검찰권을 통해 복음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이것이 김장로의 삶의 테마다. 그는 2003년 3월 서울지검 고양지청장에 부임하기 전 내정자로 6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청사 준공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이때 성령으로부터 강하게 붙들림을 받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때부터 핍박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청사를 완공한 뒤 통상 해왔던 ‘돼지머리 고사’ 대신 준공 감사예배를 드렸다. 지역주민과 직원, 그리고 관련 인사 등 모두 250여명이 참석해 8층 강당을 가득 메웠다. 관련 인사와 직원들로부터 수고의 박수도 아낌없이 받았다. 그는 이날을 위해 내정자 신분으로 무려 6개월 동안 기도의 벽돌을 쌓았다.

“청사 건물을 위해 건축의 벽돌을, 영적 승리를 위해 기도의 벽돌을, 직원과 주민의 복음 전파를 위해 사랑의 벽돌을 쌓았습니다.”

국가 공공기관의 준공식 행사가 ‘돼지머리 고사’ 대신 감사예배로 치러진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타 종교의 믿음을 소유한 직원이나 미신을 섬기는 주변 사람들의 반발은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였다. 당시 세 가지의 기도 벽돌을 쌓으면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성경 구절을 통해 들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이 구절은 ‘봉헌하라’는 음성으로 들렸고 그 응답이 마침내 그를 담대하게 만들었다. 준공 감사예배를 드린 후 법무부 장관의 초도순시가 이어졌다. 장관 역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고의 표현은 그날 밤 술잔으로 전해졌다. 청사 완공에 대한 수고로서 ‘극찬의 술잔’이었다. 장관이 검사에게 술잔을 권하면 보통 신앙과 연결 짓지 않고 때론 타협하면서 잔을 받는 것이 예의이자 관례다. 하지만 그는 뜻밖의 모습으로 장관의 술잔을 거절했다.

“저, 술 안마십니다. 교회의 장로라서 술 안마십니다.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그 날 저녁 모임에 참석했던 직원들은 이렇게 술회했다.

“술잔을 거절하는 저 배짱과 뚝심이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그리고 참석자들은 덧붙였다.

“그때 지청장님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했죠. 그 태연함에 오히려 윗분이 더 놀랐을 것입니다.”

 

술잔을 거절하면서 그의 기도는 절박하게 이어졌다.

“검사의 직책을 주님이 주셨기에 ‘검사의 목’도 주님께 맡깁니다.”

그 후 깊은 방황과 번민이 찾아왔다. 20여년의 검사생활 가운데 그토록 괴로워해보긴 처음이었다며 차마 말문을 열지 못했다. 2004년 2월 대구고검 부장검사로 발령받았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에서 ‘한직 발령’이 아니라고 말한 검사는 거의 없었다. 발령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을까 라는 ‘믿음의 갈등’을 느꼈다. 그래서 한때는 ‘검찰에서 떠나라’라는 메시지로 해석하기도 했다.

 

관사 골방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눅 22:44) 매달렸다.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가장 곤고함(로 7:24)을 맛봤다.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셨다. 기도 응답이 실체로 나타났다. 주위 사람이 모두 깊은 잠에 빠진 어느 날 밤 12시쯤, 기도 중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창 45:7).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렸던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이집트로 보낸 것이 아니라 형들과 그들의 자손을 살리기 위해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며 감사한 내용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고난도 함께 받는다(롬 8:17)는 사실을 이렇게 깨달았다. 성경말씀은 그야말로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히 4:12)는 것을 몇 번이고 그는 강조했다. 한직 발령을 대구·경북지역 복음 전파를 위해 내려주신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는 요셉 같이 감사하게 되었다.

 

[아래 글은 책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다.]

3. 소생(蘇生)의 젖

대개 불신자 가정이 그렇듯이 우리 집안도 불교와 유교와 무속신앙이 결합된 분위기였다. 할머니가 유난히 절에 자주 다니며 열심이셨는데, 그 때에는 시골 분들이 거의 다 그랬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야기를 들으면 참 이상하다. 나는 1956년 1월 8일, 경남 합천군 삼가면 금리 533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렸다! 어머니의 젖이 나오지 않았다. 젖을 짜서 먹이려고 해보았지만 젖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죽을 끓여 먹였는데 그만 죽을 먹다가 체한 뒤 물도 넘기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거의 죽은 것 같은 가사(假死) 상태로 수십 일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이웃에 살던 목사님 따님이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하였는데 내 딱한 사정을 듣고 데려다가 젖을 먹여주어 내가 살아났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적대적이던 할머니도 손주를 살리려고 나를 안고 다니며 동냥젖을 먹였다. 할머니는 내게 젖을 주어 살리신 조이순 씨를 양어머니로 맺어주시기까지 하였다.

 

다시 살아난 기쁨도 잠시, 태어나자마자 영양실조에 빠진 자식이 사람구실 하겠느냐, 뇌세포가 파괴되어 저능아가 될 것이라 수군거렸는데, 그게 현실로 나타났다. 내가 말을 못하고 조금 하는 것 마저 더듬었다는 것이다. 중학교 입학 때까지도 나는 바보로 살았다.

그러나 어머니만은 나를 놓지 않으셨는데 나는 아무리 공부를 하려 해도 기억을 할 수가 없었고, 밤이면 검은 옷을 입고 창을 든 사람이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어 쫓겨 다니다가 땀을 흥건히 흘리고 깨어나곤 하였다. 견디다 못해 죽으려고 병을 깨뜨려 손목을 긋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생명을 부지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런 ‘바보 인호’가 차츰차츰 머리가 좋아지고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머리가 트인 것도, 살아나기 시작한 것도 하나님의 지극한 도우심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4. 꼴찌에게 주신 은혜

나는 김녕(金寧) 김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경남 거창 가조의 만석꾼으로 일명 ‘망태 할아버지’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 망태 안에 쇠고삐가 한가득 담겨 있었으니, 부리는 소가 얼만지 땅은 또 얼마나 많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많던 재산은 할아버지가 술로 다 말아먹고 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완전히 몰락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안 해 본 장사가 없는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에서 양곡 도매상을 하셨고, 어머니는 시골에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수십 명씩 하숙을 치면서 자녀 뒷바라지를 하셨다.

 

부산 동신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전학하자마자 내 성적은 다시 꼴찌로 떨어졌다. 다행히 중학교 입학시험이 쉽게 출제되어 꼴찌로 경남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벽형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였고 점점 성적이 향상되어 고3 때는 전교 5등 안에 드는 성적이 되어 나는 마침내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합격되었고, 그 이듬해에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조선일보 방일영장학회의 첫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 4년간의 장학금 전액과 용돈과 책값까지 받아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14p.~19p. 요약)

 

5. 김경호 형제

1999년 7월 나는 천안검찰청 지청장으로 발령받아 집을 나서는데 자동차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다. 전안지청 1호차로서 나를 모시러 온 차였다. 운전사는 씨름 선수 출신의 거구로서 이름은 김경호였다. 김인호 검사와 김경호 운전사…. 형제 같은 이름이라 그 사람을 “김경호 형제”라고 불렀다. 그는 감동하여 눈물까지 흘렸다. 취임식을 했다. 써 준대로 취임사를 하고 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마디 덧붙였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 천안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다. 취임 축하연을 준비한다기에 다음으로 밀라고 하고는 김경호 형제에게 공익근무요원과 여직원들에게 저녁을 대접할 테니 주선하라고 하였다. 그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수요예배에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식사 후에는 2차, 3차가 있어왔지만, 오늘은 2차만 하겠습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하였다. 그들을 데리고 교회 앞에 다다르자 모두 어안이벙벙, 서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청장님이 2차를 어디로 간단 말씀을 안 하셨으니 약속 위반은 아닙니다. 일단 들어갑시다.”

 

예배 후에 나는 3차라며 팥빙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모두들 좋아했다.

이 소문은 천안에 쫙 퍼졌다. 천안지청 의료자문위원장이 전화를 하였다. 산부인과 의사이며 도올 김용옥의 형님인데 장로였다. 소문 들었습니다, 하기에 소문을 가라앉혀 달라고 했으나 더욱 소문을 퍼뜨렸다.

 

새 청장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각계 인사들이 나를 찾아 왔는데, 나는 그들 모두에게 성경을 선물하고는

“다음 수요일에 교회에 가는데 거기서 다시 뵐까요?”

하면 어김없이 교회로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한 달 동안 성경을 100여 권을 사서 선물하였다.

 

(이러다간 살림 거덜 나겠구나….)

걱정을 했는데 하나님이 예비하셨다. 천안기독교대학 장종현 총장이 찾아왔다.

“초면에 소문 듣고 찾아 왔습니다. 전도하기 위해 세운 학교 총장이 목사인데 저는 부끄럽지만 전도를 못하고 있는데…, 우리 동업합시다.”

 

“동업이요?”

그러자 김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성경을 한 트럭 가져왔습니다.”

“몇 권이나 됩니까?”

“아마 2천 권이 넘을 겁니다.”

(이 많은 성경을 어쩐다지?)

 

나는 기도했다. 각종 간담회에 나가 얘기 할 때, 청내를 순시하고 기관들을 방문할 때, 그 때마다 성경을 나누어주면 된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다. 나는 시청, 경찰서, 대학, 공장, 장마당 등을 방문할 때 성경을 가지고 나가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대학생들은 청장님 나가시는 교회에 나가도 됩니까 하고 질문을 하고, 공장을 방문하면 간담회 끝에 예배도 드리자고 하는 것이었다.

혼자 내려왔기 때문에 아침밥 먹으로 가는 식당 주인과 직원들에게도 성경을 주고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했다.

 

나는 수요예배에 그치지 않고 대형 집회를 계획했다. 천안중앙감리교회에서 장소와 식사를 준비하고 천안시의 기관장들을 모아 집회를 열었다. 700여 명이나 참석했다. 다음에는 장소가 훨씬 큰 천앙장로교회에서 집회를 하였는데, 수용인원 1,500명에 1,200명분의 식사를 준비했는데, 1,500명이 모여 밥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며 즐겁게 일을 하여 너무 기뻤다.

 

다음 날 근처 절의 스님 두 사람이 찾아와, 항의하러 온 줄 알고 긴장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항의였다.

“그 좋은 모임에 왜 우리 불교계는 왜 초청 안 하시는 겁니까?”

“그럼 제가 절로 갈까요?”

“대환영입니다.”

 

퇴근하고 절로 올라가니 캄캄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스님, 저는 기도를 하고 먹는데요, 해도 될까요?”

된다고 하여 기도를 하는데 영감이 왔다. 식후 간담회에 성경을 나눠주자! 나는 김경호 형제에게 삐삐를 쳐 당장 성경을 절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성경 말씀 중에서 불교인에게 좋은 것을 읽어주고 화기애애하게 환담을 마쳤다. 다음날 다른 절에서도 와 달라고 스님이 찾아왔다.

 

6. 술 먹는 것보다 훨씬 낫네

대구지청에 근무할 때 동료들에게 교회 근처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가까운데 교회가 있는데 우리 같이 갈까요?”

하고 제안하자

“그럽시다. 교회 갔다가 우리 3차 갑시다.”

 

그 날, 그 교회 목사는 바벨탑 설교를 꽤 오래 했다. 어려워서 어쩌나 걱정하는데 동료들은 진지하게 듣고들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는데 한 사람이 말했다.

“술 먹는 것보다 훨씬 낫네. 그자?”

“진짜 훨씬 낫다. 그자?”

‘그자’ 소리가 이어졌다.

 

3차로 간 곳은 술집이었다. 그런데 다른 때하고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술을 받아 놓고는 마실 생각들은 않고 아까 들은 설교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술잔을 들고서 “할렐루야!” 하고 외치자 모두들 “아멘!” 하고 대답을 하는데 나에게는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주 수요일에도 내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예배에 참석했고, 술집 주인과 종업원까지 주일에 교회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7. 교회의 비밀을 찾아서

―황영희라는 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도와 달라, 하는 지인의 청탁을 받고 그를 만났는데 그 여인의 이력이 이채로웠다. 수녀원에서 3년, 절에서 여승으로 10년을 지낸 그가 어느 회사의 여사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억울함을 풀어준 다음 그에게 전화를 하여 만났다. 동생과 함께 온 그들 앞에서 나는 그동안 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한 달 동안 기도하며 이 일을 풀었습니다.”

 

그리고는 성경에 그들의 이름을 써서 건네주었다.

황영희 사장이 동생을 째려보며 지금 뭐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황사장은 하안거(夏安居, 불교의 수행정진 기도)를 마치고 절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검사에게 포교를 하려고 단단히 결심하고 왔는데 내가 사건을 기도하며 해결하였다며 성경을 주니 기가 막혔던 것이다.

 

나는 시간을 주지 않고 내가 대구 어느 교회에서 특강을 하러 가는데 (간증이라고 하면 모르기 때문에) 두 분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였다. 황영희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번엔 내가 놀라

“아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정하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대답이 이랬다.

 

“사실은 제가 절에 있을 때 저를 찾아오는 불자(佛子)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예불을 드리면서 설법도 많이 해 보았지만, 절을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참 쓸쓸했었죠. 그런데 대구 시내에 오면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참 밝았어요. 도대체 교회의 비밀이 무얼까? 가서 알아보고도 싶었지만, 제가 승려 출신이라서 아무도 나를 교회로 불러 주지를 않았는데, 검사님 덕분에 이번에야 말로 교회의 비밀을 알게 될 것 같네요.”

 

8. 살아 계신 하나님

이틀 뒤, 황영희 사장이 그 교회로 직원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준비 찬양 때부터 박수를 치고 자못 진지하게 예배를 드렸다. 나는 간증을 하는 동안 그들을 주목했다. 집회를 마치고 난 뒤 아쉽게도 은혜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이야기를 나누지를 못했다. 그 날이 금요일이기 때문에 나는 본 교회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기 때문이다. 주일 3부 예배를 마치고 간증집회를 하러 가는데 황영희 사장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검사님, 제가 오늘 그 교회에 또 갔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교회에서도 밥을 주니까 더 은혜가 되네요.”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순간 문자가 또 왔다.

“오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다음 주부터는 오전엔 교회, 오후엔 절에 가렵니다.”

진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뭐라고 답할까요?’ 순간 뭐라 답할지 마음에 감동이 왔다.

 

“그렇게 하십시오. 절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절에 가시더라도 제가 드린 성경을 가져가 보시지요.”

이 말이 일주일 내내 그녀의 마음을 강타하였다고 한다. 수녀생활을 한 그녀는 창세기서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큰 병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녀, 사업의 침체로 고통 받던 그녀는 냉혈인간 같이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그가 하루아침에 눈 녹듯이 변화된 것을 보고 직원들도 사장을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9. 예비된 동역자들과의 만남

광주지검에 부임하던 날, 한 수사관이 나를 보더니 “장로님” 하고 불렀다.

“어느 교회 다니세요?”

“저는 교인이 아닙니다.”

나는 순간 얼떨떨했다. 이 사람이 나를 놀리는 건가? 생각하는데 그의 다음 말이 뜻밖이었다.

 

“제가 장로님 간증 기사를 보고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부임 첫날부터 나를 혼자 보내시지 않으시고 간증기사를 먼저 보내셔서 한 사람을 전도하게 하시다니…. 광주 고검에는 신우회(信友會)가 있는데, 맞은편에 있는 광주법원에서는 신우회 결성이 번번이 막혀 10년째 기도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 간증기사가 퍼지면서 두 달 만에 신우회가 결성되어 이제는 법원과 검찰청 양신우회가 합동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10. 나의 소원

어느 날, 범죄예방위원회 임원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광주시 여성단체협의회 초대회장인 안영자회장을 만나게 되었다. 저분이 불신자라면 전도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며칠 후 그 분이 나를 찾아왔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정정하고 목소리도 걸걸하였다.

“제가 이제껏 많은 검사를 만나봤지만 검사님처럼 얼굴이 맑고 겸손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 친구 아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도와 달라 하였다. 나는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도움이 되게 하였다. 그는 고맙다며 자기가 나를 도울 일이 없느냐 물었다.

 

“회장님, 제가 일요일 저녁에 교회에서 특강을 하는데 전부 호남사람들이라 제가 좀 떨리네요. 회장님이 같이 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원래 교회는 안 다니지만, 검사님이 한 번 가달라는데 그게 뭐 어렵겠어요.”

“회장님의 여성 후배 중 안 믿는 사람 100명쯤 인도해주시겠어요?”

 

그가 데려온 사람들은 100명이 훨씬 넘는 숫자였다. 나는 그분들 모두에게 성경을 나누어주고 그분들을 앞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불신자 중심의 간증을 하였다. 모두들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분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달래서 수시로 전화, 사후 관리를 하여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

 

내가 2001년부터 작성한 전도 일지에는 4000여 명이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전도하면서 나누어준 성경만 해도 헤아릴 수가 없다. 만 여권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전도의 저력은 성경 중심 신앙과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 말씀 묵상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태복음 6장 33절을 묵상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주의 말씀을 실천하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다짐한다. 또한 국가공무원으로서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도 매일 한다.

 

11. 변화된 장로의 영향력

―내가 대구고검에서 근무할 때 영주의 어느 교회에서 간증을 하게 되었다. 그 교회 수석 장로는 건설과 레미콘 사업을 크게 하는 정인수 장로였다. 그의 차를 타고 교회로 가다가 운전하는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님, 예수 잘 믿으시지요? 회장님 닮으셔서….”

“아뇨, 저도 예수를 믿어보고 싶은데 교회 앞에 도착하기만 하면 회장님이 꼼짝 말고 차에서 대기하라고 하셔서 아직 한 번도 예배당에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정회장 얼굴이 귀까지 벌겋게 되었다.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듯 보였다. 순간 나는 후회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짧았다. 정 장로는 내리면서 기사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같이 들어가세. 그 동안 내가 미안했네.”

 

간증을 마치고 나오는데 정인수 장로가 기사를 데리고 와서 말했다.

“장로님, 이 사람이 오늘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다. 일주일 쯤 지나서 그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검사님, 회장님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고무된 목소리에 나도 흥분해 어떻게 변화됐느냐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집회를 마친 바로 다음 날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정 장로가 전 직원 앞에서 이렇게 선포했다고 한다.

 

“그 동안 제가 미처 말을 못했었는데, 이제 확실히 하겠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계신 분은 계속 열심히 다니면 되고,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은 돌아오는 일요일부터 제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다니면 좋겠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싫으신 분이 있다면 앞으로 조금 귀찮아지실 것입니다. 제가 끈질기게 따라다닐 것입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다니는 협력업체마다, 만나는 거래처 사장마다 따뜻하게 대하시며 “뭐 도와드릴 것 없습니까?” 하고 먼저 세심히 살피고 챙기다가 이야기 끝에는 꼭 “돌아오는 일요일에 저와 함께 교회에 가십시다.” 하며 교회에 나올 것을 적극 청하신다는 것이다.

“교회에 오시게. 예배드리고 내가 점심을 살 테니….”

 

나의 간증을 듣고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나는 은혜와 감격으로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아!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체험을 그대로 전하고 선포한 것 밖에 없는데, 이 작은 자를 통해 한 사람이 변화되고 또 수많은 사람에게로 그 영향력이 흘러가다니! 정말 하나님이 일하시는구나!

이런 감격 속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나를 더욱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리게 된다.